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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12.04.06 (금)

계시말씀

선포일
2012.04.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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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믿음, 온전한 사랑 주사랑빛 2012. 03. 01. 새벽 3시 [에스더 기도 첫째 날, 더욱 결심을 하고 깊이 기도 드렸습니다. 주님께 “선생님의 삶을 보면 따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라고 고백 드리자 주님께서는 “선생의 삶이 진실이다. 온전은 온전을 알아본다.”라고 하시며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 말씀* 남녀가 사귈 때에도 자신이 다른 이성을 쳐다보며 상대에 대한 사랑이 식으면 상대도 그러하다고 의심하며 쳐다보게 된다. 상대가 설사 그러하지 않아도 상대를 불신하며 믿지 않음으로 그 사랑이 나날이 식게 된다. 자신이 온전한 사랑을 하지 않으니 상대를 온전하지 못한 눈으로 보는 것이다. 섭리를 악평하는 많은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온전하지 못한 눈으로 보니 온전한 것이 온전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한쪽 눈을 실명한 자는 세상을 볼 때, 정확히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온전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자신이 온전해야 온전한 것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섭리사 너희들은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도록 온전한 눈을 가지도록 하라. 나를 믿고 따르던 많은 기성들은 온전한 눈을 가지지 못했다. 온전하지 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 예수를 바라보았기에 진리를 바로 보지 못하고 배척하며 헛된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온전한 눈을 가지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선생만이 온전한 눈이 되어 진리를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선생을 통해 보지 않는 자들은 마치 한 쪽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온전하지 못하다 불평하는 자와 같다. 섭리사 나의 신부들에게 당부하는 말은 기도함으로 더욱 온전한 선생과 같은 눈을 가져라. 그리고 무엇이 진정 온전한 것인지 분별하라. 너희 각자가 나의 온전한 신부인 선생과 같이 될 때 휴거의 안정권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를 재촉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나 예수가 천사장 나팔 불 때, 너희 가운데 왔다 할지라도 온전한 눈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이니, 아무리 간절히 원한다 해도 휴거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생과 같이 되어라’ 함은 ‘선생과 같이 온전해져라’ 함이요, ‘선생과 같은 생각과 정신을 가져라’함이요, ‘선생과 같은 사랑을 나에게 달라’ 함이다. 너희 눈에 보이는 나 예수의 육신이 있고 표상된 자가 있으니 참으로 복된 섭리사이다. 휴거는 마치 해외로 여행을 가는 자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과 같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에는 티켓을 검사하지 않느냐. 몇 달에 걸쳐 여행 갈 준비를 다 하고는 티켓을 가져 오지 않거나 분실했다면, 정작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된다. 결과를 이루어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야, 다시 한 번 이른다. 자신의 사랑이 온전하면 상대의 온전한 사랑을 알아본다. 섭리사를 반대하고 악평하는 자들의 사랑이 온전하다 할 수 있느냐? 병에 걸린 자는 병을 앓고 있는 자의 말에 귀 기울이기보다 병을 완벽히 나았다고 하는 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어있다. 너희가 진정 휴거되고 싶다면 휴거된 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하지 않는 자들은 휴거되고 싶지 않다는 것과 같지 않느냐. 나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과 같지 않느냐. 나와의 혼인을 원하지 않는 자에게 나 예수가 구걸하며 매달려야 하겠느냐. 선생과 같이 온전해져라. 그리고 나를 진정 사랑하여라. 우산을 가진 자에게 비가 오는 것이 문제겠느냐. 튼튼한 집을 가진 자에게 바람이 부는 것이 문제겠느냐. 사랑하는 신랑의 품에 있는 자에게 악한 자가 다가오는 것이 문제겠느냐. 너희 스스로가 온전하면 무엇이 문제겠느냐. 나를 진정 사랑하는 자에게 휴거에 대한 염려가 있겠느냐. “아멘, 사랑하는 주님. 어제 수요예배를 통해 주신 존재에 대한 말씀이 너무 좋았어요, 주님. 섭리의 자부심과 긍지가 느껴졌어요. 악평자들은 이 섭리의 자부심이 없어지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자야, 네가 그리 느꼈다면 아무리 개가 짖어대도 문제가 되겠느냐. 그들은 자신이 온전하지 못함으로 섭리를 불신하고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한 자에게 인생을 맡기며 구원을 포기하려는 자도 있느냐.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자이지 않느냐. 선생은 지구땅 가운데 가장 온전한 사랑을 이룬 자이다. 그리하여 가장 온전한 사랑의 결정체가 되었다. “아멘, 주님. 육 휴거는 저희의 육이 주님과 결혼하여 이 땅에서 사랑하며 사는 것이고 영 휴거는 준비된 영이 주님과 결혼해서 천국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너무 감사드려요.” 섭리사는 너희의 육이 나와 결혼하는 것과 같은, 육 휴거를 지난 30년 동안 이루어왔다. 그리하여 마치 신랑과 신부가 결혼을 하듯이 나 예수는 나의 육신을 통해 섭리사 신부들과 땅에서 사랑하며 사는 역사를 펼쳐왔다. 그러나 악평자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나의 육신 된 자의 사명을 오해하고 불신하며 온전하지 못한 자신의 정신의 눈으로 보기만 하였다. 그리고 영 휴거를 맞아 나 예수의 영과 결혼하는 때가 되니, 말씀이 바뀌었다고 하며 또 오해하였다. 선생은 마치 수저를 들고 밥을 먹은 것처럼 나 예수의 휴거 역사를 순차적으로 진행한 것 뿐이 다. 그러나 수저가 있는 대도 수저를 가지고 밥을 먹지 않고 손으로 집어 먹는 자들이 수저를 들고 밥을 먹는 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악평하듯이 해왔다. 무엇이 온전한지 알지 못하는 자들은 온전한 것을 손에 쥐어 주어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 그리고 불평만 해댄다. 사랑하는 자야, 이제 너희는 모두 옆에서 무엇이라 하든지 외길을 가라. 이 길은 오직 선생이 만들어놓은 길로서 온전한 신부가 되어 휴거되는 길이다. 천국길이다. 인생은 두 길이 아니라 한 길이라고 한 말을 기억하 고 진리와 사랑으로 더욱 거듭나 온전한 신부 되어라. 온전함으로 온전함을 분별하여라. 성경인물 중 많은 자들도 온전함을 갖추어 나갈수록 더욱 삼위의 온전함을 사모하였다. 온전히 갖추지 못한 자가 하늘역사를 해방하고 악평하였다. 너희는 어느 편에 설 것이냐. 신을 닮아가는 섭리역사에서 살아라. [낮 기도시간에 선생님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섭리사와 제 자신이 더욱 온전해지고 싶다고 기도 드렸습니다. 그때, 제 사랑을 돌이켜 보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저는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버선발로 달려 나가서 신랑을 맞듯이 뜨거운 사랑으로 맞았었는데, 어느새 첫사랑을 잃고 와스디와 같이 교만해졌습니 다. 이 시대 기독교도 처음에는 주님의 재림을 버선발로 달려 나가 맞듯이 환영했지만, 때가 되어 땅의 사명자를 보내어 불렀지만, 어느새 첫사랑을 잃고 교만해져 거절하고 왕이신 주님 앞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래, 내 사랑아. 잘 깨달았다. 기성은 벌써 나를 잃었다. 그녀의 교만이 스스로를 자멸시켰다. 와스디는 자신의 잔치에만 만족하고 빠져있었다. 항상 왕의 부름을 기대하며 사랑으로 기다리고 있지 않았기에 자신의 일에 빠져 산 것이다. 이 일 또한, 왕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왕이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왕의 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때를 놓치고 왕의 부름을 응하지 않았 다. 와스디는 폐위를 당하고 궁궐을 나가며 갖은 욕을 했댔다. 억울하다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닫힌 궁의 문은 영영 다시 열리지 않았다. 사랑에 온전하지 못한 자는 늘 준비를 하고 있지 못함으로 때를 맞추지 못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 그리고 다른 자를 원망한다. 지금의 기독교도 이와 같다. 나 예수의 재림을 그리도 원하여 많은 노래와 이야기로 떠들썩하더니, 어느새 자신의 일에 빠져있다. 이것을 나 예수가 원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나 예수가 원하는 것은 오직 나의 육을 통해 부른 나의 부름에 응하여 나의 앞에 나아오는 일이다. 그러나 교만하여 부름에 응하지 않고 아직도 헛된 잔치를 벌이고 있다. 그리하면 폐위되어 다시는 왕 앞에 나서지 못하고 신분이 낮아진 와스디처럼 내침을 당한다. 나의 생각과 일체 되어야 나의 신부다. 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나의 신부다. 나의 부름에 응답하는 자라야 나의 신부다. 나의 육신 된 자를 통한 나의 명을 받아들여야 나의 신부다. 섭리사는 나의 부름에 응해 나의 앞에 나아온 에스더와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축소해 보았을 때 너희 각자 개인의 역사도 이와 같으니, 모두 이 기간 기도함으로 첫사랑을 회복하여 오직 사랑으로 나아오는 에스더와 같이 되어라. 너희가 처음에 섭리사에서 나 예수를 만났을 때를 생각해보아라. 활화산처럼 불타던 사랑이 어느새 식어 재가 되지는 않았는지, 그리하여 나를 위한다고 하며 일에만 빠져 살고 있지는 않는지, 수시로 부르는 나의 부름에 나아오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아라. 모두 온전히 첫사랑을 회복하여 매일 매순간 나 예수가 부르는 사랑의 부름에 응하여 나아오고 선생을 통해 부르는 진리의 부름에 응하여 나아오너라. 그리할 때, 너희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고 나 예수가 너희의 손을 잡고 긴긴 시간 성대하게 혼인잔치하리라. 사랑하니 이른다. 모두 나 예수의 말에 귀 기울이고 더욱 온전히 갖추길 바라는 주 예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