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2.04.18 (수)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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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랑
작성일 : 2012. 3. 27(화) 새벽 2시
작성자 : 주은혜
*새벽에 주님께 기도하며 예수님, 선생님께서는 우리
가 주님께 잘못 행하거나, 우리가 선생님께 온전하게
행하지 못했을 때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보다 더 상
처를 받으시고, 충격을 받으신다고 들었어요. 왜 그
런 걸까요?’하고 여쭈었습니다.
주님은 ‘사랑하기 때문이지. 많이 사랑하니까.’하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어 말씀해 주신 말씀입
니다.
*예수님 말씀*
너희가 무심코 던지는 말 한마디에
너희가 무심코 하는 그 행동에
선생은 상처를 받는다.
마음과 정신에 타격을 받는다.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깊기 때문에 너희가 하는 행위가
선생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다.
완전한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은 짝사랑이요,
이상적인 사랑이 아니니
나는 소통하는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했고,
또한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 나눌 수 있게 했다.
사랑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무한하다.
슬픔도, 기쁨도, 행복도 나눌 수 있고
육적인 것들, 정신적인 것들도 나눌 수 있으며,
원한다면 영적인 것들도 나눌 수 있다.
사랑하는 자들끼리 서로 소통하고
서로 뜨겁게 동일하게 사랑한다면
불가능은 없고, 마음 일체, 정신 일체가 가능하다.
같은 것을 바라보기에 목표도 같고,
생각도 같고, 모든 것, 삶이 같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이 한 쪽으로 기울어지게 되면,
똑같이 나누는 것은 힘들어진다.
사랑 관계에서 사랑을 적게 주는 쪽이 생기게 되면
그 상대는 더 많은 사랑을 주고,
더 희생하며, 더 고통을 짊어져야지만
사랑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이 동등하고 대등하지 않으면
바라보는 곳이 다를 수도 있고,
행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기에
서로에게 상처가 된다.
사랑의 상처는
결국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받는다.
더 기대한 자가 받고,
더 많이 행해 주고,
희생해 준 자가 받을 수 받게 없다.
마음을 쏟았기 때문이고,
더 많이 주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온 인류를 통틀어
너를 가장 많이 사랑해 준 자.
너희를 대신해서 행하여 주었고,
희생하여 주었고,
이끌어 준 자가 누구냐.
바로 선생이다.
선생이 너희를 그렇게 뜨겁게 사랑했다.
너희는 너희가 선생 앞에
1:1의 신부로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자들이 아직도 많구나.
그렇기에 너희가 무심코 행하는 말과 행위로 인해
선생의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모르는구나.
잘 들어 보아라.
사랑을 줄수록, 받을 수도 있는 그릇이 생긴다.
그릇이 비워져야지만
다른 것을 넣을 수 있는 것처럼
너희 가운데 가진 사랑은 줄수록
상대가 주는 사랑이 눈에 보이고
값지게 볼 수도 있으며
함께 나눌 수도 있는데
너희는 어찌 그리 행하느냐.
선생이 ‘너’와 1:1이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선생을 사랑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앞에 선생이 너희가 내어야 하는
사랑의 몫을 주지 않은 고로
더 많은 사랑의 값을 치르며 가고 있는데
너희는 그 사랑을 인정하지 않고,
너희의 사랑 그릇을 비우지 않으니
선생의 사랑을
보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고 있다.
너희가 사랑을 내어 놓지 않았으니
선생은 더 많은 노력을 하며
너희와의 사랑을 선생이
지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사랑을 내어 놓아야
선생이 사랑의 상처를 덜 받는다.
사랑을 받아야 상처를 덜 받지 않겠느냐.
선생 혼자 사랑하게 하지 말아라.
선생 혼자 섭리사를 지키게 하지 말고,
선생 혼자 너희를 바라보게 하지 말아라.
선생과 함께 사랑을 해야 한다.
내가 너희와 1:1의 관계인 것처럼,
선생도 내가 세운 자로
너희와 1:1의 관계로 존재한다.
인정하는 자들은 너희 앞에
각각의 선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너희가 주고 싶은 만큼 주어라.
사랑의 승리자가 되어라.
너희가 선생을 끌어안고
품어 안는 자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언제까지 선생이 너희를 끌어안고, 죽어 주고
이해해 주고, 받아 주며 갈 수 있겠느냐.
이제는 어린 자들이 아니지 않느냐.
선생은 너희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수님, 사람들은 선생님과 편지를
주고받지 못하기 때문에
소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기도 합니다.)
소통이 무엇이냐.
진실한 소통은 결국 같은 마음인 것이다.
선생과의 소통이라고 하였느냐.
선생은 매번 선생의 마음을
말씀을 통해 보여 준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몸부림치는
선생의 인생을 통해서도 보여 준다.
너희는 선생을 위해
진실로 기도해 보았느냐.
정말 인생을 다해 선생을 위해 기도해 보았느냐.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은 나를 기억하지 못해.
선생님은 날 알지 못해.’ 하고 말한다.
진실로 마음으로 소통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내 사랑을 인정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은 고로, 나를 만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섭리사에 존재하며
나의 말씀을 듣고 성장하고는 있으나
선생의 사랑에 도전하지 않는 자들은
결코 재림의 문 앞에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자들이다.
선생의 사랑을 진실로 알고자 하지 않은 자들,
나와만 소통하면 된다고 하는 자들,
아니다.
결국 이시대의 나와의 소통은
기도로 선생과 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야.
사랑의 증거가 무엇인 줄 아느냐.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 줄 아느냐.
인생이요, 삶이다.
그 인생이 얼마나 진실되게 나를 바라보느냐,
그 삶이 얼마나 나를 위해 희생하느냐가
사랑의 증거가 된다.
말은 사랑의 증거가 아니라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의 증거는 결국 행실이요,
그로 인해 남기는 것이다.
선생을 보면
선생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선생의 사랑을 무시하지 말아라.
그리고 너희 마음 가운데
진실한 사랑을 바라보기 위해
깊이 기도하고 선생을 마주해라.
마음으로 소통하고
선생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 되자.
그래서 사랑의 상처를 주고,
받지 않는 자들이 되길 원한다.
이미 선생은 너희가 준
마음의 상처로 인해 아프다.
그러니 알고 행하자.
사랑한다.
내가 보낸 나의 육신,
나와 함께 뜨겁게 사랑하며 살길 바라고 원한다.
안녕
사랑의 주 예수그리스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