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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2.05.17 (목)

계시말씀 711f908c

선포일
2012.05.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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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신부역사 작성일 : 2012. 3. 22.(목) 작성자 :조미경 *성자 주님 말씀* 너는 법궤를 매고 베세메스로 가는 소를 기억하느냐? (네, 주님. 성서를 통해서 읽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 ) 그 소는 좌로도 우로도 쳐다보지 않고 오직 나의 뜻의 길만 걸었다. 자신의 생각이 없어야 한다. 너의 주관 너의 생각이 있다면 너의 길을 가게 되는 법이다. 너를 완전히 비우고 오직 나만 담으라. 내가 온전히 나타나 역사하도록 너를 비워 내어라. (예수님, 자신을 비우는 것이 어렵습니다.) 해 보고 말하여라. 오늘부터다. 지금 이 순간부터다. 너를 비워라. 완전히 비워야 한다. 행해 보자. 행할수록 더 큰 힘이 오게 된다. 행할수록 더 강해진다. (예수님, 제가 잘 행할 수 있을까요?) 지금도 너는 행하고 있다. 나와 일체 되려고 나와 대화하고 있지 않느냐. 이것이 노력이다. (예수님, 제가 또 못하면 예수님께서 실망하시면 어 떡하지요?) 사랑아. 너는 이 한 가지만 생각하라. 매 순간 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몸부림, 나를 놓쳤다면 어디에서 놓쳤는지 생각하고 얼른 달려가 내 손을 잡아라. 나를 찾아서 함께하여라. (예수님. 저의 생활에서 육에 보이는 것처럼 더 실감나게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싶어요.) 너희 선생이 오직 나만 의식하고 영인 내가 보이지 않아도 내가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나를 모시고 섬겼다. 선생은 생활 속에서 사랑을 하였다. 기도할 때만 찾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내가 빠지지 않았다. 어려움이 있을 때만 찾지 않았다.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즐거움도 모든 것을 나와 함께하였다. 내 사랑아. 선생은 나 예수를 사랑함을 삶으로 실천한 자이다. 선생의 삶을 보며 따라해 보아라. 그와 같이 살아야 그의 심정을 받지. (진정한 사랑으로 주님을 대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들꽃을 꺾어 단상을 장식하는 장면, 기도하시기 전 몸을 씻고 닦으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장면, 농사를 지어 채소를 드릴 때, 키울 때부터 구별하여 더 거름 주며 가장 크고 깨끗한 것을 주님께 드리는 장면, 동전은 깨끗이 씻고 지폐는 다려서 정성으로 헌금하 는 장면.) 선생은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였다. 가식이 없다. 해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의무감으로 행하지 않았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진정 사랑하기에 하고 싶어 행한 사랑이었다. 의무적인 기도해야 하기에 행하는 모든 사랑은 고귀하고 진정한 것이 아니기에 나 예수가 받을 수 없다. 진짜 사랑을 해 보자. 진실로 행해 보자. 네 마음이 동해서 하는 사랑 누가 말려도 끊어 놓으려 해도 막을 수도 끊을 수도 없다. (예수님!) 나를 불러도 진실로 불러라. (다시 진실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예수님!”) 왜 내 사랑하는 신부야. 네가 부르면 진실로 너의 말에 귀 기울이는 주 예수니라. (예수님, 죄송해요.) 무엇이 죄송하다는 말이냐? (저의 의무적인 사랑이 예수님을 너무 외롭게 한 것 을 진정 회개합니다. 선생님처럼 살아 있는 사랑, 진 짜 사랑, 진실한 사랑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배워라. 사랑도 배워라. 진실함도 간절함도 배워라. 익혀라. 매 순간 나를 사랑함으로 나를 대하는 법을 배우고 익혀라. 나 예수의 사랑의 감각에 깨어 있어야 한다. 너희 선생은 눈짓만 해도 알아차린다. 부족하면 배우고 익히면 된다. 내가 너의 스승이 아니냐. 너의 스승인 선생도 처음에는 사랑을 몰랐다. 나를 사랑하고 싶은데 어려서 사랑을 모르고 사랑을 할 줄도 몰랐다. 배웠다. 경험하면서 기도하면서 그의 인생을 쏟아서 사랑을 배우며 가장 고귀한 사랑, 진짜 사랑을 알고 사랑을 이루며 가고 있는 선생이다. 내 사랑아. 선생 통해 배워라. 사랑도 나를 대함도 선생 보고 배워라. 그것이 정도의 길이다. 그 길이 나에게 진짜 똑바로 오는 길이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베세메스로 가는 소처럼 말이다. 내가 택한 신부는 너희 선생이다. 내가 이룬 신부의 마지막 역사는 섭리다. 세상 누가 큰 소리로 ‘내가 신부다! 주님의 신부가 여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고 듣지 말라. 나 예수가 여기도 저기도 신부 삼는 바람둥이냐? 아니다. 나 예수는 오직 단 하나 선생만 택하였다. 내가 택한 신부의 역사 선생이 그 역사이다. 선생은 살아 있는 전설이다. 신부는 어떻게 만들어지느냐? 사랑의 사연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선생이 태어나면서부터 성장하면서 선생은 누굴 사랑하며 살았느냐? 누구에게 말씀을 받고 지금은 누굴 위해 살아가느냐? 말씀 하나하나에도 사연이 있다. 몸부림으로 나에게 받았기에 그가 받았기에 모든 말씀에 사연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신부다 깨달으며 신부의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 않느냐. 선생의 성장 과정이 성약 신부역사가 만들어진 과정이다. 신부로 택하였고, 신부로 길렀다. 그러하니 신부가 된 것이 아니냐. 한 기업의 대를 이을 자를 어느 날 갑자기 택하여 대를 잇게 하느냐? 처음부터 택하여 가르치고 기르며 만들어 내 놓는 것이다. 기업을 이끌어 갈 자도 오래전부터 만들어 내 놓는데 자신의 사랑할 대상인 신부는 오죽하겠느냐? 결혼할 때가 가까웠으니 아무나 택하여 당신을 나의 신부로 택하니 오늘부터 나와 결혼하여 함께 살아요. 당신은 나의 신부입니다. 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 신부는 사랑이 핵이다. 성약역사 핵은 사랑이다. 신부의 역사이기에 그러하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사랑으로 만들어졌고 키워졌다. 그러하기에 신부의 역사를 낳았다. 나 예수가 가르치고 길렀기에 지금도 나 예수가 사용하기에 누가 뭐래도 나의 신부다. 섭리는 나의 하나뿐인 신부의 역사다. 섭리사에 와야 신부로 나를 대하고 맞을 수 있다. 선생만이 나의 신부요 사랑이다. 고로 선생 주관권에 있는 자들만이 나의 신부요 나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