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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12.05.25 (금)

계시말씀 860f9593

선포일
2012.05.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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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영체와 예수의 영체 구분을 통한 선생님의 위치와 중요성 작성일 : 2012. 3. 24(토) 작성자 : 이 선진 (선생님께서 내 주신 숙제가 있었습니다. (1)하늘나라 성자의 영체와 예수님 육신의 영체를 쪼개서 여쭈어 보라고 하셨고 (2)예수님 육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육신의 영체는 어떻게 되었는지도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3)그리고 하늘나라 성자의 이름은 무엇인지 (4)초림 때 하늘나라 성자께서 예수님 육신만 빌려 쓰고 끝났는지 아니면 예수님 육신의 영체 역할을 직접 하신 것인지 어떻게 구별 되냐고 여쭈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각 내용들과 관련된 성경과 주일, 수요말씀을 찾아보며 연구하였고 그러한 후에 주님과 대화를 나 누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이 말씀의 인봉은 오직 주께서만 푸 실 수 있는 인봉이오니 그저 맡깁니다. 선생님의 조 건을 보시고 섭리를 위해 온전한 말씀을 주세요.) * 성자 주님 말씀 * 사랑아,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내가 함께 하노니 너는 두려워 말고 적을지어다. (아멘! 주님, 우선 이것부터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현재 저와 대화하고 계신 주님은 선생님을 통해 육 적 재림하셨다가 영적 휴거를 위해 잠시 떠나 계신 성자의 영체이십니까? 아니면 신약 때의 예수님의 영체이십니까?) 성자의 영체이니라. (성자 주님, 성자 주님의 진정한 존함은 무엇이옵나 이까? 혹시 이사야서를 통해 예언된 ‘임마누엘’이 아 니십니까? ‘임마누엘’의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 께 계시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성자께서는 하나님 과 삼위일체이시니 이러한 의미를 가진 존함이실 수 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구약 때에도 신약, 성약 때에도 성자인 나의 이름은 ‘임마누엘’이었다. 그 때와 그 시기의 육신 쓴 사명자의 역할에 따라 그 육의 이름이 정해진 것이었다. 또한 신약 때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위치로 갔다고 해서 인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에도 나의 근본 된 위치가 ‘아들급’의 위치가 아니다. 물론 하나님에게 있어서 성자인 나는 삼위일체 격이면서 아들의 위치이기도 하였으나 인류의 입장에서 나의 근본 된 위치는 바로 ‘신랑’이었다. 인류의 수준이 너무나 떨어져 버렸기 때문에 바로 신부급으로 대해 줄 수가 없어 우선은 아들급의 위치로 인류의 수준을 높이려 하였고 그를 위해 상대적으로 나의 위치를 낮추어 아들급으로 너희에게 간 것이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삼위와의 신랑신부급 사랑의 대상체부터 시작하지 못한 것이고 종급, 아들급의 역사를 거쳐서 복직될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아담과 하와의 타락 없이 역사가 진행되었더라면 처음부터 인류는 삼위와의 신랑신부급 사랑의 대상 체로부터 시작을 하였을 것이다. (주님, 한 계시 말씀을 보니 아무리 처음부터 신랑신 부급 사랑의 대상체로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 약, 신약이라는 영적 수준의 발전 기간이 필요하였다 고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설명해 주세요.) 사랑아, 한 나라에 한 왕자가 있었는데 그 왕자와 결혼을 약속한 한 소녀가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녀는 너무나 어렸기에 왕자와 바로 결혼하지는 못하고 왕자와 결혼하여 함께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능력과 소양, 덕목 등을 배워야 했으며 그 육과 정신적인 수준도 발전해야만 했다. 이와 같이 약혼을 하였다고 바로 결혼하는 것이 아니다. 약혼을 하고 난 후 결혼하기까지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춘 후 결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계성이 바로 타락 이전의 아담과 하와와 삼위와의 관계성이었다. 타락 이전의 아담과 하와는 성삼위와의 신랑신부급 사랑의 대상체로서 시작을 하였다. 그러나 바로 혼인잔치를 올리기에는 갖추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혼인잔치를 올리기까지 갖출 것을 갖추며 그 수준에 맞게 삼위와 서로 사랑을 나누어야 했다. 그렇게 아담과 하와의 수준이 높아지면 그 다음에 이어지는 후대들은 높여진 수준 위로 수준을 더욱 높이고 그렇게 해서 완전한 신부급의 수준으로 올려 인류와 성삼위와의 성대한 혼인잔치를 열려고 하였다. 그러나 차원을 높이는 데에만 썼어도 빠듯하였을 그 시간들을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시 타락 이전의 차원으로 복직시키는 데에 썼으니 이 성약역사는 바쁘고 조급한 역사가 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느냐. 아담과 하와 때부터 6000년 간 높였어야 할 차원을 지금의 섭리역사로 다 높이고 있는 격이니 말이다. 그러니 열심히 깨닫고 노력하기에 힘쓰지 않는 자들 은 참여하기가 어려운 역사이다. (주님, 그러나 6천 년 간 수많은 선지자, 중심인물들 뿐만 아니라 과학,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발전을 통 해 인류의 정신적 수준을 높여 온 값도 있지 않습니 까?) 물론 6천 년 간 인류의 정신적 수준을 높여 온 것도 있지. 그러나 루시퍼로 인한 타락의 수준이 너무나 극심하 여 이를 다시 회복하고, 인간을 신의 사랑의 대상체로 인식시키고 받아들이게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 게 되었다. 원래 6천 년이란 시간은 ‘성장’을 위한 시간으로 쓰였어야 하지만 ‘회복과 복직’을 위한 시간으로 다 쓰였다는 말이니라. 따라서 선생을 통한 섭리역사의 시작은 곧 인류 성장을 위한 첫 출발, 시작이라고 표현하여도 무방하지. 고로 신약 때의 ‘예수’라는 중심자는 성약역사로 가기 위한 회복의 과정인 ‘아들급’단계에서 필요한 사명자였다. 너희는 ‘예수’라는 중심자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만 보고 ‘예수’자체를 신격화하거나 모든 중심자들 중에서 최고의 중심자로 손꼽는다. 그러나 그 때 ‘예수’라는 중심자를 성령으로 잉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예수’가 잉태되기 전 그 시대는 아직 ‘예수’를 통한 나의 십자가의 역사가 있기 전이었다. 따라서 루시퍼의 죄의 씨앗들이 온 세상에 마치 전염병처럼 창궐하였던 시대였으며 그 죗값을 청산시킬 매개체가 없었던 시대였다. 모든 인류가 죄의 물결에 아예 사탄의 노예가 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남자와 여자의 이성적 관계를 통하여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은 그 죄의 물결 속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 죄들의 대속물이 없었던 시대였으니 당연한 이치가 아니었겠느냐. 고로 그저 이성적 관계로 태어나는 인간들 중에는 도저히 한 시대를 짊어질 만한 깨끗한 중심자를 뽑지 못할 정도로 더러웠고 수준이 낮은 시대였다. 또한 각 선지자들이나 중심인물들이 일으켰던 역사의 수준과는 달리 ‘초림’의 역사는 ‘종급’에서 ‘아들급’역사로 한 시대급의 차원을 높였어야 하는 역사였으므로 성자인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임하였을 때 나의 ‘신성함’이 그 어떠한 죄로 인한 훼손 없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는 육신이 필요하였다. 고로 한 역사의 차원급을 높이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인 능력을 쓰셔서 성령으로 나의 육신 될 자를 잉태시키셨으며 그로 인해 나의 신성함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예수’라는 육신이 태어나게 된 것이었다. (사랑하는 성자 주님, 그렇다면 성약역사의 ‘선생님’ 이라는 육을 잉태시키실 때는 어째서 성령으로 잉태 시키지 않으시고 육의 관계로 잉태시키셨나요? 똑같 은 중심자의 육이지 않습니까?) 잘 생각해 보아라. 첫째, 신약 때 ‘예수’의 육이 태어날 때는 ‘예수’를 통한 나의 십자가 대속의 조건이 없었으나 성약 때 ‘선생’의 육이 태어날 때는 이미 성자인 내가 ‘예수’를 통하여 모든 죄를 끊어 낼 수 있는 십자가 대속의 조건을 세워 놓은 상태였다. 둘째, 신약과 성약의 역사급 비교를 통하여 설명해 주겠다. 신약은 아들급이었고 성약은 신부급이다. 이 말은 신약은 마치 부모가 어린아이를 양육시키듯 이 신이 인간을 대하는 시대였고 성약은 마치 신랑이 신부에게 그동안 퍼부어 준 사랑에 보답하여 동등한 사랑을 다시 신랑에게 주듯이 인간이 신을 사랑해야 하는 시대라는 말과 같다. 이는 마치 섭리역사의 전반기와 후반기의 비유와도 같다. 전반기 때는 선생이 너희에게 사랑을 퍼부어 주는 시대였다면 후반기 때는 이제 너희 스스로가 선생과 나에게 마치 정자가 난자를 뚫듯이 사랑의 도전을 해야 할 때이다. 이와 같이 신약역사는 성자인 내가 너희에게 직접 다가가 주는 역사였고 성약 역사는 너희가 나에게 다가와야 하는 역사란 말이다. 알겠느냐. (아멘. 사랑하는 성자 주님.) (1) 따라서 나의 십자가 대속의 조건이 있었기에 땅의 원리로 태어났어도 십자가 대속의 조건으로 노력만 한다면 죄악의 쇠사슬을 끊어 내어 나의 신성함을 담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온전한 육신이 될 수 있었으며 (2) 이제는 인간의 책임분담으로 신에게 다가와야 하는 성약역사적인 특성으로 아무리 중심자의 육일지라도 자신의 책임분담으로 나의 신부급까지 발전되고 성장하여야만 했다. 따라서 ‘예수’라는 육은 나의 신성함을 담을 수 있도록 성령으로 잉태시켰으며 그 육이 태어나자마자 바로 메시아의 사명을 맡긴 것이 아니라 성자인 나와 일체 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먼저 다가가 성장시키고 가르친 후에 메시아의 사명을 하게 하여 공생애를 시작하게 한 것이었고 ‘선생’이라는 육은 땅의 원리로 태어나게 하여 육 중심자가 될 수 있었던 자들 중 맨 먼저 나의 십자가 대속의 조건으로 신약 연대죄와 인류의 모든 죄악의 쇠사슬들을 끊어 내고 그 영을 나와 일체 될 수 있었던 신부급 영으로 성장시켰기에 나의 재림의 육으로 삼은 것이다. 알겠느냐. 고로 중심자 간의 위치 비교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느냐 안 되었느냐.’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대급을 이끄는 중심자이냐.’로 비교하는 것이 다. (주님, 이제 ‘예수님’이라는 육 중심자에 대한 개념과 선생님의 가치성이 보다 명확해졌습니다. 감사합니 다. 성자 주님, 선생님의 편지 중 ‘주님 육신 영체 있지, 사람이니까.’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1)‘예수님’이라는 육 중심자에게 성자의 영체 말고 도 그 육신의 영체가 또 있었습니까? (2) 그리고‘성자의 영체’께서 예수님의 ‘육’을 어떻게 사용하신 것입니까? (3) 만약 그렇다면 ‘예수님’이라는 육의 ‘영’은 초림 때 어디에 있었으며 예수님의 ‘육’이 죽고 나서는 어 디에 있습니까?) ‘예수’라는 육 또한 아담과 선생처럼 그만의 영이 있었다. 임금이 처음에 전혀 모르는 도시에 나타날 때에는 거지의 옷을 입고 은밀히 나타나 뜻을 펴고 그 후에 임금을 알고 맞으려고 예비한 자들에게 나타날 때에는 임금 자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선생을 통하여 말하였다. 이와 같이 초림 때는 사람들 속에 살면서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 쓴 사명자의 ‘영’과 ‘육’을 쓰고 나타났지만 근본 창조목적인 영 휴거를 위해 영으로 재림할 때 에는 성자 영체 자체로 나타나는 것이다. 고로 예수의 ‘영’은 있었으나 그 영은 처음에는 어렸기에 그 영을 통하여 예수의 ‘혼’에 나의 뜻을 전하여 육신이 실천하게 하였고 그 실천 값으로 인해 그 영이 나와 일체 될 수 있었던 ‘아들급 영’으로 부활하게 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 ‘영’과 ‘육’을 쓰고 신약역사를 시작하였는데 그전까지가 바로 예수의 사생애 기간이었다. 그 육과 혼뿐만 아니라 그 ‘영’또한 성자인 내가 쓸 수 있는 수준까지 키워서 써야 했기 때문이다. 고로 아들급의 영으로 부활시켜 그 ‘영’과 ‘육’을 쓰고 성자인 내가 신약 복음을 외쳤으며 그 ‘육’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나자 그 ‘영’을 쓰고 사망 영옥에 가 말씀을 외쳤다. 그리고 육신이 죽은 지 사흘 째 되던 날, 그 ‘영’은 완전한 아들급 영으로 부활하였고 나는 그 ‘영’을 쓰고 제자들에게 나타나 40일 동안 말씀을 전하였으며 (그러면 성자 주님, 예수님의 ‘영’은 낙원에 가셨고 성자 주님은 어디로 가셨나요?) 예수의 ‘영’은 낙원으로 갔으며 성자인 나는 하나님 우편에 가서 앉았다. (아, 그래서 [히브리서 8: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 셨으니] [벧전 3:22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 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성자 주님이 앉으셨다고 하 는 곳은 천국의 하나님 우편이신데 [눅23:42~43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서는 낙원에 가신다고 하시니 조금 이상했 어요. 바로 성자 주님께서는 천국의 하나님 우편으로 가셨고 예수님의 ‘영’은 천국으로 가서 하나님을 뵙 고 난 후 낙원으로 가신 것이었군요?) 맞다. (사랑하는 주님, 그런데 선생님께서 편지에 ‘지금과 초림 때는 다르니까.’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초림과 재림 때의 성자 주님의 역사의 차이점은 무엇입니 까?) 초림 때는 ‘예수’라는 중심자를 통한 육적 휴거의 역사는 있었으나 영적 휴거의 역사는 없었느니라. 지구상에서 온전히 예비하여 신부급 영으로 거듭나 그 영이 천국으로 휴거되는 역사는 7천 년 역사 중 이번 한 번뿐이다. 아무리 신약시대 때 나를 진정으로 믿고 따랐을지라도 그 시대는 과정급 역사였지 완성급 역사가 아니었기에 육적 휴거는 있었으나 영적 휴거는 없었노라. 알겠느냐. (아멘. 주님) 고로 성자인 내가 영체로 직접 너희에게 가 준비된 신부의 영들을 천국으로 휴거시키는 것도 조금 있으면 일어날 영 휴거의 역사 때뿐인 것이다. 재림 때에도 ‘선생’이라는 사명자를 통한 육적 휴거의 역사는 있지만 여기에 한 가지 더 성자의 영체가 직접 강림하여 준비된 영들을 휴거시키는 ‘영 휴거’의 역사가 있다는 것이 초림 때와 재림 때의 차이점이다. 또 하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초림 때는 성자인 내가 아직 나와 일체 될 수 없었던 수준이었던 예수의 ‘영’과 ‘육’에 먼저 임해 그 ‘영’과 ‘육’을 키웠었고 재림 때는 ‘선생’이라는 육신 쓴 사명자가 먼저 자신의 ‘영’과 ‘육’을 성자인 나와 일체 될 수 있을 수준까지 성장시켜 성자인 내가 임하여 쓸 수 있게 한 것이었다. 고로 선생의 가치성을 깨달아라. (사랑하는 성자 주님, 이처럼 혹시 성자께서 예수님 의 ‘영’이 낙원에 가신 이후에도 계속 그 ‘영’을 쓰시 고 신약시대 때 신약인들을 낙원급 구원으로 이끄시 는 사명을 하신 것입니까?) 맞다. [행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 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행9:3~6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 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 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와 같이 성자인 나는 예수의 ‘영’을 통해 신약인들을 낙원급 구원으로 이끌기 위하여 신약인들과 동행하였으며 또 계시로 나의 뜻을 알려 신약인들의 구원 사역을 감당한 것이었다. 마치 현재 성자인 내가 선생의 ‘육’뿐만 아니라 선생의 ‘영’을 통해서도 계시의 역사를 펴 너희를 성약급 구원으로 이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성자 주님, 지금 현재 성자께서는 선생님의 ‘영’을 쓰시고 성약권 안에서 선생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계신데 그렇다면 현재 예수님의 ‘영’ 을 쓰시고는 무슨 일을 하시고 계십니까?) 첫째, 신약권 안에서 ‘예수’라는 중심자를 온전히 잘 믿고 따르다가 죽어 낙원급으로 휴거된 영들을 이끌어 선생의 ‘영’과 일체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현재 지구상에서 아직 아들급에 있는 자들 중 ‘예수’를 잘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나타나 그들을 성장시키며 성약권으로 넘어올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쉽게 말해, 마치 신약시대 때 ‘예수’라는 육신 쓴 사명자의 ‘전초자’가 세례 요한이었듯 선생의 ‘영’에 있어 ‘세례 요한’같은 전초자적인 역할을 예수의 ‘영’에게 맡기어 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신약권에서 성약권으로의 전초자적인 역할을 하게 하면서 동시에 예수의 ‘영’ 또한 선생의 ‘영’을 통한 이 시대급의 말씀을 듣게 하여 신부의 영으로 변화시켜 성자인 나의 영적 휴거의 역사를 기다리게 하고 있노라. 그렇게 하여서 영 휴거가 되면 그 급에 맞는 천국에서 살게 할 것이니라. 알겠느냐. (그렇다면 사랑하는 주님, 선생님의 이름과 조건을 대며 기도하라는 말씀에 대해서 저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며 어떻게 적용시켜야 하나요?) 기존과 같이 성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되 이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나 성자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라는 걸 인식해야만 한다. 또한 선생의 이름과 조건을 대며 기도하라는 말은 성약 첫 신부로 부활된 선생의 이름과 조건으로 나 성자에게 더욱 빨리 다가올 수 있기에 그렇게 하라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더욱 풀려야 될 인봉이 있다면 선생님을 통해 인봉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주님,‘선생님’의 가치성은 너무나 놀랍습니다. ‘선생 님’을 통한 섭리역사에 불러 주셔서 진정 감사드립니 다. 성자 주님.) 사랑아, 이와 같이 선생을 아는 만큼 불이 오며 깨달음이 와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선생을 모르니 선생이 얼마나 귀한 자인지를 모르고 기성 신앙자들과 똑같은 신앙의 수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왜 신약시대 때 그같이 불같은 생명 폭발의 역사가 일어났겠느냐. ‘예수’라는 중심자에 대해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그 영과 심령에 불이 붙어 성령의 외침을 내뿜지 아니하였느냐. ‘선생’을 깨달아라. 단순히 그 외관만을 보고, 생김새만을 보고 판단하지 말아라. 그 말과 행실만을 보고 판단하여라. 성자인 내가 임한 육신이니라. 안녕. 사랑한다. 성자 임마누엘이 이 땅의 시대의 중심자 ‘선생’에 대하여 말하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