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2.05.27 (일)
계시말씀 0f3104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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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는 곧 군인이다
작성일 : 2012. 3. 5. 월
작성자 : 이 선진
( 깊이 기도하며 ‘신부’라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 곰
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때 ‘어쩌면 가끔 내가
연약해지고 나약해지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신부’라
는 말의 의미를 육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
닐까?’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주님과 육
적 의미의 신부가 아니라 성약 신부의 의미에 대하
여 가르쳐 달라 간구하였습니다.
“ 주님, 때로 소심, 나약, 낙심할 때마다의 마음을 분
석해 보았는데 이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지구상
에서의 ‘신부’의 이미지로는 무언가 화려한 웨딩드레
스를 입고 공주처럼 품위를 유지하며 왠지 좀 유약
하고 연약한 이미지가 떠올랐으며 신랑에게 기대기
만 하는 의존형의 모습, 신부는 징징대고 있고 신랑
은 신부가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는 이미지로 각
인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를 ‘주님의 신부’라는 말 안에
무의식적으로 대입시키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신부
니까 보호받는 입장.’의 인식관이 박혀 있고 그와 반
대로 ‘신부로서 신랑을 지켜 주고 사랑해 주어야 한
다.’라는 인식관은 없었습니다. 또한 제 머릿속에 ‘신
랑은 남자, 신부는 여자.’라는 편견과 ‘남자는 보호,
여자는 보호받음.’이라는 편견이 합쳐져 ‘주님의 신
부’라는 말의 의미를 오해하고 있는 거 같아요.항상
사랑 받고만 싶어 하지 사랑을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부족한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잘못된 인식관 때문
인 것 같습니다. 제발 깨뜨려 주세요.)
* 성자 주님 말씀 *
알겠다. 사랑아,
내가 너희를 항상 어린아이 대하듯이
사랑과 자비로만 대해 주다 보니
그렇게 예쁨 받고 대우받으며 사는 것만이
신부로서 살아가야 할 삶이라고
착각했을 수도 있겠구나.
올바른 조언이다.
‘신부’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성약역사의
첫 번째 대표 신부인 선생을 따라서
구시대 원시인의 삶을 벗어나
새 시대 성약인의 삶으로
거듭났다는 의미가 있다.
둘째, 이 시대 영적 아마겟돈의 전쟁 시대에
전 지구를 대표하여 중심 역사의 번성을 가로막는
악의 무리와 선으로 싸워야 할 용사를 의미한다.
셋째, 나 예수를, 그리고 나 예수가 보낸 자를
마치 보디가드처럼 지켜 주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네가 인식하고 있는
‘신부’의 모습은
육계의 인간들에 의해 잘못 만들어진 모습이며
그 모습은 나 예수가 바라는
‘신부’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이 시대 가운데 바라는
‘신부’의 모습은
강철같이 담대하고 굳세며
주변에 있는 생명들을 위해 희생해 주며 헌신해 주
고
나 예수와 선생이 알아주든 말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맡은 바 사명을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꾸준히 끝까지 행하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진짜 나의 ‘신부’의 모습이다.
그런 자가 성약 신부로 칭함 받을 수 있다.
(예전부터 참 아이러니한 것이 있었어요. 성약 대표
이신 선생님을 보아도, 선생님이 보낸 부흥강사님을
보아도 제가 인식하고 있던 유약하고 얄랑얄랑한 신
부의 이미지보다는 군인, 장수, 장군의 이미지가 더
느껴지셔서 머릿속에 혼돈이 왔었어요. 이러한 모습
이 진짜 성약 신부이군요? 주님?)
그래, 맞다.
항상 선생을 볼 때마다,
나와 선생이 보낸 부흥강사를 볼 때마다
무엇이 느껴졌느냐.
연약하고 아기 같은 모습이었느냐,
아니면 군인이나 장수처럼
한 역사를 오직 담대함으로 이끌고 가는 모습이었느
냐.
보다 군인 쪽에 가깝지 아니하였느냐.
이 시대 성약 신부라면 그리해야만 한다.
‘신부’는 신랑에게
무언가 도움만 받으려 하거나
무슨 문제만 터지면 신랑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그러한 존재가 아니다.
그와 반대로 창조목적을 이루는
진정한 신부의 모습은
바로 선생과 부흥강사의 모습이다.
지구촌에 너희밖에 없다면
담대하거나 강건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희에게는 싸워서 이겨야 할 적군이 있고
구해야 할 생명들이 있지 않느냐.
싸워서 적군을 이길 정도까지,
구해야 할 생명들을 구해 낼 정도까지 용감무쌍하여
라.
약한 모습으로 네가 신부라는 것을 증명하지 말고
군인처럼 용맹스러운 모습으로 신부임을 증명하여라.
알겠느냐.
(그렇다면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 삼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입장과 심정을 가질까요?)
사랑아,
너와 나는 신랑 신부의 관계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사랑으로써 이룰 수 있는
최고봉의 단계이다.
고로 우리 사이에는
무한한 사랑의 교류가 일어나야만 한다.
단, 마음으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기도와 실천으로 하는 사랑이다.
고로 마음이 아닌 몸으로 하는 사랑에 비중을 두고
오직 군인 같은 정신으로 사랑과 충성으로
내게 받았던 사랑 그 이상으로
사랑해 주려는 심정을 지녀라.
이는 내가 보낸 자 선생과
부흥강사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으로만 사랑하려는 단계는
어린아이의 단계이다.
실천이 곧 사랑이다.
(아! 주님, 그래서 선생님이 그렇게나 군인들과 남자
들을 좋아하는 것이고 부흥강사님도 남자와 군인을
많이 연구하신 것이고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나
고 싶다는 말씀까지 하신 것이군요? 이 말씀은 섭리
의 아담들에게 무척이나 희망을 주는 말씀인 것 같
아요.
진정 주님이 원하시는 신부의 모습은 저희들의 머릿
속에 편견처럼 박혀 있는 여성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군인 같은 모습이군요? 그러나 이 말을 또 오해해서
주변 생명들을 향한 사랑과 온유, 화평이 빠진 군인
의 모습을 지향해서는 안 되겠죠?)
그래서 선생이 그렇게나
군대 얘기를 많이 한 것이고
군인의 모습을 좋아하는 것이다.
사랑아, 뭐든지 육적인 생각으로 바라보면
육적인 의미가 나오는 것이고
영적인 생각으로, 나를 중심한 생각으로 바라보면
영적인 근본 의미가 나오는 것이다.
고로 너희는 선생과 부흥강사처럼 용맹 무쌍하며
결코 낙심하지 않는 군인의 모습을 지니되
생명들에 대하여서는
한없는 사랑과 아량과 자비로서 대해 주는
목자의 모습도 지녀라.
그래야 나의 재림도 잘 맞이할 수 있는 거란다.
사랑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섭리의 신부들에게 말하였노라.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