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2.06.09 (토)
계시말씀
- 선포일
- 2012.06.09 (토)
첨부 파일
- PDF
20120609 계시말씀.pdf
117.2 KB
<생명의 기도를 하여라>
작성일: 2012년 3월 17일 철야 기도 중
작성자: 황인선
[ 새벽에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주님과 마음을 맞추
려고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도에는 수
없이 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감동으로 깨우쳐 주셨
습니다. 주님의 마음에 맞는 기도를 하고자 주님께
여쭈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 주님 말씀 -
생명아, 기도는 무엇이냐.
기도는 나의 마음을 받는 순간이지 않느냐.
그러니 두려워 말고 너를 내게 맡겨야지.
나를 믿고 시인하는 만큼
너에게 역사할 수 있단다.
너를 맡기기를 두려워 말고
나를 인정하고 시인하여라.
그러한 마음의 기도가
나를 기쁘게 하는 기도라.
[주님, 주님 마음에 기쁨이 되고 싶어요.
주님의 마음에 만족을 드리는 기도를 하고 싶어요.]
내 마음은, 선생의 마음은
나와 선생을 받아들이는 자의
마음에, 그 기도에 기쁘고 만족한다.
마음속에 나와 선생의 자리를 비우고 기도하는 자에
게
기쁜 걸음으로 찾아가노라.
자신의 생각과 주관으로
꽉 차 있는 자의 마음에는 들어갈 틈이 없어
발을 내딛을 수조차 없어 보기만 하고
갈 수밖에 없구나.
너희는 누구의 만족을 위해 기도하고 있느냐.
잘 살펴보고 생각을 깊이 해 보아라.
너희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기도의 길을 가는 것은 아닌지.
매 순간 내게 확인받고
내 마음에 맞춰 기도하길 원하노라.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나는 기분이 언짢아진다.
내 것이 아닌데 나의 이름으로 구하고
너희가 쓰게 되면
내 입장이 하나님 앞에 어찌되겠느냐.
참으로 곤란해지지 않겠느냐.
나의 입장을 배려하고 헤아리며 기도해 주길 원하노
라.
기도의 주체가 너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단다.
기도는 너희가 나를 위해 구하는 것이지
나의 이름으로
너희의 것을 구하는 시간이 아니란다.
적어도 섭리사 신부들은
그리 기도해서는 안 되지.
나의 마음을 구하지 않는 자,
나의 것을 구하지 않는 자가
어찌 나의 사랑하는 자라 칭함을 받을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아니하냐?
[맞습니다, 주님 기도에는 참 많은 길이 있는 것 같
습니다. 어떤 한 가지를 간구하는 방법도 그 차원도
다릅니다. 각자의 수준대로 기도의 길이 정해져 있는
건가요?]
그래.
기도를 하나의 길로 비유하여 말해 줄게.
네가 올라가야 할 산이 있다고 하자.
그 산에 가는 길은
한 가지가 아니지 않겠느냐?
냇가를 통해 가는 길,
절벽을 타고 올라가는 길,
능선을 타고 가는 길 등등.
하나의 목적지를 두고 갈 수 있는 방법이 많겠지?
그 날 내게 구하고자 하는
기도의 목적을 이루는 방법이
이와 같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럼 기도하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네요. 그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도 기도의 방법이 다르겠어요.]
맞다.
같은 것을 구해도
눈물로 통곡하며 구하는 자가 있고
사랑으로 내 마음을 녹이려고 하는 자도 있고
요목조목 따져 가며
이성적으로 이루려는 자도 있지.
사람의 성향에 따라 정해진 길이 있고
또 사람의 차원에 따라 달라진단다.
그 차원이란 사랑의 수준,
나를 대하는 수준, 나를 아는 수준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수준에 따라
차원이 다르다는 말이야.
이와 같이 기도에도 수없이 많은 길
즉 차원이 존재한단다.
기도의 차원성을 얘기 하는 것이다.
[주님, 그렇다면 같은 기도를 한다 하여도 자신의 수
준에 따라 걸어가는 자도 있고 더러는 헬기나 비행
기를 타고 가는 자도 있다는 거예요?]
차원성을 두고 비유하자면
걷는 자와 헬기를 타는 자,
이렇게 비유하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가 쉽겠구나.
횡과 종으로 이루어진 영계이니
어느 하나로는 온전히 설명해 줄 수가 없구나.
너희 각 사람마다 신앙의 수준이 다르고 경험이 다
르고
마음의 자세가 다르지?
각자의 신앙의 수준과 마음의 깊이대로
기도의 차원성이 정해지고
같은 기도를 하여도 다른 수준의 기도가 된다.
예를 들어 같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여도
그 말을 하는 자에 따라
그 기도의 수준이 달라진단다.
똑같은 기도문을 가지고 읽어도
읽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란다.
이해가 되느냐?
[ 얼마만큼 마음을 비우고 주님과 일체 되어 기도하
느냐에 따라 같은 말을 하여도 다른 차원에 존재하
는 기도가 된다 는 말씀이시지요?]
기도는 이와 같이 자신의 위치를 보여 준단다.
휴거가 되었는지 궁금하느냐?
스스로 어떠한 기도를 하는지 보아라.
자신의 기도를 들어 보아라.
자신의 기도에 모든 답이 있지 않겠느냐?
[ 주님, 너무도 합당하신 말씀입니다. 기도가 안 된
다고 힘들어 하는 생명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게 어
떻게 하면 기도가 잘 되냐고 물어 보기도 해요. 어떻
게 대답해 주는 것이 생명에게 도움이 될까요?]
내 사랑하는 자야, 너에게 기도는 무엇이냐?
[주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 그리고 주님의 마음을
알아 드리고 그 마음을 맞추는 시간입니다.]
그것이 답이지 않겠느냐.
많은 자들은 기도의 시간에
대부분을 자신의 것을 위해 써.
그러니 근본의 만족을 얻을 수 있겠느냐.
그저 자신의 기분대로
화가 나면 화나는 마음 그대로
서운한 일이 있었으면
서운한 마음 그대로 내게 나아오니
나를 배려하지 못하는 연고로구나.
기도는 혼자 말하고 끝나는 시간이 아니지 않느냐.
사랑하는 자와 대화하는 시간,
곧 듣는 자가 있는 시간인데
대부분 섭리의 모든 자들이
혼잣말하듯 끝나고 마는구나.
그러니 마음에 만족이 없고
기도를 해도 곤고한 것이지.
기도의 주체는 나 예수가 아니겠느냐.
듣고 행하는 자,
너희 스스로에게 말하고 끝나는 시간이 아니지 않느
냐.
나를 의식해야지.
나에게 말하는 것인데
의식치 아니하니 그러하다.
기도는 또박또박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여야 한다.
사람에게 말하듯,
사랑하는 자에게 말하듯.
기도의 수준을 높이기를 원하노라.
나를 새벽에 외롭게 하지 않기를 원하노라.
기도의 시간의 핵은
나 예수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서로 사랑을 느끼고 나누는 것.
이 두 가지를 목적하고 깨어 기도하길 원하노라.
너의 하루를 내게 고하기 전에
먼저는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고
너의 마음을 쏟아 내기 전에 내 마음을 들어 주고
너의 사랑을 토해 내듯 말하기 전에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먼저 느끼는 시간,
이러한 기도의 시간을
사랑하는 자에게 바라지 않겠느냐.
나를 먼저 생각해 주길 원하노라.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이가 최우선이지 않느냐?
사랑한다면 나를 먼저 챙기고 궁금해하지 않겠느냐?
사랑하니까.
[주님, 주님 마음 다 알아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해
요.
사랑하는데도 이처럼 주님 외롭게 해 드려서 죄송해
요.]
기도는 곧 사랑이니
새벽이 아니더라도
낮과 밤을 가리지 말고 기도해야 해.
너희의 생명을 위해
나 예수의 생명을 위해 기도하여라.
마음으로 나를 간절히 부르고 찾는 자는
나를 만날 것이니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며
낙심하지 말고 부르고 찾아.
섭리사 너희에게는
선생이라는 큰 선물을 주지 않았느냐.
그와 나의 사랑을 부러워만 하지 말고
그가 내게 주었던 그 사랑만큼 도전해 보아라.
알았지?
섭리사는 내게 살아 있는 기도를 하기를 원하노라.
살아서 심장이 뛰는 기도를 하기를 원하노라.
죽은 생각, 죽어 있는 마음과 사랑으로는
구할 수 없노라.
살아 움직이는 기도를 하여라.
나와 마음을 맞추고
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기도를 하여라.
그러한 기도가 곧 생명의 기도라.
나 예수에게 마음을 맞추고 기도하는 자에게
나는 역사할 것이니
마음을 집중하고 기도하여라.
사랑한다.
살아서 역사하는 주 너희의 신랑.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