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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2012.06.15 (금)

2012 0615 제주 천국성령운동 말씀

선포일
2012.06.1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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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5일 천국성령운동 제주지역회 말씀> 2012 Je-ju Heaven Holyspirit Movement Words 시 간: pm 7:40 - pm 10:45 장 소: 제주 관광대 컨벤션홀 제주 지역회 특송: 아 섭리역사((body section. Ah, History of Providence) 주님의 교회 특송: 섭리소식(Providence News) 할렐루야. 할렐루야. 네. 성령역사의 밤이 밝았습니다. 우리의 금요일 밤이 낮보다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성령의 불 이 활활 타오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 성령의 불이 우리 심령들을 일깨워 주고, 우리의 심령들을 환하게 비춰주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섬, 네. 한국에서만 아름다운 섬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아름다운 섬으로 꼽히는 제주 도입니다. 오늘 우리 제주도에 계신 여러분들과 함께 섭리사에 성령의 뜨거운 밤을 밝혀 줄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섬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으니 바로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을 사랑하면서 사는 우리 섭리의 모든 사람들이 아니겠 습니까. 우리 제주도에 계신 여러분들, 거의 제주도의 반 이상이 되는 여러분들이 오늘 바디섹션(body section) 을 준비하시면서 하나로 뭉쳐 주셨습니다. 오늘 뜨거운 성령의 불이 임하리라 믿습니다. 오늘 전국 각지에 단비가 내렸는데요. 오늘 제주도에도 단비가 내려 서 아주 시원합니다. 오늘 단비처럼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네. 이 아름다운 섬에는 선생님의 말씀에 미신들이 무려 1만 여종이나 살고 있다고 합니다. 거 의 일본과 비슷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유일신이며, 창조자이시고, 성삼위의 그 크신 능력 앞에는 1만 여종의 미신 뿐만 아니라 10만, 100만 여종의 나쁜 미신들도 무색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나쁜 생각들, 온갖 잡귀들, 주님의 능력으로 다 없어지리라 믿습니다. 누가 저에게 이렇게 묻더라구요. “행복하십니까?” 진짜 이렇게 물었어요. “질문 있습니다. 행복하십니까?” 그런데 저는 단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행복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무언가를 내가 많이 가지고 있기 때 문에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정확한 인생의 방향이 있고, 삶의 목적이 있고, 또 그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 하게 알기 때문에 진정 행복해서 “저는 행복합니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행복을 누리고 있어도 자기가 행복한 것 인지 모르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지요. 아는 것이 소망입니다. 삶의 정확한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살 고 있기 때문에, 이 과정 가운데 어려움이 있어도 행복입니다. 맞습니까? 정확하게 알고, 굳건하게 흔들림 없이 그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그 힘만 내게 있다면, 절대 과정 가운데 어려움 중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행복합니다.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오늘 주저함 없이 망설임 없이 “네.” 라고 대답하신 여러분들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분위 기에 의해서, 일단 행복해서, 지금 그래서 행복하다고 대답하신 여러분들도 있겠지만, 우리 섭리사의 모든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정확하게 알고 어떻게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지 알기 때문에 주저함 없이 “행복합니다.” 라고 말 할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잣대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늘이 보실 때, 인간의 정확한 목적과 방향과 가 치를 보고서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순간 제가 이 질문을 여러분들에게 드렸을 때 행복하다고 순 간 대답하지 못 한 여러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먼저 내가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여러분의 삶의 목 적이 정확한지, 인간을 창조한 목적이 무엇인지, 나는 정확하게 알고 있고, 흔들림이 없는지, 이것을 가장 먼저 생각 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정확한 목적과 여러분에게 정확하게 인도해 줄 인도자를 만났다면 그것이 흔들림이 없고, 굳건하다면 우 리 앞에는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늘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믿습니까? 네. 우리 특히 중고등부 들 우리 캠퍼스들이 더욱 더 가치관의 변화를 이루기 바라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인생의 가치관과 인생의 가치 를 제대로 정하지 못 한다면 인생을 헛되게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우리 젊은이들이나 섭리사에 오신 지 오래 된 여러분들이나 기존보다 더 차원을 높여 깨닫고, 불같은 역사, 그 역사하심을 받는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올해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날이죠. 2012년 정말로 중요한 날입니다. 여러분들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고 있 습니까? 그리고 실감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까? 혹은 너무 실감해서 아침마다 눈을 뜨면 깜짝 깜짝 놀랍니까? 네. 저는요 지난 주 경기도 성령집회 때 2012년 중에서 가장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왜 받았는지 아십니까? 주님이 다른 때보다 더 은혜를 주셔서? 경기도만 너무 사랑하셔서? 경기도만 불을 태워 주셔서? 사람들 이 너무 준비를 잘 했으니까? 아닙니다. 아니예요. 다 동일하게 엄청나게 불로 역사하셨고, 동일하게 다 불같이 준 비를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 주에 무엇이 달랐냐면 내 마음가짐이 달랐습니다. 정말 결심을 했어요. 잠언의 말씀 중에 “주님 께 약속하고, 약속한 대로 이행을 하면 반드시 약속을 지켜 주겠다.” 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래서 그 날은 제가 결심을 했습니다. “주님. 제가 오늘은 확실하게 더 결심을 하겠습니다. 이 결심 가운데 불을 주세요.” 그런데 그 날 부터 일주일 동안이요. 사실 가장 몸이 힘들고 가장 지쳐야 할 그 시기에 가장 큰 힘을 받고, 그 결심대로 잘 진행 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너무 너무 좋은 거예요. 힘이 막 팔팔 넘칩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더 큰 은혜를 받고, 더 큰 불을 받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을 역사적이고, 운명적인 날로 바꿀 수가 있습 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엄청난 불을 받고 뒤집어지는 역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바로 무엇으로 일어나느냐. 나의 결심으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너무 깊이 깨달은 게 뭐냐 하면 선생님께서 처음에 성령집회 시작할 때 저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불과 불이 만나는 역사다.” 그 때는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 했습니다. 불과 불이 만나는 역 사다. 제대로 모르겠는 거예요. 주님은 불이십니다. 선생님 또한 영으로 정확하게 함께 하고 계십니다. 선생님이 오 시지 않았다면, 저도 안 왔을 겁니다. 그는 불입니다. 주님은 불 본체이시죠? 불같은 능력과 은혜를 가지고 계십니 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엄청나게 활화산 폭팔하듯이 큰 역사가 일어나느냐. 바로 내가 불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과 불이 만나서 엄청나게 폭팔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여러분의 마음을 다 비워내고, 주님을 받아들인데 따라서 그 동안에 받지 못한 은혜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받을 수 없는 은혜까지 오늘 받게 되리라 믿습니다. 자, 이 중요한 해에 하루도 놓칠 수 없고 한 주도 놓칠 수가 없죠. 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33세 때 지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3일 후 부활하시고, 부활역사 시작되었습니다. 영으로 부활하셨죠. 부활의 역사 시작되고 나니까 그 이후에도 극심한 핍 박과 환란이 있고, 육신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지만 부활의 역사,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그 역사, 정확하게 때 를 맞춰 진행하시는 그 역사에는 어느 누구도 막을 자가 없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시대 때는 너무나 엄청난 불이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섭리사는 2012년 6월 1일로부터 34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바로 본격적인 부활의 역사가 1차로 시작 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 아시다시피 이제 2차로 선생님께서 한국에 들어오셔서 복음으로 갇히신지 한 때 두 때 반 때, 3년 6개월이 지난 때는 바로 2012년 8월입니다. 이제 두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 때 하늘 입장에서 영이 먼저 부활하게 됩니다. 하늘 입장에서 보낸 자, 그가 먼저 영으로 부활하면 이제 육의 세계 부활역사를 일으켜서 우 리 육도 변화되고, 부활되고, 우리 삶에 따라서 영도 변화되고, 부활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금도 진행중이지요. 우리는 매일 매일 무덤기간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완전하게 벗어나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3차로 섭리역사에 1999년 이후에 무덤기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때 두 때 반 때가 3번이 지나구요. 이제 마지막 4번 탕감수, 한 때 두 때 반 때를 완전하게 지나는 때가 바로 올해 있습니다. 이 때가 완전하게 지나면 바로 2012 년 12월이 되죠. 이것 때문에 하나님은 성령님과 성자 예수님과 함께 진리와 사랑과 성령의 역사로 우리를 관리해 주고 계십니다. 올해는 우리가 듬뿍 사랑을 받고, 마지막으로 떠나시는 주님이 우리를 천하일색 양귀비로 보면서 너 무나 크게 이뻐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때라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가 주님의 관리를 확실히 받으면 우리가 1% 에서 100%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 여러분 알고 있죠? 알고 있습니까? 안다고 하면, 이 절호의 기회의 때 바로 이 때를 지난 10년보다 더 중요한 올 해 1년을, 이 1년을 우리는 그냥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믿고, 절대 간구하며, 절대 주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이행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행하는 우리들이 될 것입 니다. 여러분, 왜 1%에서 100%가 되었는가? 그냥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호의 기회, 그냥 오지는 않는다는 것 입니다. 왜 1% 있는 사람이 100%로 변화되고, 온전하지 못 한 사람이 주님의 관리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왜 변화 를 이룰까? 바로 혼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혼자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우리 제주도에서는 바디섹션(body section) 을 했습니다. 정말 너무 다양한 글씨들이 네 가지의 색깔로 바꾸어 가면서 아름답게 표현을 해 주셨는데 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혼자 하면 되겠습니까? 혼자서는 섭리 뿐만 아니라 점 밖에 안 되요. 점. 그래봤자, 한 글자 도 안 나옵니다. 하나되서 혼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은혜가 넘쳤던 것은 바로 성자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죠? 여기 있는 강대상도 제 가 혼자 들려면 못 듭니다. 밀수는 있어요. 그런데 이것을 혼자 들기에는 크기가 바쳐주지 않습니다. 남자도 이건 혼자 못 들어요. 뭔가가 필요해요. 혼자 하면 될 수 없는 것이 함께 힘을 합치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혼자 서는 절대 무덤기간을 벗어날 수 없지만, 혼자서는 완전하게 할 수 없지만, 바로 올해는 성자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관리하시기 때문에 그 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이 같이 해주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여러분, 올해 가 어떤 해인지 진정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정말 진정으로 깨달아야 됩니다. 1999년 이후 한 때 두 때 반 때 3년 6개월이 3번 지나고, 4번째 마지막입니다. 왜 4번이나 왔느냐. 한 번에 땅에 서 조건을 세우지 못 했기 때문에 4번이나 왔습니다. 월명동은 우리의 상징입니다. 월명동도 4번이나 무너졌지만, 5 번째는 기어코 야심작을 쌓고야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5번째는 기필코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제 탕감수 가 지나고, 조건을 다 세우고, 마지막에는 기어코 하십니다. 값을 기어코 다 지불하십니다. 그런데요. 이 4번째, 땅에 서 다 하라는 법이 없습니다. 왜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요. 세 번도 못 했는데, 네 번도 못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 그렇죠? 3번쯤이야, 뭐. 네 번도 못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정확하게 때를 따라 진행하셔야 되니 까 마지막은요. 어떻게 값을 지불해 주시느냐. 희생으로 값을 지불해 주십니다. 누구랑 같이? 그 시대 보낸 자와 같 이 값을 그냥 지불해 버리십니다. 왜? 마지막까지 못 하면 안 될 것을 알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땅에서 못 하면 그 값을 하늘에서 다 지불해 버리십 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십니까? 여러분들을 다 삽니다. 그냥은 안 되니까 값을 일일이 다 지불하고, 여러분을 주님 의 것으로 사버립니다. 마지막 때는 사요. 삽니다. 이게 너무나 큰 겁니다. 우리가 땅에서 조건을 세우지 못 했기 때 문에, 땅의 대표자와 함께 성자께서 우리를 십자가로 사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망에서 우리를 데려와서 자기 것 으로 삼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지막 다섯 번째는 어떻게 해야 완벽하게 무덤기간을 벗어나느냐. 바로 성 자께서 그 시대 보낸 자와 함께 우리를 샀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믿습니까? 인정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요? 나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예요. 내 값을 주고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주님 께서 보낸 자와 하께 나를 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여러분의 소유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사망권에 거하지 않고 생명권 가운데 거하기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주님의 것임을 인정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지금 오늘 이 순간에도 나는 주님의 것이라고 확실하게 인정하면, 무덤을 벌써 벗어난 자입니다. 여러분들이 생명권에 있 다고 시인하는 자입니다. “지금도 나는 믿지 못 하겠어. 나는 잘 모르겠어.” 하는 자는 왜 그러냐? 사망권에 있는 반응입니다. 주님이 사셨지만 본인이 거부했기 때문에, 사망권에 있는 반응으로 본인은 주님의 것이라고 그 희생으로 나를 샀다 고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주님의 것임을 완전하게 인정하고 주님의 몸이 되고 주님의 것이 되어 살겠다고 하는 그 반응 자체가 여러분들이 생명권으로 와서 주님 품에 와 있다는 증거인 줄 믿습니다. 그 런데요. 하나님은 무력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순리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값을 지불해 주되, 믿지 않는 자를 무력으로 끌고 와서 때려서 “내가 너를 살렸는데 내가 독생자를 보내고, 시대 보낸 자와 함께 너를 살렸는데 믿지 못 하겠느냐?” 때리지 않으시고 그대로 두십니다. 그것을 믿고 인정하는 자에게는 그를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시사, 그 때부터 그의 몸을 쓰고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그 값을 지불해 주었는데도, 믿지 않는 자는 할 수 없이 데려오지 않으십니다. 왜? 데려오면 무력입니다. 본인에게 길을 알려주고 살려 주었으면 본인이 따라오게 하는 것이 공의이며, 순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력의 하나님이 아 니심으로 살려 주었는데요. 살려 주었는데도 믿지 않는 자는 데려오지 못 하십니다. 여러분, 한 번 이 이야기를 들 어 보세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반대하던 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하늘나라의 천사장 루시엘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혈통적인 사랑에 만족하지 않으시고, 사랑의 상대체를 창조하시고자 하는 뜻을 굽히지 않으셨습 니다. 그래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대하는 자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루시엘을 지상으로 쫓아냈습니다. 그러나 이 루시엘은 끝내 돌이키지 못 하고, 섭섭함과 서운함으로 인해서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창조를 반 대한 자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절대적 으로 막았습니다. 사탄은 인간 창조를 반대했으니까 무엇을 반대햐느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는 것 을 반대합니다. 고로 인간을 유혹했어요. 타락시켰습니다. 혈통적 사랑에서 끝난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텐데, 사랑의 대상체인 고로 기필코 타락시키고 말았습니다. 고로 뜻이 깨지겠죠. 여러분들, 사탄을 물리치려면 어떻게 해 야 되는가? 하나님이 다 해주시기를 기다려야 되는가? 아닙니다. 인간 창조를 사탄이 반대했지만, 천사장 루시엘 바 로 사탄으로 변한 루시엘이 반대했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고로 사탄을 멸하고 그의 뜻을 펴지 못 하게 하려면 사람이 절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 성자를 믿 어야 합니다. 절대 보낸 자를 믿어야 합니다. 절대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사탄은 멸망을 받습니다. 가장 순리이며, 가장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무력으로 행치 않으십니다. 순리대로 행한 대로 그렇게 법칙을 정한대로 처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절대 믿고, 성자를 절대 믿고, 보낸 자 를 절대 믿고,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하면 사탄은 박멸됩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이 다 멸해 버리신다면 공의가 아니 요, 순리가 아니지요. 불의와 무력입니다. 공의요, 순리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의 바로 우리 인간이 삼위일체를 절대 믿는 것, 그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것, 그래야만 창조목적이 이루어지고, 구원이 이루어지고, 휴거가 이루어집 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탄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대요. 이 세상에. 사탄이 가장 무서운 존재인 줄 알았더니 사탄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무엇이냐. 너 자신이다. “사탄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있으니 너 자 신이다.” 왜요? 결국 자기가 좋으냐, 자기가 싫으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의 운명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마음이 어디로 흐르는가, 자기의 중심이 어디로 흐르는가, 자기의 가치관은 어디에 있는가, 자기는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행하느냐에 따라 육신의 삶의 운명도 바뀌고 영의 운명도 좌우되게 됩 니다. 맞습니까? 여러분, 여기서 아무리요. 성자 주님께서 빛으로 오셔서 역사하시고, 음성을 마음의 감동을 쳐서 주 신다고 해도 다 믿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이 좋으냐, 싫으냐, 이것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력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마음에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자유의지를 주시되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분별할 수 있도록 길을 주셨습니다. 그 길은 여러분들이 들었듯이 바로 시대의 보낸 자이며, 시 대의 말씀입니다. 자유의지를 주되, 반드시 단 하나의 길을 주셨습니다. 바로 창조목적을 이루는 길, 하나님을 찾아 오는 길을 주셨어요. 그 길은 오직 시대의 보낸 자이며, 그가 전하는 시대 말씀입니다. 마치 찰흙을 주신 것과 똑같 아요. 우리 마음이 찰흙과 똑같아요. 찰흙을 가지되 이렇게 만들으라고 뭔가를 줬어요. 그런데 “난 싫어.” 다르게 하 고 싶어요. 그건 여러분의 마음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자기 마음과 행실을 어떻게 만드느냐 에 따라서 모양이 좌우됩니다. 마음에 악을 품으면 악을 행하고, 영도 악으로 좌우되고요. 마음에 선을 품으면 선의 행실이 나오고, 영도 선으로 좌우됩니다. 맞습니까? 다 성경에 나온 말씀이지요. 하나님께서 일일이 하나 하나 다 관여하면서 눈은 이렇게, 저렇게, 네 마음은 이렇게, 저렇게 하시지 않는다는 겁 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이미 자유의지를 주시되 길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 길을 찾아오게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 나님의 역사 하나님께서 순리적으로 진행하시는 창조법칙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것을 계속해서 막겠죠. 유혹합 니다. 우리의 생각을 흩어 버립니다. 하나님께 가는 마음을 차단시켜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바로 하는 일입 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의 마음은 한 개입니다. 두 개가 아닙니다. 그래서 두 마음을 품으면 그렇게 힘들어요.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사람이 누구인지 아세요? 두 마음을 품는 자들, 두 주인을 섬기는 자, 곧 양다리 걸 치고 있는 사람이죠. 여러분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애들 봤습니까? 고달픕니다. 어느 한쪽도 마음을 못 쏟구요. 만 족을 못 해요. 왔다갔다 한다니까요. 창조법칙이 아닙니다. 양다리를 딱 걸치고 있으면 편할 것 같지만, 이 세상에서 최고로 힘든 사람들이 양다리 걸치고 있는 사람들, 또한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서 있는 것도 아닌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의자에서 서있는 것도 아니고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한 번 이렇게 해보세요. 진짜 해보시네? 그리고 한 시 간은 계셔야 되는데. 그렇게 한 시간도 있는 게 아니라 10분만 있어도요. 차라리 서 있거나 앉아있는 게 낫습니다. 힘들어요. 그래서 이 두 마음을 품으면 힘드냐. 항상 줄다리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 줄다리기는 무승부가 없 어요. 줄다리기에 무승부가 있나요? 정말 줄다리기는 무승부가 없더라구요. 어떻게 해서든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면 이기는 거죠. 계속 줄다리기를 한 시간 내내 시킨다고 생각해 보세요. 줄을 놔버리고 포기하고 가버리겠죠. 이와 같 이 두 마음을 품는 것은 너무 힘들어요. 힘들어서 살 수가 없고, 사람은 한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 러분, 섭리사에서 마음을 아예 굳건하게 한 사람들은 편안해요. 어떤 시험, 핍박, 환란이 와도 이미 정했잖아요. “주 님. 내 마음을 이미 정했으니까 일단 오라고 해봐.” 오라고 하면 이걸 들어서 어떻게 하든지, 오라고 하던지, 뭐라고 하던지 나는 편안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편안한지 아세요? 섭리를 완전히 나간 사람. 이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소리가 뭔 줄 아십니 까? “내가 이제 편안하다.” 저도 몇 주 전에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의 자유함 속에 편안하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자유함인지 알 수가 없으나,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니가 마음을 정 했기 때문에 편한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평안함인지 알지,만 점점 가보면 자기가 하나님의 품 안에 보호받 기에 편한 건지 아니면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기 때문에 편한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결국은 분별하 게 됩니다. 여러분, 두 마음을 품고 있는 건 힘들고 섭리를 나가든지 섭리에 확실하게 이 마음을 정하든지 그래야 편할 겁니다. 그렇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이 불안불안, 불편하고, 불안하며, 힘듭니다. 오늘 편안하게 하세요. 어떻게요? 나는 안 들을래. 주님께 보호받지 못 하고 편하면 되겠습니까? 주님의 보호 안에 편안하려면,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그냥 맡겨 버리셔야 됩니다. 사탄은요. 우리의 마음을 정하지 못 하 게 해요. 일단은요. 그래도 두 마음 품고 왔다갔다 할 때는 그래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하지 못 하게 해요. 하나님 께 마음을 정하지 못 하게 해요. 마음을 번잡스럽게 해요. 막 유혹합니다. 막 여러 가지의 혼란스러운 마음이 생깁 니다. 고로 무덤기간을 벗어나지 못 하게 하죠. 부활을 맞지 못 하게 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는요, 부활의 때가 정확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자기만 부활되어서 무덤 속에서 나오지 못 하면, 자기만 무덤 속 에서 더 힘든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사탄은 어떤 일을 하느냐. 보낸 자를 믿지 못 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시대 말씀을 불신하게 하지요. 왜냐하면 보낸 자와 시대 말씀은 성자와 하나님께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시대에 창조목적을 이루는 길, 구원이라는 목적으로 향하는 길이 있어요. 삼위일체께 가는 단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여러 가지가 아니예요. 성경역사 6천년을 보면 시대마다 한 개씩이예요. 그 길이 아니면 구원이 없고, 그 길이 아니면 절대 주님께로 갈 수 없고, 절대 하나님께로 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요. 이 길을 차단하면 됩니다. 보낸 자를 믿는 것, 그를 통한 시대말씀을 믿는 것을 차단시킵니다.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행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약하고, 우리가 제대로 믿지 못 하니까 어떻게 하느냐. 주님께서는 마지막에는 그냥 값을 지불해 주신다는 겁니다. 어떤 것을 가장 먼저 믿어야 하느냐. 시대의 보낸 자를 인정하고, 그를 쓰고 그를 보내고 그에게 역사하는 근본자가 누구인지를 완전하게 인정하고, 그가 나를 값으로 희생으로 십자가로 다 값을 지불하고 그 조건으로 나를 샀다는 것을 인정해야 됩니다. 인정하면 어떻게 해야 되겠죠? 인정하면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되겠죠. 힘들어도. 어려워도. 그러면 우리는 완전하게 주님의 것이 됩니다. 이것을 100% 믿고, 100% 마음을 정하고, 100% 그 뜻대로 행하면 무덤기간을 벗어나게 됩니 다. 믿습니까? 이런 자는 100% 구원과 휴거의 문을 열게 되죠. 하나님은 어떻게 해서든 정녕코 뜻을 이루십니다. 어떻게 대신 값을 지불해 주고서라도 이루어 주시는데, 땅의 대표자를 통해서 그를 통해서 값을 다 지불하십니다. 이 때 우리의 마음이 어떤 것을 결정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택함을 받은 자인지, 택함을 받지 못한 자인지 분별이 됩니다. 믿고 따른 자는 택함 받은 자요, 믿지 못 하고 따르지 못 한 자는 택함을 못 받은 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택하셨으나 결국 자기의 운명은 자기의 마음으로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결 정이 되고 있지요. 축복은 무엇인가? 축복.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 말씀을 전하려고 오늘 이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축복은 무엇인가? 축복 과연 축복은 무엇인가? 여러분, 축복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을 받는 거 겠죠.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내가 너무 원하는 것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엇을 원하느냐가 가장 중요하게 되겠죠. 그렇다면 이 시대에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자는 누구일까? 바로 보낸 자를 맞아들이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예수님도 지금까지 보낸 자를 통해서만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육을 쓰고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보낸 자를 알아보는 게 축복이예요. 어떤 자는 보낸 자를 알아보는 게 축복이예요. 첫째, 똑같이 말씀 을 전해요. 어떤 자는 보낸 자를 알아보고, 어떤 자는 의심이 눈이 발바닥처럼 두꺼워서 못 알아봅니다. 누가 축복 받은 자인가? 도대체 그 마음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자기가 책임져야죠. 자기 마음이니까요. 보낸 자를 알아보느 냐? 알아보지 못 하느냐? 여기서 축복을 받았느냐, 축복을 받지 못 하였느냐가 결정됩니다. 또한 섭리사에 와서 보 낸 자를 알아봤어요. 확실하게 믿고 사는 자와 그냥 그렇게 믿고 사는 자는 또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 하죠. “나는 확실하게 믿어서 절대 따라.” 그런데 그와 같은 삶을 못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기에는 우 리가 거의 다 해당이 됩니다. “나는 절대 보낸 자를 믿어. 그러니까 알았어. 이제 됐습니다.” 아니예요. 절대 보낸 자를 받아들이고, 알아봤다면 그와 같은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축복받은 자의 삶이겠죠. 보낸 자를 알아보는 것이 가장 큰 축 복이라는 것은 바로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말씀입니다. 그 축복을 우리 섭리 전체가 받아야 합니다. 나는 보 낸 자를 받아들였어요. 이 시대에 그가 성자 분체가 그인 것을 절대 믿습니다. 됐죠? 그럼 그와 같은 그 삶대로 살 아야지만 합격이다. 이 보낸 자를 좋아하는 마음, 그를 믿는 마음, 이 모든 마음이요, 축복입니다. 저는 항상 생각합 니다. ‘그 많은 사람 중에 내가 그렇게 착해서 나를 불러 왔을까? 내가 뭘 그렇게 뛰어나서 나를 불러 왔을까? 나에 게는 축복이 있었구나. 무슨 축복? 보낸 자를 알아보는 축복, 그를 믿는 축복, 그를 바라볼 때 의심의 눈으로 바라 보지 않고 정말 말씀으로 분별하며, 그의 삶으로 정확하게 분별하는 그 축복을 나는 받았구나.’ 진정 깨달았습니다. 성자께서는 말씀으로 보낸 자를 통해 나타나십니다. 고로 시대 말씀을 정확하게 분별하며, 보낸 자를 깨달으며, 하 나님의 역사와 그 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깨달은 자는 시대의 최고의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믿습니까? 열매를 보고 나무를 판단해야 되겠죠. 그런데요. 이 세상은 열매를 보고 나무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축복받 지 못한 마음입니다. 완악해요. 완악합니다. 형제를 바라보는 마음, 상대를 바라보는 마음, 말씀을 대하는 마음 모든 마음이 완악해요. 완악하니 축복받지 못한 자로서 주님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 역사하심을 절대 체험할 수 없습니 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판단해야 되는데, 나무보고 나쁘다고 하면서 저 나무는 가시나무라고 합니다. 분명히 사과열매를 주렁주렁 맺었는데도 말이예요. 그래서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닙니다. 정말 사과열매를 맺었 느냐, 정말 신부의 열매를 맺엇느냐, 진정 역사를 펼쳐나가고 있느냐, 그것을 보고 분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보낸 자를 불신하며, 그를 통해서 나가는 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절대 구원의 길은 막히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 가지죠. 지금 이 순간도 그 보낸 자를 통해서 나가는 말씀, 대신 전하는 이 말씀 믿지 못 한다면 어떻게 이 역사 속 에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고로 보낸 자를 받아주고 보낸 자를 받아들이는 그 마음, 알아주는 그 마음이 참으로 축 복받은 마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정말 깨닫는 거 맞아요? 무엇을 많이 가진 자가 축복을 받은 자가 아 니라니까요. 우리 가정국들, 가정축복은 무엇을 받았느냐. 시대 보낸 자를 만났기 때문에 창조목적을 이룰 수 있는 터전을 선물 받았습니다. 이것이 축복임을 깨닫지 못 하면, 창조목적도 이루지 못할 뿐더러 보낸 자와 거리가 멀어지니 섭리사에 서 사는 맛과 재미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년부들이 이것 때문에 마음에 가슴에 한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알았다면, 이것이 최고의 축복임을 알고 이 축복만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믿습 니까? 여러분, 이것이 먼저 부활될 때 보낸 자를 받아들이고 ‘이 역사 속에 감사함을 이것이 최고의 축복이구나.’ 이 것을 딱 깨달으면요. 선생님과 멀어질 수 없어요. 절대 멀어지면 나는 축복이 끝난 겁니다. 내가 모든 것을 얻고, 내 가 많은 것을 다 얻어도, 내 자녀가 좋은 대학에 붙고, 좋은 직장에 가고, 좋은 집을 사도 가정국으로서 무슨 의미 가 있습니까? 가정국이 창조목적을 이루어야죠. 하나님 최우선으로 사랑해야죠. 그 뜻대로 살아야죠. 우리가 하나님 이 원하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신부의 말씀, 그 말씀을 전해준 대로 살지 못 한다면 도대체 뭐가 축복이라는 말입니 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축복이고, 그 말씀 가운데 사는 것이 우리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을요. 너무나 간절하게 믿었던 유대종교인들은 이들은요. 딱 한 가지를 못 했습니다. 이들은요. 노아도 믿었 고, 아브라함도 믿었구요. 모세도 믿고, 여호수아도 믿었습니다. 엘리야도 믿고, 이사야도 믿었어요. 다 믿었어요. 그 런데 딱 한 사람을 인정하지 못 했습니다. 그렇게 다 믿어놓구요. 딱 한 사람을 인정하지 못 했으니 바로 나사렛 예 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독생자, 성자께서 육으로 쓰시는 자였습니다. 바로 메시야 사명을 가진 자였죠. 그를 통해서 하나님도, 성자도 오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다 맞아놓고, 나사렛 예수님만 못 맞 았습니다.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그러니 사탄이 점령해 버렸습니다. 뜻을 이루지 못 했어요. 그 후손들까지 기다리는 세계에서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그 고통은 무엇입니까? 이것도 깨달아야 됩니다. 겉으로 보니 이스라엘 민 족은 굉장히 머리도 좋고, 돈도 많고, 잘 사는 거 같은데요. 여러분,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은요. 메시야를 기다리는 민족입니다. 처음으로 하나님의 역사의 촛대가 꽂힌 곳으로 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메시야가 오지 못 하면 그 민족의 특성이 없어집니다. 그 민족의 고통은 무엇이냐? 메시야를 기다리는 세계에 메시야를 보내주지 않는 고통입니다. 오늘 가장 큰 고통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령의 밤에 성령을 주지 않는 고통, 나 때문에 받지 못 하는 고통이 아니라, 주님이 그 사람만 안 줘요. 아주 계획적으로 안 줍니다. 완 악해서. 시편 81장 12절 말씀에 “그러므로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한 대로 버려 두어 그의 임의대로 행하게 하였느 니라.” 바로 완악한 마음을 그대로 버려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완악한 마음을 가진 자는요. 일단 버려 둡니다. 완악한 마음으로 부어주사 모든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는데, 자기가 준비하지 못 해서 못 받을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노력을 해도 안 줘요. 주님이 그 사람만 딱 안주십니다. 아예 안 주십니다. 이것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서 모 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세계 섭리인 중에서 가장 마음이 완악한 자, 한 사람을 딱 한 사람 뽑아서 그 사람에게 만 성령을 안 줘요. 이 사람은 올 일년 한 해 성령을 안 줘요. 그렇게 하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은 눈물 뿌려 고생하고, 그렇게도 주님을 찾고, 불러도 성령을 못 받아요. 올해 성령을 못 받으면 어떻게 되요? 성령을 못 받으면 구원을 못 받아요. 휴거를 못 받아요. 메시야를 기다리는 세계, 그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메시야를 보내 주지 않는 고통입니다. 계획적으로 안 보내줘요. 이미 왔습니다. 이미 와서 그를 찾으면 되는데, 아직도 못 믿으니 완악한 마음대로 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깨달아야 됩니 다. 무엇이 가장 큰 축복이며, 무엇이 가장 큰 고통인 것을 깨달아야 그 큰 축복을 받고 큰 고통을 벗어나서 완전하 게 온전하게 최고로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버려두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사람들은 자기 편한 대로 산다고 합니다. “나는 나 편한대로 살래. 나 편한대로 사니까 이제 너무 좋아. 이제 진정 자유가 있어. 나는 정 말 편해. 이제 말씀 안 지켜도 되고, 너무 좋아. 이성도 만나도 되고, 말씀 때 너무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섭리사 이제 정말 벗어났어. 너무 편해.” 여러분, 주님이 역사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이 역사하시면 어떤 마음이 드시는지 아십니까? 안 하고는 못 배겨요. 안 하고는 못 배기게 하시거든요. 주님 이. 그 사람을 구원하시려면 그 사람을 하게끔 하시거든요. 안 하고는 못 배기게 하시기 때문에 주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그렇게 버려둔 채로 살아갈 수가 없어요. 말씀듣고 싶어서 미쳐요. 나중에는. 그러니까 나가서 라도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자는 주님께서 완악한 대로 주님이 버려두지 않으셨어요. 그 마음 보시고, 다시 데려 오셨어요.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자기 좋아하는 대로 하다가 어떻게 하시는지 아십니까? 사망길로 가는 것을 안 붙 잡는 것입니다. 주님이 보내는 게 아니예요. 그가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사망길로 가는 것을 보고, 와라고 길을 막 고 가자고 하지 않으시고 그냥 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관심의 반대는 무관심이요, 사랑의 반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남남입니다.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그가 지옥으로 가든지, 그가 고통을 받든지, 그가 휴거를 받지 못 하든지, 아무 상관이 없어요. 무관심합니다. 그것이 완악한 마음대로 버려 두는 것입니다. 고로 우리 섭리사에 이 성령역사에 그리고 선생님께서 전해 주시는 이 진리 말씀에 무관심하고, 끝까지 오지 못 하 는 자는 무관심하게 완악한 대로 버려둠을 당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보낸 자와 성자가 함 께 값을 지불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완악해질 필요가 없어요. 다 부족하니까요. 정말 잘 행해야 됩니다. 그 마음이 완악한 대로 버려두사, 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니까 그대로 그냥 살게 하십니다. “그래. 그대로 살아라.” 언제가 가장 행복한 줄 아십니까? “하지마. 가지마. 그거 하지마. 그거 보지마. 이거 말씀 들 어. 이거 행하자.” 이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꼭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매주 매주마다 느낄 수 있겠죠. 제주순회를 끝내고, 6월 17일 말씀을 듣는데 주님이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그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우리 섭리사 사람들은 “왜 그러세요? 주님. 왜 그러십니까?” 그럴 겁니 다. 더 이상 하지 말라는 것, 더 이상 붙잡지 않는 것, 그것이 최고의 고통이요. “해. 꼭 해라. 하자. 해야만 한다. 너 하자. 다른 사람은 안 해도 너는 해라. 너는 꼭 해야 한다.” 이 말씀은 우리의 최고의 축복인 줄 믿습니다. 하늘이 요, 딱 붙잡고 있을 때가 축복의 때입니다. 기회의 때예요. 지금은 여러분들에게 고삐를 딱 채워서 가면 아파요. 이 렇게 가면 땡겨요. 아파서 못 갑니다. 행복한 줄 아십시오. 믿습니까? 아프다고 하지 마시고, 잘 안된다고 하지 마시 고, 내가 좀 아픈 걸 보니 ‘내 마음은 이런데 주님은 이걸 원하시니까 지금 마음이 다른 거구나. 아픈 걸 보니까 주 님은 나를 붙잡고 계시는구나.’ 해야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주님이 말씀하셔도 내가 행동이 다르고, 마음이 다른 데 도 안 아퍼. 그러면 그 때는 주님이 완악한 마음대로 버려두신 거예요. 알겠습니까? 때가 지나 하늘이 완악한 마음대로 버려두면, 천하일색 양귀비꽃이 호박꽃처럼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 번 주 말씀에 그랬죠? 뜸부기였는데, 역시 뜸부기로 보입니다. 뜸부기같은 우리 인생들을 백조처럼 봐주신다는 것입 니다. 아름다운 백조처럼 봐주신다는 거예요. 그러나 때가 지나면 호박꽃으로 끝나고, 뜸부기로 끝나고 맙니다. 하늘 로 훨훨 날아오르지 못 하고, 끝난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이렇게 기다리는 것은 잘 했습니다. 메시야를 기다 리는 것은 너무 잘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기다리던 자가 그대로 올 것으로 알았습니다. 이것을 충격적으로 깨달아 야 해요. 이거 못 해서 망한 거예요. 이거 못 해서. 유대종교인들이 다 잘 했어요. 다 믿었어요. 4천년 구약역사 동 안 보낸 자를 다 받아들였어요. 말라기 선지자까지. 그 당세에 완악한 자들은 받아들이지는 못 했지만, 구약 율법을 믿고 살았습니다. 구약역사를 믿고 산 자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예수님을 못 받아들였죠. 이렇게 기다리는 자, 왜 하나님을 기다리는데 왜 사람이 오느냐? 못 받아들였어요. 이것으로 실패했습니다. 기다린 자가 그대로 올 것으로 생각했을 때, 역사는 다 실패했습니다. 이것이 대교리입니다. 성경 전체를 다 읽어도요. 이것을 깨닫지 못 하면 구원이 안 이루어져요. 그러니 어떻습니까? 이 시 대에 주님을 기다리며,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 또한 그러합니다. 기다리는 모습 그가 그대로 올 것이라는 그 관만 딱 깨면 역사가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서 역사하시는지, 어디에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하는지 알게 되죠. 하 나님도, 성자도, 성령님도, 항상 사람 쓰고 행하셨습니다. 중심인물, 사사들, 왕들, 선지자들을 쓰고 행하셨습니다. 나사렛 예수님만 불신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믿은 이 유대종교인들 한 마디로 말하면 제 정신이 아니예요. 제 정신이 돌아와야 됩니다. 선생님께서 이 설교를 하셨다면요. 정말 뜨끔하게 설교를 하셨을 것입니다. 저렇게 뜨 끔하게 가슴에 전구가 터지듯 팡 터지게. 믿습니까? 그래서 너무 안타깝습니다. 기성의 목사들도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주의 종이다.” 그러면서 시대 보낸 자가 이 시대를 흔들고, 시대를 붙들고 나가니까 어떻게 하느냐. 너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신다. 너는 이단이야.”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는 것과 함께 하는 것을 누가 분별한단 말입 니까? 정신이 없어서 그래요. 무슨 정신? 하나님이 사람을 쓰고 역사하시고, 성자께서 사람 쓰고 나타난다는 정신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니 사탄이 점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불신하고, 그러니 질투하고, 시기하다가 신랑이 오 셨어도 깨닫지를 못 하고 불신하는 세계로 그냥 갑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요? 처녀가 기다리다가 그냥 늙었어요. 이제는 늙었어요. 아직까지 기다려요. 때가 되었습니다. 이 미 오신다는 때가 되었어요. 이미 지났어요. 그 중에서 우리는 때를 알고 사는 우리들은 그것도 무덤기간까지 지났 어요. 이제는 본격적으로 시작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기다립니다. 처녀가 늙어서 할머니가 되었죠. 더 이상 처녀가 아니예요. 처녀인데 늙었어요. 처녀여도 아이를 못 낳아요. 어떻게 해요? 시대의 사상, 고정관념이 아예 박혀 있어서 거기서는 새 아이들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들이 시대를 알겠습니까? 믿고 따르는 젊은이들이 이 시대를 잡아나가야 합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생각이 젊고, 순수한 자들이 이 시대를 잡아나가야 합니다. 또한 기성의 사람 들 바로 선조들이 못 맞은 것이지, 지금 사람이 못 맞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택한 자, 보낸 자, 주님께서 택한 자를 불러 와야 되겠습니다. 시대는 한 때입니다. 시대는 한 때, 믿습니까? 오 늘 6월 15일 이 시대는 한 때예요. 두 때가 아니예요. 2012년 6월 15일은 한 때, 2013년 6월 15일은 다른 때. 믿 습니까? 자기 인생도 한 때, 딱 태어나서 딱 한 때입니다. 두 번 살지 않습니다. 나사렛 예수님이 역사했던 신약권 한 때, 모세 때 한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천년 역사 기간 한 때를 보낸다. 인생은 두 때가 없 다. 인생 두 때를 살려면 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을 비유로 한다면, 하루의 해가 두 번 뜨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루의 해가 두 번 뜨는 것을 본 사람 있으면 알려 주세요. 그 사람에게는 시대 보낸 자가 두 번 올 거 같은데요. 진실로 그러할진대, 그럴 거 같은데요. 그런 사람에게는 2012년 6월 15일이 두 번 올 거 같은데요. 그런 사람이 있 다면 손들어 보실까요? 하루에 두 번 해가 뜨는 것을 보았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그건 하얀색 집으로 보내줘야 되요. 먼저 정신을 고쳐 준 다음에 주님 말씀을 넣어줘야지. 이해가 됩니다. 그렇죠. 하루의 해는 한 번만 뜹니다. 이는 절대 법칙이예요. 이와 같이 하늘이 보낸 자는 해와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요? 한번만 뜹니다. 하루는 그 시대와 같아요. 구약 때 한 번 뜨고, 신약 때 한 번 뜨고, 성약 때 한 번 뜹니다. 두 번 뜨지 않아요. 그 러니 날씨가 흐리면 해가 안 떠요. 감춥니다. 안 보여요. 해는 있어요. 그런데 날씨가 좋으면 해가 뜹니다. 날씨가 안 보인다고 오늘 뜬 해가 기다렸다가 내일 또 오지 않습니다. 그냥 안 보이고, 끝납니다. 그런데 날씨가 좋으면 감 빡 해가 뜨게 되겠죠. 오늘 제주도에 계신 여러분들처럼요. 오늘 감귤색깔 옷을 입으셔 갖고, 가운데 해처럼 동그랗 게 계시네요. 이와 같이 시대가 안 좋으면 보낸 자는 안 보입니다. 무엇으로요? 환란으로, 핍박으로, 악평으로 안 보 입니다. 사람의 눈이 가려집니다. 악평 때문에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러다가 날씨가 좋아지고, 시대가 좋아지면요. 사 명자가 나타납니다. 누구 하기에 달려 있느냐? 해는 떠 있는데, 날씨가 굳고 좋은 것에 달려있듯이 이와 같이 시대 사명자가 보이고, 안 보이는 것은 세상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시대 사명자가 보이고, 안 보이고는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고로 어느 때에는 섭리사 에서는 이와 같이 이야기를 했다가, 저와 같이 이야기를 했다가 저와 같이 이야기를 했어요. 왜? 날씨가 흐려서 그 런 것이지, 시대가 악해서 그런 것이지, 그가 변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것을 알고 잘 몰랐 으나, 성령의 감동으로 주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지금까지 믿음을 지키신 여러분들은 축복을 받으신 사람들입니다. 믿습니까? 오늘 전하는 이 말씀이요. 우리가 계속해서 이 시대를 증거해 나가는데 핵심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이 야기를 하셨습니다. “전에는 나팔이 곧 말씀의 나팔이라고 하니까 우리 섭리 사람들은 천사장의 나팔도 그 나팔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원래 하늘에 있던 성자를 선생으로 보고, 선생이 육적휴거 영적휴거 다 시킨다고 생각했다. 육 과 영은 쪼개서 보아야 불이 붙고 성공한다.” 고 했습니다. 말씀의 나팔은 육적휴거에만 해당됩니다. 성자 본체의 분체는 육이죠. 그러니까 보입니다. 땅에서 육적휴거 역사를 펴 나갑니다. 분체를 통해 본체가 해 나가십니다. 그러나 성자 본체는 영이니, 우리의 준비된 영을 천국으로 데려가 는 일, 영적휴거는 성자 본체가 직접 행하십니다. 그런데 그 날 깜빡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 땅에서 육적으로 준비를 해놔야, 우리 영이 준비되서 성자 본체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쪼개야 되요. 육적휴거와 영적휴거 쪼개고, 시대 본체와 분체를 쪼개고, 그러니 어떻게 되요?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게 되죠. 성자 본체의 말씀과 분 체의 말씀을 정확하게 인지한 자들은 불이 활활 타오를 수 밖에 없어요. 어떤 불? 활활 타올라서 어떻게 해? 이게 아니라, 믿음의 불이 활활 타올라요.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이 말씀 앞에 그냥 넙죽 하늘 앞에 엎드릴 수 밖에 없 어요. 이같이 가르치면 사탄이 절대 개입을 못 합니다. 삼위일체를 분별하고, 삼위일체의 성자 분별하고, 분체를 분별하고, 영과 육을 정확하게 쪼개서 분별하니 사탄이 개입을 못 합니다. 쪼개지 못 하면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개지 못 하고 드렸을 때 솔개가 날아올랐죠. 그와 같이 안 좋은 역사, 사탄이 개입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쪼개면 불이 붙습니다. 지금 이 시간도 쪼개면 불이 붙습니다. 말씀 을 전하는 자는 나이지만, 영으로 오셔서 말씀을 전하는 분은 선생님이십니다. 이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누구입니 까? 선생님이십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요. 그동안 여러분이 섭리사로 오기까지 지금까지 말씀으로 지키시며, 기도하며, 이 역사를 지키며, 내 영과 육을 책임지며, 이끌어 오신 분은 선생님이십니다. 그런데 그것도 또 쪼개봐야 합니다. 선생님 혼자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누가 했어요? 성자 본체 구원의 총책임자이신 성자 본체께 서 나사렛 예수님의 모습을 하시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쪼개야 해요. 쪼개면 불이 붙어요. 쪼개지 못 하면 저게 누구여? 저 말이 뭐여? 진짜 이해가 안 되구요. 하나도 은혜를 받지 못 합니다. 여기 와서 선 생님 직접 오시면요. 더 뒤집어질 사람, 두 배로 늘어납니다. 성자 본체 오시면 더 뒤집어질 사람, 두 배로 늘어납니 다. 그럴 거 같죠? 아니라는 겁니다.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아니라는 거예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충성하는 자는 보여도 충성하구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충성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충성 안 합니다. 보이는 곳 에서만 그냥 충성할 거 같지만, 그것은 충성이 아니라 그것은 간사한 행동입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성부, 성자, 성령님의 영적증인이다. 그러니 너희는 육적증인이 되어서 뛰어야 된다. 내가 못 하면 대행자를 세워서 항상 행하는 것을 진정 알아야 한다. 미련한 제자들은 내가 나가면 그제서야 하는 줄 안다. 그런 자들은 내 가 나가도 못 한다.” 이와 같이 성자 본체가 직접 재림해서 해서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자 본체가 오셔도 못 합니다. 분체를 통해 역사를 해나갈 때 그 대행자 육신을 보고, 찾고, 만들고, 준비하며, 성자의 신부가 되어야만 성자가 오셔서 그를 휴 거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 해야 될 일, 지금 해야 될 일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해야 될 일, 선생님 이 나오시면 못 합니다. 그러니 어떻게 되요? 영으로 역사를 하십니다. 근본은 역시 성자이십니다. 어떻게든 행한다 는 겁니다. 믿습니까? 선생님께서 그 곳으로 말씀으로 하실 것은 말씀으로 하시되, 직접 나와서 행하지 못 하는 것 은 반드시 그 센터마다 사명자를 놓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행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영으로 역사한 다니까 또 영을 봐야만 역사한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항상 이와 같이 이러함을 깨닫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제 이렇게 비유하셨어요. 부침개로 시대를 비유하셨어요. 부침개를 부칠 때 어때요? 엄마들은 잘 알거예 요. 앞이 다 익어서 뒤로 딱 돌려야겠죠? 그러면 어떻게 되요? 뒷판이죠. 이 밑판이 다 안 익었는데, 안 뒤집어지죠. 늘러 붙어가지고. 그 밀가루가 오히려 튀겠죠? 이제 한 번 다 익었으면 그 때는 톡 뒤집어지죠. 부침개 뒤집듯이 뒤 집어졌습니다. 어떻게요? 한쪽이 다 익어서 반대쪽이 이제 익습니다. 이와 같이 구시대 신약이 끝나니까, 성약쪽으 로 뒤집어졌습니다. 신약을 더 익혔다가는 탑니다. 그러면 그 터전 위에 어디가 익어야 합니까? 그러면 우리가 익어 야 하잖아요. 신약이 익었으니 성약이 익어야 되는데, 신약이 타버리면 성약도 못 먹어요. 맞습니까? 이제 2천년 딱 익을 만큼 익었으니 성약으로 이제 뒤집어 졌습니다. 시대도 바뀌고, 사람도 바뀌었습니다. 인정하 시기 바랍니다. 인정하면 불이 납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은 신이라서 바뀌지 않습니다. 다만 시대에 따라 차원을 높이며, 시대를 바꾸어서 역사를 펴 나가십니다. 그러나 땅의 사명자는 사람이 다 바뀝니다. 중심인물, 사사, 왕, 선 지자 바뀝니다. 때가 되면 역사가 바뀝니다. 보낸 자도 바꿉니다. 그러면서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영계도 바뀌었 다. 생각해 봐라. 성약시대가 왔으면 천국에 성약성이 생기는데, 그러면 영계가 더 좋게 바뀌지 않겠느냐. 이와 같이 바뀐다.” 제주도도 와서 보니까 10년 전이랑 지금이랑 바뀌었어요. 3년 전에 바뀌었잖아요. 이 아름다운 도시 10년 전에만 왔을 때도 컨벤션 센터 홀이 있었나요? 없었죠. 시대가 바뀌니 건물도 바뀌었어요. 시대가 바뀌니, 여러분 얼굴도 많이 바뀌었네요. 많이 주름이 있네요. 네. 웃음주름이고, 아름다운 주름입니다. 시대가 바뀌면 역사가 바뀌듯이, 보 낸 자도 바뀌죠. 그러나 하나님, 성령님, 성자 예수님은 신이시기 때문에 바뀌시지 않고, 항상 근본으로 역사하신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멋잇는 시 한 편을 읽어 주면서 이 말씀에 대해서 깨닫게 해 주겠습니다. 제목은 성자입 니다. 시) 성자 시대가 바뀌면 사람이 바뀐다. 사람이 바뀌면 역사가 바뀐다. 그 시대 그 사람이로다. 전능한 성자는 창조자이시다. 이 땅에 역사가 바뀌고 보낸 자 사람이 바뀌나 전능자 성자는 여전히 시대를 따라서 행하되 그 시대 택한 자 통해서 차원을 높이어 그 뜻을 펴신다. 역사가 바뀌나 성자는 신이라 결단코 바뀌지 않는다. 시대를 따라서 수천년 지나니 그 시대 보낸 자 사람만 바뀐다. -이 시 속에 다 들어있네요. 또 한 편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제목은 기다리는 자, 우리가 기다리는 자 그를 말합니 다. 시) 기다리는 자 기다리는 자는 신이라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사람 쓰고 하늘의 뜻을 보여주며 약속대로 행하건만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자를 눈으로 보고 모시려 하니 세월이 오고 가도록 기다렸다가 늙어 버렸다. 기다리는 자 시대가 바뀌니 이제는 또 다른 사람을 쓰고 행하신다. 기다리는 자는 기다리는 자들 중에서 최고로 사랑하는 자 그를 쓰고 행하신다. 여러분, 무엇이 축복입니까? 기다리는 자, 그를 맞이한 것이 축복이죠. 그런데 이 시처럼 기다리는 자, 이 시대에 그 중에 최고의 사랑하는 자, 그 육신을 쓰고 온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 바로 최고의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여러분, 좋아하는 자는 여러분의 자유의지입니다. 사람은 그 마음에 좋아하는 대로 행해야 되고, 행한 대로 영의 운 명이 결정되게 됩니다. 고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한 번 책임을 져보십시오. 최고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저는 이 시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뭐가 제일 좋은지 아십니까? 저는 길게 도 아니고, 1주일 동안 내 마음 상태가 어떠한지 기도해 보면서 돌아보면서 내가 최고로 가치있게 좋아하는 게 뭔 지 아세요? 저는요.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 절대 머릿 속에 온통 그 생각밖에 없어요. 오죽이나 내 것을 다 버리고 이 일을 하겠습니까? 최고로 감사해요. 너무 기뻐요. 오직 이것 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럼 1주일 동안 그렇게 살기 만을 원했느냐? 아니요. 정말 몸부림치며 그렇게 살았습니다. 이걸 내가 제일 좋아하는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해요. 저는요. 오늘 이렇게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좋아하는 건 제 것이 아니 니까 주님이 책임지세요.” 그러면 저에게 이야기하죠. “니가 책임져.” “오케이. 그러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 바로 주님 사랑하며, 시대 보낸 자를 믿고 따르며, 절대 이행하는 것이니 그 말에 그 좋아하는 말에 나는 책임을 지겠습니다. 주님도 그러니까 다시 한 번 책임을 지실 거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두 번 째로 그걸 책임질 생각을 해야 해요. 내가 어떤 남자를 너무 좋아해요. 그 사람을 책임질 각오를 하고 좋아해야 되 요.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좋아하면 안 되요. 그건 불법이예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이 시대가 망하는 거예요. 안 되는 거예요. 지금 우리 7기 가정국들, “내 아이가 너무 좋아.” 그러면 그 아이를 책임져야 됩니다. 여러분이 책임을 졌다가는 큰 일이 난다니까요. 주님께 맡기라니까요. 믿습니까? 이 시간 한 번 정해 보세요. 나는 어떤 축복을 최고 로 받을 것인가? 그 축복에 대해서, 그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인가. 생각을 잘 하셔야 됩니다. 여러분, 저는요. 말 한마디 잘 해서 운명이 바뀌었어요. 정말이예요. 저는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실 때마다 그냥 대 답해 본 적이 없구요. 한 번은 꼭 생각해 보고, “잠깐만요. 선생님. 잠깐만요. 한 번 생각해 볼께요.” 했어요. 그리고 대답을 했거든요. 선생님께서 그냥 지나가시면서 “저에게 소원이 뭐냐?” 하셨어요. 신입생 때. 그래서 제가 뭐라고 했는 줄 아세요? “선생님. 보게 해 주세요.” 진짜 이렇게 이야기를 했어요. 어떤 사람은 “가족전도 하게 해 주세요.” 여러 가지 말했는데요. “저는 선생님 보게 해주세요.” 잘 해주세요. 이거 상관없구요. 보게 해주세요. 그리고 나서 저는요. 볼 수 있는 사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운명이 좌우되는 거예요. 선생님이 어느 날은 “기 도해 봐라. 하나님이 듣고 계시니 너의 진심을 다한 한 마디를 기도해 봐라.” 하셨어요. 그 때 기도한 것이 무엇인 지 아십니까? “잠깐만요. (한 마디 마음에 감동이 오기를) 주님. 저는요. 이 세상에서 최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 최고로 행복한 사람 맞죠? (저 그걸로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최고 행복한 사람이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 다. 내 위치 내 입장에서는 내가 최고 행복합니다.” 오늘은 한 번 결정을 해보세요. 결정. 여러분의 좋아하는 것, 최고로 좋아하는 것을 무엇으로 할지 그것에 책임을 질 것인지 정말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가 좋아한다고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게습니까? 내 가 좋아서 쓴 잔도 같이 마시겠다고 하는데, 니가 무슨 상관입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날은 이 길을 가면서 선 생님과 함께, 주님과 함께 쓴 잔을 마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좋아서 나도 달라고 합니다. 내가 좋으니까. 사 랑하는 자만이 있다면, 내가 존경하고 아끼고 모시는 분이 최고가 여기 있는데, 주님이 여기 계신데, 다른 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쓴 잔 주세요. 주님과 함께 쓴 잔 마시고, 선생님과 함께 쓴 잔 마시면 다니까 내게 주십시오. 오히 려 쓴 잔도 내 것이라 하며 좋아하죠. 초가삼간이나 움막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있다면, 같이 할 수만 있다면, 불평없이 좋죠. 거기서 충분히 있을 수 있죠. 여러분, 환경 시절 어떤 사람들은 다 봅니다. 그거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는 대상이 누구이냐? 그 사람과 같이 그 존재와 같이 있다면, 불평없이 좋은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귀한 잠언의 말씀 하나하나를 갖고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사랑하는 자는 나이가 많아도 사랑한다. 그런데 전혀 마 음이 없는 자는 젊어도 싫다. 자기 사랑, 자기 좋은 대로다. 못 말린다. 자기가 좋아하는 자를 사랑해야 자기 만족이 되고, 기쁨이 된다. 젊고, 늙은 것, 잘 생기고, 못 생긴 것이 기준이 아니다. 사랑은 나이도 초월하고, 미도 초월하고, 오직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가 마음에 드는 자라야 사랑의 대상이다.” 여러분,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이 보낸 자를 키와 외모로 두었다고 합시다. “하나님이 보낸 자는 키가 커야 해. 그 리고 외모가 일단 반반해야 해.” 그걸로 정했다면 너무 안 되겠죠. 그럼 큰 일나죠. 우리 선생님, 매일 이야기하시잖 아요. 그걸로 안 정해서 다행이라고. 내 키가 이건데 안 된다구. 우리는 좀 이해를 잘 못하지만, 선생님은 항상 인물 이야기 이렇게 하시잖아요. 이것이 기준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따르고, 우리가 좋아하는 자는 그것이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기준이 아니고, 외모와 미가 기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아름답게 보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멋있게 보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사랑하게 되요. 어떤 사람은 찡그린 모습이 진짜 이상한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찡그린 모습이 그렇게 귀여워요. 어떤 사람은 내 가 조용한 것이 그렇게도 싫다고 하는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조용해서 좋대요. 어떤 사람은 내가 밝으니까 싫다는데 그 사람은 내가 이래서 귀엽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자 자기 좋은 대로입니다. 사람은 이걸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감동되고, 그렇게 눈에 보이도록 전능자 하나님께서 그것도 지 배하고 다스리십니다. 믿습니까? 믿습니까? 왜 이렇게 시대가 좋고, 나는 왜 이래 진짜? 이상한 거 같애. 정말 나는 이상한 거 같애. 왜? 그렇게 이유를 설명해 보라는데 사실 이유를 다 말하기가 그런 게 좋은데. 그냥 좋은데. 어떻 게 해? 어떻게 하겠어요? 그가 좋아하도록 눈에 보이게 감동을 주는 자가 누구라구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 것까지 지배하고 다스리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시대 보낸 자가 좋고, 시대 말씀이 좋아. 행하고 싶어. 그런데 어렵 기는 해요. 좋아요. 안 들으면 못 살겠어요.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에 여러분의 눈에 들도록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 사 축복받은 자인 줄로 믿습니다. 젊다고 해서 다 좋아하고 다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 장년부 어른들이나 나이 드신 분들은 굉장히 힘을 받겠네요. 남이 보고 예쁘다고 멋있다고 해서 다 사랑받지 못 합니다. 어떻게요? 내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이 말이 누구 말인 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남들은 저 사람이 다 예쁘대요. 저 사람이 다 멋있대요. 저 사람이 정말 젊고 좋대요. 그래 도 내 마음에 들어야 됩니다. 누구 말인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성자 주님이 보시는 것과 사람이 보시는 것은 완전하게 다릅니다. 하나님과 성자 주님은 바로 무엇을 보시느냐? 바로 중심, 마음을 보십니다. 인물도 안 보 고, 체격도 안 보고, 키도 안 보고, 오직 성자의 마음에 합당하고 성자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아하십니 다. 주님은 그런 자를 어떻게 하시느냐? 키가 작아도 괜찮아요. 못 생겨도 괜찮아요. 어떻게 하시느냐. 그런 자를 높 여 세우시고, 조명을 비추어 주시고, 가꾸어 주시고, 퇴비해 주시고, 영화롭게 하시며, 모든 자들로 우러러 보게 하 십니다. 주님의 역사는 이러합니다.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키가 좀 커서 그렇죠. 키가 커서 이 말씀 전하기가 항상 힘들었는데요. 절대 그러니까 더 확실히 키 안 보십니다. 믿습니까? 인물, 안 보십니다. 나는 주님 앞에 당당하게 말하건대 주님은 내 중심과 마음을 보셨기 때문에 여전히 역사하시며, 그 긴 시간 7년, 10년을 보셨습니다. 선생님 또한 인물을 안 보시고, 중심을 보 시고, 시대 보낸 자이니 오죽하셨겠습니까? 그 마음을 보셨기에 20년 보시고, 30년 보시고, 지금도 보시며 역사하시 며, 그 몸을 쓰시지 않습니까? 여러분, 증거해요. 증거. 그 사람의 인물, 체격, 키를 보고 역사한다면 하루만에도 쓸 수 있어요. 딱 보면 여기만 해도 나오는데요. 뭐. 누가 인물이 훤한지 다 보입니다. 저 뒤까지 다 보입니다. 훤히 보 여요. 인물로 여기서 뽑아쓴다면 “그냥 그 사람 나오세요.” 하면 됩니다. 뭘 본다구요? 마음. 그러니까 어려워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주님은 이런 중심과 마음을 보시고 쓴 다음에 조명 을 비추어서 높게 보이시고, 우러러 보게 하신다는 겁니다. 높은 곳에 있어보니까 키도 보이고, 빛을 비추어 보니까 작아도 화려하게 보이고, 초라해도 빛을 비추어 놓으니까 화려하게 우아하게 보입니다. 이게 주님의 역사이심을 왜 모른단 말입니까? 오늘 주님께 부탁하시라니까요. 부탁하시라니까요. 선생님께서 저를 보면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었어요. “내가 쟤가 저렇게 될 줄 몰랐는데 말이지.” 선생님이 저를 보시고, 제일 많이 하시는 말씀이예요. 저를 한참 보시고 제가 민망할 정도까지 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이러고 뒤로 갈 때가 있거든요. 왜냐하면 뒷모습을 보고 뭐라고 할지 몰라서, 너무 쑥쓰러운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이 왜 그렇게 쳐다보시냐면, 진짜 신기하신 가봐요. 저를 보면서 “쟤가 저렇게 될 줄 몰랐는데. 사람은 역시 주님은 세워야 돼.” 왜 그러냐니까 “내가 니가 옛날에는 이렇게 될 줄 모랐다. 세우니까 빛이 난다.” 하셨습니다. 세우니까 빛이 납니다. 세우면 빛이 날 수 밖에 없어요. 여러분 또한 인물이 아니라, 주님께서 조건을 세우고 마음을 보시고 세운 사람은요. 빛이 납니다. 빛이 날 수 밖에 없어요. 믿습니까? 섭리사에 계시자들도 빛이 나지 않습니까? 왜 빛이 나요? 세워서 쓰니까요. 못 따라간다는 것입 니다. “화려한 옷은 순간 누구에게나 입혀서 보여줄 수 있지만, 마음은 순간 빛내게 해서 보여줄 수 없다.” 그러니 짧은 순간에는 사람을 못 뽑는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옷을 입히는 것도 몸에 살이 찌도록 하는 것도 배부르게 하는 것도 잠깐이면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을 빛나게 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고로 하늘은 마음이 닦여진 자를 쓰신다.” 아멘. 믿습니까? 진정 그러하네요. 그러면서 오늘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성자 분체가 가야지 만, 일이 된다. 왜? 그는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고 하고, 거지옷도 마다하지 않고 입으며, 거지역할을 내 대신해서 해 준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 있다. 성자의 대역으로 손에 물을 적시기 싫어하고, 거지 옷을 입기 싫어하는 공주님, 왕자님 지도자들 이런 자들은 살가죽을 벗겨내더라도 안 한다. 그러니 성자 본체의 눈에도 거슬리고, 성자 분체의 눈에도 거슬릴 수 밖에 없다. 이들은 성자의 대역으로 설거지하는 것도, 거지옷을 입는 것도, 벌거벗고 거리 를 다니는 것보다도 못 한다. 그러다가 영혼의 빛이 사라진다.” 마음을 보십니다. 마음 빛이 나는 곳에만 가느냐? 성자의 대역으로 때로는 설거지하며, 때로는 온갖 오물들을 다 받아내는 쓰레기통이 되기도 하면, 그를 보며 그가 지저분하다고 해요. 사람들이 거기에 쓰레기를 버리니까, 쓰레기 통이라고 해요. 어느 때는 거지옷을 입고 거지대역을 하니, 그를 거지로 봅니다. 그러니 마음을 보십니다. 그와 같이 고통도 쓴 잔도 모든 것도 다 내 것으로 삼고, 나의 성격까지 나의 성품까지 다 바꿀 수 있는 사람, 정말 인격을 가 지고 진정으로 그 심정으로 성품을 닮아 행할 수 있는 자, 그 중심을 가지고 행할 자를 택한다는 것입니다. 믿습니 까? 진짜 여기서 한 눈에 다 보이네요. 여러분들이요. 제주도 사람보다 제주도 아닌 분들이 더 많이 계시네요. 얼굴 이름까지 제가 다 외우겠어요. 저기 정세환 목사님께서 보이니까요. 제가 이 말을 하는 이유를 딱 한 사람은 정말 깨닫기를 바랍니다. 나이도, 학력도, 얼굴도, 주님 앞에는 상관 없습니다. 여러분, 상관없습니다. 이거 깨십시오. 완전 깨십시오. 나이, 학력, 얼굴, 모든 것 상관없어요. 주님 앞에는 이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개성대로 수준 대로, 차원 대로, 정든 대로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갖춘 대로 좋아하십니다. 성자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갖추기 전에는 절대 주님은 안 좋아하십니다. 주님 앞에는 나이도 상관없고, 키고 상관없고, 얼굴도 상관없습니다. 성자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갖추어야 되겠습 니다. 그래야 그를 사랑해 주시고, 그의 영을 휴거시켜 그를 천국으로 데려 가신다는 것입니다. 신이 아닌 인간이니 얼굴, 키, 몸, 지혜, 지식, 마음 다 완전하게 갖출 수가 없습니다. 맞습니까? 신이 아닌 인간이라서 완전하게 다 갖출 수가 없어요. 주님께서 오셔서 “니희들 모든 것 육적으로 완벽하게 갖춘 자만 휴거시켜.” 말씀을 하신다면, 그러면 우리 중에서 휴거될 사람 한 명도 없어요. 이 세상에 천하일색 양귀비도 하나의 흠은 있습니다. 여러분 못 봐서 그 래요. 발가락이 이상하게라도 생겼다니까요. 제가 봤다니까요. 진짜 예쁘다고 하는데 발바닥이 정말 이상했어요. 임 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되어야 해요. 발바닥을 보는 순간, 손가락을 보는 순간, 완전 환상이 날아갔거든요. 그 정도 로 이상하게 생겼거든요. 여러분, 사람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지식과 지혜까지 겸비해서 다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 러나 인간이 꼭 갖추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주님이 이것만은 보십니다. 성자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한 가지 이 것은 인간이 꼭 갖추어야 합니다. 그 기준이 키라면 불가능합니다. 왜? 키 작은 자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서 키가 기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미와 얼굴이 기준이다. 그렇다면 불가능한 자들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역시 그것도 아 닙니다. 그리고 또 하나 말하기를 “시대 중심자가 이미 기준을 세워 놓았기 때문에 인물을 표준으로 두지 않는다.” 하셨습 니다. 선생님, 계속 이 말씀을 하시는데요. 저는 이 말씀을 반대하고 싶은데요. 시대 중심자가 기준을 정해놨기 때문 에 인물이나 키가 표준이 아니다. 키나 얼굴을 기준으로 놓으면, 시대 중심자도 성자 주님 앞에 그 조건을 갖추어야 된다. 그러니 아니다. 그렇다면 몸짱을 기준으로 하면, 역시 그 체질이 마른 멸치로 태어났으면 어떻게 하냐? 그러 면 이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주님께 사랑받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역시 아니다. 그리고 또한 나이들어서 살이 쪽쪽 빠진 자들이 많으니, 역시 몸짱을 기준으로 하면 불가능한 자들이 많다. 그래서 아니다. 돈, 명예, 환경, 집을 기준으로 한다면 섭리사 사람들은 거의 불가능하다. 고로 그것도 아니다. 신부의 중심인 시대 중심자가 과거에 겪은 것을 봤을 때 돈, 명예, 환경, 집, 인물은 성자 주님 앞에 갖추어야 할 기준이 절대 아니다. 성자 주님 앞에 기준, 표 준, 중심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불가능이 없는 일이다. 여러분,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르쳐 주면 하겠습니까? 성자 주님 앞에 기준과 표준과 중심은 무 엇이냐? 바로 성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진정으로 선한 마음, 진정으로 선한 행동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노력 하면 할 수 있다. 불가능이 없다. 성자도 그 육이 된 자도 이 조건을 갖춘 자를 사랑한다. 이들이 휴거된다. 여러분, 사랑받지 못 할까? 걱정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주님이 사랑하는 것과 나와 관심없어.” 하면서 완악한 대로 버 려둠을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 다 못합니다. 내가 싫은 사람이 있어요. 저는 그걸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주님의 마음을 못 받았다. 선생님의 마음을 못 받았다.” 사람은 모두 다 사랑하지 못하지만 성자와 보낸 자는 다 사랑합니다. 100% 사랑해야 구원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선생님이 어느 날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야야. 사명이 무섭다. 사명이 무서워.” 이 말씀을 하시는데 그 심정이 오는 거예요. 사명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게 아니라, 사명이 사랑하는 사명이라서 다 사랑하고 다 사 랑스러우니 사명이 무섭대요. 알겠습니까? 때로는 채찍질을 하고, 때로는 말을 안 들으면 혼내기도 하지만, 참 사명이 무서워서 사랑해야 구원하니 사랑하는 게 사명이니 참 사명이 무섭다. 저도 그와 같은 그런 간증이 나오도록 노력할 겁니다. 참 사명이 무섭네. 진짜 무섭 다. “사명때문에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진짜 사명을 그 행한 대로 받으니까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구나.” 이러한 간증이 우리 모두 나와야 되겠습니다. 믿습니까? 그러면서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느 한 사람을 사랑하려면 다 사랑해야 된다. 사람은 그 사람의 얼굴만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일부분만 사랑하지만 그 사람을 사랑하려면 온 몸과 온 마음을 다 인계받아야 된다. 그러니 오리발이든, 원숭이 손이든 다 인계받아야 한다. 여러분의 나쁜 마음이든 여 러분의 거칠거칠한 마음이든 이런 모든 마음까지 성자 주님과 그 보낸 자는 다 인계 받았어요. 다 지불을 했어요. 여러분의 값이 1억, 10억 더 나가지만 만약에 1000만원이다. 그런데 나는 저 사람이 거기서 나는 정말 저럴 때 저 알 싫어. 삐지는 저거 빼. 800만원만. 주님 800만원만 살께요. 나머지 200만원은 안 살께요. 이렇게 안 하셨어요. 여러분의 모든 마음 모든 것까지 값을 주고 사셨습니다. 믿습니까? 다 인계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귀한 사명을 받은 자는 악인이나, 선인이나 모두 인계받고 하나하나 사랑으로 소화하며 대해줄 수 밖에 없습니다. 온 세상 민족을 그와 같이 대합니다. 이를 알고 우리가 이 시대에 진정으로 보낸 자를 믿고, 사랑하는 것, 그를 진정 받아들이면서 그의 축복 속에 거하는 것이 우리가 받은 최고의 축복인 줄 믿습니다. 최고의 축복 내가 원 하는 것 이것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게 됩니다. 이렇게 나를 사랑해 주셨는데 “이제 나 너 싫어.” 하면서 완악한 마 음대로 버려두는 일이 있으면 안 되겠습니다. “절대 사랑했으니 계속 사랑해야 해. 사랑하게 해줘. 사랑 안 하면 안 돼. 같이 가야 된다.” 그 말씀을 계속 하시면서 수준을 높여 원하시는 뜻을 행하면서 사는 우리들이 되어야 되겠죠. 보이는 세계가 다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 밖에 보지 못 하면, 절대 보이는 것 밖에 못 벗어납니다. 사람은 재벌가 라도 기껏해야 시야가 보이는 것을 벗어나지 못 해요. 돈을 정말 많이 가지고 있어도 보이는 것은 똑같아요. 아무리 미가 뛰어나도 시야는 똑같아요. 눈이 장애가 없다면요. 보는 반경은 똑같아요. 시야는 똑같아요. 이와 같이 사람은 보는 것이 똑같아요. 신의 차원으로 벗어 나야지만, 사람의 생각을 벗어나서 신의 생각으로 전환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자 주님께서 그 육과 함께 모든 조건, 값을 다 지불한 다음에 나를 샀습니다. 나를. 이걸 깨달아야 역사가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못 하니까 마지막으로는 대신 해줬습니다. 다섯 번째는 완전하게 세우려고 이것을 확실하게 믿고 굳게 서서 그의 몸이 되어야 합니다. “역시 나는 주님 거 야.”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나는 확신했어요. “나는 역시 주님 것이 맞습니다. 요즘에 오렌지 쥬스도 가 짜가 많다고 하는데 나는 순도 100% 조은이, 100% 주님의 것입니다. 정말 맞습니다. 진짜 맞다. 주님, 이걸 어떻게 아느냐구요? 주님, 나에게 물으신다면 나는 정말 주님의 몸이 되어 살고 싶고 정말 선생님과 같은 인생되어 살고 싶 으니까.” 너무 흥분해서 반말이 나왔어요. “맞다. 맞다. 맞다. 맞다.” 진짜 이랬다니까요. 내 마음 상태를 보니까 내 가 무슨 축복을 받았는지 알겠더라구요. 믿습니까? 여러분, 이 축복을 받아야 되겠습니다. “이 역사가 좋고, 보낸 자가 좋고, 주님이 좋고, 말씀이 좋고, 확실하게 믿어지고, 왜 이렇게 믿어져? 왜 이렇게 깨 달아져? 그러니까 더 들어야 해. 왜 내 마음이 자꾸 그런 거야?” 축복받은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한 마디의 기도가 여러분의 운명을 좌우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말로 하늘 앞에 서겠습니까? 오늘 나의 하나의 마음으로 나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내게 역사하시며, 주님을 사랑하라 허락하신다면 여러분들은 하늘 앞에 어떤 말을 하겠습니까? 저는 많은 것을 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 주님이 시대의 보낸 자와 함께 값을 다 지불하고 나를 사셨으니 완전 히 여기서 더 완전하게 주님의 몸이 되게 해 주세요. 주님 것이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 것이 되면 그 다음에는 주 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죠. 나를 구워 드시든지, 삶아서 드시든지 그 다음에는 주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한 마디만 하고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동물 중에서 인간의 사랑을 많이 받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강아지죠. 개 새끼 귀엽잖아요. 욕이 아니예요. 너무 귀여워서 강아지, 강아지가 인간의 사랑을 제일 많이 받는데 그 중에서도 애 완견이 사랑을 제일 많습니다. 사람의 사랑을 그렇게 많이 받고, 사람과 제일 가까이 지냅니다. 이 애완견은 사람과 떨어지면 죽어요. 그렇죠? 왜 그럴까? 똑똑해요. 머리가 좋아요. 머리가 좋을수록 비쌉니다. 머리가 좋을수록 주인을 따르며, 가까이 합니다. 한국에는 진돗개겠죠? 충견, 사람도 머리가 좋아야 신과 가까이 한다. 개도 주인과 가까이 하지 않고 주인에게 버림을 받으면 굶어 죽습니다. 주인을 가까이 하며 사랑받는 개는 호의호식하면서 개라도 인간 보다 더 잘사는 개들이 있죠. 하물며 인간이랴. 여러분, 오늘 한 마디 무엇을 가지고 주님께 기도하겠습니까? 저는 오늘 이렇게 기도할 겁니다. 주님, 무너진 구약 역사를 세운 역사가 신약이 아니겠습니까? 일으켜 세운 신약의 역사를 완성시키는 역사가 성약이 아니겠습니까? 주 님. 완성, 완전하게 해주시고, 완성시켜 주심에 감사하며, 내가 주님의 것이 완전하게 되어서 완전하게 구원받고, 완 전하게 휴거를 오늘 이루게 해주십시오. 내 마음이 완전하게 주님의 것이 되게 해주시고, 완전하게 흔들림이 없이 굳건하게 해주시고, 완전하게 영혼이 변함이 없이 나를 지켜 달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시겠습니까? 무엇으로 축복을 받으며, 무엇으로 가치관을 삼으며, 그것을 책임지시겠습니까? 이 시간 섭리사 전체에 뜨거운 성령, 그 마음으로 할 수 없는 뜨거운 성령 모두에게 허락한 줄 믿습니다. 완악한 마음으로 버려두지 않으셨으니 주님은 우리 모든 자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이 성령을 받으면 그냥 뒤 집어지는 역사가 일어나죠. 그 역사가 오늘도 일어나 한 명의 생명이라도 완전하게 뒤집어져 완전하게 주님의 것이 되며, 완전하게 굳건하게 서게 되면 이 외친 보람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가 한 명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각 교회 모든 자에게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완전한 축복이 무엇인지 분별해야 되겠습니다. 무엇이 고통인지 분별해야 되겠습니다. 진정한 축복, 최고로 인간이 절대 뺏겨서는 안 될 그 축복을 뺏기지 않기를 원하니다. 이곳에 성령이 임하며, 각 전세계 모든 사람들의 마음 가 운데 성령이 임하며, 제주도 땅 가운데 성령이 임하여, 잡신들 모든 신들 모든 마음들 완악한 마음이 다 태워지게 하시옵소서. 성령이 임하게 하시옵소서. 어린 자나, 나이든 자나, 선배나, 후배나, 주님 할 것 없이 이 마음을 활짝 열고 완전함에 서겠다고 하며 주님 앞에 축복을 간구하는 자 이 모든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성령의 불 길이 내게 내려와. 성령의 능력이 내게 내려와. 이 마음과 뜻 목숨 다하여 나를 값을 주고 사셨사오니,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주의 일을 행하며 주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결심할 때에 이전에는 받지 못 했던 놀라운 불이 일 어나리라 믿습니다. 성령의 불길 내게 내려와. 찬양 ‘임하소서 성령이여(Come Down on Me, Holy Spirit)’ 마침기도) 살아 계신 자의 하나님.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그리고 살아계신 성자 예수님. 살아서 역사하시며, 우리의 마음 가운 데 감동으로 불로 역사하시는 성령님 감사드립니다. 올해가 어떤 해인지 주님 알지요.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지식으로 깨달았습니까. 진정 마음으로 깨달았습니까. 주님. 값을 주고 나의 미운 것, 나의 고운 것까지 나의 모순과 나의 잘못된 것까지 나의 모든 것을 다 사주셨습니다. 값을 지불하셨사옵나이다. 이제 이 값을 지불한 자가 누구.요 이 시대 보낸 자가 누구이며, 나를 살리며 인생목적 귀한 창조목적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누구임을 분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완전하게 마음을 정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므로 평안을 주시옵소서. 그러므로 축복을 주시옵소서. 그러므 로 역사의 초석을 완전하게 다지게 하시옵소서. 그러므로 무덤을 벗어나게 하시옵소서. 마음을 정했다면 정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살게 하시옵소서. 모순을 고치며, 자기의 인격과 성품 을 주님의 것으로 고치게 하시옵소서. 간절하게 주 앞에 간절히 간구하고 원하옵나이다. 주님. 우리의 완전함으로 사탄을 멸할 수 있으며,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으며,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으며, 주님 휴거의 영이 될 수 있으며, 주님께서 준비해 놓은 곳에서 영원히 거할 수 있사옵나이다.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게 하시옵소서. 내가 가장 간 절히 간구하는 것, 세상은 큰 집 짓고 사는 것, 좋은 사람만나 사는 것, 역시 끝이 있어 허무합니다. 허무한 것은 끝 이 있으니까, 영원할 수 없으니까, 주님 그것에 우리의 생각이 밀리면 되겠습니까. 우리의 가치관이 흔들리면 되겠 습니까. 세상 것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옵소서. 먼저는 먼저 할 것을 하게 하시며, 먼저 축복을 이루게 하시옵소서. 많은 것을 가져야 행복입니까. 아니요. 정확한 목적과 방향을 알고 사는 것이 행복이죠. 이것이 행복이며, 이 길을 찾아도 노력하며, 행하며, 힘들어도 가는 것이 행복이죠. 주님. 눈물이 나도 내가 아는 것이 있으며 내가 정확하게 가야할 길이 있으면 이게 행복이죠. 이 시대 길을 잃고 살고 있사옵나이다. 주님을 잃었으며 보낸 자를 잃었사옵나 이다. 다 믿었어도 시대 한 사람을 못 믿어서 이와 같이 되지 않았사옵나이까. 그러나 믿는 축복을 우리에게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알아주는 축복을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몰라보지 않게 하심을 감사하오며, 알아볼 수 있도록 노 력하게 하심을 감사하며, 말씀을 듣고 깨닫고 여기가지 이끌어 오심에 진실로 감사를 드리옵나이다. 완악한 마음으로 버려두지 않으시사 나를 택해 주심을 감사하며, 우리의 마음이 부족하여 마지막으로 기필코 이루고 자 하셨으나 모든 조건 주님께서 시대 보낸 자와 함께 져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 모든 십자가의 조건으로 나를 사셨 사오니 제일 먼저 최우선으로 그를 중심하는 것이 맞지 않지 않사옵나이까. 먼저는 주님의 신부되게 하시옵소서. 그 다음에 육적축복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역사는 영과 육이 잘 되어야 하는데 왜 육만 잘 되나. 왜. 이렇게 영만 잘 되나. 왜. 이렇게 육신은 고달픈가. 하나님의 역사 다 육신은 너무 고달퍼. 이 시대도 그러해.” 하면서 선생님 기 도했을 때 주님 말씀하시기를 “영과 육이 다 잘 되게 해줄테니 너희가 영과 육을 내게 만족히 행하라.” 말씀하셨습 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약속하시기를 “너희의 영과 육이 잘 되게 해줄테니 너희의 영과 육을 완전하게 하라. 내가 보기에 만족히 하라.” 말씀하셨사옵나이다. 주여. 값을 지불하여 사셨사오니 우리도 믿는 것, 행하는 값을 지불하여 우리의 것으로 삼게 하여 주시옵소서. 노예처럼 살지 않게 하시옵소서. 종처럼 끌려가지 않게 하시옵소서. 그것이 끌려가면 종이지요. 끌어오라 했으면 주님 좋아 기뻐 따라가는 것이 신부이지 않겠사옵나이까. 주여. 끌려가지 않고 따라가게 하시옵소서. 주여. 기쁜 마음으로 따르게 하시옵소서. 이러므로 값을 지불하게 하시옵소서. 마음을 완전하게 정하여 행할 때에 주님 축복을 더하시리라 믿사오며, 이 시대 축복이 무엇인줄 깨달았사오니 이 축복을 뺏기지 않게 하시옵 소서. 시대의 보낸 자, 주님께로 가는 길, 나의 영의 운명을 가르는 이 길을 뺏지기 않게 하시옵소서. 시대의 보낸 자를 뺏기지 않게 하시옵소서. 시대의 보낸 자와 그 신랑이 주시는 사랑을 뺏기지 않게 하시옵소서. 불같은 능력과 은혜 로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녹여 주시옵시며, 완악한 마음으로 버림을 받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백조가 되어 날기를 원하오며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얻어 뜻을 이루기를 간절히 간구하며 원합니다. 시인하게 하시옵소서. 나는 주님의 것이요, 시인하게 하시옵소서. 내 힘으로 온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조건 세워 오신 것을 시인하게 하시옵소 서. 시인하였사오니 우리의 뜻대로 살지 않게 하시옵소서, 바꾸게 하시옵소서. 새로 태어나게 하시옵소서. 믿음을 주 시옵시며, 사랑을 주시옵시며, 성령으로 뜨겁게 인도하여 주시옵시며,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 간절히 간구하는 마음 보낸 자를 믿고 따르는 그 마음 그 축복을 뺏기지 않게 하시옵소서. 그러므로 버려둠 속에 고통 당하지 않게 하시옵소서. 그러므로 시대 최고로 행복한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최고로 행 복한 자들임을 시인해야 되지 않겠사옵나이까. 하지 못 하면 하는 자에게 뺏기니, 이제는 행하여 값을 주고 사왔사 오니 우리의 것으로 우리의 섭리를 우리의 보낸 자를 우리의 주님을 우리의 것으로 삼게 하시옵소서. 우리 제주도 주님 사랑하시고, 역사하시어 지켜 주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이제 독수리가 날개쳐 올라가듯이, 주님 더욱 더 큰 꿈 을 향해 도약해야 되겠사옵나이다. 그 동안 믿음을 지키고 이 곳까지 온 자들에게 능력을 더하여 주시옵시사 오늘 뜨거운 성령을 받아 이 마음이 뒤집어져 생명의 역사 이루게 하시옵시며 이 좁은 땅 작은 땅이지만 이 아름다운 땅 에 주님의 아름다운 신부들이 심어지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이 세워지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준비한 손길들 기억하시며, 축복의 축복을 더하심은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사랑하는 마음 뺏기지 않고 자 하는 그 큰 축복 주시옵소서. 그 축복으로 우리 섭리사가 완전하게 부활하여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모든 것 주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옵나이다. 사랑하는 선생님. 날마다 우리를 위해 뛰고 달려 주시며, 오직 이 역사 위해 오직 주 님 위해 오직 이 성약의 마지막 재림 역사를 위해 뛰시며 주님 보이는 것으로 어찌 사람이 판단할 수 있겠사옵나이 까. 역시 사람은 사람의 시야대로 반경의 뒤까지 다 쳐다볼 수 있겠습니까. 오직 주님이 아시니 성령으로 증거케 하 시옵소서. 우리가 그 증거자가 되어서 시대를 지혜롭고, 담대하게 외치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보람과 그의 모든 노고가 빛이 나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주님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영과 육 영만 잘되는 것이 아니 라 육도 잘 되는 역사가 일어나려면 주님 우리가 약속해야 되겠습니다. 너희가 영과 육을 완전하게 할 때 주님 삶도, 마음도, 모든 것도 완전하게 할 때 우리 영육이 잘 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을 볼 때 바라고 원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그가 필요하며, 진정으로 그 말씀을 듣고 변화되고 부활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죄값으로 그가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기를 원하옵나이다. 성자 주님께서 더 이상 고통당하지 않기를 원하옵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겠습니다. 완전하게 행하며, 흔들리지 않으며, 굳건함 가 운데 서겠사오며, 마음을 정하며 평안함 가운데 거하며, 고통이 와도 힘들어도 주님 행하는 자들이 되겠사옵나이다. 우리가 완전하게 하겠사오니 선생님의 소원, 우리의 소원, 모든 소원을 이루시옵소서. 모든 것 주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옵나이다. 뜨거운 성령 허락하시사 진정으로 부족한 자, 진정으로 부족한 그 마음 받아 뒤집어져 우리를 신부로 삼아주시다니요. 주님. 이 엄청난 역사를 주님 어찌 하겠사옵나이까. 이것을 감사케 하시옵소서. 이 지구세상을 다 얻은 것보다 성자 주님 그 삼위일체 사랑을 얻으며, 그가 우리의 신랑인 거예요. 우리의 영육을 책임지시는 자가 사람이 아니라, 근본자인 것을 날마다 깨닫게 하시옵소서. 깨달을 때 불이 붙으며 능력이 일어나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전 세계 각 나라 그리고 모든 교회, 교회 각 개인들이 뒤집어져 주님 부침개 뒤집듯이 반대편이 완전하게 익어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실 줄 믿습니다. 제주땅에 있는 미신, 잡신, 주님의 이름으로 사라지게 하시옵 시며,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잡생각과 완악한 마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사라지게 하여 주시옵시며, 성령의 불로 태워 지게 하시옵소서. 진실로 온전해 지기를 원하옵나이다. 주께 모든 것을 감사를 드리며 이 모든 것 살아서 역사하시 는 성자 예수님의 이름 받들어 감사함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껏 알아봤자 내 삶, 우리 가정, 내 주변만을 생각했던 제 삶에도 정말 하늘 역사를 생각하며 주님 위해 살 수 있 는 이 인생을 이미 다 드렸지만 더 드릴 수 있음은 우리를 더 완전하게 만들 때 우리의 마음과 행동과 삶을 완전하 게 만들 때 이미 드린 우리의 삶을 주님께 더 드리리라 믿습니다. 마지막 역사죠. 선생님, 이것 때문에 뛰어 오셨습 니다. 오직 이거 하나 때문에. 그냥 종교가 종교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완전하게 사랑하고 주님 것이 완전 하게 되는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 막내에게는 속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 선생님 오직 기준이 되어서 상대체가 되어 서 이루어 오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해 드리겠다고 굳건하게 서겠다고 더욱 더 기도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전 세계에 계신 모든 여러분들 하늘 앞에 영광돌리며 전 세계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우리 제주도를 위해서도 큰 박 수 보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제주도에 무한한 발전을 위해서 박수를 쳐주시기 바랍니다. 주품에 거하는 우리 모 두 섭리인들이 되기를 바라며, 마지막 시간에는 ‘주 품에’ 찬양하고 싶습니다. 완악한 마음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날마다 주님 품에 거하게 하심을 감사하며, 그리고 예전에는 작게 깨달았던 것들이 너무 크게 깨달아지니까 다시 아 기처럼 돌아가서 다시 하나 하나 다시 조건을 세워나가서 배워나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작은 거 하나에도 주님을 느끼고 싶습니다. 제가 언젠가 말씀을 전할 때 그런 말씀을 전했을 겁니다. 선생님께서 성자 바위를 찾아내시고 너무나 기쁘셔서 3 일 동안 일도 안 하시고, 오직 그거 주셔서 감사하다고 또 달라고 그렇게 기도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어찌 이 돌 하나을 갖고 내가 돌에 미쳤나? 수석에 미쳤나? 주님. 내가 왜 이러죠?” 주님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이 보실 때 그 돌은 점같이 작은 것 하나에 불과하다. 그러나 기도해서 니가 간구해서 주었으니 얼마나 크냐. 부자가 있는데 그 부자는 돈이 너무 많아서 길 가는 자에게 배고픈 자에게 빵 하나를 주면 그 빵은 부자에게 점과 같은 작 은 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배고프고 헐벗은 자에게는 얼마나 큰 축복이냐? 하늘을 늘 이렇게 대하라. 작은 것 하 나를 주어도 하늘 앞에는 작지만, 너에게는 너의 생명을 인도하며, 너를 구원하며, 너를 살리는 것을 늘 기억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삶으로 단 하나 하나 작은 거 하나 하나에까지 주님이 주심을 감사하며, 우리 섭리인들 모두 여러분들 우리의 나쁜 마음, 온전치 못한 것, 그동안 세우지 못한 모든 조건들, 그 모든 것까지도 다 사랑해 주시고 우리의 삶을 사 랑해 주셔서 우리를 그 값으로 주님과 함께 사지 않으셨습니까? 그 마음을 우리가 늘 기억하고,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더 통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 봐서 통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진실한 마음과 심정으로 통하니까 정말 더 깊 이있게 그가 어떤 분이신지 어떤 조건을 세웠는지 스며들듯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를 위해 항상 울어 주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질만큼 다 지어 주었고, 우리가 그를 완전하게 인정하고 또 인정했으면 그 상대로 우리도 따라 사는 인생 되어야 되겠습니다. 주 품에 항상 온전하게 거하는 우리 섭리인 모두가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주 품 에 품으소서. 찬양 ‘주 품에(Sti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