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새벽말씀2012.06.18 (월)

계시말씀

선포일
2012.06.18 (월)
성경 본문
요한복음 5장 24

첨부 파일

선생을 100% 믿고 시인하며 행하는 자가 곧 휴거의 완성을 이룬 자다 작성일 : 2012년 5월 7일 (월) 작성자 : 김영광 ( 3월 30일 천국성령운동 기도 중 주님께서 저에게 “선생을 100% 믿는 것이 이 시대 휴거의 완성이 다.” 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말의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여 메모만 해 두고 이 말씀이 어떤 말씀일까 항상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성자 본체에 대한 말씀이 떨어지고 이 말씀의 의미를 조금씩 느끼긴 했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차원에서 깨닫고 싶어 계속 단상 말씀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새벽에 졸음이 오고, 기도도 집중이 안 되었습니다. 지난주부터 성자 본체와 선생님의 가치에 대한 말씀 과 잠언이 쏟아졌지만 머리로는 알겠는데 이 역사에 대한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벽예배 후 작정하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정말 깨닫게 해 주세요. 정말 주님의 심정을 느끼고 싶습니다. 오늘은 느낄 때까지 학교도 안 가겠습니다.” 이 때 성경 속 베드로의 사연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이후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나 성자가 오늘 너희에게 선생에 대해 증거하니 진정 깨달아라. 깨달은 자가 진정 사명자니 내가 그를 통해 역사해 주리라. 사랑아. 너는 선생을 진정 사랑하느냐. 너는 선생을 진실로 사랑하느냐. 너는 선생을 진실로 진실로 사랑하느냐. (제가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네 맘 안다. 100%가 아니니 고백 못하는 네 마음, 마음먹은 대로 행치 못하니 부족한 네 마음, 마음은 원이지만 확신과 믿음이 부족한 네 마음, 나 성자는 네 마음 다 안다. 허나 너희가 진정 휴거가 되기 위해선 이 과정을 이겨야 한다. 너는 부활이 무엇이라 배웠느냐. (이 때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25절이 스쳐 지나갔 습니다.) 거기에 핵심이 무엇이냐. (저는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라고 대답했습니다.) 맞다. 내가 보낸, 내 육인 나사렛 예수의 말을 듣고, 나와 내 아버지를 믿는 것이 종에서 자녀의 휴거요, 내가 보낸 내 육인 선생의 말을 듣고, 나와 내 아버지를 믿는 것이 자녀에서 신부로 휴거되는 것이니라. 너는 선생의 말을 100% 내 말이라 확신하느냐. (그 때 저는 ‘아니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래. 100%라면 내가 준 귀한 이 말씀, 선생이 목숨 다해 받아 준 이 말씀을 진정 땅에 떨어트리지 않을 것이다. 사랑아. 휴거는 전환이다. 인식관의 변화다.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고정관념을 다 버리고, 오직 나 성자의 생각으로 가득한 것이 곧 휴거다. 선생은 그 인식관을 바꾸기 위해 먼저 본인부터 연단하며 이 시대 나의 짝사랑의 한을 풀어주니 나의 신부가 되었노라. 그리고 그 때 받은 말씀을 너희에게 전해 줌으로 너희도 동일하게 그와 같이 되라 함이다. 그 말은 곧 내 말이니라. 성경에 나를 부인하는 자는 사하심을 얻으나 성령을 부인하는 자는 사함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을 보지 않았느냐. 선생은 선생 스스로가 아닌 나 성자의 육이기에 내 육을 함부로 대하는 자, 곧 나를 함부로 그리 대하는 자요, 내 육의 말을 안 믿는 자, 곧 나 성자의 말을 안 듣겠다는 말과 같노라. 베드로는 나를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으나, 풍랑에 잠잠치 못하고, 바다에도 빠졌으며, 내 뒤를 따라가리라 하며 이야기했지만 나를 세 번 부인했노라. 허나 그가 성령 받고 외치는 소리를 보라. 담대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말하지 않았느냐. 사랑아. 깨달아라. 너희는 선생을 또 나를 사랑한다 말한다. 결코 버리지 않겠다 말한다. 행복이란 영원히 행복해야 행복한 것이야 찬양도 한다. 또 이 섭리사를 기쁘고 희망의 새 역사라 이야기한다. 그럼 진정 너 자신에게 물어 보겠노라. 너는 행복하더냐. 진정 기쁘더냐. 영원히 날 사랑하느냐. 사랑아. 너희가 이리 고백해도 삶 가운데 진정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자 많이 없다. 다들 세상 고민, 진로 고민, 걱정, 근심, 염려 등 각종 나 성자와 선생 외의 것으로 채우지 않느냐. 네 짐을 버리고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하였거늘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 나를 찾지 않는 것이냐. 어찌 나를 믿지 않는 것이냐. 99년도를 기억하라. 너희 선생을 그리 사랑한다 고백한 자들 지금 섭리사에 얼마나 있는지.......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듯 나의 제자들이 흩어지듯 너희 선생을 부인하며 흩어지지 않았느냐. 그리고 마치 겁에 질린 제자들처럼 교회 문을 잠그고 선생 증거도 못하고 그게 10년이지 않았느냐. 부흥강사를 왜 너희 선생의 몸으로 너희 형제 가운데 표상으로 세운 줄 아느냐. 선생 옆에 10여 년 동안 있어서 그렇다고 많이들 생각한다. 아니다. 부흥강사는 성경에 회복된 베드로와 같이 선생 앞에 회복된 가장 첫 번째 제자요, 나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함을 회복하고 성령 받아 그 시대 삼천의 기적을 낳았듯 부흥강사도 본인이 선생을 100% 믿지 못함을 회개하고 성령을 받았기에 지금 너희 앞에 담대히 “선생님께서 진정 이 시대 단 하나밖에 없는 성자의 몸입니다.”하며 외치지 않느냐. 그 근심, 걱정의 베드로가 스승을 지키지 못한 한으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미소를 지으며 순교했듯 그 어리고 어린 한 소녀가 너희 가운데 당당히 선생과 나를 증거하듯 너희도 진정 회복하여라. 진실로 선생이 나 성자의 몸임을 100% 확신하고 깨닫는 자는 전도하는 게 달라지고, 강의하는 게 달라지고, 나를 모시고, 선생을 모시는 삶이 달라지고, 기도가 달라지고, 진정 그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만약 제자들이 나사렛 예수가 어떤 자인지 깨달았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이나 잤을까? 목숨 걸고 같이 시대를 위해, 본인 자신의 구원을 위해 그 졸음이 와도 어떻게든 몸부림치며 기도하지 않겠느냐. 지금 이 때 에스더기도 그리고 성자의 기도. 선생은 너희에게 “나와 함께 기도하자.”하였다. 그것이 단순히 선생이 기도하자 했겠느냐. 진정 성경을 보고 과거를 생각하며 이 시대 이때가 어떠한지 깨달아라. 나 성자도 2000년 전 나사렛 예수를 통해 제자들에게 같이 기도하자 한 것이 그 때 한 번이요, 지금 이 때 선생 통해 너희에게 같이 기도하자 함이 섭리 33년 이끌면서 있었느냐. 올해 처음이지 않느냐. 이리 이야기해도 정녕 선생의 말이 나 성자의 말임을 깨닫지 못하느냐. 네가 모시는 선생이 바로 전능자 나 성자의 육임을 100% 믿지 못하느냐. 목숨 걸고 선생과 같이 기도하는 자 정녕 나 성자의 본체를 볼 날이 올 것이니라. 마지막 내가 부어 주는 이 성령을 받고, 어서 너희도 부흥강사처럼 회복하라 섭리사에 있는 모든 자는 단 한 명도 선생을 부인 안 한 자 없도다. 부인이란 100% 믿어 주니 못함을 말하니, 진정 성령 받고 너희 선생이 누구인지 깨닫고, 나의 이 마지막 역사를 회복해 다오. 너희가 이룰 육적 휴거의 완성은 곧 네 선생을 100% 믿어 주는 것이다. 이를 이룬 자만 천사장 나팔 불 때 진정 나의 재림을 맞이하리라. 육적 휴거를 이룬 자들은 부흥강사처럼 지금 각 처소에서 담대히 선생을 증거하며 선생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어떻게 하면 내가 주는 이 말씀을 더욱 잘 깨닫고 행할 수 있을지 연구, 또 연구하고 있노라. 그들에겐 근심, 걱정은 없다. 오직 믿음과 확신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직 세상 근심, 걱정에 사로 잡혀 “내가 선생 통해 준 말씀이 답이다.” 이야기해도 세상적 방법으로 행하고, 진정 나 성자와 선생을 찾지도 않다가 정말 힘들 때 물에 빠진 베드로처럼 그제야 “주여.”하는구나. 회복하여라. 거듭나라. 이것이 진정 한 차원 깊이 생각하고 한 차원 더 높이 행하는 것이니라. 사랑아. 어서 부흥강사처럼 나와 선생 앞에 회복하고 성령 받아 이 시대 왕 노릇하며 살아라. 1000년 역사 어린 양을 믿고 따른 자들이 진정 왕 노릇 한다 하였으니 이미 나 성자는 새로운 1000년 역사를 내 육과 함께 시작하였노라. 진정 너희에게 왕 노릇 하라 축복을 주었나니 진실로 세상을 담대히 이기며 살아라. 사랑한다. 너희 신랑 나 성자가 말하였느니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