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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2.06.21 (목)

계시말씀 44907715

선포일
2012.06.21 (목)
성경 본문
새벽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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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 예수님과 선생님 작성일 : 2012. 04. 12. (목) 새벽 1:00-3:00 작성자 : 주이랑 (성자 본체와 예수님의 영에 대한 인봉의 말씀이 선 포되면서 말씀 들을 때마다 성자 본체가 느껴져 긴 장되어 온몸이 굳고 마음에 큰 감동과 깨달음이 왔 습니다. 처음 천국성령운동을 통해 예수님의 영이 존재하고 있다는 말씀을 들을 때 “역사는 짝이다, 내 앞에 두 감람나무다.”하시는 큰 음성을 들었고, 주일말씀을 들을 때는 제게 말씀 주시는 이가 성자 본체인 것을 영으로 깨달으면서 감히 성자 본체와 선생님을 부르 고, 단상에서 외치는 그 모든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그리고 수요말씀을 들을 때 환상을 보았는데, 작은 언덕이 있는데 에덴동산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 었고 그 위에 아담과 하와가 서 있었는데, 성자가 말 씀하시길“아담은 생명의 역사요, 하와는 사랑의 역사 다.”하셨고, 두 번째는 정자와 난자가 보였는데“정자 는 생명의 역사요, 난자는 사랑의 역사다.”하셨고, 세 번째는 보자마자‘성자시구나.’알 수 있는 분이 보좌에 앉아 계셨는데 그 모습이 너무 커서 얼굴은 보이지 않고 앉아 계신 두 다리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앞 에 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는데 “예수와 선생은 내 앞에 두 감람나무다. 예수의 나무에 선생이 접붙임 한 것이 아니요, 이 둘은 각자의 뜻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나 하나의 뜻을 완성시키는 사명자요, 이 둘은 각 시대의 문이요, 구원이요, 생명이요, 사랑이요, 각 시대의 모든 자가 접붙여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얻 을 내가 함께하는 사명자다.”하셨습니다. 그날 예배 후 돌아와 기도를 하던 중 받은 말씀입니 다.) * 성자 주님 말씀 * 역사는 짝이다. 짝으로 뜻이 이루어진다. 하늘과 땅, 시작과 완성, 아담과 하와,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절대성과 상대성, 초림과 재림, 예수와 선생. 역사의 시작은 하늘 편이다. 하늘의 강권적인 역사로부터 모든 역사는 시작된다. 창조도 인간의 뜻에 의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뜻에 의해 강권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완성은 땅의 편이다. 아무리 하늘의 책임분담을 다하였다 해도 땅의 책임분담이 없으면 ‘뜻’은 완성되지 않는다. 고로 마지막 재림의 때, 내 너희에게 간구하는 바가 인간 사랑의 책임분담이 아니더냐. 에덴동산을 보아라. 내가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세웠나니, 이 둘은 아담과 하와를 상징하며, 확대시켜 예수와 선생을 상징한다. [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 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아담의 탄생을 보아라. 그는 자신의 조건으로 첫 인간 곧 ‘생 영’이 된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뜻으로 창조되어 여호와께서 직접 그 안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 영’이 된 하늘 책임분담으로 탄생한 중심자였다.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 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 영이 되니 라] 아담 이전의 인간들은 ‘영’의 원천은 있었으나 하나님의 생기를 받지 못해 ‘생 영’이 되지 못한 고로 그 영은 기능을 하지 못하였고, 그들에게는 죽음 이후 영혼의 생사가 없었다. 아담은 여호와께서 인류의 성장을 보시고 때가 되사 탄생부터 직접 주관하시며 그 안에 생기를 불어넣어 ‘산 영’이 되게 하사 구원역사 시작에 합당하게 창조한 것이다. 이는 시작이기에 강권적인 역사였다. 시작은 늘 하늘 편이다. 아담을 세우시고 여호와께서는 아담을 잠들게 하사 그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다 하였다. 이는 땅의 사람들 중 합당한 자를 택하여 아담의 신부요, 여호와의 사랑의 상대체로 데려왔음 을 비유로 설명한 것이다. [창 2:21~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 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 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 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 라] 즉 아담은 그 창조부터 마치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의 육신과 같이 뜻에 의해 창조되어 뜻으로 생 영이 되었다면, 하와는 인간의 탄생과 동일한 법칙으로 남자와 여자 사이에 탄생한 자 중 합당한 자를 택하여 데려왔다 함이다. 그러나 하와의 탄생이 인간의 탄생 법칙에 따랐다 하나 처음부터 강권적인 뜻에 의한 탄생이었던 것처럼 선생의 탄생 역시 마찬가지다. 선생은 인간의 법칙에 의해 탄생되었으나 그의 탄생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에 의한 탄생이었 다. 시대의 때도 보았고, 민족의 조건도 보았고, 가문과 가정의 조건도 모두 고려하여 그 탄생부터 절대적인 하나님의 뜻에 의한 역사였음을 알아야 한다. 아담이 ‘생 영’이 된 고로 온 인류는 ‘생 영’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즉 인류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후 세계의 판결이 시작된 것이다. 아담으로 인해 시작된 ‘생 영’의 역사는 곧 인간과 여호와의 교통이 시작되었으며, 말씀의 법으로 인해 선과 악이 분리되었음을 말한다. 인간 중에 택한 바 된 하와는 아담을 절대 믿고 사랑하는 조건과 확대시켜 여호와 하나님을 절대 믿고 사랑하는 조건으로 영계와 육계 에덴동산 역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즉 땅의 조건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 참여한 첫 인간이 된 것이다. 그녀는 아담의 상대체요, 확대시켜 여호와 하나님 사랑의 상대체를 대표하기 에 완벽한 사랑의 조건을 세워 사랑의 뜻을 완성해야 했다. 즉 아담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며, 하와로 말미암아 인류는 하늘과의 사랑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즉 아담은 생명의 역사요, 하와는 사랑의 역사다. 예수와 선생 또한 동일하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인류의 타락이 되었다. 루시엘의 타락은 육계 가운데 악이 침범하는 조건이 되었으며, 하와의 영적 타락은 에덴동산에 악이 침범하는 조건이 되었으며, 하와의 육적 타락은 인간의 육신 가운데 악이 침범하는 조건이 되었으며, 아담과 하와의 육적 타락은 아담 안에 모든 자를 죽게 만든 결과가 되었다. 그로 인해 먼저 ‘살리는 역사’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예수의 역사, 곧 초림이다. 인간의 육신이라는 터전이 악이 침범하는 터전이 되었으니 먼저 그 죄의 씨앗, 악의 씨앗을 끊어 내야 했다. 왜겠느냐? 육은 영이 자라는 자궁이다. 썩은 땅에 심은 나무에서는 썩은 열매밖에 거둘 수 없듯, 타락한 인간의 육신 가운데서는 여호와가 바라시는 수준 이하의 영혼밖에 길러 내지 못했다. 고로 아담 때와 같이, 영의 원천은 있으니 ‘생 영’이 아닌 고로 여호와께서 직접 생기를 불어넣어 생 영을 만들었듯, 죄와 악이 없는 성결한 메시야 육신을 만들고 그 안에서 ‘메시야 영’을 만들어 나 성자 본체가 쓰기에 합당한 영육을 강권적으로 창조한 것이다. 이는 아담을 악이 침범하지 못하는 깨끗하고 성결한 에덴동산에 불러 길러냈던 것과 같 이, 예수의 영을 산 영이자 그를 믿고 따르는 모든 인류를 아듭급으로 끌어올릴 메시야급 영육으로 온전히 성장시키기 위해 예수의 육을 에덴동산과 같이 깨끗하고 성결하게 탄생시킨 것이다. 고로 다른 말로 예수의 육은 에덴동산이요, 그 영은 생명나무가 되어 그를 믿는 모든 자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린바 된 것.’이다. [고전 15: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 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 니] 고로 초림역사는 아담 안에서 죽어 종 된 인류 가운데 생명나무 예수를 세워 생명으로 건진 바 된 역사였다. 예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를 믿고 사랑하고 그 보내신 여호와를 믿고 사랑하는 자는 종에서 나와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진 바 되는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 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리고 예수 주관권 안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바 되고 온전한 자녀로 부활한 자들 중에 마치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 하와를 탄생시키듯 예수의 주관권 안에 있는 자 중에 뜻으로 하와를 낳아 길러 신부 삼았나니 바로 ‘선생’이다. 선생은 인간의 탄생 법칙으로 탄생한 인류의 하와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요, 사랑 역사의 시작이요, 재림 구원역사다. 그는 예수 안에서 자녀로 부활된 자들 중에서 그 탄생부터 뜻으로 정한 바 되어 뜻으로 길러낸 자요, 예수와 나 성자 본체를 향한 믿음과 사랑의 조건과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의 조건으로 신부로서 완벽한 조건을 세워 에덴동산의 선실과가 되어 온전한 ‘사랑의 역사’를 인류 가운데 시작한 자다. 시작은 생명의 역사요, 완성은 사랑의 역사다. (그렇다면 만약 초림시대 예수님이 억울하게 십자가 에 돌아가시지 않았다 해도, 예수님을 통해서는‘신부 급 구원’까지 예정되어 있던 것이 아닌가요?] 초림 곧 예수 통한 뜻의 종착점은 ‘신부의 역사’직전까지였다. 즉 예수 통해 비로소 제대로 된 생명을 낳게 되었으 니 그 생명을 잘 길러서 혼인잔치 직전, 곧 신부 교육 직전까지 온 인류를 길러 내는 것이 바로 예수의 역사였다. 그러나 땅이 그를 핍박한 고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여, 안타깝게 ‘살리는 역사’밖에 진행하지 못하였다. (그럼 초림 때부터 인류 가운데 선생님의 출현은 예 정되어 있던 것인가요?) 예정되어 있었다. 성서에 기록된 성자 앞에 두 감람나무가 바로 예수와 선생 아니더냐. 구약 성서에도 이미 내가 기록해 놓았으니 너는 찾아보아라. (주님 말씀대로 성서를 찾아 보니 스가랴 4장에 기 록되어 있었습니다.) [슥 4:11~14 11. 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 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12.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 이까 하니 13.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 지 알지 못하느냐 하는지라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14.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 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성서에 기록된 나 성자 앞에 두 감람나무, 곧 기름 부음을 받은자는 예수와 선생 이다. 예수와 접붙인 자는 생 영이 되고, 선생과 접붙인 자는 사랑의 신부가 된다. 예수는 시작이요, 선생은 완성이다. 이 둘은 분명 각각이나 하나요, 하나이나 각각이다. 그들은 각 시대의 ‘왕’이요, ‘사명자’요, ‘나의 몸’이요, 오직 나 성자 본체로 말미암은 모든 인류가 접붙여야 할 두 감람나무라. 고로 예수와 선생은 각각의 문이나, 나 성자 안에서 하나라. [계 11: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 나무와 두 촛대니] (주님, 예수님은 왜 낙원에 가셨나요? 그 영이 완전 한 성장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인가요?) 그렇지 않다. 예수의 영은 하늘의 강권적인 역사와 그의 조건으로 말미암아 메시야급으로 성장했다. 같은 인간이라 하여도 ‘메시야급 영’은 다른 존재체다. 선생 또한 너희와 같은 인간이요, 같은 신부라 말하나 실상 그 영은 너희와 달라. 영계에서는 신부 영들 위에 존재하는 자다. 신약시대라는 생명을 낳았으나 땅의 책임분담을 다하지 못함으로 안타깝게 여호와께서 뜻하신 차원밖에 길러내지 못하였으니 ‘낙원’이 탄생하게 되었다. 고로 예수 안에서 죽은 자는 사망에 삼킨 바 되지 않으며 생명권 곧 ‘낙원급 천국’에 거하게 되나니, 예수는 미리 낙원에 가서 신약 제자들과 믿는 자들을 위해 거할 처소를 예비하러 간 것이다.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 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 니라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 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 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그러나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신 것은 낙 원이 아니라 천국까지 예정해 놓으신 것이 아닌가 요?) 맞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최정상의 ‘천국’, 곧 완전히 부활에 부활, 곧 2차 부활까지 완성한 신부급 영들이 거할 수 있는 그 천국이 아니요, 천국 주관권 안에서의 한 부분이다. (주님, 40일 부활 생애 때 도마에게 손에 못 자국을 보여 준 이가 예수님 영이라고 들었는데, 그럼 예수 님 영은 손과 옆구리에 못자국과 찔린 자국을 지금 도 가지고 계신 건가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영이 보여 줄 수 있는 ‘상징’은 육신의 삶이라는 바탕 안에서만 가능하다. 즉, 인간이 죽으면 인간으로서의 모든 삶은 ‘혼체’를 통해 ‘영’에 붙는다 하였다. 고로 영은 육의 인생 전체를 담고 있다. 그래서 육의 인생 안에서의 어떤 모습, 어떤 사건, 어떤 형태로 변형 가능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나 성자가 ‘예수의 영’을 쓰고 40일 부활 생애를 이끈 것이다. 나 성자는 ‘예수의 혼체’를 받지 아니하였나니 예수의 모습으로 변형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날 수 없다. 고로 예수의 영을 쓰고 그 모습으로 나타날 뿐인 것이다. 내 사랑아. 선생 통한 부활을 완전히 깨닫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수라는 육신을 성령으로 잉태하사 ‘절대적인 육’의 터전을 회복하사 생영을 완성하시고, 그 터전 위에 선생을 택하시고 길러내어 첫 신부 삼아 온 인류 가운데‘절대적인 영’ 곧 ‘신부의 영’을 회복하신 것이다. 하와는 다른 말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다. ‘사랑은 하늘의 책임과 땅의 책임이 맞닿아야 완성된다.’ 하지 않았느냐. 땅의 책임이 절대적으로 선과 악을 좌우하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하와는 여호와의 뜻을 거슬러 결국 선악과가 되어 인류 타락의 근원이 되었으나, 선생은 여호와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이루어 결국 선실과가 되어 인류 가운데 사랑 역사의 시작이 된 것이다. 이 모든 부활을 깨달아라. 지금은 온 인류 가운데 처음으로 ‘신부의 영’이 존재하는 때다. 첫 열매는 선생이요, 다음은 선생에게 접붙인 섭리사 나의 신부들이다. 선생은 이미 승리했다. 이제 너희도 승리하여 완전한 신부 부활, 온전한 성약 부활 이루자. 사랑한다. - 너희를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