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2.06.25 (월)
계시말씀 e05a5548
- 선포일
- 2012.06.25 (월)
- 성경 본문
- 새벽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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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계시말씀_e05a5548.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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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마다 그에 합당한 자를 들어 쓴다
작성일 : 2012. 5. 14(월) 새벽 4:52
작성자 : 주희빈
(기도하는 가운데 주신 말씀입니다.)
*성자 주님의 말씀*
사랑하는 자야.
이 섭리에 많은 자들이
성자 본체인 나에 대해 알려 주어도
나에 대해 그리고 나의 육의 몸이 된 선생에 대해
깊이 깨닫지 못하고 가는 자들이 많다.
이 섭리는 하늘의 역사가 이어져 온 마지막 역사다.
그러니 과거 하늘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보
면
이 시대 너희가 사랑하고 믿고 따라가는
선생의 가치에 대해
더 정확히 알고 깨닫게 될 것이다.
구약은 수많은 중심인물들이
하나님의 몸이 되어 하늘의 뜻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들은 종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자들이었
다.
종 주관권 안에서 최고 구원을 이루고 산 자들이며
그들을 통해서는 종의 역사만 이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했겠느냐.
이 지상에서 이룰 역사가 종의 역사가 아니었기에
구약의 수많은 중심인물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간다 하여도
그것은 내 아버지의 근본 뜻이 아니었기에
그들을 통해 뜻을 이루어도
내 아버지의 심정의 한을 완벽히 해결해 줄 수 없었
다.
아픈 상처에 응급처치만 하는 수준이었다.
칼을 대고 수술을 할 자에게
임시방편으로 진통제만 투여하여
그 고통만 경감하게 하는 수준의 역사였음을 알아라.
그래서 내 아버지가 이 지상에 나 성자를 보내어
회복의 역사를 하고자 하였다.
아담 한 명으로 인해 무너진 하늘 역사를
수천 년의 시간을 거쳐
나 성자를 맞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으니
바로 이 땅에 성자의 몸이 된 예수의 출현인 것이다.
나사렛 예수는 구약의 인물들과는 출생부터가 달랐
다.
아담으로 인해 타락된 자들과는
아예 구분하여 그를 태어나게 함으로
만왕의 왕 성삼위의 한 존재인 성자의 몸이 되게 하
였다.
그가 태어난 것은
이 지상에 다시 한 번 뜻을 이루며 갈 수 있게 만든
희망을 가지게 하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이 지상에서 유일한 성삼위의 몸이 되어
하늘의 뜻을 이루게 된 것이다.
구약의 많은 인물들이 내 아버지의 몸이 되었지만
그들은 종의 수준에서 최고 왕 살아 먹은 자들이었
기에
아예 예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 땅에 하늘의 뜻을 이루려 내려온
나 성자의 몸이 되었다는 것은
곧 그 자신이 육신 쓴 성자가 되어
이 지상에서 뜻을 이룰 자였기에
그는 곧 살아 있는 신이 되어
회복의 역사를 이루며 갔다.
그를 봄이 나를 봄이요,
그를 인정함이 성자인 나를 인정하는 것이요
그를 믿어 주는 것이 곧 나를 믿어 주는 것이었다.
그를 통해 나를 깨닫고
그를 통해 나를 보내신 내 아버지를 깨닫는 것이
하늘의 뜻이었거늘 무지한 자들이
내 아버지가 보낸 나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 안에 역사하는 성삼위를 깨닫지 못하니
그의 말에 오히려 힐문하고
그를 자칭 메시아, 신성을 모독하는 자라 여기며
그를 통해 말하고 외치는 나를 몰랐던 것이다.
육신 쓴 성자의 모습을 모르니
어찌 나와 함께 갈 수 있었겠느냐.
그를 대하는 것이 곧 나를 그리 대하는 것인데
그 깊은 하늘의 비밀을 몰랐던 것이다.
나사렛 예수의 한마디가 왜 중요한지 아느냐?
그의 말이 곧 내 아버지의 말이며
곧 나 성자의 말인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 세상을 창조할 때 무엇으로 만들었다 하더냐.
바로 말씀이 아니더냐.
내 아버지의 말과 내 말 속에는
창조의 힘이 있고 능력과 권세의 말씀이기에
그 말대로 모든 것이 되고 이루어지기에
참으로 위대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아버지의 말과
나의 말을 대언하는 나사렛 예수의 한마디가
얼마나 귀하고 능력 있는 말이었더냐.
그러나 무지한 자들은 그것을 진정 몰랐던 것이다.
성경을 자세히 보아라.
나사렛 예수의 말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더냐.
그의 말이 공중에 흩어지는 것을 보았더냐.
땅에 씨를 뿌리면
반드시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듯
예수의 말이 그리했음을 알 것이다.
그러니 나사렛 예수가 위대하다는 것이다.
성삼위가 인정하고 성자인 내 몸이 될 자에게
그만한 위력도 주지 않고 그만한 능력을 주지 않고
그를 내 몸으로 삼겠느냐.
내가 그를 통해 모든 능력을 부렸기에
그를 보며 “그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이 같은 능력을 부리는가.” 하며
고백하던 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구약의 많은 자들이 능력을 부린 것도
내 아버지가 그들을 통해 능력을 보여 주신 것이며
성자의 몸인 나사렛 예수가 능력을 보임도
곧 내가 그를 통해 한 것임을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그들이 한 인간의 몸으로만 끝났다면
어찌 그 같은 능력을 부릴 수 있었겠느냐.
죽은 자를 살리고 물이 피가 되게 하고
홍해를 가르는 그런 일을 할 수도 없었지.
내 아버지가 그들을 쓰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기에
그리 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종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자였음을
다시 인식하여라.
나사렛 예수는 종에서 벗어난 첫 번째 열매가 되고
아들의 첫 열매가 되어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은
누구나 다 아들이 되어 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의 몸이었던 나사렛 예수만이
종에서 아들로 시대급의 구원을 시켜
사망이 지배하던 자들을
생명으로 나오게 할 수 있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내 아버지의 궁극적인 뜻이 아니었다.
너희가 반드시 깨닫고 가야 할 것이
왜 내 아버지가 이 지구와 너희 인간을 만들었는지
그 창조목적을 반드시 깨닫고 가야 한다.
이 지상에서 신부 만들어
너희를 영원한 사랑의 세계로 데려가고자 하여
지구와 너희 육신을 만든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에 이 지상에서
신부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원 뜻인 것이다.
이 사랑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무구한 세월을 거쳐 아담을 만들었건만
그로 말미암아 기쁨이 슬픔이 되고
희망이 절망으로 되었으니
내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겠느냐.
내 아버지의 그 마음을 누가 위로하며
누가 풀어 줄 수 있었겠느냐.
눈물로 기나긴 세월을 보내신 내 아버지의 그 슬픔
을
누가 알고 같이 울어 줄 수 있었겠느냐.
이 지상에서 그 아무도
내 아버지의 근본 슬픔을 깨닫지 못하였다.
구약의 많은 중심인물들이 있었어도
그 슬픔의 한을 깨닫고 위로해 주지는 못하였다.
2천 년 전 나 성자의 몸이었던 나사렛 예수도
그 슬픔에는 같이 동참할 수 없었다.
내 아버지의 그 사랑의 한을
진정 깨닫고 위로하는 자 있었으니
그가 바로 이 시대 내 몸이 된 선생이라는 것이다.
선생이 왜 귀한 줄 아느냐.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한 창조목적을 이룬 자이기에
귀하고 귀한 자인 것이다.
하늘의 깊은 인봉의 뜻인 사랑을 깨달았기에
그가 마지막 역사의 주인공이 되어 갈 수 있었다.
마지막 역사이기에
얼마나 심사숙고 하며 뽑았는지 아느냐.
이때는 사랑을 회복해야 될 역사이기에
아무나 내 몸이 되어 갈 수도 없고
그 근본 마음이 온통 성삼위를 향한 사랑으로
꽉 있지 않으면 뽑힐 수도 없었다.
그러기에 선생 한 명 만들어 쓰기까지
온갖 고통과 역경을 주어 그곳에서도 나를 찾는지,
그곳에서도 내 말에 순종하는지 늘 지켜보았고
그의 근본 마음을 늘 체크하며
진정 내 몸이 되어 살 자인지,
진정 내 몸이 되어 하늘의 뜻을 이룰 자인지
날마다 살펴 본 것을 알아야 한다.
릴레이 경주할 때도
마지막 주자로 가장 빠른 자를 세우지 않느냐.
마지막에 모든 것을 걸고 전력 질주하지 않느냐.
이처럼 내 아버지도, 나도 마지막 하늘의 역사이기에
구약 신약을 통틀어 가장 큰 조건을 세우게 하여
그 조건을 통과한 자를
내 몸으로 세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생은 단순히 내 몸으로 끝날 자가 아니다.
내 몸이기 이전에 절대적인 사랑의 조건을 세운
이 지상의 첫 열매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무엇이든지 처음에 하는 자가 제일 어렵다.
아무도 해 본 자가 없기에 홀로 길을 내어가며 하기
에
선구자로 가는 자들은 항상 어렵기 마련이다.
그런데 선생은 6천 년 동안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느냐.
수풀이 우거지고 인적이 없는 길이니 그 길을 가면
서도
‘이곳이 정녕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인가?’ 하며
얼마나 불안해하며 갔겠느냐.
길을 만들어서 가야 했기에
그 부담감은 실로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은 끝까지 포기치 않고
외롭고 쓸쓸하고 인적 드문 그 길을 통과하여
성삼위를 만나게 되었으니
선생이 간 그 길이 성약의 길이 되었고
시대 문이 되어 수많은 자들이
선생 간 그 길로 신부 되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 시대를 깨달아라.
선생이 목숨 걸고 성삼위를 향해 걸어갔던 그 길이
바로 신부가 되는 길이다.
선생이 갔던 그 길이 곧 성약의 길이 되어
천 년 동안 수많은 자들이 함께 걸어갈 것이다.
나사렛 예수는 만들어진 길을 간 자라면
선생은 길을 만들며 간 자이기에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겠느냐.
선생의 몸부림으로 길을 만들었으니
그 조건으로 너희가
최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아라.
시대마다 합당한 자를 쓸 수밖에 없다.
구약은 구약 나름대로
그 안에서 가장 뜻있는 자를 들어 썼고
신약은 아들 급이었기에
아예 처음부터 아들이 되게 만들어
그를 통해 역사하였고,
마지막 성약의 역사는
모든 역사를 회복하여 완성해야 될 때이기에
아예 처음부터 신부될 자를 찾아
누가 먼저 절대적인 사랑의 기준, 조건을 세우느냐.
그것을 보고 그를 뽑아 썼음을 알아야 한다.
시대가 바뀌었다.
마지막 릴레이 주자가 출발하여 뛰고 있는 때이다.
때를 알아라.
하늘의 모든 자들이 마지막 주자가 달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 너희도 진정 그와 하나 되어
뜻을 이루어 주길 원하노라.
사랑하기에 심정 다해 외친 성자로다.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