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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집회 말씀2012.07.06 (금)

강원 천국성령운동 성자 역사 시대 마지막 기회다

선포일
2012.07.06 (금)
성경 본문
누가복음 12장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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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706 강원 천국성령운동 성자 역사 시대 마지막 기회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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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6일 강원지역회 천국성령운동 말씀> 2012 Gang-won Heaven Holyspirit Movement Words 장소: 춘천 한림대 시간: pm 7:30 - pm 10:48 강원 지역회 특송: 기도하라(Pray) 나는 행복하다(I am Happy) 주님의 교회 특송: 섭리이슬(Providence Dew) 할렐루야. 네. 성령의 뜨거운 밤입니다. 네. 성령의 뜨거운 밤, 대한민국 강원도입니다. 네. 사실 우리 강원도는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과 많이 멀지 않는데요. 굉장히 첩첩산중으로 월명동보다 더 산중으로 사람들이 인식을 하고 있죠? 네. 이 강원도 지역에는 춘천, 강릉, 고성, 속초, 태백, 화천, 홍천, 인제, 동 해, 삼척, 원주, 11개의 지역이 우리 강원도 지역회로 섭리사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똑같이 11개의 지역 그리고 11개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는 기드온들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네. 강원도 지역회인데 오늘 강원도 지역에 계신 여러분들은 강원도 우리 지역으로 오는 것보다 꽤 먼 곳으로 가는 것처럼 어떤 곳은 거의 4시간 가까이 달려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더 가까 이 1시간 반 만에 이곳에 도착을 했구요. 우리 강원도에 대부분의 많은 지역 여기는 춘천인데요. 강원도 에 대부분의 많은 지역에 계신 분들이 두 시간, 혹은 세 시간, 네 시간 거의 다 그런 거리를 걸려서 이 곳 춘천에 와 계십니다. 오늘 춘천인데요. 춘천은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살고 싶은 도시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저도 몰랐는데요. 이렇게 오다보니까 차도 안 막혀요. 금요일 밤인데 처음이예요. 차도 안 막히고, 녹지가 많이 있구요.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살기 좋은 도시 춘천이라고 하는데, 주님 이 살기 좋은 그런 도시, 살기 좋은 지역, 그런 강원지역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성령집회 뜨 겁게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우리 강원도도 꽤 역사가 깊습니다. 우리 강원도가 언제 시작했죠? 83년도에 시작한 강원도 역사, 잘 되어야 될텐데 말이죠. 오늘 여러분들 더욱 더 뜨겁게 성령을 받으시고, 정말 주님이 발길하시고 눈 길하시기 좋은 그런 지역으로 만드시기를 진실로 바라겠습니다. 강원지역은 거리가 머니까 순회집회를 준비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사실 교역자들이 모임을 하려면 2-3시간을 달려야 하니까 쉽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사실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꾸준하게 역시 우리의 생각이 아닌, 주님의 생각으로 합하여서 오늘 이 순회를 정성스럽게 준비를 했습니다. 그 수고에 대한 상당한 보응은 오늘 뜨거운 성령으로 받 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전 세계 각 교회에서 성령집회에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 현장을 능가하는 아주 뜨거운 성령이 임하리라 믿습니다. 각각 우리의 마음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또 우리가 있는 각각의 현장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오늘 한 번 뜨겁게 지펴봅시다. 오늘도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밝혀 줄 것이고, 우리의 아둔한 생각을 지혜롭게 해줄 것이며 온전한 것을 바라보지 못 했다면 온전한 것을 바라보게 해주고, 해이해진 정신을 다시 한 번 완전하게 굳건하게 바로 잡아 주시리라 믿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0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 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 하 느니라.” 이처럼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면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말로 인자를 거역했으 며, 또 그 마음으로 인자를 거역했으나 성령을 딱 부어 주시니까 인자를 거역할 수 없는 역사가 일어납 니다. 그 마음이 풀어지고, 그 마음이 온전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만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적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역사들을 밝히 보여 주시면서 옳은 것 을 듣고, 옳은 것을 보고, 옳은 것을 판단하는 역사가 바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시작된다는 것입니 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와 그 시대 악한 자들의 죄로 인해서 십자가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3일 만 에 영으로 부활하셨죠. 부활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영으로 성자와 함께 이 제자들에게 40일 동안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성자께서는 그 영을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성령을 받아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영이 부활되면서 부활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동시에 성령의 역 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부터 아무리 환란과 핍박이 있어도 이 부활의 역사를 막을 수가 없 었고, 이 성령의 불같은 역사를 막을 수가 없었고, 인자를 거역하고 거부할 수 없는 역사가 불같이 일어 났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동일합니다. 이 시대에 보낸 자는 성자와 함께 시대 십자가를 지어 주셨죠. 우리를 버 려 두지 않으시고, 성령의 역사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 주고 계시죠. 아 무리 환란과 핍박이 있더라도 이 거역할 수 없는 성령의 역사로 인해서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 운 역사, 새 역사가 더욱더 본격적으로 찬란하게 일어날 줄 믿습니다. 아멘? 아멘. 오늘 말씀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또 주님께서 어떤 놀라운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지펴 주시고, 또 태워 주 실지 기대가 됩니다. 자, 여러분 마음 준비 되셨습니까? 성령받을 준비가 되셨습니까? 성령을 간절하게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여러분들에게 전해 드릴 성경구 절을 한 번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절로 9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 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하시 고 돌아가시고 영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 역사를 그 당시에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또한 알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 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 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 하지 못 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 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 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예수 그리스 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아멘.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할 말씀입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그 날이 어느 한 날에 ‘짜자잔’ 하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 가운데 은밀하게 진행되다가 그 날이 홀연하 게 올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미 역사가 진행될 때는 고요하게 진행이 되다가 역사가 끝났을 때는 그 때서야 요란한 소리가 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들었죠? 비행기 소리가 났을 때는 이 미 비행기 소리가 이미 이륙한 후입니다. 소리는 항상 나중에 나죠.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시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정신을 차려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시 간에도 정신을 바짝 차려서 깨어 있어야 되겠습니다. 잠을 자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바로 생각의 잠, 마 음의 잠, 육신의 잠도 자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습니까? 자, 우리는 마지막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 그 중에서도 마지막 기회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 다.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죠. 다시 한 번 이해하기 쉽게 그림으로 설명해 드릴께요. 인류가 창 조되었죠. 그리고 성장되었습니다. 왜 성장되었습니까? 바로 구원역사를 시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첫 번째 구약역사가 시작되었죠. 구약 4천년이 끝나고 어떤 역사가 왔습니까? 어김없이. 이것은 저의 말이 아니라 성경역사입니다. 어김없이 신약역사가 찾아왔습니다. 신약 2천년이 끝나니 어김없이 바로 성약이 왔습니다. 성약은 어떤 역사이죠? 신약의 약속을 이루는 역사입니다. 구약의 약속과 예언을 이루는 역사 는 신약이었고, 신약의 예언과 약속을 이루는 역사는 바로 성약입니다. 이 때는 바로 주님이 다시 오시 는 때로서 성자가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이죠. 이미 역사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맞습니까? 그런데 이 때 바로 이 때는 바로 마지막 때입니다. 마지막 때. 이제 인류 창조 후에 구약, 신약, 성약 후에는 없어요. 마지막 근본의 창조목적을 이루는 마지막 때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목적이 있죠. 우리 육신과 영혼을 동시에 창조하셨습니다. 육을 통해서 영을 창조하 셨어요. 왜 창조했습니까? 육신도 세상에 살면서 사랑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모시고 살고, 영도 그와 같 이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사랑의 대상으로 모시고, 영원히 천국에 가게 살게 하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 다. 우리는 이 목적을 배우고 알았습니다. 여러분, 그 목적에 대해서 확실하게 깨닫고 있습니까? 이렇게 시작한 창조목적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구원역사를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깨졌죠. 타락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 함으로 다시 신약에서 아들급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근본 의 창조목적이 아닌 아들급의 창조목적이었습니다. 맞습니까? 이제 성자가 다시 오셔서 근본 아들급에서 한 차원 높인 근본의 역사, 신부급 창조목적을 이루시는 때 가 바로 이 때입니다. 마지막 때, 이 마지막 때 중에서도 성약의 한 때 두 때 반 때의 무덤기간이 있었 습니다. 3년 6개월이 4번 지나는 때, 14년이 되는 때, 바로 이 때 바로 2012년입니다. 이 말씀 다 배웠 죠? 배웠으니까 넘어갑니다. 2012년 이 때가 끝나는 시점 그래서 마지막 기회의 때입니다. 맞습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 강원도 천국성령운동 주제도 “성자역사시대. 마지막 기회다.” 맞습니까? 딱 맞습니까? 성자 역사시대에 마지막 기회입니다. 너무 멋있는 주제입니다. 네. 자, 이제 마지막 때는 재림의 때, 성자의 재림의 때입니다. 그 중에서도 육신을 쓰고 재림하는 때를 지나서 그 영이 본체로 재림하셔서 준비된 영들을 휴거시키는 영적휴거가 일어나는 그런 마지막 때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2012년 안에 영적재림이 일어난다는 게 아니구요. 이미 진행되는 역사 속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신부로 완전하게 단장하며, 이 구시대를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때라는 것입니다. 이 때는 다른 이들처럼 잠을 자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오늘 말씀인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절로 9절 말씀처럼, 다른 이들은 알지 못 하니까 해산의 고통이 어떻게 와요? 우리 어머니들 해산의 고통 다 겪어 보셨죠. 갑자기 “해산의 고통은 내일 오후 5시쯤 올 거야.” 이러지 않아요. 만삭이 되면 그 때부터예요. 8개월 때부터는 조심해야 되요. 비행기도 타면 안 되구요. 언제 해산의 고통이 와 서 그 때부터는 아이를 낳을 줄 알 수 없어요. 그 때부터는 우리 산모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은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의 그 심판의 날을 결코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잠을 자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너희는 밤에 속한 자가 아니라, 낮에 속한 자들이니 너희에게는 그 날이 닥치지 않는다.” 했습니다. “고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구원의 소망으로 투구를 쓰고 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 이 마지막 기회의 때, 우리가 해야 될 일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에 대해서 1편으로 말씀 드리구요. 2편으로는 다음 주에 말씀을 할 건데, 2편에서 창조목적의 말씀을 할지 정신에 대한 말씀을 할지는 주님이 알아서 하실 겁니다. 때에 대해서는 배워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먼저는 때를 배워야 합니다. 때가 어느 때인지 알아야만 때에 맞는 행실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에 맞게 행함으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때는 마지막 때, 여러분 역사적으로 마지막 때가 맞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마지막 때가 맞습니 까? 성경의 역사적으로 쭉 봤을 때 지금이 마지막 때인 것은 확실하죠. 그리고 우리가 섭리역사 가운데 와서 때에 대한 말씀을 배우고, 이 마지막 한 때 두 때 반 때에 대해서 정확하게 밝히면서 우리는 때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중요해요. 왜요? 정말 정신을 차려야 되거든요. 시대에 보낸 자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져주기 전도 아니고, 지금 무덤 속에서 한참 있는 때도 아니 고, 육적으로 부활되는 때도 아니고, 지금은 정신과 마음이 살아나 이제는 영을 완전히 부활시킬 마지막 때 이제는 정말 영적인시대가 왔기 때문에 우리의 육신이 영을 위해 살아줘야 할 때입니다. 왜냐? 영의 그 날이 영적재림의 날이 점점 다가오면 성자의 영재림의 날이 다가온다는 것은 우리의 영을 데리고 간 다는 소리입니다. 육신이 아닌 준비된 영을 데리고 간다는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준비된 영이 아니면 성자 본체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이 정신체는 보이지 않아 요. 그러나 정확하게 존재하면서 여러분의 육체와 영체를 이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정신을 바짝 차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여러분, 라디오 주파수를 알죠? 보다 강하게 이끄는 주 파수에 소리가 맞추어지지 않습니까? 그 소리가 들리잖아요. 그렇죠? 보다 강한 주파수가 강한 쪽으로 그 소리가 맞추어지게 되어 있어요. 우리의 정신이 이와 똑같아서 아무리 다른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 다고 해도 여러분의 정신이 주님을 향한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여러분은 모든 잡음들을 다 흡수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과 통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정신, 마음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거예요. 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은 역사하시고, 이번 마지막 기회의 때 성령을 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기 위해서 오늘 이 자리에 오시고 직접 역사하고 계십니다. 누굴 데리구요? 보낸 자의 영을 데리고 함께 오셨습니다. 믿습니까? 그리고 정신을 바짝 차려서 우리의 육과 영의 매개체 역할을 확실하게 해줘야 되겠습니다. 때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때. 지금은 구약 때도 아니고, 초림 신약 때도 아닙니다. 성자가 재림하시는 재림 성약 때, 이것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습니다. 신약의 예언을 이루고, 약속을 이루는 때 고로 이 시 대를 알고 따라야 됩니다. 바로 이 시대를 알고 따라야 합니다. 아무리 구시대에서 날고 기어도요. 날고 기고 구시대에서 날라면 날고 기라면 기고 그냥 하늘과 땅을 오고 가면서 정말 나는 인생들이 있어요. 구시대에서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 새시대로 오지 못하면, 때에 맞는 축복을 받을 수 없고 구시대 무덤 속에 갇히게 됩니다. 노아 때는 절대적으로 노아의 말을 듣고 따라야 했습니다. 여러분, 그냥 듣지 마시 고 정말 성경의 역사가 그러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노아의 때는 노아의 말을 절대 듣고 따랐어야 구원을 받았습니다. 노아 때 노아의 말을 듣지 않고 방 주 안에 타지 않는 자들은 다 멸망을 당했어요. 맞습니까? 요셉 때는 절대 요셉을 따랐어야 했습니다. 모세 때는 절대적으로 모세의 말을 따르고, 모세의 말을 듣고 그를 따랐어야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호수 아 때는 여호수아, 삼손 때는 삼손, 기드온 때는 기드온, 엘리야 때는 엘리야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 왜 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기준을 딱 한 사람만 세우십니다. 기준은 하나, 그에게 역사하시고 그에 게 말씀하셔서 그 말씀을 모든 자들에게 전하게 하십니다. 맞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엘리야 시대이면 엘리사의 말을 들으면 안 되고, 엘리야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엘리야의 시대가 왔으면 옛 역사 속에 묻 혀 있으면 안 됩니다. 이제 구약이 지나고 신약이 오면, 절대 나사렛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 듣고 따라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새롭게 역사를 시작할 때마다 항상 그 시대에 가장 합당한 사람을 쓰고 역 사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었기 때문에 섭리사로 온 것입니다. 이렇게 행하지 않은 역사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맞습니까? 제 말이 맞습니까? 단 한 번도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역사하시지 않고, 그 시대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 것이 맞습니까? 고로 새로운 시대를 따 르려면 그 시대 보낸 자를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 했기 때문에 역사가 깨진 것입니다. 자, 모 세의 율법 속에 있는 자들은 율법 속에서 날고 기면서 살았습니다. 바로 유대제사장들이죠. 새 시대 새 역사인 이 신약역사가 시작되어서 시대의 보낸 자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 출현하셨다면 그 때부터는 날 고 기었어도 예수님을 따라야 했습니다. 아무리 아는 지식이 많고, 아무리 율법 속에서 날고 기며 살았 어도 예수님을 따라야 했어요. 그래야 구시대 무덤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신약말씀 속에서 날고 기며 사는 자들이라도 새 역사 새 시대가 와 서 새 사람이 출현했다면 그를 따라야 됩니다. 믿습니까? 보낸 자, 시대의 문은 단 하나입니다. 그를 통 해 들어가야 해요. 신약에서 날고 기었어요. 신약에서 엄청 유명해요. 진짜 장난이 아니예요. 백만 군중 을 가지고 있어요. 백만 군중을 가지고 있더라도, 보낸 자가 그래도 10명 밖에 안 따르더라도 시대의 보낸 자를 따라야 합니다. 오늘 이 중심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해 드릴 것입니다. 한 가지만 먼 저 말씀을 드리자면 하나님은 중심에 맞추어서 모든 역사를 진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새 시대에 보낸 자를 따라야 구시대의 무덤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아무리 날고 기어도 구시대의 무덤에서 날고 기어봤자, 새 시대의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근본은 시대의 보낸 자를 드러내려 함이 아닙 니다. 누구를 드러냅니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예수님, 근본은 삼위일체를 드러 내고자 함입니다. 왜? 그 보낸 자를 통해서 주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어야지만 그 역사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알지 못 한다면 그 시대에 하나님의 역사는 성공적으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절대 그러합니다. 성경역사를 보니 맞습니까? 절대 나사렛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는 하나님이 역사는 성공할 수 없었어요. 맞습니까? 고로 시대 보낸 자에 대해서 중심에 대해서 말함은 바로 그것을 알아야,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알아야,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성공적으로 완전하 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알기 때문입니다. 고로 보낸 자를 거역하면 삼위일체를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래 서 이 말씀을 하는 겁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예수님을 불신했습니다. 그 이유는 나사렛 예수님과 하나님 을 쪼개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신과 인간을 쪼개지 못 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선조들은 다 믿고 따랐습니다. 여러분, 유대 종교인들은 4천년 동안 하나님이 보낸 사 람을 다 믿고 따랐어요. 모세를 믿고 따랐어요. 그 율법을 지키며 살았어요. 그런데 단 한사람만 안 믿 었어요. 단 한 사람. 다 믿어놓고서. 단 한 사람을 믿지 않았어요. 그가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었어요. 그 가 바로 땅의 메시야였다는 말입니다. 다 믿고 따랐는데, 어떻게 단 한 사람 딱 한 사람 가장 믿어야 할 그를 믿지 않았는가? 왜? 하나님이 직접 눈에 보이게 올 줄 알았기 때문에. 그런데 요즘에 유대 종교인 들 보십시오. 유명한 랍비 그들 중에서 또 유명하면 그 유명한 그가 메시야 아닌가 합니다. 너무나 안타 깝고 분통이 터지는 것은 그런 것은 인정하면서 아직까지도 예수님을 인정을 안 한다는 말이예요. 여러 분, 이 시대도 시간이 가다보면 똑같이 그렇게 됩니다. 똑같이. 영적재림을 하시는데 분명히 영적재림이 다. 때가 되었으니까. 안 오시는 것을 보니까. 그런데 딱 한 사람만 제외하고 있습니다. 꼭 그렇습니다. 믿어야 될 사람을. “우리 목사님이 말씀을 잘 전하시니까 주님이 오셨다. 따라가자.” 이렇게 하는 역사가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영과 육을 쪼개서 보지 못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못 했어요. 그리고 그 마음이 아둔하고 완악했어요. 그는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인정하려면 정말 인정해야 됩니다. 그는 신약 때 성자의 육입니다. 이 시대에 믿는 자들도 보낸 자를 불신합니다. 지금 새 시대 신 시대 사람이 아니라, 이미 기성의 오래 된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습니다. 시대 보낸 자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 나사렛 예수님과 시대 보낸 자를 쪼개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쪼개지 못 하니 불이 붙지 못 하고 사탄이 틈탈 수 밖에 없죠. 쪼개지 못 하기 때문에 불신하는 것입니다. 쪼개지 못 하기 때문에 우리를 이상하게 보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주장을 게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우리 섭리인들 안에서도 보낸 자를 받아들이지만요. 여전히 이 마음에 불신이 남아있습니다. 이걸 완전하게 없애지 못 한다면 성 자 역사시대 마지막 기회를 맞을 수가 없습니다. 절대 그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 이제 예수님 좋다. 예수님. 그런데 다시 성자 본체, 예수님, 쪼개 서 왜 그를 통해 무조건 그를 통해 성자께 나아가야 돼? 나는 본체 말씀 이해를 못 해.” 이 시대에 역 시 성자와 나사렛 예수님을 쪼개서 보지 못 하기 때문에 말씀을 듣지 못 하기 때문에 따르기는 따랐지 만. 뭘 가지고 따랐는지 정말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왜 섭리사에 왔는지를 잊어버리 고. 망각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섭리사에 왜 왔습니까? 저는 항상 이 말을 되뇌입니 다. “나는 섭리사에 무엇 때문에 왔나? 도대체 무엇 때문에 왔는가?” 여러분, 저는 무엇 때문에 온 줄 아십니까? 저는 그의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말씀? 그의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다시 정확하게 얘기하면 그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왔습니다. 그가 전해주는 말씀이 아니면 나는 섭리인이 안 될 뻔 했어요. 나는 그가 전해주는 말씀을 듣고, 주님이 다시 신랑으로 왔어요. 그리고 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 전하는 말씀을 듣지 않을 것이라면 내가 섭리사에 온 이유가 없어요. 맞습니까?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고 싶지, 나사렛 예수님 통해 안 가고 싶어요.” 그러면 유대종교에 있으면 됩니 다. “왜 굳이 신약역사로 넘어와서 내가 왜 예수님 통해서 가야 해? 하나님 앞에 직접 가고 싶어.” 왜 이렇게 이야기를 하냐는 겁니다. 우리는 섭리사에 왜 왔고, 어떻게 왔는지 이걸 생각해야 되요. 이걸 생 각하게 되면 말씀이 그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구요. 말씀을 깨닫기 위해 몸부림치게 됩니다. 왜인 줄 아십니까? 내 정체성이 여기 들어있기 때문에. 내 정체성은 사람들이 흐리는 것도 아니고, 보낸 자가 흐 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정신이 흐려 놓습니다. 나의 정체성은. 맞습니까? 왜 시대와 때를 분별하지 못 하고, 왜 성자 본체와 분체를 분별하지 못 하고, 왜 기성의 대단한 목사들과 시대의 보낸 자를 분별하지 못 할까? 그리고 분별했다면 이제는 전해야 되겠죠? 성경말씀에 따라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을 전해 드리기 전에 오늘 한 가지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왜 사람들은 분별하지 못 할까? 왜 때를 알지 못 할까? 왜 불신을 하면서 섭리에 왔어도 섭리정체성을 스스로 망각하고 사는가? 여러 분, 아무도 우리를 망각시키는 사람이 없어요. 아무리 둘러 보아도 왜 태어났는가? 나는 왜 태어났는지 몰라서 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해도 되지만, 우리는 알았으면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요. 우리는 이곳에 서 창조목적을 배웠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고, 재림에 대해서 우리의 영에 대해서 육신은 어떻게 살아야 했는지 다 배웠어요. 여기서 더 깊이 심정을 전해 줄 뿐입니다. 이 시대 동일해요. 동시성으로 역사를 펴 오셨지만 차원 높여서 펴 오셨습니다. 똑같은 역사 속에서도 항상 차원을 높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고인 물과 같지 않고, 썩은 물과 같지 않고, 흐르는 물과 같아서 생동적이고 살아있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살아계신 자의 하나님이죠. 하나님의 역사에는 문제가 없어요. 그가 보낸 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자기의 몸으로 성자는 그 사람을 자기의 몸으로 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사람들의 마음, 정신이 문제입니다. 고로 여러분 한 번 찾 아보십시오. 신약에서만 “마음을 온전하게 하라. 마음을 완전하게 하라.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아라.” 마음에 대한 말씀이 230개가 넘습니다.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정신을 완전하게 차려야 되요. 마음을 완고하게 자기 생각으로 완악하게 먹으면 안 되겠습니다. 항상 제대로 가르쳐 주어도 무엇이 문제냐면 사람의 정신이 문제예요. 이 마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 면 자기가 보다 더 좋은 대로 판단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제대로 보려면 하나님 의 입장에서 봐야 합니다. 성자의 눈으로 봐야 됩니다. 그 신령한 자의 입장에서 보지 않는다면, 내 주 관으로 판단되어 온전한 것을 가르쳐 주어 온전하지 못 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절대 우리 마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저는 항상 이것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15년째 하고 있어요. 내 마음에 시험이 올 때마다 한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내 마음이 뭔가 이상해. 내 마음을 고치고 다시 보 자.” 선생님을 보면서 어느 날은 시험이 왔어요. “내 마음을 다시 내가 얼마나 안 좋은 마음을 먹고 있 는지, 내가 기존에 이상한 고정관념을 먹고 있지는 않았는지, 다시 보자. 비우자. 다 비우고 깨끗한 눈으 로 맑은 눈으로 다시 한 번 쳐다보자.” 여러분, 저는요. 제가 여기서 이 말씀을 전하는 이유는 그렇게 나 자신을 비우고 쳐다봤을 때 15년 동 안 나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을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만일 하나님의 역사 가 안 일어났어요. 만일 성령의 불이 안 일어났어요. 그건 내 잘못이나 여러분의 잘못이지, 하나님의 잘 못은 아닙니다. 정확하게 그러합니다. 하나님이 안 오시고, 주님이 안 오셔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믿습 니까? 고로 하나님은 마음을 보고 역사를 하십니다. 여러분, 말씀을 들으셨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나 니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역사를 하십니다. 어떻게 역사하신다고 하셨죠? 정말 깨달으려 하는가. 정말 믿으려 하는가. 정말 행하려 하는가. 믿어보려 하는가. 마음을 정말 비웠는가. 그것을 보신다고 했습니 다. ‘너는 이야기해라. 나는 계속 내 주관갖고 들어볼게. 니가 끝내 이야기해도 너는 나를 꺽지 못할 걸.’ 이 마음을 갖고 말씀을 들은 자는 여태까지 섭리사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 마음을 언젠가는 꺽 어야 하기 때문에 “주여. 내가 주님께 납작 업드리고 납작바위가 되었습니다. 주여 내가 주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런 굴복이 일어났을 때 섭리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굴복이라는 것은 바로 인정했다는 말입니다. 시대를 시인했다는 말이죠. 먼저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깨끗하게 해야만 하나님의 역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고로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8절 “마음 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볼 것이라.” 하 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하고, 마음이 아주 깨끗한 자, 고정관념 기존에 인식관이 없는 자들, 기존의 인식 관 자기의 생각 그릇된 모든 자들이 비어 있어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청결하고 깨끗한 사람만이 그런 사 람이 이 순간에도 지금 하나님을 볼 것이고, 주님을 볼 것이고, 성령을 충만하게 받을 줄 믿습니다. 맞 습니다. 누가복음 8장 5절에서 15절을 보면요. 여러분, 기억나십니까? 땅에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해 주셨죠. 한 번 읽어 볼까요?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 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더러는 바위위에 떨어지매 습기가 없으매 말랐고, 더러는 가시 떨기 속에 떨어 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100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고 외치시되 들을 귀있는 자들은 들을지니라. 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 로 보아도 보지 못 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 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길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 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어디서요?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에 있다는 것 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서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요. 가 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 전히 결실하지 못 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아멘. 씨는 말씀이요, 밭은 마음입니다. 말씀과 마음을 두고서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말씀의 씨를 똑같이 뿌렸어도 그 마음에 따라 좌우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실하느냐, 결실하지 못 하느냐. 어디 서 결정되느냐? 내 마음에서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 정신, 내 생각, 내 마음에서 모든 것이 결정이 됩니다. 우리는 새 역사로 온 섭리인입니다. 맞습니까? 어떻게? 아까도 얘기했지만 말씀으로 오게 되었 습니다. 어떤 말씀? 성약말씀. 신약말씀 기성에서 들었던 그 말씀이 아닌, 새시대 새말씀 기성과는 다른 말씀, 더 확실하게 얘기하자면 기성보다 차원 높인 말씀을 인봉을 떼주는 말씀입니다. 기성에서도 신부 라고 얘기했지만, 정말 신부로 살 수 있는 말씀입니다. 아들이 신부라고 전하는 말씀이 아니라, 신부가 신부로 전하는 그 말씀이라 달라도 한참 달라요. 너무나 달라요. 많은 것이 다릅니다. 신부의 말씀이어 도 신부의 말이어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가 다르고, 이루는 것이 다르고, 아들이 전하느냐? 신부가 전하 느냐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아들인데 신부라고 하는 자와 신부인데 신부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같겠습 니까? 그런데 이 새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 하고 있는 자들은 바로 때에 대해서 제일 먼저 못 깨달은 자들 이예요. 여러분. 때를 깨닫고 섭리사가 어떤 것을 깨달았다면 이 시대 최고의 교리, “하나님은 육신 쓰 고 오신다. 성자는 육신 쓰고 오신다.” 맞습니까? 그리고 핵심말씀, 또 하나가 때입니다. 때는 재림 때 다. 성약 때가 왔다. 이 때 알려 주잖아요. 제일 먼저 와서 그거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때 가르쳐 주고, 하나님과 성자는 육신 쓰고 온다. 이 두 가지를 정확하게 몰랐다는 소리입니다. 어떻게 성약 때가 왔고, 그리고 때가 와서 하나님께서 성자께서 이 시대의 육신 쓰고 행하신다는 것을 아는데 그를 통해서 가는 것을 꺼려하며 그를 통해 가는 것을 힘들어 하는가? 이것을 깨달은 자는 신입생일지라도 기성에서 고정 관념이 많은 자일지라도 여기 와서 그것만 깬다면 역사는 쉽습니다. 그냥 따라가요. 그냥 다른 말씀 다 받아들였어요. 가인의 성격? 그래. 다 좋은데 이거 딱 걸립니다. 때를 깨달았으면 절대 옛 역사로 돌아 가는 일이 없습니다. 절대 그 육신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역사 속에 와도 보낸 자와 통하지 못 하면, 하나님과 직접 통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 어요. 저는 그 얘기를 직접 들어서 그 얘기를 들어서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께 직접 가야지. 기도해야 지. 결국 하나님을 믿으니까 결국 삼위일체를 믿으니까 직접 가야지.” 말도 안 되죠. 성경역사를 보세요. 하나님을 믿으니까 모세를 불신하고, 안 따라갔으면 가나안 복지를 못 갔어요. 아무도 못 갔어요. 모세 의 말을 들어야만 구원을 받고, 허락하신 땅을 가고, 역사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낸 자를 받 아들이지 못 하고 시대를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것, 바로 중심을 잃은 자는 섭리에 왔어도 유대인들, 기성 신앙 하는 자들입니다. 왜? 정신이 그 정신이 새 시대에 살지 못 하고 있어요. 무엇이 중심인지, 내가 왜 자기가 왜 섭리사에 왔는지 망각하는 자입니다. 자꾸 잊어버려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잖아요. 자꾸 망각해요. 이유를 몰라요. 뜻을 몰라요. 그 정체성을 잊고 산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중심을 잃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중심을 잃고 기도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사탄이 틈을 탑니다. 중심을 잃고 주님과 소통하려고 하니까 사탄이 100% 틈을 탑니다. 여러분, 시대의 기준? 하나님은 늘 시대의 기준을 두셨어요. 그 기준을 두고 역사를 하셨어요. 심판과 축복의 가운데에 서 있 다는 것입니다. 심판을 하시고 축복을 하셨어요. 양과 염소를 가르는 가운데에 서 있어요. 받은 자는 양 이요. 못 받아들이는 자는 염소예요. 그 기준에는 반드시 시대말씀이 늘 따라다닙니다. 시대말씀으로 우 리는 기준을 분별하고, 그 중심자, 기준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때는 예 수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했어요. 왜? 중심잃지 말라구요. 너희들이 지금 누구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지 알라. 그러니 늘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 왜요? 제발 중심을 잃지 말아라. 우리는 지금 성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잖아요. 여러분, 깨달아 알기를 바랍니다. 믿습니까? 깨달아 알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중심. 중심을 잃으면 하나님 앞에 어떤 것도 상달되지 않습니다. 고로 중심을 잃으면 넘어져요. 중심을 잃으면 쓰러집니다. 중심을 잃으면 기진맥진합니다. 누구나 그러면 아무나 재림주하고, 아무나 성령이라 고 하면 누가 도대체 역사를 하겠습니까? 중심이 딱 잡아줘요. 아니야. 오직 하나님은 이 중심을 두시고 역사하신다. 오직 하나님은 이와 같이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중심과 기준을 딱 만들어서 선과 악을 쪼개 고, 거짓과 진실을 쪼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준은 딱 하나만 둡니다. 기준 딱 하나를 둘 때는 선과 악을 쪼갤 때는 여러 가지 기준을 두지 않아요. 단 하나의 기준, 그 중심자를 통해서 쪼갠다는 것입니 다. 그래서 우리는 중심을 두고, 하나님은 중심을 두고 역사를 펴 나가십니다. 중심 없으면 혼란스럽죠. 우리는 이 성약역사에 왜 살고 있는지 여러분 날마다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그러면 딱 무엇을 생각하게 되느냐? 중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딱 하게 됩니다. 여러분, 보세요. 섭리사에 와서 말 씀을 듣고 때로는 눈물흘리며, 성령을 받고, 열심히 쫓아다니는 사람들도요. 중심을 잃는 순간, 신앙을 져버립니다. 다른 어떠한 이유도 괜찮아요. 그런데 중심을 잃으면 신앙은 한 순간에 그냥 무너지게 됩니 다. 왜? 중심을 잃었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 때문에 섭리사에 왔는지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 계시자들 도 우리가 왜 계시를 믿고 따르는지 잊으면 정말 망각하면 안 됩니다. 왜요? 중심이 확인해 주었기 때 문에, 그 말씀이 주님의 말씀임을 그를 통해서 확인받았기 때문에, 그 말씀이 주님의 말씀인 것을 안심 하고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을 때 얼마나 많이 혼란이 일어나는지 아시죠? 계시자가 주님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부흥강사가 주님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역사하시겠죠. 누가 분별해줘요? 그러나 기준이 분별해 줘요. 중심이 분별해줘요. 옳다,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심하고 따라갑니다. 그렇지 않았을 때 “나도 예수야. 나도 예수야.” 합니다. 여기서 나오면서 그냥 한 교회를 먹어 들어가요. 그게 너무 무서워요. 중 심이 이래서 무서워요. 그래서 중심은 아무나 뽑지 않아요. 성자의 마음을 완전히 받은 자, 그에게 완전 하게 일체된 자 완전하게 그의 신부가 된 자 말씀이 아닌 삶 자체가 그에게 인정받은 자입니다. 기성의 유명한 목사와 비교가 안 되요. 똑같은 유명한 인생, 겉으로 보면 그냥 똑같은 삶을 사는 거 같지만 그 는 성자에게서 신부의 사명을 받고, 신부로 인정받은 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뭘로 분별해요? 삶을 못 봤으면 말씀으로 분별합니다. 말씀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부죠. 처음부터 끝까지 그 말씀만 전하며 그 말씀 안에서도 차원을 높여 계 속해서 성경에 인봉 그 중에서도 사랑의 인봉, 신부의 인봉을 계속 풀어 나가겠죠. 그가 바로 하늘 앞에 인정받은 신부요. 시대의 사명자라는 말입니다. 저도 여러분 그래서 늘 생각했습니다. 최근에 와서 더 많이 생각하는 게 ‘아. 나 처음 출현했을 때 사람들이 대개 이상했겠다.’ 저는 그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아니. 우리 어린 사람들이야, 괜찮아요. 어린 사람들은 “조은 언니, 조은이 누나, 조은이 형.” 이렇게 하 는데 저는 진짜 오래된 사람들은 옛날에는 진짜 이해가 안 됐는데 이해하니까 생각이 나는 거예요. 지 금까지 딱 한 사람만 따르다가 그 사람의 말을 들으라는 거예요. 그리고 잘 대해 주라는 거예요. 이걸 도대체 어디까지 잘 대해 줘야 되나? 그것 때문에. 여러분, 아시겠죠? 잘 대해줘야 하는데, 어디까지? 어떻게? 그게 이제 헷갈리는 거예요. 이래서 헷갈렸겠구나. 왜냐하면 이 역사는 정말 중심자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중심의 역사니까 혹여나 중심을 잃을까? 그 동 안 또 그런 역사가 많았기 때문에 그래서 어떤 역사가 일어나야 하냐면 제가 여러분들을 중심에게로 완 전히 이끌어 가면 갈수록 여러분과 저는 하나됩니다. 맞습니까? 걱정할 게 없더라구요. 걱정하고 슬퍼할 게 없는 게 바로 제가 중심에게로 정확하게 여러분들을 인도하며, 그 말씀을 완전하게 전해 주어서 중 심을 잃지 않을 때는 우리는 완벽하게 하나되어서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는 걱정하지 않고, 더욱 더 긴장하며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이 기도를 엄 청나게 하고 왔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자, 오늘 여러분들에게 계속해서 말씀을 전 해 볼께요. 오늘 너무 분위기가 훈훈해져서 사랑으로 불러야 할 거 같은 분위기예요. 자,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맞습니까? 여러분의 마음도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니까 어떤 것을 보시 냐? 주님이 저를 보실 때 어떤 중심을 보시는지 아십니까? “보낸 자를 절대 믿고 따르는데 그 중심이 보낸 자에게 향해 있느냐, 거기서 끝나느냐. 완전하게 그 중심이 성자에게 향해 있느냐.” 그것까지 보신 다는 것입니다. 중심 곧 마음을 보십니다. 다시 한 번 말하겠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는가, 간절한 마음 인가, 하고자 하는가, 충성으로 진심으로 하는가,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가, 선한 마음으로 하는가, 사랑 하는 마음으로 하는가. “전능자의 일이야. 꼭 이루고 말거야. 창조목적, 그래 난 이루고 말거야. 힘들어 요. 주님 힘들고 어렵지만 이기고 말거예요.” 최선을 다하는가. 정말 진정한 마음으로 하는가 그걸 보신 다는 말입니다. 오직 그걸 보십니다. “난 포기할거야. 다 때려쳐. 싫어. 난 몰라. 몰라. 오늘 안 갈거야. 싫어.” 그걸 보 시느냐. 내가 여태까지 3개월 동안 계속해서 성령을 받으려고 노력했는데 정말 안 되겠어. 그런데 옆에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6개월 동안 못 받았거든. 그런데 나는 포기하지 않아. 주님이 나를 버려두지 않 으셨어. 어쩌면 모르지. 성령을 이미 받았는데 내가 모르는 것일 줄. 오늘도 나는 노력할거야. 주여 오늘 도 저는요. 간절한 마음이예요. 이런 마음 아시겠습니까. 간절한 마음 있잖아요. 주님. 아직까지 저는요 진동도 안 느껴지구요. 뜨거운 것은 있었어요. 그런데 순간이었어요. 그 많은 시간 중에서 단 조금 성령 받은 거 같나요? 그리고 오늘은 제가 일어나기 힘들었지만요.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5분 순간 힘들었지 만, 어떻게 하죠? 그런데 주님 제가 정말 간절한 마음 너무 원하거든요. 왜 나는 안 주시나요? 주십시 오.” 이 간구하는 자에게는 기필코 역사가 일어나고 맙니다.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알겠습니까? 저 는 이것의 최고 간증자이잖아요. 섭리사에 최고 교리가 사랑인데 제가 사랑에 굉장히 눈을 많이 못 떴어요. 주님 사랑은 알 수가 없는 데, 이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오해의 요지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잘못하면 선생님을 오해하잖아 요. 그래서 정말 오랫 동안 기도를 했어요. 그래서 7년을 사랑의 감각보다는 일 감각으로 살았어요. 왜 냐하면 저는 어떻게 생각을 했냐면, “성자 예수님. 예수님.” 하면서 사랑스럽게 이렇게 하기보다 “주여.” 하면서 거룩하게 이렇게 하는 게 더 편해요. 저는요. 주여. 노래도 귀엽고 애교있게 찬양하는 것보다 손 을 들고 찬양하는 게 편했던 사람이예요. 이전에 섭리사에 왔을 때 ‘하나님이시여’ 찬양하면서 울었거든 요. 제가 여기서 울면 얼음이 되었어요. 여기서 ‘아싸. 섭리역사.’ 하는데 저는 ‘하나님이시여’ 하면서 울 어요. 그러니까 관객석이 쏴해요. “쟤는 누구야? 어디서 온 애야? 완전히 신입생인가봐.” 사실 저는 말 씀 다 듣고 수료한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더 했던 사람이예요. 이게 신부의 감각보다는 홀리, 홀리, 홀 리, 거룩, 거룩 이게 너무 맞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라고 하는데, 세상 남녀를 보면 너무 살갑잖아요. 저는 살가운 것보다 ‘주여’ 이게 맞는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대통령과 영부인을 본 거예요. 그런데 영부인이 근엄한 모습 으로 대통령에게 “여보. 여보.” 안 하고, 딱 대통령으로 대하더라구요. 제가 딱 생각했죠. “저거다. 저거 야. 나는 저런 신부의 상이 되겠어.” 나는 스스로 생각했어요. ‘나는 귀염귀염하는 이런 사랑도 있겠지 만, 이것만 사랑이 아니다. 뭔가 잘못 인식이 된 것 같다. 높으신 분이니 높게 모시자.’ 생각을 한 겁니 다. 왜냐하면 높으신 분인데 격없이 모시고, 낮게 모시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나는 “주여. 내 사랑 주 여. 이렇게 하자.” 이렇게 마음을 먹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신앙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나요? 잘 안 되잖아요.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이랑 살갑고 이래야 하는데, “주여. 홀리. 홀리.” 하다보니까 살갑고 이게 잘 안되더라구요. 그러니까 아무래도 가깝게가 안 되더라구요. 거룩한 건 좋죠. 그래서 가까운 감이 안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생각을 했습니다. 선생님 늘 말씀하시는 것,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자가 원하는 것을 해 주어라. 정말 사랑하는 자가 하는 것을 바라보아라. 한 마음, 한 뜻, 한 생각을 품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래 나는 저 사랑할 수 있다.” 했어요. 나는 세상에서 애인 도 없었고, 좋아하는 사람은 있었어요. 선생님. 그런데 애인이 없어서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선생님 말 씀하신 대로 ‘나는 저 사랑을 해야 되겠다. 사랑하면 그의 일을 도와드리고, 힘 드리고, 그와 같은 길을 가면서 그 일을 좀 덜어드리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렇게 결심하고 7년 동안 기도했는데요. 여러분, 내 마음을 버려두지 않으셨어요. 저는 계속해서 또 고꾸라지고, 일어나고, 제가 이 얘기를 하면요. 원래 간 증 2탄에 이 얘기를 하려고 했는데요. 제가 고꾸라지고 일어나면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정말이요. 진짜 말을 못 해요. 몇 번 포기하려고 했어요. 왜냐하면 그런 현실적인 상황이 있었거든요. 진짜로요. 정 말 그런 일이 있더라구요. 저한테 그래서 너무 많은 좌절을 했어요. ‘나는 역시 열심히 일하다 가야지.’ 그래서 한번은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기도 했어요. “선생님. 저는요. 일을 도와드리는 건 잘할 수 있습 니다. 하지만 제가 선생님 옆에서 방해가 되니까 멀리 다른 집에 떨어져서 일만 해다가 갖다드릴까요?” 이랬다가 완전히 그 날 지옥행이었어요. 심정의 그 괴로움을 겪게 되는데요. 정말 심정의 괴로움을 겪게 되었어요. 이런 우여곡절이 굉장히 많았고, 여러 가지 일이 많았고, 내가 무슨 일순이같이 그렇게 느껴 지는데 좀 그랬어요. 그래도 내가 일을 하면 도와드릴 수 있어서 좋더라구요. 왜냐하면 밥도 주시는데 밥을 그냥 먹으면 너무 죄송하잖아요. 같이 있으면 뭐라도 도와드리면서 함께 있으면 너무 좋잖아요. 그 래서 늘 일을 도와드렸거든요. 그래서 늘 머릿속에 그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사랑하면 사랑하 는 자가 원하는 일을 해줘야지.’ 그런데 이제 둘러 보니까 그가 원하는 일이 보이잖아요. 그런 일들을 해 오면서 7년을 살아왔는데요. 저는 한 번이라도 포기하려고 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사랑. 사랑은 포기 안 한다. 내가 좀 감각은 좀 떨어지나 아니야. 그러나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생각해 보자. 선생님은 일반 사람처럼 대하라고 우리에 게 보낸 게 아니라, 하늘의 뜻을 이루러 오신 분이니까 그 뜻을 가지고 논해야 되겠다.’ 생각을 했어요. 성령께서만이 역사를 해주셨죠. ‘선생님은 하늘의 뜻을 이루러 오신 사람이니까 그 뜻대로 사랑을 이루 는 것이 최고 맞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제가 7년을 갈고 닦았는데m 선생님께서 7년째 인정을 해 주셨잖아요. 그래서 제가 정말 너무 감사드리더라구요. 정말. 신실한 사랑 그 완전한 사랑 가운데 도달할 수 있도록 계속 해서 혼내시고, 또 가르쳐 주시고, 야단도 쳐 주시고, 또 칭찬도 해 주시면서, 그동안 이끌어 주신 선생님께 너무 감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포기 하지 마세요. 포기란 없습니다. 절대 포기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중심을 보십니다. 시대는 사랑의 시 대니까, 진짜 절대 사랑하고 싶습니다. "주님 사랑이 잘 안 느껴지는데 이게 사랑인가요?" 여러 가지 도 전을 한 거예요. 그렇지만 포기는 안 하겠습니다. 내가 다른 건 포기해도 천국가는 거랑 사랑은 포기하 지 않는다니까요. 지금 포기하지 않는 거 하나 더, 성령받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기 위해서 그 말씀을 완전하게 전해 주는 것은 포기하지 못 합니다. 네. 여러분도 포기하시면 안 되요. 네. 여러분. 기도하는 것, 말씀듣는 것, 새벽에 일어나는 것, 이 모든 게 다 하고자 하는 그 중심을 보신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기회의 기도, “그래. 그래. 그래. 해보자.” 이 게 아니라, “그래. 그래. 그래.” 매일 여러분 한 번 결심갖고 안 되요. 아시잖아요. 밤마다 결심하고, 자 야 되요. 여러분, 아시잖아요. 밤마다 결심해야 하는 거 아시죠? 잠자기 전에 결심을 딱 하지 않으면 그 다음 날 100% 못 일어나요. 눈은 떴어도 정신은 안 일어나요. “나는 해야 되요. 주님. 아시죠? 나는 해 야 되요. 아시죠? 아시죠? 해야 되요. 아시죠?” 10번 이상, 20번 이상 얘기하고 자면 그 결심에 일어나 게 됩니다. 그 마음 중심을 봐주신다는 거예요. 믿습니까? 하나님은 중심이 어디에 쏠린지 보십니다. 어디로 쏠렸는지 중심이 쏠린 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중심이 쏠린 대로 됩니다. 자, 보세요. 물은 그릇에 중심이 쏠린 대로 흘러가게 됩니다. 맞습니까? 이와 같이 사람의 마음 또한 중심이 쏠린 대로 가서 그 인생 전체가 중심에 쏠린 대로 행하게 됩니다. 그러 니까 여러분의 중심을, 여러분의 마음을 어느 것에 중심을 두고 사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중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사람은 마음으로 죽고 마음으로 살아요. 사람은요. 한 번 보세요. 세상 에서요. 못 사는 사람만 죽지도 않아요. 맞습니까? 힘들고 고생스러운 사람만 죽지 않아요. 내가 보기에 는 이 사람은 더 힘든데요. 다른 사람이 죽어요. 뭐 때문에 죽어요? 마음 때문에 죽어요. 마음이 포기했 어요. 그보다 더 못 살고, 더 힘든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아요. 왜? 마음이 살아있기 때문입 니다. “마음이 가는대로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가는 대로 운명이 결정되요.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대로 힘을 받게 됩니다. 맞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힘이 들 때가 있어요. 너무 힘들어요. 힘들어 죽겠어요. 그런데 그 중심을 힘든 것 에 쏟으면 힘들고 끝나요. 그냥 온 하루 전체가 힘들고 끝나요. 힘든 것으로 중심이 쏠려 있으면. 그런 데 힘든 것에서 이 중심을 어디에다 두느냐? 내 중심을 보다 좋은 생각으로 두었을 때, 주님께 두었을 때는 전환이 됩니다. 느껴 보셨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에게 말합니다. “정신 좀 차리게 해주세요. 아무리 해도 안 되요.” 선생님은 말씀하셨잖아요. 머리가 안 좋아서 돌로 때리려고 했다고. 그런데 주님 께서 “머리를 돌로 때리지 말아라. 더 나빠진다. 내게 배워라. 내 마음을 가져라. 내 멍에는 쉽고, 가벼 우니까 내 멍에를 져라.” 하셨습니다. 너무 합당한 말씀이 아닙니까? 여러분도 힘들고 그러면 머리를 왜 때려요? 머리가 안 좋아져요. 여러분의 중심의 생각을 바로 전환하면 됩니다. 그런데 안 되는 이유는 약해서, 안 되는 이유는 여러분 의 정신이 안 되서 그런게 아니라 약해서 그렇습니다. 무거운 바위를 보십시오. 힘이 중심에 갑니다. 맞 습니까? 바위가 있어요. 그러면 모든 힘이 중심에 갑니다. 바위가 있으면 모든 힘이 중심에 갑니다. 다 른 쪽에 계란을 넣어도 안 깨져요. 계란 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넣으면 안 됩니다. 큰 일 납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는요. 만약에 바위가 100톤이면 어마어마해요. 차가 100대예요. 어마어마합니다. 차 100대 에 깔리면, 사람은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 어마어마한 힘이 이상하죠? 중심이 아닌 곳에는 힘이 하나도 안 가요. 전체 100톤의 모든 힘이 중심에 집중되어 있어요. 오직 중심, 오직 중심에 모든 힘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중심대로 자신이 무섭게 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중심에 전체의 힘이 다 가게 되 요. 여러분이 마음의 중심을 어디에다 두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의 모든 중심과 삶은 이리저리 왔다리 갔 다리, 여러분의 중심에 성자가 동행하고 그 분체인 구원자가 동행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절대 아무 것도 할 수 없어요. 하늘의 힘이 하나도 안 가요. 보낸 자는 중심입니다. 성자는 근본의 중심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 중심과 하나되지 않고, 그와 하나되어 행하지 않으면 절대 어떤 일을 해도 계란 하나를 못 깹니다. 고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나 성자 본체와 나의 분체와 함께 하면 불가능이 없다.” 했습니다. 아니 100톤 바위로 불가능한 것이 있습니까? 깨지 못할 것이 있습니까? 그와 함께라면 깨지 못할 것 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큰 바위도 그 중심만 혜택을 받게 됩니다. 이와 같이 시대의 중심자에게 하늘의 힘이 갑니다. 말씀이 갑니다. 구원이 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요. 뜻이 갑니다. 모든 시대의 축복도, 말씀도,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의 역사도, 휴거의 역사도 다 중심에 이 중심에만 모든 힘이 다 간다는 말입니다. 이해되셨습니까? 확실하게 이해가 잘 되시죠? 그 시대 하늘을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 시대 중 심자에게 온전히 갈 때 이 힘을 다 받습니다. 어떻게요? 우리가 이 중심으로 딱 모여들면 하나님의 이 힘을 다 받아요. 말씀, 구원, 축복, 모든 사랑, 모든 힘을 중심과 하나될 때는 다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모든 진리를 받고, 구원의 힘을 받게 되죠. 불가능이 없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자 예 수님은 중심에 모든 것을 쏟고 행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늘 중심을 보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보시 듯, 곧 중심자를 보고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모든 역사 역사적으로 봤을 때 반드시 하나님은 중 심자를 보시고 모든 것을 다 행하셨습니다. 고로 그 시대에 사는 사람들 또한 그 중심에 다 쏠려서 해 야 됩니다 아예 그 중심에 다 몰려 들어야 해요. 중심에서 벗어난 자는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자입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시나? 그냥 전체를 보고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말이예요. 어디를 보고 역사하세 요? 중심. 절대 중심, 전체 세계에서 구원역사 이 중에서도 중심자 그를 통해서만 역사를 하십니다. 절 대 그러하십니다. 너무 절대 그러하니까, ‘절대. 절대. 기필코.’ 계속 나오죠. 중심지에는 전체의 힘이 존재합니다. 모든 힘이 거기에 다 쏠려있는 거죠. 고로 하나님은 중심을 보고 심판도 하시고, 축복도 주십니다. 고로 이 중심에 있지 않으면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왜요? 보호받지 못 해요. 하나님의 역사는 이 중심으로 다 넣는 역사를 하세요. 그냥 많은 자들을 데리고 가는 역사를 안 해요. 먼저는 이 중심 가운데 사람들을 다 데리고 와요. 영휴거도 영적으로 보면 이렇게 해요. 중심 에 다 데리고 와서 이들을 보호하십니다. 밖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이 때리지 않아도 보호받지 못 하고, 그냥 심판이 왔을 때 피하지 못 하고 받는다는 말이예요. 이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완악한 마음으로 버 려 두었다는 것입니다. “눈가림이나 몸가림하지 말아라. 다른 말로 눈가리고 아웅하지 말아라. 모두 그 중심에서 1mm도 벗어나지 말아라. 완전히 일체되어라. 그러면 스스로 넘어지게 된다." 하셨습니다. 여러분, 보세요. 바위가 흔들거리고 있어요. 중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바로 넘어집니다. 시대의 역 사가 이와 똑같다는 말입니다. 고로 이 중심에서 하는 것만 하늘 앞에 상달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 중심을 보고 역사를 펴나가시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중심에 성자가 계시고 이 중심에 하나님이 역사하 십니다. 오직 시대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살아있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서 시대 진리의 말씀이 살아 숨쉬는 곳은 바로 중심지, 중심자가 있는 곳입니다. 중심 벗어나면 사망권입니다. 오늘 왜 이렇게 중심 에 대한 말을 계속 할까? 중심을 잡으라는 말입니다. 왜요? 중심을 잡지 못 하면 다 쓰러진다는 말입니 다. 섭리사에 어떤 핍박, 환란 괜찮아요. 여러분, 무섭지 않습니다. 내가 중심을 잡고 있는데 누가 나를 무너뜨릴 거예요? 그 중심은 하나님이시오, 주님이신데 누가 무너뜨려요? 아무도 못 무너뜨립니다. 중심 만 잡으면. 여태까지 섭리사에서 중심을 잡은 자는 어떤 환란, 누가 뭐라고 어떤 오만가지 말을 다 해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중심을 잡지 못 한 사람들은 수고하며 열심히 했어도 그냥 떨어져 나갔어요. 그냥 퍽퍽 쓰러져 나갔어요. 마지막 기회, 완전하게 우리가 변화되려면 중심을 완전하게 붙드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양심은 중심입니다. 마음이 중심입니다. 중심에서 행하는 것만 영원히 존재합니다. 거 짓을 꾸미고, 음모를 꾸미고, 잔꾀를 부리는 자, 여호와의 눈에서 벗어난 자입니다. 여러분, 사람 마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세요? 보세요. 자기 마음은 자기가 제일 잘 알아요. 자기가 지금 거짓을 말하는 건 지, 정말 옳은 말을 하는지, 정말 나는 잘못이 없다고 하는 건지, 잘못이 있는데 없다고 모사를 쓰는 건 지 자기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자기 양심을 조금이라도 속이면 그것도 하 늘 앞에 하늘의 시대 보낸 자 앞에 양심을 속이고 그를 비판하고 그 양심대로 중심에 벗어난 대로 완악 한 마음대로 심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단상에 서는 것이 무섭습니다. 내가 한 모든 말에 책임이 따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 시는 단상이지 않습니까? 내 마음은 내가 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없는가? 힘이 없는가? 확실한가? 능 력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는가? 나는 안다는 것입니다. 거짓, 음모, 잔꾀를 부리는 자, 모두 여호와의 눈 에서 벗어난 자, 바로 중심에서 벗어난 자입니다. 오직 중심만이 하나님과 성자와 통할 수 있지, 아무나 통할 수 없습니다. 고로 중심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성자가 중심이죠. 그와 일체되어야 되겠죠. 마음, 중심이 무너지면 일순간 다 무너집니다. 그러니까 내 중심을 매일 체크해야 해요. 내 중심 은 어디 있는가? 그럼 섭리사에 정체성이 생기구요.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역사에서 힘을 받아 살아가는 지가 정확하게 나오니까 무너질 수가 없어요. 그 중심에서 힘이 와요. “맞어. 나는 하나님의의 마지막 역사 앞에 창조목적을 이루며, 영휴거를 앞두고 육적휴거 이루고 가는 자야. 영원히 성경의 예언을 이루 수 있는 그 귀한 사람이야. 그 예언을 이룬 자를 따라가는 사람이야.” 이 중심 안에 절대 무너지지 않는 다면 쓰러지지 않습니다. 자신감이 솟아요. 더 노력하고 더 연구하겠죠. 힘이 솟아난다는 말입니다. 저는 힘이 솟아납니다. 제가 잘난 게 없어요. 나의 잘난 빽은 중심이예요. 정확하게 내 중심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좌로도 우로도 절대 치우침이 없습니다. 내가 중심을 딱 잡으면 불안하지 않아요. 초조하지 않아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내가 순간 중심을 잃고 어떻게 하지? 했을 때는 빨리 중심잡자. 그 말씀을 듣고 행하자는 오기가 생기면서 바로 정신이 돌아옵니다. 여러분, 성자 중심 이 마음과 생각이 중심에 서야만 여러분의 영이 휴거의 영이 됩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완전하게 100%에 도전, 100%의 믿음이 없는 자가 100%의 완전한 휴거의 영이 됩니까? 100%의 믿음이 없는 자, “성자 주님이 나의 신랑인 줄은 알겠어. 그거는 알겠어. 그런데 그 시대 보낸 자가 전한 말씀은 모 르겠어.”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 너가 신부인 것은 어떻게 알았니? 도대체.” 그러면 “저기서 얘기 해줬어.” 그러면 “거기에 가. 거기에 가서 살아 중심을 못 잡을 거면 거기 가서 살아.” 라고 하고 싶지 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속으로는 몇 번을 되뇌입니다. 왜 우리가 중심 때문에 섭리사를 왔고, 중심 때문에 살아가는데 우리는 중심 때문에 확실하지 못 하는 가? 여러분, 확실하다면 안달이 나요. 배우고 싶어요.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배우고 싶어요. 몸에 안달이 나요. 멀어질까봐. 멀어지면 큰 일이 나니까 달라진다는 거예요. 삶이 생각이 달라지니 중심을 지키면. 주님은 말씀하셨어요. “중심을 지키면 변함이 없다. 고로 사탄은 중심을 벗어나게 한다.” 이것이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중심만 변하지 않으면, 중심만 잃지 않으면 우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고로 사탄 은 중심을 벗어나게 하죠. 중심자는 그 시대의 반석입니다. 그 위에 우리가 세워져야 합니다. 마음에 중 심을 잃으면 넘어지듯이, 시대의 중심자를 잃으면 넘어 갑니다. 여러분, 중심자를 배척하고 어떻게 스스 로 주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눈에 거슬려 다 멸하시고 맙니다. 중심자를 중심하여 하 나님의 나라, 주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뜻이 없으면 주님도 하나님도 돕지 않으세요. 돕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정말 알아야 해요. 뜻 이 없고 목적이 없으면 도울 일이 없어요. 돕지 않습니다. 함께 하지 않아요. 왜 인간에게 그토록 함께 하시고, 왜 우리에게 그토록 함께 하신 줄 아십니까? 뜻이 있어요. 목적이 있어요. 사랑하는 자로 삼으 려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서 그 영을 데리고 가서 살고 싶어하시는 목적이 있어요. 뜻이 있어요. 뜻이 있으니 돕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세계는 돕지 않으십니다. 이 사탄의 세계로 가면 안 되요. 하나의 화분도 주인이 뜻이 없다면 물을 안 줘요. 뜻이 있으면 물을 줍 니다. 세워놓은 돌이 중심을 잃고 딱 넘어지면요. 누가 다시 세워주기 전까지는 절대 스스로 못 섭니다. 맞아 요? 이와 같이 중심을 한 번 잃고 넘어지면, 지옥으로 넘어지면 영원히 못 나옵니다. 한 번 중심을 잃고 지옥으로 넘어지면 영원히 못 나와요. 우리는 중심을 잡고 살아야 합니다. 믿습니까? 이 중심에 완전하 게 굳건하게 서서 변치 말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인해서 완전하게 우리를 변화시켜야 되겠죠. 그래서 우 리의 중심은 이 땅에서는 보낸 자요, 근본은 성자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쪼개서 보면 영과 육의 중심 을 온전하게 세워야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삼위일체로 믿는다면 실망합니다. 쪼개야 됩니다. 그는, 그 중심자는 세상이 대한 대로 가요. 여러분 지난 주 성령집회 때 말씀했죠? 시대 보낸 자는 저울추와 같다고 했습니다. 저울추를 보고 실족할 게 없어요. 왜? 무게를 대한 대로 그 냥 저울추가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세상이 대한 대로 그가 왔다, 갔다 합니다. 그가 고통의 길을 가는 이유는 세상이 악해서 그렇지, 그가 악해서 가는 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성경에 예언대로 역사적으로 봤을 때 그것이 증거합니다. 맞습니까? 이것을 정말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대로 두지 않 으시고, 반드시 선과 악을 쪼개시어서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우리는 그 소원으로 갑니다. 반드시 행 한 대로 갚아주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는 전능자요, 인간을 창조하 신 자요, 인간을 만들고 지으신 존재자이다. 성자 본체와 분체의 말씀이 딱 나오니까 어때요? 확실하죠. 완전하게 확실하죠. 그러면서 어떤 능력이 오느냐? 본체의 능력이 와요. 그러면서 시대 신약시대를 거치 고 온 역사이지만 그 시대 사람, 그를 통해서 전해져 온 역사가 아니고 새 시대 분체를 통해 전해진 역 사임을 깨닫고 더 힘이 났습니다. 이걸 못 받아들인 자는 뭐예요? 이미 중심을 잃었기 때문이예요.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는 자는 중심 을 지킨 자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힘들어 하는 자는 중심을 지금 잃은 게 아니예요. 하루 이 틀 된 게 아니예요. 이미 오래 되었어요. 그러니 중심 이야기가 나오니까 바로 쓰러지는 것입니다. 몰라 요. 여러분, 시대가 오면 시대 핵심적인 이야기를 전해봐야 되요. 그래야만 그가 온전한지 아닌지 알 수 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은 성자입니다. 그 보낸 자를 중심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절 대 시대의 합당한 자를 통해서 역사하셨기 때문에. 그것은 말씀을 듣고 분별하기 때문에 진실로 그러한 가? 진실로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가? 정말 합당한가? 내 마음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이 되겠죠. 모세가 홍해 바다를 갈랐다고 해서 하나님은 아니죠. 하나님이 갈라주시며, “모세의 말을 듣고 따르라.”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갈라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능력을 주셔서, 모세가 행했습 니다. 하나님이 그 몸 가지고 행하신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는 근본 중심을 성자 주님께 둡니다. 하나님 께 둬요. 그 능력이 일어나는 자를 믿고 따릅니다. 그 능력이 일어남을 믿고 따름은 바로 하나님이 그에게 역사하심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 이 연약해도 세운 자를 통해서 역사를 하십니다. 반드시 보낸 자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고로 중심을 중심해서 행하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불가능이 없습니다. 믿습니까? 오늘 여러분 정말 마음으로 깨달아 야 합니다. 때로는 이 중심이 왔다, 갔다 내 중심이 괜찮아요. 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왔다, 갔다 하는 때에 갔을 때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예요. 꼭. 알겠습니까? 이게 교역자이고, 또 가정국이라고 해서 마음 을 놓을 수가 없어요. 왔을 때 괜찮아요. 중심에서 갔을 때 문제가 100% 문제가 생겨요. 한 번 가고, 두 번 가고, 세 번 가서 그 쪽으로 중심을 두고 거기에 길을 낸단 말이예요. 그래서 하는 말이예요. 중 심, 영원히 1m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나를 붙들어 달라고 기도해야 해요. 그래서 지난 번에 제가 말했잖아요. 환란으로 내 다리를 쳐서라도 붙들어 달라고 저는 기도합니다. 왜 인 줄 아십니까? 아니까 단 한순간도 고통 속에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 축복 속에 주님이 행하시는 역사 속에 살고 싶고, 그래서 말씀했잖아요. “죄가 있어도 옆에 있어라. 벗어나지 말아라. 회개해 돌이켜 라.” 알겠습니까? 넘어졌어도 다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중심을 잡고 하면 됩니다. 여러분, 넘 어진 자들이 있습니까? 섭리사 나간 자들, 넘어진 자들이 있습니까? 지금 다시 중심잡고 세우면 됩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죠? 선생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죠. 넘어졌어도 중심을 놓고 세우면 다 시 세울 수가 있어요. 선생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고, 그 말이 내 귀에 박히기 시작하고, 그에 대한 믿 음이 생기면 이제 넘어졌던 돌이 다시 세워지듯이 다시 넘어졌던 마음이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절대 여러분은, 섭리사는 겪잖아요. 그거 하나 흔들리면 다 흔들리는 것을 아시잖아요. 하나님이 원하 시는 대로 해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영원히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의 중심대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고 그 중심에서 생각하시는 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역사해야 됩니다. 하나 님이 중심을 얼마만큼 보시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섭리사 오기 전에 행했던 모든 것까지 다 그 중심을 보십니다. 어떤 사람은 “저 사람은 특별한 것도 없는데 왜 저 사람을 쓰지?” 합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저 중심이 어떠했는가? 보고 쓰십니다. 다윗도 그래서 겉에 봤을 때는 사무엘이 사울보다는 별로 못한 것 같은데, 그런데 하나님이 “중심을 보라. 나는 외모를 보지 않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예를 들어 볼께요. 죽도록 핍박을 했어요. 예수님 역사를 핍박을 했죠. 사도 바울이 제자 들도 핍박을 했어요. 그러다가 새 역사로 왔어요. 베드로는 어때요? 열심히 믿고 따랐잖아요. 사도 바울 은 핍박을 하다가 왔고, 베드로는 따르다가 왔고, 거기서 뭐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왜 사도바울이 12제 자에 못 들어 갔을까요? 그런 게 있지 않았겠어요? 뭔가 있지 않았겠어요?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 요. 나부터도 나는 믿고 따랐는데, 저 사람은 나갔다가 온 거예요. ‘저 사람이랑 나는 다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주님께 엄청나게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왜 갑자기 귀히 쓰임을 받지? 눈 멀고 하다가 한 번 나타나더니 저렇게 할 수 있는 거야? 도대체?” 사람들은 모르는 거 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전에도 사도 바울의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중심을 보시고, 그 많은 자들 중에서 그를 택하신 것입니다. 그 중심을 보시고 결국 역사하셔서 그가 돌이키게 된 것입니다. 고 로 결실을 했죠. 하나님은 이 것, 저 것을 다 보십니다.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중심까지 속속 다 꿰뚫 어서 여러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속으로 행한 것들, 기도한 것들, 주님께 감사한 것들, 편지 한 장 못 받고 나를 PR하지는 못 했지만 주님께 다 드린 것을 다 아십니다. 여러분, 지금은 간판역사 아니예요. 간판만 별미떡집이라고 해서 별미떡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별미떡집이라고 부르지 않겠 죠? 주님은 지금은 속내를 보세요. 정말 마음을 보시고, 중심을 보시는 때가 마지막으로 왔어요. 왜요? 이제는 진정으로 마지막 때, 영적 재림의 때가 왔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행한 것은 자기가 다 받습니 다. 절대 자기가 행한 것은 자기가 다 받습니다. 그러니 절대 여러분 낙심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중심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온전하게 중심에 꽂아놓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은 사람의 마음이 하늘에 쏠리면 하늘로 넘어가고, 사람의 마음이 세상으로 쏠리면 세상으로 넘어 갑니다. 세상의 일을 해도 중심이 주님 앞에 있으면 절대 세상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어떻게요? 다스 리게 되겠죠. 이런 역사까지 우리가 이루어야 합니다. 영육 간에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야 되겠습니다. 믿습니까? 이제 좀 우리의 중심, 바로 우리의 마음이 시대 보낸 자 그를 중심으로 삼고 살아야 되겠죠? 이것이 오직 구원의 길이요, 휴거의 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때가 어느 때인 지 알아야 합니다. 때가 어느 때인지 알아야 흔들리지 않아요. 그러려면 시대 말씀을 알아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땅에서 어떻게 역사를 펴 나가시는지 알아야 중심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중심을 어디에 두고 가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 인생의 최고의 중심입니까? 가정국들은 특히 잘 생 각해 보세요. 그 중심이 절대 흔들리지 않는 한, 여러분의 영육간에 축복이 보장이 되어 있어요.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로 향해 있습니까? 보다 무엇을 향해 있습니까? 가장 최고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정말 새 시대를 향해 여러분의 중심이 그곳을 다 향해 있습니까? 그리고 진정 그 시대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는 마음, 그 중심으로 여러분의 마음이 차 있습니까? 정말 주님의 신부가 되고 싶습니까? 정말. 정말. 세상에서 그런 소리 들어봐야 되요. 저는 들어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너 미쳤구나.” “그래. 나 미쳤다. 미쳤어. 천국가고 싶어서 미쳤다. 미친 건 이렇게 정신이 미친 게 아니야. 도달하는 거지. 정 말.” 여러분, 도달했습니까? 정말 믿기를 원합니까? 정말 휴거되기를 원하십니까? 정말 하고자 원하시는 거예요? 정말이요? 저는요. 섭리사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것이 바로 이거예요. 하고자 하는 것, 너무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제가 간증 많이 해요. 사람들에게요. 처음 성령집회를 할 때요. 2년 동안 무슨 생각을 한지 아세요? 다음 성령집회가 올 때까지 목요일부터 는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무슨 생각을 머릿속에 하냐면, 말씀 생각을 해야 하는데요. ‘쓰러져야 되겠다. 주여. 체면을 걸자. 쓰러지자.’ 그 때 또 나이도 어렸잖아요. 말씀을 처음 전해보지 않습니까? 저도 고정 관념이 있었잖아요. ‘내가 이걸 어떻게 하지? 나는 쓰러져 쓰러질 거야. 쓰러져. 쓰러져. 아무도 안 깨울 꺼야. 일어날 때까지. 갑자기 목소리가 안 나오나?’ 아아. 목소가 너무 잘 나와요. 목소리가 쉬지도 않 아. 체력도 건강해. 감기도 안 걸려요. 미치겠는 거예요. 한 번씩 밖에 안 아프고. “약먹고 일어나면 아 플 거야.” 그런데 약 먹고 딱 일어났는데 너무 괜찮은 거예요. 그래서 참 이게 이렇게 부족한 자를 주님이 쓰신다는 거예요. 정말 말씀을 전하는 공포증에 시달리면 서 정말 너무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런데 내가 중심을 잡는 거예요. 내가 뭘 하고 싶으냐면 선생님을 멋 지게 증거하고 싶은 거예요. 왜? 왜? 그가 잘 되어야 내가 잘 되는 것을 알고 있어요. 왜? 중심자의 운 명은 나의 운명이고, 시대의 운명임을 너무 알고 있기 때문에 안 하고 싶은 1순위가 단상서는 것인데요. 안 할 수가 없어요. 내 마음이 왜 하고자 하느냐? “단상에 마이크 잡고 싶어.” 이게 아니라 “증거하고 싶어. 증거하고 싶어. 한 명이라도 깨닫게 하고 싶어.” 였어요. 왜? 왜? 내가 그 삶을 보았고, 내가 역사 를 보았고, 내가 깨달았으니까 “하고 싶다. 진짜 하고 싶다. 정말 멋있게 증거하고 싶다. 그래서 제대로 알려주고 싶다. 선생님이 멋있게 드러났으면 좋겠다.” 하게 됐어요. 그래서 중심이 하고 싶은 마음에 쏠렸어요. 여러분, 제가 안 하고 싶었던 것을 보셨어야 된다니까요. “나는 쓰러질꺼야. 쓰러질꺼야. 10분 후에 쓰러질꺼야.” 진짜 별 생각을 다 했어요. 너무 힘들어 가지구 요. 진짜 이 부족한 사람인데 그 중심이 시대가 무슨 시대가 무슨 시대인지 너무 아는 거예요. 너무 느 껴지고, 기도만 하면 너무 깨달아지고, 너무 엄청난 역사 속에 사는 거예요. 너무 완벽한 말씀, 누가 뭐 라 해도 흔들리지도 않아요. 여태까지 흔들린 적 한 번도 없어요. 말이 이상하면 그 사람 때문에 열이 나요. 그래서 “내가 더열심히 믿어야 해. 저런 사람 때문에.” 하고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정말 그렇다니까요. 저희가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이걸 어떻게 이야기해 요? 지난 세월 동안 선생님께서 다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 때가 어떠한 때인지 우리 이제 무덤기간까지 벗어났는데, 말씀도 너무 합당한 거예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진짜 너무 행복하더라구요. 정말 역사를 만난 최고의 순간, 때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성자 본체 말씀이 선포되었 을 때 정말 너무 미치도록 감사한 거예요. 너무 정말 미치도록 감사한 거예요. 그런데 때에 맞게 부활의 역사를 시작해 주시고, 성령의 역사를 시작해 주시고, 정말 미치도록 감사한 거예요. “정말 나 살리려고 계획하신 역사구나.” 성약역사는 다른 말로 하면, 저는 매일 이렇게 선생님께도 이렇게 표현해요. “선생 님. 성약역사는요. 나 살리려는 계획적인 역사입니다.” 나를 완성시키려는 계획적인 역사가 아니면 도대체 이게 뭐냐고, 때에 맞춰 성령줘. 진리줘. 거기에 모 든 역사 다 주고 말씀이 기가 막혀. 기가 막혀. 정말 기가 막힌 거예요. 너무 감사한 거 있죠? 여러분, 정말 알고 있죠? 시대 말씀 위에 확실히 서야겠습니다. 깨닫지 못 하면 깨닫게 기도해야 되겠죠. 더 여 러분이 아는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넓혀 나가서 확실하게 산다면 여러분 이 때는 부분적으로 알 지 않고, 모든 것을 밝히는 때 누가 뭐라고 이상한 말을 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정말 모르는 자 이 모 든 것을 다 풀어야 하죠. 영적재림와 영적휴거를 어떻게 이루는지, 주와의 사랑은 무엇인지, 왜 사랑하 라고 하시는 것인지, 천국가서는 어떻게 사는지 너무 신기한 거예요. 누가 이거 가르쳐 줍니까? 누가 가 르쳐 줘요? 없어요.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해요. 유명한 목사님들 많다구요? 여러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가르쳐 줘도 믿기 싫고, 하기 싫고, 완고하며 완악하면 하나님께서 버려 두실 수 밖에 없고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 둘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1장 28절로 32절에도 말씀했잖아요.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 두셨다.”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그러니 어때 요?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가 되고, 시기, 분쟁, 살인, 악독이 가득한 자가 되고, 수군 수군하며, 자랑하며, 악을 도모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우매하며, 배악하며, 무정하며, 무자비한 자가 된 다.“ 하셨습니다. 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 두어서. 이 시대에 왔어도 그 시대에 보낸 자를 받아들 이고자 하는 그 마음이 정말 간절하지 못 하다면 그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 두사 이 역사 속에서는 벗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반드시 시대에 날고 기는 자, 정치에서 종교에서 아무리 날고 기더라도 반드시 새 역사가 시작되었으 면 새 역사로 넘어와 시대의 분체를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를 통해 주님께로 가야 만이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마지막 성경구절 하나 더 말씀드리고 오늘 말씀 마칠 것 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3절로 19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장차 없어질 것 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 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 서만이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서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 광에서 영광에 이르리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아멘. 수건, 그 수건 하나가 덮고 있어서 지금까지도 하늘의 말씀을 읽을 때에 깨닫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오직 나사렛 예수님께로 와야 구약의 수건이 벗겨져 온전한 주의 형체를 볼 수 있었듯이 이 시 대 또한 이 시대의 보낸 자를 받아들일 때, 신약의 수건이 벗겨져 주의 형상 바로 성자의 형상을 보며 완전하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며, 주의 영광에 오르는 영광스러운 자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진실로 여러분, 성경을 한번 쭉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시대의 완악한 자, 완악한 마음, 그대로 그들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 주께서 역사를 하시지 못 한 역사가 대부분이었음이 대부분입니다. 주님은 보여주기 원하 시고, 성령주기 원하시고, 역사하시기 원하시지만 내 마음이 완악해. 완고해요. 그러면 절대 역사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기회, 여러분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그 날이 언제 이를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과정 가운데 모든 것이 진행되며 모든 것이 결정이 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결심하고, 결실하려고 해야 되겠습니다. 우주와 지구와 사람이 137억년 만에 일어나는 역사, 구원역사 6천년 만에 일어나는 근본 창조목적을 이루는 역사 이것을 제대로 알면 밤잠이 안 올 거예요. 여러분, 마지막 기회의 기도는 어떻게든 기회를 잡겠죠. 섭리역사가 어떤 역사인 지 제대로 배워야 되겠습니다. 사람의 역사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임을 제대로 알고 확실한 반석 위에 그 중심 위에 제대로 서야 되겠습니다. 가슴이 타지요. 여러분, 잘 안되니까 아는데 잘 안 되요. 아는데 잘 안 되요? 고로 배워야 되겠습니다. 고로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알아요. 내 마음이 타요. 그래서 애 타요. 내가 증거하지 못 하고, 외치지 못 하니까 내 마음이 너무 애가 타요. 뭐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말 을 못 하고 왔어요. 너무 속상해요.” 그러니 능력을 구하세요. 배우세요. 배우시고, 실천하시기 바랍니 다. 여기 있는 저 부족한 자도요. 단 한마디도 가서 외치지 못 했습니다. 누가 뭐라고 했을 때 그냥 다만 “나는 그 말 안 들을래요.” 그랬어요. 그러니까 돌아오니까 화가 나고 가슴이 타더라구요. 그래서 10년 동안 배웠습니다. 10년 동안 배우고 계속해서 연구하고 계속 해서 그 말씀으로 무장하니까, 그 말씀으 로 무장하고 내 확실한 믿음, 그 중심 앞에 서서 성령으로 증거하게 되더라구요. 여러분, 불가능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 정신이 문제예요. 정신이 문제예요. 여러분의 중심이 어디로 쏠렸는지 가 문제예요. 아는데, 이 역사가 주님 당세 때 이 당세 때 찬란하게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너무 원해서요. 속에 있는 게 다 나올 거 같아요. “주여. 너무 원해요. 누가 원해요. 내가 원해요. 내가 원하 면 내가 구경꾼이 되지 않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어요. 그래서 나는 주님께 사용받겠어요. 저는 너무 원합니다.” 눈뜨고 시대 보낸 자가 살아있을 때, 어마어마하게 많은 생명들이 와서 이 시대 믿지 못한 자들이 자 연굴복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달라구. 그러니까 너무 원하니까요. 사도 시대보다 더 해야 되요. 더 더 확신에 차서 더 연구하며, 더 배우며, 더 기도하며, 더 주님의 능력을 구하는 거예요. 안 그러면 못 하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못 하니까요. 여러분, 마음이 어디로 쏠려 있습니까? 정말 그러하길 원하십 니까? 그 중심을 보고 역사하십니다. 생명들 또한 그 중심을 보고 넘어 옵니다. “뭐야? 도대체 뭐야? 이 분위기, 이 자신감은 뭐야? 이 눈동자는 뭐야? 있다! 살아있다! 살아있는 역사다! 그래! 이 곳이다!” 하 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의 정신을 완전하게 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마지막 말씀, 주님은 성자 주님은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큰 축복을 하나 주었으니 나는 너에게 정신의 축복을 주었다. 모두 그러하니 정신 축복 받아라. 그래야 너희의 영을 구원하여 영원히 살게 된다. 정신 의 축복은 영의 축복으로 이어진다. 정신을 가지고 능력을 행하여 이상을 이루어라. 고로 오늘 너희 모 두 정신의 축복을 받아 정신 바짝 차리고 일어나 그 중심에 쏠린 대로 행하여 능력받고, 불가능이 없이 행하기를 바란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축복의 말씀입니다. 저도 정신축복을 너무 받고 싶습니다. 무한한 그 선생님의 정신축복을 받음으로 인해서 이 시대 놀라 운 비밀을 하나 하나 파헤치고, 그리고 그 정신축복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 엄청난 핍박을 이겨내며 하 나님의 역사를 굳건하게 세워 나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말씀으로 길러 주셨죠. 저도 그 축복 받고 싶습니다. 그의 힘이 되어 드리고 싶구요. 정말 미련없이 우리의 아픈 마음, 왜 마음은 이렇게 아프지? 이것은 섭리의 시련일 것입니다. 섭리의 시련이 있으니 내 마음이 아플 거예요. 그러니 결심합니다. 이 제는 가노라. 새 역사를 향해서 미련을 모두 모두 버리고, 중심을 절대 한 군데로 온전하게 하면서 더 시대를 외치길 연구하고, 노력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기회를 잡겠노라고 주 앞에 간구하며 성령을 구합니다. 주여. 홀로 행할 수 없으니까 주님 나의 간절한 마음, 나의 중심의 마음 가운데 뜨거운 성령으로 오늘 나 좀 불태워 주시옵소서. 내일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주여. 오늘 오늘 뜨거운 성령으로 다시 한 번 나 를 불태워 내게 정신의 축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시간 되겠습니다. 이 자리에 성령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임하소서. 성령이여. 주께 진실로 감사함은 믿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진실로 이 시대를 너 무 사랑하게 해주심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주님. 이 섭리사를 사랑하기 원해요. 내 몸처럼 나의 삶처럼 진실로 사랑하길 원합니다. 시대 보낸 자를 아끼며, 이 역사를 아끼기를 원합니다. 나의 역사가 되어서 이 당세 때 나의 작은 우리의 작은 힘들과 힘들이 만나서 진실로 큰 역사를 하늘 앞에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약한 자 굳건하게 해 주시고, 굳건한 자 더욱 더 외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역사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성령의 불길 내게 내려와. 찬양 ‘임하소서 성령이여’ 마침기도) 살아서 움직이며 항상 차원을 높여 썩은 물처럼 고이지 않게 하시며 우리를 날마다 날마다 날마다 살아 있게 하시는 하나님, 살아계신 자의 살아계신 하나님, 그리고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 진실로 감사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살아있게 하심에 감사하며, 그 마음에 따라 우리의 행실과 우리의 삶이 살아있게 하심을 감사하옵나이다. 주님. 생각의 잠을 자지 않게 하시옵소서. 마음의 잠을 자지 않게 하시옵소서. 주님. 그 정신에 잠을 자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날마다 깨어있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진실로 역사 가운데 우 리가 이 역사로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무엇 때문에 주님을 나의 신랑으로 맞이하게 되었으며, 삼 위일체가 존재하시고 그 성자가 재림하셨다는 것을 내 어찌 알 수 있었겠사옵나이까. 그러면서 어찌 이 휴거를 이루며, 주님의 뜻을 이루며, 너무나 막연하고 막연해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흐 릿하고 흐릿해 그 모든 것들을 주님 확실하게 사람과 사람이 대하듯 알게 하시고 보게 하시며, 밝히 보 이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이렇게나 감사한데, 주님이 생각하시는 만큼 우리가 감사하고 있으며 우리가 그만한 확실한 반석 가운데 서 있습니까. 주님. 내 마음에서 인정하면 하나님도 인정하신다고 하셨사오 니 이 마음에서 인정할 수 있게끔 확실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믿음도 없는데 어찌 사랑의 역사를 이루 며 말씀에 굳건하게 서지 않았는데 어찌 하늘과의 사랑을 이룰 수가 있겠사옵나이까. 굳건케 하시옵소 서. 중심을 잃지 않게 하시옵소서. 고로 넘어지지 않게 하시옵소서. 흔들리지 않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애타게 하시옵소서. 애타, 애타, 내 것이니까. 내 사랑하는 자는 내 것이니까. 그가 잘 되야 내가 잘 되며 이 역사 그 모든 것이 잘 되야 내가 잘 되며 그 사랑하는 자가 너무나 잘 되기를 원하는 마음을 신부들에게 주시옵소서. 그러지 아니하면 어찌 사랑하는 자라 할 수 있겠사옵나 이까. 선생님처럼 너무 간절하게 너무 너무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 모든 뜻을 다 이룸에 앞서 시대에 모 진 핍박, 주님 그가 당하는 것을 어찌 다 알 수 있겠사옵나이까. 그 모든 환란과 무지 속에서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그 모든 세계 속에서도 주님 앞에 조건을 세우며, 때에 따라 주님 키우시고 성장시키시 고 택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주님. 그 정신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베풀 어 주시어 주님 나보다 시대를 아끼게 하시며, 역사를 아끼며 주님을 아끼게 하시옵소서. 그래야 사랑하는 자이지요. 그래야 인정을 받지요. 내 마음 속에 가장 중심 가장 중심이 무엇입니까. 내 자식보다 내 아내보다 내 남편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더 아끼게 하시옵소서.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자의 본분이요. 그래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우리가 가질 수 있사오니 주여 그렇게 할 때에 성자의 능 력을 주시옵시며, 성령의 불을 주시옵시며, 그 권세를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시대의 날고 기는 자 어찌 때를 모르고 이 때에 맞추어 이 시대 보낸 자를 맞지 않고서 구원을 이룬다 할 수 있겠사옵나 이까. 율법 속에 날뛰어도 신약말씀을 들어야 되고, 신약말씀에 날뛰어도 이 귀한 시대를 만나 이 말씀 을 듣지 못 하면 주님께로 신부로서 갈 수 없사오니 깨닫게 하시옵소서. 알기는 아는데 애타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 보시옵니까. 애타면 행하게 하시옵소서. 중심을 보시사 반드시 그를 크게 쓰시는 주님 무엇 으로 증거하겠습니까. 세상 명예로 그를 증거하겠사옵나이까. 아니지요. 정말 진실한 사랑으로. 애가 타요. 너무 애가 타요. 내 것 같아요. 나의 아픈 마음이 나의 아픈 마음인 줄 알았더니 이 섭리의 시련, 그리고 내가 아끼는 자 그의 시련이 내 마음에 올 때에 그렇게도 아프고 그의 기쁨 이 섭리의 기 쁨이 내 마음에 왔을 때 그렇게도 기쁜 거죠. 주님. 그러한 단계로 가게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단계에 도달했다면 진정으로 주님 변화되게 하시며, 도달하게 하심으로 그리고 시대를 증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르는 자들 그냥 두면 안 되지 않겠사옵나이까. 부족한 자에게 채우시옵소서. 우리가 부족 하니 주님의 능력이 필요하니 주시옵소서. 믿고 간구하는 모든 자, 행하는 자, 주시옵소서. 주님. 아픈 자 있습니다. 오늘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놓고 기도했으니 주여 나의 능력이 아니요, 주님의 능력이 요, 성자의 능력인 줄 믿사오니 간절히 간구함으로 믿음대로 낫게 하시며 그 능력을 사모하고 그 능력 을 믿고 확신한 대로 낫게 역사하시옵소서. 주님. 우리의 육신만 하루 이틀 더 살려고 하면 뭐 합니까. 영혼을 보게 하시옵소서. 주님 영혼을 보게 하시옵소서. 주님. 모르면 깨닫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믿게 하시옵소서. 가장 시급한 것 지금도 이 순 간도 사망으로 툭툭툭툭 떨어져 나가는 저들을 기억하시사 우리 섭리사 가운데 완악한 마음을 태우사 섭리사의 완악한 자들의 마음을 대신 회개하오니 주여 돌이키게 하실 줄 믿사옵나이다. 주여. 흔들리지 않게 하시리라 믿사옵나이다. 점점 굳건함으로 발전하게 하시며, 진정으로 이 당대 때에 온전한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고자 하는 그 마음 그냥 구경꾼이 아닌 진정으로 그 시대의 주인이 되어 뛰게 하시옵소 서. 그와 같은 정신의 축복과 실천의 축복을 주시옵소서. 또한 성령의 뜨거운 불을 주시옵소서. 강원지역 주님 이미 섭리촛대가 꽂힌 지 오래 되었지만 모든 상황상 어렵고도 어려운 길을 걸었사옵나 이다. 이제는 회복시키시옵소서. 이제는 주님이 부활하여 부활기 역사 이루어가고 있사오니 회복시키시 옵소서. 이 11개의 교회가 모두 살아나고, 우리 기드온들 그 마음을 살려 주셨사오니 그 마음들을 주셨 사오니 더 살아나게 하시옵소서. 그러므로 진정 주님 이 곳에서 뜻이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뜻이 있으니 주님께서 도우시고, 함께 하시고, 능력을 주실 줄 믿습니다. 악한 모든 것들 지푸라기 같이 악한 모든 것들이 다 태워지기를 원하옵고 원하옵나이다. 섭리사 이제 마지막 기회, 이 시대 마지막 기회, 성자역사시대 중심을 두지 않으면 성자 역사 시대를 맞 이할 수 없사오며 마지막 기회를 온전하게 맞을 수 없사오며 버림 받을 수 밖에 없사옵나이다. 중심을 온전히 두게 하시옵소서. 또한 이 마지막 때에 섭리사에 남아있는 모든 문제들을 태우시옵시며, 악한 무 리들을 태우시옵시며, 모든 악의 마음들을 제거하시옵소서. 오직 주님께로 향하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원 하옵나이다. 주님. 세상은 이해를 못 하죠. 그들에게 끌려가면 되겠사옵나이까. 시대에 축복을 받은 자들 이 시대를 끌게 하시옵소서.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덮게 하시며, 그 사랑으로 세상을 덮게 축복하시옵소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축복은 이미 주었으니 받는 자의 것이다.” 말씀하셨사옵니다. 주님. 그것을 믿고 아끼며 사모하며 간절히 원하는 자에게 그 축복을 주시사 주님의 몸되게 하여 주시 옵소서. 주께 모든 역사 감사를 드리며 이제 남아있는 7월 이 귀한 순회 더욱 더 불을 붙여 나가며 하 계 수련회를 맞아서 8월달 해방의 때를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뒤집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하옵나이다. 주 여. 이대로 있지 않게 하시며 뒤집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시대 때 성령의 역사 일어나 판결문이 뒤집어 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뒤집어져서 역사가 일어났듯이 이 시대 우리의 마음이 뒤집어져 역사 이루게 하시옵소서. 그것이 참역사이며 그것이 하늘의 역사인 줄로 믿사옵나디다. 시대 끝까지 따라온 자들 앞으로 낙오되지 않게 하시리라 믿사오며, 주님의 능력 은혜 감사를 드리옵나 이다. 사랑하는 선생님. 그의 정신 그것을 우리가 본받기를 원하오며, 또한 우리가 그에게 매달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옵나이다. 그 운명이 우리의 운명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사 오니 그의 기도대로 속히 해결하게 하여 주시옵시며, 그의 기도대로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시며, 주님 철장권세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놀라운 능력으로 그를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그의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진실로 주와 일체되어 사는 그의 삶이 온전하게 나타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태워 주 시옵소서. 그것이 중요하고 중요하옵나이다. 우리의 모든 영광 다 주께 돌립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모든 죄를 청산해 주시며, 우리를 값을 주고 사셨사오니, 우리에겐 불가능한 것이 없사 옵나이다. 그러나 주님과 떨어지면 우리는 바로 추풍 낙엽같이 떨어지는 인생, 주와 붙어 그 권세를 가 지고 세상의 귀한 자들 주님께로 데려오는 역사 놀라운 역사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죽은 자의 마음. 약 한 자의 마음. 회복하시며 회복시켜 주시옵시며 주님 굳건하게 결심한 자들의 마음을 더욱 더 행하게 하여 주시옵시사 결실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영광 주께 돌립니다. 우리의 모든 사랑 주께 돌립니 다. 받아주시옵소서. 모든 것 주께 감사를 드리며, 진실로 마지막 이 때 변화되며 섭리사의 모든 악한 것들이 태워지기를 원하며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간절히 원하며 그리고 주님께 간절히 붙기를 원하 오며 모든 기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이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성삼위께 뜨거운 박수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주님께로 늘 말씀으로 키우시고, 우리를 주님께로 늘 인도해 주시는 선생님께 힘찬 박수 보내드리면서 힘드리고 싶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마지 막 기회 정말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 일으켜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뒤집어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기도의 사도 22명 정도 7시간이상 기도를 하고 있더라구요. 보다 지금 신청을 받고 있구 요. 선생님께서는 30명만 딱 뽑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기도의 사도 30명이 뽑히면, 그들이 세계와 민족 을 위해서 섭리사를 위해서 기도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과 같이 기도 를 하게 되겠죠. 여러분들, 꼭 더 기도의 사도 7시간은 못 하더라도 여러분의 기도의 분량껏 이 마지막 기회의 때 여러분을 위해서 꼭 기도하고 더 나아가서 선생님을 위해서 섭리사를 위해서 꼭 기도하는 역 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모이기가 굉장히 힘든 지역인데요. 멋있게 순회를 준비해준 강원도 지역에도 우리 전 세계 뜨겁 게 박수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각 교회 계신 여러분들에게도 뜨거운 박수 보내 드리 겠습니다. 이 귀한 시간 마치고, 이제 다음 주는 울산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는 전북 그렇게 되면 이 제 하계 수련회가 시작되겠죠. 날마다 새 이벤트이죠. 8월이 끝나면 우리에게 9월이 또 있습니다. 인천 을 시작으로 또 순회가 시작이 되겠죠. 주님께 이 모든 역사를 맡기지만 하지 말고, 우리가 같이 동참해 서 해나가야 되겠습니다. 우리 같이 “성자역사시대 마지막 기회다.” 외치고 오늘 섭리이슬 마지막으로 찬양하고 마치고 싶습니다. “성자역사 시대 마지막 기회다.” 섭리이슬. 여러분, 이 섭리이슬 너무 가사가 멋있죠. 역시 말씀처럼 너무나 주옥같은 귀한 이 가사들 이 찬양을 부르면서 개인도 사랑하고, 보낸 자도 사랑하지만, 이 섭리역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섭리역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이 찬양을 하게 되더라구요. 나 이제 가노라. 새역사 향하여. 미련을 다 버렸지만 더 완전하게 버리고, 정말 하나되어서 중심을 중심으로 잡고 절대 넘어지지 않고 나가는 우리 섭리사가 되길 기도합니다. 긴밤 지새우고 심령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주의 진리처럼. 찬양 ‘섭리이슬(Providence D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