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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2.07.26 (목)

계시말씀 fd93a041

선포일
2012.07.26 (목)
성경 본문
새벽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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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기도 가치 작성일 : 2012. 4. 16. (금) 새벽 3:40 작성자 : 정명심 목사 ( 전날 정해 놓은 시간을 어기고 한 시간 늦게 기상 하였습니다. 후다닥 씻고 회개기도부터 했습니다. 예 전에 선생님께서 3시 기도와 3시 1분의 기도의 차이 는 기분부터 상하는 거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1시간 이나 늦었으니 정말 기분부터 좋지 않았습니다. ‘아... 제 시간에 일어났으면 회개기도 할 시간에 은 혜로운 기도를 더 많이 했을 텐데...’하며 뉘우치며 주님께‘기도’에 대해 여쭈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기도하는 시간의 차이는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갓 나온 신선한 음식과 떨이로 싸게 파는 음식과 같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너는 수십억대의 손해를 본 것이다. 잡을 수 없는 것이 시간이요, 물질이야 소모품이라 다시 사다 놓을 수 있지 않느냐? 하지만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시간, 젊음, 청춘, 세월, 홍안, 변질될 대로 변질된 사상이 아니더냐? 기회는 자주 오지도, 쉽게 오지도 않는다. 그 때에 잡아야 한다. 기회를 잡아라. 기회의 때에 태어난 너희들임을 잊지 말아라. 한낱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내가 깨워줄 때 일어나서 새벽을 깨워라. 그리고 하루를 깨워라. 더 나아가 인생을 깨워라. 나와 함께 깨우자! (“주님, 제가 늦게 기도하는데 밉지 않으세요? 주님 께 여쭙자마자 바로 말씀을 주시니 너무 놀랐습니 다.”) 너희를 구원길로 이끌고자 한 마디라도 더 해 주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다. 하지만 너희가 듣지 않으려고 한 거지. 마음의 귀를 닫고 너희의 방식대로 기도하려고 한 거지. 각자마다 주어지는 기도의 시간 나 성자와 대화하고 애쓰는 자들은 듣게 된다. 마음의 귀를 열어라. 성령이 너희로 듣게 하리라. 나 성자와 여호와가 하는 소리를 귀 있는 자는 들어라. 사랑하는 신부야, 귀를 닫으면 안 된다. 여기서 귀는 육신의 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요, 사랑의 귀, 성령의 귀, 은혜의 귀, 사망 권세를 이긴 귀를 말한다. (“주님,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대화입니까?”) 대화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묻고 대답하는 것이 대화 아니냐? 나 예수의 심정 알아주면서 내 심정 헤아려도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희 속 이야기도 하고, 내게 묻고 질문도 하면서 번갈아 기도하는 것이다. 내가 지적하는 것은 너희 일방적인 기도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예의가 아니지 않느냐. 어른 모셔 놓고 자기 혼자 하고 싶은 말만 하면 기분 상하는 것이다. 모시고, 대접하고, 맞장구도 치면서, 배려하는 것이 어른을 대우하는 태도다. 맞지? 서로 존중하며 뜻을 나누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그러한 태도로 나와 대화하는 깊은 기도하자. (“주님, 선생님의 기도의 가치성은 어느 정도입니 까?”) 선생이 하루라도 기도를 놓쳤다고 치자. 그러면 지구에 얼마나 막대한 손해가 가는지 아느냐? 선생 지금 그곳에 있지? 너희가 그러한 곳에 갇히게 된다. 영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죄 많은 너희가 무슨 수로 하늘 귀한 말씀을 듣고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옮기게 되었는가, 누구의 의로 배불리 먹고, 의롭다 함을 얻었는지 근본적으로 생각하라. 내 뜻으로 너희를 섭리에 불러 영육 성장시켜 영화롭게 할지라도 내 육신 통해서만 실현 가능케 할 수 있음을 진정 깨달아라. 사망 육신의 권세는 영이 아니라 육신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 나의 육 된 자의 기도와 조건과 사랑과 보살핌의 연속으로 자유함을 입은 것을 인정하라. 너희로 내 속내를 그를 통해 보인 것을 알라. 알고 시인하면, 나와 이 역사를 인정한 것으로 사망 권세가 절대 너를 삼키지 못하리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나의 사랑의 영이, 여호와 전능자의 영이 늘 함께하며 너를 지키리라. 놀라워도 말고 두려워도 말지니 이는 내 아버지의 영원한 언약이니라. 사랑하는 신부야, 기도는 사랑이라 했다. 너는 그것을 기억하느냐? (“아멘.”) 사랑하면 기도하지 않고 살 수 없다. 사랑이 많은 자일수록 기도한다. 고로 사랑에 충만한 너희 선생은 쉬지 않고 밤낮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너희들아, 사랑해 보아라. 맘껏 사랑해 보아라. 북풍한설 불어 닥쳐도 사랑하는 임의 집을 찾아 나서듯 눈보라 뚫고서라도 그 길을 가라. 태산을 넘어 협곡만 지나면 사랑하는 임을 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넘어라.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빗속을 뚫어라. 햇살이 뜨거워도 햇볕에 타들어 간다 할지라도 임 볼 수 없다면 더 심정 타 차라리 그게 낫다는 심정으로 지구 어디라도 가라. 사랑하면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면 가까워진다. 이것이 모두 너희의 사연들이 되길 원하노라. (“주님, 선생님을 위해 우리들이 왜 기도해야 할까 요?”) 식물의 이치와 같다. 근본인 뿌리가 좋아야 줄기, 잎사귀, 꽃과 열매가 좋은 것이다. 선생이 잘돼야 너희가 잘되는 이치가 이와 같다. 뿌리에 충분한 영양과 산소와 수분이 필요하듯 너희가 그를 위해 더 사랑과 심정과 관심을 쏟을수록 그가 더 책임분담의 능력이 생기고, 그로 말미암아 너희도 힘이 생기고 능력이 생긴다. 뿌리가 좋아야 꽃도 피우고 열매도 튼실하게 맺는 것이다. 서로가 필요한 존재다. ‘나’라는 대지에서 태어난 너희여, 나는 너희 선생이라는 씨앗을 택했다. 그 씨앗에서 너희가 났고 지금도‘그’라는 씨앗에서 너희는 줄기가 되어 뻗어 나가고 있고 꽃을 피우고 있다. 이제 열매만 열면 된다. 뿌리가 병들지 않고 더 튼튼하게 힘을 발휘할 수 있게끔 기도해 주어라. 그가 너희 육의 휴거를 담당하고 있음을 잊지 마라. 사랑해서 내가 한 말을 잊지 마라. 심정 태우며 속 태우며 한 말을 평생을 두고 기억하라. (“주님, 선생님 기도를 하는데, 그가‘육적 본체’인 만 큼 제발 그의 급에 맞게 차원을 높인 기도를 해 드리고 싶은데, 항상 수준 낮은 기도를 해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고 잘 안 되서 애간장이 탑니다.”) 사랑하는 자야, 너는 누가 너를 위해 기도를 해 준다면 어떤 기도를 받고 싶으냐? (“제가 그 때 제일 고민하는 것을 기도해 주면 좋 죠.”) 그도 그러하다. 그가 그 때에 가장 고민하는 것을 같이 기도해 주어라. 그리고 그의 영, 혼, 육을 두고 두루두루 기도해 주어라. 기도의 차원을 높임은 주어와 형용사와 조사로 높이는 것이 아니라 심정의 차원을 높이는 것이 곧 기도의 차원을 높이는 것과 다름없다. 총에서 총알이 장전되지 않으면 나가지 않는 것이다. 총구를 가장 핵심에 대고 발사해야 들어가듯이 겉 기도 해 봤자 튕겨 쳐 나간다. 선생이 가장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늘 주시하면 그와 같이 이길 수 있다. 늘 심정일체, 생각일체, 사랑일체다. 그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의 핵심 관심사가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여 그의 짐을 덜어 주는 너희가 되도록 하자. 기도하는 만큼 이루어진다. 기도는 사랑이라 했다. 선생은 너희의 사랑이요, 나의 사랑이요, 너희들의 미래요, 희망이요, 한 운명이다. 한 나무에서 난 가지는 일반적으로 동일하게 자란다. 하지만 세밀히 보면 잎이 피고 꽃이 피고 더 열매 맺는 가지가 따로 있다. 얼마나 양분이 전달되느냐의 차이다. 우리 섭리사도 일반적으로 동일한 신부의 축복을 받는다. 하지만 그를 위해 얼마나 기도해 주느냐? 얼마나 그와 일체 되려고 몸부림치느냐? 얼마나 사랑하는 자를 대하듯 대하느냐에 따라 같은 주관권에 살지라도 더 높은 차원급의 삶을 살고 그에 해당하는 더 큰 축복을 받으며 살아간다. 천국도 이와 같다. 같은 천국의 삶을 살지라도 나와 선생과 얼마나 가까이 대하며 사느냐에 따라 천국도 종적 횡적으로 나뉜다. 이를 가슴 깊이 명심하고 나 성자와 선생을 그리 대하라. 천국이 너희에게 가까이 왔느니라. 나는 너희를 살리는 성자 주 예수니라. 사랑한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