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2.07.30 (월)
계시말씀 f291a080
- 선포일
- 2012.07.30 (월)
- 성경 본문
- 것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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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교통정리
작성일 : 2012. 7. 4. (수) 새벽 2~4:50
작성자 : 이선진
( 선생님과 부흥강사님을 위해 깊이 기도하던 중 주
님께서 사랑에 대하여 가르쳐 주셨고 현재 섭리인들
의 잘못된 사랑의 방식에 대해 지적하셨습니다. 그리
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자 주님의 말씀*
사랑아,
섭리사, 사랑의 교통정리이다.
현재 섭리에는
잘못된 사랑의 방식이 흐르고 있다.
육에게 더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영의 사랑은 소홀이 대하고 있다.
또한 아무리 육이
사랑과 관심을 많이 주려 해도
육이기에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그 육의 사랑을 소유하고 싶어 하고
받지 못하면 서운해하고 섭섭해한다.
보아라.
섭리사 선생과 부흥강사를
대하는 태도를 보아라.
선생과 부흥강사가 나타나면
마치 주님이라도 나타난 듯이
어떻게든 달려가
손 한 번 잡아보고 싶어 하고
말 한마디 건네고 대화하고 싶어 하고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자기 자신을 쳐다봐 주었으면 좋겠고
어떻게든 잘 보이려 용을 쓴다.
그런데 여기에 모순이 있다.
물론 선생은 나의 분체이고
부흥강사는 선생의 분체이니
이 땅에서는 마치 나를 대함같이 대함이 옳다.
그런데 그들의 본체인 내가
너희 곁에 있을 때에는
어째서 그같이 대해 주지 않는 것이냐.
오히려 근본자는 나인데
어째서 나의 분체들을
마치 근본자 보듯 바라보느냐.
잘 생각해 보아라.
쪼갤 건 쪼개야만 한다.
여기에서 각종 사고가 일어나기에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나의 대역으로서
내가 쓰는 육신들이니
그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을
나의 말로 믿고 따라야만 한다.
그러나 너희가 저지르는 우는
그들의 육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그들의 입술을 통해
말씀을 전해 주는 영적인 사랑은
몇 사람을 두고도
혹은 전체 청중을 두고도
한꺼번에 다 줄 수가 있다.
반면에 개인적인 만남, 악수, 기도 받는 것,
직접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는 것,
혹은 편지 답장 받는 것은
1:1적인 것으로
그들도 육이기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너희는 단상을 통해,
그들의 육을 통해 전해지는
나의 말씀 즉, 영적 사랑보다
개인적 1:1의 육적 사랑을
더 크게 보더구나.
또한 근본자인 나는
항상 너의 곁에 있어
너와 말씀, 기도, 실천으로
언제나 교감하고 교류하며
네가 육신 쓴 중심자들과
나누고자 하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데
옆에 있는 나보다
나의 대역일 뿐인 그들에게
더 큰 사랑을 갈망하더구나.
나에게 악수 한 번만 해 달라고 하면
나는 기꺼이 해 주었을 텐데
삶 속에서 나는 본체만체하며
육신 쓴 중심자가 나타나면
마치 연예인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너의 모든 정성을 다하여
만나려 하더구나.
이것이 바로 육적인 모습이며
육을 통해 영을 맞지 못하고
육만 맞는 경우이다.
영인 나를 최우선적으로 귀히 대하며
그 다음으로
육신 쓴 중심자들을 귀히 대함이 옳지
어찌 육신 쓴 중심자들만
귀히 대함이 옳겠느냐.
그러니 섭리사 사랑의 번지수를 잘못 찾아
서운함, 섭섭함, 소외감이 발생되는 것이다.
근본자인 나에게 사랑을 갈망해야지.
근본자인 나에게 받아야 할 사랑마저
육신 쓴 중심자들에게 받으려 하다 보니
그 육에는 한계가 있어
섭리사 서로를 시기, 질투, 미워하게 되는 것이며
서운함, 섭섭함, 소외감 타며
그로 인해 섭리를 나가게까지 되는 것이다.
정신 차려라.
나에게 받아야 할 사랑과 관심을
그들에게 구하지 말아라.
또한 그들에게 힘주고 싶어
직접 만나고자 하는 것이라면
그 시간에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라.
그들이 나와 함께
이 역사를 이루고 이끌 수 있도록
기도해 주어라.
사랑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 줄 아느냐.
진정한 사랑이란
그 대상이 너를 쳐다봐 주든 관심을 주든 상관없이
오직 그 대상이 가리키는 곳을 같이 바라보며
그 대상이 걸어가는 길을 같이 걸어가는 것이다.
그 대상만 쳐다보고 있는 게 사랑이 아니다.
또한 그 대상이 원하는 일을 해 주는 것이 사랑이지
그에게 네가 원하는 것을
간구하는 게 사랑이 아니다.
생각해 보아라.
나도 선생도 부흥강사도
오직 이 영원한 섭리역사를 가리키고 있으며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너희는
역사를 가리키고 있는 우리의 손가락만
바라보고 있는 격이며
역사만 보고 있는
우리의 눈동자만 쳐다보고 있는 격이구나.
사랑아,
명확히 정의를 내려 주마.
육신 쓴 중심자들을 통해서는
오직 그들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는
단상 말씀과 각종 말씀의 사랑만 받으려 하고
그 외에 개인적으로 받고 싶은 사랑과 관심은
오직 말씀과 기도, 실천을 통해 나에게 받아라.
그들에게는 사랑을 갈망하는 입장이 아니라
그저 힘주고 기도해 주며
사랑을 주고자 하는 입장으로만
대하여 주어라.
또한 나와의 1:1 개인적 사랑의 단계를 넘어서
이제는 성숙한 신부의 사랑인
같은 곳, 같은 역사만 바라보며 같이 달려가는
진리의 사랑을 하자.
선생을 통해 말하였듯 ‘뇌’라는 과일로
정신적, 영적 사랑을 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이 시대에 제때 급히 해야 할
새 일, 새 이벤트로
이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근본을 보아라.
육을 보지 말고 영을 보아라.
너 하나 보지 말고 역사를 보아라.
사랑한다.
섭리사 사랑의 교통정리를 한 성자 예수이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