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2.08.0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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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판도가 바뀌었다
이 시대에 합당한 사랑을 하여라
작성일 : 2012. 5. 22.(화) 오전 10시
작성자 : 장정임
( 마음을 몰라주며 심정 맞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는
자를 보며 ‘주님 앞에 우리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들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
서는 “사랑의 판도가 바뀌었다. 그러니 이 시대에 합
당한 사랑을 하여라.”하시며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사랑의 판도가 바뀌었다.
이 시대에 합당한 사랑을 하여라.
끝없이 주어야만 했던 사랑,
그래서 짝사랑의 한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사랑.
이것이 신약에서
내가 인류를 향해 퍼붓던 사랑의 실체였다.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웠던 사랑이었는지 아느냐?
너무 아프고 지루하였지만
무너진 인류를 일으키기 위해
내가 베풀어야만 했었던
사랑의 방식이었다.
외면과 멸시와 천대 속에서도
날마다 눈물로 너희 곁을 서성거리던 사랑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던 내게
한줄기 빛이 날아들었으니
곧 선생이라는 사랑의 빛이었다.
선생은 인류를 향해 하염없이 기다리던
내 사랑의 손을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잡아 주었다.
그와 나의 손바닥이 함께 부딪힐 때
비로소 온전한 사랑의 소리를 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성약의 문을 열던 순간이었으며
한없이 줄 수밖에 없었던 내 사랑의 방식이
드디어 바뀌게 되던 순간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사랑을 받는 자가 되었다.
깊어만 가던 내 사랑의 한이
그로 인해 풀리게 되었다.
환희의 순간, 모든 서러움이
눈 녹듯 사라지던 순간이었다.
그 때부터 나는 더 이상 짝사랑을 하지 않아도 되는
완전한 사랑의 성취자가 된 것이다.
그를 시작으로,
나는 이제 주기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받을 것을 기대하는 사랑을 하게 되었다.
받아서 행복한 사랑을 하게 되었다.
곧 인류 창조의 근본 목적인
‘너와 내가 주고받는 사랑’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가 나를 그리 만들어 주었다.
그가 내 사랑의 역사를 다시 쓰게 만들어 주었다.
그로 인해 내 사랑은 상대적 사랑으로 바뀌게 되었
다.
외사랑의 한을 풀고 상대적 사랑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자가 바로 선생이었다.
사랑은 상대적 세계이다.
특히 성약이 시작된 지금,
내 사랑은 상대적으로 기울어간다.
그러니 너희가 섭리에 있다 하여
내가 너희 모두를 똑같이 사랑할 줄로 생각 마라.
이제는 너희가 사랑하는 만큼 내 사랑도 간다.
적어도 사랑의 방식과 판도가 달라진 시대에
돌입하였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아들 시대 내가 너희에게 준 사랑과
신부 시대 내가 너희에게 주는 사랑이
같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사는 자가 많다.
자식을 대하는 사랑은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비유할 만큼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신약시대 나는 나사렛 예수를 통해 이와 같은 사랑,
자식을 향한 부모의 일방적 사랑을
너희에게 한없이 주고 또 주었다.
죄를 지은 자나 짓지 않은 자나,
많게 지은 자나 적게 지은 자나
모두 동일하게 사랑하며
오히려 죄가 많은 자에게
더욱 애타는 사랑을 퍼부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부모가 자식에게 퍼붓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고 일방적인 사랑을 원하지 않는
다.
선생으로 인해 나는 더 이상
혼자만의 짝사랑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기 때문이
다.
신랑과 신부가 나누는 사랑의 시대이기에
사랑하는 만큼 사랑을 주게 되는 것이다.
곧 스스로가 먼저 나를 사랑함으로
나의 눈길을 끄는 자에게
내 사랑도 흘러가게 된다 함이다.
이것이 신부시대에 해당되는 사랑이요,
땅이 먼저 하늘을 사랑함으로
완성되는 사랑이다.
이렇게 내 사랑의 방식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가 일방적인 사랑을
퍼부어 줄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자는
여전히 아들급 신약역사에 머물러 있는 자다.
신약권에 해당되는 입장으로 나를 대하며
사랑 받기만을 기다리고 기대하는 자는
결코 나의 사랑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랑의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아들의 사랑과 신부의 사랑 차이를 확실히 알고
이 시대에 합당한 사랑을 하여라.
그렇지 못한 자는 성약 주관권에 왔어도
여전히 신약급의 사랑으로 나를 대하니
신부가 되어 주길 기대하며
섭리에 부른 내 희망을 저버리고
또 다시 내 가슴에 사랑의 한을 남기는 자가 되리라.
내가 시대를 달리하여 차원을 높여 사랑하고 있으나
이를 따라오지 못하고 여전히 아들급에서
내 사랑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찌 내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겠느냐.
고로 낙심하며
눈앞에 쉬이 보이는 사랑을 찾아가니
그를 보는 내 심정에
또 다른 사랑의 한이 맺히는 것이다.
사랑은 곧 심정이다.
심정을 알아주고 풀어 주며
심정에 합당한 행위를 할 때
사랑 일체가 될 수 있다.
곧 심정 일체, 사랑 일체니라.
선생은 내 가슴에 맺힌 사랑의 한을 깨닫고
그 피맺힌 심정을 풀어 준 자이다.
알았기에 풀어 줄 수 있었다.
고로 심정을 아는 것이 사랑을 이루는 근본이다.
심정은 어찌 알 수 있겠느냐?
답은 기도이다.
오직 기도로만 내 심정을 내려 받을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무수한 말과 글로
너희에게 내 심정을 전한다 하여도
너희가 심정으로 깨닫지 않으면
절대 내 심정을 온전히 내려 받을 수 없다.
심정 받지 못한 자가
어찌 날 제대로 사랑하는 자라 할 수 있겠느냐.
항상 따로 노는 삶이다.
입술에는 날 향한 사랑의 고백이 가득하나
그 삶은 나의 심정과 상관없다.
그러니 착각하지 말아라.
진정 심정의 세계에 들어와서
심정을 풀고 맞추어야만
사랑의 꽃을 피울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지는 아랑곳하지 않는 자,
내 심정의 물줄기가 어디로 흐르는지는 알려 하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자기가 잘 하는 것으로,
자기가 기뻐하는 대로, 자기가 받고 싶은 대로
내게 자신의 사랑을 들이미는 자.
그를 어찌 내 신부로 삼을 수 있겠느냐.
죄를 지은 자 역시 내게 나올 때는
너의 죄로 굳어 버린
내 심정을 먼저 풀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심정 풀기가 쉽겠느냐.
풀려면 먼저 알아야 하는데
죄의 조건이 있으니
쉬이 알 수 있겠느냐?
어려우니 먼저 풀어야 할 것은 풀지 않고
그저 자기 편한 대로,
자기 할 만한 대로 내게 나온다.
그러한 자,
아무리 그 입술에 사랑의 고백이 있다 한들
내가 그 고백을 온전히 받을 수 있겠느냐.
내 심정 아는 것이 어려우냐?
왜 어렵겠느냐? 기도치 않아서이지.
기도해도 심정을 못 받겠다고?
정확히 말하면 안 받는 것이다.
진정으로 받길 원하는 자에게 내가 안 주겠느냐?
못 받는 이유는 네게 있으니
내가 주지 않아서 못 받는다 하지 말아라.
나는 너보다도 더 네게 심정을 부어 주고픈 자라.
그러나 네가 못 받는 이유는
첫째, 심정을 받기에 합당한 만큼 간절하지 않기 때
문이요,
둘째, 진실로 자기 마음의 틀을 깨고 받으려 하지 않
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돌아보아라.
내 심정을 받고 싶어
네 눈에서 애간장이 녹는 눈물이 나느냐?
진정 네 모든 생각을 내려놓고
내 것 받기를 간구하였느냐?
애가 타는 마음 없이, 네 틀 속에 갇혀 내게 구하니
주어도 받질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자세히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아라.
심정 받지 않고서는 마지막 휴거를 할 수 없다.
마지막 영의 휴거는 영의 세계에 해당되기에
심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육 휴거는 됐으나 영 휴거되기에는 부족한 자 많다
는
선생의 말을 깊이 생각해 보아라.
그 몸은 성약권 역사에 와서 나를 만나
땅에서 혼인잔치를 벌이고 있으나
그 영은 나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무슨 연고이겠느냐? 나와 육으로 만나려느냐?
옳다. 그것은 선생 통해 이미 이루었다.
그러나 영 휴거는 나와 영으로 만나야 할진대
너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겠느냐?
답은 심정이다.
심정은 듣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육계의 말과 글이 아닌
영계의 말과 글이 곧 심정이기에
영계의 언어를 들으려면 진실되고 간절하며
자신을 버린 기도로 나와야 한다.
그동안 선생을 통해 전한 모든 말이
너희 심정의 귀를 열게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심정의 귀를 열고
내 심정의 언어를 받은 자가
그리 많지 않구나.
마지막 천국성령의 역사로
더욱 그 귀를 열고 있으나
자기 주관으로 귀를 막고
인성과 고정관념으로
귀를 막고 있는 자가 너무 많다.
나는 너희 모두가 이 심정의 귀가 열리길 원한다.
기도만이 심정의 귀를 열리게 함을 꼭 알아라.
(주님, 에스더기도와 성자의 기도 등 주님께서 시키
시는 대로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에 다 참석하면서도
심정의 세계를 못 깨닫는 자를 봅니다. 왜 그렇습니
까?)
저 기성에 너희보다
기도를 더 많이 하는 자가 없더냐?
그래도 그들은 이 시대 내 심정의 말을 듣지 못한다.
그 육의 귀가 이 시대 말씀을 들었어도
내 심정의 소리를 못 들어
못 깨닫고 돌이키지 못하는 자 많다.
왜 그러하겠느냐?
자신을 중심한 기도,
자신을 중심한 신앙을 하기 때문이다.
다 내려놓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기보다
자신의 주관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리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 믿고 행한다.
결국 내 심정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 뿐이다.
그 주관이라는 벽 때문에
내 말이 저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내 앞에 소고를 치고
춤추며 영광을 돌린다 하여도
내 심정에 합당치 않으니 어찌 기쁠 수 있겠느냐.
그런 자와 내 심정을 알고 꼭 맞게 행하는 자에게
어찌 똑같은 사랑을 줄 수 있겠느냐?
이제는 진정 주고받는 사랑의 시대이기에
내 심정의 언어를 알아듣고
내가 받고자 하는 사랑을 주는 자에게
내 눈과 귀와 마음과 사랑이 향할 것이다.
이 말을 진정 깊이 받아라.
더 이상 모든 인류에게
동일한 사랑을 퍼부어 주는 내가 아니라
나의 심정에 합당한 사랑을 주는 자에게
내 사랑의 물줄기가 흐르리라.
고로 있는 자는 더욱 얻을 것이요,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길 것이다.
이 말 또한 깊이 받길 바란다.
깊이 받는다 함은 곧 심정으로 받는다 함이다.
심정으로 받기 위해 몸부림을 쳐라.
내 눈이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였다.
곧 내 사랑이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함이다.
그러니 이렇게 너희의 마음을 잡기 위해,
심정의 귀를 열게 하기 위해 전하는
내 말을 들을 수 있는
지금 이 때를 놓치지 말고
기도로써 네 심정의 귀, 성령의 귀를 열고
내 심정을 받아 합당한 사랑을 함으로써
사랑에 성공하는 자가 되길 원하노라.
그러나 이 말 역시 예사로 듣는 자가 있으니
그는 오늘도 내게
심정의 십자가를 지게 하는 자로구나.
예사로 듣고 마는 너,
바로 너에게 나 성자가 하는 말이다.
사랑의 판도가 바뀌었으니
이 시대에 합당한 사랑으로 나오라.
성자의 말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