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2.08.03 (금)
계시말씀 6113cb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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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역사 열차 1
작성일 : 2012년 5월 20일
작성자 : 배수빛
* 성자 주님의 말씀 *
세상에 많은 글과 말이 있으나
나를 담은 글과 말이 얼마나 되느냐.
나를 담지 않으면 빈 그릇이지.
허당이지.
목적을 잃은 향방 없는 몸부림이지 사상누각이지.
의미 없는 몸짓이지.
결실 없는 수고지 빈껍데기이지.
속빈 사람이 너무 많구나.
무엇으로 속을 채워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천지구나.
짐을 싣고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차가 있다고 하자.
차는 출발하였는데 짐을 싣지 않았고
목적지를 잃어 버렸다고 하자.
그 수고가 어떠하겠느냐.
온 인류가 이렇게 향방이 없는 자 되어
나를 잃고 창조목적을 잃고
재림 맞이를 눈앞에 두고 소경 되어
반미치광이가 되어
육의 것을 쌓기에 전심이구나.
얼마나 바보 같은 짓들이냐.
그러나 나름의 포부에 젖어
무진 애를 써서 노를 저어 가니
그 수고가 결국은 무엇을 낳겠느냐.
나를 알지 않은 수고는 허허로움이로구나.
인류야. 언제까지 허무한 몸짓을 하겠느냐.
정비해야지. 인생 정비해야지.
가는 것 멈추고
제대로 나를 싣고 가고 있는지 점검해야지.
그저 달리기만 하느냐.
어디로 가고 있느냐. 나와 동행하고 있느냐.
나를 어디에 팽개치고 너만의 포부에 젖어
무익한 수고를 헛되이 쌓아 가느냐.
섭리역사 열차가 출발하였다.
각자 자신의 보따리를 지고 이고 간다.
그런데 목적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허당이다.
중간에 내리고 만다.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데
나라는 티켓을 온전히 쥐고 있지 않으면
동행자가 제2, 제3의 사람이 되어
엉뚱한 곳에 내리고 만다.
섭리에 도중하차한 자가 얼마나 많으냐.
나와 동행하였다면 달리는 열차에서
중간 중간 기름을 넣으려고 차가 쉴 때 내리겠느냐.
목적지를 가기 위해 기름을 넣는데
이 차는 왜 이렇게 가느냐고
나를 잃고 내리는구나.
(티켓은 땅의 티켓인데 하늘의 티켓으로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대전 가는 티켓이었는데 부산 가는 티켓
이 되어 있었고 일본 가는 티켓이었는데 미국 가는
티켓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이지? 목적지
가 바뀌었나? 주님. 이것이 무엇인가요?)
처음은 육의 목적지요,
두 번째는 영의 목적지이다.
처음에는 육의 목적지를 보여 주고
그곳이 최종 목적지인 줄 알고 섭리 열차를 탔는데
육의 목적지가 최종 목적지가 아니지 않느냐.
인간은 육의 사람 영의 사람이 있어
처음은 육의 사람이나
나중은 영의 사람으로 갈아타는 인생이기에
목적지도 처음은 육의 목적지였으나
후에는 영의 목적지로 가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경륜이요,
승객이 사람이기에 사람 대접해 주는 것이다.
마음이 조급한 승객이 왜 목적지가 바뀌느냐 하며
열차의 운전대를 잡은 자가 사기를 쳤다 하며
항의를 하고 차에서 뛰어내리는구나.
그에게는 설명을 해 주어도 듣지 않고
자신의 사고로 꽉 차서 해 주는 말이 허당이다.
결국 그런 사람은 긍정적인 믿음이 없고
자신의 사고를 믿었기에
동행자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차에서 내리고 말았다.
(운전대를 잡은 분은 나사렛 예수였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나사렛 예수의 옷을 입은 삼위일체 하
나님 성자셨습니다. 먼저는 육 있는 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승객을 안심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
면 승객은 땅의 사람이라 보이는 땅의 역사적인 인
물에 대한 신뢰가 있었지만 삼위일체 하나님 성자에
대한 인식은 그 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
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운전대를 잡은 분은 선
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의 영이셨습니다. 승객들은
왜 운전대를 잡은 분이 자꾸 바뀌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승객은 운전실에 누가 있고 어떤 일이 일어
나는지를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고 또 다시 이 차를
믿을 수 없다며 뛰어 내리려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
의 인생을 주께 맡기고 주와 동행하지 않는 자는 조
급하여 늘 사고를 그르쳐서 섭리역사 종점까지 가지
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열차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 터널 밖을 달리고 있
었습니다. 먼저는 나사렛 예수가 운전대를 잡은 듯
했으나 성자셨고 성자께서 운전대를 잡고 계신데, 그
는 선생님이라는 육의 몸을 빌었다 영의 몸을 빌었
다 했습니다. 선생님의 육의 몸을 빌릴 수 있는 때는
육의 몸으로 영의 몸을 빌릴 수 있을 때는 영의 몸
으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육으로 뛰셨는데 점점 영화
되셨습니다. 처음에는 육으로 보여 주셨는데 점점 영
의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육의 것을 가르
치셨는데 점점 영의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처음에는
육의 사람을 지도하느라 육으로 뛰셨는데 나중은 영
의 사람을 지도하시느라 영의 모습으로 나타나 지도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 것을 가
르치셨는데 나중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저 하늘의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너희가 땅에 것을 말하여도 믿지 않는데 어찌 하늘
의 것을 말하면 믿겠느냐’한 성자의 말씀대로 만사가
때가 있고 순서가 있으며 단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자들은 하늘의 순리를 거역하고 자신
의 방법을 앞세우며 하늘을 이해할 수 없다고 차에
서 뛰어 내리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가당치 않은 일
이었습니다. 결국은 지태에서 영태로 가는 인생을 가
르치는 참 스승이신 성자께서 선생을 쓰시고 해 주
시는 구원의 말씀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교관이 가르치시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는
조교마냥 쉽게 이해하고 간단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친절하게 포즈를 취하며 가르쳐 주고 계셨습
니다. 한 동작 한 동작 따라하며 완전히 숙지할 때까
지 또 반복 또 반복이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몸치인 사람들이 선생님의 말씀대로 하
면 동작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동작이 나오지 않아서 다음 단계
로 패스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자리에 맴돌게 되었습
니다. 그런 자들은‘해 봤자 매일 그 자리다. 똑같다.
뭐 별다를 게 없네. 매일 그 말이 그 말이다.’ 하며
차에서 뛰어 내리고 있었습니다.
동행자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고 자신의 육이 편한
대로 육성과 동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차는 먼저
는 땅을 달리다가 결국은 하늘을 달리는 차이기에
땅에서는 땅의 사람이 운전대를 쥐고 있었습니다. 선
생님이셨습니다. 그런데 핸들 위로 성자의 손이 함께
하여 두 분은 일체가 되어 있었고 단지 성자께서 선
생님의 몸을 빌어서 하시는 상태였습니다.
이 차가 가다가 하늘을 날게 되면 성자 본체께서 운
전대를 쥐고 나타나셔서 성자의 처소로 데려가시기
로 되어 있다는 것을 승객들은 뒤늦게 전해 듣게 되
었습니다. 어떤 승객들은 말도 안 된다며 차에서 뛰
어 내리고 있었습니다. 성자의 처소에 갈 수 있다는
놀라운 섭리 열차는 끝까지 가면 별 희한한 일이 생
긴다고 하신 선생님의 평소의 말씀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단계 단계별로 조금씩 그 다음을 얘기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많은 단계를 뛰어 넘어 이
야기하면 숙지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방황하는 사람이 줄었습니다. 목적지가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조급한 사람은 늘 불안하
고 언제 뛰어 내릴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때론 악
평의 선동자가 있어서 사람들을 우르르 데리고 차에
서 뛰어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래. 이제 이 섭리 역사 열차에 대해서
물어 볼 것이 있으면 물어 보아라.
(네. 주님, 선생님께서 전반기에 섭리 열차를 운전하
실 때 초창기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를 크게 보고 선
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면 예수님한테 직접 물어
보겠다고 하며 강대상에 가서 무릎 꿇고 선생님을
무시한 채 직접 주님과 대면하려고 들 했잖아요? 제
가 아는 사람도 예수님이 과연 선생님을 어떻게 생
각하시는지 예수님께 직접 물어 보겠다고 하였고요.
이때 성자께서는 어떠셨어요?)
나의 사랑아, 섭리 열차 운전대는
모세에서 예수로
예수에서 너희 선생에게로 옮긴 지 오래인데
예수를 크게 보고 내가 보낸 자를 무시하니
내가 너희 선생에게 집중하라고 하였지.
(그러니까 바라봄의 법칙, 무리의 법칙, 왕벌 조직,
내니 두려워 말라, 보낸 자를 믿지 않으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가인의 제단을 받지 않으시고 아벨
의 제단을 받으시는 하나님....등의 말씀을 계속해서
강조하신 거죠? 인식관을 시대에 맞게 바꿔 주시려
고요.)
그렇지. 섭리에 왔으나 배부른 자들이 많았다.
(배부른 자란 어떤 사람인가요?)
나사렛 예수로 배부른 자들 말이다.
(나사렛 예수로 배가 불러요?)
그렇지‘우리는 모세의 자손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한 유대인들처럼
기성의 전통과 믿음에 이미 배가 불러서
섭리에 왔으나 기성과의 차별성을 잘 모르고
몸은 섭리에 있으나
자부심은 기성에 있는 자들 말이다.
나도 신앙 한 가닥 했다 하는 자들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되었다 하는 자들 말이다.
그러니 시대가 전환되어 주인이 바뀌었는데도
주여, 주여 하며 나사렛 예수를 따르니
너희 선생을 두고 나사렛 예수로 배불러
기성을 부러운 듯 바라보곤 하였지.
(네. 주님.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람들은 보낸 자를
옆에 두고 2000년 전 나사렛 예수의 탄생과 죽음에
몰입하였어요. 크리스마스 추리를 만드는데 정신이
팔렸고, 크리스마스 선물 주고받으며 크리스마스 분
위기에 휩쓸렸어요.)
말씀은 들어도
근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지.
시대와 때를 모르니
너희 선생을 제대로 몰랐지.
말씀이 쪼개지니 놀랍다.
종교와 과학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며
말씀의 권세에는 녹아졌지만
정작 말씀의 주인인 너희 선생에 대해서는
제대로 그 가치성을 모르니
선생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자들이 많았구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니요?)
말씀은 인정하지만,
말씀 외에는 너희 선생을 인정하지 않는 것 말이다.
(네, 선생님은 말씀만 전하시고 그 외에는 시골에서
올라 오셔서 잘 모르시니 저희가 다 알아서 하겠다!
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나 성자가 말씀만 주었느냐?
너희 선생 나의 몸으로
너희 선생의 알파와 오메가가
나 성자였다.
그러나 나를 보지 못하는 자들
불같이 쏟아지는 말씀에만 감탄하며
그 외에는 선생을 인정하지 않으니
열매는 인정하나
나무는 인정하지 않는 자 아니더냐.
근본인 나를 보지 못한 자들이 아니냐.
나와는 상관이 없는 자들 아니냐.
내 너희 선생 통해 피가 토하도록 외쳤어도
귀를 막고 자기 식으로 들은 자들이여
말씀이 너희의 피와 살이 되지 못하고
너희를 비껴갔구나.
(네, 주님. 모든 것이 성자 자체이신 선생님, 성자께
서 강림하신 선생님, 말과 행적, 삶을 통해 늘 성자
께서 나타나셨는데, 말씀 외에는 선생님의 인성으로
생각하고, 또는 더러 인성으로 생각하고 수군수군,
두런두런 뒤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나 성자가
너희 선생이 말씀할 때만 성자였느냐?
(아닙니다. 주님. 선생님의 24시간은 성자 자체셨습
니다. 일체의 삶이셨습니다. 오직 성자 주님 모시고
섬김의 삶이셨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주를 떠나서의
선생님은 생각할 수 없는, 주님은 선생님의 호흡과도
같은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은 늘 주님 주님하시며 삶
의 알파와 오메가이신 주님을 늘 고백하시고 증거하
시며 주님을 입에 달고 사셨고 앞으로도 그리 사실
것입니다.)
너희 선생을 무시함은
곧 나를 무시함이 아니더냐.
너희가 선생을 통해 나를 보지 못함이 아니더냐.
그리하여 내가 나사렛 예수가 아닌
너희 선생에게 집중하라고 말씀을 주니
이제 또 한 부류는 나를 놓치고
오직 선생님만,
육으로 보이는 선생님만 보며 좇더구나.
(성자, 주님. 이때 얼마나 민망하셨을는지요? 또한
선생님도 얼마나 민망하셨을 지요?)
그래 내가 무던히도 말하지 않았느냐.
너희 선생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너희 선생도 또 말하지 않았느냐.
(네, 선생님께서는 나만 믿지 말고 나 보내신 자를
믿어라. 내가 말씀을 전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잘
믿으라는 것이다. 나는 주님의 심부름꾼이다. 나는
주님의 마이크다. 나는 모델이며 표상이다. 근본은
삼위일체 주님이시다. 너희가 내게 이렇게 하면 내가
하나님 앞에 민망하다... 하셨습니다.
섭리를 어떻게 펴야 하는지를 시대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선생님이 신앙을 넣어 주면
2000년 전 예수님에 대한 신앙으로 달려가서 예수
님에게 집중하고 선생님을 우습게보니 누구를 중심
해야 될지 모른 거죠.)
말귀를 못 알아듣는 자들이
모세를 크게 보고 예수를 불신하듯
나사렛 예수를 크게 보고
너희 선생을 무시하였도다.
섭리에 있으나
구시대를 크게 보는 관을 가진 자는
관속에 갇힌 자이니
어찌 이 시대의 길을 갈 수 있었겠느냐.
뜻을 펴야 하는데 먼 산만 쳐다보고 있으니
어찌 시대의 땅을 개간하여
씨를 뿌리고 열매를 얻을 수 있었겠느냐.
딴 곳만 쳐다보고 있으니
넋 빠진 인생들이요,
나와 동행해야 하는데
역사 속에 과거만을 로망하고 있으니
어찌 현실의 뜻을 두고 역사를 펼 수 있었겠느냐.
엉뚱한 곳만 바라보고 탐미하고 있으니
내 얼마나 어처구니없느냐?
너희 선생 아무리 외쳐도
허당으로 알아듣고
2000년 전 예수 시대로 돌아가자 하며
나사렛 예수를 영모하고 흠모하고 있으니
얼마나 내 가슴이 답답하였겠느냐.
이들은 자신의 앞에 선 선생이
얼마나 위대하고 큰지 모르고
계속 과거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려고만 했으나
내가 당시 나사렛 예수와 삼위일체 성자를
쪼개어 가르치기에는 섭리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독립할 수 없었다.
내가 선생에게 집중하라고 하니
또 한 부류는 너희 선생을 우상 섬기듯 한 자들로
섭리의 태반의 무리들이다.
이는 근본 없는 행각이요,
뿌리 없는 열매요, 기반 없는 집이니
이들의 증거가 과연 어떠했겠느냐.
(네, 광신도로 비춰질 수 있고 선생님을 신격화하는
것으로 보여 질 수 있었지요.)
그래, 삼위일체 나를 잘 설명해 주며
너희 선생에게 강림한 나를 설명해 주며
역사 속의 나의 행보를 잘 증거하지 못하니
너희 선생은 2000년 전 나사렛 예수처럼
스스로 나대며 자신을 높이는 미치광이처럼
세상에 인식됨이 아니냐.
고상한 지식을
어찌 천한 비아냥의 상대거리로 만들었느냐.
내가 너희 선생 집중하라 함은 무엇이냐?
너희 선생은 누구이냐?
나를 떠나서의 너희 선생 있었더냐?
그런데 어찌 나 없는 선생처럼
너희 선생 드러내서 멸시 천대 십자가에 매달아
시대의 처형을 받게 하였는고?
어찌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있는가.
무조건 너희 선생 드러내는 것이
결국은 선생을 죽이는 것이 되지 않았느냐.
(네, 주님. 97년 98년 말씀에 너희가 이렇게 육적으
로 나를 증거하면 나를 죽이게 된다. 증거를 제대로
잘해야 된다고 전국 순회하시면서 외치셨던 선생님
이 생각납니다. 바로 성자께서 외치신 거죠. )
내 누누이 경고하였건만 시정되지 않아
결국 나의 신부를 죽이지 않았느냐.
너희에게 좋은 말로 하여도
너희가 목이 곧아 듣지 않고 교정하지 않으니,
내 너희를 잘 알기에
이번에 선생 통해 교정을 하였도다.
내가 너무 심하다 하는 자 있느냐?
내가 한 번 속지, 두 번 속겠느냐.
너희를 이리 대우하게 된 것은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요
이미 전반기 때 누누이 말하였으나
너희가 귀담아 듣지 않고
온전히 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니냐.
(나사렛 예수님 때 예수님을 왕 삼으려 하니 도망 다
니신 것처럼 선생님을 자기식의 왕 삼으려고 하는
무지한 자들 때문에 피해 다니신 거죠)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로다.
어디에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너희 선생 빛이 나도다.
잘못된 증거는 너희 선생을 죽이니
나를 죽이는 것이로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겠느냐.
나를 뺀 증거는 무익할 뿐 아니라
상대의 미움을 사서 칼을 빼게 만드나니
내가 처형됨이 아니냐.
전초와 온전한 증거는 나를 살리는 길이요,
그렇지 않음은 역사의 길을 허무는 것이 아니냐.
제대로 된 증거는 너희 선생을 잘 포장하여
결국은 나를 잘 보여 줌이 아니냐.
2000년 전 예수의 제자들이 나사렛 예수를 잘 몰랐
던 것이
성경 어디에 나오느냐?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하고 자신을 속국에
서 온전히 해방시켜 주시리라 믿고 육적인 메시아로
생각하여 왕 삼으려 하였습니다. 이것 또한 시대의
미움을 살 수밖에 없었지요. 또한 승천하실 때도 이
러한 잘못된 육적인 관이 있었기에 이스라엘을 회복
하심이 언제이냐고 여쭈었습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는데 가룟 유다는 향
유 옥합을 깨뜨린 여자에게 분개하며 이것을 왜 허
비하냐면서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고 하였지요. 주님은 가난한 자는 항상 너희
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하셨어요.
이들은 가난하고 못 먹고 멸시 천대받는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서 멋지게 건지셔서 악인을 멸해 버리시
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실 메시아를 기대하였던
것이지요? 섭리에도 이와 동시성으로 선생님을 못
먹고 가난한 자를 구원하여 줄 분으로 생각하여 시
대의 갈릴리를 회복시켜 줄 것을 소망하였고 선생님
이 늘 육적으로 가난한 자의 편에 서 계시기를 바랐
던 자들도 있었어요. 선생님이 그런 분이 되어 주시
기를 바랐던 것이죠.
데모를 하던 이슈를 선생님께서 해결해 주시리라 믿
었던 것이죠. 선생님께서 어쩌다 좋은 식사를 대접받
으면 왜 가난한 자의 편에 서야 할 선생님이 맛있는
식사를 하는고 하였어요. 모든 것 성자 주님이 행하
시는 것을 몰랐던 것이니 그들은 성자 주님을 버려
두고 자기 식의 사고가 채워지지 않으니 실망하여
섭리 열차에서 내리고 말았어요.)
그래,
역사의 동시성 어쩜 그리 빼다 박았느냐.
근본 된 나를 보지 못하고
근본 된 하늘 뜻을 보지 못하고
근본 된 구원역사임을 보지 못하고
어찌 시야가 좁아서
인성으로 판단하고 인성으로 재고
인성으로 나를 들었다 놨다 한단 말이냐.
(네, 주님 그리고 예수가 탄생하였을 때 동방 박사가
헤롯왕을 찾아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자가 어
디 있느뇨 하니 헤롯왕이 자신이 왕인데 또 다른 왕
이 나서 자신의 자리를 넘보게 되는구나 착각할 때
그 누구도 그 왕이 정치적인 왕 차원이 아님을 잘
증거하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이 풍랑이 이니까 주무시는 주를 깨웠고 주무
시는 주님이 일어나시니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졌어
요. 이것을 보고 제자들은 누구이시기에 바람과 파도
가 잔잔해지는고 하고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다시
생각한 장면이 나오네요.
그러니까 이들이 예수님을 육신 쓴 사람으로만 생각
하니 성자께서 풍랑이 일게 하시고 풍랑을 주님이
잠잠케 해 주시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나왔
어요. 이럴 때마다 흐려진 신앙이 회복되며 ‘하나님
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이 나왔어요. 이와 같이
섭리에 주님께서 얼마나 많은 표적을 보여주셨나요?
이때마다 섭리 회원들이 선생님에 대해 온전한 고백
을 하게 되었지요.)
그렇지. 나의 사랑아,
성자 나와 너희 선생 본체와 분체인데
사람들은 종종 본체를 잃고 분체만 보는구나.
둘이 하나 되어 역사하는데
나를 빼놓고 분체만 보면
제대로 된 바라봄이 나오지 않아 넘어지게 된다.
제대로 보아야지.
(네, 그래서 나사렛 예수님이 나를 믿는 자는 곧 나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한 것이죠?)
영과 육이다. 안과 바깥이다.
속과 겉이다. 둘이 하나다.
선생 배에 탄 성자 주다.
배만 가겠느냐? 성자만 가겠느냐?
성자 없이 배가 가지 않고 배 없이 성자 없다.
둘이 한 몸이요 일체이니
하늘과 땅의 만남이요 하나로 움직인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너희 선생 속에 나 성자를 보지 못하면
너희는 힘을 잃고 낙상한다.
신앙의 본질은
보낸 자 통해 성자 나를 믿는 것이 아니냐.
여기까지 오지 못하니
성자가 쓰는 너희 선생을
성자 없는 인간으로 보고 낙향하는구나.
너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너희 선생과 떠나 있는 것이냐.
나는 선생 안에, 선생은 내 안에 있다.
너희가 내 안에 있지 않으니
선생을 제대로 못 보는 것이 아니냐.
(네, 그리고 주님, 신약에서 사람들이 나사렛 예수님
께 이렇게 말했잖아요. 귀신을 쫓아 달라고 하는데
제자들이 못 쫓아냅니다. 이에 대해 성자께서 믿음이
적은 연고라고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셨지요.
성자 주님께서 전지전능한 주님께서 역사하신다는
믿음, 그 믿음이 부족하여 역사가 안 일어난 거죠?)
첫째는 나 성자가 역사한다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요,
둘째는 나 성자가 전지전능하다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다.
성자께서 전지전능하시니
귀신을 반드시 쫓아내 주실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 위에 역사는 일어난다.
제자들의 신앙관이 어떠하였는가에 따라
역사가 일어났다.
귀신도 못 좇아내던 제자들이
성령 받고 뒤집어져서
주님의 역사하심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을 때
하루에 수천 명을 전도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너희의 믿음의 강도는 어느 정도냐?
아는 만큼 믿음이 생긴다.
말씀을 듣는 만큼 믿음이 자라난다.
말씀을 제대로 아는 자에게
성자의 능력이 위력이 임하게 된다.
아는 만큼 시인하게 되고
시인하는 만큼 고백하게 되고
고백하는 만큼 역사가 일어난다.
배워라. 내게 배워라.
너희 선생 통해 내게 배워라.
선생의 분체 통해 배워라.
얼마만한 능력과 위력이 너희 통해 일어나느냐?
그것으로 너희가 얼마나 배워 알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능력으로 행함이 앎의 척도다.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이제 섭리의 앉은뱅이 신앙에서 일어나 주로 입어라.
주로 일어나라.
주로 강건하여라.
성자께서 핸들을 잡으신 섭리역사 열차다.
여기서 내리는 자는 영원한 목적지를 잃은 자요,
인생 목표를 상실한 자요,
영원히 나 성자와는 상관없는 자요, 불쌍한 자가 된
다.
천국행 섭리역사 열차 천국까지다.
성자 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