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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2.08.20 (월)

계시말씀

선포일
2012.08.20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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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 감동의 차이 작성일 : 2012. 6. 30. (토) 작성자 : 홍수현 ( 말씀을 읽다가 육신도 너무 피곤하고 마음도 무거 워져 얼른 자야겠다고 생각하는데 기도하라는 감동 이 들었습니다. 자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하니 ‘괜히 내가 찔려서 기도하라는 마음이 드는 거야.’하고 생 각하며 그냥 자려고 하는데 “감정에 치우치지 말아 라. 기도하여라.”하는 강한 감동이 들었고 안 되겠다 싶어 기도하니 이어 들려온 마음의 음성입니다. ) * 성자 주님의 말씀 * 감정에 치우치지 말아라. 내게 네게 수시로 말하지 않았느냐. 감동과 감정의 차이를 정확히 알아라. 감정은 보다 육에 속한 것이며 감동은 보다 영에 속한 것이니라. 너에게 육이 있기에 감정이 존재하고 또 너에게 영도 존재하기에 감동도 느끼는 것이다. 감정과 감동은 서로 비슷한 듯하나 전혀 다르고 전혀 다른 듯하나 비슷하기도 하여 헷갈리고는 한다. 감정에 치우쳐 행동하는 너의 육신의 행위를 보고 네가 육적임을 깨닫고 인정하여라. 나의 감동을 받고도 너의 감정 너의 마음에 치우쳐 행하는 너의 육신을, 너의 육성을 인정하라 함이다. 네가 네 마음을 주관하여 달라고 내게 간구하여 수시로 무시로 너에게 찾아왔건만 너는 내게 어찌 그리 무심하냐. 불꽃같은 눈으로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다 답답함으로 말한다. 너의 중심이 드러나니 두려우냐? ( 금방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하였고 이 마음을 보고 제가 드러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음을 인정하 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말씀 통해 말했듯이 이는 너를 두렵게 하고자 함이 아니요, 완악한 대로 너를 버려두지 않고 사랑함으로 너를 구원하고자 함이니라. ( 오늘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감동이 왔을 때 정말 주님 감동인가 내 주관인가 헷갈릴 때가 있었어요. ) 맡기는 책임분담도 못하느냐? 나를 믿음으로 내게 맡기는 것조차 그렇게 어려우냐? 네가 해야 할 일이지만 너 혼자 다 하려면 시간이 너무 부족하여 선생과 내가 대신하고 있음을 믿고 감사하는 것, 내가 함께함으로 너희에게 나 성자의 능력이 임하리라 하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지 않느냐. 신약과 성약의 연결 고리 끝자락에서 너희를 일으키고자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일러 주고 있는데 더 이상 어찌해야 하느냐. 너희는 아무것도 안 하고 구원받고자 하는 것이냐. 나의 고통과 선생의 고통을 당연히 여기는 저 기성인들, 유대인적 사상들을 모두 벗어 던질지어다. 사랑아. 신부야. 내 심정 태우는 자 되지 말라. 너는 내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 것이냐. 백조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은 것이냐? 언제까지나 내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 채로 있을 것 같으냐? 속보이는 사랑을 하지 말라고 말한 나 성자이니라. 나는 진정 속보이는 사랑하지 않는다. 진실로 사랑한다. 콩깍지가 씌워졌다고 하니 억지로 너를 백조로 보기 위해 내가 의도적으로 행한 것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다. 진실로 너를 사랑하기 때문임을 알아라. 내 심정 이리 전해도 머릿속으로만, 자기 마음대로 감정에 치우쳐 함부로 판단할 자들이 선히 보이는구나. 그러나 너희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변치 않는다. 이것이 진정 하늘의 사랑이다. 절대 굳건한 사랑, 흔들의자 같이 흔들리는 사랑이 아니라 굳건한 사랑이다. 월명동 성자 바위는 나 성자를 상징하는 바위이지 않느냐. 너를 변두리에 두지 않고 오직 중심으로 두고 사랑하는 나 성자의 진한 사랑을 느껴 보아라. 나를 변두리에 두지 말아라. 중심의 중심에 두고 핵심의 핵심에 두고 사랑해 주어라. 감정에 치우친다는 말은 육에 속한 것이며 감동을 받은 대로 행하는 것이 진정 영의 사랑이라고 하였다. 영의 사랑은 영의 근본의 사랑, 즉 나 성자와의 사랑이다. 너의 영이 나 성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 말을 잘 들어 보아라. 너의 영이 핵심이 아니라 나 성자가 핵심이니라. 영의 사랑은 영으로 영을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냐. 불과 불이 만나듯이 물과 물이 만나듯이 영과 영이 만나 통하는 사랑이 영의 사랑이다. 너의 감정이 내 감동을 묻어 버리면 안 되는 것이다. 성령집회 때 부흥강사를 통해 나 성자가 직접 말하고 있음을 너는 느꼈지? “아는 것이 힘이다. 선이 악보다 더 강해야 한다.”하였던 나의 말을 기억하느냐. 여기서 말하는 아는 것의 힘이란 무엇이냐.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힘, 나 성자를 아는 힘이다. 이 말씀을 배웠기 때문에, 들었기 때문에 너희의 뇌에 새겨졌으나 다시 상고하지 않으면 아는 것으로부터 오는 힘을 받을 수 없다. 들었기 때문에 뇌에 살짝 얹어진 나의 말씀이 새겨졌다고 착각하지 말아라. 내가 너에게 말해 주어 너의 귀로 들었으니 인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지. 그 인식이 깨어나 정확히 알려면 반복하여 말씀을 상고해야 하는 것이다. 조각을 하기 전에 기본 스케치를 해 놓고 그 스케치에 따라 칼로 계속 도려내어 조각하듯이 너의 뇌에 스케치 해 놓은 말씀을 그대로 두지 말고 빨리 조각해 내라. 너의 주관이라는 여백을 도려내라는 말이다. 스케치를 해 놓고 그대로 두면 무슨 소용이냐. 작품으로서의 가치가 없지 않느냐 사랑아. 절대 나를 중심해야 한다. 하늘 사랑은 배워야 한다고 했지? 세상의 사랑은 감정에서부터 시작하지만 하늘 사랑은 감동에서부터 시작된다. 자기로부터 나오는 육에 속한 감정으로 하는 사랑은 절대 하늘을 감동시킬 수 없다. 영으로 한다 하지만 실상은 육적 사랑이니라. 선생이 언제 감정에 치우친 적 있느냐? 그가 불같이 말씀을 외칠 때 그의 감정으로 외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육을 통해 내가 외쳤던 것이다. 그러함으로 나 성자의 능력과 위력이 발휘되어 사람들의 심령이 뒤집어졌던 것이다. 나의 심정을 내가 직접 전할 수 있게 내게 맡기고 내게 집중하였던 선생의 믿음의 결과물이었노라. 감정과 감동이 비슷하기도 하여 헷갈리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감정도 감동도 생각과 마음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감정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요 감동은 나 성자의 생각과 마음인 것이다. 나 성자를 아는 힘, 믿는 힘이 강하여 나 성자를 중심하고 나의 감동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라. 내게 집중하여라. 내 말씀에 집중하여라. 기도와 말씀으로 절대 무장하여라. 너의 짐으로 인해 네 몸(영을 두고 말씀하심)이 무거웠을 때는 힘들었으나 선생과 내가 모든 짐을 거두었으니 가볍게 뛰어라. 그러나 더 깊이 있게 뛰고 더 높이 날아올라야 하지 않겠느냐. 나의 입장에서 생각함으로 나에게 초점을 맞추어라. 그러면 나의 감동을 받게 될 것이며 즉 성령을 받게 될 것이며 너의 감정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초점과 중심은 나 성자! 그 어떤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이유도 목적도 근본도 모두 나 성자여야 한다. 너를 버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를 중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라. 목적을 정확히 하라고 하였던 나의 말씀을 이제 이해하겠느냐? (네, 주님. 며칠 전에 주님께서 목적으로 향하는 길 은 말 그대로 길일 뿐 이라고 하시며 정확한 목적을 가지라고 하셨잖아요. 목적이 주님을 만나는 것이면 주님께 초점을 맞추라는 뜻이지요? 기도하는 것이 초점이 아니라 주님 자체에 초점을 맞추라는 거죠? ) 그렇지. 마치 과녁에 화살을 맞히고자 하는 것이 목적일 때는 과녁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해야 하는데 화살에 초점을 맞추면 화살이 과녁에 꽂히지 못하게 되듯이 초점을 잘 못 맞추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초점 즉 중심을 목적지에 두어라. 목적지로 향하는 대상, 혹은 그 길에 중심을 두면 목적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제 너의 깨달음을 삶 가운데 내게 증명하여라. 이전보다 더 불꽃같이 너를 볼 것이다. 철통같이 너와 함께하리라. 선생과 함께 영으로 너에게 순회 올 것이다. 매일매일 수시로 무시로 너의 삶을 보고 기록하며 권면할 것이니 늘 내게 집중하여라. 또 만나자. 아니 계속 만나자. 나의 감동에 집중하길 원하여 말한 너의 목적 성자 예수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