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2.10.01 (월)
계시말씀
- 선포일
- 2012.10.01 (월)
- 성경 본문
- 새벽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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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1 계시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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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 본체와 육신
작성일 : 2012년 4월 11일(수) 새벽 02:40~
작성자 : 김선명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계
시를 받고 그것을 기록하고 있을 때 동시에 주님께
서 더 깊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맥으로 이어지는
계시라고 하였습니다.
며칠 전 예수의 육신에 성자 본체 외에 그 육신에
해당되는 영이 있다는 말씀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
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나의 수준을 높이려
더욱 몸부림쳤습니다. 그런데 이 계시가 왔을 때 너
무 놀랐습니다. 순간 ‘이렇게 빨리 답을 주시나? 나
는 천재인가?’라는 교만이 진실로 생겼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넌 어릴 때부터 공부도 안 하고, 지
식도 없고, 책 읽는 것도 싫어하고, 워낙 단순하니
이런 계시 받는
것이다. 지식 있는 자들은 내가 옆에서 아무리 말을
해도 자신의 생각에 가려 내 말씀을 분별하지 못하
고 받지를 못한다. 똑똑해서 주는 것 아니다. 교만
부리지 말아라.’하시며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성삼위는 모든 영계와 육계를 창조하셨다.
하지만 이 두 세계는 존재의 법칙이 다르다.
육의 세계는 육적인 법칙에 의해 존재하고
영적인 세계는 영적인 법칙에 의해 존재한다.
육적 세계는 육적 물질의 세계로
육적인 물질만 존재할 수 있다.
영적 세계는 영적 물질의 세계로
영적인 물질만 존재할 수 있다.
고로 육적인 물질이 영계에 존재할 수 없고
영적인 물질이 육계에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영적인 세계와 육적인 세계가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하지만
그 중간층을 통해
서로 공존하며 상호작용한다.
사람이 육이 있고 영이 있지만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엄밀히 쪼개어 보면 너희 인생들이 사는
그 육계 안에 차원이 또 다른 공간,
즉 영계가 존재하고
그 영계 안에 너희 영이 존재한다.
너희는 삼위와 같은 전능자가 아니니
영이 육계에 존재할 수 없다.
반드시 영과 육을 연결시키는
소통의 통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혼이다.
이 혼이 너희의 육과 영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인생들은 마치 영이
육 안에 쏙 들어가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한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너희에게 이해하기 쉽게 선생이 영과 육을
마치 어미와 뱃속의 태아처럼 설명했지만
사람의 육과 영은 독립된 개체며
육은 육계에 영은 영계에 존재하며
이 개체는 반드시 혼을 통해서 소통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 공존한다.
영은 영끼리 통하기에
사람의 영적인 체험
즉 천사를 보거나 나 예수를 보는 것도
영이 본 것을 혼을 통해
육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계시자가 천국과 지옥에 가는 것도
육이 가는 것이 아니다.
영이 천국과 지옥에 가는데
그 순간 육에 속한 혼체가
영에게 전달되어
꼭 육이 천국이나 지옥에
갔다 온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창조 법칙에 따라
사람은 영이 없으면
절대 전능한 영으로 존재하는
삼위를 느낄 수 없다.
고로 전능한 삼위는
항상 이 땅에 육신 된 사명자를 통해
인생들에게 나타났다.
성삼위께서도 땅의 육신을
바로 쓰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육신에 속한 영이 삼위의 영과 통하여
그 영을 통해 그 혼과 육을 조절하며
이 땅에서 역사를 펴는 것이다.
고로 육신과 혼이 참 중요하다.
육신을 통해 자신의 혼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느냐가
영의 수준을 결정하고 그 수준만큼
삼위의 역사함의 수준이 정해지는 것이다.
고로 이 영의 수준, 즉 삼위와 통하는 수준이
그 사명자의 위치와 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더 난절히 말하면
모세도, 예수도, 그리고 이 시대 선생도
모두 삼위의 육신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 사명의 위치와 수준은 다르다.
삼위와 통하는 수준을 좀 더 쉽게 말하면
얼마나 삼위의 영과 자신의 영이
일체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일체의 비밀을 내가 오늘 풀어 주겠다.
모세나 엘리야 같은 사명자들의
성삼위와의 영적 일체를 비유로 말하면
이는 마치 임금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신하에게 자신의 뜻을 설명하여
임금의 뜻을 신하가 이루게 하는 것과 같다 하겠다.
그렇지만 임금이 아무리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쳐도 자신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행하는 것이다.
고로 신하의 수준만큼밖에 행할 수 없다.
신약의 나 성자 본체의 육신인 예수는 다르다.
이천 년 전 나 성자 본체는
이 땅에 나의 육을 만들었다.
바로 예수다.
그리고 법칙에 따라
그 육신에 속한 영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 육과 영을
직접 내 본체가 주관하며 성장시켰다.
그리고 내 본체는 성장한 예수의 영을 통해
그 육신을 나의 본체의 육신으로 삼고 역사를 폈다.
다른 중심자들은 영과 영의 소통이었다면
예수의 영과 내 본체의 영은
바로 하나가 된 것이다.
이 일체를 비유로 설명하면
마치 물과 설탕이 합쳐져
설탕물이 된 것과 같다.
그냥 물과 설탕물은
같은 물이라도 엄연히 다른 것이다.
물 안에 설탕이 완전히 녹아 설탕물이 되듯이
예수의 영이 나 성자 본체에 완전히 녹아
나 성자 본체가 예수의 혼을 통해
그 육신을 쓰고 이 땅에서 역사를 편 것이다.
설탕물과 그냥 물이 다르듯이
예수의 영이 나 성자 본체에 완전히 녹아져
나와 완전히 일체 된 예수의 영은
전혀 다른 것이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영적인 세계는 영적인 법칙에 따라 존재한다.
고로 육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영으로는 이루어진다.
영의 일체는 물과 설탕이 하나가 되듯
영과 영끼리 완전하게 하나가 될 수 있다.
영계는 파장의 세계이기에
나 성자 본체의 영과 그 파장이 동일하면
자신의 영이 바로 성자 본체의 영과 일체 되어
동등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의 영이
나의 본체와 일체 되기 위해서는
나의 책임분담도 필요했지만
예수 자체의 책임분담도 필요했다.
또한 성삼위의 뜻이 예수에게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의 영은 육에 속했고
그 육에 의해 영의 파장이 결정되었다.
예수도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그 육성을 이기고
성자 본체와 일체 되기 위한 그 책임 분담이
너무나 큰 것이었다.
고로 육으로 존재하는 예수이기에
성자 본체가 그 영을 통해
육신을 덮어 쓰는 수준을
항상 유지할 수가 없었다.
고로 예수도 항상 기도하며
그 영이 내 영과 일체 될 때
표적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났다.
때로는 설탕물에 물이 증발하며 설탕만 남듯이
성자 본체가 그 영을 벗어나
예수의 영과 육으로만 존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나 성자 본체의 뜻 안에 있었다.
바로 이것이 성자 본체의 지상 강림의 비밀이다.
나 성자 본체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일체 되어
이 땅에 존재하는 예수의 영과 완전히 일체 되어
그의 육을 내 육으로 쓰고 사역을 감당했다.
그리고 그 육신이 십자가에 죽고 난 후
나는 그 영을 통해
신약 2000년 간 역사를 폈고
지금도 펴고 있다.
고로 너희가 나를 예수라고 인식한다.
이것이 다른 중심자와 예수의 차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는 어떠하냐?
지금 이 시대도 바로 신약 때 나 성자 본체가
예수의 영을 통해 그 육신을 쓴 것처럼
선생의 영을 통해 선생의 육신을 쓰고
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선생도 다른 중심자와는 다른 것이다.
하지만 예수와 선생은
나의 육신으로 사용되지만
그 차이는 분명히 있다.
그 차이는 역사의 수준과 소명에서 오는
내 본체가 육신을 사용하는 방법이며
그 육신과 영이
내 본체에게 가지고 있는 인식관의 차이다.
신약은 구약의 발판에서
시작된 과정의 역사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중간 단계다.
그 구원의 수준도 과정이다.
고로 그 과정에 맞게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쳐야 했다.
바로 인생들의 근본이 하늘에서 난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낳듯
인생들도 그 모든 근본을 하늘에서 낳기에
인생들에게 그것을 가르쳤다.
고로 그 구원의 수준을 인생들의 언어로
아버지와 자녀의 입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고로 나 성자 본체가 예수의 육신을 통해
신약의 구원에 수준에 맞게 말씀을 전하며
사역을 감당한 것이다.
고로 그 시대 나의 육으로 쓰인
예수와 그 영도
그 시대에 합당한 수준만큼만
구원의 수준을 인식했고
또한 나 성자 본체를 인식했다.
그리고 나 성자 본체도 예수에게
더 이상의 수준을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예수는 나 성자 본체가
하나님과 성령님과 일체가 되어 행하니
자신의 영에 임한 성자 본체의 영을
마치 하나님처럼 여기며 인식하며
구원 사역을 펴 나갔다.
고로 스스로를 성자라 인식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신약의 과정의 역사를 거쳐
마지막 창조목적을 이루는 역사다.
고로 신약의 발판 위에서 선생을 만들었다.
선생을 신약 때 예수처럼 나의 육신 삼고
이 시대에 맞는 구원을 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예수라는 육신을 쓰고 행한
신약의 텃밭 위에서 났기에
전능한 삼위 중 한 명인
성자본체의 존재를 확실히 알고
나를 신랑처럼 애인처럼 인식하며
그에 맞는 행동으로 구원의 역할을 하며
내 육신이 되어 행하는 것이다.
바로 선생의 영을 통해 나 성자 본체가
인생과 하늘의 관계가 애인 관계가 되듯
사랑하며 일체 되어야 한다고 전파하며
그에 맞는 인생들의 격을 갖추기 위해
이 시대 신부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선생이 나를 신랑 보듯 하며 나와 일체 되어
마지막 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같은 육신으로 사용되어져도 시대 수준에 맞게
나 성자 본체를 인식하는 것과
소명도 다른 것이다.
너희가 정말 중요하게
인식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의 언어로 표현된
구원의 수준이다.
인생의 언어는 관념적인 것이다.
영적 세계는 육적 세계와는 전혀 다르다.
고로 영적인 것을 육적인 것으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가장 합당한 것으로
영적 세계를 육적 언어로 표현하지만
그 내면의 깊은 뜻을
영적으로 온전히 깨닫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신약의 구원의 수준은
아버지와 아들의 입장으로 표현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인생들과 하늘의 그 근원적인 관계
즉 창조자와 창조된 생명을 인생들의 관념으로
마치 부모와 자식 관계로 표현하고 설명했다.
고로 인생들이 신약의 복음으로 인해
하나님을 그토록 아버지라 부르고 인식하는 것이다.
인생들은 이 관념적이고 문자적인 인식관에 갇혀
하늘에 대한 사랑을
육의 부모와 자식의 사랑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과 더 가까워지지 못하고
마치 부모 대하듯 한다.
고로 지금 이 시대의 애인과 같은
하늘과 땅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신약의 과정을 거쳐
성약이 이루어졌다.
고로 신약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구원이 이루어진다.
지금 이 시대에 이루어야 할 구원의 수준 즉
하늘과 인생의 관계성을
인생들의 관념적인 언어로
마치 애인이 애인을 사랑하듯
창조자를 사랑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신랑, 신부라는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 기성인들은
자신들의 육적 인식관으로
애인 관계라는 말을 오해하여
육적인 정욕을 생각하며
섭리와 선생을 오해하고 비난하기도 하고
또 섭리에 있는 자들 중에서도
육적인 정욕으로 선생을 사랑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대 삼위에 대한 사랑은
육적인 정욕이 아니라
바로 진정한 영적인 최고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다시 한 번 시대 구원의 수준을 정의하면
모든 인생은 창조주 성삼위로부터 났다.
이는 마치 부모가 자식을 낳듯
모든 근본이 성삼위로부터 났다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깨닫는 것이 신약 구원의 수준이다.
하지만 창조된 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창조주를 마치 인생들이 애인과 애인이 사랑하듯
극적인 사랑의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약의 수준이며 근본적인 목적이다.
잘 알아들었지?
이것을 알고 너희가 섭리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
고로 성자 본체가 신약 때,
그리고 지금 이 시대 쓰고 있는 육신은 같은 육신이
라도
구원을 이루는 수준과 목적이 다르다.
그리고 그 육신이
내 본체에 가지고 있는 인식관도 다르므로
나를 대함과 행동
또 구원자로의 역할도 다른 것이다.
예수의 영과 육은 바로 신약의 과정을 위한
수준만큼 사용했다.
고로 그 수준에서
그 육신의 행동과 말이 나왔음으로
예수라는 육신은 하늘을 부모처럼 대하고
또 인생들이 그 육신을 통해 하늘을 믿으면
그 수준만큼 구원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 선생의 영과 육은 성약의 수준
즉 애인과 같은 입장의 구원을 이루는
나 성자 본체의 육신이기에
마치 하늘을 애인처럼 대하여
모든 행동과 말씀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을 표상으로 삼고 가는 자는
이 시대 수준에 맞게 하늘을 애인처럼 보며
하늘 앞에 신부로서 단장하며 나올 수 있고
애인과 같은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것을 잘 알고 시대를 알고
선생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예수의 육신은 죽었지만
성자 본체는 예수의 영을 통해 지금도 역사한다.
하지만 이 시대 선생에게 임한 영은 성자 본체다.
다만 그 성자 본체를 예수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영계는 천층만층 구만 층이다.
나 성자 본체가 그 수준에 맞게
예수의 영을 통해 지금도 사역을 하고 있다.
절대 예수의 직접적인 영이
선생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섭리역사가 나의 재림이 이루어져
온전히 창조목적이 이루어지면
나 성자 본체는 천상천국에 올라
하나님과 성령님과 함께
성약 신부들과 혼인잔치를 한다.
그리고 선생은 완성된 인생으로
그 육의 삶은 육계에서 표상이 되고
그 영은 영계에서 표상이 되어 영계에 존재하며
성약역사의 사명자로 사명을 감당한다.
그리고 예수의 영은
나의 재림 때 그 영도 온전히 부활하여
영계의 중간 단계
즉 완전히 창조목적을 이루지 못한 영과
성약역사를 접하지 못하고
예수라는 구원자를 인식하는 영들에게
시대 복음을 전하고
성약과 연결시키는
사역자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역사는 점진적으로 변화된다.
구약이 아무리 하나님을 기다려도
예수라는 육신을 통해 신약역사를 펴 나갔다.
그러나 아직도 구약인들은 예수를 부정한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이
이 시대에 같이 공존한다.
지금 이 시대도 마찬가지다.
신약을 거쳐 성약이 시작되어
선생이라는 표상자가 나오고
드디어 천상천국에서 삼위와 인생들이
창조목적을 이루는 역사가 일어나도
신약은 그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선생을 부정할 것이다.
그리고 신약과 성약은
같이 공존하며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날 구약을 넘어
신약이 중심역사가 되어
이천년 역사가 온 것처럼
성약이 신약을 넘어 중심역사가 되어
이 맥을 통해 천 년 동안 온 세상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갈 것이다.
이것을 깨달아야 된다.
이것이 진리다.
기성의 인식관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이것이 이 시대 복음의 핵심임을 잊지 마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