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2.10.31 (수)
121031 수요말씀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하지 말아라
- 선포일
- 2012.10.31 (수)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26장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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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31-수요말씀_단순하게 생각하고 행하지 말아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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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31일 수요말씀>
단순하게 생각하고 살지 말아라
본 문 마태복음 26장 24-25절
누가복음 16장 19-24절
로마서 8장 5-10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 예수님의 평강을 빕
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
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주일말씀에 이어서 후편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살지 말아
라.’라는 주제로 말씀해 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그동안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한 자는 얻는 것도 단순하게 얻어 궁궐을
지을 곳에 양옥집이나 개집을 짓고 끝났습니다. (‘궁궐’은 양손을 크게 벌리고 높이
들어 표현 / ‘양옥집, 개집’은 양손으로 작게 표현)
성자의 말씀은 전지전능하니,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하지 말라는 말씀
을 듣고 이제부터 실천하면, 당장에 돼지를 타고 다니던 자들이 말을 타
고 다니는 세계로 뒤바뀝니다.
현재 월명동 청기와집 터는 옛날에 산 주인이 양을 기르고 가끔 말을
매 놓고 쓰던 곳이었습니다. 선생이 20대에 앞산에서 그 터를 보고 ‘저
기는 집 지을 장소인데 겨우 마구간을 짓다니... 내가 지으면 멋진 집을
짓고 멋지게 살겠다.’ 하며 단순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가 때가 되어 주님께 졸라 대어 결국 집을 짓게 됐습니다.
똑같은 곳이라도 단순하게 생각하는 자는 개집을 짓고, 깊이 차원 높
게 생각하는 자는 궁궐을 짓게 됩니다. <끝>
월명동 앞산도 단순하게 생각하고 돌을 놓은 곳이 있습니다. 그 좋은
장소에 별것도 아닌 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돌들은 다 빼내고, 미가
엘 천사장 같은 멋진 돌을 다시 놓을 것입니다. 선생도 없고, 범석 목사도
없을 때 마땅한 돌이 없어서 임시로 놓은 돌들은 빼내고 주님의 구상을
받아서 다시 놓을 것입니다.
누구나 육적으로 생각하고 하면 단순하게 행하게 됩니다. 월명동 야심
작은 하나님과 주님의 구상을 받고 했기에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합니
다. 우리의 삶도 단순하게 생각하고 살지 말고, 하나님과 주님의 구상을
받아서 멋있게 살아야 됩니다. 단순하게 하면 단순하게 끝나 버립니다.
성경에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나옵니다. 부자는 하나님을 안 믿고 단
순하게 살다가 그 영혼이 쇳물이 펄펄 끓는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고
단순하게 살지 않음으로 그 영혼이 천국에 갔습니다.
사람은 단순하게 그 순간만 보고 행하고, 한 가지만 보고 행하고, 육
만 보고 행하지만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은 영원까지 보시고 행하
십니다. 고로 삼위와 일체 되어 살면, 우리가 하는 일도 오랫동안 길이길
이 가게 할 수 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월명동 잔디밭 위와 뒷동산의 솔들은 지금은 거목이 되어서 큽니다.
그런데 20년 전에는 다리통만 하고 팔뚝만 하게 작아서 너무 초라했습니
다. 그래서 그때 단순하게 생각하고, 시원찮은 나무들은 다 베고 큰 것만
듬성듬성 남기려고 했습니다.
(거목) (다리통만 하고) (팔뚝만 해서)
큰 솔들이 빨리 크라고 큰 솔 주변에 있는 작은 솔들을 다 베야 되겠
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생각이었습니다. 성자 주님께서 말
씀하시기를 “작은 솔들은 베지 말고 키워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왕창
퇴비를 하여 그대로 키웠더니, 지금은 거목들이 됐습니다. <끝>
선생은 소나무를 위해서도 매일 기도합니다. 병들지 말라고 기도합니
다. 그런데 월명동 성지 땅을 사용하는 자들은 마치 임금이나 되는 듯 기
도도 안 해 주고 사용하기만 합니다.
단순한 삶을 사는 자들은 소나무를 보고서도 그냥 지나칩니다. 기도도
해 주고, 가다가 만져 주면서 “건강하게 잘 커.” 하고 축복해 주기 바랍
니다. 그래야 소나무들이 동그래산 소나무처럼 잘 크고, 자기도 좋아하게
됩니다. 소나무를 그냥 눈으로만 쳐다보고 가면, 소나무들이 “저 사람들
이 성자의 신부인가? 분체의 제자들인가? 자연성전에 대해서도 모르
나?” 합니다.
사람은 습관이 들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습관대로 살게 됩니
다. 단순한 습관과 버릇이 들면, 그 습관과 버릇대로 자기 형상을 만들어
살게 됩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 단순한 습관이며, 모순된 습관입니다. 그
습관대로 자기 삶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여 혼적으로 영적으로 주님과 함께 보면, 절대 단순하게 생각하
지 않습니다.
(‘혼적, 영적으로 보면’ : 오른손을 머리에 댄다)
성자 주님은 항상 선생에게 이같이 가르치셨습니다. “너는 사물을 꿰
뚫어 보아라. 그리고 보고 와서 이야기해 보아라. 얼마나 깊이 봤는지 보
자.” 하셨습니다.
섭리사 신부들은 이 말씀을 듣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하던 것을 모두
고쳐야 되겠습니다. 단순한 사람은 신앙에서도 성공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왜요? 자기 고정관념이 그대로 자기 삶으로 형성
되기 때문입니다. 개조하고 고쳐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성자 주님께서 월명동의 형상석들에 눈을 뜨게 하니, 이제야 기존의
바위들을 다시 자세히 보게 됐습니다. <거북바위>도 단순하게 안 보고 자
세히 보았더니, 종전에 못 봤던 전혀 생각지 못한 형상을 보게 됐습니다.
<거북바위>를 다시 봐요. 무슨 형상이 보이나요? 누구처럼 생겼나요? (화
면을 잠시 정지해서 보게 하기.) 찾았어요? (좀 더 기다리며 보여 준다.) <끝>
깊고 차원 높은 형상석의 형상은 단순한 사람은 못 봅니다. 단순하면
자기 형상도 못 봅니다. 단순하면 큰 사람도 못 발견하고 인재도 못 발견
합니다. 선생도 형상석을 생각도 못 하고 살 때는 50년 동안 거북바위를
보면서 살았어도 그 형상이 거북이 형상인지 몰랐습니다. 그동안 10년,
20년, 30년 동안 섭리사를 따라온 사람들은 선생 사명의 형상을 다시 보
고, 성자 주님도 다시 봐야 제대로 깨닫습니다.
똑같이 인생을 사는데 어떤 사람은 잘되고, 어떤 사람은 안 됩니다.
이는 ‘생각의 차이’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산 사람과 단순하게 생각하
고 산 사람은 삶의 결과가 다릅니다. 당시 순간만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
는 사람은 정말 단순한 사람입니다. 모두 고쳐야 저마다 빛을 발하게 됩
니다.
교회의 모든 것들도 단순하게 보고 듣고 행하면 교회가 발전이 없습니
다. 또한 교회의 어떤 일을 할 때도 단순하게 생각하고 건달같이 형식적
으로 행하고 지나갑니다. 모두 단순해서 그러합니다. 보고하는 것도 단순
하게 자기 주관으로 본 것만 보고하지 말고, 각도석 보듯이 동서남북 전
체를 보고 보고해야 됩니다.
월명동 각도석은 선생이 보면 형상이 6개나 보입니다. 여러분은 각도
석에서 형상 하나만 봤지요? 단순하니 그렇습니다.
선생이 기도해서 귀한 생명들이 와서 이미 교회에 다니고 있는데, 목
사들도 전도한 자들도 생명을 단순하게만 보고 대하니까 인재를 발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그 생명이 다시 세상으로 나가든지, 섭리사에 있어도
힘이 없어서 강하게 쓰이지를 못합니다. 답답합니다. / 교역자들은 단순하
게 목회하면 안 됩니다. 단순한 사람은 목회 자격이 없습니다.
살아 있는 설교를 위해서 설교 제스처를 코치하며 그렇게 이야기해도
단순하게만 생각하고 연구를 안 하고 연습을 안 합니다. 그러니 제스처를
해도 손을 강대상 위로 높이 들어 하지 않고, 강대상 바로 위에서 보이지
도 않게 어린아이 소꿉장난하듯이 합니다.
① 손을 단상 바닥이 닿게 놓고
조잡스럽게 제스처 하는 모습
② 양손을 올리고
시원하게 제스처 하는 모습
집에서 연습을 안 하니 그렇습니다. 탤런트들은 그 육적인 일을 하는
데도 밤잠을 못 자고 엄청나게 연습해서 합니다. 연습을 안 하면 사람들
이 알아주지 않으니 더 이상 연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과 성자 주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들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교역자는 하나님과 성자 주님과 선생의 몸이 되는 사명을 하는 자들입
니다. 못하면 주님의교회에 가서 조은 목사에게 배워서 해야 됩니다. 항상
못하는 자는 잘하는 자에게 빨리 배우는 것이 단순한 병들을 고치는 것입
니다. 설교하는 자가 설교를 못하면, 주님의 심정을 전해 줄 수 없으니 생
명들을 맡길 수 없습니다. 고로 못하니까 이 귀한 설교 시간에 교육하는
것입니다.
잘하는 교역자들은 노력하면서 잘합니다. 고로 이 시간에 선생이 주님
과 함께 칭찬을 해 줍니다.
교인들은 교역자가 제스처를 할 때 너무 낮게 하는지, 어색한지, 조용
히 말해 줘야 됩니다. 본인은 본인이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못 합니다. 교
회에서 누구를 세워서 제스처를 어떻게 하는지, 설교를 어떻게 하는지 봐
달라고 하라고 했는데도 안 합니다. 그러니까 감사하는 자들이 보고 와서
선생에게 다 보고합니다.
이렇게 어린아이처럼 교육받으면 되겠습니까? 미리 교육해 줄 때 연
구하고 노력하면서, 늘 본인은 본인을 못 보니 사람을 세워서 보게 하면
서 발전해 나가면 좋지 않습니까? 교역자들은 특히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
하던 것들을 다 고쳐야 되겠습니다.
이제 성자 주님께서 단순하게 생각하고 살지 말라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영상4>
<성자의 말씀>
오늘 나 성자가 단순한 것에 대해 말해 주었으니, 나의 말을 이해하고
진정 깨닫고 모두 단순한 삶을 살지 말아야 된다. 나 성자의 신부들은
‘육’도 지금 이 세상에서 나와 함께 살고, ‘영’도 앞으로 천국에 가
서 나와 같이 살아야 되기에 꼭 단순하게 생각하고 사는 것을 고쳐야 된
다. (아멘.)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너희가 바둑과 장기를 둘 줄 아느냐. 그 비유를 들어서 단순한 것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강대상에 바둑을 두고 장기를 두듯 손가락을 오므려서 딱딱 소리 나게
표현) 바둑도 단순하게 두면, 바로 상대가 따 먹는다. 장기도 같은 이치다.
고로 ‘내가 여기에 놓으면 상대는 어디에 두겠지?’ 생각하고 둬야 된
다. 상대가 어디에 둘 것을 생각하지 않고, 상대 것을 따 먹으려고 자기
것만 생각하고 두면 안 된다. ‘인생’도 자기라는 몸을 바둑판의 바둑알
같이, 장기판의 장기같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옮기고 행해야 된다. (아멘.)
<끝>
나 성자가 내 분체를 통해 비유를 들어 말했다. 너희는 전능자의 멘토
링을 받는 것이다. 세상에서 어느 누가 너희에게 영원한 것에 대해 멘토
링을 해 주느냐. 영원한 멘토링을 해 주는 자는 나 성자가 아니냐. (‘성자’ :
오른손 엄지를 들어 표현)
다음 비유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월명동에 돌을 쌓을 때도 앞에 놓을 돌만 생각하고 세우면, 뒤에는 더
돌을 쌓지 못했다. 한 가지만 생각하는 것이 단순한 생각이다. 앞의 것만
생각하지 말고 뒤의 것도 생각하고 해야 된다. 현재의 것만 생각하지 말
고 미래의 것도 생각하고 해야 된다. 이와 같이 자기 육뿐만 아니라 영을
생각하고 해야 된다. 지금 순간만 생각하지 말고 앞날까지 전체를 보고
생각해야 된다. 자기뿐 아니라 앞, 옆, 위에 있는 하나님과 나 성자를 생
각하고 해야 된다. 그리하면 완벽하고 영원하다. <끝>
학교에서는 글을 배우고, 교회에서는 전능자 하나님과 나 성자에게 인
생의 삶을 배우는 것이다. 어린아이라도 배우면, 어른이 못 따라간다. 고
로 어려도 배우고 어른같이 큰일을 하라는 것이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월명동의 ‘초가집 작품 돌’을 보았느냐. 자연성전 안의 ‘바위 위
분재 소나무’를 보았느냐.
네 선생이 단순하게 한 가지만 생각했을 때는 초가집 돌이 어떤 형상
인지 모르고, 다른 데다 놓기 위해 크기를 맞추려고 포클레인으로 ‘꽝
꽝’ 때려서 깨려고 했다. (주먹으로 강대상을 꽝꽝 친다)
자연성전 안의 바위 위 분재 소나무도 대작품인데, 단순하게 한 가지
만 생각했을 때는 바위만 귀히 여기고 분재 소나무를 자르려고 했다. 돌
을 갖다 쌓으려는데 그 위에 나무가 나 있어 걸리니, 분재 소나무를 베려
한 것이다.
네 선생이 최고 원하고 바라고 기도해서 내가 선물로 준 작품인데, 기
도에 대한 응답이 그같이 도적같이 홀연히 온 줄 몰랐던 것이다. 평소에
단순하게 행하다가 그리한 것이다. 정말 킥킥 웃을 일이다. <끝>
너희도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자기 생각대로만 사용하려고 하다가 작
품 돌을 깨듯이 깨고, 돌 위의 작품 나무를 베려고 하듯 베어 ‘작품’도
버리게 되고 ‘사람’도 버리게 된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자기 일도, 교회 일도 한 가지만 보고서 단순하게 한다. 사람도 한 가
지만 보고서 단순하게 대한다. 사람을 대할 때도 무조건 “모순이다.” 하
지 말고, 그 특징 때문에 대단한 달란트가 있음을 알고 대하여라. 그리고
여러 각도로 사람을 보고서 개성대로 사명을 주며 교회 일을 해 나가야
된다. <끝>
선생은 월명동 자연성전 건축 일을 하면서 내게 많이 배우고 눈을 떠
서, 이제 여러 가지로 많이 알고 나 성자의 시중을 든다. 무엇이 작품인
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안 다치고 문제가 없이 하는지, 하나님의 구상
이 무엇인지 여러 가지로 많이 알고, 섭리사도 그와 같이 다스려 나가며
나 성자의 시중을 든다. 고로 너희도 섭리를 뛰면서 서로 안 다치게 하려
고 목회나 각 부서의 사명을 못 하면, 다른 곳에 배치하여 쓰며 유능하게
해 나간다. 네 선생이 못 할 때는 나 성자가 강력히 틀어 기어이 실수하
지 않게 했다. 너희도 잘 못 할 때는 내가 늘 이같이 해 왔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9>
네 선생은 자연성전 안의 바위 위 분재 소나무를 통해 바위 위에 난
소나무에 대해 눈을 뜨고 귀히 여기고서 100리나 떨어진 곳에 가서 또
그와 같은 작품을 또 한 개 구해다 놨다. 바로 옛날 생가 쪽에 있는 바위
위의 솔 작품이다. <끝>
너희도 한 가지를 가르쳐 주면, 평생 그같이 눈을 뜨고 해야 된다. 그
런데 단순하니까 눈을 떴다가 감았다 한다. 항상 단순하게 한 가지만 생
각하고 행하면, 단순한 자로 인해서 늘 큰 손해를 본다.
개인도, 가정도, 국가도, 섭리사도 단순하게 한 가지만 생각하고 하면
엄청나게 큰 손해를 본다. 두 가지, 세 가지, 네 가지를 생각하고 하면 절
대 단순하게 일을 안 한다.
자기 혼자 하는 자, 자아로 하는 자, 자기 주관과 자기중심과 자기 의
지로 하는 자는 한 가지만 생각하고 하는 단순한 자다.
① ‘자기 혼자’ : 검지를 든다② ‘자아’ : 손을 가슴에 댄다
③ ‘자기 주관, 자기중심, 자기 의지’ : 머리에 손가락을 댄다
④ ‘단순한 자’ : 두 손을 모으고 작은 것 표현)
나 성자도 생각하고, 네 선생도 생각하고, 형제들도 생각하며, 늘 의
논하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된다.
말을 할 때도 단순하게 한 가지만 생각하고 그때만 생각하고 말하지
말고, 깊이 생각하고 말해야 된다. 너희가 잘못 말한 것이 네 선생에게 직
접 돌아가 결국 나 성자에게 해로 돌아온다.
교회에서 서로 의논하다가 혈기를 내고 소리를 지르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 전에서 그렇게 하면 행한 대로 받는다. 알 만한 자들이 그러니 습
관이 들고 버릇이 들어서 그러하구나. 당장 회개하여라. 결국 그 죗값을
누가 받겠느냐.
가정국들과 장년부들은 특히 말을 할 때 단순하게 생각하고 하지 말아
라. 그 해가 자기 가정과 자기 자녀에게 돌아간다.
말을 할 때 단순하게 그때만 생각하고 하는 자는 건달기가 있는 자다.
종들은 자기 일이 아니니 함부로 말을 한다. 신약 때를 보아라. 유대
종교인들은 자기들이 유일신으로 믿고 사랑하는 하나님이 행하신 신약역
사를 단순하게 생각하고 대했다. 그러므로 나의 육인 나사렛 예수를 죽였
다. 결국 2000년이 지났어도 그 자손들까지 회복이 안 되고 끝나지 않았
느냐. 그러나 나 성자가 나사렛 예수를 통해 시작한 구원역사는 천주교와
개신 기독교 세계로 펼쳐 오지 않았느냐.
이 시대 섭리역사도 전능자 하나님과 나 성자가 시작한 구원역사다.
이 역사는 나 성자가 다시 와서 행하는 재림역사요, 구원역사상 최고 차
원 높은 역사로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신부 역사다. 그런데 단순한 자들은
섭리역사에 왔어도 단순하게 보고 믿고, 아예 믿지 않고 오히려 배척하지
않느냐. 그렇다고 해서 이 역사가 끝나겠느냐. 이 역사는 하나님과 나 성
자의 역사로서 1000년 동안 간다. 1000년 동안 가면 역사가 얼마나 커
지겠느냐. 과거 신약역사와 동시성이다.
너희끼리도 단순하게 보고 대하거나 행하지 말고, 서로 귀히 보고 대
하고 행하여라. 앞으로 점점 많은 자들이 모여 더 큰 청중이 되면, 별의별
인재들이 다 온다. 그런데 자기가 단순하면, 같은 섭리사에서 살면서 그들
보다 뒤떨어진 삶을 살게 된다. 나 성자는 나의 말대로 깊이 생각하고 행
하는 자, 순간만 보고 단순하게 보고 행하지 않는 자들을 쓴다.
섭리사를 보아라.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 것
이 지금 현실이 아니냐.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 왼손으로 오른손 소지를 잡은 후에 엄지를 잡는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됐다’ : 왼손으로 엄지를 잡은 후에 소지를 잡는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된 자들은 단순하지 않은 자들로서 열심과 사랑
과 모심으로 절대적 신앙을 한 자들이다.
가룟 유다는 참으로 단순한 자였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보낸 자를 악
평하고 배신하여 그 육의 행위대로 그 영혼이 결국 지옥에 가고 말았다.
이 시대 가룟 유다들도 동일하다. 이 시대에 내가 보낸 자를 악평하며 악
하게 대한 자들은 나 성자를 악평하며 악하게 대한 자들로서 그 행위대로
그 영혼이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다.
또한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성자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섭리사에 와서
신앙생활 한 지 1년, 2년, 3년 된 자들을 단순하게 보고 어리게만 대하지
말고, 귀히 기르고 사명도 주며 키워야 된다.
섭리사에 일찍 온 사람들은 20년, 30년 전에 왔으니, 옛날식으로 하
면 안 된다. 옛날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며 계속 옛날식으로 하는
자들은 발전이 없는 자들이다. 나 성자도 선생도 단순하게 옛날식 그대로
하지 않는다. 말씀도 날마다 차원을 높이고, 섭리사 찬양도, 여러 가지 문
화도 이미 차원을 높여 진행하고 있다. 나 성자는 내 분체를 통해서 해마
다 새롭게 역사를 펴 나간다.
각 교회는 그저 편하게 단순하게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변화되지 못한
굼벵이로 끝나, 휴거는커녕 휴식도 제대로 못 한다.
단순한 사람은 밭의 보화를 발견하지 못한다. 이 보화는 바로 ‘인간
보화들’이다. 깊이 기도하여 신령해야 된다. 그래야 나 성자와 내 분체와
일체 되니, 단순하지 않게 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단순하게 판단하지
말아야 된다.
열심을 잃지 말고 뛰자. 내 분체인 선생이 안 보여도 그와 일체 되자.
당장 눈에 보인다고 교역자 심정만 맞추고 단순하게 끝나면 안 된다. 너
희를 구원하여 내게로 인도하는 내 분체를 증거하고 그를 가르쳐야 된다.
그리고 진실로 너희 마음이 내 분체와 하나 돼야 한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0>
월명동은 성지 땅인데, 와서 먹고 난 후 여기저기 쓰레기를 버리고 가
면 되겠느냐. 그렇게 하면 축제를 못 하게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일을 하
든지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하지 말고, 깊이 생각하고 행하여라. <끝>
단순하게 행하는 자는 빛나고 신비하고 영원한 나의 나라 천국을 유업
으로 받을 수가 없다.
★ 섭리사는 ‘말씀’이 뛰어나고 차원이 높아서, 신부로서 천국에 가
는 데 있어서 ‘말씀’이 최고 우선권이다. 마태복음 5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
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했다. ‘말씀’이 최고로 뛰어나고 차원
높은 이 시대 섭리역사에 와서 살면서도 단순하게 생각하고 살면 기성만
도 못하게 된다.
(* 매듭짓겠습니다. 마지막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1>
세운 자에게 배워라. 선생에게 배워라. 그리고 선생이 세운 자에게 배
워라. 그냥 세우지 않았다. 조건이 되고, 나의 말대로 실천하고, 그만한
실력이 있으니 세웠다. 자기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자기 인식과는 달
리 실상 그 사람의 영을 보면 저 뒤에 처져서 힘들게 살고 있다. 똑같이
휴거돼도 휴거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배워서 차원을 높여라. 한
가지를 더 알고 모르는 것의 차이는 큰 산을 넘고 못 넘고의 차이다.
초가집 같은 단순한 생각을 다 부수고, 나 성자의 말로 다시 개조하기
바란다. 나의 말대로 하면 1년을 해도 단순하게 10년 한 것보다 더 낫게
얻는다. 올해 마지막 때에 단순한 삶을 벗어나는 부활을 해야 된다. 그래
야 휴거되지 않을 자도 휴거되고, 휴거돼도 더 높은 차원으로 휴거되고,
영과 혼과 육이 온전히 변화된다.
평강을 빈다. 너희 사랑의 성자니라. 샬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