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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2.11.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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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일
2012.11.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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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사 성찬식은 선생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거룩한 날이니라 작성일 : 2012. 11. 2.(금) 오전 10시 작성자 : 장정임 (선생님을 위한 눈물의 기도를 하고자 간구하며 제 자신의 부족함을 회개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의식을 행한다는 것은 곧 무언가를 기념함이지 않느냐. 너희는 이 날에 무엇을 기념하려 하느냐. 유대인들이 지금도 유월절을 지키는 것은 출애굽의 역사가 바로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길이길이 기념하는 것이듯, 신약 2000년 간 이어져 온 성찬식은 타락한 인류를 아들 차원으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간 성자 예수를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니 성약이 시작된 지금 너희가 행하는 이 성찬식은 누구를 기념하는 것이겠느냐. 과거 신약의 성찬식과는 엄밀히 다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성약은 창조 이래 처음으로 창조목적을 이루는 신부역사이기에 이를 선두에 서서 이끌고 있는 선생이 진 십자가는 그 차원이 진정 신약과는 다른 것이니라. 섭리사 성찬식이 시작된 2009년은 선생이 너희를 신부로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온 인류를 마지막 신부 역사로 돌이키게 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질 수밖에 없었던 육적 십자가를 홀로 담담히 지기 시작한 해이다. 즉 신부급 구원역사를 이루어 삼위가 인간을 창조한 근본 목적을 결단코 이루고자 십자가에 오른 해란 말이다. 타국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홀로 섭리사와 민족과 세계의 죄로 인한 탕감조건을 거듭 세우다 못해 마지막으로 사탄이 더 이상 입을 댈 수 없는 완전한 조건을 세우기 위해 시대 예루살렘인 한국 땅으로 들어와 너희 모든 죄 값을 십자가로 담당하기 시작한 해이니라. 돌아보아라. 그 때부터 지금까지 너희는 진정 선생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마시고 있지 않느냐. 살과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바이니 이는 곧 선생이 자신의 생명과 맞바꾼 말씀이니라. 그 말씀을 듣고 너희가 살아나고 있으며 변화되고 부활되고 있는 것 아니냐.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선생의 심정은 어떠했겠느냐.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마지막 땀방울을 흘리며 내뱉었던 나의 기도가 생각나느냐. 이 말로 저 기성은 나의 신을 받은 예수의 신성을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심정을 너희 섭리는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진정 가고 싶지 않은 길이었다. 진정 가서는 안 되는 길이었다. 하지만 갈 수밖에 없는 길이었다. 그 십자가만이 인류를 구원하고 돌이키게 할 수 있 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생의 말처럼 살아서 역사를 폈더라면 얼마나 더 창대했을까... 시대의 악함과 나사렛 예수의 육을 쓰고 나타난 나를 향한 믿음과 사랑이 너무나도 부족했던 제자들로 인하여 이미 판국은 악으로 기울어졌고 결국 그 십자가의 길은 나의 운명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마지막까지 그 잔을 물리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마셔야만 되는 잔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에 담담히 마신 것이다. 선생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유로이 두루 다니며 나와 함께 지상 혼인잔치 역사를 맘껏 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혹자는 지난 10여 년의 세월을 두고 선생이 두려워 이리저리 피하고 숨었다 하지만 선생이 그리 행한 모든 것은 6000년 동안 고대하던 지상 혼인잔치 역사를 나로 하여금 육으로 성대히, 찬란하게 치르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토록 기다리던 하늘 신랑이 땅의 신부를 만나러 지상에 와서 혼인잔치를 벌이는 데 정작 신랑이 신부의 죄로 인해 힐문을 당하여 묶인다면 그 잔치가 제대로 치러질 수 있겠느냐. 아무리 초라한 마당에, 초대받은 하객이 하나 없다 하여도 신랑과 신부만 있으면 혼인잔치는 벌어지게 된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겨 신부 홀로 자리를 지켜야 한다면 얼마나 서글프고 애통하겠느냐. 그토록 기다린 신랑이 왔으나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한이 되겠느냐. 허울만 잔치이지 홀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신부의 눈엔 눈물만 가득하지 않겠느냐. 선생은 지난 10년 간 세상과 악인의 무수한 모함 가운데에서도 나의 신부들을 찾아서 나와 만나게 해 주었다. 자신의 목숨이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도 너희를 하나하나 불러 만나 준 것이 기억나지 않느 냐. 극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고 지상에서 벌어지는 이 혼인잔치를 기어이 치르고 말았던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 많았지. 특히 선생의 안위를 걱정하는 자들은 더더욱 그러했 지. 하지만 생각해 보아라. 생명을 구하여 뜻을 이루기 위해 가야만 하는 길이 가시밭길이라면 아무리 고생된다 하여도 이를 이루러 온 자가 그 길을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느냐. 이를 너무나 잘 아는 고로 선생은 역시 마지막 성약 신부의 역사를 지상에서 온전히 이루기 위해 그 어떤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생이 자신의 안위만을 위했다면 결코 그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애초 북풍한설 몰아치는 눈 덮인 겨울 산에서 추위와 무서움과 배고픔을 참아 내지도 않았을 것이 다. 그는 그 때도 지금도 역시 자신의 생명과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도 사방이 꽉 막힌 그곳에서 숨조차 편히 쉴 수 없는 답답함이 심장을 누르고 또 눌러도, 혼미해지는 정신을 뒤로한 채 나의 손 부여잡고 오직 너희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을 받아 전하고 있으니 이것이 곧 선생의 살과 피니라. 아느냐. 너희는 진정 아느냐. 너희가 받아먹고 있는 말씀이 십자가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선생의 살과 피라는 것을 진정 아느냐는 말이다. 사랑하는 내 신부들아. 선생이 없었다면 너희 중 그 누구도 내 신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너와 내가 신랑과 신부의 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선생 때문이니라. 그런 선생이 지금 저곳에서 신음하고 있노라.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노라. 2000년 전 십자가에 올랐던 나사렛 예수의 육신을 통해 겪었던, 심장이 조여드는 그 고통을 나는 지금 또다시 선생을 통해 겪고 있다. 사랑하는 섭리사 나의 신부들아. 제발 이를 깊이 깨닫고 선생을 위해 기도하라. 지금 선생의 고통에 함께 참예하지 않는 자는 진정 마지막 날에 내 그를 모른다 하리니 이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를 보고도 외면하던 제자들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니라. 그러한 자들을 어찌 선생의 제자라 할 수 있겠느냐. 어찌 나의 신부라 할 수 있겠느냐. 섭리사 성찬식은 선생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날이다. 날마다 선생의 고통을 잊지 말아야 하겠으나, 이 날을 빌어 더욱 선생이 지고 있는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기며 심정을 받아 기도하길 원하노라. 성찬식 주간만큼은 너희 모두가 내 사랑하는 선생을 위해 선생이 너희에게 베푼 사랑만큼 너희도 선생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할 때 사랑의 저울은 수평과 균형을 맞추어 완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완전한 사랑 앞에는 사탄이 더 이상 틈타지 못하는 것임을 알고 심정 깊은 사랑의 기도를 하는 나의 신부들이 되어 주길 바라노라. 선생의 사랑, 성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