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2.11.09 (금)
경북동부 천국성령운동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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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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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9 경북동부 천국성령운동 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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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1월 9일 ‘성자 재림과 휴거의 말씀' 경북 동부 천국성령운동 말씀 >
2012 'The Holy Son's the advent and the rapture word' Holyspirit Movement Words
할렐루야! 할렐루야! 네. 오늘 다 스마일(smile) 이시네요. 네. 기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다시 영광돌려
드리겠습니다. 할렐루야! '성자 재림과 휴거의 말씀' 이라는 주제로 섭리역사에서는 휴거의 성령의 역사
가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오늘도 더 역시 뜨거운 불같은 더 완전한 휴거의 성령의 역사가 우리
섭리세계 모든 여러분들에게 뜨겁게 내려질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예수님의 역사 자
체가 불의 역사입니다.
불의 특징은 뭐죠? 뜨겁다. 또 하나, 태운다. 이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죠. 태우는 것이 특징이고,
또 하나는 뜨거운 것이 특징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의 불의 역사로 인해서 우리의 잘못된 인식들을 태
워 버리고, 죄를 태우고, 온전하지 못한 생각과 행실들을 태워 버려야 되겠습니다. 또한 이 뜨거운 성령
의 역사로 인해서 우리의 마음과 사랑이 뜨거워져서 주님을 더욱 더 사랑하는 역사가 충만하게 일어나
야 되겠습니다. 이곳은 경북 동부지역입니다. 오늘 두 번이나 소개하게 되네요. 포항, 경주, 울진, 영덕,
네 곳이 우리 경북 동부지역에 있습니다.
네 오늘 이곳은 경주입니다. 경주. 우리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수학여행을 와봤을 법한 곳이
죠. 모르면 간첩이죠. 경주는 천년 동안 신라시대 때 수도를 지낸 곳이라고 합니다. 하나하나 의미를 부
여하자면 정말 엄청난데요. 오늘 성령의 역사가 진행되는 이 곳 경주도 정말 뜻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섭리역사가 천년역사이잖아요. 그런데 경주지역도 거의 이례가 많이 없는 그런 일이지 않습니까?
천년 동안 수도를 지냈다고 하는데, 천년 동안 지내는 성약역사에 굳건한 촛대가 이 곳 경주 땅에 경북
동부지역 전체에 더욱 불붙고 완전하게 꽂혀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네. 여러분, 재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지금 재림을 휴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재림은 뭐
죠? 아주 쉽습니다. 다시 오신 성자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시 오는 것, 성자께서 다시 오시는 것
이 바로 재림이죠. 그렇다면 휴거는 무엇입니까? 변화되는 것, 결국 변화를 이루고 차원을 높이고 완전
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 왜 합니까?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주님을 맞기 위해서, 휴거라는 것은 왜
합니까? 휴거라는 것은 주님을 맞는 것입니다.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 아니 주님을 만나는 것, 주님을
만나는데 헤어지지 않는 거예요. 오늘 주님을 만나는데 휴거 됐나? 휴거되었습니다.
그런데 내일 주님을 만나지 못 하면 휴거를 다시 져버리게 됩니다. 휴거라는 것은 주님을 만나되 계속
해서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평생 영원히 같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경북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해
서 오늘 섭리세계 모든 분들에게 오신 주님을 만나는 휴거의 역사가 오늘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 그
토록 기다렸던 이 주님을 만나는 것 이것을 성공시키게 되면 휴거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진행하
면서 살다가 가다가 낙오되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영휴거를 이루게 됩니다.
오늘 주님을 만나야 되겠죠? 여러분들이 한 차원 더 높이 생각해야 할 것은 오늘 주님을 만나되 주님
과 헤어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야 됩니다. 오늘 뜨겁게 불을 받고 오늘 결심을 하더라도 내일 주님과
헤어지는 삶을 산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휴거라는 것은 계속해서 휴거를 이루면서 결국 끝까지 주님을
만나서 영원히 주님과 사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오신 주님을 온전하게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오늘
기도하고 시작하겠습니다. 모든 역사를 주님께 맡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시작기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예수님, 성령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오
늘 경북 동부지역을 중심해서 섭리 전세계에 또 크나큰 불을 일으켜 주심을 믿습니다. 주님. 이 시간 주
님께서 온전히 역사하여 주시옵시고, 우리의 비워진 마음 가운데 온전히 들어와 주시옵시사 이 시간을
불의 시간을 만들어 주시옵시고, 결단하고 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옵시고, 차원을 온전하게 높일 수
있도록 충만하게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의 입술을 주관하여 주시옵시고, 이 마음
을 주관하여 주시옵시사 주님만이 역사하여 주시옵시고, 그 보낸 자의 영만이 이곳에 역사할 줄로 믿사
옵나이다. 주님. 모든 시간 뜨거운 마음으로 온전하게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을 비워 내오니
사탄, 마귀 틈타지 않게 역사하여 주시옵시며, 오직 주님의 재림과 휴거의 역사만이 충만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께 만든 것을 맡깁니다.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
다.
정말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우리 섭리세계 모든 여러분들이 주님을 만나되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만남, 완전히 헤어지지 않는 휴거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주님을 만나고, 헤어지지 않는 사람들
의 특징이 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만남이라는 곡을 그래서 준비를 했어요. 경북 동부지역은 처음이예요.
처음이어서 낯선 것도 있고, 신기한 것도 있구요. 다들 저를 신기하게 쳐다보더라구요. 유일하게 선생님
께서 저를 보내서 하는 순회를 함께 하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희들의 만남은 더욱 더 의미가
있구요. 그리고 섭리세계 전체를 봤을 때 이제 2012년 막바지로 다다르는 이 때 우리에게 만남, 주님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노래의 가사대로 주님을 만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간절한
기다림이었죠. 그리고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고
사랑하는 자들, 우리의 꿈은 바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 자체가 재림과 휴거입니다.
그러니까 강림과 휴거 역사라는 말입니다. 고로 지금 이 때는 다시 오신 주님을 만나는 역사, 다시 오신
주님을 만나기만 한다면 여러분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으로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든지
여러분들은 인생으로 태어난 최고의 보람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도대체 왜 믿는가? 오신 주님을 맞기 위해서. 주님의 말씀을 왜 듣는가? 도대체 왜 말씀을 듣
는가? 오신 주님을 맞기 위해서. 왜 이렇게 성령을 받으려 하는가 오신 주님을 맞기 위해서 주님을 맞
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주님을 맞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그 말씀을 듣는 것도 성령을 받
는 것도 다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의 최대의 소망과 꿈은 바로 오신 주님을 만나서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같이 사는 것입니다. 바로 믿는 자들의 최고의 꿈은 휴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휴거의 의미를 2012년 안에 완전하게 인식함으로 인해서 휴거를 여러분들의 것으로 만들어
야 합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주님을 맞는 소원이 없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오늘
성령집회 오신 여러분들이 주님을 맞지 못 한다면 재미도 없고, 낙도 없고, 그리고 의미도 없고, 아무런
뜻도 없습니다. 그저 육신이 잘 되는 것만 바라고 소원하고 산다면 주님을 믿는 것이 재미가 없고, 소망
도 없고, 기쁨도 없어요. 그리고 가다보니까 그래서 가다가 중도에 포기를 하게 되고, 중도에 주님을 믿
는 것을 접게 되고, 낙심하게 되고, 포기하게 됩니다.
주님을 맞는 것을 최고의 소망으로 두고 믿는다면 육신의 어려움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
입니다. 죄를 지어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기어 올라가게 되겠죠. 반드시 주님을 믿으면서 만나는
소망이 없다면, 가다가 복을 받지 못했을 때 어려움이 생겼을 때 쉽게 다른 일 세상으로 빠지기 쉽구요.
그리고 제대로 하는 일이 안 되었을 때 세상에 빠지기 쉽구요. 그리고 어느 때는 세상의 일이 너무나
잘 될 때 세상에 푹 빠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최고의 소망, 이 섭리역사 재림역사에 와서 다
시 오신 주님을 믿고 사는 여러분들은 주님을 만나는 것을 최고의 소망으로 삼고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절대 낙오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휴거되는 첫 번째의 길은 여러분의 소망이 무엇인지 검토하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왜 주님을
믿고 있는 것인가? 왜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면서 말씀을 듣는 것인가?’ 생각을 하며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주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주님을
믿는 소망도 없다는 것입니다. 근본을 깨닫지 못 하는 거예요. 하나님과 주님을 믿는 근본을 깨달아야
됩니다. 근본을 깨닫지 못 하면 죽어 버려요. 시들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 하나님과 성자 주님
을 믿으면서 최고의 소망은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인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영원한 자이기 때문에 영원한 것을 얻게 됩니다. 바로 영원한 영생을 얻게 되고, 다시
오신 성자 주님을 맞는 휴거를 이루게 됩니다. 맞습니까? 주님을 믿고 섭리역사에 와서 말씀을 듣고 사
는데 힘이 없어요. 맥이 빠져요. 소망이 없어요. 자꾸 세상에 한 눈을 팔고 정신을 못 차려요. 계속해서
힘이 빠집니다. 이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바로 그에게는 영원한 소망이 없습니다. 그냥 좋은가 하고 믿
는 정도로는요. 주님과 영원히 동행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것에 소망을 두고, 주님을 영원히 만나서 평
생 동행하면서 사는 것에 소망을 둬야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힘이 빠지지 않고 맥이 풀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지난 주에 여러분들에게 예를 든 것 중에 산모가 아이를 배고 있는데 아이를 낳는 소망을 잃어 버리면
자기만을 위해 삽니다. 그러다가 결국 아이를 잃어버리게 되죠. 이와 같이 우리 인간도 살면서 영혼, 바
로 영원한 것을 잊어버리고 살게 되면 결국 육신만을 위해 살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을 뺏기게 된다는
말입니다. 영원한 것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주님을 만나
서 같이 사는 이 영원한 소망을 영원히 뺏기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휴거 주님을 만나서 영원히 같이 사는 것 하나님과 성자께서 이 시대 보낸 자를 통해서 주신 시대
말씀을 듣고 행하면서 변화를 이루면서 사는 사람들, 이들은 바로 땅에서 주님을 만나서 육적휴거를 이
루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육적휴거가 뭡니까? 정확하게 정의를 내려 주세요. 우리 인생을 사는 동안
주님을 뺏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적휴거입니다. 요한복은 5장 24절-29절 말씀처럼, 그가
보낸 자의 말을 듣고 그 보낸 자의 말을 믿으면서 변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땅에서 이루는
육적휴거, 그러나 어제는 믿고 오늘은 주님을 뺏긴다면 이것은 바로 휴거를 이룬 자의 삶이 아닙니다.
이 육적휴거를 이루면서 주님을 만나는 삶을 계속 지속하면서 우리의 영혼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그리
고 다시 오시는 성자 본체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나는 그 영을 영적휴거가 되었다고 말
합니다. 정말 주님을 만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기다림이며, 인생의 꿈이 이루어졌습니
다. 오늘의 가사처럼 우리의 인생의 꿈이 이루어지며, 우리의 인생이 태어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로
주님을 만나는 것이고 뺏기지 않는 것입니다. 미련없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우리의 인생, 육신의 날들
을 미련없이 주를 위해 살고 미련없이 섭리의 세계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맡겨야 되겠습니다.
주님을 만나서 같이 살려면 과정이 필요하지요. 과정. 그냥 만나고 싶은데 그냥 딱 만나지는 게 아니예
요. 경북 동부지역도 순회를 맞기 위해서 과정을 거쳤죠? 그냥 약속을 딱 잡았다고 해서 그날 바로 이
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과정을 밟았습니다. 만나기 위해서 이렇게 과정을 쭉 밟게 됩니다. 지금 원하
더라도 당장에 얻어지는 것은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과일을 얻으려면 과일 나무를 심고 가꾸
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인생의 모든 것들은 과정을 거쳐서 결과물을 얻게 됩니다. 고로 과정
이 있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고, 과정이 있기 때문에 휴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과정이 있음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믿습니까? 또 하나 예를 들었죠. 아이가 태어났는데 바
로 고기를 너무 먹고 싶은 거예요. 고기냄새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러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빨이
나는 과정, 그러면서 몸도 같이 성장하는 과정, 이빨이 나면서 내장기관도 고기를 소화시킬 정도로 튼튼
해지겠죠. 그런 성장과정을 거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성장과정은 참 아름다운 거예요. 왜? 성
장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오늘 중요한 말씀이 처음부터 많이 나가고 있어요. 오늘은 지식적으로 받아들
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러함을 삶으로 받아들여야 되겠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완전하게 만나려면 이
과정이 필요합니다.
가장 먼저는 이 땅의 보낸 자를 만나서 말씀을 받아들여야 되요. 그리고 우리의 마음과 양심을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모순을 고쳐요. 그리고 죄를 회개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영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성자 본체의 재림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육
적휴거를 이루는 과정이 되겠죠? 그러나 여러분들 이 과정 가운데는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번 주 말씀
에 나왔죠? 가다보니까 평지만 있는지 알았더니만, 산도 나와요. 내도 나와요. 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강이 나와요. 강으로 끝나면 좋은데, 바다도 나와요. 끝도 없어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과정 가운데 어
려움을 만나기 때문에, 시작할 때처럼 그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겁니다.
시작은 ‘끝까지 하고 말꺼야.’ 했는데 막상 가다보니까 어려우니까 시작할 때처럼 쉽지 않음을 깨닫고
거기서 포기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이런 말을 잘 들어 보기 바랍니다. 과정 가운데 힘들
어도 끝까지 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맞춰보세요. 퀴즈입니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걸 아는 데도 대개
쉬운 말이예요. 과정 가운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이유가 있어요. 목적을 이루려고? 뭔가 나왔어
요. 제가 이야기해 볼께요. 자. 시작, 과정입니다. 과정. 과정 가운데 너무 어려움이 많은 거예요. 그런데
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려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앞에서는 육적 한계를 넘어설 어려움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과정 가운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진짜 쉬워요. 끝이 있기 때문에. 맞습니까? 바로 목
적지가 있기 때문에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자, 왜 시작을 하느냐. 끝이 있으니까. 바로 이 과
정 가운데 조건을 쭉 세우는 이유가 있어요. 왜 조건을 세우느냐. 바로 결과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댓가
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시작을 했으면 끝이 있고, 힘들어도 조건을 세우면 댓가가 있기 때문에 끝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 섭리역사에서 어떤 말씀을 듣느냐면 끝이 있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끝이 아주 분명하고, 그리고 결과가 아주 분명하며, 목적이 아주 분명한 그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 끝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가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
은 “끝까지다.” 말씀하셨습니다. 끝까지라고 말씀하신 것을 끝, 결과물이 있기 때문에 목적이 있기 때문
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휴거되기를 원합니까? 정말 주님을 맞이하시기를 원합니까? 그러려
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핵심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바로 끌어올림을 받는 것입니다. 이
것을 쉬운 말로 하면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과정 가운데 차원을 높이면서 더 좋게 변화되는 것이 바
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두 가지 주제말씀과 핵심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릴께요.
첫 번째, 차원대로다. 두 번째, 쉽게 하여라. 분명히 지난 주에는 어렵다고 했어요. 그런데 쉽게 하는
방법을 아주 이해가 되게 가르쳐 줄 것입니다. 자, 차원대로다. 왜 차원을 높여야 할까? 도대체 왜 주님
은 차원을 높여야 된다고 하실까요? 휴거는 무엇이라고 했죠? 우리 육신이 주님을 만나는 것이 휴거입
니다.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올라갑니다. 바로 끌어 올림을 받는 것이죠. 저차원에서 고차원으로 끌어
올림을 받는 것이 휴거입니다. 이게 바로 휴거입니다.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변화되고, 낮은 곳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 아주 안 좋은 생각에서 좋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끌어 올리는 생각, 거듭나는 것입니다. 자녀에서 신부로 변화되는 것이 이게 바
로 휴거입니다. 휴거는 끌어 올림을 받는 것이라고 했어요. 위로 올라가는 거예요. 왜 이 끌어 올림을
받으면서 차원을 높여야 되는가? 오늘 주님은 그에 대해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차원대로 주님
을 맞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오늘 이곳에 똑같은 사람들이 있는데요. 다 똑같이 주님을 맞이하지 않
습니다. 말씀도 똑같습니다. 사람도 똑같애요. 그런데 어떻게 해요? 자기 차원대로 주님을 맞게 됩니다.
자기 차원대로 주님을 깨닫게 되요. 자기 차원대로 주님을 만나게 되요.
아무리 하나님과 성자 주님과 성령님께서 도우시고, 역사하시고, 불을 떨어뜨려준 적이 없을 정도로 불
을 떨어뜨려 주고 이 곳을 다 불태워 버린다고 하셔도 자기의 차원대로만 느끼고 깨닫습니다. 자기의
차원대로만 누리게 됩니다. 자기의 차원대로 천국에도 가게 되고, 그에 해당되는 그에 해당되는 영계에
거하게 됩니다. 자기 차원대로 상, 중, 하로 휴거도 이루게 됩니다. 주님이 없다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이유는 딱 한 가지, 자기가 주님이 계신 차원에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안 느껴진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이유는 자기가 주님이 안 느껴지는 차원에서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주님은 높은
차원에서 역사하시는데, 낮은 차원에 있으면 백날이 가도 주님이 안 느껴져요.
어떤 사람은 주님이 신랑으로 생각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주님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그 어느 누구보
다 사랑하는 차원에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신부의 말씀을 듣지 못 했기 때문이고, 들었어도
깨닫지 못 하기 때문이고, 깨달았어도 행하지 못 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
님의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마음을 비우지 못 하고, 주님과 일체되는
차원에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오늘 눈물나게 깨닫는 거예요. 진짜 주님 오셨구나. 너무
나 깨닫습니다. 자기가 그 차원에서 기도하며, 준비하며, 맞이하려고 노력하고 몸부림쳤기 때문에 그 차
원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주님의 역사를 금방 느낀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역사가 왜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느냐 하는 것은 차원대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어
떻게 차원을 높이느냐? 여러분, 궁금할 것입니다. 사람들이요. 어떻게 그럼 차원을 높이냐고 너무 많은
말을 해요. 오늘 여러분들에게 쉬운 답을 줄 건데요. 할 겁니까? 자, 어떻게 차원을 높이는가? 무슨 말
이 나올까요? 노력입니다. 노력. 다 같이 해 볼까요? 노력, 모든 것은 노력에서 나오게 됩니다. 선생님께
서 며칠 전에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모든 것은 노력이다. 안 된다고만 제발 하지 말고 할 수 있도
록 노력해 보아라. 다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짐했으면 제발 노력이다. 행함이다. 실천이다.” 선생님
께서 말씀을 하셨어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도저히 못 참겠어. 참을 수가 없어. 엉덩이가 아퍼.” 그런데
사람이 참기 위해 사람이 노력을 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참지 못 하고 나가버려요. 조금만 버티자 하
면서도 나가요. 왜 그래요? 나가는 건요. 왜? 끝까지 안 했기 때문에. 노력은 했는데 끝까지 노력을 안
한 거예요. 어떤 사람은 가령 텔레비전을 안 보려고 노력을 했어요. 아침 7시부터 노력하여 저녁 10시
까지 성공했는데, 잠자기 전 끝까지 하지 못 하고 텔레비전을 틀고 말았죠. 자, 몸부림은 쳤고 노력은
했으나 어떻게 안 했다구요? 끝까지 안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끝까지가 얼마나 깊고 중요한 말씀인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자, 왜 끝까지 노력하지
않은 것 행하지 못했다는 것은 바로 중도에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노력은 했는데 끝까지 안 했다
는 말입니다. 노력하는 자는 반드시 행할 것을 행하고, 행하지 것을 행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노력하는
자는 행하는 자다. 행하는 자는 시작부터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자다. 곧 행한 자란 시작부터 끝까지 참
고 견디며 인내하며 노력한 자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작부터 끝까지 노력하지 않아서 얻지 못 한 것이 어디 있나 찾아보세요. 없습니다.
없어요. 아 세상에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노력했는데 안 되더라구요. 그러나 섭리에서는 이 하나님의 역
사에서는 1등도 여러 명도 나옵니다. 왜? 자기 센터별로 누구든지 노력하고 행한다면 금, 은, 동 한 사
람씩 주는데요. 동일한 성적을 받으면 두 명씩도 주죠. 세상에서도 그래요. 똑같이 1초 30초가 같으면
다 똑같이 금메달이예요. 하늘 세계도 마찬가지예요. “끝까지 노력했는데 안 되는 건 없다.” 주님은 말
씀하셨어요.
“주님. 노력했는데 안 되요.” 끝까지 안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지, 끝까지 했는데 안 되는 것은 이
세상에 절대 없고, 하나님의 역사에서 절대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 주일말씀에서 가장 좋은 말씀은
주님께서 “너희들 중도에 포기하고 끝까지 안 가면 기합이야. 겨울철에 달달 추운데서 떨게 할 거야. 탕
감이다. 형벌이다.” 하셨잖아요. 여러분, 그런 말씀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습니까? 저는 주님의 사랑
이 너무 느껴지는 거예요. “잘못 했으면 탕감이야.” 이게 아니라, “중간에 포기하고 낙심하면 탕감이야.
기합줄 거야.” 하셨습니다. 끝까지 참으면 안 참아질 것이 없습니다. 끝까지 행하면 안될 것이 없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알파와 오메가,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때부
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아멘. 마태복음 11장 12절에 말씀하
셨습니다. 다같이,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아멘. 할렐루야! 다시 누가복음 13장 24절을 보면 예수
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 하는 자가 많
으리라.” 하셨습니다. 왜? 답은 하나입니다. 좁은 문을 가기를 원하여도 힘쓰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힘
쓰지 않으니까 그 문으로 들어가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노력했어도 끝까지 안하는 거예요. 중도에 포기
하니까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예언되어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 하는 자, 휴거되지 못 하는 자는 예언되어 있어요. 노력하지 않는 자, 끝까지
힘쓰지 않는 자, 이런 자들이 낙오된다는 말입니다. 이번 주 주님 말씀처럼 “끝까지 하라. 시작했으면
끝까지 해라. 중도에 포기하지 마라. 그럼 기합줄 거야. 탕감이다. 형벌줄 거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
다. 이 성자 재림과 휴거의 성령을 주시는 이 때, 어떤 성령을 받아야 되느냐면 주님 사랑하고 싶죠? 사
랑하면 휴거되죠. 그러나 제발 포기하지 말라는 겁니다. 끝까지 하라는 것입니다. 가다가 산을 만나고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겁니다.
지난 주에 산모 비유를 들었죠? 여자가 자궁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아이를 쉽게 낳느냐? 참고 노력하
고 인내하면서 끝까지 힘써서 아이를 낳습니다. 10개월 동안 참아요. 인내해요. 5개월 만에 포기하면 아
이는 못 낳아요. 이 과정 가운데 포기하면 아이를 낳을 수가 없어요. 어때요? 끝까지 아이가 나오려고
할 때까지 힘들어요. 그런데 아이를 낳았어요. 드디어 머리까지 나왔는데 힘주는 것을 포기했다면요. 그
러면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자궁을 가지고 있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
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차원을
높이는 것은 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만큼 노력하고 힘써야 됩니다.
노력하고 힘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여러분, 그래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국가대표선수들이 육
상경기 1초를 단축하기 위해서 아니 0.5초, 0.005초, 0.0005초를 단축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몸부림
을 하는지 아십니까? 그러나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한 조건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평생 영원히 좋은 것을 얻기 위한 과정에 불과합니다. 여러분들이 노력하고,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고
통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게 영원한 것을 갖다주는 통로입니다. 그로 인해 여러분들은 좋은 결과를 얻
게 되고,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도 그냥 듣는 자들과 힘써서 듣는 자들은 깨
닫는 것이 다릅니다. 피곤하고 힘들 수도 있어요. ‘이상하게 나 집회 잘 준비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하
지? 오늘 당일인데 진짜 미치겠다. 어떻게 하지?’ 생각도 들잖아요. 그러나 깨닫기 위해 자꾸 비우고, 집
중하고, 힘을 쓸수록 더 주님의 말씀이 팍팍 들리고, 마음에 확확 꽂히며 깨닫고 결심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힘쓰지 않고서는 절대 천국을 차지할 수가 없습니다. 믿습니까? 주님을 차지할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요. 똑같이 서 있는데요. 보다 더 강하게 탁 당기면 툭 끌려 와요. 주님은 여러분들을 구원
하시고 사랑하기 위해서 매일 힘을 쓰세요. 그러나 세상의 힘이 너무 강해요. 세상은 막강한 힘들을 보
유하고 있어요. 육적인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아십니까? 그냥 여러분들을 툭툭 끌어 가요. 그러나 주님은
더 큰 힘으로 여러분들을 끌어 당기기 위해서 날마다 힘쓰신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제가 여기
있는 누구를 끌어 당기려고 해요. 그러면 어때요? 확 끌어 당기지 않으면 안 옵니다. 주님은 여러분들을
날마다 휴거시키고, 구원시키고, 사랑하기 위해 힘을 쓴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게 됩니다.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는 신의 능력을 받음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게 됩니다. 무에서 영원한 것을 얻을
수 있는 유의 상태가 된다는 겁니다. 오늘 귀한 말씀을 들음으로 인해서 여러분들이 무의 상태였다면
유의 상태를 창조하시기를 바라겠고, 유의 상태였다면 여러분들이 더 많은 유를 창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회개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도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즉시 회개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사랑하
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 이 말씀을 쳐내지 않고 받아들이면, 주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겁
니다. 전혀 주님을 못 느끼는 자가 주님의 말씀을 쳐내지 않고 받아들이는 순간, 주님을 깨닫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노력입니다. 몸부림입니다. 힘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입니다. 그래야 차원을
높일 수가 있습니다. 현재 차원에서 더 몸부림을 쳐야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기도하고 있는 자들, 오직 기도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자들은 기도로 그 문제를 해결
하겠다고 끝까지 힘쓰며 결심하고 기도하라.”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처리를 한다면 그
일처리를 잘 해서 끝까지 힘쓰면서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결심하면서 힘쓰라고 주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각자 자기 센터마다 자기가 해야 할 것을 100% 힘쓰면서 해결해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주
님은 끝까지 힘쓰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차원을 높이라고 하는가? 왜? 본격적으로 말씀할 것입니다. 아까 잠깐 이야기했습니다. 왜 차원을
높이라고 하는가? 왜? 예를 들어서 휴거를 이루고 있어요. 점점점점 밑에서 올라가고 있어요. 끝이
100%의 차원입니다. 그런데 가다가 중간에서 끝냈다는 것입니다. 중도에 탈락된 것입니다. 육적휴거 단
계인데요. 이 단계에서 오늘로 봤을 때는 이루었어요. 어제로 봤을 때는 이루었지만, 오늘 현재 중도포
기했다, 그러면 탈락된 것입니다. 휴거를 이루었어도 아직 끝이 오지 않았는데, 중간에 포기하면 다시
탈락됩니다. 왜 차원을 날마다 높이라고 하느냐? 매일 휴거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휴거는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매일 휴거를 높이지 않으면 중도에 탈락이 됩니다. 쉽게 표현을 하면
중간에서 포기하게 되면 탈락입니다. 알겠습니까? 누가 저에게 묻더라구요. 저한테 이런 말을 물었습니
다.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사도의 삶입니까? 어려운 질문을 하더라구요. 저는 딱 한 마디로 대답했습
니다. “제가 매일 주님을 완전하게 만날 때까지 매일 이 땅에서 사도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저는 사도
가 아니겠지요.”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만일 내가 오늘까지 사도의 삶을 살았는데, 내일은 사도의 삶을
살지 않았다면 내일은 사도가 아니겠지요. 맞습니까? 오늘까지는 그와 같이 살았는데 내일부터 그렇게
살지 않는다면 내일 나는 탈락된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냐. 매일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완성하면서
성장하면서 주님께로 도달하는 것입니다.
누가 휴거를 끝까지 이루었다고 자부하겠습니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끝은 아무도 몰
라.” 끝은 아무도 몰라요. 왜? 행한 대로이기 때문에. 끝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행한 대로 이기 때문
에.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온전한 자이든, 온전치 않은 자이든 끝까지 긴장하라는 말입니다. 선생님께서
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가장 마지막으로 맨 뒤에 꼴찌로 구원을 이루면서 간다고 생각하면
서 산다.” 왜? “긴장이다. 긴장풀면 탈락되니까.” 선생님께서 이 긴 환란 기간에 핍박과 어려운 기간 동
안에 오직 긴장의 허리끈을 풀지 않아서 우리를 이 정도까지 이끌어 오셨던 거예요.
잘하는 사람도 긴장 딱 풀면 그냥 안 되요. 제가 여기서 끝날 때까지 긴장 풀면 주님의 역사 못 느낍
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이 계시나 안 계시나 주님이 역사하시나 안 역사하시나 내 인식을 갖고 있
는지, 계속 해서 집중하면서 주님을 찾아야 됩니다. 맞습니까? 천국은 무한하게 높이 올라가는 세계입니
다. 무한해요. 그 끝이 무한하게 올라갑니다. 정말 더 높이, 더 높이, 또 있어요. 오늘 높이 올라갔는데
내일은 더 높이 또 있어요. 천국은 여기가 마지막인 줄 알았는데 더 있어요. 천층 만층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만드는 만큼 무한하게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어때요? 저 사람은 저기서 안 올라갈 줄 알았는데 또 올라갔네. 맞습니까? 그런데 지옥은요.
무한하게 내려가는 세계입니다. 만들지 않은 만큼 저 사람은 내려갔는데 더 내려갈 수 있구나. 더 내려
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긴장이 무기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휴거의 비법입니다. 선생님께서
얘는 휴거되지 않았다고 하는 명단이 있다고 했잖아요. 그러나 저는요. 그걸 중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때에 그 상황에 현재까지 이루어 온 것을 물어본 것이지, 미래의 상황을 물어본 것이 아니기 때문입
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조은아. 너는 휴거된단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는 바짝 긴장
되는 거예요. ‘오늘 휴거 이루어 놓고, 내일 못 이루면 안 된다. 휴거가 됐느냐, 안 되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과연 끝까지 얼마만큼 할 것인가?’ 과연 선생님께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이 생각을 먼저
하게 될 것입니다.
섭리사로 와서 선생님께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교만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믿습니까? 시작과 끝입니다. 중도에 포기하고, 나는 이만큼 되었다고 하는 이 사람은 탈락입니다. 온전
하지 못한 자도 계속 해서 끝까지 한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바를 이룰 수 있고, 여러분들의 소원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작과 끝에 함께 하세요. 중도포기는 절대 안 되요. 온전한 자라도 선생
님께 제대로 배운 자라면 온전한 자도 끝까지, 온전하지 못한 자도 온전하기 위해 끝까지입니다. 믿습니
까?
우리가 주님께 끌어 올림을 당하는 것이 휴거, 주님이 우리에게 내려오시면 휴거가 아닙니다. 왜 주님
은 우리보고 차원을 높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건 휴거가 아니예요. 내려가는 것은 뭐라고 해야 하나?
휴거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차원으로 내려 오시면, 절대 휴거라고 할 수 없을 것
입니다. 주님의 차원으로 계속 끌어 올려 주셔야만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차원을 높이느냐? 아주 쉬운
예를 들어 줄께요. 순회를 위해서 엄청 회개하고 준비를 하고 각종 준비를 했어요. 그러면 이전보다 차
원을 높였어요. 그런데 이 마음만 준비를 한 것이 아니라, 여기 이 공간에 와서도 말씀을 집중하기 위해
서 노력을 하고 집중을 하고 그리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 날 조금은 피곤해도 조금은 힘들어도 내 차원
을 높이는 것은 일단 행하는 거예요. 몸부림으로 노력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만일 어제보다 오늘 말씀이 더 깊이 들어온다면 여러분들은 이 부분에서 차원을 높인 것입니다. 만약
이 부분에서 ‘마음가짐이 다르다. 어제와는 다르게 기필코 성령을 더 크게 받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더 높은 차원을 이루며, 보다 더 나은 휴거를 이루는 것입니다. 여러분
들이 마음을 더 집중하고, 마음적 행실적 차원을 노력함으로 높이는 자들은 깨달음이 다르고, 불이 다르
고 결심하는 것이 다릅니다.
여러분, 어려운 게 아니죠. 휴거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차원을 높이고 있습니다. 차원을 높
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 이 차원을 높이는 자체가 휴거이기 때문입니다. 차원 높여서 휴거되어
야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지혜와 지식의 그릇이 작아서 성삼위가 너
희들에게 많은 것을 부어 주어도 인간의 수준 만큼만 채워서 알고 누린다.” 했습니다. 맞습니까? 이 비
유를 정말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이 공간만큼 하다고 칩시다. 그런데 나의 그릇이 작
으면 이만큼만 담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을 담으면 흘러 넘치기 때문에 더 이상 내 것이 아니
게 되겠죠.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차원을 높여서 생각하고 마음의 그릇을 키워야만, 전능자가 주시는 것을 받아도
높고 크고 깊은 것들을 받게 된다.” 하셨습니다. 차원을 높이고 우리의 마음을 그릇을 넓히는 것은 휴거
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인간의 머리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대요. 육체 생각, 혼체 생각, 영
체 생각입니다. 어떤 머리로 삼위가 주시는 것을 받느냐에 따라 완전히 운명이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여
러분, 쉽게 생각하면 육체 생각은 육만 생각하는 생각입니다. 혼체 생각은 육혼을 생각하는 생각, 영적
생각은 육, 혼, 영을 다 생각하는 생각입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담아야 하느냐. 지금 나만 생각하고, 내 처한 생각만 생각하고 들으
면 엄청난 지혜와 엄청난 지식과 엄청난 뜻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영까지 더 멀리 영원한 것을 늘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주님이 주시는 것을 받아도 나는 육적 그릇에 담아서 육적으로 생각하고 끝나
고 만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차원이 왜 이렇게 중요하냐? 예를 하나 들어 주셨어요. 어린 아이에게
명소에 별장을 지어준 겁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 만큼만 알고 누리는 거예요. 그 아이가 20대가 되었습
니다. 지능이 발달된 거예요. 그런데 같은 별장인데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30대가 되었습
니다. 그러니까 생각의 그릇이 더 커지겠죠? 그러니까 같은 별장인데도 더 가치를 알고 더 사용하며 살
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인간도 똑같습니다. 여러분들이 귀한 사명을 받고, 귀한 시대를 만나고 귀한 사명자를 만
나고, 귀하신 성자를 믿고 사랑하며 살아도 자기 지혜와 지능에 그릇대로만 깨닫는다는 것입니다. 그 그
릇대로만 가치있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이 예전에 그렇게도 붙잡아 주고, 막 가까이
사랑해 주고 말씀도 주고 같이 먹고 살았는데도 그 가치를 보통으로 대했습니다. 그런데 20년 후에 그
같이 안 대해주는 거예요. 주님이. 그런데도 더 가치를 느끼고 사는 거예요. 더. 왜 그러겠어요? 생각의
수준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가치를 아니까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어릴 때는 가치를 모르니까 주님이 아무리 부어 주시고, 사랑해 주셔도 잘 해주셔도 가치를 모릅니다.
그런데 생각의 그릇이 커지면 주님이 잘 대해주지 않아도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된다는 것입니
다. 또 하나 예를 들어 볼께요. 부모가 10대 자녀, 20대 자녀, 30대 자녀, 40대 자녀에게 각각 1억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돈도 많네요. 그런데 자녀들은 즉시 그 돈으로 자기 생각의 그릇대로 사용하게 되겠
죠. 여기서 똑같이 1억을 준다고 해도 말하는 게 다 틀립니다. 자기 생각의 그릇대로 말하게 되겠죠.
10대 자녀는요. 얼른 나가서 맛있는 것을 사먹고 예쁜 옷을 사입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자기가 좋
아하는 것을 혼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친구들을 막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사
고 싶은 여러 가지를 샀겠죠. 컴퓨터도 사고, 노트북도 사고, 20대 자녀는 공부하는 데 다 썼습니다. 30
대 자녀는 그 돈으로 새 집을 지었습니다. 40대 자녀는 그 돈으로 사업을 해서 더 큰 돈으로 불렸습니
다. 똑같은 돈을 1억씩 주더라도 자기 생각의 지능적 그 그릇에 따라서 수준에 따라서 차이가 나죠.
이와 같이 하나님과 성령님과 주님께서 인간 각자에서 사명도 주시고 축복도 주십니다. 그런데 자기
생각과 지능과 지혜의 그릇대로만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월명동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가치있다, 귀하다,
큰 것이다 말해도 자기 지능대로 자기 생각한 대로 가치를 깨달은 대로만 사용을 하게 되겠죠.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에 자기 지능과 지혜와 자기가 수고한 것이 이것 밖에 안 되는데 높은 곳에다 갖
다놓은 거예요. 그러면 못 씁니다. 거기가서요. 사용이 안 되요. 아예. 나는 지금 지혜가 여기 수준인데
주님께서 나를 높은 차원에 천국을 갖다주면, 그러면 그 수준을 사용하지 못 합니다. 더 위에 있는 차원
을 사용하지 못 합니다. 고로 천국은 자기 지능과 자기 지혜와 자기가 수고하고 행한 그릇대로 그 차원
에 가서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이유는 누릴 것이 많아도 못 누려요. 거기 갖다놓을 필요가 없어요. 보다 낮은 차원에
갖다놔도 그거 다 누리며 살기 바쁩니다. 몰라서 못 누린다는 거예요. 맞습니까? 그래서 주님은 아예 낙
원급에 있는 영들을 천국의 세계에 갖다놓지 않아요. 성약성 중에서도 하급에 사는 사람들을 중급에 갖
다놓지 않고, 상급에 갖다놓지 않습니다. 왜? 갖다놔도 못 누립니다. 자기의 지능과 자기의 수준이 그것
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만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못 하고 그만큼 가치있게 쓰지도 못 합니다. 그
러니까 아예 저차원에 사는 자들은 고차원에 갖다놓지 않아요.
그런데 어때요? 가고 싶죠. 생각해 보세요. ‘나는 이것 밖에 안 되니까 이것만 해도 감사해.’ 이러면서
살 사람이 있어요? 그러니까 어때요? 차원높이는 것은 우리가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아주 공의
로우세요. 이유가 타당합니다. 갖다놔도 못 누리고 살 건데 무엇 하러 거기에 갖다놓습니까?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제가 선생님께 신입생 때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섭리를 뛰면서 정말 이해
되지 않는 게 있는데 꼭 여쭙고 싶습니다. 저는 이왕 역사를 만났는데, 최고 구원을 이루고 최고 몸부림
치며 살고 싶은 것이 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요. 자꾸 주변을 쳐다보면 낙심이 되요. 다른 데
도 차원이 다른 것 같지 않은 것 같아요. 열심히 한 자는 안 한자나 별로 차이가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께 도대체 무엇이 어떤 것이 진실인지 물어봤어요. 선생님께서 비유를 들어서 말씀해 주
셨습니다. “절대 하늘은 공의의 세계이다. 어떤 사람에게 100평의 집이 허락되어 있다고 하자. 그가 받
아야 될 것은 100평의 집이다. 그런데 그 생각과 그 행위와 수준이 50평도 안 되는 30평 정도의 수준
이다. 그에게 예비된 것이 100평이더라도 30평 정도 집에서 ”내 집이 최고 좋아. 내 집이 최고 좋아.
더 이상 소용없어. 난 진짜 최고야.“ 느끼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더 심각하고 안타까운 것은 주님은 그
에게 말하지 않으신다.” 너의 집이 100평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집이 좋지? 니 집이
다.” 그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에게 나중에 “니가 원래 살아야 했던 집이 100평이었다.” 하면 미친다는 거예요. 너무 힘들게
산다는 거예요. 그대로 둔다는 거예요. 자기 차원대로 누리며 살게 그대로 둔다는 것입니다. 저는 결심
을 했습니다. “역시 이 성약역사 마지막 역사인데 어떤 사람은 낙오되고 어떤 사람은 힘들게 섭리를 뛰
지만 나는 정말 힘들게 섭리 뛰지 않겠어. 보다 행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것을 힘들게 생각하지 않는
다면 그것은 힘들게 뛰지 않는 것이겠지. 힘들게 살지 않는 것이겠지.”
저는 이번에도 기도했습니다. 누가 저에게 휴거를 힘들게 이룬다고 하기에 그것을 이야기하려고 이야
기한 것이 아니라, 교육하라고 해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목사님. 힘드시죠.” 그러면서 엄청난 메시지가
왔더라구요. 여러분, 제가 그게 힘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교육시키고자 말한 것입니다. 한 번 더 주
일말씀에 또 나올 거예요. 저는 그 상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안 힘든데. 안 힘든데.” 왜 이렇게
휴거를 어렵게 이루냐고 하길래 “나는 안 힘든데. 이렇게 사는 게 좋은데. 생명 살피고, 선생님 뜻대로
살고, 내가 원하는 거 안 하고, 그렇게 하면 너무 좋은데. 다 좋은데. 그래서 힘들어도 안 힘든데.” 그렇
게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지식과 지혜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힘들게 느껴지면 힘든 것이구요. 나는 그렇게 살아야겠
다 결심하면 그것이 힘들어도 힘들지 않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이번 재림과 휴거의 말씀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 누구나 차원을 높이고 수준을 높여서 주님께 더 가까이 주님께 더 높은 차원
의 휴거를 꼭 이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애인이 아니면 절대 밤이나 낮이나 그 주관권에 들어
와서 살지 않게 하십니다. 이건 사람도 마차가지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내 애인이 있어도 그러
면 방까지 들어오게 하죠. 그러나 만약에 형제예요. 그러면 “노크 좀 해. 왜 내방까지 들어오려고 그
래?”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타인이라면 “누구예요? 왜 내 집에 침범하고 그러십니까?” 하겠죠. 가택침
입. 초대한 사람이라면 들어올 수 있겠죠.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이더라도, 집 하나를 보더라도, 애인이라면 언제든지 들고 나갈 수가 있고 형제라
면 꼭 노크를 해야 되겠고, 타인이라면 들어오면 안 되겠죠. 이와 같이 하나님도 성자 주님께서도 상대
가 누구냐에 따라 천국의 위치도 정해 놓으시고, 휴거의 차원을 정해 놓으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
왕이면 섭리역사에 와서 이 어려운 신부의 법을 지키며 너무나 감사하게도 시대의 보낸 자를 육신으로
받아들이고 살지 않습니까? 지금 현재 이 당세이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차원을 높이는 것이 정상적인
생각이요, 정상적인 꿈인 줄 믿습니다.
예를 들어 주셨습니다. 잔디밭 위치에는 잔디밭만 만들었어요. 운동장 위치에는 운동장, 산책로는 산책
로, 돌을 쌓을 곳은 돌을 쌓고, 나무를 놓을 곳은 나무를 놓았어요. 절대 뒤죽박죽 해놓지 않았어요. 이
와 같이 천국도, 낙원도, 선영계도, 무저갱도, 지옥도, 절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천국이 있을 곳이 낙
원이 있지 않구요. 지옥이 있을 곳에 천국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하나님과 주님을 믿고 살
아도 차원만큼 알고 누리고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삼위께서는 여러분들을 구원하시고, 신의
차원만큼 지식과 지혜를 높여 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과정 가운데 이루는 휴거예요.
주님은 여러분들을 그냥 안 놔두세요. 신의 정신과 신의 지식과 지혜를 받을 수 있도록 계속 끌어 올
려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신의 지식과 지혜를 받을 수 있도록 계속 바꿔 줍니다. 영원히 같이 살
려고 여러분들을 영원히 사랑하면서 살려고 계속 끌어올리고 계속 휴거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여러분들이 삼위의 상대급만큼 변화되지 않는다면 천국에 가더라도 같이 살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 이
왕이면 이 역사에 사는데요. 제가 왜 이 휴거, 재림을 제일 좋아하냐면요. 진짜 최고예요. 휴거, 재림말
씀이요. 힘들지만 힘들어할 이유가 없어요. 뛰는 게 힘들지만 좋게 희생할 이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어때요? ‘나는 너무 빚진 자야.’ 생각할 수 밖에 없어요. 저는 주님을 믿으면서 최고
의 소망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만나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과 영원히 같이 살수 있다면, 주님과 영
원히 같이 살려고 신앙을 하지, 만약에 주님과 영원히 같이 살지 않으려면 그냥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게 낫잖아요. 그렇죠? 여러분, 맞지 않습니까? 아예 신앙을 시작할 이유가 없는 거예요. 주님을 만
나는 소망이 없으면. 섭리사 최고 소망은 주님을 만나게 해준다는 거예요. 주님을 어떻게 만나게 해주느
냐? 최고의 차원으로 주님을 만나 영원히 살게 해주는 것이 섭리사의 핵심교리입니다.
모든 말씀이 오직 주님만 생각하게 하는 거예요. 다른 생각하면 혼나. 그래서 너무 좋은 거예요. 다른
생각을 했을 때 안 혼내면 그게 이상한 거잖아요. 다른 생각하지 않고, 주님을 최고로 생각하게 하면서
나를 이끌어 주니까 그게 최고 역사였습니다. 힘들지만 힘들다고 포기할 이유가 전혀 없는 역사라는 말
입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근본의 마음이 완전하게 회복되어야 합니다. 저두요. 그런데도 힘들어, 주님
과 영원히 만나서 살아야 하는데도 힘들어요. 형제 때문에 힘들어요. 그러면 마태복음에 있는 주님의 말
씀을 지키지요.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래서 보다 주님
을 만나는 소망 때문에 사는 것은 힘들지 않았는데, 형제로 오는데서 힘든 것을 형제를 사랑함으로 회
복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힘들지만 힘들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렇게 정말 살고 싶고, 그렇게 정말 원하기 때문에 생명을 위
해 살아주고, 그렇게 희생해 주고 그들을 위해 살아주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주님께 너무나 감사한
일이 되겠죠. 최고의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선생님, 힘들죠, 이 세상에서 최고 힘들게 섭리를 뛰는 거
같죠? 그러나 그가 힘들지 않음은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며 우리를 너무나 모든 자들 이 시대말씀을 듣
는 자들 뿐만 아니라, 듣지 못한 모든 자들까지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며 끝까지 그들을 책임지고자
하는 그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지혜와 지능과 지식은 천층만층입니다. 자기 차원대로 놀고, 먹고, 마시고, 누리게 됩니
다. 믿습니까? 주와 일체되어 살수록 주님의 가치를 느끼게 되고, 주와 일체되어 살수록 자기의 차원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되고, 주와 일체되어 살수록 자기의 영을 변화시키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와
일체되어 살수록 더 높은 차원에 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망원경도 성능대로
쓴다.” 선생님께 말씀을 하셨대요. “어떤 망원경 봐라. 1천미터 거리를 본다. 어떤 망원경은 만미터 거
리. 어떤 망원경은 십만미터를 본다.” 그러나 천체 망원경은 어때요? 1광년 이상, 똑같은 망원경인데도
성능에 따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영적인 차원대로 그 능력이 좌우되어서 그 차원을
내다보고 산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 기쁨에 충만할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이렇게는 삽니다. 자기 사랑하는 자들이 그 마음을 몰라주는 거예요. 그런데도 자기의
대상이니까 기쁨으로 삼고 삽니다. 그런데 대상이 되는 우리가 이 주체를 온전히 알고 살아가며 대할
때는 더욱 만족을 하십니다. 우리를 키워 주시고 길러 주시면서 만족하시지만, 그 과정 가운데 누가 딱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차원대로 바라보는 자가 있다면 더 만족하시고 더 기뻐하시사 그를 옆
에 두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의 모든 말씀을 육적차원으로 생각하고 자기의 생각을 비우지 못
한 생각대로 받는다면 한계선으로 깨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영적으로 받아야 많이 느끼고, 많이 생각하
게 되고, 많이 깨닫고, 많이 쓰고, 더 높은 차원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발 기도 좀 많이 해. 제발 기도 좀 많이 하자. 차원대로
누린다. 사명을 줘도 그릇이 작으니까 자기 차원이 낮아서 못 누려. 안타까워.” 이 섭리세계 신부의 세
계 모든 것을 허락하셨어요. 선생님은 날마다 날마다 모든 것을 허락하신 그 세계를 날마다 가서 찾는
다는 거예요. 차원대로 누리도록.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것이 허락되어 있는데요. 우리의 수준이 낮으
면 힘든 겁니다. 형제 수준만큼도 살지 못 한다는 거예요. 주님 말씀하시기를 “차원대로 아름답고. 웅장
하고. 신비하다‘” 하셨습니다. 외모대로가 아니라, 차원대로 아름답고 웅장하고 신비하다.
여러분, 휴거는 쉽게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조건 쉽게 이룰 수는 없습니다. 특히 성자 주님의 몸
이 되어서 연단받고 생명을 위해 살며, 선생님의 수준에 따라 뛰는 사람들은 보다 더 힘든 휴거를 이루
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혼자만을 위해서 살지 않기 때문에, 그것도 영원한 세계를 차지하고 더 높은
곳에서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고 더 높은 차원의 휴거를 이루기 때문에 그 삶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
러나 이런 자들은 날마다 도전하며 날마다 더 주님과 일체되어 행하기 때문에 차원을 높여서 뛰게 됩니
다. 맞습니까? 차원을 높이니까 어떻게 되느냐? 보다 쉽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핵심 말씀, “차원대로다.
그러나 쉽게 하여라.” 했습니다. 쉽게 어떻게 합니까? 쪼개줘야 해요. 말씀으로 정확하게 쪼개줘서 앞으
로 쉽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됩니다. 나 좋은 대로 쉽게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잠 잘 거 다
자고, 나 좋은 대로 하고 싶은 것을 다하면서 쉽게 이루는 휴거는 절대 없습니다. 맞습니까?
어떻게 쉽게 이루느냐? 차원 높이기 때문에 쉽게 이룹니다. 차원을 높이면 생각이 달라져요. 쉬운 방법
이 보입니다. 저부터도 그래요. 상대가 미워요. 여기서 쉽게 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단 하나도 없어
요. 쉽게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도 없는데, 그러나 단 하나 쉽게 이룰 수 있는 방법
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내 차원을 높여야 되요. 미움에서 사랑으로 용서로 차원을 높이면 쉽습니
다. 이것은 해 본 자가 압니다.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전에 대만에 가셨을 때 정치적으
로 너무 어려운 가운데 친한 사람 때문에 몇 십년동안 억울함을 받으면서 감옥에 갇힌 정치인이 있었습
니다. 그 사람에게 선생님께서 물으시기를 “어떻게 그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까?” 물으셨을 때 그 사람
은 말하기를 “용서했습니다.” 했습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나에게 어려움을 주고, 나를 배신하며 나를 억울하게 하며 나에게 누
명을 씌운 자를 사랑했습니다.” 차원대로입니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용서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엄청난 상처가 몰려올 것입니다. 그런데 어때요? 사랑했습니다. 사랑해서 차
원을 높이니까, 이 세상이 달라지고 역사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용서한 것 뿐만 아니
라,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를 보시는 차원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차원을 높여서 생각하고 살면, 보다
쉬운 방법 쉬운 길을 찾게 됩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선생님께 “선생님. 안 되는 데요.” 말씀을 드
리면, 선생님은 “노력이다. 몸부림이다.” 하십니다.
몸부림쳐서 차원을 딱 높이니까요. 그러니까요. 정말 선생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 거예요. 예전에는
가서요. “있잖아요. 그거 아니예요!” 할 법한 성격이예요. 그런데 그걸 안 한다는 말이예요. 제가 어렵게
참아내지 않아요. 누가 보면 어렵지 않냐고 하는데, 아닙니다. 힘들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과정은 힘들었
습니다. 이게 정답이예요. 과정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만들기까지. 그런데 과정 가운데 딱 높여서
차원을 높이고 모든 사람들을 주님의 사람으로 정말 사랑하는 차원으로 올라오니까 그렇게 어렵지 않습
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구원을 받는 것도 휴거를 이루는데도 쉬운 방법이 있습니
다. 여러분의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 해서 힘들다고만 이야기해요. 그러면서 나가
서 욱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회개하고, 그렇게 왔다갔다 그게 더 너무 힘들 것 같지 않아요?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왔다갔다 계속 그러고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나 차원을 높이면 쉬운 방법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쉬운 방법이
있듯이, 이와 같이 구원과 휴거를 이루는 것도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생각의 차원, 자기 지혜와 지식의 차원을 높여야 됩니다. 가령 긴바지가
있어요. 긴바지를 짧게 입고 싶어요. 긴 바지를 9부바지로 입고 싶은 거예요. 그걸 자르고 꿰매려면 보
다 어려워요. 쉬운 방법이 있어요. 접습니다. 접으면 1분, 좀 더 신경쓰면 3분, 매무새를 좀 더 신경을
쓰면 5분이 걸립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일을 돈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천만원, 1억씩 들였어요. 어떤 사
람은 차원을 높여 깨달으니 그 문제는 사람이 해결해 주지 못할 것임을 알았어요. 그래서 기도를 했습
니다. 그래서 기도해서 쉽게 해결했어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여기서 알아야 될 것은 돈으로 해결한 자가 어려운 것이 아니고, 기도한 자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과정은 어려웠지만, 쉽게 해결했다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매일 물을 먹으려고
높은 산에 올라가던 사람이 머리를 쓰고 노력하고 힘을 썼어요. 그래서 힘을 써서 자기 집으로 그 물이
흘러 들어오도록 했어요. 그래서 매일 편안하게 약수를 먹고 살았어요. 어때요? 과정은 힘들었지만 쉽게
얻고 살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사람도 키울 때 계속해서 끌고만 오면 힘들어요. 가르쳐 놔야 합니다.
감동될 때까지, 본인이 행할 때까지 가르치는 것이 쉬운 방법입니다. 여러분, 순간 생각하죠. ‘쉬운 방법
으로 가르쳐야지.’ 하면서 육적으로 관리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더 어려워져요. 과정은 힘들지만,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결국은 쉽게 역사를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늘 말씀하시기를 “육휴거, 영휴거 쉽게 이루어라.” 했습니다. 육휴거, 영휴거 쉽게
이루어라.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은 휴거 쉽지 않아. 그 높은 세계 얻으려니 쉽지 않아. 그러니 무엇
이냐? 차원을 높여라. 지혜와 지식의 차원을 높이고, 너희의 행실의 차원을 높여 보아라. 힘쓰고 노력하
는 것이다. 차원을 높여서 쉬운 방법을 찾고, 쉬운 길을 찾아야 한다. 쉽게 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세
계 천국을 차지하고, 신부급 휴거 이루고, 신부급 중에서도 가장 높은 최고의 차원의 휴거를 이루려면
연단받아야 합니다. 행해야 되요.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한 번 육휴거랑 영휴거를 쉽게 이룰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생각해 보세요. 차원높여서 생각을 해보세요. 말해 보세요. 영휴거 육휴거 어떻게
이룰까요? 투자? 투자? 이것은 다 정답이 아니구요. 성자 본체와 분체에게 사랑투자입니다. 사랑투자를
힘들고 어렵지만, 사랑투자를 하는 자는 육휴거 영휴거를 쉽게 이룰 수가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랑
의 조건이 없기 때문에 주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조건으로 나아가게 되겠죠. 그런데 여
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사랑에는 특징이 있어요.. 사랑의 특징, 무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랑은 무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랑은 양쪽이 다 허락을 해야 이루어집니다. 양쪽이 다
허락을 해야 이루어지는 무력이 없는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오늘 중요한 말씀 나갑니다. 여러분 100%의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주님 100%의 사랑
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끌려가는 사랑이 아니라 먼저 해주는 사랑이다. 끌
려가는 사랑이 아니라 먼저 해주는 사랑이 100%의 사랑이다.”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실로 사
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그리고 선생님은 이미 이 사랑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미 사탄이 개입하지 않도록
100% 끌려서 하는 사랑이 아니라, 먼저 해주는 사랑을 시작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는 것을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사랑을 보겠습니다. 정말 나는 휴거를 어떻게 이
루고 있는가? 주님을 100% 사랑하고 있는가? 진단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날마다 생활 가운데 끌려서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좋아서 먼저 사랑하고 있습니
까? 휴거의 진단을 매일 해보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도 끌려 사는 것인가? 나는 주님 먼저 사랑해. 그런
데 아니예요. 삶 가운데 늘 행함 가운데 나는 계속해서 끌려다니는 것이 많은가? 아니면 내가 먼저 좋
아서 하는 게 많은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좋아서 사랑하는 거예요. 좋아서
사랑하는 거예요. 그러면 마음, 뜻, 목숨을 다 쏟습니다. 맞습니까? 이것이 바로 100%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에는 싫어하는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강제도 아니고 무력도 아닙니다. 온전한 사랑입니다. 맞습
니까?
자기가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1%, 2%라도 자기가 원하지 않는 부분이 생기게 되요. 여러분, 한 번 지
난 날을 생각해 보세요. 내가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1%든 자기가 원하지 않는 마음이 생기게 되거든요.
조금씩. 그 마음이 없는 데서 하게 되요. 100%가 아니라는 말이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나머지
는 끌려가서 무력으로 하게 됩니다. 1%, 2%라도 나머지는 끌려가게 된다는 거예요. “고로 사탄이 침범
한다. 죄있는 사랑이다.” 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한 사랑에는 미련이 없는 것이다.” 하셨습니다. 오늘 찬양을 했죠? 아.
바보처럼 미련없이 바보처럼 살지 말아야 돼. 미련없이 살지 말아야지. 어떻게 미련없이? 내가 좋아서
내가 행한 사랑은 미련이 없는 거예요.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서 줬기 때문에요. 내가 좋아서
줬는데 미련이 남아요? 안 오나? 미련이 남죠. 괜히 해줬다. 미련이 남네. 조금만 해줄 걸. 100%가 아
니었다는 말입니다. 100%을 다 쏟아내면 미련이 없어요. 상대가 주든, 안주든 홀가분해요. 맞습니까?
자기가 좋아서 하지 않는데 끌려가는 사랑은 100%가 아닙니다. 자기가 100% 좋아서 먼저 하는 사랑이
100%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자기가 먼저 좋아하는 사람은 무지가 없고, 미련이 없고, 억지가 없다. 죄도 없
고 악도 없어. 깨끗하게 정화된 사랑이다.” 하셨습니다. 오늘 사랑에 대해서 여러분들에게 정의를 해주
고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 이룰 수 있는 그 휴거의 방법은 사랑, 그런데 100%의 사랑은 무엇이
냐? 바로 자기가 먼저 좋아하는 것, 무지가 없고, 억지가 없고, 죄가 없고, 악이 없기 때문에 깨끗하게
정화된 사랑, 하나님은 이것을 목적하고 인생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믿습니까? 어떤 것을 목적해요?
인간이 먼저 좋아서 사랑하는, 억지가 없는, 무력이 없는, 무지가 없는, 죄가 없는, 악이 없는 이 사랑을
목적하고 창조하셨습니다. 믿습니까?
이 목적을 이루는 자가 최고 높은 단계에 만나서 상대체가 되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악이 있
는 상태에서 결합을 하면 선악이 존재를 하게 되요. 예를 들어서 여자가 있고, 남자가 있어요. 남자에게
는 선만 있는 거예요. 그런데 여자에게는 선도 있고, 악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좋아하는 마음도 있고,
끌려가는 마음도 있는 거예요. 이 상태에서 남자가 사랑을 주게 되잖아요. 그러면 이것은 타락입니다.
죄가 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하나님의 입장에서 남자, 주님은 남자 입장이시잖아요. 우리의 마음이
끌려가는 입장과 좋아하는 마음이 섞여 있으면 그것은 죄가 있는 상태, 그 상태에서 정화되지 못한 사
랑, 100%의 사랑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되느냐? 100% 먼저 좋아하는 사랑, 이 사랑으로 주님을 먼저 사랑해 드려야 합니다. 이
사랑은 타락이 아니고, 죄가 아닌 완벽한 100%의 사랑이 되고, 휴거를 이룰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
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인지 이해되셨습니까? 바로 주체 대상입니다. 사랑을 하려면 주체가 먼저 주는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먼저 주는 사랑을 줘야 해요. 맞습니까? 그러면 사랑이 억지가 없이
무력이 없이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최우선으로 우리가 먼저 사랑하는 삶이 그것이
최우선의 사랑입니다. 여러분, 검진해 보시고, 항상 검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해. 사랑하는 건 맞아. 그런데 주님이 날 먼저 해줬으면 좋겠어. 주님이 날 먼저 이
끌어 주시고, 주님이 날 먼저 위로해 주시고, 찾아주시면 좋겠어.” 이 사랑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주님
을 찾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를 찾지 않아도 내가 좋아서 주님께 달려가는 것입니다. 왜요? 좋아서. 주
님을 부르고, 주님의 뜻대로 살고 싶습니다. “이거 해야지. 이리 와봐.” 끌어오는 사랑은 100%가 아닙
니다. “주님. 나 하고 싶어요. 주님의 말씀대로 하고 싶어요. 주님을 부르고 싶었어요. 주님이 대답하지
않았어도 부르고 싶었어요.” 이것이 먼저 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본인이 사랑해야만 사탄과 분립이
됩니다. 그래서 거기에 본인이 사랑하는 것에 온전한 사랑이 결합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사랑의 온전한
정의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셨어요.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
을 치라. 나를 사랑하느냐? 가서 내 양을 먹이라.” 세 번을 물으셨어요. 여러분,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양을 치고 먹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주님은 너무 좋아. 그런데 사람들은 꼴도
보기 싫어요. 그렇게 우리가 이런 식으로 섭리역사를 끌고 간다면, 절대 선생님이 원하시는 섭리역사를
끌고 갈 수가 없어요. 저는 뭘 깨달았는지 아십니까? 처음에 저도 형제들 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런데 뭘
깨달았냐면, ‘내가 저 사람을 욕하면 내가 나를 욕하는 거지. 내 얼굴에 침뱉기다. 내가 저 형제를 욕하
면 내가 우리 섭리인을 욕하면 내가 내 얼굴에 침뱉는 것이다. 내가 주님이 사랑하시는 양들을 사랑하
지 않고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사랑하느냐?” 결국 3번을 물으셨습니다. 사랑하느냐. 결
국 하신 말씀이 뭐였죠? “나의 몸이 되어 내 양을 쳐라. 내 양을 먹여라.” 한국말로는 치지 말고, 잘 인
도해 주고, 이끌어 주라는 말입니다. 그들을 사랑해 주고, 그들을 내게로 인도해 주라는 말이지 않겠습
니까? 어떻게 주님을 진실로 사랑한다고 하고서 양들을 먹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을 진실로 사
랑하는 자라면, 복음을 전하여 양들을 먹이고 싶은 것입니다. 부족한 형제들을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여러분, 선생님이 단 한번 밖에 안 가는 산길인데요. 치마입고 올라오는 사람, 키작은 사람, 키 큰 사
람, 뚱뚱한 사람을 다 생각하십니다. 아무도 눈에 찔리고 발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다 신경
을 쓰세요. 단 한번 가는 길인데도. 왜요? 뒤따라오는 우리들을 생각한다는 거예요. 어디를 가나 양들을
생각하십니다. 혼자 가는 길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끌어 오는 거예요. 그들을 끌어서 함께 가는 것입
니다. 성자와 그 육신된 자들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는 상태에서 양을 친다면 선악이 분립되지 않은 상
태에서 자기에게 악이 들어있는 상태에서 양을 치게 됩니다. 고로 사탄이 100% 개입합니다.
고로 생명을 칠 수 없습니다. 생명을 다스려 나갈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체가 아닌 대상
이 먼저 사랑을 해야 됩니다. 주체이신 하나님과 성자보다 인간이 먼저 사랑해야 사탄을 완전하게 분립
시킬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냐면요. 1999년도에 한국에서 나가시면서 “후반기는 먼
저 사랑하는 자의 것이다. 앞으로 보아라. 너 한번 앞으로 보아라. 전반기는 역사를 키우고 주님의 사랑
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내가 먼저 사랑해 주고, 먼저 주님의 사랑을 전했지만 후반기는 보아라. 먼저 사
랑하는 자의 것이다.” 하셨습니다. 바로 먼저 사랑하는 자가 선악을 분립한 자로서 사탄의 개입없이 어
렵지만, 쉽게 양들을 치며 다스리며 주님을 사랑하며 그 보낸 자를 사랑하며 따를 수가 있다는 것입니
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하는 사랑을 하라. 이것이 차원 높은 사랑으로서 나 성자에게 오르게 되
고, 휴거를 이루게 된다.” 하셨습니다. 먼저 하는 사랑을 하지 않고, 어떻게 휴거를 이룰 수 있습니까?
“너희 대상들이 내게 먼저 와라. 이것이 영원한 진리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진리, 저도 날
마다 어떤 차원을 높이냐면, 선생님의 삶을 너무 알기 때문에 날마다 어떤 차원을 높이려고 하냐면 먼
저 하는 사랑을 하려고 합니다. 사실 실제적으로 어려움에 부딪히면 그게 잘 안 나옵니다. 그런데 어때
요? 노력,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며 노력하면 되더라구요.
사람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사람이 너무 신기한 거예요.
차가 있습니다 자동차. 자동차는 주님이 운전해서 가지고 오세요. 운전도 주님이 하세요. 그래 놓고 주
님은 뭐라고 하시느냐? “야. 타!” 이렇게 하십니다. 주님이 차도 가지고 오시고, 운전도 해서 딱 오시더
니만 “야. 타!” 했을 때 천천이 “태워 주세요.” 하면서 머뭇거리는 이런 자는 사탄이 분립되지 않은 악
이 있고 깨끗하게 정화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기다렸어요.” 하면서 동시에 날라서 탁 타야 됩니
다. 아시겠어요? 주님을 1초도 기다리게 하면 안 됩니다. 0.0001초도 기다리게 하면 안 됩니다. 어때
요? 국가 대표선수들도 0.1를 잡기 위해 뛰듯이, 우리도 주님이 말씀하셨을 때 “네.” 할 정도로 단축을
시켜야 됩니다. 여러분은 우리 역사의 국가대표 선수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래서 주님이 차를 가지고 오셨을 때 탁 잡아당겨서 안아서 주는 사람을 보기를 ‘우리는 뭐고, 쟤는
뭐 공주님인가봐. 저렇게 뛰는 사람도 있나봐. 주님이 저렇게 챙기시는 건가봐. 그러면 나는 가서 앉아
야되는 사람이고, 쟤는 들어가지고 들어다주나? 아이고 참, 인생은 정해져 있나봐. 참 저 사람은 주님이
들고 다니고, 나는 가서 참 타야 되고, 맞기는 한 거 같은데 참 이거 어떻게 해야 할지.’ 이렇게 생각하
지 않습니까? 주님은 오늘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주님이 “답답해서 너무 답답해서 거기 두고 가면 안
되니까 잡아당겨서 태우고 다니는 자는 왕자님 공주님이 아니라 갓난 아이다. 분별하라. 판단하라.” 하
셨습니다. 말씀의 모사가 어디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왜 그토록 말씀을 좋아하는지 아십니까? 사랑만큼 진리와 사랑, 사랑이 최고인
데요. 제가 왜 그토록 말씀을 붙드는지 아십니까? 말씀에는 모사가 없기 때문에, 저는 선생님도 말씀으
로 판단하며 왔습니다. “저 말씀 맞지.” 누가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아요. 왜?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
씀을 선포하셨으면 주님과 함께 그렇게 역사를 이끄는 것은 당연하거든요. 절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먼저 태워주는 것은 갓난 아이 신앙입니다. 갓난 아이 신앙하고 싶지 않습니다. 성장해서 그 사
랑이 얼마나 큰지를 제발이나 알고, 더 나아가 주님이 원하시는 생명들을 가서 돌보고, 그들에게 은혜를
주고 싶은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당연한 마음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청소할 때도 내가 먼저 하니까 하느냐? 니가 먼저 하겠다고 해야지. 신앙도
사랑도 내가 하니까 마지 못 해서 그 때야 하는 사람들은 받지 않는다. 100년이 가도 그 사랑은 받지
않는다.”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힘들죠? 과정이 그렇게 되는 게 힘들죠? 그렇죠? 저는요. ‘왜 이
렇게 여기 단상에 저를 선생님께서 보내주셨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이
맞다고 가서 외치라고 한 거예요. 왜냐하면 저는 그 말씀을 절대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이 하면 그
말씀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어렵고 힘들더라도 그 말씀 한 게 맞더라구요.
선생님께서 저를 보내신 것은 “내 말이 맞다고 전해 줘.” 이 말 뜻이었더라구요. 여러분, 제가 지금까
지 와보니까 주님께로 갈 때 가는 그 과정이 어렵더라구요. 너무나 많이 참고, 인내하며, 노력하고, 정말
많은 것을 행해야 하고 많이 참아야 해요. 그런데 가면서 내 속에서 가면서 악을 다 분립을 합니다. 그
러면서 성장이 되요. 그리고 정화를 시키킵니다. 그러면서 완성을 시킵니다. 우리의 과정 가운데 성장이
있고, 완성, 계속 성장되면서 완성을 시키는 거예요. 정화시키는 단계를 거치는 겁니다. 주님께 이 과정
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그냥 섭리사 만난 상태에서 나를 데려가시면 이 단계는 생각도 안 되
요. 나만 생각하는 단계이겠죠. 주님을 생각하고 형제를 생각하는 단계이기 이전에 나를 먼저 생각하는
단계일 것입니다. 과정을 주시니까 그 안에서 성장되게 하고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차를 가지고 왔으면 먼저 올라타듯이, 이와 같이 먼저 하는 사랑, 먼저 올라
타기, 먼저 가는, 먼저 본인이 행하는 사랑을 해야 한다.”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차원을 높인 사랑이
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 매듭을 지어볼까요? 하나님의 역사는 사랑의 역사입니다. 역사 자체가. 그
런데요. 단계가 있어요. 그냥은 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의 단계를 거치십니다. 총 3단계입니다. 1단계, 2
단계, 3단계로 이루십니다. 1단계 소생급 역사, 2단계 장성급 역사, 3단계 완성급 역사입니다. 이것을
역사적으로 따지면 어떻죠.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성약 천년입니다. 소생, 장성, 완성을 거쳐서 3단계
로 뜻을 이루십니다.
사랑의 역사, 이것은 여러분 다 알고 계시죠? 말씀에 따라 종, 자녀, 신부로 3단계로 끌어 올리신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 개인을 향한 사랑도 3단계입니다. 여러분, 어느 단계로 올라와 있는지 생각
해 보시기 바랍니다. 1단계 소생기, 2단계 장성기, 3단계 완성기, 진단해 볼까요? 1단계, 주님보다 내가
더 좋아요. 주님의 사랑은 알겠는데 주님이 나를 먼저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는 단계입니다. 2단계는 내
가 주님을 사랑하고 싶은 단계, 내가 주님을 먼저 찾는 단계입니다. 3단계, 완성은 뭘까요? 그가 원하는
일을 하는 단계입니다. 1단계, 주님이 나를 잡아주셨으면 좋겠구요. 2단계, 내가 주님을 붙드는 거구요.
3단계, 그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단계, 그러나 항상 사랑, 사랑과 함
께 늘 사랑을 동반해야 합니다.
똑같은 신부, 똑같은 성약역사, 똑같은 재림역사에 왔어요. 그런데 이 사랑의 차원에 따라서 이 단계에
따라서 휴거의 차원이 상, 중, 하로 나뉘어집니다. 여러분, 이 재림 휴거역사 정말 엄청나지 않나요? 저
도 이 말씀 이 재림과 휴거의 말씀을 준비하고, 계속 기도하고, 선생님의 말씀을 보면서 정말 놀라운 것
은 휴거의 진단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1단계, 2단계, 3단계로 상, 중, 하로 좌우가 됩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을 생각하면서 이 시대에 성자께서 그 분체께서 우리에
게 하는 말씀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에서 17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조반을 먹을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
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니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
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두 번째
“요한의 아들 시몬아. 니가 나를 진정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
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
아. 니가 나를 진정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니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시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계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그 일을 하는 단계, 주님을 먼저 100% 사랑함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단계,
그 단계가 최고의 높은 차원의 사랑을 하는 자로서 그는 반드시 휴거를 이루게 됩니다. 마태복음 22장
36절에서 40절을 보면,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당
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 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사랑하라.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장하면서 완성하면서 과정 가운데 정화시키며, 차원을 높이며, 회개하며, 생각을 바
꾸며, 앞으로 전진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휴거를 이루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너무 속상
한 일이 있는 거예요. 가다보니까 나는 정말 열심히 하는데 또 낙심할 일이 있는 거예요. 그럴 때는 극
약 처방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나는 너랑 같이 살고 싶지 않아. 영원히. 주님.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제발 저 사람도 천국에 왔으면 좋겠는데요. 내 옆집에는 안 왔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
신 극약처방이예요. 원래 첫 번째 가르쳐 주신 극약처방은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라구. “선생님. 내일 죽
는다고 생각했는데 내일 또 있던데요? 내일 또 괴롭히던데요? 어떻게 해요?”
굳이 섭리 사람 아니어도 밖에 미운 사람이 많잖아요. 내일 죽는다고 생각해라. 저가 구원받기는 진정
원합니다. 섭리 사람이든 아니든 우리를 핍박하는 자든 모든 사람들 또한 진정 깨닫는다면, 이 역사에
와서 구원을 이루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맞습니까? 우리 핍박해 놓고 구원받아
야 되겠어? 그게 아니라, 사도바울처럼 제발 왔으면 좋겠어. 우리의 마음이 그런 마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꼴도 보기 싫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자꾸 그 사람을 보면 낙심이 되는 거예요. 그럴
때는 집에 가서 회개하고, 계속 힘들어요. 옆집 살기 싫은 데요.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주님이 방
법을 가르쳐 주시겠죠. “니 차원을 높여라.” 그러면서 이 방법을 가르쳐 주시더라구요.
“내가 너랑은 같이 살고 싶지 않아. 너랑은 만나고 싶지 않아 해도 니가 그 같은 주관권에서 살면 영
원히 같이 사는 것이다. 같이 살기 싫은 자가 있으면, 그도 구원받기 원하되 네 차원을 높여라.” 맞습니
까? 저는 아주 극도의 힘이 들 때 어떻게 말하는 줄 아십니까? 우리 천국집에 내 집에 초대하지 않겠
어. 그렇지 않습니까? 차원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을 초대할 수 있잖아요. 차원낮은 사람은 차원높은 사
람을 초대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어때요? 기분이 좋아지면서 차원을 높여야 돼. 열심히 살아야겠다.
그러나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면, 그 모든 자들이 깨닫고 하나되어서 사랑하며 살기를 간절하게 원하
겠죠.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사탄과 같이 살기 싫으냐? 너희를 핍박한 자들, 차원이 낮은 자들, 그리
고 정말 우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과 같이 살기 싫으냐? 그러면 차원을 높여라. 사랑의 차원 높이고, 생
각의 차원 높이고, 그러면서 행실의 차원을 높이고 살아라. 그러면 그 세계에 가서도 그러하거니와 이
세상에서도 높은 차원으로 올라서 역사를 이루는 자들과 만나서 역사를 이루며 살게 되고, 차원을 높이
지 않으면 싸우는 자들과 만나서 싸우며 살게 된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차원, 이루어야 되겠죠?
주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너희 육과 영을 최첨단으로 휴거시키는 나 성자를 사랑하여라. 사랑하면
운명이 뒤바뀐다. 1단계의 사랑을 하느냐. 포기하지 마라. 낙심하지 마라.” 차원을 높입니다. 그러면서
과정 가운데 2단계로 끌어 올립니다. 정화시킵니다. 그러면서 과정 가운데 3단계로 끌어 올리는 것입니
다.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완성시키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아직 과정이 남아있고, 올해는 최고의 해
입니다. 휴거 이룰 수 있는 최고의 해, 이 때는 1년이 10년과 같이 귀하다고 했고, 하루가 1년과 같이
귀한 때입니다. 여러분, 이 때를 어떻게 사용하시겠습니까? 포기하지 마시고, 과정 가운데 단계를 높일
수 있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다 비워 내시고, 주님의 역사를 100% 믿고 도전하는 역사 일어나길 기도합
니다.
그리고 진실로 이 마음의 소망이 주님을 영원히 만나 영원히 같이 사는 것에 소망을 두는 사는 역사
일어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뜨거운 성령이 이 모든 우리의 모든 마음에 내리기를 원합니다. 임하소서.
성령이여. 주님. 차원대로 주님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역사, 먼저는 우리의 소원이 소망이 바뀌게 하시옵
소서. 우리의 마음을 비워내어 성장하며 이 과정 가운데 어렵고 힘들지만, 정화시키고 깨끗게 하고 온전
케 하여 주시옵소서. 온전한 자, 더 온전한 역사를 맛보게 하여 주시옵시고, 부족한 자 온전한 역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더 차원을 높여 나 하나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양들을 먹이며
양들을 치며 더 큰 역사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마음속에 모든 것을 비우고 “이 열차를 타라. 나의 차를 타라.” 하실 때에 1초도 기다리지 않고, 반드
시 우리가 좋아 내가 좋아 그와 함께 동행하는 자들이 될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을 통
해 결심하게 하시리라 믿사오며, 지금까지 그렇게 살지 못 했던 우리의 삶을 회개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앞으로 그렇게 살겠다고 낙심치 않겠다고 결심하며, 다짐보다 행함이라 말씀하셨사오니 반드시 힘써 끝
까지 힘써 노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와 같은 역사가 우리의 모든 마음 속에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불같이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의 불길 내게 내려와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 영원한 소망, 영원한 꿈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 다 비워내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먼저 찾게 하시옵소서. 먼저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게 하시옵소서. 먼저 주님 깨달아 가게 하시며, 차원
을 높이게 하시옵소서. 주여. 불을 내리시옵소서. 내려 주셨사오니 받게 하시옵소서. 성령의 불길 내게
내려와, 성령의 불길, 성령의 불길, 주님을 찾게 하시옵소서. 주님. 불을 주셨사오니 받을 그릇을 만들게
하시옵소서. 주여. 역사하시옵소서.
‘임하소서. 성령이여.’ 찬양
마침기도)
사랑으로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시고, 사랑으로 역사하시는 성삼위께 진실로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영원하심을 찬양하며 영원한 것에 대한 가치를 진실로 깨닫기를 원하옵나이다. 주님이
왜 좋은지, 그리고 하늘 앞에 내 모든 것을 드렸을 때에 무엇이 좋은지를 깨닫게 하시옵소서. 그 영원한
것을 간절히 소망하시리라 믿사오며, 주님을 사랑함으로 영원히 주님을 모시고 섬기며 사랑하며 사는
그 인생을 진정 소망하게 하시옵소서. 섭리역사 이제 마지막 역사 하나님께서 단계별로 역사해 온 마지
막 역사, 완성의 역사가 아니겠사옵나이까.
이 때 주님이 말씀하신 동등권의 사랑으로 주님과의 완전한 사랑을 못 한다면 이 곳에서는 재미도 없
고, 흥미도 없고, 기쁨도 없고, 소망도 없어 살아갈 수가 없사옵나이다. 2012년까지 주님은 우리를 참아
주시고, 우리를 지켜봐 주셨습니다. 이제 새 시대로 바뀌는 때가 아니겠사옵나이까. 이 때를 충격적으로
깨닫게 하시옵소서. 이 때가 어느 때인지를 알게 하여 주시옵시며, 사랑하는 데 있어서 이 모든 생각이
흐려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힘들고 때로는 유혹되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 주님을 만나 사랑하며 영
원히 사랑하며 사는 인생 시대의 말씀을 듣고 시대의 보낸 자를 따라 신부로서의 삶을 이 땅에서도 천
국에서도 사는 이 소망과 절대 목적이 흐려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느 때나 이 소망과 목적을 굳건히 붙들어 그 목적과 소망을 향해 달려가게 하시옵시며, 삶 가운데 어
려운 것과 힘든 것들은 사랑으로 위로받으며, 좋은 것들은 사랑으로 더 배로 키워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나누게 하시옵소서. 사랑이 없으면 어찌 산단 말이옵니까. 세상에서도 사랑을 하며 보다 많은 것
을 나누며 많은 것을 보여주기를 원하는데, 주님은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지 않으시겠사옵나이까.
주님은 영원한 사랑, 가치있는 사랑, 정말 우리 인생 영원히 영육을 구원하는 이 엄청난 사랑의 주권을
완전히 붙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사랑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
여 주시옵소서. 사랑의 주권을 가지고 무엇을 행하겠사옵나이까.
주님이 100을 주었으니 우리도 100을 드리기를 원하옵나이다. 주님이 우리 섭리역사 사람들을 보고
“진정 잘 했구나. 잘 했다.” 함박웃음을 짓는 역사가 날마다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주권을
가지고 가만히 있어서 되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최고의 주권이며, 영원까지 있는 주권인 줄 믿사오니
이 주권을 가지고 외치게 하시옵소서. 주님. 더 나아가 시대를 증거하며, 더욱 더 전파하게 하시옵소서.
주님. 우리의 사랑을 오늘 확인하여 주시옵시며, 주님 이 귀한 사랑을 전파할 수 있도록 이 귀한 사랑이
목적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 주시며, 사랑이 충만한 자에게는 더 간절히 더 높은 것을 더 간절히
원하고 원함으로 인해서 주님의 그 사랑, 더 알 수 없는 헤아릴 수 없는 그 사랑 높은 사랑까지 도전하
게 하여 주시옵소서.
확인하였으면 예비된 모든 것을 찾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생명이 될 수도 있사오며, 그것이 성전이
될 수도 있사오며, 사랑으로 여호와 이레로 준비한 모든 것들을 찾아 행할 수 있는 역사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데 어찌 알 수 있겠사옵나이까.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데 그 말
씀을 지키지 않고 어찌 살아갈 수 있겠사옵나이까. 주님. 사랑하는 데 영원히 같이 살고 싶은 것은 당연
하지 않사옵나이까. 이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시며, 이 소원을 향해 섭리사 모두가 낙오자가
없이 최고의 단계에 도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 번 뿐인 인생, 한 때 뿐인 인생, 인생 100년이 끝나면 다른 것은 더 없습니다. 영혼으로 살아가 더
다른 인생은 없사오니 한 번 뿐인 육휴거, 한 번 뿐인 영휴거, 한 번 뿐인 인생, 온전해지기 위해 도전
하게 하시옵시며, 온전함으로 나아가 주님의 뜻을 이루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원하옵나이다. 주님. 주님
앞에 너무나 사랑스러운 자, 주님이 사랑하지 않았으면 뽑지 않은 자, 주님이 사랑을 확인하지 않았으면
이 시대 표상으로 뽑지 않은 자, 선생님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그 값은 회개하고 뭐라고 하지 않으면 그 값은 다 갚아주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
이 사랑을 받으시며 사랑하기에 시대 말씀을 주시며, 사명을 주시며, 조건을 세워 주었기에 역사 펴나가
게 하지 않으셨사옵나이까. 그의 소원 모두 이루어 주셨사오니, 앞으로도 그가 원하는 모든 소원을 이루
어 주시는 주님이신 줄 믿사옵나이다. 그러나 그가 더 단련되고 연단받아 이 시대의 모든 조건을 죄를
탕감시키고 나왔을 때 그냥 고난의 주로 초라하게 맞을 수 있겠사옵나이까.
주님. 더 영광스럽게 이 시대에 성자께서 쓰시는 그 육이 되는 자임을 증거하는 그 모든 방법, 주님 생
명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더욱 더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면 둘만 살아갈 수가 없
는 것입니다. 그 뜻을 행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주님과 행하면 행할 수 있으리라 믿사오니
2012년 더 완전하게 만들어 더욱 더 7만 선교 주님이 그토록 원하시는 그 수준에 도전할 수 있도록 역
사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충남지역회에 더욱 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리라 믿사오며, 생명의 역사와 서로 화목하며 우애하
는 역사가 충만하게 일어나게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섭리의 모든 전 세계 하나하나 주님의 말씀으로
다듬어지고 깎아지고 있사오니 올해 남은 성령집회 성자 휴거와 재림의 말씀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더욱 더 불을 지펴 주시옵시며, 마지막으로 부어 주시고 온전해질 것을 충만하게 부어 주실 것을 믿사
옵나이다. 오늘 주님께 사랑을 고한 모든 자들, 더 간절하게 그와 영원히 사는 것을 원하며 주님 기도한
모든 자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뜨거운 성령을 더 하여 주시옵시사 주님과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간구하고 원하옵나이다. 이 모든 기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자 예수님의 이
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께 영광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네. 주님 앞
에 하늘 앞에 사랑의 조건을 세워 주셔서 사랑의 말씀을 받아와 주시고, 사랑의 역사를 세워주신 선생
님께 더 힘내시고 원하시는 모든 뜻을 이루어 드리라고 힘찬 박수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충남 지역과
우리 전 세계 모든 여러분들 위해서 박수 한 번 보내 드릴께요. 이제 올해 세 번의 성령집회가 남아있
습니다. 서울 지역을 마지막으로 다음 주는 창원, 그리고 그 다음 주는 경북 서부, 구미와 문경, 이런 지
역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서울 지역을 마지막으로 해서 성령집회를 마치게 됩니다.
그 다음 두 번은요. 성령집회를 진행하지 않고, 연말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러분, 세 번 남은 성령집회
이 집회를 통해서 더욱 더 주님의 사랑을 불 지피우고, 결심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행실로 완전하
게 옮길 수 있는 역사가 꼭 일어나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한 가지 광고는 2012년 마지막 서울 성령집
회는 12월 14일 금요일인데요. 장소문제로 인해서 바꾸어 주셨습니다. 12월 12월 수요일이 한국 전체
성령집회의 날입니다. 7시 반부터 정확하게 2012년 마지막 성령집회를 대장정의 막을 올리게 됩니다.
그 때도 역시 가장 화려하고 뜨거운 것은 말씀이 되고, 주님과 선생님의 사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수요말씀 수요예배는 2012년 12월 14일, 우리 한국은 전체 생방송으로 제가 말씀을 전하게 될 것입니
다. 그 시간 조절하셔서 꼭 마지막 진행되는 성령집회 여러분이 계신 현장에서 참여하시기를 바라겠습
니다. 다음 주 성령집회를 또 기대하고, 또 내일 모레 주님과 온전한 말씀 이 말씀 기대되는 말씀인데
기대하구요. 주님께 사랑을 온전하게 드림으로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나의 인생 가는 동안에 진정 깨달았습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외롭지 않습니다. 그 사랑에 꼭 도전하고
말겠습니다. 100의 사랑이 무엇인지,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말 선생님은 어떤 사랑을 깨달았기에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 정말 그 사랑을 알고 싶습니다. 얼마나 사랑하기에 그 몸이 되어 이 뜻을 다 이
루고자 그 한을 풀고자 엄청난 뜻을 품고 그 혼자 한 사람의 몸으로 대역사를 이루었는지 너무나 궁금
합니다. 그 사랑을 받기만 한다면 반드시 역사를 이룰 것을 믿습니다. 우리 섭리사 그 사랑 최고 마지막
단계의 이 사랑을 모두 다 누리기를 원하며 이 사랑으로 휴거도 되고, 생명의 대역사도 이루기를 진실
로 기도드립니다.
‘주님과의 사랑으로’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