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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12.11.22 (목)

계시말씀

선포일
2012.11.22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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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라는 사랑의 스위치를 켜라 작성일 : 2012. 10. 4.(목) 새벽 3시 작성자 : 주 사랑빛(서울)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인간을 상대체로 창조했으니 할 수 있다.’는 수요말씀을 듣고 상대체로 창조해 주 신 삼위께 감사의 영광을 드리기 위해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또한, 성자 주님의 분체를 창조해 주셔 서 저희를 구원해 주심에 깊은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동안 저의 사랑이 소홀했던 죄를 회개 드리며 용 서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그러자, 용서가 참으로 큰 사랑임이 느껴졌고, 주님은 어느새 오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내가 너의 조건이 아닌, 선생의 조건으로 왔다. 선생의 사랑에 대해 말해 줄까? 달 밝은 밤이나 어둔 밤이나 아랑곳하지 않고 오늘도 급물살에 떠내려가는 자 있지는 않나 살피며 생명 찾아 헤매는 너희 선생의 그 사랑에 대해 말이다. ‘용서’가 얼마나 큰 사랑인지 알아야 한다. 너희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아 죄악이 쌓여 갈 때, 그 모든 것을 보며 가슴을 치는 선생의 애타는 눈물을 너희는 본 적이 있느냐. 사랑하는 자야, 사랑이 답이다. 사랑의 용서는 보증을 서는 것과 같다. 높이 쌓인 너희의 ‘죄악의 산’을 두 무릎으로 기어 올라가며 대신 회개하는 것이 용서다. 어느 누가 너희를 사랑하여 각자의 죄악의 산을 오르겠느냐? 어느 누가 그 산이 너무나 높고 험하여 자신이 다치고 고통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 산을 오르려 하겠느냐?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다 투자하여 희생해야 하는데 과연 누가 그리하려 하겠느냐? 영으로는 나 성자가, 육으로는 너희 선생이 오늘도 너희 각자의 죄악의 산을 오르고 있다. 두 무릎이 다 닳아 고통 중에도 너희를 사랑하여 오르고 또 오른다. (사랑하는 주님, 회개 드립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 다. 어떤 자에게 선생님께서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는 데 귀히 여기지 않고 또 죄를 지으려 하는 것을 보 았습니다. 저와 섭리 모든 자들이 주님과 선생님의 용서의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고 또 죄를 짓고 행했 던 것을 모두 회개드립니다.) 선생의 ‘용서한다.’ 이 말이 한낱 쉽게 내 뱉을 수 있는 말인 줄 아느냐. 그러한 자는 앞으로 용서의 축복을 거두리라. 또다시 너희를 믿고 선생이 하늘 앞에 대신 보증을 서는 것이다. 대신 회개하며 눈물 흘리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귀하지 않다 하겠느냐. 선생은 너희를 온전한 상대체로 만들기 위해 오늘도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너희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니 용서해 주었는데 또 다시 죄를 짓고 회개하는 너희들을 보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변치 않는 사랑으로 또 다시 용서해 주는 나 성자의 사랑을 어찌 느끼지 못하느냐. 선생이 그곳에 있는 것을 보면서도 어찌 알지 못하느냐. 이미 나의 분체의 평생의 삶을 통해 나 성자의 용서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 얼마나 많은 자들을 대신하여 보증을 서며 용서해 주었느냐. 용서의 사랑은 오직 나 성자 분체만이 너희에게 줄 수 있는 축복이다. 세상의 많은 자들은 무늬만 구원자인 자를 따라가다가 결국 사망길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따라가고 있다. 결국, 무늬만 구원자인 자는 책임도 지지 않고 아무 말 없이 사망길로 간다. 단 한 순간도 자신을 따라오는 자들을 위해 대신 희생하지 않는다. 그들은 감히 나 성자의 용서란 말을 대언할 수 없다. 어제 예배 때 나에게 질문했던 것 기억나느냐? (네, 주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이 바로 주님 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 혹은 자신이 바로 주님이라 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성자 분체가 섭리사에만 존재 하고 계심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이제 시작한 어린 생명들은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차이점을 분명히 말씀해 주시면 더욱 확실히 외치겠습니다.) 녹화 방송과 생방송 중에 어느 방송이 중요하냐? 요리한 지 오래된 요리와 갓 요리한 음식 중에 어느 것이 맛이 있느냐? 먹고 싶으냐? 오래되고 철 지난 옷과 지금 사 온 새 옷 중에 어느 옷을 입겠느냐? 50년 전에 사랑했던 사람과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 중에 누구의 품에 안기겠느냐? 타 종교의 말씀과 나의 분체의 말씀은 이와 같다. 나 성자는 나의 분체를 통해 지금 바로 나의 말씀을 생중계하고 있다. 기성의 말씀은 무려 2천 년 전에 녹화해 놓은 말씀이다. 지금과 맞지 않다.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아멘, 그런데 신*지는 지금 계시록을 풀고 계시를 받아 전한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 헛된 방송이다. 불필요하고 자극적이며 선정적인 방송들이니 모두 꺼 버려라. 나는 오직 나의 분체를 통해서만 생중계 한다. 그 외에는 녹화 방송이거나 잘못된 방송이니 보지 말아라. 이것이 다른 점이다. (아멘, 주님 안타깝게도 많은 자들이 잘못된 방송을 보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신*지에서 수료 한 외국인이 이 말씀을 만나서 너무 기쁘다고 말하 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따라가는 걸까요?) 사랑하는 자야, 나의 분체를 모방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나를 느꼈다고 하는 자들은 진정 나를 느낀 것이 아니다. 가령, 어느 신랑의 신부가 있는데, 그 신부의 종이 신부가 되고 싶어서 신부가 입는 옷을 따라 입고, 말투도 따라하였다고 하자. 지나가던 자가 그 종을 보고 신부로 착각하였다고 하자. 지나가던 자는 그 종이 신부인 것을 굳게 믿고, 옆에 지나가던 자에게 신랑의 신부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가던 자의 말이 맞는 말이냐? 그럼, 그자는 왜 착각을 했느냐? 그자는 신랑의 진짜 신부를 본 적이 없고 신랑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해서이다. 한 번이라도 진짜 신부를 보았다면, 결코 그 종을 보고 신부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신랑에게 찾아가 물어 보았다면 알 수 있지 않았겠느냐? 이와 같이, 무늬만 구원자인 양 주장하는 자들의 말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나 성자에게 진실로 기도하지 않는다. 또한, 나의 분체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진실로 기도하며 나의 분체의 말을 들어 보았다면 그들이 따르는 자가 진짜 나의 신부가 아님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진짜 신부를 알아볼 수 있겠느냐? 신부의 말을 들어 보아야 한다. 신랑은 진짜 신부를 나타내기 위한 증표로 신부에게만 비밀의 말을 해 주었다. 그 비밀의 말씀은 바로 재림과 휴거에 대한 말씀이며, 본체와 분체에 대한 말씀이며, 창조목적과 타락, 시대에 관한 말씀들이다. 그 말씀을 하는 자가 진짜 신부다. 타 종교 지도자들이 하는 말을 들어 보아라. 모두 이 말들이 빠져 있을 것이다. 재림을 외친다 해도 어느 것 하나가 부족할 것이다. 모두 완벽한 말씀이어야 한다. 그 말씀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의 입에서 외쳐지는지 보아라. 그리고 진짜 신부를 보고 만난 자들은 자부심을 갖고 당당히 지나가는 자들에게 말해 주어라. 모두 외쳐라. 내 사랑, 섭리인들아, 너희는 분명 진짜 신부를 통해 신랑의 말을 직접 듣고 있는 복 있는 자들이다. 나의 분체의 희생의 조건으로 부족한 너희들도 나의 말을 들을 수 있음을 알아라. 인정하라. 나의 분체가 너희의 죄악의 산을 오름으로 내 앞에 오니 나의 마음이 녹고 용서의 축복을 내려 줄 수밖에 없다. 용서함이 고귀한 사랑의 희생임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이른다. 선생은 스위치와 같다. 스위치를 켜야 방안에 불이 켜지듯이, 선생이 있어야 너희의 어두운 영생의 길도 훤히 밝혀진다. 선생은 사랑이다. 사랑이 켜져야 너희 인생이 켜진다. 특히, ‘선생’이라는 사랑이 너희의 마음에 살아나야 너희가 온전히 살아난다. 나의 분체를 향한 사랑이 곧, 나를 향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 넓은 방에 불을 켜려면 스위치가 핵심이듯이, 너희가 온전히 살아나려면, 사랑이 핵심이고 그 사랑이 바로, 너희 선생이다. 너희는 진짜 신부를 만났으니, 너희 마음에 ‘선생’이라는 사랑의 스위치를 켜라. 오늘도 너희 각자를 용서하며 사랑하기에 말씀한 성자 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