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말씀2012.12.06 (목)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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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 교육-
1. 계시의 수준과 주관 계시
2. 계시 분별법
작성일 : 2012. 10. 16. (화)
작성자 : 이선진(분당 주좋은 교회, 청년부)
(사랑하고 귀하신 성자 주님, 오늘은 그동안 계시의
사명을 해 오며 계시에 대한 의문, 궁금한 점, 어려
웠던 점을 말씀드리고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 부디
섭리 백성들을 위해 꼭 말씀해 주세요. 지금 이 시점
에서‘계시’라는 것을 정의 내려 주신다면 무어라 말
씀하실 수 있으신지요?)
* 성자 주님의 말씀 *
사랑아,
너도 알다시피 ‘계시’란
신의 뜻, 마음, 심정을 직접 알리는 것이니
신을 배우는
‘최고급 신학’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고
그 때 그 시기에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그 나침판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니
‘이정표’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구나.
또한 각 사람의 마음 그릇 따라
담겨지는 신의 사랑이니
‘개성체적 신과 인간과의 사랑의 도구’라
표현할 수도 있겠구나.
(그간 3년이라는 시간이 넘도록 계시를 받아보며 알
다가도 모르겠고 쉽다가도 어려운 것이 ‘계시’였으며
‘선생님’이라는 기준자가 존재하심이 얼마나 귀한지
너무 많이 깨닫고 느껴왔습니다.)
맞다.
‘계시’라는 건 참으로 어렵지.
가장 높은 신적 존재를 배우고 탐구하는 것이기에
그 사람이 신적 수준으로까지 올라보기 전에는
결코 ‘계시’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유일히 선생이 인간으로서
나 성자와 온전히 일체되는
신적 수준으로까지 올랐기에
전 세계 계시의 표준, 표상이며
가르쳐 주고 판가름해 줄 수 있는 기준자이다.
선생 외엔 ‘계시’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자가 없다.
‘계시’는
그 사람의 마음 밭과 수준, 실력 따라
수시로 무시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선생도 영적 세계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각 사람 수준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라고 했지.
실상 섭리에 많은 자들이
나의 계시를 받고 있으나
온전히 순도 100% 나의 의향을 담은 계시는
선생만 받는다.
100% 온전한 혼체, 영체, 자기 비움에
다다르기 전에는 나의 계시를 받아도
‘온전한’ 나의 계시를 받는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상대성적으로 각자의 그릇 안에서
최선을 다해 받은 계시는
‘상대성적 온전한 나의 계시’라 말할 수 있지만
‘절대성적 온전한 나의 계시’는 아니다.
선생이 받는
‘절대성적 온전한 계시’가 아니고서는
아무리 나의 계시일지라도
자기 개성, 자기 의지가 조금씩은 들어간다.
고로 계시를 받아도
선생 통해 결재받기 전에는
그 계시가 아무리 나의 계시일지라도
온전하지 않을 계시일 수도 있기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100% 절대성적 나의 온전한 계시가 아니고서는
계시를 듣게 되는 청중들을 나의 안에 담기보다
그 대언자의 개성체 안에 담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로 반드시 선생 통한 나의 결재를 거쳐라.
이는 구원을 좌지우지하기에
시간이 조금 늦고 안 늦고 보다
‘정확성’이 중요하다.
알겠느냐.
선생 통해 결재해 주었다고 해서
그것이 100% 절대성적
나의 온전한 계시라 생각하지는 말아라.
다만 자기 개성, 자기 의지보다
나 성자의 의향과 뜻이 많이 담겨 있기에
결재해 준 글도 많으니라.
‘계시’는 그 사람의
마음 밭, 수준, 개성 위에 오는 것이니
그 개성이 반영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제는 ‘나의 뜻과 계획에 의해’
그 개성이 반영되었느냐
아니면 ‘자기 뜻에 의해’
자기 개성이 반영되었느냐이다.
그 수준과 정도에 따라
주관 계시 혹은 나의 계시로 판별되는 것이다.
이처럼
[영 주관, 사탄주관, 자기 육성과 주관 계시
– 상대성적 온전한 나의 계시
– 절대성적 온전한 나의 계시]
순으로 계시의 수준과 급이 나뉜다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말로는
[육적 수준의 계시
- 혼적 수준의 계시
- 영적 수준의 계시] 라 말할 수 있다.
선생 말대로 섭리사 계시자들의 대부분은
혼적 수준의 계시를 받으며
이따금씩 영적 수준의 계시를 받는 자들도 있으나
선생처럼 항상 영적 수준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에
절대성적으로 온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주님, 그동안 주님의 계시를 잘 받다가도 때로 주관
계시를 받는 것이 너무 쉽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관 계시는 어떠한 상황에서 받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섭리인들이 주님과 잘 통할 수
있을지 가르쳐 주세요.)
첫째, 자기 마음속 자기중심의 마음이
나 성자, 선생 중심 마음보다
우위를 차지하였을 때
즉, 자기 육성이 영성보다 더 커져 있을 때
주관 계시를 받게 된다.
내 전에 육성과 영성은 반비례 관계라 설명하였지?
육성의 수준이 높아지는 만큼
영성의 수준은 낮아지게 되고
영성의 수준이 높아지는 만큼
육성의 수준은 낮아진다.
고로 자기 육성을 꺾고
보다 영성을 따르는 행위를 할수록
자기 육성, 주관은 비워지며
보다 나와의 통함이 선명해진다.
자기 육성, 자기 주관은
다 자기가 자초한 것이다.
‘순종이 실력’이라는 선생 말 들었지.
이처럼 자신이
그동안 선생 통한 나의 말씀 듣고
얼마나 생활 속 순종을 해 왔는가
그 결과가 현재
‘자기 자신의 주관, 육성의 수준’이다.
고로 진정 나와 온전히 통하고 싶고
보다 온전한 나의 계시를 받고 싶으면
생활 속 순종을 잘해야만 해.
이는 계시자들에게뿐만 아니라
온 세계 섭리인들에게
다 해당되는 얘기이다.
둘째, 나와 음성으로 통하든
감동, 깨달음, 심정 등으로 통하든
이 모든 것들의 분별력은
곧 ‘집중력’이다.
기도에서도 ‘집중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선생 통해 말하였듯
생활 속에서나 기도 중에 들려오는
감동, 음성, 깨달음들을 분별해 내는
최고의 무기가 바로 ‘집중력’이다.
계시자들도 이것으로
나의 파장을 감지해 내고 파악해 내는 것이며
나와 대화하는 것이다.
계시의 세계는 감각의 세계이다.
얼마나 예민하고 예리하게
자신의 마음에 도착하는 계시를
분별해 내고 파악해 내느냐가 관건이다.
고로 생활 속 대화,
새벽기도 등 기도를 많이 하여
선생처럼 영적 안테나를
항상 예리하게 세워 놓으며
영적 집중력을 길러라.
이것이 길러지는 만큼
나와의 통함의 수준과 수위가 높아진다.
셋째, 나는 신이다.
고로 나는 온전하고 완전한
나의 심정과 감동, 깨달음, 말씀을 준다.
그러나 너희가
이 육계의 혼란스럽고 악한 파장, 기운에 영향 받아
나의 계시를 받을 너희의 마음 밭이 요동침으로
온전히 깨끗이 받지 못하고
자기 주관적으로 받는 경우가
섭리인들에게 허다하다.
계시를 받을 때
자기 마음을 침착하고 차분하게
다스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대개 조급해지거나
마음을 제어하지 못해 쏠려 버린다.
쉽게 말해 완성된 혼체, 튼튼한 혼체일수록
나와 잘 통하고 계시도 잘 받는데
아직 섭리인들의 혼체가
많이 연약하고 여리다.
따라서 통하다 안 통하다 하며
통하고 있어도 잘 모르는 것이다.
선생의 사상과 정신으로
자기 혼체를 튼튼히 성장시키고 무장시킬수록
나와의 통함이 느껴지고 쉬워질 것이다.
알겠느냐.
휴거의 비밀이 ‘혼체의 완성’이듯
나와의 통함, 계시를 잘 받는 방법도
곧 ‘혼체의 완성’이다.
혼체의 완성도에 따라
나와 통하고 그 수준에 따라
나의 계시를 받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음성으로만 말하지 않고
감동으로도 말한다.
고로 음성뿐만 아니라
음성 너머로 전해져 오는
심정, 감동에도 귀 기울여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쭈어 볼게요. 때로 주님은
겉으로 마음의 음성으로 A를 말씀하셔도 동시에 본
의도인 B를 감동, 심정으로 표현하기도 하시죠?)
이곳은 말보다
심정이 우선인 세계 아니냐.
고로 말씀을 들을 때에도
그 말들 자체보다
말씀 속에 감춰져 있는
나의 의도와 의향을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
따라서 계시자들에게나 혹은 섭리인들에게
음성으로 대답해 줄 때에도
나의 본래의 의도, 의향은
속 심정으로 감동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는 나의 계시를 받는 자가
자기 주관, 인성에 치우쳐
분별을 잘 하지 못할 때,
나와 온전히 일체가
되어 있지 않을 때의 표현 방식이다.
사랑아,
오늘은 선생의 조건 위에서
너희 섭리인들에게 ‘계시’에 대하여
교육해 주고 말해 주었다.
어렵게만 생각 말고
‘어려우니 스릴 있다.’생각하며
선생 같은 도전 정신을 가져
나와의 통함에 도전하여라.
알겠지.
사랑한다.
성자 주니라.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