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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2.12.06 (목)

계시말씀 44464944

선포일
2012.12.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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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의논 작성일 : 2012. 9. 17. 작성자 : 옥혜선 (목회를 맡아 보니 선생님과 의논할 일도 더 많이 생 기고 기도할 제목도 더욱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실상 일에 쫓기니 의논을 하기도 전에 당장 급한 일을 처 리하기에 급급해 있는 나의 모순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에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또한 섭리를 풀타임으로 뛰며 영적인 일을 주로 하는 회원이나 지도자들이 ‘나는 늘 주님의 일을 많이 하니 주님이 나를 이해해 주시겠지.’라고 생각하며 일에 빠져 주님과 의논하지 않고 자기중심적 행동을 하는 일이 많이 있음을 깨 닫게 되었습니다. 주와 의논하지 않는 교만한 섭리의 모순에 대해 깊이 회개하였습니다.) * 선생님 말씀 * 늘 먼저 주님을 모시고 해야 한다. 네가 외치고 싶을 때 주님을 불러서 함께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주님이 외치시길 원하실 때 네가 가서 주님의 육이 되어 외쳐 드리는 것이다. 주체가 주님이시고 네가 상대체임을 잊지 말아라. 그러니 기도해야지. 의논해야지. 똑같이 불같이 외쳐도 어느 곳에는 부흥이 일어나고 어느 곳에는 왜 부흥이 안 일어나는지 아느냐. 그래. 주님이 원하실 때 늘 주님의 몸이 되어 주님 원하시는 대로 행한 자와 자기 혼자 열심히 하는 동안 자기가 필요할 때 주님을 찾는 자와의 차이이다. 겉으로 보면 둘 다 열심히 뛰는 것 같아 보여도 영으로 보면 전자는 주와 함께 뛰고 있고 후자는 자기 혼자 뛰며 자기가 필요할 때만 찾으니 대부분 혼자하고 있다. 처음 서울에 갔을 때 내가 원하여 스스로 갔겠느냐? 주님께서 정한 때가 되어 나를 통해 외치시려고 주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내가 어찌 이렇게 큰 역사를 스스로 이룰 수 있었겠느냐. 내 생각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인간의 생각이었다면 모두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 생각으로 한 것이었다면 하다가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힘들어도 누가 나를 막고 괴롭혀도 한계에 부딪혀도 끝까지 주님과 함께 견디니 하늘의 때가 되어 나의 행함이 결실하게 된 것이다. 나는 부족하지만 주님께서 하실 수 있도록 내 몸을 주님께 드리며 주님 정신 받아 그 모든 것들을 행한 것이다. 나라고 해서 한계에 부딪쳤을 때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겠느냐? 나의 육은 한계에 도달했지만 주님의 뜻은 정녕코 이뤄질 것을 믿었기에 끝까지 주님께서 뜻을 이루시도록 믿음의 힘으로 주의 몸이 되어 드린 것이다. 주체가 주님 되시니 나는 견딜 수 있었다. 내가 이끄는 주체의 입장이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지. 사랑아. 주님이 네 모든 인생의 주체가 되시도록 네 인생을 오직 주님께 드림으로 부활해야 한다. 기도하여 오늘 주께서 너를 통해 무엇을 하길 원하시는지 그 뜻과 심정을 먼저 깨닫고 그 후에 행해야 한다. 네가 열심을 내며 주의 일을 더욱 행하고자 몸부림치는 애씀과 뜨거운 열정과 확고한 다짐은 칭찬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기도 없는 행함은 방향을 잡지 못하고 달리는 미친 소와 같고 의논 없는 행함은 사망의 지름길이다. 네 스스로 행하면서 필요할 때만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이 너를 통해 하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묻고 깨달아 주님이 원하시는 그것을 먼저 행해야 되는 것임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선생님, 주님과 깊은 대화와 선생님과의 소통이 일 을 진행하기 전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실상 주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매번 기도로 구체적 인 응답을 받기가 쉽지 않고, 또 편지로도 선생님께 구체적인 지시를 받기도 너무 어렵습니다. 특히 기도 도 깊이 안 되고 선생님께 답장도 못 받았을 때 일 을 하지 않고 막연히 답이 오길 기다리며 멍하니 있 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선생님 바 쁘신데 막 보채서 심정 안 맞게 걱정되게 하여 억지 로 답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주님이 원하시 는 방법이 아니지요? 어떻게 하면 주와 소통의 차원 을 높일 수 있을까요?) 사랑아, 의논이란 무엇이냐? 의논의 근본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하나의 예를 들어 볼까? 첫째, 아들이 결혼 후에 새 살림을 차리기 위해 집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집을 보러 다니는데 직장도 가깝고 교통편도 좋고 투자가치도 좋은 적절한 가격의 집을 몇 군데 보고 와서 그 중에 어떤 집을 사는 게 가장 좋을지 부모님과 의논하였다. 또 둘째 아들도 새 집을 보러 다니는데 이 아들은 처음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 위해 부모님이 다니시는 병원이나 문화센터에 가깝고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산이 가까운 곳을 염두에 두고서 자기 상황에도 좋은 집을 찾아 몇 군데 집을 보고 왔다. 그리고 부모님께 그 집을 보여 드리면서 어느 집이 가장 좋겠냐고 의논하였다. 부모는 두 아들 중에 누구와 먼저 대화했겠느냐? (부모와 살기를 염두에 두고 그에 맞는 집을 보러 다 닌 아들과 먼저 대화하고 싶어 하실 것 같아요.) 그래. 의논과 통보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너희가 나와 의논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라. 세상에서는 각자 자기가 원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의논한다. 하지만 하늘이 원하는 의논이란 자기가 원하는 그 일만 잘되기 위해 의논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와 성자가 보낸 자와 함께하기 위해서 의논하는 것이 의논의 핵심 목적이 돼야 한다. 가정 일이든 직장 일이든 학교 일이든 교회 일이든 선교 일이든 어떤 종류의 일을 하든지 먼저는 주와 같이 그 일을 함께하기 위해 의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와 함께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작든 크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의 차원이 신의 차원으로 올라간다. 소통의 차원을 높이는 것이란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통하여 주와 더욱 함께하는 사랑의 차원을 높이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가 함께하고자 하는데 그것을 외면하는 애인이 어디 있겠느냐. 그 일이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바쁠지라도 애인이 함께하고자 하는데 그 사랑에 반응하지 않는 자가 어디 있겠느냐? 성자 주님은 영의 신랑으로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사랑하는 너와 함께하고자 기다리고 있는데 주가 안 보인다 하여 소홀히 대하면 되겠느냐? 네 수준이 높든지 낮든지 성자 주님과 주님의 육신인 나와 함께하고자 하는 소망과 간절함이 있다면 그는 합당한 신부다. 그 간절함 없이 일만 잘하고 성과만 올리려 하는 자는 신부가 아닌 일꾼으로 분류하여 내가 시간 있을 때 돌본다. 나는 내 신부 챙기기도 시간이 부족하여 늘 바쁘니 일꾼까지 일일이 돌보기 힘들다. 알겠느냐? 단지 결재를 받기 위해 한 일이라면 큰일을 했어도 나의 맘에 차지 않는다. 수고했어도 그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으니 그 수고의 몸부림이 허무하다. 성자 주님과 나는 일을 결재하기 위해 온 회사 사장이 아니다. 나의 결재를 받았으니 그 안에서 맘대로 행하는 자도 합당치 않다. 선생의 사인이 무슨 마패이냐? 주권이냐? 선생의 사인은 모든 일의 완성이 아니다. 너희는 어찌 네 일이 잘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성자 주님과 나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는 관심이 없구나. 사랑하는 연인은 함께하는 것에 최고의 소망을 두고 늘 함께하고자 연구하고 함께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기 맡은 사명의 일에 책임분담을 다하며 최선을 다한다. 일과 사명은 도구이고 나와 사랑을 완성하는 것은 목표이다. 아름다운 여자 조각상을 조각하는 데 쓰이는 끌과 망치는 도구이고 여자 조각상은 목표이다. 끌과 망치를 다루는 기술이 좋아야 조각상을 완성할 때 이상적이듯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열심히 뛰는 것도 너무 중요하다. 하지만 여성 조각상을 만드는 목표를 잃어버리고 동물상을 만들어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목적을 확실히 알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방법과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전문가에게 배우고 의논하는 것이다. 알겠지? (며칠 뒤 성령운동 때 사랑과 일에 대한 모순에 대해 더 가르쳐 달라고 주님께 여쭤 보았습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사랑하지 않음이 문제이다. 사랑하지 않으니 일에 빠지는 것이다. 사랑하면 일할 때도 먼저 나를 찾고 일에 빠져도 나와 함께 빠진다. 함께하지 않으면 무엇도 혼자서는 하고 싶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해야지. 사업 때문에 남편이 해외에 나가게 되어 부부가 한동안 떨어져 지낸다고 해 보자. 떨어져 지내는 동안 남편이 부인에게 연락을 한 번도 안 하고 혼자 일에만 빠져 열심히 지내다가 10년 후에야 사업이 성공하여 잘됐다고 부인에게 연락을 한다면 부인의 기분이 어떻겠느냐? 사업이 잘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늘 함께하길 원하지 않았겠느냐? 나도 그렇다. 네가 천만 명을 혼자 선교하고 뛰어난 일을 행할지라도 내가 보낸 선생과 함께하지 않고 혼자 잘한다면 선생의 기분도 그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사랑아. 내가 너에게 이 마지막 때 왜 다시 왔겠느냐? 진정 사랑하니 영원히 사랑하며 함께 살려고 데리러 온 것이 아니겠느냐.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공적 많아도 그 공적은 육에 속한 것이 되어 마치 육신이 죽으면 땅으로 썩어 없어지듯 사라진다. 사랑이 열쇠다. 나를 사랑하여 함께 이 역사에 빠지고 생명 구원 일에 빠져 봐라. 네 육도 영도 신이 될 것이다. 널 진정 사랑하여 이 마지막 때에 마지막 휴거시켜 완성의 영으로 데려가려고 바로 네 옆에서 애태우며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을 알겠느냐? 알아야 한다. 내 사랑아. 사랑해야 휴거된다. 사랑해야 완전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내가 보낸 선생과 사랑하므로 참지 못해 함께해 보아라. 할 수 있다. 기준이 되어 실천함으로 외쳐 보아라. 용암이 녹슨 철을 녹이듯 뜨거운 성령이 마음이 굳은 자들의 마음을 녹일 것이다. 사랑아, 의논은 사랑이다. 나와 더욱 의논하자. 사랑해. 신부의 사랑의 말에 늘 언제나 반응하는 신랑 성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