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2.12.12 (수)
121212 수요말씀 방법이다
- 선포일
- 2012.12.12 (수)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21장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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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2일 수요말씀> 생방송
방법이다
본 문 마태복음 21장 1-9절
* 장소 문제로 인해 12월 14일 금요일에 있을 서울 성령집회가 12월 12일에 전
세계 생방송으로 진행됩니다. 고로 12월 12일 수요예배는 12월 14일 금요일 오후 7
시 30분에 시작하고, 12월 14일 생방송 성령집회는 12월 12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에 시작합니다.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 예수님의 평강을 빕
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
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이번 주 주일에는 ‘사람도 만물도 쓰는 자가 어떻게 쓰느냐, 그 방법
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오늘은 주일말씀에 이
어서 ‘방법에 따라 달려 있다.’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잠언 중에 ‘안 될 때는 방법을 달리하여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섭리역사를 시작하기 전에 선생이 25세 때 월명동에서 살면서
생활 속에서 깨닫고 주님께 받은 말씀입니다. 오늘은 먼저 이 말씀을 받
게 된 깊은 사연을 말씀해 주겠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그때 선생은 하루에 나무를 두 짐씩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두 짐을
빨리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루 두 짐만 하면 아버지
와 어머니가 보시기에 할 만큼 했으니, 나머지 시간은 내 시간으로 가져
도 되어 기도도 할 수 있고, 성경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해도 오전에 한 짐, 오후에 한 짐밖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 누구나 다 똑같았습니다. 집 가까이
에 있는 앞산이나 뒷산이나 동그래산에서 나무를 하면 나무가 너무 없어
서 문제였습니다. 또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무를 하면 나무는 많고
좋은데, 나무를 하러 가는 시간과 나무를 해서 집으로 짊어지고 오는 시
간이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고로 하루에 빨리해야 겨우 두 짐밖에 못 하고, 오후에 해가 지고 나
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고로 기도할 시간도 없고 성경 읽을 시간도 없
었습니다. 밤이면 하루 종일 일을 하여 너무 피곤했고, 또 어머니는 내 방
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호롱불 기름 아껴라. 식구들 전체가 쓰는 것보다
너 혼자 더 많이 쓴다. 그만 자라.” 하셨습니다. <끝>
곤고한 중에 ‘어떻게 하면 해가 밝을 때 나무 두 짐을 다 하여 일을
끝내고, 낮에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날은 오전에 앞산에 가서 키가 무릎 정도밖에 안 닿는 나무를 하면
서 ‘어떻게 하면 빨리할 수 있나요?’ 하고, 번개같이 몸을 빠르게 움직
이면서 기도하면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이때 “안 될 때는 방법을 달리하
여라.” 하고 주님의 말씀이 깨달아져 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하지?’ 하고 앉아서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빨리해도 안 되는데, 어떤 방법으로 달리해야 될까? 주님이 말
씀하셨으니 되는 방법이 있겠다.’ 하고, 하던 일을 멈추고 20여 분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방법들을 모두 검토하고 따져 봤습니
다.
이때 은밀하게 깨달아졌습니다. ‘지금까지 안 해 본 방법으로 해야겠
다!’라고 깨닫고, 새로운 방법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나무를 하는 속
도는 기존과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집중해서 한 가지만 했습니
다.
나무 두 짐 분량을 다 하고 나니, 오후 2시가 넘었습니다. 배가 고파
서 먼저 나무 한 짐을 짊어지고 집으로 왔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오늘은 두 짐은 못 하겠다.” 했습니다. 아버지는 “앞산에서는 이삭줍
기다. 감람산에는 가야지. 그런데 요즘은 거기도 나무할 것이 없더라. 목
골, 진산, 복수, 부암리 사람들이 매일 오니 나무가 클 기간이 없다.” 했
습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다시 가서 금방 또 한 짐을 짊어지고 집으로 왔습니
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깜짝 놀라서 “아니, 예전에 나무해 놓은 것을 짊
어지고 왔냐?”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니에요. 지금 해 온 거예요.” 했
습니다. 아버지는 놀라서 이상하게 여기고 내가 해 온 나무를 확인하더니
“지금 금방 해 온 나무 맞네.” 했습니다. 어머니는 더 놀라며 이상하다
는 듯이 나를 쳐다봤습니다.
내가 하는 일을 안 알아주던 어머니도 아버지도 놀라서 의아하게 생각
했습니다. 한나절 동안 해야 될 나무를 20분 만에 해 오니, 보고 놀라지
않겠습니까? (‘20분 만에’ : 손을 ‘눈높이로’ 올려서 손가락 두 개를 든다 / ‘보고 놀라지 않겠습니
까?’ : 양손을 어깨 높이고 들고 손을 쫙 펴고 놀라는 표정) 어머니와 아버지가 관심을 쏟
아 주시니 너무 좋았습니다. 킥킥. 어머니와 아버지가 놀라는 것을 보고,
선생은 너무 기쁘고 힘이 확 왔습니다.
다른 때와는 방법을 달리해서 2시간 30분 정도 빨리했습니다. 여러분
들도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신기하고 놀라며 어떻게 빨리했는지 궁금
할 것입니다.
이날은 나무를 빨리했으니, 씻고 성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 좋아
서 반은 미칠 것 같았습니다. 빨리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알았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완행열차를 급행열차로 바꾼 격입니다. 늘 윗집 고 집사와
아랫집 박 집사 어른들까지도 서로 먼저 나무를 하려고 하여 나보다 먼저
일을 끝냈는데, 선생이 깨닫고 방법을 달리하니, 그들이 나무를 하는 속도
와는 비교가 안 됐습니다. 결국 그들에게도 내 방법을 가르쳐 줘서 그들
도 나와 같은 방법으로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에게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와 아버지가 알면 나를 신비하게 여기지 않을 것은 물론, 일찍 나무를 했
으니 나머지 시간에 또 다른 일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내가 해
가 지기 전에 나무를 해서 집에 돌아오니 좋아하셨습니다.
이같이 방법에 따라 문제가 해결되고, 곤고함도 해결됐습니다.
성자 주님이 선생에게 주신 잠언 하나하나는 금덩어리 같은 문제의 답
입니다.
(① ‘잠언 하나하나’ : 오른손 주먹을 쥐고 있다가
손가락을 하나하나 편다.
② ‘금덩어리 같은 문제의 답’ : 두 손으로
금덩어리를 만들어 표현)
그런데 잠언을 읽을 때 슬슬 읽고, 소설책이나 만화책 읽듯이 읽으니,
절대 문제 해결의 답을 못 찾는 것입니다. 선생이 주님께 잠언 하나를 받
을 때 얼마나 힘들게 받는지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 잠언으로 인생 팔자
도 펴고, 어느 때는 그 잠언 말씀대로 하고 죽을 것도 피하고, 어느 때는
10년 동안 애태우던 문제가 해결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예언서인 <추배
도>에서도 ‘잠언을 가진 자가 세상을 다스린다.’ 했습니다. 잠언은
‘전술’이라는 말입니다.
어떤 잠언은 성자 주님께서 주시고, 어떤 잠언은 말씀을 터득하고 깨
달아 받고, 어떤 잠언은 내가 연구하고 분석하고 확인하고 실험해서 알고
받습니다.
<잠언의 계시>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께서 인류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고로 깊이 읽고 또 읽으면, 성령님과 성자 주님께서는
각자 저마다 합당한 답이 떠오르게 해 주십니다. 어떤 잠언은 인봉해서
쓰는데, 성자 주님께서 합당한 자에게만 풀어 주십니다.
어떤 잠언은 열 자도 안 되는데, 그 잠언을 깨닫고 행하여 하루에 몇
억의 가치를 얻었습니다. ‘잠언’이 그만큼 보물이기에 깨달으려고 해야
깨우쳐 줍니다. 자기 주관으로 해석해 주면, 오히려 각자가 제대로 깨닫지
못해 문제 해결의 방법을 못 찾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꼴이 됩
니다.
방법을 알고 달리하면 힘들게 안 해도 되고, 불가능한 것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기도하면서 계속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면, 되는 방
법이 나옵니다. 기도하고 잠언을 읽으면, 성자 주님께서 잠언 속의 근본의
비밀을 깨우쳐 주십니다. 한 잠언당 수백 가지로 깨우쳐 주십니다.
선생은 주님께 “돌이 방법을 달리한 보물이다.”라는 잠언 하나를 받
고 깨달아, 돌을 찾고 귀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성자바위>도 얻게 됐습
니다.
선생이 어떤 방법으로 하루에 나무 두 짐 하는 것을 오후 일찍 끝냈는
지, 그 방법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원래는 나무 한 짐을 하고 집에 가져다 두고, 다시 와서 나무 한 짐을
하고 또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방법을 달리하여 집에 가지 않고
나무 두 짐을 한 번에 해 놨습니다. 마치 한마음만 가지고 정신일도 하여
영계에 들어가서 불가능한 것 없이 행하듯이 했습니다. 한 가지에 집중해
서 나무를 할 때는 나무만 하여 두 짐을 한꺼번에 해 놓고, 또 나무를 집
에 가져갈 때는 집중해서 짊어지고 먼저 한 짐을 집으로 가져가고, 다시
돌아와서 또 해 놓은 나머지 한 짐을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쪼개서 하니까 시간적 표적이 일어났고, 할 때 아예 해 버리니 시간적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모두 어떤 일을 할 때 이같이 해야 시간을 더 얻어
시간적 표적이 일어납니다.
일은 한 가지를 할 때 집중해서 하고, 그다음에 다른 것을 집중해서
해야 훨씬 시간이 절감됩니다. 고로 시간적 축지를 하게 됩니다. 이것저것
바꿔 가면서 하는 것보다, 쪼개서 한 가지를 집중해서 하고, 그것이 끝나
면 또 다른 한 가지를 집중해서 하는 것이 훨씬 일도 잘되고 빠릅니다.
선생은 지금도 그 방법으로 하여 이 엄청난 일들을 간신히 해 나갑니다.
기도도, 어떤 일도, 공부하는 것도 할 때 집중해서 해야 훨씬 많이 합
니다. 가령 차를 타고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하면, 가속도가 붙지 않습
니다. 갈 때 끝까지 달려야 가속도가 붙어서 시간을 절감합니다.
만사의 모든 일을 놓고 이것 했다가 저것 했다가 하면 잘 안 되고 시
간이 더 들어갑니다. 공부도 이 과목 조금 했다가 저 과목 조금 했다가
하면 시간만 들어가지, 머리에 내용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오른손으로 이것을
만졌다가 저것을 만졌다가 하는 모습) 한 시간이 있다면, 30분 동안은 이 과목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30분 동안은 저 과목에만 집중해서 쪼개서 해야 더 시
간을 많이 쓰게 됩니다.
여우 오줌 싸듯이 찔끔찔끔 하면, 시간만 더 들어갑니다. 뱀을 때려잡
듯이 한 가지씩 집중해서 해야 됩니다.
(‘찔끔찔끔’ : 손을 어깨 높이로 올리고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
동하면서, 손등을 위로 하고 손가락을 아래로 하고 다섯 손가
락을 줬다가 폈다가 한다. / ‘뱀을 때려잡듯이’ : 나무로 5~6번
빠른 속도로 때려잡는 모습 표현)
방법을 달리해서 하면 책도 한 달에 한 권씩 암기가 됩니다.
방법에 따라서 달걀 50개를 한 번에 먹을 수도 있고, 달걀 3개도 못
먹기도 합니다. 또 방법에 따라서 빛으로 150억 년에 걸려서 갈 곳도 20
분 만에 갈 수도 있고, 1000년이 걸려도 못 가기도 합니다. 휴거되지 않
을 자도 방법에 따라서 쉽게 될 수도 있고, 못 되기도 합니다. 방법을 꼭
배워야 됩니다.
고등학교 3학년만 되면, 왜 그리 떨리고 부담이 됩니까? 평소에 공부
를 안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방법을 달리해서 평소에 열심히 하
면 80% 이상은 합격됩니다. 고3이 되었을 때 그제야 열 내서 공부하거
나, 시험이 앞에 닥쳤을 때 그제야 열 내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입니다. 만사의 모든 일이 평소에 잘해야 그 일이 닥쳤을 때
도 잘해집니다.
신앙생활도 잘하다가 리듬이 깨지면 한동안 자기로 인해 고통을 겪게
됩니다. 방법을 달리하면, 둘러 갈 길을 지름길로 가는 듯하여 쉽습니다.
무거워서 간신히 드는 물건도 한 번에 다 지고 가면 시간도 더 많이
들고 힘도 4배나 더 듭니다. 쪼개서 가지고 가면 7배나 더 빠르고 힘도
안 듭니다.
이상적인 방법으로 하면 누구든지 같은 나이인데도 누구처럼 폭삭 늙
지 않고, 누구처럼 젊게 보입니다.
방법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월명동 각도석을 어떤 방향에서 어떤 방법으로 보느냐에 따라 모양과
형상이 더 많이 보입니다. 차원이 다르게 보입니다. 잘못 보면 무섭게 보
입니다. 잘 보면 신의 형상으로 보입니다. (① 금 두꺼비 ② 큰 신의 얼굴 ③ 코가 뾰
족한 사람 얼굴 ④ 소 얼굴 ⑤ 여자 얼굴 ⑥ 치타 모양 ⑦ 한 가지 더 있음) 각도석을 360도로
돌면서 보면 보입니다. ‘방향의 방법’을 달리하면서 봐야 보입니다.
똑같은 음식 재료를 가지고서도 만드는 방법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음식
이 됩니다. 똑같은 ‘쌀’도 만드는 방법에 따라서, 그 이름이 수십 가지
로 달라집니다. 밥, 누룽지, 떡, 떡 중에서도 송편, 가래떡, 시루떡, 절편,
꿀떡 등 수십 가지로 달라집니다. 또 빵, 엿, 과자 등 50가지 이상의 각
각 다른 이름이 붙게 됩니다. <끝>
자기가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 삶을 어떻게 사느냐, 그 방법에 따라서
자기 이름도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늘 똑같은 생활만 하면서 이름만 바꿔
달라고 합니다. 선생은 그 ‘행위’를 보고 이름을 바꿔 줍니다. 밥인데,
별미 떡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지 못합니다. 방법을 달리하여 떡 인생을
만들어야 “너는 송편이다. 너는 가래떡이다. 너는 시루떡이다. 너는 호박
떡이다. 너는 꿀떡이다.” 이름을 바꿔 주게 되고, 그 생활에 따라 이름을
바꿔 주기 때문에 이름을 바꿔 달라고 할 때 바꿔 주기도 쉽습니다.
혹은 그와 같은 삶을 살지 못했더라도 이름값을 하며 살라고 좋은 이
름을 지어 줍니다. 그런데 이름값을 못 하면, 다른 사람에게 또 그 이름을
지어 줍니다. 어떤 사람은 이름을 지어 줬는데, 왜 그같이 이름을 지어 줬
는지 뜻을 모릅니다. 답답해서 다른 자에게 또 그 이름을 지어 주고 싶습
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선생의 이름에는 ‘해와 달’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해’는 성자 주
님, ‘달’은 신부인 나를 상징하는 것임을 깨닫고 이름대로 삽니다. 저차
원적으로 땅에서 생각하면 ‘해’는 주님의 육이 되는 자, ‘달’은 그를
따르는 자들임을 분명하게 깨닫고 이름대로 삽니다. 또 ‘쪼갤 석’ 자를
주님께 받았으니 선악을 쪼개고, 말씀도 쪼개면서 수백 가지로 써먹으며
이름값을 합니다. <끝>
모두 말씀을 듣고 명심하기 바랍니다.
<말>도 ‘하는 방법’에 따라서 전혀 다른 말이 됩니다. <글>도 ‘쓰
는 방법’에 따라서 전혀 다른 글이 됩니다. <그림>도 ‘그리는 방법’에
따라서 인물화가 되고, 산수화가 됩니다. <인생>도 ‘사는 방법’에 따라
선인이 되고, 악인이 됩니다. 자기가 그같이 만듭니다. 특별한 것 때문에
선인이 되고 악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는 방법’ 때문에 하늘과 땅같
이 차원이 다른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밥을 할 때 물을 많이 부으면 죽이 되고, 물을 적당히 부으면 밥이 됩
니다. 무엇을 깨달으라고 한 말씀입니까? ‘방법에 따라서’ 죽이 되거나
밥이 된다는 말입니다. 자기 인생도 모든 일을 할 때 방법에 따라서 밥이
되기도 하고 죽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밥’은 오른손 주먹, ‘죽’은 왼손 손가락을 모두 다 펼쳐서 표현)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방법에 따라서 삶도, 시간도, 존재물도 좌우되고, 방법에 따라서 가난
하게 되기도 하고 부자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열 명이 똑같은 무게의 합판을 지고 경주했습니다. 아홉 명은 가다가
계속 뒤로 넘어졌고, 한 명은 금세 결승선까지 갔습니다. 1등을 한 한 사
람은 바람을 안 타도록 합판을 세로로 메고 가니, 합판을 가로로 메고 가
는 사람들보다 바람을 300배나 덜 타서 넘어지지 않고 결승선에 빨리 도
착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방법에 따라서 인생 승리도 좌우됩니다. <끝>
방법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방법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나는 말을 잘 못 한다. 아는 것이 없다. 강의를 못한
다. 전도를 못한다. 가난하다. 곤고하다. 사업이 안 된다. 주와 안 통한다.
영계에 못 들어간다.” 하면서 “외모가 문제다. 몸무게가 문제다. 키가
문제다. 나이 든 것이 문제다.” 하며, 마치 미친 사람이 중얼대듯 별의별
이유를 다 댑니다. 방법을 달리하여 주와 함께 하면 잘됩니다.
모두 오늘 말씀 잘 들어요. 수요일이라고 교회에 안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요말씀 속에 ‘안심 말씀’이 나옵니다.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방법’을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입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이제 거북바위, 공룡바위도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형상이 더 또렷하고
확실한 쪽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해태소나무, 정이품소나무도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사연에 따라서 그 모양과 특성이 또렷한 쪽으로 이름이 바
뀌었습니다.
성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누가 봐도 사연과 모양이 또렷한
쪽으로 이름을 다시 짓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시기를 “섭리
인들도 그리해야 된다.” 하셨습니다. <끝>
2012년이 지나고 2013년이 되면 모두 새로운 세계로 부활되니, 다
바꿔야 됩니다. 그래서 섭리인들의 이름도 그 특성과 사연에 따라서 이름
을 맞춰서 지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름만 좋게 짓는다고 합당한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사람들을
대할 때 자기 이름을 의식하면서 잘 대하고, 사명을 하고 일을 할 때도
자기 이름을 빛내야 됩니다. 음식점은 음식 맛으로 간판을 빛내듯이, 자기
생활과 삶으로 이름 간판을 빛내야 되겠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빛도 안 나는데 빛나라 하든지, 충성도 안 하
는데 충성이라 하든지, 지혜도 없는데 지혜라 하든지, 주의 것도 아닌데
이름에 ‘주’자를 붙이고 제 것처럼 쓰면 되겠느냐. 또 빛도 안 나고 별
처럼 살지도 못하는데 이름에 ‘빛’자와, ‘별’ 자를 붙이면 되겠느냐.
다 형식이지. 아브라함이 노아의 아들 함이 세우지 못한 믿음의 조건을
세워 믿음의 조상이 되어 이름값을 한 것같이 해야 된다. 참기름 집인데
참기름은 안 팔고 들기름이나 가짜 참기름만 팔면 되겠느냐. 사람도 그러
하다. 이름값을 해야 된다.” 하셨습니다.
선생은 주님께 묻기를 “이미 이름을 지어 줬는데 지금 못 하면 어떻
게 다시 이름을 뺏습니까?” 했습니다. 주님은 “방법을 달리해.” 하셨
습니다. 어떻게 방법을 달리하냐고 물으니, “이름 바꾼다고 이야기하면
시험 들어. 그러니 지혜롭게 해.” 하셨습니다.
섭리사에 와서 다시 이름 받은 사람들 손들어 봐요. 알았어요. 내려
요. 이름 받은 대로 이름값 하며 살아야 됩니다. 믿습니까?
(* 지금 밥도 안 먹고 말씀을 쓰고 있는데, 공동 실내 방송으로 노래
가 나오는 시간이 됐습니다. 노랫소리가 너무 크게 나와서 볼륨을 조금만
줄여 달라고 하니,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소리가
작다고 한다며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그냥 말씀을 쓰고 있는데,
갑자기 실내 방송으로 나오는 노랫소리가 전혀 안 들렸습니다. 이상하고
신비합니다. 성자 주님도, 그 분체도 방법을 달리했습니다. 실내 방송 소
리가 끊어져 버렸습니다. 육으로 못 하니 영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자의
영이 가서 방법을 달리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성자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영상6>
<성자의 말씀>
‘방법을 달리하라’ 함은 되는 방법이 있으니 방법을 달리하라는 말
이다. 내가 너희 선생에게 이 말을 한 깊은 뜻은 이것이다. ‘어떤 특별한
것 때문에 운명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 방법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 것이
다.’ 이것을 말해 주었다. 어떤 특별한 것 때문이 아니라 ‘방법’ 때문
에 그리 안 되고 그리 잘못됐으니, 이제 방법을 달리하라고 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7>
월명동의 큰 바위도 ‘방법’ 때문에 작게 보이게도 할 수 있고, 크게
보이게도 할 수 있다.
(두 손으로 ‘작게, 크게’ 표현)
돌은 크게 보이는 쪽이 있다. 그런데 어떤 바위는 보기 좋은 쪽으로
멋지게 놓으려다 작게 보이는 쪽으로 놓고, 어떤 바위는 형상석인데 이것
을 모르고 형상이 있는 쪽을 밑으로 하고 형상이 없는 쪽을 위로 해서 쌓
아서 ‘멋’은 있는데 ‘형상’이 없기도 하다. (밥상돌이 그렇다) <끝>
사람도 그러하다. 그쪽 한 가지만 보면 별로인데, 다른 쪽을 보면 빛
나고 다르다. 사람을 대할 때 제일 좋게 보이는 쪽을 보고 대하면 사랑도
가고 도움도 간다. 그러나 제일 나쁜 쪽만 보면 오히려 싫어하고 미워하
기까지 한다. 형상석같이 뱅뱅 돌면서 보고 대하면 “야! 신비해!” 한
다. 호감이 간다.
지도자들은 섭리인 모두를 여러 가지로 종합해서 봐야 서로 화목하고,
배울 것도 있고, 존경할 것도 있고, 빛이 난다.
(양손의 손가락을 다 펴서 ‘여러 가지’ 표현)
‘왜 저 사람은 잘되고, 나는 잘 안 됐나. 왜 나는 서운함 생기게 대
하지?’ 하며 선생이나 형제만 원망하지 말고, 잘 대함을 받는 자가 어떤
방법으로 했을까 연구하여라. 아마 그 비밀은 직접 말해 주지 않을 것이
다. 자기가 연구해야 된다. 혹은 자신이 잘했는데도 말을 안 하면 모르기
도 하니 말할 것은 말해야 된다.
모두 오늘 말씀을 듣고 <방법론>을 깨닫고 말의 방법, 행동의 방법,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달리하여라.
너희 선생은 자기 혼자 감람산을 지나 집터골까지 가서 나무를 하려니
심심하니까 개 한 마리를 데리고 갔다. 그런데 개가 같이 가다가 자꾸 중
간에 집에 가 버리니까 방법을 달리했다. 그러니 선생이 나무를 다 하고
집에 올 때까지 개가 졸졸 따라다녔다. 때린다고 그러했겠느냐. 아니다.
고구마를 자기도 안 먹으면서, 개에게 조금씩 쪼개서 순간순간 준 것이다.
방법론이다.
방법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에 좋은 방법으로 해야 된다. ‘바
위’도 방법을 잘못 달리하면 자갈이 된다. ‘인생’도 방법을 잘못 달리
하면 거목 인생이 땔감 인생이 되고, 바위 인생이 자갈 인생이 된다. 자기
인생을 사는 방법을 잘 써야 된다. 타인은 자기 방법으로 하여 거목이 될
인생을 땔감 인생이 되게 하니, 자기 인생의 방법을 나 성자에게 맡겨라!
내 분체에게도 맡겨라!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방법에 따라 사탄도, 행악자들도, 사기꾼들도 다 이기고 물리친다. 방
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끝>
말씀을 듣고, 만물도 인생도 방법에 따라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을 깨
달았으니, 너희는 항상 나의 말을 지켜 기도하고, 나 성자와 분체와 의논
하면서 행하고, 자기 자신을 360도 다 둘러보면서 다른 방법으로 행하며
살기 바란다.
마지막 한마디를 듣자. 너희 선생이 기도하며 내게 묻기를, 왜 어떤
사람들은 잘되고 어떤 사람들은 못되는 것이며, 왜 어떤 사람은 멋있게
태어나고 어떤 사람들은 멋없게 태어났냐고 했다. 이때 내가 해 준 한마
디는 “방법이다.” 했다. 이 한마디를 외우고, 방법의 구상을 잘해야 된
다. 구상은 삼위일체가 아니냐. 방법을 달리하여 네 마음도, 혼도, 영도
변화시켜 네 육과 영을 휴거시키자!
나의 분체를 증거할 때도 방법을 달리하여 증거하여라. 합판을 세로로
메고 가면 바람을 안 타듯이, 방법을 달리해서 증거하면 환난의 바람을
안 탄다. 온 인류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의 분
신이다. 그중에서 네 선생은 첫 번째 분신이다. 내가 택한 이 시대에 한
명뿐인 귀한 분신이다. 나의 분신에게 붙는 자가 이 시대 구원을 이루고
나 성자의 신부로서 나의 분신이 된다.
(오른손이 ‘분신’, 왼손이 ‘붙는 자’ :
왼손이 오른손에게 가서 붙는 모습 표현)
방법에 따라 운명이 좌우된다. 방법에 따라 귀하게 되기도 하고 천하
게 되기도 한다. 말씀도 전하는 방법에 따라 좌우된다. 방법론이다. 말하
는 방법에 따라 승리가 좌우된다.
(* 마지막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9>
‘나는 못생겼다. 못 배웠다. 키가 작다. 키가 너무 크니 그만 크게
해 달라.’ 하며 선생에게 편지하지 말고, 생각의 방법을 달리하여라. 너
희 선생은 어렸을 때 거울을 보면서 자기 얼굴이 못생겼다며 거울을 깨
고, 키가 작다고 욕을 하며 신발 굽을 높이고 살았다. 또 가난하다고 하며
늘 무엇을 먹고 사느냐고 했다. 그러나 그것과 상관없이 방법을 달리하여
나 성자의 뜻대로 사니 문제들이 다 해결되고 지구 세상에서 삼위일체가
최고로 보는 가장 큰 자가 되지 않았느냐. 너희도 그를 따라 행하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다. <끝>
지구 세상과 영의 세상의 사랑과 구원의 성자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