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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 말씀2012.12.15 (토)

홍별 서울주님의교회

선포일
2012.12.15 (토)
성경 본문
잠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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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눈을 떠라 작성일 : 2012. 12. 13.(목) - 12. 15.(금) 작성자 : 홍별(서울 주님의 교회, 대학부 간사) (여호와께 영의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영의 눈 을 뜨는 것이 무엇일까 계속 생각했고, 하나님과 주님께서 한 마디 감동을 주시면 그것으로 다시 실천하며 생각했습니 다. 영의 눈을 뜨는 것에 대해 며칠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을 정리한 것입니다.) * 하나님 말씀 * 보낸 자에 눈을 떠야 역사를 볼 수 있다. 마음의 눈을 뜨고 영의 눈을 떠야 이 모든 신의 세계를 알 수 있다.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 무엇이고 영의 눈을 뜨는 것이 무엇이냐. 육적 차원에서 이치의 눈을 뜨는 것은 1단계, 1차원이요, 혼적 차원에서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은 2단계, 2차원이요, 영적 차원에서 영의 눈을 뜨는 것은 3단계, 3차원이다. 육의 눈을 떴다는 것은 이치의 눈을 떴다는 것이고 그 이치가 세상이면 세상 이치에 눈 뜬 것이고 그 이치가 섭리라면 섭리의 이치, 성약 교리에 눈을 뜬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경험과 노하우로 보통 세상의 이치에 눈을 뜨고 산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자들도 태반이다. 혼적 단계에서 마음의 눈을 떠야 지혜롭게 살 수 있다.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은 이전의 것을 새롭게 보는 것이며 그것의 근본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은 혼체가 마음으로 역사하여 보는 것이다. 어떠한 사물을 볼 때에도 그러하고 어떤 현상을 볼 때에도, 사람을 볼 때에도 그러하다. [잠 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 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영적 단계에서 영의 눈을 뜨는 것은 나 여호와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며 나 여호와의 뇌 파장을 바로 받아 영적인 파장으로 깨닫고 알게 되는 것이다. 너의 영체가 생각으로 마음으로 역사하여 보는 것이다. 그러니 깊이 있는 근본을 보게 됨은 당연하고 선생처럼 잠언 하나에 수백 가지 깨달음을 얻으며 그와 같이 영적인 것들을 얻으며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네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설명해 줄게. 모두들 섭리역사 올 때에 어떠했냐. 역사를 완전히 깨닫고 온 자들도 있고 선생을 보고 깨닫고 뒤집어져 온 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영의 눈을 뜨고 깨달아 나 여호와의 지식으로 알게 된 것이다. 실상 나 여호와가 그자에게 마음의 눈을 뜰 수 있도록 성령을 부어 주고 영의 눈을 뜰 수 있도록 뇌의 영적 파장을 열어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선생을 볼 때에 선생, 그의 육만 보는 자는 육의 눈을 뜬 자요, 선생 뒤에 역사하는 성자를 보는 자는 마음의 눈을 뜬 자요, 선생을 대신하여 말씀을 외치는 두 증인을 보고 그 속의 선생을 보고, 나 여호와를 보며 만물을 보고 선생과 여호와를 만나는 자는 영의 눈을 뜬 자다. 이 역사를 아는 자는 육의 눈을 뜬 자요, 느끼며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자는 마음의 눈을 뜬 자요, 역사를 이뤄 가며 창대한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시인하고 영으로 깨달아 아는 자가 영의 눈을 뜬 자이다. (하나님, 그러면 섭리인 대부분이 영의 눈을 뜬 것이 아닙니 까?) 맞다. 영의 눈을 뜬 자들 많다. 그러나 지속적이지 않고 차원이 낮은 자들이 많구나. 순간 영의 눈을 떴어도 그것을 지속하여야 한다. 혼적 단계에 갔다고 해서 그것을 지속하여 그렇게 사는 삶은 아니듯이 영적 눈을 뜨는 것도 그러하다. 또한 자기 차원대로 영의 눈을 떠서 보니 자기 차원이 높은 만큼 더 온전하고 깊게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이다. 영의 눈을 뜬 것은 동일하나 차원이 다르면 동일하게 영의 눈을 떴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보다 깊고 높은 차원이 있다. 높은 차원에서 그것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의 눈을 뜨는 것이 영안이 열려 천사와 사탄을 보며 나 여호와를 보며 직접 마주하여 대화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영으로 충격적으로 깨닫고 아는 것이 영의 눈을 뜬 것이다. 나를 보면 무엇 할 것이냐. 깨닫고 아는 것이 수십 만 배 큰 것이다. 영의 눈을 뜬 자이다. 나와 대화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영으로 대화하는 것이다.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하고 영의 눈을 뜨지 못한 자는 나 여호와와 성자와 대화하지 못한다.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눈을 뜬 자는 못 참는다. 선생이 그랬듯이, 마음의 눈을 뜬 자, 영의 눈을 뜬 자는 자신의 그 차원에서 참을 수 없어 행하게 된다. 참을 수 없어 행하는 것이란 이 역사를 이루는 것이며 선생과 함께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선생의 육이 되는 것이다. 항상 중심을 중심하여서 하는 것이다. 못 참는 것은 영의 눈을 뜨고 본 것을 자기의 소유로 삼기 위해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것을 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네가 네 소유를 다 팔아서 살 것이 무엇이냐. 이 성약역사이며 성자며 시대 사명자, 그리고 휴거의 소망이다. 영의 눈을 떠야 진정한 신앙을 하게 된다. 휴거의 역사를 이룬다. 선과 악을 쪼개서 보는 지혜를 얻게 된다. 영적 휴거와 육적 휴거를 쪼개서 보는 자는 마음의 눈을 뜬 자요, 육적 휴거와 영적 휴거의 단계를 알고 휴거되는 방법을 알고 그것을 간절히 사모하여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영 휴거를 이루고 있는 자는 영의 눈을 뜬 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으나 영적으로 보기에는 하늘과 땅같이 차이가 있구나. 지혜로운 자는 영의 눈을 뜬 자다. 시대 사명자 선생을 100% 아는 자가 영의 눈을 뜬 자이다. 보낸 자를 통해 성자를 보고 여호와를 보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의 영적 눈을 뜨는 것이다. 실체다. 관념적으로 생각하지 말아라. 선생을 어떻게 깨닫느냐. 마음의 눈을 뜬 자는 직관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영의 눈을 뜬 자는 육으로, 직관적으로 판단하지 않으며 양심으로 영적인 마음으로 영의 지혜로 판단한다. 섭리에 있는 모든 자들이 이렇게 하여 영적인 눈을 뜬 자는 선생을 깨닫고 뒤집어져 전도되었고, 눈을 뜨지 못한 자는 자기 차원에서 그대로 무로 없어지고 만 것이다. 영의 눈을 떠야 역사를 제대로 보고 선생을 제대로 본다. 영적으로 판단하여 알게 되는 것이다. 재림과 휴거도 마찬가지이다. 육으로 이해하지 말아라. 뇌를 나 여호와에게 맡겨 버리는 것이 영의 눈을 뜨는 가장 빠른 방법이니라. 영의 파장은 뇌를 통해서 간다. 네 뇌, 곧 마음과 정신과 생각이 얼마나 나 여호와의 영파를 받을 수 있게 열려 있고 본인이 얼마나 마음의 눈, 영의 눈을 떴느냐에 따라 나 여호와의 생각이 네 뇌에 선연히 들리기 시작한다. 혼적 차원에 있어야 내 말이 들린다. 그래야 마음의 눈이 떠진다. 영적 차원에 있으면 영적 눈을 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나 여호와를 느끼고 깨닫기 때문이다. 계시자들은 마음의 눈과 영의 눈을 떠서 더 확실하게 나 여호와를 만나 나의 말을 듣는 것이다. 정신으로 나 여호와를 받아야 된다. 영의 눈을 뜨는 것을 한 가지로만 생각하지 말아라. 뇌로 나 여호와의 생각을 받는 것도 영의 눈을 뜬 것이다. 나 여호와는 전능한 신이기에 내 생각을 네 생각에 보낸다. 그러니 어디에서나 영의 눈을 뜨고 신과 교통하는 삶을 살면 영계가 보인다. 영계를 보는 것이 무엇이냐. 천국을 육으로 보는 것이 영계를 보는 것이 아니다. [사 44: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들의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며 그들의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니라] [갈 4: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신약 때 유대인들은 천국을 육으로 보기를 희망했다. 나 여호와를 육으로 직접 보기를 희망했노라. 그들은 마음의 눈, 영의 눈을 뜨지 못한 자들이었다. 역사의 때에 영의 눈을 뜨지 못한 자들로 인해 구약에 이어 나 여호와는 또 희생했다. 성자를 희생했으며 택한 자 나사렛 예수를 희생했으며 2000년을 희생했다. 나 여호와는 성자의 영, ‘마음’을 그들 가운데 임하게 했노라. 나 여호와를 직접 볼 수 없기에 대신하여 나사렛 예수를 통해 아들인 성자를 보내어 역사한 것이다. 이것이 나 여호와의 ‘마음’을 보낸 것이다. 이 마음을 마음으로 보았어야 했다. 영의 눈을 뜨고 보았어야 했다. 마음으로 천국을 보는 것이다. 마음으로 나 여호와를 보는 것이다. 만물을 통해서, 삶을 통해서 영계를 보는 것이 차원 높은 영계를 보는 것이다. 네 삶을 통해 영계의 이치를 깨닫고 보는 것이 영의 눈으로 영계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선생도 이렇게 한다. 환상을 보는 것보다 영의 눈을 떠서 마음으로 확실하게 깨닫고 느끼는 것이 3만 배는 더 유익이지 않느냐. [엡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너희는 영의 눈을 떠서 재림과 휴거를 맞아라. 선생을 맞아라. 선생을 깨달아라. 선생을 육적으로 알고 스스로 자신의 단계와 차원에서 깨닫는 자들 많다. 그러나 영의 눈을 떠서 영적으로 한 차원 높여 깨달으면 선생이 잠언을 깨닫듯이 한 가지 사실로 인하여 300가지는 깨닫게 될 것이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 확실하게 알고 선생의 사명도 알고 나 여호와가, 성자가 선생을 어떻게 쓰는지도 보아야 한다. 나 여호와가 계시하여 선생 증거 많이 하지만 실상 그만큼 깨닫고 오는 자들 많지 않다. 마음의 눈을 닫고 영의 눈을 닫고 자신의 수준과 차원에서 깨닫기에 그러하다. 지금 이 순간 영의 눈을 뜨고 선생을 다시 보아라. 어떤 자이냐. 나 여호와가 인생 중에 최초로 택한 자, 성약의 첫 열매이며 구원의 시작이다. 또한 성자가 재림할 때에 그를 통해 함으로 구원자의 사명을 시대로부터 넘겨받은 자이며 새벽별이 된 자이다. 너희 모든 인생의 구원의 문이며 육적, 혼적, 영적인 구원자다. 알겠느냐. 또한 그가 보낸 사명자를 영적인 눈으로 다시 보아라. 이제 두 증인을 여실히 드러내리니 그가 곧 선생이 됨을 알게 될 것이다. 모르는 자는 손해요, 못 보는 자는 손해다. 두 증인은 영적으로 이미 나 여호와와 성자와 호흡하며 선생의 호흡 줄이 되어 사는 단계에 있다. 영적인 눈을 최대치로 뜬 자들이다. 두 증인을 통해 선생을 보는 자는 영의 눈을 뜬 자요, 복이 있는 자로다. 두 증인을 통해 선생을 느끼고 선생을 보고 역사하는 성자를 느끼고 모든 만물과 역사를 통치하는 나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하여라. 진리의 눈을 떠라. 나 여호와는 진리의 말씀 그 자체이니 말씀에 눈을 뜬 자가 선생과 같이 최고로 높은 차원의 단계에 있는 자이며 진정으로 시대를 맞은 자이다. 영적 눈을 뜬 자이다. 각자 차원을 높여 보낸 자와 같이 진리의 눈을 떠라. 나 여호와가 영의 눈을 뜬 자에게 영적 파장으로 알고 깨달아 보는 축복을 더할 것이다. 이런 자들이 재림과 휴거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휴거의 역사는 깨달음으로 시작이요, 마음의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이요, 영의 눈을 뜨는 것으로 시작이다. 인생 최대의 소망, 휴거를 자신의 소유를 모두 다 팔아 영적 소망으로 만들고 살아라. 휴거가 최고의 축복이요 최고의 소망이다. 영의 눈을 뜬 자는 휴거를 이룬다! 지금 이 순간 영의 눈을 뜨기를 바란다. 가장 영적인 세계는 마음과 느낌의 세계다. 여호와 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