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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2.12.18 (화)

계시말씀

선포일
2012.12.18 (화)
성경 본문
새벽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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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담는 그릇 작성일 : 2012. 10. 7.(일) 새벽 2:50 작성자 : 장정임 (선생님께서 설교 중에 사용할 제스처에 대한 코치를 해 주신 이후로부터 말씀을 전하는 자들의 음색과 말투, 몸짓 등을 유심히 살피게 되었고 이에 관한 주 님과 선생님의 뜻과 심정은 어떠하실까 묵상하던 중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뜨거운 사막을 건너는 나그네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다. 목적은 물이요, 그 물을 마셔 갈증을 해소하는 것이다. 타는 갈증으로 쓰러지기 직전에 있는 자가 물이 담긴 물통의 모양을 보고 타박을 하거나 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할 수 있겠느냐. 배부른 소리이지. 말씀도 동일하다. 사람의 음성을 통해 전달하지만 핵심은 그 내용이 신의 말이라는 것이다. 음성, 음색, 전하는 자의 외양이 핵심이 아니다. 이는 물을 담는 물병과 같이 말의 내용을 전달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핵심은 말의 내용이지. 설사 너희 귀에 아무리 거룩하게 들려도 그 말의 내용이 구원과 상관없는 내용이라면 나의 말이 아닌 것이며 아무리 가늘고 연약한 음색이라 할지라도 그 말의 내용이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면 나의 말인 것이다. 아무리 나의 목소리와 외모를 흉내 낸다 하여도 그것으로 그 사람이 나를 온전히 대변하는 자라 말할 수 없지 않느냐. 목소리가 닮아서 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신과 사상이 일체 되어 나의 말을 전하는 자가 곧 나를 대변하는 나의 육신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닷물도 대양이라는 그릇에 담겨 존재하고, 산꼭대기에서부터 흐르는 물도 계곡이나 굽이도는 강줄기에 담겨 흘러가듯 삼위의 신도 지상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신이 담겨질 그릇이 필요하다. 성약 신부역사에서 신랑으로 너희를 만나기 위해 나는 한 인생이라는 그릇을 태초부터 준비하고 택하여 만들어 왔으며 때가 되어 그 만들어진 그릇에 나를 담아 너희 앞에 나타났다. 너희 눈엔 내가 담긴 선생이란 그릇이 한낱 세상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보잘 것 없는 그릇으로 보여도 그는 내가 직접 지구상에서 나를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릇으로 만든 자이다. 그러나 세상은 마치 그릇에 담긴 물 자체는 귀히 보지 못하고 그릇의 모양만으로 담긴 물까지 판단하듯 선생이란 그릇에 담긴 나는 못보고 선생의 껍질만 보면서 그가 어찌 신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느냐며 힐문한 다. 마치 2000년 전 유대인들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느냐며 조롱하였던 것과 마찬가지이지. 사람을 보고 따르지 말고 사명을 보고 따르라 말하였다. 인간은 겉을 보고 판단하지만 나는 중심을 보고 판단하여 나를 담을 만한 그릇이 되는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고로 인간의 판별 기준에서 보면 결코 나의 역사, 뜻, 내가 보낸 자를 분별할 수 없음이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지 그릇을 마시겠느냐. 그러나 인간은 그릇으로 갈증을 풀려 하는 격이니라. 이처럼 너희가 단상 말씀 들을 때에도 전하는 자의 음색, 말투, 외모로 내 말을 판단하려 하지 말고 오직 전하는 자라는 그릇 속에 담겨진 나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이 말씀 전하는 자를 끝없이 교육하는 이유는 말씀을 듣는 너희가 아직도 육적이고 어려서 너희를 조금이라도 더 깨닫게 해 주려는 의도이기도 하며, 또한 1차적으로 세운 자의 입을 통해 내 말이 전달되고 듣는 자의 눈과 귀를 통해 내 말이 들리기에 그 그릇의 모양이 최대한 나를 나타내 보이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게 하기 위함이다. 혹여 그릇의 모양이 너무 유별나서 그로 인해 나의 말이 가려질까 염려함이니라. 그러니 전하는 자도 나를 온전히 나타내 보이는 깨끗하고 투명한 그릇이 되어야 할 것이며 듣는 자 역시 그릇의 모양에 치우쳐 판단치 말고 그릇에 담긴, 그릇을 통해 취해야만 하는 나의 말씀을 먹고 마시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선생은 나를 가장 완벽히 드러내는 진정 투명하고도 깨끗한 불순물이 하나 섞이지 않은 그릇이다. 고로 나는 그를 통해 마음껏 너희 앞에 나타난다. 세상이 육으로 보고 판단하여서 신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하여도 그는 지구촌에서 나의 신을 담을 만한 최고 합당한 그릇이다. 왜? 내가 그리 만들었기 때문이지. 그러니 그를 두고 왈가왈부한다면 그것은 곧 내가 만든 나의 작품을 두고 여기저기를 지적하는 것과 같음이라. 무지로 신의 마음을 거스르지 말아라. 또한 그와 같이 두 감람나무로 세운 두 증인 역시 나의 분체를 가장 잘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최고 합당한 자들임을 명심하라. 왜? 그들 역시 나의 분체가 나와 함께 분체를 담을 만한 그릇으로 합당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니라. 너는 진정 신이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겨 나타남과 그 그릇은 신이 쓰기에 합당하도록 만든 그릇임을 정확히 알고 절대 신의 행하심을 무지로 거슬러 죄짓는 인생이 되지 말아라. 무지가 교만을 낳아 신의 뜻을 대적함을 명심하고 오직 뜻을 살펴 순종하는 지혜자가 되고 어여쁜 나의 신부가 되길 원하노라. 말씀을 들을 때에 육적 인식관과 판단의 잣대를 모두 버리라고 말한 성자 주니라. (사랑하는 주님, 무지한 저를 호통치지 않으시고 부 드러운 음성으로 잔잔히 교육시켜 주셔서 감사드립 니다.) 섭리사에 너와 같은 자 많아 널 통해 가르쳐 보다 근본을 보는 눈을 뜨게 함으로 완전함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나 성자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자는 무색무취 무향한 자이다. 그러니 나의 말을 전하는 자는 오직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하되 나의 심정과 뜻을 온전하고도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발판이 되도록 이지가지를 갖추면서 힘써 노력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를 개성대로 쓰신다 하셨는데 개성은 무 색무취 무향 할 수 없지 않나요?) 맞다. 이는 한 사람이 나를 모두 다 표현할 수 없으니 개성대로 나를 표현하고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계획 이지. 다만 그 개성을 가지고 나를 여과 없이 투과하라는 말이니라. 두 감람나무로 세우는 것도 1명이 하던 일을 각 센터별로 2명이 나누어서 보다 온전하게 하도록 하는 것 아니겠느냐. 섭리사 두 증인이 하나는 영적 센터를 책임지고 또 하나는 육적 센터를 책임져 일해 나가는 것과 같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야 하며, 물을 담은 그릇 모양을 두고 왈가왈부 말고 담겨진 물로 갈증을 해소하는 데에 목적을 두듯이, 너희는 나의 말을 대변하는 자의 외양으로 나의 말을 판단치 말고 내 말의 깊은 뜻을 깨닫는 데에 중심을 두는 자가 되어라. (이 후 며칠 전 꾼 꿈이 생각났습니다. 선생님께서 운동장에서 골프를 치고 계셨는데 운동장에 자갈들 이 군데군데 놓여 있어서 공이 굴러가다가 돌에 부 딪혀 방향이 틀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방 향이 틀어질 때마다 오셔서 돌을 주어 다시 자리를 잡아 둔 후 새롭게 돌을 향해 공을 쳤습니다. 자꾸 공의 방향이 돌로 인해 바뀌어도 돌을 주어 버리지 않으시고 돌의 위치를 교정해 주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담는 그릇이 있어야 나타날 수 있었듯 선생 역시 선생을 담는 그릇이 있어야 나타날 수 있다. 그 그릇은 바로 너희들이니 너희가 아니고서는 선생이 뜻을 펼 수가 없는 것이다. 비록 너희가 선생이 뜻하는 방향에서 빗나간다 하여도 선생은 너희를 들어 쓸 수밖에 없음으로 끊임없이 코치하며 이끄는 것이니라. 그러니 너희 역시 선생과 함께 나의 영원한 역사에서 멋진 주인공이 되고자 한다면 코치 받은 대로 지속적으로 교정해 나가며 나와 선생의 뜻에 일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