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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말씀2013.01.09 (수)

수요 계시말씀

선포일
2013.01.09 (수)
성경 본문
오전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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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소통의 책임분담으로 선생의 하늘 시간을 지켜라 작성일 : 2012. 10. 31.(수) 오전 9:20 작성자 : 장정임 (선생님과 소통이 되지 않아 답답해하는 자를 보았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할 때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영적 소통이 있어야 육적 소통이 더욱 완전해진다. 육적 소통은 확인하는 단계이며, 확인이 끝나면 다음은 실천이다. 하늘은 구상이며 땅은 실천이다. 삼위의 구상과 너희의 실천이다. 생각으로 100층 건물을 짓는다 하여도 실제 행하지 않으면 무(無)다. 하늘의 구상을 받아 땅에서 행함으로 영계와 육계 모두에서 유(有)의 역사를 남기는 것이다. 과거 선생과 육으로 소통하는 자들 많았다. 육으로 언제든 소통할 수 있으니 아쉬움이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로봇 같은 인생이지 않겠느냐. 삼위는 너희를 그리 창조하지 않았다. 삼위의 말씀이 너희에게 임하면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니, 재창조 속에는 너희의 자유의지가 포함되어 있기에 받은 말씀의 결실을 각자의 차원대로 천차만별 맺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너희가 지극히 어렸었기로 선생이 너희를 아이 다루듯 대했다. 아이를 어찌 다루느냐. “이것 하면 안 돼. 저것 해야 해.” 아이가 단순하니 그에 맞게 단순히 가르치지 않느냐. 이유를 설명해 준다 하여도 아이 수준에 맞게 단순하게 설명한다. 그러나 성장하면 왜 그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스스로 터득하기도 하니 그 때부터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의에 의해 옳고 그름을 선택하여 행하게 되지 않느냐. 이와 같이 지난날 너희는 선생이 시키는 대로 무조건 움직였지만, 이제는 장성하였으니 선생이 왜 그것을 시키는지에 대해 알고 행하는 차원에 이르러야 하지 않겠느냐. 실전을 통해 배우고 터득하기도 하지만 깊은 기도로 나와 영적 소통을 해야만 보다 실속 있게 배우고 제대로 깨달아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불이 뜨거운 것을 직접 데여 보고 아는 미련한 자가 되어선 안 되지 않느냐. 선생이 너희 곁에 언제까지 있어 줄 줄 알았지?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달려와 직접 해결해 줄 줄 알았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어찌할지를 물어 보면 언제든 답해 줄 수 있을 줄 알았지? 그렇게 육적 소통으로 만사가 해결되는 때는 지났다. 그 땐 몰랐으니 너무 안일했던 거지. 육적 소통이 원활했던 그 때 너희는 이미 영적 소통의 능력을 키워 놓았어야 했으며 그 영적 소통의 확인 단계로 선생을 만나 답을 확인받는 삶을 살았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다. 그저 선생이 눈앞에 보이니 쉽게 답을 얻고 거기에 만족하며 쉽게, 쉽게 문제를 해결하며 왔던 것이다. 일단 쉬우니,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으니 보다 차원 높은 소통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이다. 결국 육적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이때가 닥치니 영적 소통의 능력과 체질을 갖추지 못한 자들은 그만큼 힘들고 어렵고 지치게 되는 것이다. 계속 육적 소통에만 매달리고 있다가 이도 저도 못해 다 놓쳐 버리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영적 소통의 길을 터라. 선생이 언제까지 너희 곁에 육으로 함께 머물 수는 없지 않느냐. 또한 이를 갖추는 데 있어서 지금이 너무나도 황금기임을 알아야 한다. 선생의 육이 살아 있으니 직접 확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체질을 만들고 능력을 길러야 한다. 어떤 것이 맞고 어떤 것이 틀렸는지 선생이 다 확인하며 코치해 주지 않느냐. 지금 그런 능력을 갖추어야 너희 생이 다할 때까지 제대로 자신 있게 섭리를 뛸 수 있다. 영적 소통의 능력을 어떻게 갖추겠느냐? 기도다. 기도로 감동받으면 선생에게 확인받고 실전에서 행하여 결과물을 얻는 것이다. 기도 없이, 즉 영적 소통으로 얻은 결과물 없이 닥치는 대로 선생에게만 사안을 들이대면 모든 삶을 하늘의 시간으로 보내는 선생의 시간을 빼앗고 허비하게 하는 격이 된다. 바로 사탄이 영적 소통을 소홀히 여기는 자들을 통해 선생의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 훈련이다. 반복이다. 시간이 흘러 선생과 더 이상 육적 소통을 할 수 없는 날이 오면 그때까지 배우고 터득한 것을 가지고 뛰고 달리는 것이다. 신약의 사도들이 그리 뛰었다. 나사렛 예수를 통해 나와 육으로 소통함으로 감각을 익혔던 자들이다. 또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더욱 확실한 영적 소통을 이루었던 자들이다. 이제 단순히 육적으로 선생과 소통하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영적 소통의 단계를 거쳐 선생과 소통하라. 그래야 선생이 단 한마디의 말을 해도 그 말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행할 수 있다. 육만 소통하는 자는 선생의 말귀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으니 시키는 대로 했어도 형통하지 못하는 결과를 얻고서 안 됐다고 하소연하는 것이다. 심정에 어긋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영육이 모두 소통되어야 하되 영적 소통으로 준비된 마음 밭에 육적 소통의 답을 받아 가져야 수십 수백 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영적 소통의 바탕 위에서 선생과 육적으로도 소통하는 자들이 되길 바라노라. 그래야 선생의 짐이 줄어든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더욱 알차게 아껴 쓸 수 있다. 선생의 시간은 하늘의 시간이다. 너희가 각자 영적 소통의 책임분담을 다하여 선생이 쓰는 하늘 시간을 소중히 지켜 주는 자들이 되길 바라노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