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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집회 말씀2013.01.25 (금)

계시말씀

선포일
2013.01.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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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과, 선생의 분체가 나와 이룬 개통의 역사 작성일 : 2012. 12. 15.(토) 작성자 : 이선진 (선생님을 위해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선생님과 선생님의 분체가 이룬 개통의 역사’에 대해 알 려 주신다 하여 받아 적게 되었습니다.) *성자 주님의 말씀* 사랑아, 선생의 인생은 신과의 개통의 역사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 나 성자를 빼놓는 법이 없었으며 아무리 쉽고 단순한 일이어도 꼭 나와 개통된 상태에서 하였다. ‘개통’이란 신과의 의사소통이며 상호작용이다. 마치 체내의 혈관 속에서 이리저리 피가 공급되고 유입되듯 선생과 나와의 개통은 혈관 속 활발하고 왕성한 혈액의 순환과 같았다. 선생은 나에게 사랑을 주었고 나는 그에게 말씀을 주었다. 선생은 나에게 충성을 주었고 나는 그에게 섭리역사를 주었다. 선생은 나에게 순종을 주었고 나는 그에게 섭리인들을 주었다. 선생은 나에게 실천을 주었고 나는 그에게 월명동을 주었다. 이와 같이 한없이 나에게 주려고만 하는 사랑에 나는 더 큰 사랑의 보화들로 응답해 준 것이다. 사랑아, ‘개통’이란 하늘과 인간과의 최고급 사랑이며 창조 목적이다. 신과 인간과의 개통 자체가 곧 사랑이며 육적 연인들이 서로 연애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랑아, 이제부터 더 깊은 개통에 대해 깨우쳐 줄 터이니 잘 깨달아라. 개통에는 3단계의 개통이 있다. 첫째, 나 성자의 말을 듣고도 자기 주관, 육성의 틀에 걸러내어 듣고자 하는 것만 듣고 실천하고자 하는 것만 실천하는 단계이다. 이를 육적 단계의 개통이라 하겠다. 둘째, 나 성자의 말을 들으면 그대로 실천하고자 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가 섭리인들 중 많은 자들의 단계이며 자기 주관적으로 행하다가도 나 성자의 말이 있으면 금세 자신의 뜻을 돌려 나의 뜻대로 하고자 하는 단계이다. 셋째, 선생과 그의 분체의 단계이다. 이 단계는 나의 말 너머에 있는 깊고 깊은 속 심정까지 헤아려 행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 올라선 자는 더 이상 말로만 통하지 않으며 보다 심정으로, 느껴오는 파장으로 통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는 ‘말보다 심정’의 단계이며 마치 천인들이 서로 말이 아닌 생각, 심정으로 통하듯 영적 개통의 단계이다. 이들은 내가 ‘이렇게 하여라.’했다고 해서 그냥 그대로만 행하지 않고 ‘주님께서 왜 이렇게 하라고 하셨을까.’ 그 이유를 깨달아 본 의도를 찾아서 행한다. 이는 불순종이 아닌 깊은 사랑이다. 깊은 통함의 단계에 있는 자들만이 가능한 사랑이다. 바로 신랑신부 급 동등급 사랑과 개통이다. (주님, 이번에 부흥강사님 통해 개통의 지혜를 깨닫게 되었어요. 서울 천성운 주제를 한 번의 집회용으로 간구 했을 때는 받지 못하였으나 2013년 한 해 동안 서울의 주제로 삼아 밀어붙이는 데에 쓰겠다 간구드리니 받을 수 있었다 했습니다. 이 같은 개통의 지혜를 받고 싶습니다.) 사랑아,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고 아무리 똑같은 의도여도 어떠한 말로 간구하느냐에 따라 하늘 문이 열리고 닫힌다. 아무리 좋은 의도여도 말 한 번 잘못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고 아무리 사망 영계에 처한 자라도 말 한 마디 잘해서 그 목숨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이도 있는 것이다. 개통도 다 똑같은 개통이 아니니 개통의 지혜를 정말 차고 넘칠 정도로 간구하여 받아야만 해. 물론 그 간구하는 말 안에는 절대적 진실성과 사랑이 담겨야 하겠지. 부흥강사는 선생과의 소통에 있어 귀재이다. 아무리 선생이 ‘이건 아니다.’하여도 정말 아니어서 아니라 한 건지, 맞는데 받는 자의 수준이 낮아 아니라고 한 것인지, 맞지만 과연 속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가를 보기 위해 아니라 한 것인지를 정확히 읽는다. 그러한 점이 선생과 심정 일체 되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사랑아, 선생과 부흥강사처럼 개통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그 지혜를 받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첫째, 가치성이다. 얼마나 하늘과의 통함을 귀히 여기느냐, 얼마나 그 통함의 매개라 할 수 있는 ‘말씀’과 ‘기도’를 귀히 여기며 대하느냐에 따라 그 개통의 수준이 좌우되며 지혜도 받는다. 지혜는 하늘에서 온다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늘은 제일 먼저 인간이 얼마나 가치성을 깨달았는지, 얼마나 하고자 하는지를 본다. 둘째, 믿음이다. ‘믿음’을 비유하자면 터널을 뚫는 데에 있어 다이너마이트와 같고 드릴과 같다. 믿음이 약한 자는 아무리 개통하고자 해도 개통하지 못한다. 반드시 성삼위께 기도하고 간구 드리면 온전한 영감과 감동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간구하는 자와 ‘정말 개통될 수 있을까, 역사해 주실까.’하는 반신반의의 마음 위에서 간구하는 자의 개통의 수준은 신약과 성약의 수준 차이와 같다. 나는 선생 통해 분명 절대 끝까지 믿고 간구하는 자는 반드시 삼위께서 인도해 주신다 무수히 말하였기에 이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곧 선생 통한 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이기에 선생의 조건 위 나와의 개통도 맛보지 못한다. 사랑아, 사랑은 굳건한 믿음과 신념 위에서만 쌓일 수 있지. 믿음 없는 순간적 사랑은 ‘텅 빈 깡통’과도 같아 이리 굴러가고 저리 굴러만 간다. 고로 믿음이다. 셋째, 오직 나와의 사랑만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이다. 개통의 궁극적 목적이 무엇이냐. 결국 창조 목적의 사랑을 이루고자 함이 아니냐. 내가 왜 음성으로 모든 걸 다 얘기해 주지 않고 마치 점쟁이에게 점 보듯 모든 정답을 다 얘기해 주지 않는 줄 아느냐. 이는 나와의 개통을 육이 잘 되고 성공하는 데에, 돈 버는 데에 써먹으려 변질시키기 때문이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는 나와 통하는 자에게 무수한 축복과 영광과 물질을 주었다. 그러나 나와의 개통을 점점 자기 식으로, 돈 버는 데에 써먹는 자들이 있어 이제 그 개통의 방식을 달리했다. 선생으로부터 시작된 섭리역사 속에서는 그러한 개통이 없이 오로지 나 성자와의 사랑을 이루는 도구로서만 개통이 있게 했다. 그러니 처음엔 첫 사랑으로 나와 잘 통하던 자도 그 목적을 달리하니 금세 안 통하기도 못 통하기도 한 것이다. 사랑아, 오직 선생과 그의 분체와 같이 나와의 사랑, 나의 상대가 되어 주는 것만을 순수 100% 개통의 목적으로 삼는 자가 나와 끝까지 통하며 그 차원도 수준도 높다. 그런 자에게는 내가 선생과 그 분체에게 해 준 것 같이 여러 가지 축복, 선물, 물질도 주지 않겠느냐. 이 깊은 말을 깨달아라. 오늘은 사랑하는 나의 신부들에게 선생과, 선생의 분체가 나와 이룬 개통에 대해 말하였고 어떻게 하면 온전한 개통을 이루는지를 말하였다. 사랑의 성자 주니라.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