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3.01.27 (일)
계시말씀 005016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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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것, 하늘 쾌락이 최고다
작성일 : 2012. 9. 29.(토)
작성자 : 이선진
(성자 주님, 오늘에야 저의 큰 모순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어릴 적 세상 것으로 강렬, 짜릿한 쾌락들을 누리다
보니 그것으로 너무 강하게 길이 들여져 있어 하늘과 누리는 웬만한 낙으로는 만족이 안 되고 더 큰 쾌락과
희열을 자꾸만 요구하게 됩니다. 뇌의 길이 잘못 든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이 분명 이전에 세상 것들을 많이
즐긴 만큼, 어떻게 즐겨 왔느냐에 따라 각 섭리인들도 이 섭리 안에서 주님, 선생님과 말씀, 기도, 찬양, 전도
등으로 누리는 낙과 즐거움에 만족 못하는 자들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 하늘 것에 집중하다가도 또 한눈 팔고
세상으로 자꾸만 기웃거리게 되죠. 주님, 이와 같이 잘못 길이 든 뇌의 치료법, 세상 쾌락과 하늘 쾌락의 차이
점, 하늘 쾌락으로서만 만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코치해 주세요.)
* 성자 주님의 말씀 *
사랑아,
너의 말대로 세상 낙에 너무나 중독되어
뇌의 성향과 특성이
오로지 세상의 것으로만
쾌락과 희열을 누리게 변화되어
하늘 것으로 낙과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섭리인들이 아주 많다.
이것은 어떤 죄와 의와는 또 다른 것으로
아무리 과거의 죄들이 청산이 되었을지라도
자신들이 쌓아올린 뇌의 경향성이니
자신의 뇌가 다시금 깨끗해지고 온전해질 때까지
스스로 그 고통과 금단현상 등을 이겨 내야만 한다.
마치 알코올이나 담배에 중독된 자들이
끊어 보려 해도 이미 뇌와 몸 자체가
그것들을 너무나 원하여 끊기 어려운 것처럼
자신의 뇌를 세상 것에 중독시켜
그와 같이 만들어 놓았으니
어쩔 수 없이 다시 회복될 때까지
참고 또 견뎌야만 한다.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우니
이따금씩 다시금 세상 것을 즐겨 보고
힐끔힐끔하는 섭리인들이 아주 많다.
이는 한두 번에서 그친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나
계속해서 접하고 싶어지고
또 계속 마음이 원하니
결국 스스로를 고통 중에 빠뜨리는 길이다.
아예 안 하는 것이 답이다.
‘한번 두 번 정도는 괜찮을 거야.’하고 즐겼다가
또 구시대인처럼 세상 것으로만
낙을 누리는 체질로 변한다.
‘뇌’라는 것은
아무리 많이 접하지 않을지라도
이따금씩 한두 번의 자극으로도
그에 관련한 감각, 기억들이 살아나기도 하고
그에 관련한 것들의
완전한 소거가 일어나지 않는다.
마치 때로는 쉬어도
주기적으로 한두 번씩이라도 운동을 해 주면
몸이 그 운동을 기억하여
그 감각이 죽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루에 세끼 식사를 다 하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한 끼 정도만 먹어 주면
그 생이 유지가 되는 격이다.
고로 순간을 못 참아 한두 번 접하다가는
평생 괜히 싸울 필요도 없는
세상 유혹물들까지 적군 삼아
고통스럽게 살아야만 한다.
고로 이왕 하늘 민족, 하늘 신부가 되었으면
아예 세상 유혹물들은 끊어라.
피치 못하게 어쩔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접하게 된 것이면 내가 이해해 주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너를 계속 죽이는 꼴밖에는 되지 않는다.
사랑아,
섭리인 중 가장 불쌍한 자가 누구인 줄 아느냐.
하늘 역사를 만났고
진정한 신랑과 중심자를 만났어도
세상과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두 주인을 섬기고 있는 자이다.
그런 자가 스스로를 제일 고통스럽게 만들며
피할 수 있는 고통마저도 다 감당하고 있는
어리석은 자이니라.
그런 자는 고통이 두 배가 되어
쉽게 갈 수 있는 섭리길도
어렵게 가는 자이니라.
고로 한 주인만 섬겨라.
온전히 한 주인만 섬기기까지는
너무도 어렵고 고통도 많겠으나
네가 세상에 길이 든 체질이
완전히 고쳐질 때까지만 참고 또 견디면
반드시 하늘 것으로만 만족하는 체질로 길이 든다.
결국 인생은 길들이기 나름이라
선생이 말하지 않았느냐.
그처럼 조금만 참고
완전한 하늘 체질 인생 살아라.
너희 스스로도 세상 것을 이따금씩 접하면서도
계속 양심의 가책을 얻고 스스로 자책,
비하하기도 하지 않느냐.
그 무슨 어리석은 짓이란 말이냐.
사랑아,
하늘 것에는 쾌락이 없다 생각하느냐.
아니면 있기는 있되
세상 것에 비해 너무 작다 여기느냐.
하늘 것으로 누리는 쾌락과
세상 것으로 누리는 쾌락의 차이를 비교해 주마.
먼저 하늘 것은 세상 것과는 다르게
그 쾌락이 잔잔히 오며 점진적, 순리적으로
그 쾌락의 강도를 높여 가며 온다.
또한 시작하자마자 바로 오지 않으며
너희가 집중해서 열심히 하고 있으면
그 과정 중에 어느새 쾌락이 물밀듯 스며들어 온다.
그러다가 어마어마한 쾌락을 누리기도 하며
넘쳐나는 즐거움과 기쁨에 못 이겨
황홀해하기도 한다.
다만 하늘 쾌락은
인내력, 집중력, 사랑, 차분함 등이
있어야 누리기 쉽다.
두 번째로 세상 것은 별로 집중하지 않아도
그 쾌락이 용솟음치며 강하게 오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게 빠르게 온다.
그러나 세상 것이 아무리
‘순간적, 신속적 강렬한 쾌락’이라는
특성이 있을지라도
하늘 것에 비하여
절대 이기지 못하는 취약점이 하나 있다.
하늘 것은 하고 또 하고
아무리 반복적으로 해도
그 쾌락이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세상 쾌락은
똑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질려 버린다.
그러니 자꾸만 새로운 것을 찾게 되고
새로운 것이 없어지면 곤고해지고 허무해진다.
그러나 하늘 쾌락은
이 땅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기에
아무리 계속 똑같은 것을
반복적으로 접한다 할지라도
쾌락의 강도는 매번 다르며
그 깨달음과 감동, 느낌도
매번 다르다.
그러니 선생도 똑같은 성경책을 가지고
수천 번이나 볼 수 있었던 것이며
또한 매번 볼 때마다 깨달음도 감동도 달라
급기야 시대 말씀의 인봉을
다 떼지 않았느냐.
이와 같이 사탄과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쾌락은
‘속이 빈 깡통’과 같아
그 허울은 좋아 보일지라도
막상 열어 보면 비어 있고
깊이가 없어 허무, 곤고하다.
그러나 하늘이 주는 쾌락은
‘천연 그대로’이며
자연의 이치와 순리의 법칙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니
제대로 누리고 즐기기만 한다면
어느 누구에게나
최고의 기쁨과 쾌락을 선사해 준다.
생각해 보아라.
너희들이 세상 것에서
그렇게나 즐기고 누린다는
‘쾌락’이라는 감정은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한 것이었다.
다만 신과 인간이 서로 사랑을 누리며
하늘적 쾌락을 누리는 것을
시기 질투한 사탄이 하늘 것에 대적하여
또 다른 사망권적 쾌락과 즐거움을 만들어
너희를 유혹한 것이었다.
또한 인위적이며 순간적이니
여기에 빠져 버린 인간은
순간적이고 강렬한 쾌락을 누리는 데에
완전히 길이 들어 버려
사탄의 노예가 되어 버린다.
사탄과 인간이 합작품으로 만든 것에만
쾌락이 있다고 착각하고
하늘 것에는 쾌락이 없다고
단정 지어 버린다.
이것이 사탄과 인간들이 합작으로 만들어 낸
‘인위적인 쾌락의 폐단’이다.
결국 너와 나 사이를 갈라놓으려
저러한 것들을 만들어 내고
너희를 유혹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주님, 이 땅에는 저희를 유혹하는 유혹물들이 너무나 넘쳐납니다. 곳곳에 다 유혹이 도사리고 있습
니다. 특히 섭리 2세들 중 세상 유혹에 빠진 아이들이 많고 심각합니다. 핸드폰, 컴퓨터 게임, 음란물, 영화,
텔레비젼, 만화, 드라마, 쇼 프로, 대중음악 등 너무나 많은 유혹의 홍수 속에 살아갑니다. 그 유혹들을 다 물
리쳐 내야 하는 고통이 큰 걸 알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너무 불쌍합니다.)
사랑아,
왕의 신부가 되는 길은
어렵고 험난한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을
다 이겨 낸 표상자가 없었으면
아예 역사를 출발조차 못했을 거라고 말한 것이다.
사랑아,
그러나 ‘선생’이 있지 않느냐.
세상 그 무수한 쾌락의 유혹 속에서도,
이성의 유혹 속에서도
‘나는 오직 하나님, 주님
사랑하는 낙이 최고야.’라고 말한
선생이 너희 곁에 있지 않느냐.
세상 흑암과 음침함을 바라볼 땐
낙심과 좌절이어도
오로지 선생만 바라보면
그래도 희망이요 낙이요 즐거움 아니냐.
또한 내가 선생 통해 너희를
얼마나 많이 웃겨 주었으며
재미있게 해 주었느냐.
말씀 통해, 사연 통해, 찬양 통해
너희를 얼마나 즐겁게 해 주었느냐.
안다.
세상의 유혹들을 다 뿌리칠 정도로
너희의 정신력이
아직은 선생같이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아직 선생만큼
나를 향한 사랑이 온전, 충만하지 않으니
그만한 간절함과 집중력이 나오지 않아
이겼다가도 지고
또 이겼다가도 또 지는 현상들이
자꾸 발생하는 줄을 잘 안다.
마지막 때임에도
자꾸만 발생되는 육성에 지고 또 져서
낙심, 좌절될 때도 많은 줄로 안다.
그러나 사랑아,
너희의 영원한 신랑이 누구냐.
저 세상 것, 세상 쾌락이
너희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 줄 신랑이냐?
아니면 너의 곁에 있는 나 성자가
바로 영원한 신랑이냐?
또한 이미 선생 통해 입증되었듯
오직 하늘 쾌락으로만 세상 쾌락 그 이상으로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인생이 있지 않느냐.
그 추잡스럽고 저차원적인 세상 쾌락 없이도
너희의 마음을 충만히 만족시켜 줄
‘하늘 쾌락’이 여기에 있다.
다만 두 주인을 섬기는,
집중이 분산된 상태에서는 누릴 수 없으며
오직 한 주인, 한 마음, 한 뜻을 가졌을 때에만
누릴 수 있다.
또한 하늘 것으로만
낙을 누리는 체질이 되면 될수록,
세상 것으로 낙을 누리는 체질을 고치면 고칠수록
그 쾌락의 강도가 더욱 크다.
사랑아,
이왕 한 번 태어난 것
‘오직 외길 인생’이 멋있지 않느냐.
다른 길로 엇나가지 않고
계속 초심을 지키며 한 길로만 간다는 것은
분명 힘든 길이나
한편으로는 인생 가치 제대로 발하며 사는 길이며
빛을 내며 가는 길 아니겠느냐.
이왕 한 번 태어난 인생,
선생처럼 오직 한 가지
‘하늘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자꾸나.
어렵겠지만 힘들겠지만
다시 한 번 선생 심정과 정신
간구하여 받고 또 받아 이겨 내어
완전한 하늘 민족, 하늘 신부 되자꾸나.
그리하였을 때 세상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자유를 만끽할 것이며
해방감을 누릴 것이다.
사랑아,
진리에 구속됨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다.
오히려 사탄과 세상 것에 구속됨이
‘구속’이며 ‘속박’이니라.
이를 알고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려라.
사랑한다.
성자 주니라.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