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학교2013.02.16 (토)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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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휴거를 위한 개인 완성의 재창조 과정
작성일 : 2012년 (6월 1일~7월15일까지 작성)
작성자 : 서 연 경
(재창조 말씀 이후 신부 급의 영으로 완전히 이루기 위해서 우리가 더 온전해지기까지 마음가짐 등을 자세히
알고 싶어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성자 주님의 말씀*
사랑하는 신부야.
이미 선생을 통해 재창조에 대해
1차와 2차 도자기 비유로 말한 것처럼
도자기를 600~800°C에서
처음 1차 초벌구이를 하듯이
1200~1300°C에서
2차 재벌구이를 할 때
너희 영이 비로소 ‘창조 완성’을 이룬다.
완성된 신부의 영으로
완전히 재창조를 이루기 위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반드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영이 완성되어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있다
먼저 1차 창조의 1차 육 휴거를 이룰 때는
물로 즉 말씀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과 진정 영으로 만나는 순간이 있다.
절대 믿음 단계, 사랑 단계로
하나님과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사랑을 이루고 다시 재벌구이 하듯
고욤나무를 참 감나무에 접붙이어
완전히 고욤나무 근성이 사라지고
완전한 참 감나무가 되듯
어느 누구나 반드시 거쳐야 하는
2차 관문이 있다.
1차 초벌 단계는
너희의 영을 창조하기 위해
신앙의 태초로 시작한 시점부터
점진적으로 꽃이 피기까지
때론 약하게, 강하게 모든 인생들에게
나의 개성의 지체를 창조하고 만들기 위하여
내가 크고 작게 물 붓듯
역사해 주는 단계이다.
90~95% 정도 성삼위가 물 붓듯 역사해서
말씀으로 때론 각종 영몽과 만물,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느끼게 하며
영으로의 재창조로, 탄생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게 내가 상징적으로만 나타나
모든 것을 은밀히 역사하며
너희 영을 1차 창조로 이루어 내는 것이다.
1차 휴거 육 휴거에 이르는 단계이다.
도자기 비유처럼
(600~800°C) 1차 초벌구이 단계까지 오면
나의 존재를 100% 깨닫고
믿음과 사랑 단계에 이르는
1차 말씀으로 거듭난 단계이다.
즉 1차 육 휴거로 이른 단계이다.
나 성자의 음성을 듣기도 하며
실감나게 믿음으로
나와 대화도 하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나와 사랑을 1차로 이루고,
그 사랑을 반드시 완성으로 재벌구이 하듯이
스스로 내면에
본체의 사랑과 완전히 접붙이기 위한
완전 단계에 이르는 과정을
한 번 더 2차로 거쳐야 한다.
또 다른 비유를 들자면
참 감나무가 되기 위해
고욤나무의 근성이 아예 사라지도록
나머지 5~10%까지 스스로 해내는
책임 분담의 사랑의 과정이다.
비로소 완전한 사랑의 형상을
내면에 이루어 내는 단계이다.
1차와는 다르게
2차에서는 스스로 참 감나무가 되기까지
스스로가 절대 믿음과 사랑으로
홀로 서야 하는 단계가 있다.
이 단계에서는
내가 직접 함께하지 않고
스스로 완전한 사랑으로
나의 형상을 이룰 때까지
사랑으로 은밀하게,
그렇지만 불꽃같이,
내가 숨어서 완성까지 지켜보는 단계이다.
영원히 변함없는
참사랑 만들기 위해
정금이 되기까지
연단하기 위한 단계이다.
1차의 육 휴거를 이루기 위한 때보다도
어쩌면 험난한 가시밭길의 연단과 단련의 삶으로
때론 내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를 진정으로 진실로 사랑하는 힘이
강하고 강할수록
절대 이길 수 있는 단계이다.
(초벌) 1차 과정에서도
깨지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 재벌 2차 과정에서
깨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 과정이 어쩌면 90~95%까지 이룬 것보다도
극히 어려운 관문이기도 하기에
하나님이 지난날
역사하고 부어 준 은사를 점점 잊고
은혜 가운데 찾아오는
가장 위험한 교만이 생길 수도 있다.
또한 형제 사랑의 완성을 이루기 위한 몸부림 속에
자신의 노력, 마음과는 달리
다른 이와 서로 다른 생각의 갈등이
너무 많이 있기도 하며
자신의 영과 육의 선악이
완전히 쪼개지기 위한 몸부림과
오직 선,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단계에 이르기 위한
극심한 어려움, 환란 등, 이 있기에 그러하다.
자신 스스로 하나님적 신령과
예리한 분별력이 있다 해도
신성과 인성 사이에서
사람들과의 생각의 끝없는 분쟁으로 인해 생기는
극도의 어려움이
과정 중에 너무나 많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또한 스스로의 자만이 되기도 하여
자기에게만 역사하는 하나님으로 생각하여
자기주관에 빠질 위험도 있으며
자신이 하나님인 것 같은
재림주인 것 같은 착각이
생길 수도 있는 단계이기도 하다.
완성에 이르기 전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고
점점 하늘을 거스르며
자기 주관적으로 흐를 수 있는
그래서 결국은 깨지기까지 하는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끝까지
스스로를 점검하며 근신해야 한다.
(주님, 그렇게 작품으로 만들다가 깨지면 도자기도 너무 아까운데 인생들은 영의 존재로서 너무 아까운 연단
인데 마지막까지 주님께서 관여하시어 100% 이루시면 안 되는 건가요?)
내가 그토록 역사하며 도와주어도
너희의 책임분담으로
온전한 사랑에 이르는 것이
‘절대 창조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 5%~10%는
너희가 해내야 하는 몫인 것이다.
만약 마지막 단계인
스스로가 해내야 하는 그 단계가 없었다면
아담 하와도 타락하지 않게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증거로
‘말씀’을 주었기에
절대 스스로 깨닫고 말씀을 지키며
완전한 사랑으로 개인 완성을 이루기까지
스스로의 몸부림은 절대 있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중심인물들과 선지자들조차도
완성 이전 하늘과의 사랑에
틈이 생기고 문제가 있을 때는 가장 위험했다.
절대 믿어 주는 믿음도 중요하지만
오직 사랑이 핵인
사랑에 흠이 있거나 문제가 있으면
하늘과의 사랑은 경고등이 들어온다.
성삼위께 가야 할 영광은
자기가 0.1%도 영광을 받으면 안 된다.
그것이 가장 문제였다.
성경에 기록된 사람 외에도
하나님을 순수하게 사랑하기 시작했던
많은 믿음의 하늘의 사람들 중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교만으로 여기서 무너졌다.
각종 신유의 은사나
모든 은사를
내가 부어 주었던 것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 스스로 한 것으로 착각하는
착시 현상에 빠져 들어가기 시작하면
아무리 경고를 주어도
하나님께 가야 할 영광을
자신의 영광으로 가로채 버리는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모든 이에게 마지막 관문으로
스스로 이루어 내는 마지막 단계이기에,
자유의지로 완전한 나비가 되는 단계이기에
오히려 하늘의 뜻을 잊어버리고 점점 거슬러
자기 뜻대로 행동할 수도 있는 단계이다.
고로 끝까지
절대 성삼위에게 가야 할 영광을
자신에게 0.1%도 돌리지 말아라.
자신을 절대 나타내지 말고
성자 주님만을 나타내도록
스스로 절대 조심해야 한다.
구약시대 사울 왕이나
신약의 세례요한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울왕도 처음엔 겸손했는데
가다가 변질되었다.
너희는 마지막까지
스스로 조심하여 겸손하기를
진정 바라노라.
섭리인 중에도
절대 믿음을 보이며 따라오던 자들 중에도
그래서 무너진 자가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개인의 완성에 이르러
하나님처럼 온전해질 때까지
하늘이 인정할 때까지
절대 순종으로 끝까지 겸손해야 한다.
여기서 완전히
내 영과 일체 된 영으로 창조를 이룬 자는
나의 뜻을 100% 깨닫고
자신을 마지막 단계에서 스스로 완전히 낮추고
진정한 성자의 마음을 알아
자신의 육성과 정욕은 십자가에 못 박고
완전한 영으로 재창조되어,
자신은 정녕 죽어 없어지고
성자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 성자의 지체가 된다.
말과 행실이 성자의 삶이 되어 산다.
1차 말씀으로 거듭나고
2차는 성령, 하나님의 신
곧 성자 본체의 영과 온전한 일체를 이룸으로
비로소 창조의 목적인 완성된 신부가 된다.
완전한 ‘성자의 본체’의 영을 담는 그릇은
머리로서 ‘핵’이 되는 너희 선생밖에 없다.
하나님과 나 성자는
처음부터 나중까지 사랑이고
태초부터 영원까지 오직 사랑이다.
그래서 너희도 ‘사랑’으로
영을 재창조로 이루는 것이 핵심이다.
고로 율법의 완성되는
나 성자 본체의 완전한 사랑에
100% 접붙여진
스스로의 그리스도의 사랑 단계에 이르러
비로소 생명을 주는
진정한 참 감나무가 되는 것이다.
기성인 중에서도 기도도 많이 하고
절대적 믿음이 목숨을 내어 줄 만한 자도 많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진리로
나 성자의 ‘성품’으로
‘사랑의 형상’을 완전히 이루어 낸 자가
아무도 없었다.
성자의 온전한 본체 사랑을 담을 수 있는 자는
오직 피눈물 나는 시련과 연단을 통해
그 사랑, 정신, 심정, 천품으로 빚어진
너희 선생뿐이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오직 말씀이다.
예수도 시험했었다.
너희 선생도 반드시 시험 기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의 형상을 100% 이루어
마지막까지도 완전히 자신을 낮추었다.
너희 각각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90~95%까지 연단을 시키며 지극 정성을 들여도
스스로 완전에 이르러야 하는 마지막 관문에서
교만이 오고 성삼위께 갈 영광을 자기가 받아 버리고
자칭 하나님 재림주가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기에
많은 인간 재림주가 나오기도 했던 것이다.
전자의 사명자도 마찬가지로 그런 경우이다.
내가 90~95% 쏟아 부어 주며,
각종 은사를 주고 역사하였어도,
마지막 책임분담인
스스로 깨닫고 개인 완성을 이루어
자유의지로 나와의 완전한 사랑에 도달하기까지는
모든 사람이 절대 누구나
시험을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너희 선생의 목숨을 내어 준
완전한 사랑의 십자가 앞에
이젠 너희 스스로의 책임 분담만이 남아 있다.
너희를 사랑한 증표는
선생의‘십자가 조건’으로
정녕 육의 역사,
껍데기의 역사가 막을 내리고
성약 영(알맹이) 역사가 나오는 것이다.
다시 오리라 약속한 때가 되어
최고의 사랑의 증표로
6천 년 간 감추어졌던
말씀의 인봉을 풀어 놓고
너무나 사랑하기에
한 영혼, 한 영혼에게
말씀의 축복을 주었다.
말씀과 사랑에 빠져라.
사탄은 이 천복을 타고난 때
감각을 떨어뜨려
재림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게 막고,
육성으로 막고,
구경꾼이 되어 바라보게 한다.
나와 재림의 주인공이 바로 네가 되어라.
아직도 느끼지 못하는 자는 흑암의 주관으로
사랑의 완성의 빛을 발하지 못하므로
그 영혼은 유리하는 별처럼 떠돈다.
자기의 존재의 의미는
이 세상 육계의 간판이 아닌
영계에서 주는 사명 값이
근본으로 귀하다.
자기 사명을 절대 아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함으로 내게 물어라.
신약의 세례요한조차도 점점 기도가 약해지니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결국은 ‘주’ 앞에 최고로 위대했던
영원한 사명의 빛을 잃고
망각으로 스스로 무너졌다.
전자의 사명자도 마찬가지이다
작든 크든 자신에게 하늘이 주는
자기 사명을 알아야 한다.
육신은 늙어져도
사명은 영원히 변치 않는 빛으로
‘빛’이 된다.
이 모든 것은 평생 일생
자기 하나 완성된 ‘영’ 만들기라는 것을
부디 명심하여라.
영으로의 재창조는,
태초에 이루려 했던
창조목적의 완성,
하나님과 인간의 모든 소망,
하나님적 가치로 이루어 내는 것이다.
‘영 휴거’는 인간을
창조주의 대 걸작품인 인간 복귀,
‘완전한 사랑’이다.
오직 창조 본연의 모습과 가치를 회복하는
‘창조의 완성’을 재창조로 이루어 내는 것.
그토록 어려운 창조 완성을 나 성자와 함께
자신의 일생을 다 바쳐 천 년 동안까지
나 성자의 일을 함께해 줄
너희 선생의 그 ‘피눈물의 심정’을
정녕 모두 깨닫고 너희가 선생 심정 알고
이 땅에 ‘선생 사명 완성’과 ‘완수’위해
내 신부로서 깊은 기도로 위로해 주기를
마지막으로 간절히 부탁하고 바란다.
- 성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