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3.02.24 (일)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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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24 (일)
- 성경 본문
- 요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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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4 계시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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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실체화
작성일 : 2012. 12. 20(목) AM 3:50
작성자 : 홍별
(주님께서 문득 “영의 실체가 네게 있다.”하셨습니다.
영의 실체, 혼의 실체에 대해 며칠 동안 깊이 생각하고 주님께 여쭈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인간은 영과 육과 혼으로 창조되었다.
육은 물체다. 생물이다.
그저 뇌에 의해 조종되고 사용되는 육신은
그저 육신이다.
혼은 정신세계다.
마음 세계다.
뇌의 활동이 혼의 활동이며
혼체라는 형상으로 존재한다.
영은 하나님을 닮은 영체로 존재한다.
인간의 육과는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며
인간의 육이 죽어서 혼체와 일체 되어
영원히 사는 존재다.
너에게 있는 이 세 가지의 것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너를 이루는 것을 알아라.
뇌 자체는 물체다. 물건이다.
간이나 콩팥, 심장같이
그렇게 장기처럼 만들어진
유기적인 물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안에서 물질의 작용으로
생각이라는 창조물을 만들어 낸다.
생각은 물질에 속하지 않는다.
이것이 혼체에 속하는 혼의 것이다.
마음과 생각, 정신은
네가 육의 눈으로 형체를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형체를 볼 수가 있다.
[요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지금부터 잘 들어라.
뇌는 물체이기에 한계 상황을 맞는다.
뇌의 작용은 물질의 작용으로,
혼체가 주관한다.
혼체인 마음, 정신, 생각이
어떤 것을 생각하여 마음을 먹었다면
뇌는 생각이라는 작용으로
곧바로 반응한다.
그런 뒤에 혼체의 작용에 따라,
뇌의 작용에 따라
육신이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뇌 자체는 바보같이 창조되었다.
인간의 뛰어난 뇌라고 하지만
전능자 하나님에 비하겠느냐.
인간은 잊는다.
뇌는 잊는다.
이것이 바보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잊는 모순을 일으킨다.
신앙을 하더라도
뇌이기에 성자 주를 잊는다.
이것이 모순이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자신의 혼체를 발달시켜
혼을 뛰어나게 만들어 놓으면
잊지 않는다.
혼이 기억한다.
그것을 기억할 때
혼적 단계, 영적 단계에 깊이 들어가
기억하면 기억이 난다.
인간은 보통 나 성자를
기도를 통해서 기억한다.
기도라는 활동으로
혼체가 뇌를 활성화시켜
뇌의 기억보다 혼체의 기억으로
주를 기억하게 된다.
신앙 체험이라는 것 들어 봤지?
기성도 신앙 체험이 많은데
이것은 순간 혼적 단계에서 경험한 것을
혼체가 기억하여
뇌가 기록하였기 때문에
기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신앙 체험을 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혼체가 발달되지 않았고
인간은 육신이기에
뇌로 기억하여 잊기 때문이다.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또 육신은 보고 들은 것만
기억할 수 있다.
그 때만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육체는 육이 어떤 것을 행하고 있다 하더라도
생각이 다른 데 가 있으면
육을 느낄 수가 없다.
이 말은 뇌가 육을 조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뇌도 육에 속하는 물체라고 했지.
그래서 혼체가
뇌를 잡고 육을 잡아야 한다.
혼적 활동으로, 혼체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바보같이 살지 않는다.
혼체로 살아야 정확하게 살고
전능자 하나님과 성자의 생각을 받아서 살고
정신이 또렷하게,
육신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혼체가, 영이
자신을 지배하면서 살 수 있게 된다.
아까 나 성자를 생각할 때에도
순간 생각했다
순간 잊는 것이 인간이라고 했지.
인간은 자극이 없으면 잊는다.
나 성자를 잊지 않고
계속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아예 혼체에 나 성자를 넣고 살아야
나를 잊지 않는다.
그래도 인간은
안 보고 안 들으면 순간 잊으니
혼체에 나 성자를 넣고 살아도
혼체가 항상 나 성자와 교통하지 않으면
나 성자를 잊는다.
나 성자와 영원히 살아야 하는데,
육계에서도 나 성자를 잊으면 되겠느냐.
나와 교통하고 나를 잊지 않아야
전능한 나 성자와 영파로 통하고
네가 인간으로서
나 성자의 전능한 생각을 받아
행할 수 있게 된다.
사실 육과 혼까지도
자신이 다룰 수 있다면
그것도 대단한 것이다.
자신의 육에 이끌리지 않고
혼체로 자신을 다스릴 수 있다면
나 전능자를 생각하고 대하기가
너무 좋겠구나.
그러나 나를 잊지 않고
영원히 계속 생각하며
교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신앙의 비법이다.
나 성자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에도 적용하여
차원 높게 신앙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이르니
나 성자의 차원에서 살아라.
사랑아,
너희의 뇌는
생각할 때만
나 성자가 생각난다고 했다.
뇌의 특징이다.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혼체로
뇌를 잡고 육을 잡아 살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도 약하다.
혼체가 계속적으로 나 성자와 교통하며
살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뛰어넘는 방법이 있으니
네가 생각한 그 무엇,
네가 생각하는 나 성자를 실체화시켜라.
이것이 영을 실체화시키는 것이다.
영계는 생각 실상 세계다.
생각하는 대로 느낀다.
생각으로 나 성자를 실체화시키는 것이다.
생각하면 나 성자가 느껴지지.
이것을 아예 네 뇌 속에서 육계로 끌어내
나 성자가 옆에 있다고 실체화하여 느껴라.
생각하여라.
가령 네가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하자.
이것이 나 성자를 순간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 공부를 해서,
점수를 얻는 것이 실체화다.
실체화 된 것이 점수다.
네가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으면
밥을 먹어 네 육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건강하게 된 네 육이
네 생각이 실체화 된 것이다.
또 너희가 어떤 자를 볼 때에
그의 영의 실체를 보는 방법이 있다.
‘영의 실체화’다.
즉, 육체는 생각의 실상체, 생각 덩어리이다.
혼체의 반영체이다.
육, 혼, 영은 실상체로서 상호작용한다.
그러하기에 어떤 자를 보면
그자의 영이 육신에 반영되어 보이는 것과 같다.
그러니 그의 육을 보면
그의 영을 본 것과 같다.
선생의 영을 보고 싶으면
선생의 영을 실체화시켜라.
선생의 영의 실존체, 혼체를 보고
그의 정신, 생각, 마음을 보아라.
이것이 영을 실체화시켜 보는 것이다.
또한 그는 육신이 살아 있으니
그의 육을 보는 것이
그의 영을 봄과 같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
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나 성자가 어떻게 나타나느냐.
선생이 너희 앞에
지금 무엇으로 나타나느냐.
말씀의 실체화다.
말씀이 곧 나 성자요, 선생이니
말씀을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아
나 성자와 선생을 말씀으로 실체화시켜라.
말씀이 가장 영적인 육계의 표현체니
너희의 영도
말씀으로 만들어 실체화시켜라.
이것이 가장 영적인 것이다.
네가 나를 생각했다면
그것을 실체화해라.
나 성자에게 어떤 것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네가 행함으로 수고하여 실체화시켜라.
인생의 모든 것은
생각으로 끝나면
바보 같은 뇌의 물질 작용으로
끝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실체화시켜라.
나 성자는 실체로 존재한다.
너희가 육이라 내가 보이지 않으니
나를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나 성자는 실체로 존재한다.
실존이다.
나 성자와 교통하며
영적 단계에서 영으로 살고 싶으냐?
관념으로 생각하던 나 성자를
실체화시켜 살아라.
현실의 것으로 만들어
늘 보고 늘 생각하여라.
이것이 영으로 사는 삶이며
신앙의 실체화다.
영의 실체화다.
실체화시킨다는 것이
아직 무슨 말인지 모르겠느냐.
신은 느낌이다.
그러나 실체화시키는 방법이 있으니
깊은 영적 단계에 들어가서
나 성자를 만나는 것,
그것과 동시에 나 성자와 일체 된
육계의 삶을 살아야 된다.
나 성자와 영으로, 혼으로 일체 되어
육계에서 산다면
그것이 나 성자의 실체화,
곧 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선생을 실체화하여라.
이 말은 네 뇌 속에 관념적으로 알던 선생을
깊은 기도로 영으로 만나서
네 혼체로 그것을 실체화시키라는 것이다.
네 삶에 아예 선생을 끌어들여라.
뇌는 보지 않으면 잊으니,
너 자신으로 하여금 선생을 보게 하여라.
그것이 일체 된 삶이요,
선생을 실체화시키는 것이다.
사랑아,
나와 통하려면
깊은 기도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를 계속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다.
남녀가 만나야 하는데
대화하지 않고
서로 느끼지 않고서는
어찌 사랑할 수 있겠느냐.
사랑한다면 생각하고,
그 사람을 실체화시켜 사는 것이다.
그래야 교통이다.
사랑이다.
나 성자와도 그러하다.
너희는 육임을 인정하여라.
나 성자를 잊는다고
괴로워하지 말아라.
나 성자를 육으로 계속 생각한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내가 네게 뇌를 주었고
뇌를 다스릴 수 있는 혼체를 주었고
그것도 주관할 수 있는 영을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체화시킬 수 있는
너무도 중요한 육을 주었으니
네 육을 사용하여
나 성자를 기억하고
선생을 기억하여라.
이 역사를 기억하여라.
역사 속에 사는 것이란,
네가 역사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역사의 실체가 되어 사는 것이다.
항상 모든 것을 실체화시켜 놔야 한다.
육의 한계를 알지 않느냐.
그러니 영으로 만들어 살아야 한다.
육은 축복이다.
가장 약하고 가장 힘든 육이지만
너희 인간에겐
가장 실체화된 물질이 아니냐.
영을 육으로 실체화시켜
보는 눈이 필요하다.
먼저 너희의 정신과 생각과 마음이
혼체와 일체 되어
실상으로 존재하여라.
보다 영적인 혼체를 만들어라.
그래야 육계의 것을
육계의 것으로만
느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실체,
곧 영의 것을 보고 깨닫게 된다.
선생은 나 성자와 어렸을 적부터 교통함으로
영적인 혼체를 형성하여
만물을 보고 하늘을 깨닫고
어떤 현상을 보고
하늘의 이치와 법칙을 깨닫지 않았느냐.
이것이 영을 실체화시켜
볼 줄 아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이 어떤 자를 볼 때
영까지 볼 수 있다 한 것이다.
영의 실상체가 육체이기에,
영적인 자가 육을 보면
영을 볼 수 있다.
선생처럼 혼체를 영적으로 만들어라.
너희의 영의 실상체가 육이니
육을 점검하고 다스려라.
너희가 휴거될지,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휴거될지 궁금하더냐?
내가 너희 육을 보면 알 수 있다 했다.
이것이 너희의 영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육은 영의 반영체, 실상체이다.
이것을 잊지 말아라.
[고후 3: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하지만 이것을 뒤집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으니
육으로 먼저 잘하여라.
가령, 청소를 안 하던 자가
청소를 열심히 하면
육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져
영도 그렇게 변화하게 된다.
육적 휴거의 법칙이다.
이렇게 상호작용하여
육도 변화, 영도 변화시켜
차원을 높이는 것이다.
깊이 기도하고 말씀을 보며
자신의 혼체를 변화시키고,
더불어 육적인 수준을 높여라.
자신을 한 단계 끌어올려라.
이것이 너희의 보이는 영체, 실상체를
완전한 휴거의 영에
가깝게 만드는 방법이다.
영적 휴거시키는 방법이다.
하늘의 모든 것은
이치와 법칙으로 만들어졌다.
이치를 알아라!
법칙을 알아라!
자신의 육을 보고
자신의 영을 보아라.
이 세상에서
나와 함께 영적 단계에서
육을 사용하는 것이 실체화다.
영의 실체화다.
나 성자를 네게 실체화시켜라.
내가 항상 네게 말하리라.
대화할 것이다.
네 앞의 실체, 성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