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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사연2013.02.26 (화)

계시말씀

선포일
2013.02.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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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손을 대지 말라 작성일 : 2012. 12. 5(화) 오전 9시 40분 작성자 : 장정임 (며칠 전 섭리 회원이, 기성인을 전도하다 보면 성경의 많은 이야기들을 두고 기적인지 비유인지를 하나하나 따져 물으니 자신도 정확히 들은 바가 없어 강의할 때 막히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회원과 대화하던 중 주님께서는 “30개론은 수학 공식과 같은 말씀이니 이를 가르쳐 주었으면 나머지는 본인이 직접 대입해 보 고 겪어 보며 풀어 나가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하나에서 열까지 다 풀어 달라함은 어쩜이냐.” 하셨고 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그렇게 따져 물었다. 허나 내가 다 가르쳐 주고 풀어 주어도 믿지 않고 따라오지 않 았다. 오히려 그렇게 따져 묻는 그들의 생각과 주관들이 그들로 구원과 멀어지게 하였다. 진실로 구원에 합당 한 자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시대와 보낸 자를 깨우쳐 주고자 하는 나의 뜻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 밭을 가진 자라.” 하셨습니다. 오전에 7만 선교에 관한 기도를 하며 성경과 시대 말씀을 더욱 온전히 깨닫고 위력 있게 전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할 때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과 교훈으로 쓰인 묵시의 말씀이며 계시니라. 성약 성서가 될 선생의 말씀도 전부가 하나하나의 묵시로 쓰인 계시와 잠언 말씀이 아니더냐. 이를 어찌 보라 하였더냐. 삼위의 감동과 교훈으로 전하는 말씀이기에 절대 인간의 생각이 개입되어선 안 된다. 모든 말씀이 선포될 때는 사연이 있고 뜻이 있고 계획이 있음을 알아라. 고로 이를 잘 이해 하기위해 말씀의 주인이 되는 선생은 그 사연이 되는 배경을 상세히 설명해 주며 말씀을 전해 주고 있다. 허나 길고 긴 그 모든 사연을 어찌 다 기록하랴. 고로 잠언으로 함축되게 기록하여, 깨닫기를 간절히 간구하는 자에게는 그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남기고 있는 것이다. 성서의 모든 예언을 이루고 비유로 인봉된 말씀을 푸는 자가 바로 새 시대 새 인물이라 하였다. 신약이 시작되었을 당시 나는 나사렛 예수를 통해 구약의 많은 인봉된 말씀을 풀었으며, 그 모든 예언들을 이루었다. 이를 통해 세상으로 하여금 새 시대가 도래했고 새 인물이 지상에 나타났음을 알게 하였노라. 이 시대 역시 너희가 선생을 어찌 알아보게 되었느냐. 비유에 갇혀 말씀에 주려 있던 너희 앞에 홀연히 나타나 그 모든 인봉된 말씀을 풀어 주어 깨닫게 했기에 그가 과연 새 시대 새 인물임을 시인하게 되지 않았더냐. 허나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2000년 전 내가 모든 예언과 인봉된 말씀을 이루고 풂과 동시에 또 다른 예언과 인봉의 말씀을 남겼듯 선생도 모든 예언을 이루며 비유를 풀어 가르침과 동시에 깊은 비유의 잠언과 계시들을 남기며 시대를 이끌어 가고 있다. 바로 천 년 후대가 보고 따라올 말씀이니라. 이러한 말씀을 전함에 있어 너희가 참으로 주의해야 할 것은 선생이 남기는 하늘 말은 진정 하늘의 심오하고 깊은 묵시와 계시의 말씀이기에 너희의 선입관이나 생각과 인성이 개입된 말로 풀어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니라. 잠언을 절대 함부로 해석하여 전하지 말라 하였다. 똑같은 말씀이라도 누구에게는 이렇게 풀어져야 맞고 또 누구에게는 저렇게 풀어져야 맞는 것이니 그것을 전하는 자가 자기 임의로 해석하고 받아들인 대로 획일화시켜 전달한다면 이는 각인에게 주는 나의 계시를 왜곡시켜 전달하는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 주관대로 잠언을 해석하여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개성과 환경과 처지가 각각 다른 자들에게 각기 그에 맞게 전하고자 하는 깊고 오묘한 나의 말의 본질을 훼손하는 격이니라. 성경의 모든 이야기들도 그와 같이 그러하다. “동쪽으로 가지 마라.”라는 하나의 잠언을 두고, 전하는 자가 “서쪽으로 가시오.”라고 전하는 것은 잘못된 말이라고 하였듯 그와 같이 성경의 모든 말씀도 너희 각자의 입장과 처지와 때에 따라 그에 맞게 주는 나의 감동에 의거하여 해석해야 되는 것이니라. 그러니 그 많은 성경의 인봉의 말씀과 묵시와 계시의 말씀들을 하나하나 다 따져 풀어 이렇다 저렇다 못 박아 말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느냐. 그런데 이를 두고 너희는 왜 선생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다 풀어 확실하게 가르쳐 주지 않느냐고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냐.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으려고만 하지 말고 선생처럼 기도와 행함의 몸부림을 치며 주어진 상황과 여건에 따라 합당하게 때를 따라 주는 나의 모든 말씀들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때를 따라 내가 각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정확히 알 수 있다. 사람은 백이면 백, 모두 다른 특성과 개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 모든 자들을 같은 잣대로 재어 판단하고 대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것은 공의가 아니지. 그러니 똑같은 말씀이 선포되어도 각자에게 해당되는 대로 들리게 되며 받아먹게 되는 것이다. 즉 각자가 처한 상황과 놓인 처지에 따라 똑같은 말씀이라도 달리 받아들이고 해석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말씀의 신비하고 오묘함이 아니겠느냐. 말씀은 곧 나라고 하였다. 사랑을 근간으로 하여 존재하지만 보이는 형태는 천층만층 구만 층이니 그 오묘한 말씀은 곧 측량할 수 없는 신의 신비로움을 대변함이 아니겠느냐. 그러니 나의 계시의 말씀과 잠언을 자기의 인식관으로 걸러 마치 그것이 ‘나’인 양 대변하지 말아라. 나는 그 어떤 거름망도 원하지 않는다. 여과 없이 투영되길 원한다. 그래야 가장 확실히 전달되기 때문이지. 나는 모든 인류에게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전능자라. 각각 그에 해당되게, 각자의 특성에 맞게 나타나 온전함에 이르게 하는 자니라. 그러니 말씀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인지 꼭 깨달아야 한다. 절대 자신의 색깔과 인식관을 입혀서 전해선 안 된다. 왜 그 말을 전하는지 그 의도를 정확히 아는 자만 설명할 수 있지, 아니고서는 함부로 말씀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하였다. 생명을 살리고 전하는 말씀인데 이를 모르고 한낱 인간의 인식관을 더해 전하면 그 말씀은 본질을 벗어난 채 전달되기에 오히려 생명을 죽이게도 되는 것이다. 단상에 선 자들은 진정 이를 조심해야 할 것이며, 강의를 하는 자들, 관리를 하는 자들 역시 그러하다. 함부로 자기 생각 수준에서 해석하여 전달하다가는 소경이 소경을 이끄는 격이 되어 함께 사망 길로 빠지게 된다. 선생이 누누이 경계하여 가르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니라. 생명 구원의 사명을 가지고 온 자가 그 사명으로 선포하는 말씀인데 그 말씀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오류가 발생하여 생명에 해를 입힌다면 그처럼 한탄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그러니 너희는 말씀에 절대 손을 대지 말아라. 손이란 너희 나름의 주관과 생각과 인식관을 말하는 것이니 따르는 자들로 하여금 말씀을 모른다 하여 너희가 임의로 해석하여 먹이지 말아라. 말씀을 주는 이도 성자요, 먹이는 이도 성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린 자나 새 생명을 대할 때에도 마치 너희가 말씀의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지 말고 오직 그들이 스스로 말씀의 주인인 나에게 나와 배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오차 없이 그들이 나의 뜻대로 성장할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는 습성 들이게 하지 말고 스스로 몸부림쳐서 얻어 가지게 하여라. 그래야 큰 나무가 된다. 말씀을 잘 전하는 자란 말씀을 주는 나의 심정과 말씀을 받아 전하는 선생의 심정을 고스란히 받고 그 심정과 사연을 확실히 알고 전하는 자이다. 말씀은 입으로만 전한다고 해서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말씀을 주는 자의 심정과 뜻을 정확히 알고 받아 그 심정으로 대언할 때 말씀의 주인 된 삼위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생명이 살아나고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단상에 서는 자나 전도하는 자나 관리하는 자나 이를 온전히 깨닫고 심정으로 말씀을 전해야 할 것이며 먼저는 그 심정을 오롯이 받기 위해 기도로 간구함에 힘써야 할 것이다. 말씀은 결코 문자적 언어로 전달하는 것이 아닌, 심정과 능력으로 전달하는 것을 잘 알고, 또한 듣는 자로 하여금 말씀의 주인 된 자에게 기도함으로 직접 나와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심어 줌으로 너의 생명이 아닌, 나의 생명이 되게 인도해 주어라. 선생과 같은 심정과 뜻으로 생명 구원의 역사를 찬란히 펼치는 나의 신부들이 되길 바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