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3.03.10 (일)
계시말씀 36fc11a1
- 선포일
- 2013.03.10 (일)
첨부 파일
- PDF
20130310 계시말씀_36fc11a1.pdf
127.1 KB
숭고한 희생
작성일 : 2013. 1. 2(수) 새벽 3시 50분 ~ 5시 37분
작성자 : 이주인
(얼마 전부터 ‘희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약시대는 선조들의 희생의 피 흘림으로 신약역사
가 펼쳐졌는데, 지금의 성약역사를 뛰는 저 자신은 과연 어떠한가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선생님과 많지 않은 지도자 외에는, 온전한 희생을 하는 자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송구영신 예배 말씀에서, 선생님의 ‘내가 참고 희생하면 된다.’라는 말씀이
크게 와 닿았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서 기도 시간에 주님께 이에 대해 여쭈었고, 주님은 핵심적인 말씀을 주
셨습니다. 이후 금일 새벽기도 시간에 풀어 주셨기에 기록하였습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희생은,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진정 사랑하니,
진정 희생할 수 있는 것이다.
성삼위도 선생도,
너희 각인을 진정 사랑하니
사랑함으로 희생하는 것이다.
곧 성삼위는
성삼위급의 사랑으로 희생하며,
선생은 선생 사명급대로의 사랑으로
희생하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이르면
‘사명 차원급대로의 희생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메시야는 메시야급의 사랑으로 희생이며,
선지자는 선지자급의 사랑으로 희생이며,
사도는 사도급의 사랑으로 희생이다.
이와 같은 이치로,
모든 사명자는
‘사명 차원급대로의 희생’이다.
또한 ‘시대 주관급대로의 희생’이다.
구약역사는 구약급의 희생이며,
신약역사는 신약급의 희생이며,
성약역사는 성약급의 희생이다.
이에 대해 쉬이 일러 주면 이러하다.
구약역사는 종급의 역사이다.
고로 구약급의 희생은,
종이 주인을 대하며 행하는 급의 희생이다.
신약역사는 아들급의 역사이다.
고로 신약급의 희생은,
아들이 아버지를 대하며 행하는 급의 희생이다.
성약역사는 신부급의 역사이다.
고로 성약급의 희생은,
신부가 신랑을 대하며 행하는 급의 희생이다.
곧 종이 주인을 향하는 희생이란,
고작 주어진 일만큼의 희생이다.
또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향하는 희생이란
부자지간만큼의 희생이다.
이는 오히려 아버지가 아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더 희생해야 함으로,
아버지의 희생이 더 크다.
그렇지만 신부가 신랑을 향하는 희생이란,
신랑이 신부에게 향했던
짝사랑의 희생만큼을 알아주며,
그만큼의 희생이 이루어져야
상호 동등의 희생으로 인해
동등격의 온전한 사랑이 완성된다.
고로 동등격만큼의 희생에 의한
동등격의 사랑이다.
즉 신랑 신부의 사랑은
동등격의 사랑으로만이,
온전한 부부 관계로 이르게 한다.
고로 신랑 신부로서의
온전한 부부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동등격 만큼의 희생에 의한
동등격의 사랑이 있어야,
온전한 부부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러하기에 신부의 희생이,
어느 차원급의 희생보다
가장 크고 가치 있는 희생이며,
위대한 희생이다.
이는 신랑의 짝사랑만큼의 희생을
알아주기에 그러하며,
또한 신랑의 희생만큼,
신부가 희생으로 부응하기에도 그러하다.
이런즉 어느 급의 희생이
가장 가치가 있으며,
큰 희생이겠느냐.
그리고 또 ‘희생은 곧 사랑’이다.
이는 사랑하기에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랑 위력의 강도에 따라,
희생 위력의 강도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를 진정 깨닫고서
성약역사의 기초를 세운 자가,
바로 선생이다.
선생의 그 가치 있고 위대한 사랑으로 인한
숭고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성약역사의 문이 열렸다.
곧 선생의 하늘과 땅에 대한 사랑의 위력으로 인한
그 오롯한 숭고한 희생으로,
성약역사의 시작점이 된 것이다.
이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누구도 세우지 못한,
신부로서의 절대적 조건을 세웠다 함이다.
곧 신부급의 차원이 되기 위해,
신부급의 희생을 치렀다는 것이다.
이는 너희가 ‘나만이 걸어온 길’을 통해,
선생이 어떠한 극한의 역경 속에서도
절대적 행함으로,
희생의 조건을 세웠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정녕 말하지만,
이것은 선생이 세운 조건 중의
극히 일부만 기록한 것이다.
너희에게는 다 알릴 수 없는,
절대적 조건을 선생은 세웠다.
그 크나큰 위대한 조건으로 말미암아,
성약 신부시대가 도래할 수 있었다.
곧 선생의 그 가치 있고 위대한 조건은,
숭고한 희생과 같은 격이 됨으로,
신부의 첫 열매가 되어
신부역사의 서막을 홀로 연 것이다.
다시 말해 선생의 희생은,
신랑인 성삼위의 희생에 부응하는 신부의 희생이며,
또한 모든 인류를 신부급의 주관권으로
차원을 상승시키는 희생이다.
곧 선생의 성약 차원급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신부급 성약의 문이 열려진 것이다.
즉 성삼위 앞에는 신랑의 희생에 부응하는 희생이며,
너희 앞에는 주관권의 차원을 상승시키는
숭고한 희생이다.
그리고 또 육을 가진 너희를 구원할
구원자로서의 희생인,
‘사명 차원급의 희생’ 또한 하지 않느냐.
이러하기에 지금도 선생은 그 사명급으로,
너희를 위해 희생함으로 이끌고 나가고 있다.
고로 선생의 희생이 얼마나 가치 있고,
위대하며 숭고한 희생이냐.
(주님, 선생님이란 분은 알면 알수록 그 위대함과 숭고함,
또 그분에 대한 감사함으로 말문이 막힐 지경입니다.)
그래. 선생의 희생은 인류 역사상,
전에도 후에도 없는
가치 있고 위대하며 숭고한 희생이다.
이를 너희가 알아주며
선생에게 늘 감사 감격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선생 그 마음으로,
지금도 너희를 대신하여
희생함으로 갇힌 바 되었기에,
사랑과 위로로 선생에게 나아가거라.
(주님, 주님도 구원의 총책임자로서, 희생을 많이 하셨잖아요. 진정 감사드립니다.)
그래, 고맙구나.
나의 희생 또한 너희를 향한 사랑 때문이다.
너희를 진정 사랑하니,
진정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곧 깊은 진흙탕에 빠진 역사이니
건져 내야 살릴 수 있기에,
내가 직접 몸을 던져 진흙탕에 빠진 인류를,
사랑하는 한 여인이라 생각하고서
뛰어들어 건져내는 것이다.
곧 구원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
가령 물에 빠진 자가 있다 하자.
그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입으로만 외쳐서는 안 된다.
그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직접 물속에 뛰어들어
그자를 끌어내야 한다.
그래야 그자를 살릴 수 있다.
고로 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너희를 구원키 위해서는,
직접 내 영의 몸을 던지는 희생만이
이를 가능케 하기에 그리한 것이다.
이는 너희는 지나가는 행인도 아니요,
내 진정 사랑하는 신부가 아니냐.
이런즉 내 신부가
죄의 깊은 진흙탕에 빠져 있는데,
내가 어찌 입으로만 외치겠느냐.
그 진흙탕에 직접 뛰어들어,
어서 구원해야 되지 않겠느냐.
고로 나는 구원의 총책임자로서
희생을 하는 것이다.
(주님, 지금의 저희 섭리인들은 성약역사의 선조이잖아요. 옛적 신약역사의 선조들의 희생으로, 신약역사의 발
판이 마련되고 꽃피운 것처럼, 저희도 그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부끄럽게도 저도 그렇지만 섭리의
많은 자들이, 과연 희생을 제대로 하며 살고 있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봅니다.)
그래.
너희는 성약역사의 선조들이다.
이 얼마나 복된 자들이냐.
너희 앞의 수많은 신앙의 선조와 열조들이 보고파 하는,
그 시대를 너희는 살고 있다.
즉 내가 영으로 재림한 시대이며,
나의 분체로서 구원의 역사를 진두지휘하는 선생을,
직접 육의 눈으로 보는 시대가 아니냐.
고로 너희는 복되고 복된 자들이다.
또한 그 어느 시대의 누구와도 비교가 안 되는,
신부 차원급의 역사의 시대를 맞고 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창조 목적이 이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고로 전에도 후에도 없는,
복되고 복된 시대의 주관권에 너희는 살고 있다.
즉 너희는 성약역사 주관권에 거하면서,
주관권의 최고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러므로 너희는 신부 주관권의 혜택만큼
신부급의 희생이 필요하다.
곧 주관권의 희생이다.
또한 너희는 사명자와 같은 동시대에 살기에
어느 시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성삼위가 선생 육신 통해
직접 전해 주어서 받은 자들이다.
곧 신부급의 사랑을
선생 통해 직접 전해 주었으니,
너희는 이제 이 사랑을
선생의 육신이 되어 전파해야 된다.
즉 성삼위와 선생의 사랑이 희생의 사랑이니,
너희도 이 희생의 사랑을 전해야
역사가 불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이 시대는 누구보다도 더,
역사를 이루어야 하는 소명의 시대이다.
이는 보낸 자가 살아 있는 당세이기에 그러하다.
고로 이 소명의 시대에는 어느 시대보다
희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모든 섭리역사는 성삼위도 보낸 자들도,
보낸 자들의 당세 때의 희생을 바탕으로,
역사가 창대히 펼쳐졌기에 그러하다.
특히나 너희는 또 성약역사 신앙의 선조이다.
이런즉 신앙의 선조는,
신앙의 부모와 같은 입장이다.
고로 부모가 자녀에게 희생을 해야,
자녀의 역사가 번창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므로 너희의 그 희생으로,
너희 신앙의 후손이 번창할 수 있는 것이다.
곧 지금 너희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너희의 육의 후손이
직접 복을 받을 자가 될 것이며,
영의 후손 또한 복된 자가 될 것이다.
이런즉 너희의 희생은,
성약역사의 복의 근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얼마나 가치 있고 위대한 희생이며
숭고한 희생이냐.
이러므로 희생을 피하지 말며,
어디에서든지 너희가 처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선생처럼 희생하여라.
또한 성삼위처럼 희생하여라.
그리하면 성삼위와 선생이 희생한
너희를 기억할 것이며,
하늘나라에서의 상도 클 것이다. 또한 너희의 영, 육의 후손들이 너희를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칭송할 것이다.
그리고 또 천국 성약성의 너희가 거할 처소도,
너희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좌우될 것이다.
이러므로 이 모든 것을 깊이 명심하여,
희생함으로 성약역사를 창대히 꽃피우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7만 선교 또한,
너희의 희생 여하에 따라 좌우됨을 온전히 알아라.
고로 너희 마음속에
나를 사랑하는 만큼 선생 사랑하는 만큼,
섭리역사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이 가득하길 바란다.
너희의 모든 희생을 나는 기억할 것이며,
그 위에 축복의 축복을 더할 것이다.
사랑함으로 희생을 한 성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