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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집회 말씀2013.03.16 (토)

생명의 날 정범석 rev 생신축하말씀

선포일
2013.03.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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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3월 16일 생신축하 말씀 > 말씀: 정범석 목사님 할렐루야.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밖에 앉아계신데 괜찮으십니까? 섭리만이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만나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시는 동역자님들,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이제 우리들 인생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기쁜 날이 신 거 아시죠? 오늘은 제가 여러분들에게 성령집회나 강의가 아니니까, 여러분들이 편안하게 오늘 선생 님께서 태어나신 기쁘고 잔치하는 날이니까, 즐거운 마음이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앉으셔서 잔치집 에 앉아계신 것처럼 편안하게 앉아계시면 됩니다. 사실 오늘 주인공이 되신 선생님께서 이곳에 오셔서 우리의 축하를 받으시고, 찬양받으시고, 함께 기뻐 해야 되시지만, 이곳에 계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참으로 우리가 표정 관리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웃 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그런데 우리 선생님께서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다른 분들은 “내가 고생 하면 너도 고생해 봐라.” 대개는 하는데. 사랑의 근본체이시고, 또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안 하시고 “애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면 같이 아프고, 배고프면 같이 배고프면 되겠느냐. 같이 슬퍼 하지 말고, 할 일 하고 먹을 것 먹고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오늘 아마 소문은 들 으셨는지는 몰라도 오늘 선생님께서 “특별하게 음식을 만들어서 다 먹도록 해라.” 말씀하셨습니다. 할렐 루야. 오늘 이 자리에 선생님은 보이지 않습니다마는 우리 성자 주님과 선생님께서 함께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영육 간에 늘 함께 해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저희가 이 자리에 나온 것은 달리 나온 것이 아니고, 선생님께서 내가 어떻게 태어나고 여기 와서 어떻게 살게 되었는가 하는 써서 보내 주셨습니다. 제가 가족이기 때문에 아마 “그 사연을 전해 주어라.” 말씀하시면서, “내가 미처 이 글을 쓰다가 빠진 것 있으면 보태서 이야기를 하고 또 몇 마디 이야기도 좀 전해 줘라.” 이렇 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그러면 선생님께서 보내 주신 사연을 여러분들에게 전해 드리는데 이 사연이라 고 하는 것은 예전에 선생님께서 태어나시기 전 할아버지 이야기, 이런 것들이 나오기 때문에 이것을 여러분들이 적었다가 무슨 역사책을 보듯이 고증을 하고, 사전을 찾아보고, 인터넷을 찾아보면 안 나옵 니다. 그런 것들은 어떤 물리적인 것을 떠나서 큰 흐름 속에서 섭리라고 하는 큰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선생님이 보내주신 귀한 말씀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편지말씀 『선생 생일을 통해 몇 가지 제자들이 알아야 될 것을 말해 주겠다. 이곳은 선생의 어머니, 아버지, 할 아버지, 할머니가 태어나고 이런 고향이 아니다. 하나님과 성자와 성령님이 선생 당세 때부터 이 곳에서 나게 하고, 자리를 잡은 터전이다. 우리 민족이 국운이 기울어져서 일본 속국으로 40년 동안 있을 때 그 환란으로 인하여 이 곳으로 할아버지가 오게 되었다. 일본 사람들이 통치할 때 감람산 명막골에 금 이 많이 나서 금을 수백관씩 캐갔다. 큰 아버지가 이 월명동에 광산일을 하러 왔다고 한다. 그 무렵 공 주가 고향인 할아버지는 고종왕을 모시면서 암행어사를 하셨고, 고종왕과 명성황후를 충신으로 받들었 다. 그 때 고종이 할아버지에게 평양감사를 하라고 했어도, 왕을 모시고 살겠다고 하여 고종이 “평양감 사도 제 하기 싫으면 못 한다.” 고 했단다. 계속 그렇게 고종을 모시고 있다가 일본 사람들이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그 현장을 목격하고,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뜻을 돌려 암행어사할 때 알게 되었던 진산에 이미 고인이 된 박승호씨 선친에게로 오게 되었다. 그에게 오니 여기 있으면 불안하니 묵살리 한둔산 기슭에 가라 하셨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는 묵산리 한둔산 기슭에 사는 박병률 씨를 소개해서 거기서 은둔생활을 9개월 동안 하셨다. (대둔산을 가 다 보면 우측편에 한둔산이 있습니다.) 선생이 동창집에 인사하러 갔다가 동창 아버지가 자세히 가르쳐 주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할아버 지가 그런 일을 한 줄 몰랐다고 했다. 다른 말은 안 하고, 입 다물고 그냥 요양을 왔다고만 한단다. 그 후 할아버지가 큰 아들이 광산하는 월명동으로 옮기셨다. 월명동으로 옮겨와서 옛날 초가집을 3원 주고 사서 자리를 잡았다. 그 때 황소 한 마리 값이었다. 옛날 초가집은 150년 된 집이다. 이 사진에 나오는 집이다. (그런데 이건 사진은 아닙니다. 선생님이 고증을 해서 화가를 통해서 그렸습니다. 혹시 여러분 들 중에 선생님 태어난 생가 사진 가지고 계신 분 선생님께 보내드리면 선생님께서 아마 큰 상을 내리 실 겁니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큰 아버지도 여기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생을 낳고 뜻을 펴시러 이 동시킨 것이었다. 여기 월명동에 와서 선생 당세에 형제들만 이곳에서 태어나서 선생 형제들만 이곳이 고향이다. 어머니도 고향이 교촌리이시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공주시다. 고종 때 왕이 할아버지에게 “ 너 선조를 모실 선산 땅이 있으냐?” 하니 할아버지가 “없습니다.” 하니 “고향 근방에 산이 있으면 이야 기해봐라.” 해서 “계룡산이 옆에 있습니다.” 하니 고종이 “계룡산 근방을 너희 선조를 모시는 선산으로 하라.” 할아버지에게 하사하시어 할아버지에게 속한 모든 자손들이 그 땅을 관리하며 논밭을 만들어 농 사하며 살았다. 그 후 일본인들에게 뺏기고 말았고, 해방 후 국고로 넘어가고 지금은 산기슭에 전답을 6촌들이 지금도 주인이 되어 농사를 짓고 있다. 고로 월명동은 하나님이 선생 당세에 형제들만이 고향이 되게 하셨다. 인석 형, 광석 형, 선생, 영자, 범석, 용석이 고향이다. 규석이는 피난가서 교촌리 가서 낳았기에 기록을 어떻게 하냐고 성자께 물으니, 성자가 이 글을 쓰게 하신 3월 초에 “임신은 월명동에서 했으니 여기가 고향이라 해도 당연하다.” (아마 규석이 형님이 어머니 옆에 계셔서 못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주워 왔나?” 생각했을 거여.) “정주고 사랑주고 산 곳이니 이 곳이 규석이도 고향이다.” 하셨다. 고로 6형제 의 고향이다. 6수는 사탄수가 아니다. 창조가 6일에 끝났다는 수요, 모두 끝났다는 수다. 사탄에게 쓸 때는 “이 잡놈, 너는 끝났다.” 라는 입장의 수이다. 하늘이 볼 때 모두 할 일을 끝냈다는 수다. 선생 생일도 음력으로는 2월 3일, 양력으로는 3월 16일이다. 조은이는 전초로 전야제로 선생 생 일 3일전 3월 13일날이다. 해외에서 청중과 같이 있지 않으니 늘 선생 생일을 잊었었다. 조은이가 “내 생일이예요. 축복기도 해 줘요.” 하면서 “선생님도 3일 있으면 생일이예요.” 해서 기억했다. 조은이 생 일을 기억을 못 하면 선생 생일도 잘 잊어 버리니 성자가 “꼭 생각하고 축하해 주라.” 고 했다. 선생 생 일이 3월 16일인데, 그 동안 3월 17일이 생일이라 기념하니 일본 제자들이 “왜 17일날 해요? 17일이 선생님의 생일이예요?” 하고 해조에게 물어서 아니라고 하니까, 당세에는 이해하지만 후대에 선생님 생 일을 예수님 생일같이 모르면 어떻게 하냐고, 일본 제자들이 묻는다고 해서 편지가 해조에게서 왔다. 그 래서 “정식으로 해야지. 섭리나간 자들이 사탄수 6수라고 피한다고 그리 했구나.” 하고 올해부터는 나흩 날로 하라고 했다. 다음 이야기를 하겠다. 성자 생일날 선물로 모두 앞에 사연도 말씀하셨고, 지금 말하는 뒤에 사연도 해 주신 말씀이다. 우주가 여자라면, 지구는 여자의 금단의 과일과 같다. 그래서 생명의 땅, 지태라고 했다. 하나님이 지구를 사랑체로 땅도 만들고, 생명들의 세계로 그리 사랑하신다고 하셨다. 축소해서 지구를 여자로 볼 때 지구 중앙은 나라 중에 한국이고, 한국의 중앙지인 월명동은 여자의 금단의 과일이다. 월 명동의 그 모양과 형상을 보아라. 여기가 성약 에덴동산이다. 제 1에덴은 이스라엘이고, 재림 때 에덴은 이 곳이다. 여기서 마지막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고, 성자 재림을 맞는 신부가 첫 번째 부활되었다. 여기 서 하나님과 성자와 성령님의 사랑의 역사가 일어났다. 여기가 창조목적의 최종 결승전 뜻이 일어난 곳 이다. 여기가 성자 재림의 알파와 오메가다. 시작과 끝이다. 그래서 여기가 지리적으로 모양과 형태가 이같이 생겼고, 하늘의 신부가 나게 되고, 이곳으로 선조 할 아버지를 환란 때 이동시켰다. 하나님과 성자와 성령님의 뜻이 신비하지 않느냐. 전능자 삼위체의 역사 를 너희가 보면 세상적으로 얽힌 사연대로 보고 풀었지만, 하나님은 성자와 함께 계획적으로 뜻이 있는 이 곳 월명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냥 이야기를 들으면 우연 같지만, 계획적으로 성약전을 짓고 성자의 신부를 낳기 위해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선생 가문의 뜻 같았으면 선생의 아버지도 혼자 남아 이곳에 서 안 살았다. (여기서 선생님께서 우리 아버지의 형제들이 두 분이 더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분들이 작은 아버지는 일본으로 가셨고, 큰 아버지는 이제 식구들과 함께 대구로 가셨습니다. 그 때 가실 때 아버지께서 굉장 히 많은 금을 캐셨어요. 그래서 큰 형님, 둘째 형님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진산에서 금을 갖고 오실 때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찾아오신대요. 그래서 나오라고 해가지고 예전에는 큰 가방이 있었 어요. 지금 보스톤 back 한 4배 만한 가방이 있었는데, 거기로 돌을 잔뜩 넣고 오셔 가지고 지게에 짊 어져 주면서 지고 가라고. 그런데 그 말씀을 형들이 하시면서 "참 아버지가 그 때 보면 답답하신 분이 시다. 돈 조금 줘서 일꾼사서 짊어지고 가게 하면 되는데 왜 우리들을 짊어지고 가게 했을까." 이런 말 씀들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그 돌을 다 훔쳐서 큰 아버지가 작은 아버지가 다 가지고 갔습니다. 금까 지. 그래서 굉장히 많은 어머니, 아버지가 고생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 고생을 많이 하시면서 여기서 계 실 때 이미 그 때는 다시 금광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곳에 광산이 폐광되어서 만약 에 광산을 해서 살림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런 터전이 없었죠.) 그 때 광산도 폐광되고, 돈은 형제들이 다 가지고 갔다. 모두 혈통들이 떠나는데, 선생 어머니와 아버 지는 안 떠났다. 할아버지도 떠나고 다 떠났으나, 선생 아버지 식구만 하나님이 남기셨다. 전능자 하나 님이 뜻이 있는 자만 남기고 모두 보내고, 1945년에 선생을 낳았고, 그 해 40년 만에 일본으로부터 해 방되었다. 전능자 하나님이 이같이 성자와 함께 뜻을 펴 이야기 전체를 들어보니 깨달은 것이다. 조상들 이 터를 잡은 이 좋은 산수가 아니다. 하나님과 성자가 자리잡은 이 좋은 월명동 산수다. 선생의 조상들 은 고향이 공주였다. 선생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공주에다가 터를 잡았고, 선생을 성약의 조상으로 잡으려 이곳에 터를 잡게 하셨다. 선생이 성약 역사에 조상이 되어 이 곳 성지땅에 터를 잡은 것이다. 성자는 모두는 이를 깨닫고 알고 써야 된다고 하셨다. 오늘은 여기에서 마치자. 이 모든 말씀이 3월 초 에 월명동을 주셔서 감격감사하다고 기도할 때, 버뜩 눈을 떠서 벽에 월명동 사진을 보게 하면서 성자 가 이 곳을 어떻게 섭리하였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신 말씀이다. '비로소 이 날 선생은 이같이 되었구나. 에덴동산에서도 아담이 신앙의 조상으로 주인이 되었구나.' 하 고 알게 되면서 아담의 아버지는 딴 데서 살았다는 것을 겹쳐 알게 되었다. 신약의 조상 예수님이 난 곳 베들레헴은 신약의 에덴동산이 되었다. 성약의 조상이 여기 월명동에서 태어났고, 여기서 인봉을 떼 고 여기서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 휴거의 역사 곧 하늘을 뚫는 역사가 일어났다. 여기가 성약의 에덴동 산이다. 구약의 에덴도, 신약의 에덴도, 당세 때는 잡초동산이었다. 성약만 당세에 이상 동산이 되었다. 10년 가고, 100년 가면, 많은 모습이 변한다. 물론 선생이 해 놓은 것은 그대로 있다. 선생은 할아버지 를 보고 자랐다. 공주에 사시면서 월명동에 오고가고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공주에서 진산 공동묘지로 옮겼다. 선생이 늘 형제들과 묘에 풀을 깎아주고, 그 후 횟골로 옮겼다가 선생이 아버 지와 형제들과 의논하고 성자가 자리잡은 지금의 자리로 묘를 옮겼다. 아버지의 묘 옆에 있다. 조산이 다. 성자의 평강을 빌며 여기서 마치자. 모두 잘 쉬다 가거라. 목회하면서 정신 짐도 피로도 다 이런 때 풀고 가라 안녕. 선생.』 잘 들으셨습니까? 원래 이런 것이 굉장히 까다로운 말씀이예요. 왜냐하면 자칫 잘못 하면 선생님의 탄 생이나 이런 것들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선생님께서 "생각나는 대로 더 하라." 말씀하셨지만, 상당히 제 가 원문을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오늘도 선생님께서 월명동 전체의 사진을 들고 나오시면서 말씀을 하 셨는데, 아무튼 선생님께서 내가 가족이니까 가족에 대해서 몇 말씀 하라는 말씀도 있으셔서 제가 이 자리를 빌어서 여러분들께 그 동안 저희 가족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전 해 드립니다. 특별히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는 것은 저희 어머님이 계신데, 여러분의 어머니 이상으로 기도해 주시고 특별히 옆에서 손발이 되어서 수발해 주시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일일이 인사를 드리지 못 하고, 저희 가족들도 이렇게 하지 못 해서 이 자리를 빌어서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도 이제 오늘 이제 선생님을 뵈면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부모님들 건강을 염려하고 돌아가시는 것을 염려했는데, 이제는 너희들 걱정할 때가 되었다.” 이 말씀을 하셨어요. 그 때 제가 지금 느끼는 것이 그렇습니다. 제 나이가 지금 우리 나라 나이로 61세인데, ‘아 나도 아제는 죽을 자격이 되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냐하면 60이 넘으면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이것은 통상적인 이야기죠. 오늘도 선생님을 이렇게 뵈면서 세월이 흘러 감을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이제 30년이 넘는 세월을 선생님과 함께 왔습니다. 수없이 그동안 겪으면서 많은 사연이 있었고, 또 내 인생을 통해서 선생님을 통해서 선생님의 위대함과 그리고 인생의 어떤 보람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고, 진정한 인생의 삶이 무엇 인가를 배웠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인생살면서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여러분들 아시겠지만, 섭리 길 온다고 해서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그 동안에 저도 사람으로서 겪지 말아야 될 그런 치욕적 이 일도 있었고, 듣지 말아야 될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이제 근본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무엇이었냐면 ‘과연 나라는 존재가 무엇 때문에 여기 서 있고, 왜 존재를 하 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그 때마다 늘 제가 생각했던 것은 뭐냐면 ‘내가 존재하는 것은 선생님 때문에 존재한다.’ 는 기본적인 생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저의 신앙의 기본의 모토가 순종이기 때문에 오직 선생님때문에 내가 살아 야 된다는 존재 이유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직까지도 이 자리에 있습니다. 사실은 저도 돌이켜 보니까 20년 동안을 월명동에서 이렇게 해 왔는데, 여기서 겪은 일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여튼 저도 인생을 이렇게 월명동의 삶과 섭리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느끼는 것이 뭐냐면, ‘그래도 내가 지금 까지 잘 버티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 어떤 수없이 많은 역경 과 고통과 시련이 있었지만, 어떤 순간에도 선생님께서 저에게 주어 주신 일을 놓치는 않았습니다. 아무 리 힘들어도 내가 어떤 때로는 사람이기 때문에 포기하고 아예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내 삶이 존재하는 전부가 선생님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힘이 들어도 고통스러워도 사실은 ‘월명동에 와 서 제 자리를 지켰던 것이 참 잘 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자꾸 어려워질 때마다 성경에 ‘첫사랑을 잊지 말아라.’ 해서 제가 선생님과의 사연이 있어요. 이 역사를 하기 위한 사연이 있는데 그걸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 지금도 일년에 몇 번씩은 꼭 편지를 써요. 어 떤 편지를 쓰냐면 동일합니다. “선생님이 주인이신데, 주인는 말을 타고 가다가 지치면 말을 바꿔 타야 합니다. 언제든지 새로운 말을 바꿔 탈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니 선생님, 나는 선생님 앞에 부족하고 필요가 없으시면 언제든지 버리는 휴지처럼 버리는 사람이 되면 됩니다.” 라고 일년에 몇 번씩 편지를 보냅니다.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사람은 나이를 먹고, 게을러지고, 힘이 없게 되고, 인생이 힘 들어지게 되면, 본래의 위치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에 그런 편지를 요즘에도 쓰는데,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사실은 여러분들이 저에게 많은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인사하시고 “힘내시고. 기도합니다.”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번에도 체육부 때문 에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봤지만 강원도나 전라도, 경상도 변두리에 있는 교역자님들이 10명도 채 안 되 는 교인들을 붙잡고 목숨걸고 매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섭리의 희망을 봅니다. 이러한 분들이 10 년, 20년을 나름대로 목숨을 걸고 섭리 지켜 주는구나. 몇 분 안되는 그 생명을 귀하게 여기면서 몸부 림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섭리의 희망과 비전을 봅니다. 저는 그런 분들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 니다. 제가 예전에 선생님께서 이태리 계시고, 저는 미국에 있을 때 저도 갈 곳이 없었습니다. 남의 후 배집에서 젖방살이를 하고 있었을 때인데, 그 때 선생님께서 독일에 일이 있어서 잠시 오라고 했는데 어떤 학생이 저에게 200불을 쥐어주면서 선생님께 전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학생에 게 물었습니다. 너 나이 몇 살이냐고 했더니, “20살인데 이쪽으로 와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신입생 이었어요. “제가 가진 것이 이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 전해드려 달라고. 저는 그러한 학생 모습 속에서 섭리의 비전을 봤습니다. 아무튼 여러분, 우리 동역자님들, 여기 지금 얼굴을 면면히 보면 제가 눈이 어두워서 그런지 다 젊어보 이는데 벌써 머리가 가까이서 보면 히끗히끗해요. 참 오직 아는 것이 선생님만 알고, 성자 주님만 알고, 열정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들도 나이를 먹어 가니까 자꾸 힘이 빠지고, 예전보다 다르 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50이 넘으면 좀 감각이 둔해진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여기 우리 목사님도 계신데, 저는요. 이것을 이 말씀을 듣고 저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는 말씀이다.” 믿습니다. 이 돌이 굴러가지 않으면 이끼가 끼지 않습니까? 너희들이 가만히 있으면, 이끼가 끼니까 이끼가 끼지 않도록 굴러 다녀라. 그래야 너희들이 내가 나갔을 때 함께 일할 수 있지 않느냐. 그 동안 너희가 고생 하며 힘들게 쌓아왔던 고통, 그리고 섭리의 교회를 지키고, 주님의 생명을 지켰던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나와 함께 할 것이 아니냐. “지금 벌써부터 어제와 다르네?” 이런 말씀을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는요. 우리는 선생님이 희망입니다. 유일하게. 왜 희망이냐면 선생님께서 나이 60먹으면 은퇴가 60살이 라고 하셨으면, 저는 벌써 희망이 깨졌죠. 그런데 선생님께서 “나는 70대도 축구할 것이다.” 말씀하셨습 니다. 그러니까 70세도 축구하겠다는 그 말씀이 우리에게는 희망이죠. 저는 여기에 계신 지도자님들이나 여기 어르신들 계시잖아요. 주필승 목사님도 계시고, 어른들이 다 계 시잖아요. 우리가 섭리를 오기까지 말씀을 듣고 있는 세계에 계신 분들이 아셔야 될 게 뭐나면, 여러분 들이 지금까지 오신 것, 큰 일을 못 하고 큰 어떤 공적을 못 세우고, 전도를 못 했다고 할지라도, 여러 분들이 그렇게 방송에 나고 가정에서부터 학교에서부터 직장에서부터 악평을 들어가면서 이겨 오신 여 러분들이 승리자입니다. 그것이 대단한 겁니다. 그것을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 어떤 역경과 고통이 오더 라도 선생님이 오시는 그 날을 희망을 삼고 뚜벅뚜벅 걸어가시면, 우리 주님께서 선생님을 더 일찍 우 리 곁에 보내주시지 않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우리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부모님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자식에게 원하는 것이 좋은 집을 져주고, 좋은 차 사주는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부모고 그렇습니다. 자식 이 건강하게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선생님께서 우리 신앙이 걱정하고, 육신도 건강해서 선생님 오실 때 까지 완전한 몸을 만들어서 휴거되기를 바라시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선생님께 가장 크게 선물을 드 려야 할 것은 우리 선생님께서 성자 주님과 함께 우리에게 숙제를 주셨잖아요. 7만선교. 이것을 우리가 선물로 드리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 아니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하나되어야 합니다. 저 어린 아이에서부터 가장 연세가 드신 어른까지 하나되어야 되고, 교역자와 장로님과도 집사님과도 모든 분들이 하나되어야 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그렇지 않으면 역사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어떤 서양의 철학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을 뽑으라면 충고다. 가장 어려운 것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했습니다. 우리가 남에게 충고를 하기 전에 먼저 ‘나는 잘 했는가. 나는 완벽한 인간인가.’ 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시기를 당부합니다. ‘니가 잘못 했느냐. 지금까지 섭리사에 무엇을 했느냐.’ 를 따지기 전에 나는 섭리사에 선생님께 무엇을 해 드렸는가를 돌아볼 수 있 는 여유를 가질 때, 우리 섭리가 하나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섭리 가족 여러분, 우리들이 이제 섭리 의 뜻 하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휴거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든 자 기의 생각과 가치관과 방법과 경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온전하게 주님께 내 몸을 맡겨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듯이,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그 순간에 순종하고 선생님께서 하나님께 순 종하신 것처럼 우리도 어떤 이해되지 않는 말씀을 하실지라도 내 자녀를 내놓으라고 할지라도 섭리를 나가라 할지라도 순종했을 때 거기서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고, 정말 우리 섭리가 이번 선생님의 생신을 통해서 모두 하나되고,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7만 선교를 이 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선생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생일선물이 아니겠는가. 자, 오늘 저는 섭리의 모든 분들이 저희 가족들과 또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해 줘서 감사를 드리고, 물론 선 생님께는 당연히 우리가 기도를 해드려야 되지만 저는 역시 제자와 형제라는 혈육관계이기 때문에 여러 분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잘 따라주시고 기도하시는 그 모습 속에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형님 말씀에 저렇게 순종을 하니까 섭리가 늘 잘 되고 있구나.’ 생각을 하고 있고, 여러분들에게 큰 사 랑의 빚진 자로서 살아가려고 늘 다짐을 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언제까지 일할지는 모르나 일하는 과정 가운데서 여러분들 불편하게 하거나 힘들게 할지라도 저의 본의가 아니라는 것을 아시고. 이번에 제가 어느 지역에 갔는데 어떤 분이 오셨어요. 교역자님이. 누가 어떤 분이 편지를 하셨대요. 제가 옛날에 잘 모르고 욕을 하고 그랬다고 해서, 제가 교역자님께 “사실 저는 욕을 했는지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 는 다 잊어 버렸는데 자꾸 이런 거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했습니다. 아마 이 말씀을 들으시는 분들 중 에서 저에게 꺼림찍한 분들이 계실지 모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당부를 드리지만, 다시는 그런 생각 하지 마십시오. 저도 그런 생각 안 할 것입니다. 모쪼록 그 동안 수고해 주신 섭리의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특별히 저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아 직도 선생님을 한 번도 뵈지 못한 교역자님도 계시고 지도자님이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선 생님만 붙들고 가시는 여러분 속에서 우리 선생님은 희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더욱 더 열 을 내서 사랑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냐 면 선생님의 철학이 뭐냐면 다른 사람은 작은 나무를 키워서 오래 오래 하시는데, 우리 선생님께서는 큰 나무를 심어서 월명동 계발할 때 선생님 계실 때 영화를 보게 하셨습니다. 저는 섭리 모든 사람들이 하나되어서 우리에게 또 선생님께 씌워졌던 굴레 이단이라는 꼬리를 잘랐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살아계 셨을 때 잘라버렸으면 좋겠다. 우리가 옳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으면 좋겠다. 여기에는 어린 학생들도 있습니다. 우리 조카 녀석도 저기 있는데 이제 중학교 1학년이예요. 이 아이들 이 우리가 그러한 이단의 꼬리를 끊어 버리고, 이 세상 가운데 우리가 ‘옳다.’ 라는 것을 제대로 세워 놓 지 않으면 저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신앙을 지키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어른들 하시는 말씀이 죽 어서 제사 잘 지내면 뭐 하냐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선생님 살아계셨을 때 활기있게, 어디 가서도 네 팔을 벌리고 휘젓고 다닐 수 있도록, 잡초가 가시나무가 우거진 이 세상을 이 말씀으로 정리해서 푸 른 초장으로 만들어서 우리의 후손들이 마음놓고 섭리를 펼 수 있는 그 때를 우리가 만들었으면 좋겠 다. 우리가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고, 품어주고, 선생님 말씀처럼 자식 을 품어 주듯이 품어주는 너그러운 주님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우리는 충분히 할 수 있습 니다. 우리 선생님이 계시고, 성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섭리 가족 여러분, 우리들이 빨리 하나되어서 이러한 역사를 이룰 때 우리 선생님께서 빨리 이 곳으로 오실 줄 믿 습니다. 그 동안 섭리를 위해 수고해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대단히 고맙 습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참 저는 어디를 가거나 선생님 말씀을 하면은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자, 오늘 사랑하는 선생님을 위해서 박수를 한 번 칠까요? 아니면 만세를 세 번 부를까요? 뭘 하면 좋겠습니까? 만세요? 그렇습니까? 그러면 다 같이 일어나서 ‘만세’ 한 번 밖에 분들도 들리십니까? ‘만세’ 부르는 겁 니다. 자, 그러면 다 같이 ‘선생님 만세’ 를 세 번 부르고, 기도하고 마치겠습니다. 선생님 만세. 선생님 만세. 선생님 만세. 자, 후련하시죠? 기도하겠습니다. 자, 사랑하는 선생님을 위해서 다 같이 기도하겠습 니다. 마침기도) 살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는 선생님이 계실 때는 선생님을 부르면 기 쁘고 즐거웠지만, 지금 오늘 선생님을 부르면 눈물이 나옵니다.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그 동안 우 리 선생님께서 우리들을 얼마나 품어 주시고 용서하시고 함께 해 주셨는지를 저희들 스스로는 알고 있 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저 곳에 계시는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아니 나올 수가 없습니다. 오늘 선생님께서 태어나신 날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드셨는지 조차 우리들은 알지를 못 합니다. 그 여락한 환경에 계시면서도 선생님을 축하해 주러 온 우리들을 그 냥 보낼 수 없어서 음식을 대접해 주라고 말슴하셨습니다. 이 크나큰 선생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우리도 선생님 사랑하고 선생님께서 원하시는 것처럼 하나되고 품어주어서 이 땅에 하늘의 역사를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우리 약속합니다. 우리 하나 되어서 주님이 원하시는 선생님이 원하시는 7만 선교를 꼭 이루겠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품어 주겠습니 다. 그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크나큰 역사를 이루겠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선생님, 그 원하시는 그 모든 것을 풀어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이렇게 선생님을 통해서 성자 주님께서 선생님께서 태어나신 비밀을 풀어 주셨습니다. 월명동 땅이 얼마나 귀한지 어떤 역사를 이루어졌는지를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선생님을 만난 것을 자랑스럽게 귀하게 여기고, 증거할 수 있기를 기 도하오니 우리에게 베드로같은 능력주시고, 스데반같은 결심을 할 수 있도록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세계에 흩어진 섭리 가족들 가운데 주님께서 뜨겁게 역사해 주셔서 우리 모두 일어나길 기도합니 다. 사랑하시는 주님. 저희들의 중심을 아실 것이오니 원하시는 것을 아실 것이오니 주님 우리 사랑하는 주님 선생님을 우리 곁으로 보내 주시옵소서. 오늘 선생님 혼자 외롭게 지내시는데 주님 다른 날보다 더 함께 하여 주시고, 더 붙잡아 주시고, 더 위로해 주시고,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선생님 우리 다 잊어 버리고, 편안한 하루를 보내시길 기도드리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섭리 가운데 불러 주심에 감사하고, 사랑하시는 아버지 저희들 부족한데 사명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어떤 고통스러운 일과 서운한 일이 있을지라도 일어서서 선생님께서 가시는 길을 평탄케 해드 릴 수 있는 지도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 지금까지 섭리 지켜 주시고, 우리 대신 하여서 선생님 지켜 주셔서 감사드리옵고, 우리 선생님 축복하여 주시고, 건강 지켜 주시옵소서.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 70이 넘어도 너희들과 같이 축구하신다고 하셨사오니 우리 선생님 강건하게 지켜 주셔서 우리 선생님 저희들과 축구할 수 있게 강건케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도 함께 해 주시고 저희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섭리 가운데 올 새로운 생명까지도 영원까지도 함께 해 주시기를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 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