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3.03.22 (금)
2013년 3월 22일 선생님 명설교
- 선포일
- 2013.03.22 (금)
- 성경 본문
- 딤후 3: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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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2일 선생님 명설교.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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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2일 선생님 명설교(2004년 4월 18일 주일말씀)
감동의 빛을 발하라
본문: 딤후 3:16-17, 고전 12:3
다시 주일 단상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2004년 4월 18일 주일입니다. 온 세
계가 모두 이 단상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저 역시 여러분을 기다렸습니다. 말씀을 받
아도 전할 곳이 있어야 되니까 온 세계의 하늘을 시대에 좇고 따르는 사람들을 기다
렸습니다.
먼저 인사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새로 온 사람들을 환영하고, 그리고 오늘 주일을
지키러 온 사람들을 환영합니다. 오늘 또 주일을 지키러 안 온 사람들이 있네요.
그러면 순서에 의해서 성경 말씀을 먼저 봉독해야 되겠습니다. 성경 말씀을 봉독하
고 이어서 전체 찬양을 할 것입니다.
성경을 선생님이 직접 봉독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사회도 보고 다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몇 군데 있습니다. 봉독한 것 외에는 설교 말씀 가운데 할 테니
까 여러분이 찾아가면서 하면 되겠습니다.
신약 디모데 후서 3장 16절에서 17절까지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
하기에 유익하니라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
전케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 전서 12장 3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
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
느니라”
이제 우리 모두 기립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찬양을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해당되는 말씀으로 찬송을 찾았습니다.
오늘 주제 말씀은 ‘감동의 빛을 발하라’입니다. 오늘은 감동과 성령님에 대한 이야
기가 많이 나올 것입니다. 성령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니까 찬송가도 이에 맞는 것을
찾았는데 바로 179장입니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감동해주셨네.” 이런 내용입니
다. 그러면 바로 지휘에 들어가겠습니다.
♪ 이 기쁜 소식을(2절까지)
1.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큰 환난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주 믿는 성도들 다 전할 소식은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
2. 만왕의 왕께서 저 사로잡힌 자
다 구원하시고 참 자유 주셨네
승리의 노래가 온 성에 들리니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
이제 지휘 마쳤습니다. 그러면 다시 단상으로 올라가야 겠네요.
다시 단상에 올라왔습니다. 모두 앉았지요? 그러면 제한된 시간 안에서 다시 말씀
을 전하겠습니다.
오늘은 봉독한 두 군데 말씀을 중심해서 주제는 ‘감동의 빛을 발하라’입니다. 다 같
이 따라 하겠습니다. “감동의 빛을 발하라!”
그렇게 따라 하게 되면 외워지게 되고, 암기 되게 됩니다. 주제를 통해서 역사가 일
어나기 때문에 적어도 그 주의 주제만큼은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오늘 처음 오신 신입생들 환영합니다! 그리고 모두 멀고 가까운 길에 왔는데, 하나
님의 귀한 말씀을 다시 듣고 큰 은혜 받고 감동받고 감화 받는 날이 되기를 주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천천히 할 테니까 잘 들어봐요.
먼저 고린도 전서 12장 3절에 있는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
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예수님 시대 때 예수님을 저주 받았다고 했습니다. 저주 받은 자식, 저주 받은 놈,
잘 죽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왜 죽인 줄을 모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죄인이라 해도 죽여서는 안 됩
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에 유대 종교인들은 그를 죽이면 안 되게 되어 있습
니다.
“너,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니까 죗값을 받아야 돼. 회개하고.” 이렇게 하고 거기서
끝나야 됩니다. 데려다가 저주하고 죽이고 했으니 잘못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무
잘못 된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두고 “저주 받은 자, 잘 죽은 사람.” 이라 하고, “우리는 잘 죽인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라 했습니다. 감동으로 쓰여졌다는 말
이 무슨 말인가 조금 있다 나올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
로 쓰여졌는데, 하나님의 지시로 쓰여졌는데 사도 바울이 고린도 전서 12장 3절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에는 예수를 반대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는 이단이다. 죽일 놈이
다.” 했는데 그 후에 예수님의 영으로 깨우침을 받고 근본을 알고 보니 그것이 아니
더라는 것입니다. 본질을 찾고 보니까 예수님이 메시아가 맞았습니다. “예수가 저주
받아서 죽었다. 잘못해서 죽었다.” 했는데 그것이 아니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썼습니다. 고린도 전서를 쓸 때 감동으로 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고, 하나님이 감동을 받고, 바울 선생 자신같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본심의 감동을 받고 말하는 자는 절대 예수를 저주받을 자라 하지 않는다 했습니다.
저주받을 자라 하는 것은 너희 스스로 사탄의 주관을 받고 악한 마음으로 잘못된 마
음으로 잘못 깨닫고 하는 말이지,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하나님의 말을 듣고 하나님
의 근본을 깨닫고 말하는 자는 예수를 저주받을 자라, 저주 받아 죽은 자라 이렇게
결코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깨달았으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저주 받은 자라고 하지
는 않는데, “예수님은 그런 예정에 있었기 때문에 죽었다. 이 세상의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안 떨어지고 그 생명이 죽지 않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허
락해서 죽었다. 만인의 죄가 있는데, 그냥 해서는 도대체 그 죄를 감당 못 하니까 자
기 메시아를 죽임으로 인해서 대신 죗값을 치루고,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게 만들어
서 구원받게 했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정됐다. 그 죽음이 악한 자들 때문에 죽었다.”
이렇게 예정으로 못 박습니다.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예정대로 죽었
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죽으러 오지 않고 온 인류를 위해서 구약
에서 예언한 이상세계, 하나님의 뜻을 펴고 온 인류에 복음을 전해서 바로 지상에 천
국을 이루려고 왔는데,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자들이 신약의 성경 말씀대로 옛날
의 선지자들을 모르고 죽이듯이 예수님도 모르고 죽였다.” 이렇게 푸는 것입니다.
어떻게 풀어야 예수님이 좋아하고 하나님이 좋아하며 원 근본의 말씀이겠습니까.
성경을 다른 인식을 가지고 보니까, 예수님이 죽으러 온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어
렸을 때부터 목사님들이 “예수님은 죽으러 왔다. 우리 죄를 위해서 대신 죽었다. 예정
대로 죽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컸기 때문에 그런 눈으로 성경을 보니까 그렇게
읽어지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어렸을 때 그렇게 배웠어도 열네 살, 열다섯 살 때 바로 성경을 읽으면서
그것이 아닌 것을 다시 알았습니다. 혹시 내가 기도 생활 안 하고 산에 가지 않고, 집
에 있으면서 스무 살, 서른 살까지 계속 교회에 다녔으면 성경을 읽어도 그렇게 밖에
이해를 안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물이 깊이 들지 않도록 나를 빨리 빼낸
것입니다.
밥을 먹다가 김치 국물이 묻었을 때 바로 가서 빨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오래 돼서
빨면 잘 안 빨아집니다.
이와 같이 선생은 바로 거기에 물들지 않고, 기성에 물들지 않고 바로 어렸을 때부
터 말씀을 파고들고 직접 내가 인식했습니다.
교회에 전혀 안 다니던 사람이 처음으로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이 죽으러 왔다고 안
풉니다. 이미 고정관념에 차서 그릇된 인식관으로 교육을 받았기에 그렇게 풀기 때
문에 그렇게 푸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하지 않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령의 은
혜를 받고, 하나님의 신의 감동을 받고, 성령님의 감동을 받고 하는 자라야 “예수는
주다. 그리스도다. 온 인류를 구원하러 왔다. 메시아가 맞다.” 이렇게 해진다는 것입니
다.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않고 그냥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사도 바울이 했는고 하니, 자신도 성령으로 감동받고 주라는 것을 알
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감동받고 행한 일을 쓴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울 자신
도 성령으로 감동받고 예수님을 ‘메시아다, 그리스도다, 온 인류가 기다리는 메시아
다.’ 이렇게 시인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말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성령으로 감동 받지 않고서는 예수를 메시아라 감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 예수님도 그러했고, 이 시대도 마찬가지로 메시아는 하나님이 감동
을 시켜서 근본으로 메시아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예수님 때처럼 마찬가지로 성령으로 감동받지 않았기 때문에 “저 사람
잘못이 있어서 저렇게 고통 받았다. 저 사람 죄 값 때문에 저렇게 되는 것이다. 저 사
람 죄 때문에 고통 받고 있어.” 그렇게 합니다.
선생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어려움을 당하니까 한 동안 그랬습니다. “선생님의 죄
값이다. 우리들이 죄를 지어서 죄 값이다.” 그랬는데 성령으로 감동받고 하는 사람들
은 그렇게 안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의 감동을 받고, 하나님의 온전한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안 그럽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을 하나님이 줘서 전하게 했는데, 그것이 저주 받아서 그랬다
그러겠습니까. 무지한 자들로 고통을 받았다고 풀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과 감화로 된 것으로 바르게 함과 사람을 교육하기에 유
익하며 아주 적절한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이라 했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감동시키는데, 감화시키는데, 교육하는데, 바르게 만드는데 온전한
말씀이라고 디모데 후서 3장 16절에 나옵니다.
이 시대 사람도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
도를 저주 받아서 저렇게 고통을 받는다 하는 그런 이야기를 감히 못한다는 것입니
다.
자기 육성에 의해서, 사탄의 주관을 받아서, 마귀의 주관을 받아서, 자기의 주관을
받아서 자기 인성으로 말하기 때문에 “죄 값이다. 저주 받아서 저렇다.” 그런 이야기
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지 않다고 본문을 통해서 풀어주는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2장 3절 본문 말씀을 두 파트로 나누어 설명했습니다. 깨달았습니까.
다음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말씀을 해석하고 바로 또 들어가겠습니다. 모든 성경
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아주
유익하다, 흑자라 했습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선생님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감동받으며 마음도 고치고 성격도 자꾸 고
쳤습니다.
감동을 받아야 됩니다. 오늘 감동의 빛을 발하라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감동돼서
교회에 나왔을 것입니다. 억지로 나왔습니까. 감동돼서 나온 사람이 대부분일 것입니
다.
제일 처음에는 억지로 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제일 처음에 교회 다닐 때 억지로
가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가서 앉았으니까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냥 가서 가만
히 앉아 있었는데, 말씀이 특별히 귀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데도 감동이 되었습니다.
앞의 사람 보고 감동되고, 뒷사람 보고 감동되고, 이상하니 교회 앉아 있으니 분위기
보고 감동되었습니다.
오늘 감동에 대해서 말씀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하나씩 하나씩 구체적으로 설명
해 줄게요.
오늘 감동에 대한 말씀을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경 말씀을 자꾸 읽으십시오.
내가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감동 받고 계속 감화받아 실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러니까 여러분들 성경을 많이 읽고, 이 시대의 말씀을 자꾸 들으십시오. 그게 이 시대
성경입니다. 이 시대 성경의 말씀을 잘 들고, 또 듣고 또 듣고 하면 감동될 것입니다.
성령은 감동을 주는 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축도할 때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
로 축원하옵나이다. 성령의 감동 감화하심이 모든 자에게 충만할지어다.”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성령은 감동의 신, 예수님은 가르치는 자, 하나님은 명령하시는 하나님, 이렇게 특
히 말을 합니다.
여러분, 성령에 대해서 잘 모르지요? 오늘 성령에 대해서 공부를 조금 하고 들어가
겠습니다.
성령으로 감동한다고 하는데 물론 하나님도 감동을 주고 예수님의 신도 감동을 주
고, 또 사람들도 감동을 줍니다.
성부 성자 성신은 3위 일체입니다. 그러나 크게 성령을 감동의 신이라 하는데 성령
의 본질을 배워야 감동을 많이 받지 않겠습니까.
사람이 감동을 받으면 못할 것도 하게 되고, 누가 일하자 하지 않아도 감동되면 지
가 하게 됩니다. 그래서 감동을 꼭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감동받을 일을 하면 감동받게 되어 있습니다. 감동받을 조건을 세우면 감
동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성령님’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낸 보혜사 곧 아버지
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했습니다.
진리가 성령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진리가 나타나면 나를 증거하리라 했습니다.
시대의 진리가 나타나면 그를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감동의 신입니다. 여기서 글을 쓰면서 성령에 대한 공부를 5분에서 10분만
하겠습니다.
삼위일체가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삼위일체라 합니다. 위(位)는 각각이고, 일
은 똑같이 하십니다.
보통 기독교에서 성부는 하나님, 성령은 하나님의 신, 성자는 예수님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2위 일체밖에 안됩니다. 말은 3위 일체인데 실상은 2위 일체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이것을 아직까지 근본을 이야기 한 곳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축소시켜 보겠습니다. 땅에 있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입니다. 그러
면 땅에서 보겠습니다. 가정에 아버지가 있듯이 하늘에 성부 하나님이 있고, 성자는
아들 입장이고, 성령은 어머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땅에 있는 것이 하늘의 모형들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의 삼위일체가 아버지
어머니 아들입니다. 천주의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해!” 하고 명령을 하지만,
어머니는 감동을 줍니다. 밥을 해서 먹여 주고, 옷 사주고, 감동을 주면 “아 나 이제
말 잘들을 거야.” 그럽니다.
아버지는 밥 해 주고, 옷 사 주고 그러는 것이 없습니다. “말 안 들으면 큰일 나!
죽어!” 그럽니다. 그리고 형제들은 그냥 무조건 해댑니다. 그것을 보고서 말 듣지 않
던 애들이 하게 됩니다. 장남이 막 해대면 차남들은 보고서 따라 합니다. 말을 안 듣
던 애들이 따라서 합니다. 이렇게 실존적인 자입니다.
성부는 말로써 명령하시고 선포하시고, 성자는 시범을 보입니다. 가서 실천을 합니
다. 예수님은 땅의 사람이 아닙니까. 가서 안 보이는 하나님을 보여 줘야 되지 않겠습
니까. 안 보이는 하나님을 보여 주고 실천하는 실존자입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안 보이는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실존 인물, 견본 인물, 본보기입니다. 그래
서 장남이 말 안 듣는 차남들이 따라 하게 본보기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고 장남이 아버지처럼 “너 안 하면 죽인다. 너 발로 팍 차버릴 거야. 이것이 뭘
모르고 그냥?” 그러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장남들은 시범을 보여 줘야 됩니다.
성령님은 가정의 어머니처럼 감동을 주고, 감화를 주고, 감싸주고 그럽니다. 성령은
감동의 영, 감싸주는 영입니다. 성령은 아버지가 명령하면 감싸주고 감동을 줍니다.
어머니들이 감동을 잘 주지 않습니까.
선생님도 클 때 아버지가 앞산에 지진이 나도록 꽝 소리를 지르면 어머니는 쳐다보
면서 “아니, 좋은 말로 하지. 쟤 귀청 나가겠네.” 그랬습니다.
“말을 안 듣는데 소리 질러야지. 안 들으면 속 타 죽지.”
그러면 어머니가 나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라. 너나 나나
아버지의 성질을 알지 않느냐. 부딪쳐봤자 좋은 것이 없다. 우리 지혜롭게 하자.” 하
며 감동을 줬습니다. 그렇게 어머니가 뭐라고 하지 않고 열심히 하면 같이 거기에 감
동을 받고 어머니에게 싹 달라붙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시킨 일은
무서워서 하고, 어머니가 시키는 일은 너무 좋아서 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요즘 여러분은 시대가 바뀌어서 엄마가 시켜도 돈을 받지 않고는 안 한다고 합니
다. “용돈 줄 거야, 엄마?” 그런다고 합니다.
성령의 임무는 감동의 역사를 일으키는 신이고, 성자의 역사는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창세기 1장 27절을 보면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기의 형상과 모양
대로 사람을 창조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26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형상대
로 사람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그 말을 누구에게 말한 것이겠습니까.
결혼 하고 첫날 저녁에 어떻게 하는 줄 압니까.
“여보, 우리 같은 사람을 낳지.”
“나 당신 같은 사람을 낳을 거야.”
남자는 여자에게 당신 같은 아이를 낳자고 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당신 같은 아이
를 낳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남의 첫날 저녁에 가서 엿들은 것이 아니라 영계에
서 다 배웠습니다. 결혼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결혼하고서 그렇게 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이 우리 같은 사람을 만들자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복수가 아니
겠습니까. 혼자를 ‘우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말할 때 “우리가 말하건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내가 말하건대” 그럽니다.
단어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둘이 있을 때는 “우리가 말하자. 우리가 하자.”
그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창세기 1장 26절만 봐도 성령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창
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령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요한 계시록 22장 17절에
보면 “성령과 신부가 그러하다” 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에 보면 세상에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사34:16). 혼
자 계신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늘나라에 갔는데 하나님 혼자 있으면, 남자 혼자 있
으면 되겠습니까. 하나님 혼자 있으면 너무 너무 심심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일체의 하나님입니다. 삼위일체
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이 단상 앞에서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일체(一體)’라는 말을 설명
해 주셨습니다. 외국도 한국말로 ‘일체’라고 써 볼까요. 도표를 통해서 일체를 보여주
셨습니다.
<일 체>
A)
B)
C)
제일 처음 보여준 것이 A)입니다.
“이게 뭐냐?”
“네모진 것이지요.”
“이게 일체다.”
“그러면 일체가 아닌 것은 뭐죠?”
“일체가 아닌 것은...” 하시면서, 두 번째 B)의 도표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은 일
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일체된 것은 하나 밖에 안 보이지 않습니까.
A) 도표를 보이시며 이게 부부일체라고 했습니다.
“마음도, 생각도, 행실도 일체가 되어야 돼. B는 일체가 아니지 않느냐.”
첫 번째 도표처럼 된 것이 부부일체라 했습니다.
“너희들이 부부일체, 사랑일체, 주님과 일체,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되는데 이것
이(A) 되어야 된다.”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B) 포함되지도 않고, 완전히 각각인 것(C)이 있습니다. 두 번째 것은
포개져라도 있지 않습니까. 세 번째는 한 집에 살아도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고
서로 트러블이라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A학점, 두 번째는 B학점, 세 번째는 C 학점입니다. 1등 2등 3등입니다.
이제 일체에 대해서 알겠지요? 그런데 일체 되었어도 뜻은 하나이지만, 개성에 의
해서 각각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과 일체되고, 예수님과 일체되고, 성령님과 일체되고, 선생님과
일체되어야 됩니다. 사랑일체, 진리일체,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야 일체가 되는 것
입니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해 놓고, 다르게 가면 일체가 안 되는 것입니다. 나와 모든 사
람이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체가 되면 같이 따라 붙습니다. 일체가 되면
따라 갑니다.
여기와 여기 있는 액이 일체 되어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쌤이 쓰신 펜에서 물이
나오는 것 설명하심)
삼위일체를 말할 때 성부 성자 성령이라 하는데, 가정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어머니
라 하면 순서가 바뀐 것 같지 않습니까.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아들을 낳
았다, 또 아들이 엄마를 낳았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순서도 잘못되었습
니다. 원래 성부, 성령, 그 다음에 성자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라 하지
않습니까. 소개할 때 “이 분은 아버지입니다. 이 분은 어머니입니다. 이 분은 아들입
니다.” 이렇게 설명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순서를 성부 성령 성자 해야지, 성부 성자 성령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가 하면 언어가 순서별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 시대는 성부시대입니다. 신약 시대는 성자 시대입니다. 성약은 성령시대입니
다. 성령은 신부입니다. 우리를 신부라 하지 않습니까. 이럴 때는 성부 성자 성령이라
고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본체를 말할 때는, 성부 성령 성자 이렇게 순서가 되
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쪼개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의 이름 마지막 자가 석(析)
자인데 쪼갤 석(析)입니다.
이제는 성령의 감동에 대해서 설교를 하겠습니다.
잠언을 받을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잠언을 했으니까 이제 성령의 잠언
을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나에게 이렇게 잠언이 왔습니다.
-. “감동이 성령의 말이다.”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선생님이 여기서 “편지 써라”
하고 선포를 했습니다. 여러분이 전혀 안 보는데, 내가 기도하는데 “편지 써라” 했더
니 여러분이 거기서 편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선생님, 편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편지 썼습니다.”
“내가 새벽에 ‘편지 써라’ 하고 엄명을 했는데, 그게 네게 편지 써라 하는 감동으로
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말한 것이 감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도표로 하다가 말씀으로 하니
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먼저 성령님이 가서 “불쌍히 여겨라” 하고 말씀하시면 내 마음에 불쌍히 여기라는
마음이 옵니다. 이미 그것이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내 영이 그것을 듣고서 내 마음으
로 진동이 온 것입니다. 그러면 육신이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령님이 말씀하신 것이 곧 감동이다!’ 이는 성령님이 말씀하신 것이 감
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동받고 교회에 왔지요? 그것이 바로 성령님이
감동으로 ‘교회에 가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말하여 본인이 감동받았는데도 안 가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성
령님이 “얘야 교회에 가라. 집에 있으면 뭐하냐. 교회에 가야지.” 그렇게 했는데도 안
가는 것은 성령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말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은
몰라서 거역했다 칩시다. 오늘은 가르쳐 주었습니다. 말씀을 했는데도 거역하면 이제
는 알고 거역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선포해도 두려운 마음이 탁 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무슨 말을
했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하늘을 향한
두려움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또 무서운 두려움이 왔다면 그 때는 흑암이 “저 새끼 죽일 놈!” 그랬기 때
문에 자기에게 무서운 마음이 확 들어온 것입니다. 나쁜 놈들이 그런 말을 했기 때문
에 자기에게 그런 전달이 온 것입니다.
월남에서도 가다 보면 금방내 적이 쏠 것 같은 느낌이 옵니다. 그런 감동을 받았을
때, 그 후에 알고 보니까 이미 적들이 쏘려고 결심을 하고 말들을 했을 때였습니다.
그 적이 하나님의 큰 감동을 받고 밤에 와서 나와 우리 중대장에게 이야기를 했습니
다. 낮에 한국 적을 봤는데 그 때 총을 잡아 당겼으나 안 나갔다, 그래서 감동받고 내
려왔고 했습니다. 그래서 확인이 되었습니다.
또 한 번은 어디에 있을 때 어떤 나쁜 놈들이 나를 막 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때 육신이 들은 것이 아닌데 ‘저 놈들이 나에게 욕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감동이 왔습니다. 그 때에 즉시 위치를 떠서 옮겼습니다. 그래서 신이 되어야 됩니다.
여러분도 어디 가다가 위험한 순간의 감동이 딱 오면 빨리 처리를 해야 됩니다. 이
미 그런 상황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0분의 1 영감을 꼭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육감보다 나으니까 100분의 1 영감을 꼭 표상하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감동되는 대로 타다닥 말씀이 나가지 않습니까. 감동은 하나님이 말씀을
했기 때문에 막 부딪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을 하기 때문에 녹음기에 녹음이 되고
녹화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말을 하기 때문에 저 기계가 사람은 아니지만 내 말을
막 받아들여서 녹화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시 틀면 내 말이 나오지 않습
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오고, 그런 감동이 온 것입니다.
말이 빨라졌네요. 한마디라고 더 하려고. 각 나라는 내가 설교 때 말이 빠르면 끝나
고 해명해 주든지 그렇게 해 주세요. 지금 내가 천천히 하면 3시간 4시간을 해야 되
기에 어느 정도껏 해야 됩니다.
오늘 가장 큰 것이 무엇인고 하니, “감동은 성령의 말이다. 감동은 하나님의 말씀이
다. 감동은 주의 말씀이다. 선생의 말씀이다.” 이것입니다.
그런데 잘못 감동 받았나 반드시 확인해야 됩니다. 잘못 감동받고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사탄이 감동주고 귀신이 감동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한테 꼭
물어봐야 합니다.
“꿈에 선생님이 나타나서 이름을 이렇게 하라 했는데 맞습니까.”
“그래 맞다. 그 이름을 줬다. 내 영에게 물어보니 그렇게 했다고 한다.”
“꿈에 누가 와서 이렇게 이렇게 했는데, 선생님이 나타난 것인지요?”
“그래. 내가 나타났다.”
“꿈에 날 보고 이렇게 이렇게 하라 했는데 뭡니까.”
“아, 그거 내가 그렇게 한 일 없어! 아니다. 하지 마!”
이와 같이 늦더라도 내가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물어보고 실행
을 하라는 것입니다. 감동받고 그냥 하지 말고 큰 것은 꼭 물어봐야 합니다. 그냥 하
게 되면 일을 저지르게 되니까 물어보고 하십시오.
오늘 말씀에서 가장 크게 말씀하는 것은 감동의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감동을
압니까?
성령의 감동 감화, 하나님의 말씀의 감동 감화, 같은 언구를 여러 가지로 표현했습
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영적 죽음 육적 죽음 이렇게 표현하듯이 바로 성령을 신약 시대
때도 딱 쪼개서 구분을 못했습니다. 성령 성신, 헷갈리게 만들었는데, 하나님을 성령
이라고 표현한 것도 있습니다. 성신, 성령을 받으라! ‘신, 하나님이 신을 받으라’ 했습
니다.
1) 삼손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매 큰 역사를 일으켜 나갔다고 했습니다(삿14:6).
2) 출애굽기 35장 21절에 보면 “마음이 감동된 자와 스스로 자원하는 자들이 하나
님의 성막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물을 가져다가 하나님 앞에 바쳤다.” 했습니다.
감동된 자들이 제물을 가지고 왔더라 했습니다. 마음이 감동되어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더라, 했습니다. 억지로 하지 말고 마음에 감동되면 하라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막 했는데 지금 우리 섭리는 헌금했으면 이름을 적어 놓고 얼마 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니가 이 만치 했냐.”
“저 100만원 했는데요.”
“그런데 니 앞으로 50만원이 들어왔다. 그것 누가 떼어 먹었다. 내가 알아볼게.” 그
럽니다.
반드시 확실하게 해야 됩니다. 그런데 마음이 감동돼서 해야 됩니다.
3) 민수기 27장 18절을 보면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자가 되었더라 했
습니다. 그래서 막 때려 부수지 않았습니까.
4) 사사기 14장 6절에 보면 삼손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더라 했는데 하나님의
신이 임하면 감동된다는 것입니다.
삼손이 손에 아무 것도 든 것이 없는데도 사자를 염소새끼 찢듯이 찢어 놓았습니
다.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면 힘이 생기고 능력도 생깁니다. 여러분들, 힘이 없다고 걱
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면 힘이 생깁니다.
선생님은 오늘 설교가 끝나도 계속해서 또 설교를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동영상으
로 찍을 것이 너무 많습니다. 각 나라 파트별로 찍어다 줘야 하고, 한국도 교역자들
교육시키는 동영상을 찍어야지, 그리고 각 분야별로 교육을 시켜야 됩니다. 그래서 연
속 5-6시간 동안 강의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힘을 주기 때문에 하는 것입
니다.
5) 사무엘상 16장 13절을 보면 사무엘 선지자가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이새의 집
에 가서 다윗에게 기름 부어 기도해 줬더니 다윗도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어 사울 왕
이 아팠을 때 기도하니까 낫게 되지 않았습니까. 신에 감동된 자가 해야 됩니다. 그리
고 골리앗이 쳐들어 올 때 다윗이 때려 죽였습니다. 신에 감동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6)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고 감동되니, 수레를 타고 달리는 그 나라
왕 아합보다 더 빨리 궁궐로 달려갔습니다(왕상18:46).
신에 감동되면 부지런해지고 빨라집니다. 감동 안 되면 게으르고 머리가 빨리 안돌
아갑니다. 신에 감동되면 머리가 버뜩버뜩 돌아갑니다. 신에 감동이 안 되니까 빨리
빨리 처리를 못하는 것입니다. 신에 감동돼서 처리를 해야 됩니다. 신의 감동을 안받
고 하니까 무슨 일을 해도 늦게 하는 것입니다. 빨리 빨리 하려면 신의 감동을 받고
해야 됩니다.
7) 에스겔 3장 14절을 보면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
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행하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하시더라” 했습니
다.
에스겔이 골짜기에 가보니 거죽으로 볼 때는 이스라엘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 영적으로 볼 때는 다 죽은 뼈다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마른 뼈다귀들에게 외치니까 다시 살아났더라 했습니다(겔 37장).
죽은 시체가 살아나는 육적 부활 말고,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심령의 부활, 행실의
부활, 새로운 역사의 부활을 하게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8) 마태복음 4장 1절에 예수님이 성령에 감동되어서 마귀에게 이끌리어 시험받으러
광야로 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승리했다 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 받아도 마귀에게 끌려가면서 조
건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손을 못 대게 조건을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
기서 승리했습니다.
9) 마태복음 10장 20절에 “너희 속에 말씀하시는 자가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다.”
했습니다. 여기서 보니까 하나님을 성령으로 표현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신경에도 말하고 성경에도 말했지만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너
희에게 충만할지어다 하는 것은 성령님이 엄마처럼 감동을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성
령은 감동의 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감동을 주시고 성령님도 감동을 주십니다. 구
약은 성부시대, 신약은 성자시대, 성약은 성신시대입니다. 이렇게 쪼개서 알아야 됩니
다.
10) 마태복음 12장 32절을 보면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거
역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했습니다.
인자가 누굽니까. 바로 육신을 쓰고 있는 인자, 예수님이 인자가 아니었습니까. 메
시아, 인자!! 메시아를 말로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상식이지 않습니까. 백성이 임금을 거역해 보
십시오. 그러면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임금의 아들은 여유가 있습니다. 임금
은 최종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를 거역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들
은 그래도 아버지까지 갈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아들의 말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만 근본자의 말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1) 마가복음 13장 11절은 “너희가 어떤 문제를 두고 누구한테 부딪쳤을 때, 그
때 말을 하여라. 그러면 성령이 말할 것이다. 담대히 말하라.” 했습니다.
12) 학개서 1장 1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유대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제사장 여호수아, 이 두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다가 흥분을 시켰다고 했습니다. 그랬
더니 백성들의 마음이 흥분되고 감동되었다 했습니다.
흥분이라는 말을 알지요? 남녀가 흥분돼서 길 가다가도 끼어 안고 키스하고, 공원
에서 뒹굴고 그럽니다. 유럽 같은 데는 이성에 흥분되고 사랑에 흥분돼서 공원에서
막 관계를 갖고 그럽니다.
뉴질랜드에서 공원에 갔더니 선생님 바로 옆에서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독일, 이탈
리아, 프랑스의 공원에서는 사람이 보는 데서 이성 관계를 갖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선생님이 놀랐습니다. 원래 담대한데 거기서는 놀랐습니다.
사랑에 흥분되고 사랑에 도취되어 그렇게 하는데, 선생님이 키스가 무엇인가 연구
를 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키스를 너무 많이 했습니다. 길 가다 키스하고, 건널목을
건너다가도 차가 빵빵 해도 계속 1분 2분 3분 키스를 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이성
관계를 혓바닥으로 하는 것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혓바닥으로 키스하는 것
도 이성관계로 칩니다. 별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성 관계를 혀로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이 시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해야 되기 때문에 수천가지 하늘 법을
압니다. 법을 모르고는 심판을 못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법은, 그 시대 사람을 통
해서 심판도 하고 축복도 합니다.
13) 누가복음 12장 12절을 보면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
시리라” 했습니다. 성령이 이렇게 하라 이렇게 하라 하고 음성이 안 납니다. 음성이
나지만 우리는 못 듣습니다. 신의 음성, 하나님의 음성이나 성령의 음성이나 예수님의
음성을 잘 못 듣습니다. 그러니까 감동으로 옵니다.
오늘 말씀이 뭔고 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직접 듣는 것입니다. 조금 다른 단
계로 들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못 듣고, 조금 다른 방법으로 듣는 것입니
다. 감동의 음성으로 듣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었지요? ‘감동의 음성’으로 듣는 것입니다.
14)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
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했
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면서 말씀했습니다. 성령이 오면 내가 가르친 것이 다시 생각나게
하면서, 다시금 내가 생각나게 될 것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가르쳤
는데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님이 계속 말씀을 선포하니까, 영계에 선
포하니까 육계에 있는 육인들이 영으로 받고 육에게 전달하니 감동으로 다시 생각나
게 되는 것입니다.
‘아 그 때 그 말씀, 아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한 것.’ 이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선생님이 한 말씀도 감동되니까 또 생각나지 않습니까. “아 그 때 그런 말
씀을 월명동에서 했어. 어느 집회 때에 했어. 어느 장소에서 했어.” 그러지 않습니까.
15) 요한복음 20장 22절에 “성령을 받으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을 받으
라는 것입니다. 감동의 신, 성령, 주체 신, 상대 신, 여성 신을 받으라!!
16)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오시리라 했습니다.
선생님이 진리의 성령의 신부급으로 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에게 진리를
선포하니까 여러분이 진리 가운데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법칙과 이론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축소시켜 봐야 됩니다. 이 세상
의 이와 같이 저 하나님이 세계도 이치가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특별
히 다르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여자가 있다 하면, 하늘나라에도 여자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남자가 있
다면 하늘나라에도 남자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빛이 있다, 하늘나라에도 빛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태양빛이 아니고
하늘의 그 말할 수 없는 광채의 빛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체 빛을 발하는 빛이라고
도 표현합니다.
이 세상에 물이 있다, 하늘나라도 물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름다움이 있다, 그 세상에도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가 말을 안 들었을 때 속상했다, 하나님의 천주의 자녀들이 말을 안 들
을 때 속상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 같은 마음을 가지시고, 더 큰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령이 와서 너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준다! 영적으로는 진리의 영, 육
적으로는 선생님이 진리의 영으로 나타났습니다. 나는 영이고 너희는 육이다 했습니
다. 선생님이 진리를 가지고 와서 외치니까 여러분이 세계적으로 모두 따라 오지 않
았습니까. 진리의 영으로 온 것입니다.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 음성이 들려
서 “여봐라! 오늘의 설교는 감동의 빛을 발하라 그런 말씀이다.” 이렇게 안 합니다.
그 말씀을 선포했기 때문에 선생님이 감동이 돼서 말씀을 그대로 정확하게 쏘는 것
입니다.
설교 끝나라 하는 것도 “이제 설교 끝나라.” 그렇게 안 옵니다. 하나님이 설교 끝나
라 하면 나에게 감동이 옵니다. 그만 끝나야 되겠다는 감동이 옵니다.
그는 자의로 말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내 자의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모든 것을 하는 것입니다. 자의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하는데 사
람들이 내가 자의로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단상 앞에 말씀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은 곧 감동으로 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감동으로 온다.”
선생님이 월남에 있을 때 한 번은 감동도 오고 음성도 들렸습니다. 적을 바로 내
앞에 놓고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전날 우리 분대원들이 엄청난 사격을 했습니다.
나는 안 쏘려고 옆에다 쏘고 그랬습니다. 딴 데에다 팡팡 쏘고 그랬습니다. 그 때 내
무기가 제일 무서웠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무기는 한방을 쏘면 그 근방이 전멸되
는 무기였습니다. M79라고 유탄발사기였습니다. 그것을 쏘면 수류탄 같은 것이 터집
니다. 그 때 내가 30발인가 50발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쏘았다가는 불바다가 됩
니다. 그래서 딴 데에다 쏘았습니다. 바위 너머에다 쏘고, 저 너머에다 쏘고 그랬습니
다. 그런데 옆의 사람들은 막 쐈습니다.
그 이튿날 시체를 확인하러 갔는데 어디 장소인가를 못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앞에 가던 사람이 바위에 올라갔는데 푹 쓰러졌습니다. 왜 그런가 올라가 보니까
바위 뒤의 큰 나무 뒤에서 그 전날 총을 맞았으나 안 죽은 베트콩이 우리를 쏴 죽이
려고 겨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니까 ‘아이구 나는 죽었구나.’ 하고 현기증
이 나고 앞이 안 보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적이 눈만 내밀고 나를 겨냥하고 있는
데 내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손이 떨려서 쏠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쏴봤자 그는 눈만 내밀고 있기에 안 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쏠 수 있다 해
도 내가 안 쏘았을 것입니다.
그 때에 내가 여기서 죽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죽는다.
이 바위 위에서 죽는다.’
그 때가 스물두 살 때인데 그 바위에서 죽을 환경에 처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음성이 났습니다. 다른 말을 안 하고 “사- 랑- 하- 라!” 하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음성이 지금도 머릿속에 녹화가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러 가면 적이 총을 쏴서 맞아 죽는데요. 쟤는 숨어 있기 때문에 내가 쏴도
안 죽습니다. 그러나 내가 총을 맞고 그에게 수류탄을 까 던지면 죽지요.”
내가 자꾸 사랑하러 가면 죽는다고 했을 때에 두 번째 또 소리가 났습니다. “사-
랑- 하- 라!”
그 소리가 들리고 감동이 확 왔습니다. 그 때, 후닥닥 한 발짝을 뗐을 때 그가 내
여동생으로 보였습니다.
“아니 니가 왜 여기 왔느냐.” 했습니다.
제일 처음에는 내 여동생이 잡혀 온 줄 알았습니다. 북한 계통으로 잡혀 온 줄 알
았습니다. 그래서 끼어 안고 울면서 40분 동안 뒹굴고 그랬습니다. 그때 그렇게 하나
님의 음성도 나고 감동도 왔는데, 음성도 나고 감동도 오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났기 때문에 감동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동되고 안하면 큰일
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령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명령하고 성령님이 명령을
한 것입니다. 사- 랑- 하- 라--
그래서 “사랑하라”는 표구를 많이 썼습니다. 여러분이 다 가지고 갔을 것입니다. 음
성 들은 것을 그대로 쓴 것입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쳐다보면 그 음성이 날 것입니다.
거기서 “사 랑 하 라”는 음성이 날 것입니다.
앞으로 표구를 쓸 때는 이렇게 음성이 난 것을 쓰고, 감동 받을 것을 쓸 것입니다.
그래서 감동받는 문구를 원하면 나한테 이야기하라 했습니다. 그러면 써 주겠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못 듣는데 감동받았으면 음성을 들은 것이다 했습니
다. 감동으로 통해서 들어온 것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못 보니까 녹화돼서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내가 여기서 동영상을
찍어 가지고 여러분에게 보여 주니 지금 보이지 않습니까. 그것은 내 실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실물이 아니고 화면으로 나타나지만, 그러나 제 2의 ‘나’라는 것입니다. 제
2의 선생님입니다.
이와 같이 한 단계만 다운되었을 뿐이지 실제 제 2의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감동으로 왔으면 제 2의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동을 중하
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라!”
“가 쟤를 관리하라. 붙잡아 줘야 된다.” 이런 감동을 받았으면 하나님의 명령을 받
았으므로 즉시 움직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을 정도면 하나님의 사
람이 되었기 때문에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
니다. 하나님을 안 믿어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을 안 믿는 바벨론 왕에게 다니엘을 잘하라, 이렇게 하도록 하라, 네 밑에 두
고 길러라 하고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밑에 두고 총리대신을 시키고 엄청
난 일을 시켰습니다.
요셉 때도 바로를 감동시키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이 와서 감동을 받은 것입
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감동받는 자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동받는 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말씀이 너무 좋지 않습니까. 전반기 20년 동안에도 이런 이야기를 안 했습니
다. 하나님을 더 가깝게 대하려면 더 가깝게 대하는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원하
시는 것을 찾아내서 그것을 가르쳐줘야 여러분이 더 가깝게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씀의 인봉을 계속 떼고 귀한 말씀을 계속 가르쳐줘야 하지 않겠습니
까.
여러분이 선생님 가깝게 왔으나 못마땅하게 대한 것도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못 하니까 못마땅한 것입니다. 그저 선생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데 일을 하려면
문제가 생깁니다.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에 대한 것을 많이 배워야 됩니
다. 시중드는 것도 배워야 되고, 선생님이 어떻게 하는 것도 배워야 됩니다. 많이 배
우고 내 앞에 와야 오랫동안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알아야 하나님과 함께 잘 동행하고, 가깝게 모시고
섬기고 위하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섬기고 위하고 받들고, 성령님을 위하고 섬
기고 받들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 4장 2절에 보면, 성령에 감동되면 너희가 하늘 보좌를 보기도 하고 그
앉은 자도 보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사도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고 신령하니까 밧모섬에서 하늘 보좌를
보게 되고 거기에 앉은 자를 보았다 했습니다. 흰 옷을 입고 앉으신 그는 만왕의 왕
이요 만주의 주요, 그가 크게 외치니 보좌 앞에 있는 자들이 모두 “할렐루야 그러하
옵나이다 맞나이다.” 그렇게 하는 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에 감동이 되어야 멀리 있는 나도 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요즘에 꿈으
로 많이 본다고 하는데, 나도 여러분을 보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서로 나타납니다. 나
타나서 막 내 앞에 서로 앉으려고 합니다. 그가 누구인지를 내가 알지요. 내가 물어봅
니다.
“너 육의 이름이 누구냐.” 하고 물어보면 자기 누구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영
을 보면 영이 육신과 닮기는 닮았지만, 여러분의 어머니와 자녀가 닮기는 닮았지만
조금 겨우 알아보게 닮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로 조금 닮아 있지, 아주 똑같지는 않다
는 것입니다. 영이 키도 더 크고 훨씬 멋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영은 육신보다 훨씬
보기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실망하지 마십시오. 어떤 영은 육신보다 훨씬 보기 싫은
영이 있습니다.
‘아, 나는 영이라도 예쁘라고 했는데 실망이네, 절망이네. 아 어떻게 하지..’
조금 더 들어 보라는 것입니다. 희망 있는 말을 해 주겠습니다. 영도 미인이 될 수
있는 것을 가르쳐 주겠습니다. 육신이 어떻게 해야 미인이 됩니까. 육신이 미인 되듯
이 영도 미인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오늘도 영에 대해서 말씀을 많이 했습니다.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성부에 대
한 영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성자의 영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성부 성령 성자!
오늘 말씀은 ‘감동의 빛을 발하라!’ 입니다. 여러분들, 이제 감동받고 움직이기 바랍
니다! 오늘 말씀할 때 감동을 받았습니까. 많이 감동을 받았습니까.
왜 감동을 받았습니까. 나를 통해서 그대로 말씀을 해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되, 말씀을 받은 자가 직접 말하니까 그 말을 받아들
이면 감동되는 것입니다. 말을 거부하면 감동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면 악한 자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자동적으로 악한 자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불신이 바로 사탄의 주관권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멘’ 해야 사탄의 마음으로 가지 않
고, 불신의 마음으로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했는데 불신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제2의 입장의 불신을 한 것입니다. 직접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받았을 때
안 하면 안 됩니다. 제 2의 불신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해서 생소하다, 더 알아봐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합니까. 지금이 어느
시대입니까. 가정에 엄마 없이 여러분이 탄생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상대의 세계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여자들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엄청나게
많습니다. 여자 천사들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남자들도 너무너무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안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이 단계에서 하늘나라에 안 갔다 왔
겠습니까.
감동을 받는 대로 꼭 금주에 수요일까지 열심히 하고, 앞으로 그렇게 해야 됩니다.
여러분이 옛날에 감동 받은 대로 안 해서 사고들이 일어난 것이 굉장히 많지요?
선생님도 감동을 받아서 그에게 분명히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이 인성으로 안 했습
니다. 요즘은 꼭 물어봅니다. 해야 되느냐 안 해야 되느냐 반드시 이야기하고,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을 감동으로 받고 그러고 결정합니다. 무조건 안 하면 안 됩니다.
목회하라, 뭐 하라 감동했는데, 주일날 수요일 날 말씀에서 감동했는데, 선생님이
편지로 감동을 시켰는데 안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회를 놓
치는 것이 되기도 하고, 하나님이 명령하고 성령이 말씀한 것을 안 지킨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다시 부릅니다. 또 다른 사람을 불러서 역사를 하게 되
는 것입니다.
내가 요즘에 편지를 하다가 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편지를 했는
데 편지가 안 오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계속 편지할 수 있는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꼭 오기를 원했는데 편지가 안 와서 한 번 더 해 볼까 했으나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편지를 거진 줄였습니다. “내가 바빠서 한 줄만 쓴다. 지금 바쁘다. 너무 힘들
다.” 이렇게 편지를 써 주었습니다.
여러분, 감동을 받은 대로 열심히 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감동
시키면 예수님의 상황에 대해서 감동시키기도 하고 예수님의 센터로 감동을 시키고,
선생님이 감동 시키면 이 시대 선생님의 센터로 감동을 시킵니다.
하나님과 성령님도 그 센터대로 감동을 시킵니다. 나에게 감동을 시켜서 단상에서
외치게 만들고, 또 여러분에게 직접 감동을 시키게 말씀하셔서 감동되게 합니다. 모든
일에 감동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해당되는 대로 해야 하나님께서 말씀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못 가는 것은 내가 바빠서 못 해 줄 뿐이
지 마음이 없어서 안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네 편지대로, 네 믿음대로 진행하라. 내가 또 시간이 있으면 편지 할 테니까. 니가
이렇게 하겠다고 했으면 내가 허락했으니까 우선 그냥 하라. 다음에 구체적인 이야기
를 또 해 줄 테니까.”
요즘 편지 속에 보니까 집을 내놓고 다른 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어떤 사람이 집을
보러 온다고 전화가 와서 보러 오라 했더니 강도로 변해서 두드려 패고 칼로 찔렀는
데 칼이 부러져서 안 죽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고, 성직을 하는 목사라 돈이 없다.” 했더니 “살려주겠다. 억울하
다. 맞고 끝내자.” 하며 두드려 패고 칼로 찔렀는데 그 때에 그 실한 칼이 부러졌답니
다. 그래서 못 찔렀답니다.
여러분들, 집에 누가 오면 정말로 문단속을 잘하고 혼자 있지 마십시오.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감동이 왔는데 감동을 실행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남자가 온다고 하니까 무서운
마음이 생겼답니다. 그 때 성령 엄마가 “얘야! 안 된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 감
동을 무시했던 것입니다. 모르면 무지한 것입니다.
성령 엄마가 “얘야 조심해. 남자 온다. 세상이 험악하다.” 그렇게 말씀하셔서 그 감
동을 받았는데 실행치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감동을 받은 대로 해야 됩니
다. 감동받고 실천 안하면 절대 안 됩니다.
요번 주에 감동에 대해서 깊이 깨닫고 배우고 열심히 해서 성령의 감동을 충만히
받고, 하나님의 말씀의 감동을 충만히 받고, 예수님의 말씀의 감동을 받고, 선생님에
해당되는 감동을 한주일 동안 받기를 바랍니다. 평생 동안 시행해야 될 말씀입니다.
말씀이 깊고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교역자들이 더 천천히 가르쳐 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델 하는 사람들, 치어하는 신입생들이나 예술단들, 처음 교회에 온 사람들
모두 분위기에만 젖지 말고 30개론을 철저히 배우시기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들, 말씀을 철저히 배워라. 그 말씀은 내가 세상
에 선포한 말씀이니 말씀 내용의 근본도 모르고 분위기만 타지 말아라. 말씀 내용을
알고 시대 분위기에 젖어 들고 시대 뜻을 따라 행하도록 하라.”
꼭 다시 배우고 또 듣고, 언제 바람이 불지 모르니까 철통같이 말씀을 배우고, 특히
역사론을 철저히 배워야 됩니다. 그래야 시대를 깨닫고 나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깨닫지 못하고 나를 사랑한다면 안타깝습니다. 완전히 알고 근본을 깨닫고 해야
되겠습니다.
선생님도 오죽해야 20년 동안 천천히 말씀을 배웠겠습니까. 여러분에게는 성령에
감동되는 것을 금방 이야기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미 어제 그제부터 계속 70-80시
간을 배운 것입니다.
이 엄청난 30개론은 20년 동안 거진 실천하면서 배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실천 안
하고 먼저 배우니까 배우고서 실천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진리의 말씀대로 하게 되면 나와 같이 세계를 누비게 됩니
다. 내가 먹을 것이 없어서 걱정합니까. 입을 것이 없어서 걱정합니까. 잘 곳이 없어서
걱정합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이 엄청난 말씀을 깨닫고 가니까 그것만 전하면 하나님이 나와 같
이 하며, 나는 영계까지 1000년 동안 전할 것입니다. 육계에서 내가 힘이 없을 때까
지 전해도 사람들이 옵니다. 계속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을 들으러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딴 데 안 주고 나한테만 계속 주니까 나한테만 들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사탄의 감동을 받고 “앞으로 섭리가 망한다. 없어진다.” 자꾸 그래서 일부
는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인데 망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들이 평소 그런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이런 환난기에 걸려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듣고 감동되면 역사에서 열심히 뛰고 달리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축도로 마치겠습니다.
<축 도> 오늘 감동의 빛을 발하라 했습니다. 감동은 성령이 특히 주시고, 그리고 하
나님이 감동을 주시고, 예수님도 주시고, 또 시대를 끌고 가는 자를 통해서 감동시킨
다 했습니다.
감동 감화를 받은 이들에게 성부와 성령의 역사와, 성자의 역사하심이 영원토록 충
만하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축도 후의 말씀은 자르고, 마지막 빠이빠이 하며 인사하는 것으로 마무리 해 주세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