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3.04.02 (화)
계시말씀
- 선포일
- 2013.04.02 (화)
- 성경 본문
- 고후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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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 단상
작성일 : 2013. 1. 15
작성자 : 정 초연
(섭리를 떠난 자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 후 꿈에, 섭리를 떠난 자들 중 한 명이 나와서, 울면서 섭리로
돌아오고 싶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는 섭리에서 단상에 서면서 주목을 받고 활발히 뛰던 자였습니다.
“주님, 이렇게 주님과 소통하고, 신앙이 좋다고 섭리에서 단상에 세워지던 자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넘어졌
을까요?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책임분담이지.
나도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그 당시 그가 감당해야 할
책임분담은 아주 컸다.
단상에 서는 자들의 책임분담은
그 보이는 영광만큼이나 무겁고 어렵다.
단상에 서서 성삼위를 대신하여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며
나의 분체가 되는 기쁨이지만
그만큼의 몸부림과 조건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탄들이 단상에 서는 자를 노리고
가장 악랄하게 공격하기 때문이다.
섭리사 신부들에게 나 성자가 오늘
귀한 섭리의 단상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섭리의 핵, 말씀이 외쳐지는 곳.
섭리의 최고 영광이 빛나는 곳이다.
섭리 최고의 영광이며
모든 영계가 주목하는 곳,
바로 단상이다.
이러한 단상에 선다는 것은
본인이 원해서 되는 것도,
누군가 시켜서 되는 것도 아니며
하늘이 허락하고
뜻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하늘의 단상은 사랑이며, 축복이다.
하나님의 권위가 강하게 드러나기도 하고,
성령님이 주시는 따뜻한 은혜가
퍼져 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영광의 주인이 누구인지
늘 근본을 인식하지 못하고 단상에 서게 되면
바로 사탄이 틈타는 두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사도바울이 그 외치는 말씀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하였다.
(고후 4:5)
제자들이 자신의 몸을 성전 삼고
단상 삼아 외친 단 하나, 그것이 무엇이냐?
바로 보낸 자였지.
절대 보낸 자 중심,
곧 그를 통해 역사하는 성삼위 중심이다.
중심을 잃는 순간 사탄이 틈타게 되니,
단상에서 외치는 자들은 그 말씀이
오직 보낸 자를 통한
성삼위를 중심하고 있는지
매일 매 순간 확인해야 한다.
지상의 단상에서 말씀을 외칠 때,
영계에서는 그 장면이 영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내가 직접 역사하는 단상일수록
많은 천인들과 영들, 천사들이
따라다니며 함께 일한다.
육적으로는 작은 단상이라도
수많은 영들이 둘러싸고 있기도 하며,
보이기에는 크고 화려한 단상이라도
영계에서는 초라하고 아무도 듣지 않으며
심지어는 사탄들이 꼬여
진을 치고 있기도 하다.
선생이 처음 역사를 시작할 때
박스를 쌓아 올려 단상 삼아
말씀을 외치던 때가 있었지.
보이기에는 누추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 단상 옆에 수십 억 영들이 와서
그 외치는 말씀을 들었노라.
환경과 여건은 열악하지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해
하늘의 말씀에
권위를 세워 주고자 하는 그 마음에
내가 진정 감동하여
그 단상에 직접 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선생 통해
나의 말씀을 들었던 자들은
누구라도 인정할 것이다.
그 단상을 둘러싼 빛을 받아
마음이 뜨거워졌노라고 말이다.
(제가 보았던 기성교회 중 정말 웅장한 성전을 가지고 있었던 곳이 생각나 그 곳의 단상은 주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 보았습니다.)
그곳은 내가 알지 못하노라.
그 단상에 서는 한 설교자의 입술에는
나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증거가 가득하여
듣는 자들을 하늘의 사람이 아닌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느니라.
또 한 설교자는
내가 몇 천 년 간 답답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외쳐 주길 원하는 말씀을 알지도 못하고
오히려 잘못 증거하여
듣는 이들로 하여금
오히려 하늘을 오해하고,
더욱 나에 대한 마음이 멀어지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무지보다도
나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말해도
듣지 않는 굳어진 마음과,
하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간구할 줄 모르는
형식적인 신앙이다.
그래서, 내가 더 이상 그 단상에 서지 않고
그들을 통해 말하지 않노라.
단상에 오르는 길은
연단, 몸부림, 깎아 냄, 배움과 오래 참음이다.
누구든 충분히 배우고 연단되어서
단상에 올라가야
그 외치는 말씀이
더욱 온전하게 전해진다.
뜻이 있어 어린 자를 세우기도 하나,
어린 자라고 해도 단상에 서는 순간
그 의미를 알고 서야하며
그 후에도 조건을 꾸준히 세워야
사탄이 틈타지 않는다.
세상의 연예인들도 마찬가지다.
바닥부터 배우며 올라오지 않고
갑자기 반짝 나타나서
주목과 인기를 받았던 자들은
그 가치를 잘 모른 채 화려함을 누리다가,
다른 연예인이 더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면
금방 잊혀지고 말지 않느냐.
그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하고 열심히 노력했던 자들은
다시 노력해서 올라가는 기질이 있으나,
자신의 책임분담과 조건 없이
그 자리에 올라간 자들은
영광만큼이나 좌절도 크게 오니
오히려 더 쉽게 무너지고 만다.
선생은 하늘의 말씀을 외치는
단상의 가치와 두려움을 잘 알았기에
누구도 쌓지 못한 조건을 쌓고
그로 인해 사탄들이 틈타지 못했다.
그 가치와 두려움이 무엇이냐?
단상의 말씀으로 휴거가 좌우된다.
휴거가 좌우됨은
영원한 운명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큰일이냐.
그 말씀으로 인류의 구원이 좌우되니,
한 문장 한 단어가
너희들에게 잘 전달이 되게끔
목숨을 다하는 것이다.
단상의 말씀에
영상, 제스처까지 차원을 높여 가며
세밀하게 하나하나 선생이 코치하고
목숨같이 여기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선생은 휴거의 가치를 알기에
성삼위가 시대의 단상을 맡겼노라.
휴거의 가치를 아는 자에게
휴거의 말씀을 주었다.
이제는 섭리의 단상이 점점 더
하늘의 법으로 다스려질 것이며,
조건 없이는 서지 못하게 될 것이다.
섭리역사가 부활기를 맞으며
차원이 더욱 높아짐과 함께
성삼위가 직접 선생과 함께
섭리 단상의 차원을 높일 것이다.
세상은 연예인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화려한 무대에 서는 것이
육적인 순간의 영광으로 여겨지지만,
영적으로 볼 때 최고로 빛나는 자리는
바로 말씀의 단상이다.
가장 근본적이며 시대의 핵심이 되는
주일, 수요말씀이 외쳐지는 단상부터
크고 작은 모든 섭리의 단상은
나 성자가 역사하는 곳임을 명심하여라.
또한 각 처소에서 너희가 말씀을 전할 때 사용되는
너희의 몸 또한 곧 성전이며 단상이고
거룩한 나의 거할 곳이니
늘 깨끗이 하고 새롭게 하여라.
섭리사 모든 자들아,
섭리의 단상을 통하여
내가 영계와 육계의 단상에 서는
이 모든 자들을 이끌어 가고 있으니,
단상에 서는 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어라.
단상을 책임지는 자, 선생을 위해 기도해 주어라.
그가 책임진 것은
바로 너희들 영혼의 구원임을 깨닫고,
가장 먼저 그를 위해 기도하여라.
단상의 가치를 깨닫고
그 선포되는 말씀을 깊이 나의 것으로 만들어
휴거의 영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성자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