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학교2013.04.06 (토)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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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4.06 (토)
- 성경 본문
- 요 3: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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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을 나 성자로
얼마나 인식하고 대하느냐에 따라
영 휴거의 차원급이 좌우된다
작성일 : 2013년 2월 23일(토)
작성자 : 김영광
(2월 9일 기도 중 주님께서 ‘인식의 휴거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를 두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 깨우
쳐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사랑아.
영 휴거가 시작한 지금!
더욱 차원 높여,
더욱 나와 가까이하길 원한다.
진정 나 성자는
더욱 너희와 함께하기 원하며,
너희와 영원히 함께 살고 싶노라.
사랑아.
내 심정, 이리 애타고 애탄다.
진정 때가 되었다.
어서 너희는 깨어
나를 맞길 바란다.
나를 맞아라. 신부야.
매일, 매 순간마다
삶 속에서 나를 맞아라.
오늘 너에게
내 속 심정 내려놓노라.
이 마음 알아
진정으로 더욱 나와 가까워지길 원한다.
사랑아.
먼저 성경 구절 하나 보도록 하자.
(요 3:16-21)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
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
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사랑아.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자는
항상 시대의 한 사람을 통해서
그를 중심으로 구원역사를 진행해 왔다.
이미 6000년 전부터 진행해 왔다는 것에 대해
너희는 수도 없이 배워서 알 것이다.
때마다 시대 말씀으로
너희를 변화시키고 성장시켜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다.
너희가 정확히 인식해야 할 것은
바로 사람이 왔으나
그 모든 역사의 근본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즉, 그 사람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하느냐에 따라
구원과 심판이 좌우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성경의 이야기를 통해 더 구체적으로
오늘의 핵심을 전해 주겠노라.
(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본인 스승인 나사렛 예수의 근본을
제대로 본 한 사람이었다.
단지 스승, 선지자,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그 근본의 그리스도인
나 성자를 봤던 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천국의 말씀을 허락하며,
신약역사의 초석을 닦는데
그 사명을 주게 되었노라.
즉, 육만 수제자가 아니라
그 영도 수제자가 되어
그가 죽어서도
낙원에서 예수와 함께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도록 하자.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당시 나 성자는 나사렛 예수를 쓰고,
마지막 이 인류를 구원코자
죽음의 십자가 길을 가게 되었다.
그 때 나사렛 예수와 함께
좌, 우의 죄인들도
함께 십자가형을 받고 있었다.
그 때 좌측은 나사렛 예수를 조롱했고,
우측은 나사렛 예수가 진정 그리스도임을 알고,
마지막으로 나사렛 예수에게
회개를 하게 되었다.
사랑아.
나사렛 예수는 곧 나 성자였다.
그를 대함이
곧 나를 대함이었다.
나는 구원과 심판을 결정하는 전능자이다.
결국 나를 무지하게 대한
좌측은 심판을,
나를 온전히 대한 우측은 구원을 받게 되었다.
사랑아.
물론 너희가 지극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을
말하고 있는 줄 안다.
선생 통해 수도 없이 말했던 이야기다.
그러나 내 오늘 너희에게 말하려는 것은
지금 영 휴거에 있어서,
나 성자의 분체에 대한 인식과 그를 대함이
얼마나 중한지
그것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진정 인식이 중하다.
너희가 어떤 중심을 가지고 행하느냐가
휴거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본인이 잘 변화되지 않는다 생각된다면,
본인의 중심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작년에 이미 나는 선생 통해
‘나 성자 본체가 재림한 것을 인식하고 깨달아라.’
라고 하며 한 차원 더 깊이 생각하고,
한 차원 더 높이 행하라 말하였다.
진정 인식을 바꾸라 함이었다.
허나 너희는 이 말을 들어도
내가 떠났다는 말을
문자 그대로 믿고
나 성자 본체가 진정 재림함을
인식하지 못하더구나.
사랑아.
나는 이미 선생 통해 왔으며,
단 한 번도 너희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내가 떠났다는 이 말은
바로 너희 입장에서 봤을 때,
나의 때가 더 이상 나사렛 예수를 분체로 두지 않고,
이 시대 선생을 분체로 두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나 성자가
떠난다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것을 깨닫고 행한 자들은
이미 나 성자를 맞으며 살지만,
그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자들은
새 역사, 새 날이 밝아도
도대체 뭐가 바뀐 건지
아직도 시대 분별을 못하고 있구나.
날은 같은 날인데 다르다 했다.
진정 다름을 실감하고 있느냐.
인식을 바꿔라.
인식의 휴거다.
영 휴거의 근본은 바로
나 성자가 왔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진정 매일, 매 순간
네 옆에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나를 진정 한 사람으로 보고
나만 사랑하는 것이다.
이미 선생 통해
35년 전부터 수도 없이 말하지 않았느냐.
너희는 휴거되고 있으면서도
진정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한 차원 더 깊이 본다면
바로 선생을 얼마나
나 성자로 인식하고 대하는지에 따라
너희 영적 휴거의 차원이 결정되게 된다.
어떤 자는 나를 맞으며 산다.
그런데 아직도 내 모습을
나사렛 예수의 모습을 쓰고 온다고 인식하며
나를 맞으며 산다.
어떤 자는 나를 맞으며 산다.
그런데 선생은 선생으로,
성자는 성자로 따로 보고 산다.
아직도 나 성자의 재림의 실체를 모르고
본인 수준으로 맞고 살고 있다.
그러니 본인은 맞았다 하나
그 휴거의 실체를 보면
아직 그 영이 더 차원 높게 성장치 못하고 있다.
사랑아.
왜 내가 수많은 계시자를 통해
‘부활한 선생을 맞아라.’ 했겠느냐.
영 재림에 있어서,
나 성자가
선생의 영을 쓰고 재림했다고 했겠느냐.
이제 때가 바로 오직
이 시대 성약의 분체의 모습으로
나 성자가 역사하겠다는 뜻을 말한 것이다.
영계에서도 나사렛 예수의 때는 끝났노라.
나 성자는 이제 이 시대 사명자의 모습을 통해
온 영계와 육계를 다스리게 된다.
이것이 앞으로 성약 1000년 역사다.
그래서 그가 곧 나이다.
그를 봄이 나를 봄이다.
그를 대함이 나를 대함이다.
이것이 성자 본체, 분체 핵이다.
그러나 근본은
나 성자에게 있다.
부활한 선생을 맞으라는
말씀을 본 자들 중에선
선생과 나를 따로 두거나,
선생만 만나고
나는 떠났다고 인식하는 자들도 있다.
그것이 아니다.
2013년 제 3차 영 휴거 때부터는
더 이상 구 역사 사명자의 영이 아닌
이 시대 사명자의 영을 쓰고
앞으로 시대 구원역사를 이끌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사랑아.
그렇기 때문에
선생을 아는 것이 중요하며,
선생을 위해 기도한 것이 중요하다.
선생을 대함이 곧 나를 대함이기에
너희가 어떻게 선생을 인식하고 대하느냐에 따라
나 성자가 너희에게 구원과 심판을 좌우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 알고 행하라고
시대 말씀을 폭포수같이 주고 있는 것이다.
선생 통해 나 성자가 편지하기를
부흥강사가 가장 사모하는 마음이 크기에
내 말씀이 모이게 되었다고 했다.
사랑아.
부흥강사가 가장 선생을 잘 본 것이다.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부흥강사의 사모함은
선생 자체에서 끝이 아닌,
선생을 나 성자로
제대로 인식하고 있기에
그리도 사모하고, 사모하는 것이다.
현 상황을 보라.
영으로 내가 너희 옆에 있지만
영은 영이다.
육과 제대로 통할 수 없다.
결국 육은 육이 만나야 한다.
나도 선생 통해
얼마나 너희를 만나고 싶겠느냐.
선생 본인도
너희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아느냐.
그럼 선생 위해 더 기도해 줘야지.
그곳에서 리듬 뺏기지 않도록,
무지자들과 악한 자들에 의해
하늘 시간 뺏기지 않도록,
더욱 너희가 사력을 다해
기도해야 하지 않겠느냐.
또한 극한 환경 속에서 나온 말씀이다.
그럼 설교자들은 제대로 외치고,
듣는 자들은 그 심정 제대로 받고
알고 행해야 하지 않느냐.
너희 예배마다
이 모든 너희 인식과 중심으로
구원과 심판이 좌우되지만,
이를 진정 깊이 생각하고 깊이 깨달으며
예배드리는 자들이 드물구나.
유대인과 기성인이 범한 오류를
너희도 범해선 안 된다.
유대인과 기성인들은
‘말씀 속에 영생이 있다.’ 생각하며
말씀만 보고, 그 말씀만 행했다.
허나 그 말씀을 준
나 성자의 보낸 자에게는 소홀히 했다.
그러니 심판을 받은 것이다.
기성인들 가운데에서도
지난 역사를 보면
말씀은 맞는데,
선생은 아니라고 하는 자들 많았다.
말씀 속에 구원이 있다고 생각하며
말씀만 빼 가서
본인 스스로 역사 펴겠다는 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말씀의 근본은 바로
나 성자가 보낸
그 사람을 제대로 알고,
인식하고 행하라고
내 말씀을 준 것이다.
너희도 마찬가지다.
선생을 선생으로만 보는 자,
선생을 나 성자로 보는 자
또 각각의 수준에 따라
어떻게 그 구원급이 같을 수 있겠느냐.
진정 나 성자는 재림했다.
너희의 영 휴거는 진행 중이다.
나 성자를 맞아라.
허나 그냥 맞고,
사랑하라 함이 아니다.
내가 보낸 선생을
진정 제대로 알고, 인식하며
나 성자를 제대로 알고 맞아라.
진정 내가 누구의 모습으로
너희 앞에 서는지
제대로 인식하고 맞아라.
그것이 너희 영적 휴거의 차원급이니라.
영 휴거는 곧 인식의 휴거다.
조금의 차인데 못 따라간다.
그러니 진실로 투자하고 노력하라.
이것이 내가 원하는 사랑의 반응이다.
기도에 힘쓰라.
한 글자, 한 글자
말씀 속에 담긴 선생의 마음이
곧 나의 심정이다.
기도로 내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알기에 힘쓰라.
간구하는 자마다 내 가르쳐 주겠다.
특히 새벽을 깨워라.
새벽에 나를 만나는 것이 중하다.
선생도 받은 말씀 중
95%가 새벽에 받는다 하지 않느냐.
너희의 인식이 휴거되려면
진정 새벽에 나를 만나
내 심정이 어떤지 깨닫는 것이 중하다.
깨달으면 그것으로 낮에 삶 속에서
내 분체 모습으로 온
나 성자를 대하며,
또한 편지로도
내 육을 대하는 것이다.
진정 말씀을 제대로 알고 깨닫기 원하는
너희의 신랑 성자 주니라.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