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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3.05.04 (토)

계시말씀

선포일
2013.05.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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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에 따른 각자의 책임의 중요성 2. 이 시대의 사랑의 유리함 작성일 : 2012. 3. 19(화) 작성자 : 이선진 (기도하는 도중 지금 이 시대 각자의 책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 주신다 하셔서 받아 적게 되었습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사랑아, 지금 이 시대 각자의 책임이 대체 얼마나 중한지 말해 줄게. 지금은 너희도 알다시피 먼저 사랑의 열을 내야 나에게서 사랑 받아가는 시대이다. 누가 너를 위해 기도해 주었어도 그 기도한 값을 받으려면 자신도 기도하고 행해야 한다. 성령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먼저 더 알고 깨달으려 노력하며 간구하느냐에 따라 더 받고 덜 받고가 좌우된다. 마찬가지로 휴거도 먼저 사랑하고 더더욱 자신이 이루고자 해야 이뤄진다.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시대가 되었는지 그 과정과 이유도 말해 줄게. 먼저 구약역사이다. 이때는 하나님과의 사랑보단 주인이 먼저 종을 챙기고 시키면 종은 그에 따라 복종하는 관계였다. 그때는 사랑보단 복종, 자유보다는 구속이었으니 진정한 자유의 시대와는 멀었다. 그 다음은 신약역사이다. 이때에는 물론 구약에 비해선 어마어마한 사랑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때에도 부모가 먼저 자녀를 챙기는 시대였기에 자유의지보단 강권적, 설득적이었으며 권고하는 사랑의 시대였다. 아예 역사의 시작부터 ‘성령의 잉태’라는 신의 강권적 역사가 있지 아니하였느냐. 자녀급에 있던 자들이 먼저 스스로 깨달아 하고자 해서 선택한 사랑이 아니었다. 셋째, 성약역사이다. 이 자체를 구시대인 신약역사와 비교한다면 또 어마어마하게 차원이 높아진 사랑의 시대이지. 그러나 구시대인 신약 주관권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진, 2012년 성자와 보낸 자가 마지막 14년 무덤 조건 기간을 완전히 끝마치기 전까진 사실 완전한 사랑의 자유의지 역사가 아니었지. 생각해 보아라. 너희가 간구하기도 전에 먼저 성령의 역사를 시작해 폭포수처럼 부어 주었고, 간구도 하지 아니하였는데 시대 보낸 자를 통해 쏟아 붓듯 시대 말씀을 퍼부어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한 시대 보낸 자가 지은 죄도 아닌데 너희와 시대의 죗값을 대속해 주지 아니하였느냐. 이걸 보고 누가 자유의지와 선택에 의한 사랑의 역사라 할 수 있겠느냐. 아무리 신부시대일지라도 이건 ‘완전한 자유의지의 역사’라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창조 법칙대로의 자유의지는 절대 아니지. 그러나 바야흐로 종교역사 7천 년의 3차 성약역사 중에서도 완전한 역사라 할 수 있는 지금 이 3차 부활의 때를 보자. 그전까지의 지구의 역사와 지금 이 3차 부활의 역사를 비교해 본다면 전자는 시장 바닥에 상인이 이것저것 다 판다며 자신이 파는 물건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늘어놓아 손님들에게 보여 주는 역사였다면 후자는 그 물건들을 본 손님이 직접 스스로 선택하고 제값을 치러 사 가는 역사이다. 전자는 기술자가 컴퓨터를 조립해서 주기까지의 역사였다면 후자는 그 컴퓨터를 받은 사용자가 직접 스스로 컴퓨터 사용법도 배우고 작동, 활용해야만 하는 역사이다. 전자는 서로 통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보다 주체가 상대방에게 전화를 거는 역사였다면 후자는 전화가 왔을 때 받는 사람이 받을지 말지 선택, 결정하여 통화해야만 하는 시대이다. 이같이 지구역사 중 2012년까지의 역사와 2013년부터의 역사의 간격은 숫자상으로는 약 1년 정도밖에 안 되는 듯하나 실상은 말세 중의 말세를 건너온 것이며 악영계와 선영계의 차이와 같다. 또한 같은 천국 안에서도 성약성과 신약성이 천지차이이듯 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알겠느냐. (우와, 주님, 숫자상 육적 계산법으로는, 그리고 그냥 눈에 보이는 육적 현상으로는 그다지 변한 게 없어도 하 늘 역사로 따진다면 단순히 1년 지난 게 아니라 ‘대전환 중에서도 대 전환, 대 변화’로군요. 진정 이를 깨닫고 더욱 가치 있게 살고 싶어요.) 그래, 사랑아.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분명 영적 하늘역사의 흐름은 수면 속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이와 같이 대전환이 일어났음에도 지금의 ‘진정한 자유의지적 특성’으로 인해 지금 이 때의 가치, 중요성 또한 스스로 먼저 노력하고 간구하는 자만 느끼고 깨달아. 역사는 더 어마어마해졌으나 각자의 책임분담은 더 커졌기에 안 하는 자일수록 더욱더 역사가 안 느껴지고 안 깨달아진다는 게야. 무섭지. 올라가는 자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것처럼 차원 높여 올라가고 떨어지는 자는 마치 낭떠러지에서 시속 100km 이상으로 떨어지듯 초고속으로 떨어지는 시대이니 여기에서 점점 신부이냐 아니냐로 칼같이 갈려진다. 마치 네가 나의 말씀을 받아 적고 있는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선 새로운 생명이 출생하고 또 어떠한 생명은 생을 마감하거나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있듯 섭리사 안에서도 신부이냐 아니냐로 매초 계속해서 측량되고 갈라져 나가고 있다. 고로 한 번 한 번의 생각, 행동을 제발 신중히, 조심히 행하여라. 그 한 번, 한 번이 칼 같은 시대 말씀의 심판대 위에서 스스로를 잘려 나가게 만드는 올무가 된다. 명심해야 해. 지금은 각종 각색의 하늘의 도움, 선생과 형제들의 기도와 도움이 있어도 결국 그 모든 것이 실체화, 현실화되기 위해선 마지막 최종 관문을 거쳐야 하는데 그것은 곧 ‘자기 책임’이다. 각자의 책임이 커진 만큼 각자의 책임에 의해 각자의 운명도 결정됨을 정녕코 깨닫고 또 깨달아야만 해. 알겠느냐. (아멘. 사랑하는 주님, 그렇지만 위와 같은 말씀은 저희 신부들을 겁주려고 하신 말씀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이같이 판도가 뒤바뀐 만큼 분명 더 큰 축복, 혜택, 사랑이 있을 거라 생각되오니 좋은 점, 유리한 점을 가르쳐 주세요. 유리한 점만 보고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선생님 정신을 발휘할게요.) 그래, 사랑아. 물론 이같이 각자의 먼저 된 책임이 중요해지긴 했어도 실상 이건 상황이 안 좋아진 게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좋아진 게다. 어릴 적부터 항상 하늘에게 먼저 챙김, 보호, 사랑받는 것으로 체질화가 되어 있어 현재의 역사의 특성에 적응이 잘 안 되는 게다. 고로 과거의 체질, 근성은 모두 구 역사로 날려 보내고 오직 새 역사의 체질로 옮겨와라. 이는 곧 선생같이 먼저, 주체되어 하는 사랑이며 더 하고자 하는 사랑이며 오히려 하늘을 지키고 자랑해 주려는 최첨단 사랑의 체질이다. 사실 이 같은 사랑의 체질 위에서 하늘과 사랑해야 진정한 동등권 사랑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구역사의 사랑의 체질 위에선 자신은 하늘과 열심히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도 실상 삼위가 보기엔 항상 무언가 부족하고 허전한 사랑이다. 사실 하나님께선 구 역사에서 너희와의 사랑에 있어 항상 부족과 허전함을 느끼시며 사랑해 오셨다. 지금은 진정 선생같이 먼저 된, 주체된 사랑을 보여 주지 않고선 삼위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지금 이 시대가 인간과 신이 서로 ‘사랑의 완전한 만족’을 누릴 수 있을 때이다. 이 같은 사랑에 적응이 안 된다고 뒤로 물러서 있는 자를 언제까지나 기다려 줄 수도 없는 현실이다. 고로 이같이 지금 이 때의 사랑의 특성에 체하기보단 오히려 이로 인해 사랑에 있어 유리함, 장점만 보고 앞으로 과감히 뛰어나오너라. 뒤로 숨기보단 단 한 번이라도 더 사랑에 도전함이다. 알겠지. 지금 이 시대의 완전한, 위대한 사랑에 대해 알렸으며 답은 오직 ‘선생이 나에게 보여 준 사랑’임을 알린 성자 주이니라.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