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3.05.05 (일)
130505 주일말씀 어린이를 사육(飼育)하지 말고, 방목(放牧)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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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05 (일)
- 성경 본문
- 요한복음 21장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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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505-주일말씀_어린이를 사육(飼育)하지 말고, 방목(放牧)하여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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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5일 주일말씀>
어린이를 사육(飼育)하지 말고, 방목(放牧)하여라
본 문 요한복음 21장 15-17절
* 어린이날 행사는 따로 없습니다. 각 교회에서 준비하면 됩니다.
월명동에 올 사람들은 자유롭게 오게 하면 됩니다.
섭리사 어린이들에게는 신앙의 어린이들과 함께 말씀으로 인사합니다.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
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이면서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린이들을 위해서
말씀해 주고, 신앙의 어린이들을 위해서도 말씀해 주겠습니다.
이 말씀은 어린이와 신앙의 어린이뿐만 아니라 지도자들,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어른들도 모두 다 들어야 됩니다.
말씀을 잘 듣고, 섭리사 지도자들은 신앙의 어린이들을 잘 가르치고
관리해 줘야 됩니다. 또한 부모님들은 어린 자녀들을 잘 가르치고 양육해
야 됩니다.
‘어린이’ 하면, 사람들이 볼 때 만6세~12세까지입니다. 그러나 하
나님이 보실 때는 ‘모르는 자’가 바로 어린이입니다. ‘신앙이 어린
자’도 어린이입니다.
모두 겪어 봤지만, 어린이 때가 정말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때는 제대
로 가르쳐 주고 인도해 주면서, 제대로 배우고 행하게 해 줘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
어린이 때는 마음, 행실, 버릇, 습관 등 고쳐야 할 것을 한 달이면 고
칩니다. 그러나 어린이 때 못 고친 자는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 힘도
좋고 강한데도 3년, 10년, 30년 동안 노력해도 못 고치는 경우가 많습니
다. <끝>
어린이 때 못 고친 것이 그렇게도 문제가 큽니다. 어린이 때는 성장하
는 때로서 정말 귀한 때입니다. 신앙의 어린이도 이와 같습니다.
비유를 들면, 어린이 때는 시멘트 콘크리트로 공사할 때와 같아서 굳
기 전에 이리저리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대가 지나서 20대, 30대, 40대가 되면 굳은 시멘트를 깨
서 고치는 것과 같아서 힘듭니다.
그래서 자녀가 어렸을 때 부모의 할 일이 크고, 신앙이 어린 자들에게
지도자의 할 일이 그리도 크고 중합니다.
선생도 어렸을 때 못 고치면 어려우니, 성자께서 10대 때부터 고치도
록 환경을 옮겨서 산에 가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고로 그릇된 것을 못
배우게 하고 고치게 하셨습니다.
(* 나이도 신앙도 어릴 때와 컸을 때는 어떻게 다른지, 또 비유를 들
어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어린 나무 때는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마음대로 구부리며 쉽게 수형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어느 정도 크면, 나뭇가지가 굳어서
원하는 대로 곧게 잡을 수 없습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어린이 때 바로잡아 주고, 제대로 올바르게 가르
쳐 주고, 바로 알게 해 주며 성장하게 해야 됩니다. 성경의 온전한 말씀
도, 하나님의 진리도 신앙을 처음 시작할 때와 신앙이 어릴 때 제대로 가
르쳐 줘야 됩니다. <끝>
나이가 어릴 때, 신앙이 어릴 때 기성에서 성경을 배우면서, 여호수아
때 가던 태양이 멈춰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니 커서도 그
대로만 믿고 말합니다. 제대로 가르쳐 줘도 성경에 어긋나게 가르친다면
서 아예 듣지도 않습니다.
또한 나이가 어릴 때, 신앙이 어릴 때 성경의 선악과가 과일이라고 배
웠습니다. 그러니 커서도 선악과는 과일이라고 합니다.
마치 나무가 어릴 때 수형을 제대로 잡아 주지 못하고 나뭇가지가 구
부러지면 나무는 끝까지 그 형상이듯이, 나이와 신앙이 어릴 때 성경을
그릇되게 배운 것을 그냥 놔두면 죽을 때까지 그것이 맞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와 신앙의 어린아이는 부모와 지도자가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가르쳐 주고 제대로 배우게 해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섭리사의 어린이들은 성경의 ‘선악과’를 제대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선악과는 ‘과일’이 아니고, 확대하면 ‘하와, 곧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고, 축소하면 ‘금단의 지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못 배운 사람은
선악과가 ‘과일’이라고 합니다. 어려도 배우니까 알고 진리의 눈을 뜬
것입니다. 목사도 어른도 안 배우면 모릅니다. <끝>
다음은 어린이들과 신앙의 어린아이들을 기르는 <교육 방법>에 대해
서 말씀해 주겠습니다.
어린이들과 신앙의 어린아이들은 모르니까 각양각색으로 생각하고 이
것저것 다 해 봅니다.
그런데 부모와 지도자들이 “그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지 말아라.”
하며, 하나하나 사사건건 꼬치꼬치 따지면서 화내고 책망하고 간섭하며
지도하고 키웁니다. 이 방법은 가축을 사육하는 식입니다. 마치 가둬 놓고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이들과 신앙의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관리할 때는 자유롭게 놔두
고 선을 넘어가는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줘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께서 그 사람에게 그때마다 감동을 주시며 개성대로 기르십
니다.
평소에 부모나 지도자는 자녀나 신앙이 어린 자들이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다 지적하고 못 하게 하면서 자기 주관을 심어 줍니다. 이것이 생명
을 가둬 놓고 사육하는 식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대할 때도 자기 식으로 기르고, 생명을 전도해 놓고서
도 분체에게 맡기지 않고 자기 식으로 기릅니다. 성자와 성령께서 그들을
어떻게 지도하시는지 모르고 “해라. 하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부모도, 지도자도 이 교육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능
하신 성자와 분체의 마음에 맞겠습니까?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양들을 초장에 풀어 놓으면 어떤 양은 자고, 어떤 양은 풀을 뜯어 먹
고, 어떤 양은 뛰어놀고, 어떤 양은 걷고, 어떤 양은 서로 떠밀기도 합니
다. 목자는 이것을 지켜보면서 양들이 우리를 뛰어넘거나 벗어나려 할 때
못 하게 해야 됩니다. 이것이 양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방목’입
니다.
그런데 양이 우리 안에서 눕는 것, 뛰는 것, 먹는 것, 자는 것 서로
떠미는 것을 하나하나 다 못 하게 하고 “모두 다 누워 있어! 모두 다
자! 모두 다 풀 뜯어 먹어! 너는 왜 뛰냐? 너는 왜 소리 지르냐?” 하
면, 양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육’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양이 걷
지도 못하고, 뛰지도 못하고, 젖도 안 나오고, 개성이 없습니다.
양을 키우고 관리할 때는 목자가 양을 일일이 품에 안고서 일제히 먹
게 하고, 뛰게 하고, 자게 할 수 없습니다. 혹은 일일이 다 간섭하면서 일
제히 먹게 하고, 뛰게 하고, 자게 할 수도 없습니다. <끝>
만일 어린이와 신앙의 어린아이를 키울 때 이같이 하면, 전능자 성자
와 그 분체에게 손을 댈 기회와 멘토링 할 기회를 전혀 안 주는 것입니
다. 그러니 인생 거목이 될 수가 없고, 분체와 같이 성자의 사랑의 대상체
가 되어서 사는 자가 아주 드물게 됩니다.
분체가 정말 제대로 가르치고 키운 자들에게 물어보기 바랍니다. 구속
하면서 ‘사육’하며 길렀는지, 진리 안에서 행하도록 ‘방목’하며 길렀
는지 물어보기 바랍니다.
세상 거리에서 놀던 양들을 데려다가 섭리에서 가르쳐서 키웠다면, 세
상에 있을 때보다 더 위대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어린 자들이 섭리 동산에서 말씀을 듣고 더 자유롭게 뛰면서 노력하게
놔둬야 됩니다. “너는 왜 다른 사람이 안 하는 것을 하니? 너는 무슨 생
각을 그렇게 하고 있니?” 하지 말고, 말씀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여 신앙
의 절벽에 떨어지려 하는 것, 이성으로 가는 것, 게으른 것, 안 믿으려 하
는 것 등 이런 큰 것들만 잡아 줘야 됩니다. 사사건건 다 간섭하면서 잔
소리로 잡으면 안 됩니다.
너무 자기 주관으로 주입식 관리를 하니 어린 자들이 반항을 하고, 싫
어하고, 누가 볼 때만 잘하고, 안 볼 때는 안 하는 것입니다.
다 커서 30대가 넘었는데도 부모나 지도자가 자기 식으로 다룹니다.
안 하면 혼내고 야단치고, 그것도 혈기 내서 하고 압박을 주면서 합니다.
이는 무식한 지도입니다. 어려서 젖꼭지 빨 때 기르듯 하면 안 됩니다.
자녀를 가진 부모들과, 생명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지도자들은 모두 잘
듣고 말씀대로 행해야 됩니다. 고칠 것을 고쳐야 됩니다.
특히 신앙의 어린이들을 교육할 때는 교역자들이나 전도자들이나 관리
자들이 자기 식으로 사육하며 지도하고 관리하면 절대 안 됩니다. 자기가
꼭 할 것만 지도하고, 각자 자기 개성과 재능대로 맡겨야 됩니다.
오늘 어린이날에만 잘 대해 주지 말고, 1년 내내 어린이날같이 잘 대
해 주면서 축복해 주기 바랍니다.
어린 신앙인들을 대할 때도 지도자와 전도자는 하나하나 꼬치꼬치 따
지면서 간섭하지 말고, 기도해 주면서 꼭 이야기해 줄 것만 인격적으로
이야기해 주면 됩니다. 그래야 성자도, 성령님도 지도자가 못 하는 것들을
그 정신에 심어 주어 개인이 마음먹고 행하는 대로 역사하십니다.
말씀은 다 했습니다. 이제 실천하면 됩니다.
어린이들도, 신앙의 어린이들도 이제 부모나 신앙의 지도자들이 꼬치
꼬치 따지면서 간섭하지 않고 혼내지 않아도 자기가 자기를 위해서 꼭 필
요한 것들을 행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의 기대에 어
긋나지 않게 하기 바랍니다. (아멘.)
이제 성자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오늘 성자의 말씀은 섭리사
계시자를 통해서 전해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한 사람이 전
국 전 세계 교회를 다 돌면서 전해 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고로
오늘 주일말씀을 통해서 섭리사 전체 모두가 알게 해 주려 합니다.
<영상5> 성자 주님 나오신 후에 성자 말씀의 주제가 나온다.
1. 생명의 속성
2. 섭리의 부모와 2세의 관계
3. 앞으로 가정국이 될 자들에게 주시는 성자의 말씀
<성자의 말씀>
오늘은 나 성자가 생명에 대하여, 그리고 전도해 온 생명들보다 관리
가 더 시급한 섭리 2세들과 어린이들에 대해 말해 주겠다. 부디 잘 듣기
바란다.
<전도자와 전도한 생명과의 관계성>은 그 어떤 밧줄보다도 끈끈하며
모태 속 태아와 어미와의 관계보다도 더 밀접하다. 고로 어린 생명들은
전도자와 관리자와 강사의 육적, 영적인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부모
앞에 어린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생명의 신앙이 당장은 좋더라도 그의 전도자의 신앙이 나빠지
면, 어느새 그 생명의 신앙도 점점 나빠지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섭리를
나가기도 한다. 반대로 생명의 신앙이 당장은 아주 안 좋을지라도 그의
전도자가 절대 나 성자를 향한 사랑과 마음의 중심을 제대로 지키며 그
생명을 위해 기도해 주면, 어느새 그 생명의 상태가 좋아지고 변화된다.
이와 같이 <전도자와 전도한 생명과의 관계성>은 어미와 태아와의 관
계보다 더 밀접하니, 자신의 중심을 제대로 못 지키며 신앙이 흔들려서
즉시 그 생명을 바로잡지 못할 것이면, 차라리 새 생명을 데려오지 않는
것이 낫다. 오히려 한 번뿐인 기회의 때에 그 생명을 데리고 왔다가 놓치
면, 다시는 섭리사에 못 오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도’란 ‘자신의
온전함’으로 인해 되는 것이다.
이제 ‘현재 섭리인들의 생명 관리법’에 대해 말해 주면서, ‘가장
이상적인 생명 관리법’에 대해 말해 주겠다.
현재 섭리 지도자들의 생명 관리법은 매우 심각하다.
‘진리’란 무엇이냐? 양에 있어 울타리와 같다. 목자가 양을 치면서
울타리 안에 있는 양들을 살필 때, 매번 양들이 무엇을 하는지 간섭하며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강요하더냐. 아니면, 울타리 안에만 넣어 놓고
키우며 그때그때 필요한 것만 해 주더냐.
‘신앙 생명 관리’도 똑같고, ‘자녀 생명 관리’도 똑같다.
너희가 직접 양을 손으로 잡고 들었다 놨다 하며 “이리 가! 저리
가!” 하는 식의 관리는 안 된다. 이건 관리가 아닌 ‘사육’이며, 예전
서방 열강들이 마치 식민지 노예를 다루듯 하는 방법과 똑같다.
생명을 관리하고 자녀를 관리할 때는 그때그때 그 사람에 맞게 필요한
진리와 선생의 정신을 넣어 주며, 본인이 감동받고 행하게 해야 된다. 그
러므로 스스로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러일으키게 해야 한다. 이러한
관리가 나 성자의 관리이며 선생의 관리다.
이 방법이 당장은 잘 통하는 것 같지 않고 시간이 오래 걸려도 근본부
터 깨우쳐 깊이 뿌리내리게 하는 진정한 관리 비법이다. 선생은 ‘강요와
혈기의 카리스마’를 부리지 않았다. ‘설득과 감동의 카리스마’였다.
그런데 현재 섭리사 부모들과 지도자들의 관리법은 강요와 혈기다.
‘나는 아닐 거야. 나는 생명을 잘 관리해 주고 잘 이끌어 주고 있어.’라
고 생각하는 자들 중에서 생명이나 자녀를 이렇게 관리하는 자들이 특히
많다. 다들 ‘착각 속의 관리’를 하고 있다.
이 방법은 ‘양을 염소로 만드는 관리’다. 모두 자기가 자녀를 어떻
게 다루고 관리하는지, 생명을 어떻게 다루고 관리하고 있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검토하고 분석하여 모순을 뜯어 고쳐야 된다.
이와 같은 사육의 관리, 마치 열강들이 식민지의 노예를 다루는 것 같
은 관리로 인해 점점 심각한 부작용이 터져 나왔는데, 바로 섭리의 2세들
의 모습이다. 마치 시한폭탄들이 연쇄적 반응을 일으켜 연쇄적으로 폭발
되듯, 그러한 현상들이 현재 가정국 2세, 장년부 2세들 중에서 일어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부모의 잘못된 관리로 인해 누적된 스트레스와 말 못 할
고통과 고민들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폭발되어 육의 행실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2세들 중에는 이제 나이가 드니 아예 세상길로 빠져 버린
자도 있고, 이성을 사귀고 타락하여 아예 회복조차 못 하는 자도 있다.
특히 이러한 폭발의 반응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때는 중고등부 때이며,
이 폭발이 심각해지고 심각해져서 대학부 때까지 지속되면, 그때는 걷잡
을 수 없이 되어 버린다. 알겠느냐.
섭리의 부모들아. 현재 섭리 2세들의 육적, 영적 상황이 심각하다.
‘나는 잘하고 있어. 나는 자녀 관리로 충분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라
고 생각하느냐.
나 성자가 말하노니, 불필요한 관리를 하면서 안 받아도 될 스트레스
를 받고 있는 부모도 있고, 자신은 선생같이 자녀를 부드럽게 대해 준다
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거의 ‘방관’에 가까운 관리를 하는 부모도 있다.
또한 문제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들 중에서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해
온 잘못된 관리법으로 인해 초래된 문제인데, 그것을 은하수 교사, 중고등
부 교사, 대학부 간사, 교역자 등 지도자의 탓으로 돌리는 부모도 많다.
너희 마음속의 불평불만의 소리와 실제 입 바깥으로 나오는 불평불만
의 소리를 나 성자가 다 듣고 있다. 진정 회개하여라.
섭리의 부모들아. 너희들 중에는 물론 나 성자가 원하는 방법으로 자
녀를 키우는 자들도 있다. 또한 그동안 발생된 자녀의 문제를 놓고 기도
하여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깨닫고 회개하여 다시 올바른 방법으로
관리해 주는 부모도 있다.
그러나 너희가 명심할 것은 첫째 ‘인내’다. 자녀가 완전히 성장하기
전에는 자녀를 이제 갓 자라나는 새싹으로, 이제 막 모태에서 태어난 갓
난아기로 보고 길러야 된다. 자녀는 절대 너희가 원하는 속도로는 성장해
주지 않는다.
또한 만약 자신으로 인해 발생한 자녀의 문제임을 절실히 깨달아 그때
부터 회복의 노력을 기울일지라도 그 문제가 발생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듯이 회복될 때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마치 죄를 지었으면 아무리 뉘우쳐도 그 죄에 대한 탕감의 시간을 거쳐야
완전히 복직되듯이 말이다.
‘지도자’란, 슈퍼맨이 아니다. 만능 엔터테이너가 아니다. 단지 그
때그때 합당한 시대 말씀을 대언해 주며, 선생의 정신을 너희 자녀들에게
소개하고 가르쳐 주어 너희 자녀를 나 성자와 너희 선생에게 접붙여 주는
데 조력하는 자일 뿐이다.
자녀에게 있어서 너희 부모가 ‘진정한 교사, 진정한 교역자’가 되어
야 한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부모의 잘못된 관리로 인해서 이곳저곳에
곪아 터진 상처가 있는 자녀들을 그냥 지도자들에게 맡겨 놓고, 알아서
고쳐 내라고 하면 어찌하겠느냐. 상처투성이인 너희 자녀를 신도 아닌 지
도자들이 어찌 마음대로 고칠 수 있겠느냐. 이는 마치 술, 담배로 마음껏
자신의 몸을 망쳐 놓고 암투성이로 만들어 놓은 한 사람이, 의사에게 왜
못 고치냐며 하소연하는 것과 같다.
너희가 진정 너희 자녀들을 사랑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비우고
부모 자신의 잘못이었음을 인정하며 간절히 회개의 눈물을 흘려라. 또한
지금부터라도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끝까지 인내함으로 너희가 전도한
너희 자녀들을 회복시켜라. 진정 자신의 방법을 비우고, 오직 나 성자와
너희 선생의 방법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부모에게는 내가 진정 함께하리
라. 알겠느냐. 너희 자녀는 오직 나 성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먼저 너희
자신을 고치고, 또 내게 기도하고 맡겨라.
진정 사랑하는 섭리의 부모들에게 말한다. 자녀를 두고 매번 사사건건
간섭하고 화내고 혈기 부리며 강요하는 식의 관리는 일절 하지 말아라.
오직 시대 말씀으로 부드럽게 설득하며 감동을 주어 스스로 느끼게 해 주
어라.
이렇게 진정한 관리를 하려면 어찌해야 되겠느냐. 부모가 먼저 시대
말씀에 완전히 서 있어야 하며, 선생과 같이 말씀대로 행하는 모습을 평
소 삶 가운데 보여 주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선생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다. 저렇게 하라고 했다.” 말하는 것보다 너희 부모가 그 말씀대로 직
접 행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진정으로 너희 자녀들에게 선생을 증거
해 주는 것이다.
사육이 아닌 관리를 하려면, 너희 부모가 자녀들에게 직접 그때그때
필요한 시대 말씀을 강의해 줄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한다. 최고의 관리
는 곧 ‘강의’다. 부담스럽게 길게 할 필요 없이 선생이 말한 대로 짧게
핵적으로 수시로 자녀에게 재미있게 강의해 주면 된다. 이렇게 ‘강의’
로 자녀를 부드럽게 관리해 줄 수만 있다면, 자녀를 진리의 울타리 속에
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 자녀에게 재미있는 강사로서의 부모가
된다면, 최고의 부모라 할 수 있다.
‘부모’란, 일평생 그 자녀에게 있어서 ‘목회자, 지도자, 전도자, 강
사’와 같다. 또한 맨 처음으로 선생을 소개해 주는 자들이다. 고로 부모
는 자녀에게 있어서 ‘제2의 선생’과 같이 되어야 한다.
<섭리사에서 부모와 자녀와의 영적, 육적 관계성>이 <섭리사 전도자
와 전도된 생명>의 관계성보다 더욱 밀접하다. 부모로 인해서 자녀의 인
생이 뒤바뀔 수 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명’을 맡
게 되는 것인지 깨달아야만 한다.
섭리사의 목회자도 지도자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듯 ‘주 안에서의
부모’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섭리사에는 현재 결혼 예식을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많다. 아직 부모
가 될 정도로 자기를 만들어 놓지도 않았는데 단지 나이가 찼다고 해서,
집안의 강요가 있다고 해서 결혼을 준비하는 자들이 많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어서 결혼하여 자기 짝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급급한 자들이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사명자도 먼저 연단되고 나서 사명을 맡는 것이듯,
결혼도 그냥 나이가 찼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는 그 어떤 역경이 몰
려와도,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 나 성자와의 사랑을 중심하고, 시대
말씀을 중심하는 그 마음을 깨뜨리지 않을 정도가 돼야 한 가정을 꾸리고
이끌어 나갈 수 있다.
가정국이 대체 무엇이냐? 그 가정이 곧 ‘섭리세계’가 된다 함이 아
니냐. 그러니 진정 너희가 한 가정에서 ‘제2의 선생’이 되어서 중심을
잡아 줘야만 한다.
현재 ‘가정 천국’은커녕 ‘가정 지옥’이 된 가정들도 있다. 감당하
지 못할 거였으면 결혼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신중히 생각해 보고, 자기를
만들고 나서 결혼했어야지... 너무나 안타깝다.
앞으로 가정국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잘 들어라. 너희가 만들어지지
않고 섣불리 ‘부모’가 되고 ‘가정국’이 됨으로 인해서, 그 모순이 올
무가 되어 ‘가정 천국’이 아닌, ‘가정 지옥’이 초래될 수도 있음을
무섭게 깨달아라.
당장에 나이가 찼다고 해서, 자신이 짝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육적
쾌락의 호기심으로 인해서 자신을 만들지 않은 채로 결혼했다가 나중에
후회하고 이혼까지 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결혼’이란, 일평생 지속될 아주 큰 사명을 맡게 된다는 것임을 명
심하고 또 명심해라! 감당하지 못할 거라면 안 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정말 너희가 선생의 정신으로 시대 말씀으로 온전히 섰다 싶을 때에 결혼
해야 된다.
지금까지 나 성자가 생명의 속성에 대해서, 현재 섭리의 부모들과 2
세들에 대해서, 앞으로 부모가 되고 가정국이 되고자 하는 자들을 위해서
진정 하고픈 말을 했다. 이 말씀을 읽고 또 읽어 보고, 명심 또 명심하자.
사랑한다.
오늘은 어린이날을 맞아서 가정의 어린이와 신앙의 어린이를 위한 말
씀을 전했다. 모두 말씀을 듣고 가정의 어린이와 신앙의 어린이를 나 성
자와 같이 키우고 도와서 귀하고 위대하게 쓰여지게 하자!
섭리사의 어린이들과 신앙의 어린이들아.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한다.
내가 함께하더라도 늘 차도 조심, 길도 조심, 먹는 것도 짜고 맵지 않게
먹으며 조심, 말도 조심, 사람과 사탄의 유혹도 조심하면서 시대 말씀과
나 성자의 사랑으로 용감하고 담대하게 크자!
너희를 사랑하는 성자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