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3.05.18 (토)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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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꽃
작성일 : 2013. 3. 26(화) 새벽 3시
작성자 : 주은혜
(꿈에 지인이 나와서 내게 십자가에 꽃을 피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꿈에서 ‘나도 그건 모르
지!’하고 대답한 후에 주님께 “주님, 십자가에 꽃을 피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하고 여쭈었더니 주님께서 설
명을 해 주셨습니다. 꿈에서는 ‘아! 그렇구나.’하고 깨달았는데 잠을 깨고 나니 전체는 기억이 안 나고 부분만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다시 여쭈었습니다. “주님, 주님이 말씀해 주신 것이 다 기억이 안 나고 부분적으로만 기억이
나요. 주님께서 다시 말씀해 주시면 이번엔 확실히 받아쓸게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주님께서 말씀해 주셨습
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십자가에 꽃을 피우려면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십자가는 첫째, 너희를 향한 ‘사랑’이다.
나는 너희 앞에 선 시대 구원주,
곧 나의 분체에게
‘십자가’라는 고난의 길을 통해
인류의 죄를 짊어지게 함으로
너희를 죄와 멀어지게 하고,
삼위와 가까워지게 하였다.
즉, 내가 시대 분체를 통해
죄와 고통에서 너희를 구원하고
너희의 죄를 짊어진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하고자 하는 사랑이다.
십자가는
너희와 삼위의 사이를 가깝게 하는 것이다.
둘째, 십자가는 ‘희생’이다.
십자가는 고통의 길이다.
나를 따르는 자들은
모두 가야 하는 길이요,
내가 세운 자라면
가장 먼저 걸어야 하는 길이다.
십자가의 길은 대속의 길이자, 희생의 길이요,
삼위 앞에 산 제물이 되는 길이니
희생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길이고,
자신을 비우고,
버리지 않으면 걸을 수 없는 길이다.
나를 따르는 자들은
모두 좁은 길로 간다.
자신의 죄를 내려놓고,
자기 생각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내가 걸었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내가 간 길이야말로, 구원의 길이며,
천국의 길이요, 완성의 길이니
따르지 않고서는
천국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고로 십자가는 희생과 사랑의 길이다.
나는 시대 메시아를 보낼 때마다
십자가의 길을 걷게 했다.
그 길은 내게도 고통의 길이었지만,
각 시대의 사명자가 겪기에,
인간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신을 받은 자,
곧 육신을 쓴 신이었기에 감당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메시아를 통해
인류의 죄의 회개를 받으셨고
메시아가 내게 조건을 세웠을 때
인류는 한 걸음 더 성자와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내 사랑아, 너는 모를 것이다.
선생이 너희와 나 사이를
얼마나 가깝게 만들었는지 말이다.
그가 단순히 말씀을 받아서,
또 시대 사명자이기 때문에
인류와 신의 사이를 가깝게 한 것이 아니다.
그가 십자가를 짊어졌기 때문에
너와 나의 사이가 가까워진 것이다.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는
다리가 필요하고
그 다리의 역할을 하는 자는 메시아다.
메시아는 신과 인간을
소통하고 개통하는 자로 세웠다.
하지만 그 역할을 그냥 하지는 못한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제물이 필요하니
메시아는 스스로를
제물로 삼위께 내어 놓고 희생함으로
인류가 삼위께 가까워지게 하였다.
고로 이천 년 전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희생으로 인류는 삼위와 가까워졌고,
그 스스로가 제물이 됨으로
따르는 자들이 삼위께 나아올 수 있었다.
지금도 선생이 십자가를 짊어짐으로
너희가 삼위께 나아올 수 있음을 알아라.
십자가는 삼위의 것이요, 너희의 죄요,
선생이 짊어지고 있는 인류의 무게다.
그 십자가,
곧 너희의 죄를 회개시키는 선생을 통해서만
너희가 나에게 나아올 수 있는 것이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라.
십자가는 삼위가 메시아와
그 시대 따르는 자들에게 주는 특권이요, 사명이자,
너희가 따라야 할 길이다.
십자가라는 자체가
너희가 희생함으로
인류를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희생하면
지구촌에 있는 자들이
섭리라는 중심 종교로 인해
차원성과 관계성이 높아지니
너희에게 십자가는 영광이자, 책임이다.
이 십자가에 꽃을 피우려면 어찌해야겠냐.
십자가에 꽃을 피운다는 것은
이 섭리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더 아름답고 찬란하게 빛나게 한다는 것으로,
너희가 섭리를 전하는 것을 말한다.
또 십자가의 꽃을 피운다는 것은
이제는 섭리사가 희생만 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함으로 선생도, 너희도
꽃피우는 역사를 할 수 있다는
내 약속이다.
섭리사는 지금껏
선생과 함께 십자가를 짊어진 자가 적어서
선생 혼자 십자가를 짊어지는 시간이 많았다.
고로 십자가에 꽃이 필 수가 없었다.
이제는 때가 되었으니
너희 각각이 선생의 심정을 알고
너희 마음 가운데 심령 가운데
십자가를 품어라.
예수가 고통을 받았던
형틀의 십자가가 아닌
선생이 고통 받고 어려움을 겪었던
심정의 십자가를
너희 마음으로 품고
너희 마음에 그 십자가를 꽃피워라.
사람이 한이 없으면
어찌 나를 만나고,
사람이 한을 모르면
어찌 하늘을 대할 수 있겠냐.
고로 내가 말하니
너희 마음으로
선생의 십자가를 마음으로 끌어안고
너희 마음 안에 십자가를 피워라.
그 십자가의 꽃이
너희를 구원으로 이끌 것이다.
또, 이 십자가를 전하여라.
신약의 예수가 매달린 후
사도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전하며
그의 희생과 고통을 전함으로
사람들의 가슴마다
십자가를 심고 인정하게 했다.
그와 같이 선생도 이제 부활하여
영적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육신으로, 심령으로
십자가 고통 기간으로 겪었던
그 모든 것을 전하며
인류를 위해 짊어진 시간들을
전하길 바란다.
사람들 마음 가운데, 심령 가운데
십자가의 꽃 피워야
너희의 마음과 행실이 변화된다.
사람이 편하기만 할 수 있냐.
또 구원이 편하기만 할 수 있겠냐.
너희 마음에 뜨거운 불덩이 같은 신앙이 있어야지만 또한 나와 같은 깊은 한이 있어야지만
신앙을 끝까지 할 수 있다.
십자가에 고통을 받고,
순교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자만이 갔던
이천 년 전 섭리 길처럼
너희도 마음에 불꽃이 일어야지만
나와 만날 수 있다.
선생의 한을 만나야지만
나와 만날 수 있다.
내가 선생의 말씀을 통해
너희 모두에게 십자가의 씨앗을 주었다.
모두에게 내 마음을 전하였다는 말이다.
또 모두가 나와 함께 내 마음을 받고
선생의 한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그 씨를 어떻게 틔우느냐는
너희의 몫이다.
틔우지 못 하는 자도 있고,
꽃을 피게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기도함으로, 말씀으로, 내 심정을 받음으로
십자가를 마음에 심어라.
내 사랑하는 자야,
섭리사 말 못하는 사연이 너무 많다.
예수는 십자가 단 한 번의 죽음으로
이천 년간 모든 자들의 십자가를 져 주고,
그들의 마음에 십자가를 심었지만,
선생은 너희의 마음이 아플까
그 십자가 사연을 말하지 않는다.
자존심도, 생명도 내어 놓고
자신도 버려 가면서 갔던 그 길, 그 사연을
정녕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내가 말한다.
그 사연을 귀로 들으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 듣고, 영혼으로 들으려고 해라.
말씀 가운데 전하는 그 심정으로
듣고 알려고 해 보아라.
처절했던 그 사연과 심정들이
너희의 가슴에 선연히 들릴 것이다.
그 마음이 은은하게
너희의 마음에 와 닿아.
성약시대 십자가의 꽃이 필 것이다.
알고자 하는 자는 안다.
자신의 십자가, 선생의 십자가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는
마주하지 않지.
구원은 쉽지 않다.
선생의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너희의 십자가를
짊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고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해해야 한다.
왜 네게 꿈을 꾸게 하고 말해 주는 줄 아느냐.
십자가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말해 준다.
이제는 희생과 대속의 때가 지났다.
선생을 직접 대면하는 때가 가까워졌다.
이 비유를 알아라.
십자가에 꽃을 피운다는 말은,
너희 각각이 가지고 있는 십자가를 더 알고
꽃피우라는 말도 있지만
섭리의 주인이 너희 각각에게 나타나
고생과 희생의 십자가 길이 아니라
꽃길이 될 거라는
비유와 은유도 함께 있다.
선생과 함께라면 천국이다.
고통도 힘듦도 어렵지 않게 흘러간다.
고통과 힘듦이 수고와 노력이 되어
웃으며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고로 고통의 십자가도 꽃피우듯 좋아하며
감당하며 갈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십자가에 꽃피울 날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내가 너에게 전하는 이 말을
잘 생각해 보아라.
섭리역사는 구원역사 희생 역사하면서도
사랑 역사를 이끄니 꽃피는 역사다.
선생과 함께다.
내 말을 깊이 듣고 깨닫길 바란다,
사랑하는 성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