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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3.05.24 (금)

금요 명설교

선포일
2013.05.24 (금)
성경 본문
누가복음 12장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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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24일 금요일 선생님 명설교(명강의) / 2004년 3월 7일 주일말씀 말씀의 불 <본문> 누가복음 12장 49절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할렐루야! 또 한 주일이 지나고 다시 새로운 주일이 돌아왔습니다. 세계 각 나라의 모든 섭리의 사람들, 모두 하늘 앞에 열렬하게 바쁠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바쁘게 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할 때, 열심히 안 하던 때의 5배 혹은 10배 혹은 20배 30배 하게 됩니다. 여 러분들 겪어보았지요? 30배가 뭡니까. 열심히 안 할 때는 안 합니다. 안 하던 것을 하 게 되니까 몇 수십 배 수백 배로 많이 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개 사람들은 열심히 할 때는 아주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합니다. 그러다 또, 한번 안 하면 물불을 가리며 안 합니다. 잠자는 사람같이 세상모르고 관심밖에 있게 됩니다. 그 런 때는 본인 스스로가 하기가 힘듭니다. 옆에서 깨워 주고 일으켜 주고, 그리고 외쳐 주고, 같이 뛰어 줘야 다시 불이 붙어서 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많이 겪어 보았지요? 자연 건강적으로 인체의 구조를 봐도 그렇습니다. 운동을 열심히 할 때는 몸이 굳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운동을 안 하면 서서히 굳어 버립니다. 목도 돌려서 잘 돌아 가야 합니다. 안 돌아가면 굳은 것입니다. 어깨 위까지 턱이 돌아가야 됩니다. 한번 해 보십시오. 자기 어깨를 일자로 하고서 목이 어깨 위까지 돌아가나 보십시오. 어깨 위까 지 안 돌아가면 목 운동을 안 한 것입니다. 나이를 먹어서 목 운동을 못 한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나이가 80이라 해도 목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목이 안 돌아가서 아프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본인이 하루에 20번 30번씩 해버릇 해야 됩니다. 그러면 목 디스크가 안 생깁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은 운동이라 했습니다. 자꾸 말씀을 듣고 움직여야 되 고, 행동해야 됩니다. 안 하면 신앙이 굳어 버립니다. 그와 같이 그러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영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까. 지금 영계 이야기를 해 주는 것입니다. 영 계에 가서 깨달은 이야기들입니다. 믿습니까. 신앙뿐만 아니라 세상의 인생살이를 살 때도 자꾸 움직여야 됩니다. 선생님이 늘 여 러분에게 말씀했습니다. 못 뛰면 꿈틀거리기라도 하라, 조금씩 움직이기라도 하라고 했 습니다. 조금 움직이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아 저 사람 힘든가 보다. 도와주자.’ 하고서 도와주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으면 ‘ 아 저 사람은 죽은 시체인가보다. 무섭다.’ 하고 그냥 달아나 버린다는 것입니다. 말씀 듣고 전혀 움직이지 않으면 죽었다는 것입니다. 자꾸 움직여야 합니다. 발도, 손도, 생각도, 온갖 지체가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튼 튼해집니다. 선생님은 그저 5분이 아깝고 1분이 아깝습니다. 1분이면 편지를 써서 그에게 소식을 전하고 이끌어 내는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운동을 하다 보면 한 생명이 아 니라 수십 명을 손대지 못하니까 시간이 아까워서 운동을 안 갑니다. 그러다 보니까 목이 굳고 허리가 아프고 그렇습니다. 그러면 운동하러 나갑니다. 어찌나 많은 소식들이 왔는지 지금도 계속 보다가 주일 단상에 서게 되었습니다. 여 러분이 보낸 것을 하루 이틀에 다 볼 수 있겠습니까. 수백 장이 왔는데 어떻게 하루 이틀에 다 보겠습니까. 일주일 동안 봐도 다 못 볼 것 같고, 한 달 동안 봐야 될 것 같 습니다. 편지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왔는데 일반 편지면 안부만 보고 끝나지만, 대답할 편 지이면 전화로 뭘 물었을 때 대답하듯이 지금은 전화를 못하니까 편지로 대답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하다 보면 시간이 많이 갑니다. 그래서 늦더라고 답장이 가는 사람이 있고, 신앙이 크고 성장되고 튼튼한 사람은 받 는 것으로 끝납니다. 또 가다가 시간이 있으면 해 주겠지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신입생과 약한 사람을 중심해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시간인 것을 여러분이 알 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운동하듯이 자꾸 말씀을 듣고 움직이고 행동해야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누가복음 12장 49절입니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이에 해당되는 모든 성서의 말씀을 중심해서 오늘 말씀 하겠습니다. 먼저 전체 찬양 을 하겠습니다. 모두 기립해서 전체 찬송 하고서 말씀 하겠습니다. 오늘 주제의 말씀은, ‘말씀의 불’이라는 주제 말씀으로 말씀을 하려고 합니다. 특히 ‘말씀’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요1:1). 하나님께서 말씀으 로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누구를 만나면 말씀으로 시작하지 않습니까. 말이 없이는 진행할 수가 없 고, 움직일 수가 없고, 동작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태초에 말씀이 시작되면서 하나님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타나지 않으시고 말씀만 나타났습니다. 그 말씀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허공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자’를 통해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크게 하고 성장되게 하여 그를 통하여 서서히 하나님 의 말씀이 나타나게 해서, 하나님이 하고 싶은 말을 모든 사람에게 전달해 주고, 하나 님의 사정을 이야기 해 주고, 그리고 인간들의 모든 사정을 고하게 하려 했습니다. 원래 아담이라는 말은 남자라는 말입니다. 아담을 창조했다는 것은 남자를 창조했다 는 말이고, 하와를 창조했다는 것은 여자를 창조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여 성장케 했는데, 성장하는 기간에 하나님이 제일 싫 어하는 이성의 타락을 했습니다. 그들이 성장하는 가운데 타락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것이 될 수가 없었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전달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보면 성장하는 가운데 탈락하는 일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성뿐만 아니 라 성장하는 가운데 교회를 나오는 것도 탈락되어 버리고, 곡식이 성장하는 가운데 말 라 죽기도 하고, 성장하는 가운데 병들어 죽기도 하고, 성장하는 가운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끝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종교의 가장 큰 원죄는 하나님 앞에 이성으로 범죄 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이성 의 범죄를 싫어하시는가 하면,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대체’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육체의 상대체요, 정신적인 상대체입니다. 그래서 타락했을 때 하나님 이 완전히 싫어하고 심판하고 버려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런 관계가 아니었으면 그렇게 안 했습니다. 타락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 기 전에 타락했으면 말씀을 못 받았다는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법칙적으로 볼 때 타락 하면 말씀을 못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잠언을 받아도,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도 그 만큼 그런 단계에 올라가야 받을 수 있습니다. 잠언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활을 해야 그런 생활에 해당하 는 잠언을 받는 것입니다. 안 하면 못 받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이성의 타락을 했으면 말씀을 못 받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기 전에 정상적으로 왔기 때문에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타락했기 때문에 말씀을 못 받은 것입니다. 말씀을 못 받으니까 어떻 게 자랄 줄을 모르고 어떻게 클 줄을 몰랐던 것입니다. 말씀을 못 받을 뿐만 아니라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일체가 안 되었습니다. 곡식이 익은 다음에 거꾸러진 것은 괜찮습니다.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익 기 전에 태풍이 불어서 넘어진 것은 건질 수가 없습니다. 익은 곡식에게 태풍이 불어 서 넘어졌으면 추수하는데 기분이 나쁘지,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가 익었는데 바람이 불어 떨어졌다 해도 금이 갔지만 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익기 전에 떨어진 것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먹을 수도 없고 탈락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불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며 말씀을 들으세요. 지금 ‘말씀’에 들어갔습 니다. 천천히 해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동영상을 보니까 해외 각 나라가 통역하는 데 바쁘더라구요. 천천히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동영상을 보내 줘라 한 것입니다. 여러 분에게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것이 타락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중에 뽑아서 하나 님의 사람의 대상이 되게 한 것인데,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타락되었으니 못쓰지 않겠습니까. 그냥 아담과 하와 둘이 살라고 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타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쓸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 이 시대에, 마치 에덴동산의 하와처럼 택하여 섭리사에 부른 것입니 다. 지구촌의 에덴동산에, 섭리의 에덴동산에 여러분을 불러 들였습니다. 성장 전에 타 락하면 아담과 하와 같은 입장이 됩니다. 그래서 타락하면 안 된다, 그것 만큼은 안 된 다, 타락은 하지 마라 하는 것입니다. 대개 청소년들이나 20대 초기에 호기심으로 인터넷도 보고 채팅도 해보고 그럽니다.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채팅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호기심을 가지 고 연애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터넷 채팅을 하지 말고 나에게 편지하라. 나랑 편지로 채팅하자. 그런 호기심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편지하라는 것입니다. 나와 하면 수준이 높아서 편지 쓰는 것도 늘고, 하나님의 묵시의 말씀도 늘 듣게 됩니다. 내가 편지 쓴 것을 봤습니까. 하 나님의 묵시의 말씀을 전해 주는 것입니다. 그들뿐만 아니라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을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타락하고서, 넘어져 보고서 그것이 아니구나 하면 되겠습니까. 왜 그런 바보짓을 하냐는 것입니다. 과일이 땅에 떨어지고서 그것이 아니구나 하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지금 이 시대에 하나님의 에덴동산에 불러온 아담과 하와들입니다. 말씀 받고 성장할 때까지 타락하면 안 됩니다. 성장하면 한 남자와 한 여자에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아담 하와를 성장시켜 크면, 육신도 발육하고, 가슴도 불룩 불룩, 진리도 불룩 불룩, 은혜도 불룩 불룩 모두 충만한 가운데 이르면 그 때는 추수하듯이 과일을 따듯이 ‘따 먹으라’ 합니다. 그럴 때가 옵니다. 그럴 때가 축복식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 때까지 성장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말씀의 불’입니다. 그렇게 해서 축복식을 한 축복 가정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제 말씀을 받고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습니까. 이 시대의 여러분들은 아담과 하와같이 다 불러왔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지혜로, 하나님이 지시하는 말씀으로 성장하고 커야 합니 다. 먼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첫째는 말씀을 먼저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 서 말씀을 배우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30개론의 말씀을 듣고 배우면 성서의 말씀이 거의 다 해석되고 그 중심적인 것은 다 알게 됩니다. 선생님은 성서에 있는 핵심적인 것을 20년 동안 배웠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실 천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금 40년을 가고 있습니다. 20년 동안 배우고 20년 동안 실천하니까 온 지구촌의 여기 저기 많은 사람들이 돌아왔습니다. 이 말씀 앞에 생명들 이 돌아와서 ‘아 말씀이 시작되었구나!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이미 하나님이 강 림이 시작되었구나. 하나님이 오신다더니 왔구나!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구나!’ 하고 깨닫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나타나도 안보입니다. 천사 도 안보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모세에게도 말씀으로 나타나고, 노아에게도 말씀으 로 나타났습니다. 원래 아담이 성장되었을 때 말씀으로 나타나려고 했는데 아담이 타 락함으로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모세에게 나타난 말씀은 다른 말씀입니다. 원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지 않고 그대로 성장했으면 예수님께 말씀한 그 말씀이 바로 선포되었을 것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내 사랑하는 자다! 내 신부다. 내 애인 이다.” 실상 그보다 더 깊은 말씀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원래 예수님이 선포한 말씀은, 구약 이 타락해서 종들이기 때문에 다시 복직하는 차원이라서 한 단계 윗 단계로 아들로 대 해주었습니다. 아담이 타락치 않고 본래의 상태였으면 그대로 신부로 대해 주었을 것 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나의 기뻐하는 자야! 내 신부다! 내 애인이다!” 했을 것 입니다. 하나님은 신랑, 그들은 신부! 그리고 아담은 하와에게 육체적인 애인, 하나님 은 주권자이기 때문에 육체의 애인도 되고 영체의 애인도 되고 다 되는 것입니다. 아 담을 통해서 그를 취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말씀의 불”입니다. 이 불이 붙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했습니다. 여러 분, 불이 붙었습니까? 받아들였습니까? 믿습니까? 깨달았습니까? 깨달았으면 ‘아멘’하 시기 바랍니다. 다시금 불을 붙이니 다시금 여러분 모든 사람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 저것 배웠는데...’ “너 제대로 배웠는데 왜 그것밖에 못 사느냐?” 더 불이 제대로 붙어보라는 것입니다. 더 강한 불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꼭 불이 제대로 붙어야 되겠습니다. 말씀의 불, 불같은 말씀입니다. 부산의 신입생에게 편지가 왔는데 “불같은 말씀을 듣게 돼서 너무 감사합니다.” 했 습니다. 나이가 18, 19밖에 안 된 신입생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정말로 개념 없이 살 았는데 불같은 말씀을 듣게 돼서 감사합니다, 이 불같은 말씀을 듣고 내 인생이 변화 되고 이상적인 역사가 일어나면 좋겠다”고 썼더라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들이 모두 수고도 하였지만, 신입생들이 말씀을 들으며 정말 보람 있게 하는 것을 편지를 뜯어보며 느꼈습니다. 편지를 뜯어보면 아주 확실한 내용들이 많습 니다. “이제 선생님을 깨달았습니다. 방송을 보고 악평했었는데 너무 너무 죄송합니다. 한 가지 한이 있다면 선생님 앞에 무릎 꿇고 정말로 잘못했다고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냥 편지로 하면 된 것이다. 너와 같은 자를 네가 돌이켜 놓아라.” 그 랬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입생인데 “나는 일생을 결혼도 안 하고 주를 위해 평생 살겠습니다.” 하고 통쾌하게 말하는 것을 보았는데, 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인데 말씀이 그렇게 변화를 시킨 것입니다. 선생님도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이 이렇게 변화를 시켰습니다.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고서 일생동안 결혼도 안 하고, 아들 안 낳고 힘내서 오직 구원 섭리만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말씀을 배우다 선생님의 사명을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 말 씀을 배우는 자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본래 아담에게 하시려고 했던 말을 모세나 노아에게 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는 이스 라엘 민족을 애굽에 있을 때 이끌어 낸 그 나름대로 구원주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런 사람들에게 할 그런 말씀이 아니고 더 가까이 하는 자에게 나갈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노아는 홍수심판 때 구원시킨 사람입니다. 모세도 종이고 노아도 종이 아니 었습니까. 그들은 종들 가운데 의로워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너는 내 앞에 완전히 행 하는 자다. 내 마음에 맞다.” 그랬습니다. 여러분들이 타락치 말아야 말씀을 제대로 받아낼 수 있습니다. 타락치 말아야 말씀 을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은 그 나름대로 그 때 그 때 그들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해주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음으로 그 백성들이 겨우 하나님께 심판을 면했습니다. 그들 스스로는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을 쳐도 살 수가 없었습니다. 말씀을 들음으로, 그 말씀을 순종함으로 그 죽음에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 육신이 죽는 데서 사는 것을 봤지 않습니까. 그 죽는 데서 사는 것이 얼마 나 좋습니까. 말씀을 절대 들음으로 심판을 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생명입니다. 말씀이 생명을 좌우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심판해버리고, 말씀으로 구원 하십니다. 말씀으로 “ 너 죽일게” 하면 죽은 것이고, “ 너 살릴게” 하면 사는 것입니 다. 그런 축복의 말씀이 나오도록 하나님께 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잘해도 축복이고 복인데 하나님께 잘하면 얼마나 축복을 받겠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잘하라 했는데 잘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고 무엇이 잘하 는 것인 줄 압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입으로만 사랑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범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성 의 범죄나 세상의 각종 어떤 것에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 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 해놓고 자기 할 일 다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 하고 싶은 일을 끊어 버리고, 하나님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것 이 아니겠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안 사랑하고 세상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하와가 오히려 아 담을 사랑했으면 덜 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천사와 타락됐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때 하나님은 벌써 아십니다. 하나님을 절대 사랑하 는 마음이 사라지면 하나님은 타락으로 봅니다. 육신이 타락하기 전에 마음이 먼저 타 락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을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이미 마음이 타락된 것으로 봅니 다. 그 다음에 육신이 가면 육신이 타락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로 타락이 되는 것입니 다. 육신이 타락된 사람들은 마음도 타락, 육신도 타락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한 가지 봐주는 것은 억지로 이성문제가 일어났다, 밤에 가다 강압적으로 당했다 하면 그것은 참고로 합니다. 그러나 같이 그랬다, 서로 좋아서 같이 하늘을 버리고 그랬다, 시험 들어서 그랬다, 순간 신앙의 잠을 자서 그랬다 각종 각색이지만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절대 사랑하는 그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되고,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약해지 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절벽에 줄을 타고 오르는데 실가닥 같은 줄을 타고 오르다 보면 끊어지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약해지고, 마음이 좌절되면 육신이 좌절되는 것입니다. 절대 마음이 좌절돼서는 절대 안 됩니다. 마음에서 좌절되면 육신이 좌절되니까. 말씀의 불!! 아담 하와의 타락 후 구약 4000년의 탕감이 끝나고, 그 다음에 예수님 을 보내서 다시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타락되지 않았잖습니까. 예수님은 그것 을 지켰습니다. 지키고 타락되지 않게 행했습니다. 이성의 타락을 막아버렸습니다. 그 때 당시 예수님이 말씀을 주고 길러서 때가 되면 결혼식을 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에 결국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나는 그냥 살겠다. 주를 위해서 주와 같이 살겠다.” 하는 신부들이 나타나서 그대로 결혼 안 하고 살고, 그리고 수녀들이 결혼 안 하고 살면서 악착같이 계속 역사를 폈습니다. 아무래도 결혼을 하면 가정을 돌봐야 되고 자녀들을 돌봐야 되지 않습니까. 그들이 섭리를 펴며 거진 1600년간 역사를 지켜왔는데, 루터 개혁 이후 메시아 강림을 준비 하는 400년 동안은 결혼해서 사는 역사를 했습니다. 그게 개신교가 아니겠습니까. 천주교에서 그렇게까지 안 했으면 역사를 잡아오지 못했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를 따로 보는데 내내 같은 혈통들, 같은 집안입니다. 같은 주, 같은 예수를 믿는데 다만 개혁했다는 것만 다를 뿐입니다. 구원도 같고 모두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사 느냐 어떻게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개혁 역사는 보다 새로운 역사의 주를 만나는데 보다 빨리 마음이 돌아갔고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의 불’을 던졌습니다. 신약의 구원의 말씀을 던졌습니다. 그 시대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라 가는 사람만이 종권을 벗어나, 다시금 새로 운 역사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세에 못 따라 가면 못 따라 가 는 것입니다. 어렵습니다. 구약인들 지금도 안 따라 오지 않습니까. 선조들이 안 따라 가니 그 자손들까지도 안 따라 갑니다. “우리 선조들이 안 따라 가지 않았느냐. 옳게 봤다. 그 당세에 봤는데 안 따라 간 것 봐라.” 하며 안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손까지 못 오지 않습니까. 그러나 신교로 기울어진 자들의 그 자손들은 신교로 다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 당세에 잘못 알면 그 자손들까지 축복을 못 받고 사망권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역사를 발견한 것은, 여러분의 자손까지 운명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메시아가 온다, 하나님이 오신다 했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올 줄 알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온다고 되 어 있습니다. “내가 구름타고 가마. 내가 불과 칼 가지고 강림하마.” 그런 성경 말씀도 있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인체이 기 때문에 와도 안 보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죽은 메시아, 과거에 죽은 사람들은 와도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육신은 죽었기 때문에 영만 오는데, 영을 볼 줄 아는 사람만 보 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까지도 안 보여 줍니다. 자신이 없어서 안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자신이 없어서 못 보여 주는 것입니다. 모세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등만 봤고, 아브라함은 상징적으로 천사로 생각하고서 순간 스쳐간 하나님을 봤습니다. 워낙 잘 모시고 섬기고 그 만큼 대접하고 하나님을 우러러 보니까. 한 번 하나님을 보면 영원히 우러러 봐야 됩니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내 가 성령 이야기를 하면서 “삼위일체는 각위다. 가정에 아버지 어머니 아들이 있듯이, 천주세계도 성부 성령 성자가 있다. 성부는 하나님 아버지, 성령은 어떤 신이 아니고 모성신을 이야기 한다. 우리들의 영적 어머니다. 그리고 성자는 자녀권을 이야기 한 다.” 그랬더니 누가 자기는 성령이 너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보면 열심히 전도하고 엄마처럼 하고 돌아다니겠다.”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 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낙성대에서 토요공개 방송을 엄청나게 하고 있었을 때, 그 날 자기는 맨 뒤 에 있었는데 그 때 사람이 아닌, 키도 크고 흰옷을 입은 여자가 나타났는데, 입으로 표 현할 수 없는 여신이 나타나 자기 뒤로 스쳐지나가는 여실히 봤답니다. 그때 나에게 와서 그게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게 바로 니가 보고자 했던 성령이 아니냐.” 했더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고 했습니다. 보는 순간에 ‘성령이다!’ 하는 마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 날 자기 말고 다른 사람도 봤는가 해서 물어봤더니 아무도 못 보고 자기만 봤더라는 것입니다. “너는 봤으니까, 많은 사람을 이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라. 엄마같이 해야 한다.” 그랬는데 그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그 본 만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안했습니다. 어느 날 차 사고가 나서 죽었습니다. 그 날 선생님이 지도자들에게 보라매 공원으로 오라, 거기서 지도자 교육이 있다, 다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라매로 안 오고 메이크업 배우러 다닌다고 아침에 옷도 깨 끗이 갈아입고 가다가 택시에서 죽었습니다. 모델부였습니다. 택시 운전수도 그 부인의 말에 의하면 아침에 옷을 깨끗하게 갈아입고 나갔답니다. 그도 죽었습니다. 택시 운전 수는 정말 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망가져서 죽었고, 그 애는 별로 다친 데도 없이 죽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보면 참 책임이 크구나. 하늘을 보면 책임이 크구나’ 하는 것 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하나님만 보여 달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 보고 믿는 것이 좋습니 다. 보고서 못 하면 큰일 납니다. 이치적으로 볼 때, 있다는 것을 모릅니까. 요한계시록 9장에 보면 그는 자기 밖에 모르는 말씀을 가지고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자들은 말씀을 자기 밖에 모릅니다. 보는 것도 자기 밖에 모릅니다. 말해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 보고 믿는 것이 큽니다. 하나님은 안 보고 믿어도 됩니다. 왜? 안 보 고 믿어도 수천가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눈만 떠보면 수천가지로, 수만 가지로 하나 님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물을 통해서 나타나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나타나나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요새 어떻게 나타납니까? 여러분 옆에 안 나타납니까? 여러분 앞에 편지로 나타나고, 사진으로 나타나고, 말로써 나타나고, 화면으로 나타나지 않습니까. 여러 가 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형체만 직접 안 나타날 뿐 수만 가지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형체가 없어 서 안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로 나타는데, 여러분이 꼭 보려고만 하니까 못 보는 것입니다. 안 보여 주는데 뭘 그렇게 보려고 합니까. 옷을 다 벗어도 수영복은 입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잠옷은 입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가릴 것은 가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도 다 나타내도 얼굴은 안 보여 줍니다. 자신이 없어 안 보여 주는 것이 아닙니다. 손을 보여주고 발을 보여주고 해도 얼굴은 안 보여 줍니다. 있는 것만 알면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선생님 이 사람같이 생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창세기에 보면 내 모양과 형상대로 사람을 창 조했다,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얼굴이 남자와 여자의 얼굴 두개가 포함된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인격과, 자기의 모양과 형태대로 창조했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눈 두개, 코 하나, 입 하나입니다. 영계의 깊은 단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그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봤어도 봤다는 소리를 못 하 게 합니다. 요즘 나를 봤어도 봤다는 소리를 못 하게 하지 않습니까. 봤다 하면 나를 반대하는 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하나님을 봤으면 봤다는 소리를 하겠습니까. 완전히 목숨을 걸어놓고 이야기를 하면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 옆에 있어도 있다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안을 떠서 보 고 이야기해서 알아주는 것보다 늘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의식하고 믿으면 안 됩니다. 자연스럽게 열심히 믿어야지 주인이 있으면 열심히 하고 없으면 안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항상 수시로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왕래하고, 내 영도 여러분에게 수시로 왕래합니다. 그것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에게는 수시로 왕래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기에 수시로 오지 않습니까. 선생님도 항상 여러분의 육신을 본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사진을 보면서 본다고 생각하고, 여러분의 편지를 보면서도 여러분이 쳐다본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의 존재성도 알고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온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안 오고 예수님이 오니까, 하나님이 안 온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의 육 신을 통해서 강림하시고 나타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렇게 생긴 것이 아니 고,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고 지시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웃어주고, 각종각색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나를 본 것은 하나님을 본 것이거늘 뭘 보 여 달라고 하느냐.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상상해 보아라. 내 말을 들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라 하는데 예수님이 저렇게 하겠습니까. 똑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음성만 사람을 통해서 하기 때문에 그것만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직접 설교하시면 안 됩니다. 너무 너무 시간이 걸립니다. 상상도 못 할 시간이 걸립니다. 설교 하나 들으려면 일주일은 걸릴 것 같습니다. 왜인지 궁금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실 때 나와 같이 이렇게 안 합니다. “말씀은 불이다.” 이렇게 안 합 니다. “말- 씀- 은 불-이니라---” 이런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로 말-하-노-라----” 이렇게 하기 때문에 그 엄청난 말씀을 다 들으려면 1 주일 만에 설교 짧은 것 하나 듣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나올 때 가슴이 울렁거리고, 출렁거리고, 두렵고 그렇습니다. 그것을, 하 나님의 음성이 난 것을 표구로 써 놓으라고 했습니다. 새벽에 오랫동안 하늘의 묵시 속에 파묻혀 있던 적이 있는데, 그것을 표구로 써놓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으 로 난 말씀을 표구로 쓰는 것이 좋겠다, 3000장이고 4000장이고 다 써놓아라, 그것을 써놓으면 다 가지고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라”는 것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서 딱딱 잘라가면서 해야 됩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 불같은 말씀을 하나님이 직접 안 하시고 그 시대에 하나님이 뽑은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만 말씀하십니다. 선지자이면 선지자에게만 말씀하시고, 메시아이면 메시아에게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머리에서, 뇌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입으로’ 말하지 않습니까. 눈으 로 말합니까? 귀로 말합니까? 손가락으로 말합니까? 발로 말합니까? 엉덩이로 말합니 까? 가슴으로 말합니까? ‘입으로만’ 전달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세운 자를 통해서만 말씀하십니다. 그가 말씀 을 선포하면 강같이 말씀이 흘러가더라 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 보면 하나님의 불같 은 말씀을 쏟으매 강같이 흘러내려 가더라 했습니다. 이 단상을 통해서 말씀이 흘러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말씀’을 들어야 그 시대에 해당되는 일들을 하고, 생명이 살아나서 역사 를 펴나간다는 것입니다. 옛날의 구약의 제사법이 여러분에게 해당됩니까. 양을 잡아다 놓고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라는 것이 여러분에게 해당됩니까?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됩니다. 예수님 시 대에도 해당이 안 됩니다. 그러나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의 말씀은 시대성에 상관없이 해당이 됩니다. 더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또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도 이 시대에 해당 됩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 해당되는 율례와 법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 벗어났 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대교가 아니라 기독교가 아니겠습니까. 또 기독교의 율례와 법도를 다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외쳤던 진리의 말씀은 더 완전케 하 러 왔기 때문에 더 지켜야 됩니다. 선생님도 여러분에게 형제를 사랑하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 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너희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한번 해 보라. 그러면 안 되던 것이 된다!” 하고 늘 말씀합니다. 그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을 해야 되고, 그 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을 들어야 그 시대 에 해당되는 말씀을 통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진리를 듣고 모두 따라 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 저 사람이 말씀하는 것, 자기 위주로 한다. 자기를 구세주화 한 다. 만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러 온 것입니 다. 하나님의 말씀을 만들어서 됩니까? 쌀을 만들어서 생명 있는 쌀이 되겠습니까. 만 들어서 될 것이 따로 있습니다. 내가 조작해서 만든다고 되겠습니까. 그리고 따라 오는 사람이 그런 분별력이 없겠습니까.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선포한 말씀이고, 그 말씀을 선생님이 바짝 가서 받은 말씀이고, 그리고 내가 실천함으로 조건을 세워 표상이 돼서 받은 것입니다. 아무도 못 세우니까 하나님 앞에 조건을 내가 대신 세운 것입니다. 치절미 나는 조 건을 세웠습니다. 여러분들, 대둔산에 올라가서 기도해 봤을 것입니다. 하루씩, 일주일 씩 올라가서 기도해보니까 너무 힘들었지요? 선생님은 하루 이틀이 아니고 죽음을 내걸고 조건을 세우니까, 조건 대가가 되어 거 기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을 주게 된 것입니다. 내가 온 인류가 모르는 말씀을 달 라고 기도를 했겠습니까. 그런다고 주겠습니까. 내가 구세주 하고 싶다고 한다고 하나 님이 시키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세주 하고 싶다고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시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서 뗑깡 놓는다고 주겠습니까. 하나님이 마음이 약해서 여러 번 이야기 한다고 그것을 허락하겠습니까. 전지전능 하신 하나님이, 무소부재 무소불능 하신 하나님이 주겠습니 까. 인간 스스로 할 일이 따로 있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붙잡고 하는 것입니다. 90% 이상을 하나님이 딱 붙잡아 놓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100% 실패한다고 해도 10% 실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90%를 붙잡고 하니까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공하려면 10% 해야 됩니다. 10%를 못 하면 하나님 좋은 일만 하다가 그냥 끝나는 것입니다. 내가 성공하려면 나에 해당되는 10% 해야 됩니다. 여러분도 똑같습니다. 90%의 운 명은 하나님이 딱 붙잡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10%를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서 할 때 여러분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편지 쓸 때 내가 늘 그럽니다. “야, 너 인생 가치 있게 살고 싶으냐? 길 이 있다. 하나님을 절대 믿고 절대화 하라. 열심히 교회에 다녀라. 하다하다 안 되면 내가 도울게. 그러면 성공한다. 100% 성공한다. 지금은 100% 성공할 수 있다. 하나님 의 일군들이 모자라다. 하나님이 부른다. 그 빤빤한 얼굴을 가지고 온 지구촌에 쓰여지 지 않고 병신같이 한 남자에게 쓰여 져?” 나도 한 여자에게 쓰여지고 한 가정에 쓰여지기 너무 아까우니까 하나님께 쓰여지겠 다고 탁 마음 접고서 온 지구촌에 쓰여지고 있지 않습니까. 사람은 만들기에 달려 있습니다. 월명동을 어떻게 만들었습니까. 그렇게 만드니까 그 렇게 사용되지 않습니까. 쓰레기 통으로 만드느냐 작품으로 만드느냐 만들기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만드십시오. 멋있게 하나님의 뜻을 통해서 만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귀하 게 쓰여집니다. 귀하게 쓰여지기만 원하지 하지 말고 만들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쓰여지지 말고, 세상 사람이 가르치는데 함정이니까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를 평생 만나지 못해도 내가 지시하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잘되고 형통할 것입니 다. 그리고 내가 죽지 않았으니까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귀한 몸을 가지고 그렇게 쓰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하나님께 쓰여지는 자가 되 고, 민족, 세계적으로 쓰여지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귀한 것은 귀하게 쓰여지라! 귀한 것이 귀하게 쓰여져야지 천하게 쓰여지면 보는 사 람도 “아이구, 얼굴도 빤빤한데 바보처럼 저런 데 쓰여지는구나.” 하게 됩니다. 귀한 것이 귀하게 쓰여지면 “야 정말 귀하니까 귀하게 쓰여진다.” 하며 칭찬한다는 것입니 다. 귀한 사람들이니 귀하게 쓰여져야 됩니다. 신약 시대 때, 예수님 때도 예수님을 믿으니까 예수님이 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 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다가 다시 부활되어 살아나서 계속 살 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그 육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 줄 압니다. 신약성경에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했습니다. 이 죽음을 피해갈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 지구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성현도, 메시아도, 누구든지 육신을 가진 자 는 죽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지 않았어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100살 살기도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80살 살기도 힘들고 70살 살기도 힘듭니다. 그때 당시 33세에 죽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그 만큼 세포가 죽습니다. 하루에 세포가 20만개씩 죽습니다. 나 이든 사람을 보면 세포가 다 죽어 피부가 시커멓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힘이 없 어 죽지 않습니까. 세포가 언제부터 죽기 시작하는 줄 압니까. 스무 살 때부터 세포가 하루에 20만개씩 죽습니다. 스무 살 전에는 세포가 안 죽는답니다. 여러분도 세포가 계속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얼굴이 서산의 해가 지듯이 점점 늙어 가는데, 사실 해 가 서쪽으로 어느 정도 가도 날은 훤합니다. 완전히 지기 전까지는 날이 밝다는 것입 니다. 어렸을 때는 얼굴이 예쁘고, 나이가 들게 되면 몸이 예뻐집니다. 중후하게 되고 멋있 게 되고 틀이 잡히게 됩니다. 거기에다 하늘 권세와 하늘 사명을 가지고 살게 되면 젠 틀맨이 됩니다. 그러나 아무 할 일도 없이 젠틀맨이 되면 뭐합니까. 언젠가 운동을 하여 멋있게 된 사람이 있어서 지금 뭐하냐고 물어봤습니다. 너무 너 무 멋있는 사람이 지나가길래 물어봤더니 특별히 하는 것이 없고 그냥 직장에 다닌다 고 했습니다. 유럽이나 뉴질랜드 같은 데 돌아다녀 보면 운동으로 닦여져서 멋있고 아름다운 사람 이 많습니다. 진자 젠틀맨이 많고 몸의 미인들이 습니다. 그런데 그냥 직장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참 아깝구나. 멋있는 사람들이 귀하게 쓰여져야 하는데...’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가 하면, 여러분이 젠틀맨이 되면 그 만큼 무언가 사명이 있어야 되 고 주권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 받은 주권이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께 받은 사명! 하나님이 명령했습니다. “너는 내 백성들을 니가 사망에 있을 때 나오듯이 이끌어 내라.” 그 사명을 받았으면 큰 직을 받은 것입니다. 자기가 젠틀맨이 되었으면, 사명도 명예도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권세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권세,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권세, 주로 인해 서 명령을 받은 권세, 이게 얼마나 큰 권세입니까. 아무리 멋있고 예뻐도 자기에게 권세가 없으면 아무 가치가 없지 않습니까. 권세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하늘의 스타가 되든지 땅의 스타가 되든지 하지 않겠 습니까. 하늘의 스타가 더 크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나이가 들어도 몸이 아름답게 되고 멋있게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 다. 얼굴만 약간 늙었지 몸은 더 멋있습니다. 스무 살 전의 몸매가 멋있다고 하지만, 30대의 몸매를 못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40대에 몸매 잡힌 사람을 못 따라 간다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스무 살 전의 몸매가 지금의 몸매를 못 따라 갑니다. 어떻게 따라 가겠습 니까. 스무 살 때 내 몸이 멋있다고 했지만 지금 몸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열일곱 열여덟 살 때는 그런 작품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여러분도 자신 을 작품으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가정국들, “ 나이 드니까 얼굴이 늙었어. 볼품이 없어.”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 다. 그러면 큰일 납니다. 작품을 볼 줄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작품을 볼 줄 알기에 사진 찍는 것도 구도를 잡아서 넣을 것을 넣고 잘 찍습니 다. 월명동의 청기와 집과 150년 된 감나무와 집무실까지 넣은 것을 작품을 찍어서 걸 어놨는데 사진도 작품으로 잘 찍어야 합니다. 멋있는 사람도 방향을 잘못 잡아서 찍으면 멋이 없습니다. 방향을 잘 잡아서 찍어야 합니다. 선생님도 세련되지 않았습니까. 작품을 볼 때 인간의 작품을 볼 줄 알고, 인격의 작품을 볼 줄 알고, 정신 사상의 작 품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사상이 강하면 그 사람은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택합니다. 사상이 강한 자, 정신이 강한 자, 행동이 강한 자들, 작품이지 않습니까. 몸매 작품, 그 정신적 작 품, 행동적 작품!! 그 사람에게만 시키면 일이 된다면 행동적 작품의 사람이 아니겠습 니까. 작품은 값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말씀의 불입니다!! 신입생들 잘 들으십시오. 왜 내가 “긴 편지 필요 없다. 일 곱 자만 쓰라. 70자면 충분하다. 70자 쓰라.” 했는가 하면 “나 선생님 깨달았습니다. 멋있게 죽도록 살겠습니다.” 하고 간단히 하면 될 것을 무슨 이야기가 필요하냐는 것 입니다. 확실하게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 편지가 오면 A급 B급 C급 D급으로 분류해서 자릅니다. 뭘 보고 자르는가 하면, 내 용을 보고 자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내용 보고 자릅니다. 전도 많이 해서 힘든 사람은 “나와 같이 하자! 나한테 이야기하라. 나와 같이 뛰고 달리자. 너와 나 사이가 수 천만 리 떨어졌지만, 내가 너와 함께하는데 옆에 있는 것과 똑같지 않으냐.” 하며 써 주는데, 아무튼 내게 편지를 쓸 때는 여러 가지를 쓸 것이 없 습니다. 사진도 그렇습니다. 찌꺼분하게 여러 가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것 하나 보내면 안 잊어버립니다. 이미지 사진들을 보내오는데 정말 몰라 보겠더라는 것입니다. 누구한테 물을 사람도 없고.. 어떤 사람은 4장을 찍어서 보냈는데 다 달라서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는 것입 니다. 다른 사람인 줄 알고 다 편지를 해 주었는데 다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편지 보고 웃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미지 사진을 안 보내도 다 예쁘게 본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고 예쁘게 보고, 그리고 지금 선생님은 산 속에서 수도 생활 하는 것같이 생 활하며 사람을 못 보기 때문에 다 예쁘게 보고 다 멋있게 봅니다. 수도 생활 중에 한번은 선생님이 산에 갔다가 개를 불렀습니다. 하도 말할 사람이 없으니까 개를 다 불렀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늘과의 대화는 끝내고, 개를 불렀습니다. 개를 부르니까 안 오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개를 심판하겠습니까. 산에 있을 때는 너무 심심하고 적적해서 쥐새끼를 보러 돌아다니고, 새가 있으면 막 쫓아가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겨울철에 쥐가 있겠습니까. 하늘이 나를 그런 환경에 뒀다가 내려 보냈습니다. 그래서 사람만 오면 너무 좋아했 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어쩌면 저렇게 사람을 좋아한단 말이냐 했습니다. 하나님 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또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때이기 때문에 막 보고 싶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여러분과 같이 있을 때는 언제 그렇게 보고 싶다고 했습니까. “보고 싶다. 편지하라.” 이렇게 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안 보이니까, 보고 싶으니까 편지하라고 하는 것입니 다. “편지 하라. 사진도 보내라.” 그래서 여러분이 보내 주니까 “아 생각나는구나.” 하지 않습니까. 상상으로 생각하는 것과 사진으로 직접 보는 것과 다릅니다. 사진으로 보니 까 ‘아, 얘구나! 편지해 줘야 되겠구나.’ 하고서 편지를 해 줍니다. 가정국은 편지가 잘 안 갈 것입니다. 너희들은 아빠가 되고, 엄마가 되고 다 컸지 않 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편지를 받고서 ‘아, 열심히 하고 있구나.’ 하고 기 억합니다. 남자들에게 특히 편지가 안 갈 것입니다. 내가 월남에 있을 때 남자들에게서 온 편지는 답장을 안 했습니다. 여자 편지만 하루에 30통씩 해 주었습니다. 나뿐만 아 니라 다 그랬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남자에게도 편지를 하겠지만, 하와를 잡아야 되니까 그렇게 하는 것 입니다. 내가 하와들 때문에 치절미 나는 고통을 받고, 여자들 때문에 너무 너무 고통 속에 있고, 여자들 때문에 하나님께 관리 못 한다고 혼나고 해서 이들을 잡자 한 것입 니다. 한 군데만 잡으면 되니까. 나뿐만 아니라 남자들 내 심정을 알지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라면 여자들을 꽉 잡 아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잡아 주다가 익지 않은 사과 따먹듯이 따먹지 말라는 것 입니다. 편지를 보면 대개가 잡아 주다가 주무르게 되었다, 안게 되었다, 뒹굴게 되었다, 관 계를 하게 되었다 하는 것을 봤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의논하고, 여러분끼리 의논하면 서로 싸우게 되고 서로 다 투게 됩니다. 그러니까 나에게 직접 편지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여기서 보고서 다시 편지를 써 보낼 것입니다. 그 편지를 보여 주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너는 그렇게 이야기했어도 선생님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러면 해결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본인들이 편지를 안 하면 안 됩니다. 옆의 사람이 편지를 하게 되면, 우선 충 고를 안 할 수 없어 하게 되는데, 본인이 편지를 하라는 것입니다. “나 이렇지 않습니 다. 나 이렇습니가.” 하고 편지를 하면 내가 알고서 “야 쟤가 그렇지 않다는데 잘 못 봤다.” 할 것 아니겠습니까. 회개도 본인이 얘기해서 해야 합니다. 회개 안하면 그 소문이 계속 섭리사로 번져 나갑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딱 중지 시킨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시대의 말씀이 선포돼서 이 시대의 말씀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시대 말씀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30개론 말씀을 들으라. 이미 이 시대 말씀이 시작됐 다.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나에게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이겠습니까. 월 명동의 한 청년입니다. 정팔성의 아들이고, 황길례의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우리 형제 들은 칠남매이고, 누구겠습니까. 그런 사람입니다. 나를 누구냐고 묻기 전에 말씀을 진지하게 확실하게 배우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배 우면 그런 것을 묻겠습니까. 안 묻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철저히 배우게 해서, 말씀 보고 교회에 오게 만들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매 주일 말씀을 들으러 오게 해야 합니다. 어디 가서 영화를 한편 보는 것보다, 열편을 보 는 것 보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는 것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나는 근 20년 동안 뉴스도 잘 안 보고 TV도 잘 안 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 를 기울이고 전도하고 그랬더니 이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TV를 잘 안 봅니 다. TV가 없어서 안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가 바쁘고 하늘 뉴스 듣기가 바쁩니다. 물론 세상 뉴스도 듣습니다. 말씀을 아주 진지하게 깊이 불같이 전해서 말씀을 듣고 오게 해야 합니다. 말씀을 근본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원래 말씀을 ‘아홉 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니가 이 말 씀을 생활 하면서 또 배우고 또 배우고 했듯이 아홉 번을 가르치라. 아홉 번을 가르쳐 봤자 세뇌하는 것 밖에 안 된다. 사실상 실제 움직이면서 행동하면서 배워야 된다. 이 말씀을 실천하면서 배워야 되지 않겠냐. 말씀이 생명이니까.” 요한복음 1장 14절 이하를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이 육신을 통해서 말씀을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십계명으로 나타나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노아에게 나타나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누구의 말을 듣느냐? 노아의 말을 들었을 때는 겨우 구약 시대 때 방주에 올라타서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고, 모세의 말씀을 들었을 때는 애굽을 벗어나게 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는 구약 시대를 벗어나고, 지금 이 시대의 말씀을 들으면 보다 신약 권을 벗어나서 새로운 역사 앞에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 오는 사람들이 바보들이 아닙니다. 10년 20년 30년 앞선 선진국의 사람들이 말씀 듣고 따라 오지 않습니까. 그것은 말씀으로 인하여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말씀 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끄십니다! 내가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듣고 홀연히 휴거되어 이끌려 오고, 말씀을 통해서 홀연히 딸려간다는 것입니 다. 고린도 전서에 보면 시대 말씀의 나팔 소리를 듣고 그들이 홀연히 변화하더라 했습 니다(고전15:51). 여러분도 서서히 말씀을 들으면서 악평하는 자의 말을 거부하게 되 고, 새로운 진리의 말씀이 있는 데로 오게 되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돼서 외치니 말 씀을 듣고 따르며 충만한 데까지 가야 되겠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가르쳐야 시대를 제대로 알게 되고, 말씀을 제대로 배워야 시대 하나 님의 역사를 제대로 알게 되어 효과가 있고 보람이 있고 그 혜택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안 듣고 그냥 분위기 따라 앉아 있거나 재미없어 하게 하면 안 됩니 다. 초신자의 교육은 첫 번부터 제대로 시켜야 됩니다. 오래되면 안 됩니다. 손님이 왔을 때도 처음부터 정중하게 제대로 해 나가야지, 처음부터 우습게 해 놓으 면 우습게 대하며 그냥 간다는 것입니다. 방을 찌꺼분하게 해 놓으면 손님이 아무 데 나 앉았다가 그냥 갑니다. 그러나 방에 앉을 자리를 탁 탁 해 놓으면 아무 데나 못 앉 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신입생들이 말씀을 철저히 배우게 하고, 천천히 권위 있게 가르쳐야 합니 다. 말씀을 가르칠 때 능력 있게 권세 있게 세력 있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말씀을 통해서 제대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시원찮게 가르치면 안 됩니다.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고 실천해 보라고 하고, 또 가르치고 행동하게 하고, 말씀 가지고 팔자가 펴게 만들어야 합니다. 말씀 가지고 운명이 뒤 바뀌게 만들어야 되고, 말씀 가지고 복을 받 게 만들어 줘야 되고, 말씀 가지고 출세하게 만들어 줘야 됩니다. 말씀을 가지고 세상 의 이성을 다 끊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그것을 못하니까 모두 가지 않습니까. 아니 하나님이 나타나서 2000년 만에 역사가 가고 있는데 제대로 가르치면 그들이 이성을 안 끊겠습니까. 결국 하나님이 끊어 버린 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갔어도 결국 하나님이 다 끊어 놓지 않았습니까. 선생님이 기도합니다. “내가 능력으로 간구하오니 하늘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 다 끊 어지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보니까 다 끊어졌더라는 것입니다. 끊어져서 나에게 편지 를 했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편지는 구분해서 따로 쌓아 놓았습니다. 여러분이 보내 준 편지는 각 20여 종류로 구분해 놓았습니다. 이게 어제 하루 본 것입니다. 여러분은 한 통을 보내지만 여기에 도착하면 한 통이 아닙니다. 산골짝이 물이 한 줄기로 내려가지만 강줄기로 가면 범람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을 버리고 간 사람들이 결국 이성이 깨져서 다시 돌아오더라는 것입니다. 하늘 을 버리고 사업하러 간 사람들도 깨져버리는 것을 봤습니다. 이래서 이 시대의 말씀을 듣고 모든 것이 다 좌우될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말씀의 은혜를 받고 말씀대로 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술을 통해서 여러분을 부르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통해서 부릅니다. 각종 각색으로 여러 가지를 통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행정을 보고, 여러분을 내 눈 앞에 들어오게 해서 전부 봅니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 신앙을 제대로 심어줘야 됩니다. 돌아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가 르치는 자가 책임이 큽니다. 불같이, 정말 능력있게 가르쳐야 합니다. 왜 태평양 바다 의 고기를 잡아놓고 시원찮게 다루다 놓친 다음에 다시 잡으려고 합니까. 그것을 불가 능 하고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처음에 여러분이 시원찮게 해서 그렇다는 것 입니다. 각 부들이 마찬가지입니다. 그 책임이 심히 크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사람을 채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안 채우면 심판 때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금년도에 빛을 발하라고 했는데 무엇을 가지고 빛을 발하려고 합니까. 이렇게 함으 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전도하고 생명을 구원함으로, 확실하게 그들에게 도움을 줌 으로 빛을 발하는 것인데 결국 구원 사업이 아니겠습니까. 구원하는 데에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냥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촛불이 희생함으로 빛을 발하듯이 그렇게 함으로 빛을 발하는 것이지 그냥 빛을 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 하기 때문에 빛을 발하지 못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빛을 발 할 수 있습니다. 전도하려고 신경도 안 쓰고, 인생사는 것만 신경 쓰니까 인생이 안 풀 리고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경을 써야 하나님이 축복을 해 줄 것이 아니 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에 대한 신경을 써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에게 유익을 줄까 해야지, 하나님을 집어 던져놓고 섭리사에서 그냥 살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섭리사에서 100배 200 배 500배 1000배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약하고 연약한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을 섭리사에 불러왔습니다. 그 약한 사람들이 부지런히 뛰고 달려 강자가 되어 많은 역사를 하며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기 같은 사람을 불러 서 하나님이 일을 시키니, 고맙고 감사해서 열심히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은 계속 밀어붙이며 하고 있습니다. 최대로 해보자 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하 루에 1500장 이상의 서류를 봅니다. 그리고 하루에 80-100 통의 답장을 씁니다. 말씀을 잘 가르쳐야 나에 대해서도 바로 알게 되고, 바로 믿게 됩니다. 말씀을 제대 로 안 가르치니까 오다가 말고, 가다가 떨어져 버리고, 웃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 을 제대로 가르쳐야 됩니다. 신입생들은 말씀을 제대로 듣고, 성경을 제대로 읽고, 이 시대의 말씀을 제대로 들으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입을 통해서 외치니까 심판을 면하려면 제대로 들어야 합 니다.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 여러분은 안 당해 봐서 모를 것입니다. 조금씩은 당해봤을 것입니다. 섭리 주관권 안이라 조금 당한 것입니다. 나가서 받은 사람은 많이 받았습니 다. 진짜 심판을 받은 사람은 죽어버렸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심판하심을 눈으로 똑똑히 보고 책도 쓰고 그랬습니다. 너무 두렵고 두려운 일이 아닙니까. 자연재해라 생각합니까? 때가 돼서 바람이 불었다?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때리고 계 획적으로 뒤집어엎은 것입니다. 그래서 수만 명 수천 명이 한자리에서 죽어버리고 하 지 않았습니까. 그게 우연이 아닙니다.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런 것을 보고 외치러 왔습니다. 그렇게 심판 하는 것을 직접 20군데를 봤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인데, 사람들은 눈이 삐고 마음이 병들어 죽어서 우 연으로 생각하고, 때가 되어 일어난 것이라 하고, 서로 미워하다 싸움 하는 것이라 생 각합니다.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심판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하루 에 얼마나 받고 있는 줄 압니까. 수십억 건의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개인 심판 까지 수십억 건의 심판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 심판까지 하루에 수십억 건씩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그 때 알면 이미 늦은 때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미리 알게 될 때 얼마나 복입니까. 여러분도 잘못하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섭리사 안에도 하루에 수십 건(件)씩 심판을 받습니다. 잘하면 복이고, 못하면 화를 받는 것입니다. 정신적 고통, 육적인 고 통을 받습니다. 어떻게 심판 없이 축구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심판주가 되셔서 심판을 하시 며 지구촌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자기가 죄를 짓고 회개치 않으면 심판을 받고 쓰라린 고통을 받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쓰려고 연단하는 것이 따로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 떤 것이 연단하는 것인지, 어떤 것이 심판하는 것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본인이 심판을 받아도 모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복을 받는 것도 모르고, 화 를 받는 것도 모릅니다. 내가 편지에도 썼지만, 하나님 앞에 제대로 인생을 살면 10000배까지 효과가 있습 니다. “만 배까지 잘 된다. 왜 그런데 안하느냐? 너는 그렇게 하여라!” 잘 하면 그렇게 되는데, 왜 안 하냐는 것입니다. 먼저는 육 있는 자가 아니고, 신령 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과 더불어 일체 되어야 합니다. 신하가 왕을 먼저 사귀고, 백성이 왕을 먼저 사귀어 친하게 되고 가깝게 되면 뭘 할 때 협조해 줄 것이 아니겠습니까. 먼저 그것을 안 하고 무슨 일을 했을 때는 왕이 기분 나쁘다고 그것을 없애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먼저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너희들 하나님을 믿기만 하지 말고 사귀라! 이런 잠언을 줬었는데 “하나님을 사귀 라! 내가 그렇게 했노라.” 그리고 나와도 마찬가집니다. 나를 따르기만 하지 말고 나를 사귀라는 것입니다. “너 희들 나를 사귀어서 나와 친하냐?” 누가 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 사람과 친해요?” “아니, 나를 믿는 자지. 나의 제자지.” “그럼 누가 선생님과 친한가요?” “그것을 왜 묻느냐? 말할 수 없다. 너도 친 해보면 알지 않겠느냐.” 극히 친해야 됩니다. 아주 일체되어야 됩니다. 친하고 사랑하면, 성경에 그랬잖습니 까. 내가 너의 죄를 용서해 준다고 했습니다. 바다에 먹물을 한 그릇 쏟아서 없어지게 하듯 없어지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친하지 않으면 탕감받아야 된다는 것입니 다. 하나님과 친해야 됩니다. 하나님과 친하고 가까이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말씀의 불입니다. 가장 핵심은, 말씀을 잘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 위 대한 말씀을 잘 가르쳐야지, 새로 온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방향을 잡고 이 말씀에 뿌 리를 박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 가지고 사람 앞에 떨지 마십시오. 말씀을 들었을 때 운명이 좌우됩니다.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붙었 으면 내가 무엇을 더 원하리요!! 불만 붙으면 다 하는데. 말씀의 불이 제대로 붙은 사람은 계속 말씀의 불을 꺼뜨리지 않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의 불을 꺼뜨렸기 때문에 주일 말씀을 들어도 냉랭, 주일 말씀 들어도 보 통인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제대로 축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축복 받았다고 다가 아닙니다. 더 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축복이라는 것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100배 200배 500배 1000배 10000배 그렇게 받아야 합니다. 심령의 축복, 행실의 축복!! IMF다, 메마른 땅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랬습니다. 모세의 형 아론의 마른 지팡이 에서도 싹이 나게 하지 않았습니까. 광야 땅에서도 꽃이 피게 하고 푸른 초장이 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보세요. 선생님도 메마른 땅에서 시작했지만 축복을 받고 뛰니까 계속 축 복이 오고 있지 않습니까. 악인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 심판을 맡겨놓고 우리는 열심히 뛰어서 전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과 싸우고 미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는 전도하고 우리 일만 해서 흑자를 내서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해 줘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 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막아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싸우러 나가면 하 나님 일도 못 하고, 싸움하다 또 다치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많은 생명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기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 준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뭡니까 하고 해드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기도할 때도 자기의 원하는 것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먼저 하겠다고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잘못했으면 그 무엇보다 회개를 먼저 해야 됩니다. “그 동안 잘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회개 먼저 하고, 바로 이어서 하나님이 원하는 것 을 먼저 해 줘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해 주면, 하나님이 우리 원하는 것을 아시고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나가야 온전히 나갈 수 있습니다. 주일 말씀을 철저히 듣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미 기존성의 사람들은 말씀의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올라야 됩니다. 그래야 말씀의 불이 탈 때 여러분의 죄악이 불타 버리고, 죄악이 근접치 못하게 되고, 마음판의 가라지가 불사름을 받게 됩니다. 말씀의 불이 탈 때 그렇게 되므로 말씀의 불이 꺼지면 안 됩니다. 말씀의 불이 타 올라야 모 든 것이 소각됩니다. 죄악도 소각되고, 잡념도 소각되고, 악인도 소각되고 새로운 역사 만 진전되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신입생으로 온 사람들은 말씀을 천천히 배우십시오. 희적부적 배우면 안 됩니 다. 나는 말씀을 20년 동안 배웠습니다. 성경을 근 2000번씩 읽으면서 20년씩 배웠습 니다. 성경 한 번도 안 읽고 배우려니까 창피하지 않습니까. 말씀을 제대로 모르면 인생길을 못 찾습니다. 말씀을 첫째 확실히 들어야 확실한 인 생관이 서게 되고, 확실한 주관이 서서 누가 반대하고 핍박하고 누가 넘어뜨려도 안 넘어지는 것입니다. 뿌리가 깊이 박혔는데 죽습니까, 안 죽는다는 것입니다. 성지 땅 월명동 내 고향에, 소나무를 옮겨 심어서 3년 되면 뿌리가 박아 내리게 되 는데 3년이 돼도 뿌리가 안 뻗어 내리게 되면 그것은 병들든지 결국 죽습니다. 여러분, 말씀에다 뿌리를 깊이 뻗어 내려야 예술도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고, 목회 하는 데도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고, 사업하는 데도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없었으면 어떻게 이 복음이 되었겠습니까. 성경 말씀 때문에 하나님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2000년 전에 죽은 사 람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말씀이 없었으면 아무 근거도 없는데 모르는 것입니 다. 그래서 선생님이 말씀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후대에 남기려고 외친 말씀을 써놓습 니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바빠서 책에 손을 못 대고 있습니다. 우선 사람을 살려놓고 보자, 돌아오는 사람을 살려놓고 보자, 내가 안 하면 안 되겠다 하고서 생명에 손을 대 고 있습니다. 오늘 새로운 신입생들 말씀을 열심히 배우기 바랍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듣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까. 신입생들이 말씀을 듣고서는 세상에서 듣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말 을 많이 했습니다. “악평하는 사람들, 너무 나쁜 사람들입니다. 내가 그들을 미워할 수 없고, 미워하는 방법은 말씀을 죽도록 좇겠습니다.” 그랬습니다. 말씀을 잘 가르쳐야 됩니다. 말씀을 잘 배우고 은혜 받아서 나에게 편지가 오도록 잘 가르쳐야 됩니다. 가장 무섭게 뛰는 사람들은 직장부, 캠퍼스 CL들, 간사들, 젊은 애들이 불 붙어서 막 뛰고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불같이 뛰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편지를 내가 받 고 있습니다. 그렇게 뛰면서 열심히 해 봐요. 그러면 여기서 오늘 말씀을 마치고, 못 다 한 말씀은 수요일 제단을 가겠습니다. 그 러면 여기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 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은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라. 말씀을 확실히 가르쳐서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고, 말씀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알게 하고, 말씀을 통해서 잘라 버릴 것을 잘라 버리게 하고, 말씀을 받은 자는 검을 받은 자와 같아서 자를 것을 자르고 끊을 것을 끊는다.”고 했습니다. 모두 그리 되게 해 주시옵소 서. 말씀을 가르치면서 모든 끊을 것을 끊게 하도록 하라 했습니다. 지옥을 택하겠느 냐, 말씀을 듣고 천국을 택하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천국을 택하게 해 주 시옵소서. 사랑, 몰라서 그런 데에 빠지고 호기심에 빠집니다. 수천 배 수만 배 좋은 것을 몰라 서 좋은 것을 택하지 못한 것을 택하는 자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은총을 주시고 의로 채워 주시옵소서. 이들이 말씀 듣고 깨닫고 은혜를 받고 열심히 하는 자들이 되게 축 복해 주시고, 새로운 사람들은 말씀을 철저히 다시 배우고, 다시 또 배우고, 또 배우게 해 주시옵소서. 대개 보면 말씀을 배웠으나 제대로 몰랐다고 그랬습니다. 말씀을 제대 로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에 나가서 결혼하고, 세상으로 나가서 넘어지고, 세상으로 흩 어졌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배우고 가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평강과 의와 공의와 진리로 함께하고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감 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그러면 여러분, 안녕 빠이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