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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말씀2013.06.04 (화)

계시말씀 46ed4eb2

선포일
2013.06.0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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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상의 중요성 작성일 : 2013. 4. 20(토) 오전 10시 작성자 : 장정임 (전날 있었던 진리성령 집회 말씀이 너무 좋아서 다시 묵상하고 있던 중에 감동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지금은 핵 중에서도 핵, 또 그 핵 중에서도 가장 핵과 같은 기간에 살고 있다고 했다. 바로 종교 역사적으로 볼 때는 창조목적이 이루어지는 마지막 1000년 섭리역사가 진행 중인 이때가 핵적인 기간이며, 천 년 섭리역사 중에서도 보낸 자가 표상으로 지상에서 함께 하고 있는 이 당세가 더욱 핵적인 기간이며, 당세 중에서도 진리와 성령의 역사로 영과 육의 휴거 역사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지금이 가장 핵적인 기간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지상에서 노른자 중에서도 노른자,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과 같은 성약성에 거하며 성약시대의 모든 혜택을 극적으로 받고 있는 자들이 아니냐. 표상이 살아 있는 당세에 표상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직접 듣고 표상의 삶을 직접 보며 산다는 것은 마치 켜져 있는 가스 불에 부모가 사 온 고구마를 굽기만 해서 먹는 격과 같다. 반대로 표상이 없다는 것은 본인이 직접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와서 장작을 패어 불을 붙이고, 밭에 가서 고구마 씨를 뿌리고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여 재배한 후 이를 땀 흘리며 캐 와서 구워 먹는 것과 같은 격이니, 정말 고구마가 먹고 싶어 죽을 것 같지 않고서는 차라리 안 먹고 말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선생이 살아 있는 지금은 마치 고구마를 먹기 위한 자료와 여건이 다 갖추어져 있는 때와 같아서 그저 굽기만 하는 아주 작은 수고를 통해 손쉽게 먹을 수 있으니 이것이 얼마나 큰 혜택이냐. 표상이 있고 없는 것에 따라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축소해서 보자. 교회에서 매일 새벽 기도 조건을 철저히 지키는 목회자가 눈앞에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아라. 또한 철저히 조건을 세우는 목회자가 사정이 있어 며칠이라도 자리를 비울 때를 생각해 보아라. 당장에 보이지 않으니 ‘오늘 하루쯤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돌아가기도 할 것이며, 혹은 목회자가 없이도 한동안은 나름대로 지속하기도 하겠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가 홀로 끝까지 조건을 세운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만일 휴거된 자라면 표상이 눈에 보이든 안 보이든, 스스로 해야 할 바를 잘 알아서 끝까지 행하며 갈 수 있겠으나 아직 완전을 향해 성장하고 있는 너희 대부분에게는 표상이 눈앞에 있고 없음이 참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선생이 “선생 살아 있을 때, 함께해 줄 때 완전한 휴거의 영이 되라.”고 애타게 외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지금은 선생이 너희 눈앞에서 휴거된 자의 삶을 실체적으로 보이며 살고 있으니 따라오기가 쉽다. 이론만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눈에 보이도록 실체적 시범을 보이고 있으니 그저 듣기만 하고 따라하는 자보다 실제로 보고 따라하는 자가 만들어 내는 결과물은 하늘과 땅 같은 차이를 보이지 않겠느냐. 그러다가 선생과 일체 되어 자신도 확실한 휴거의 삶을 사는 경지에 이르면 그 때는 더 이상 육으로 선생을 보든 못 보든 상관없이 선생과 같이 체질화된 신부의 삶을 살기에 변질될 걱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표상이 사라지면 홀로 표상의 삶을 애써 기억하며 살아야 하니 그 행함이 점점 사그라지고 마는 불꽃같이 꺼지고 말게 되지 않겠느냐. 선생은 성약 신부의 완전한 표상으로서 시대 진리와 성령을 받아 온전히 행함으로 말씀이 완벽하게 육신화된 존재이다. 말씀을 받은 자는 신이라 하였지만 말씀을 받았다고만 해서 신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니, 받은 시대 말씀과 성령으로 완전한 행함의 단계에까지 이르렀을 때 비로소 말씀이 육신화된 신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선생의 삶을 보아라. 하루도 놓치지 않고 말씀을 온전히 행하는 삶이다. 고로 그를 신이라 칭하는 것이며, 그는 완전한 신부의 표상이 되어 한 시대를 다스리는 자가 된 것이기에 그의 삶 자체가 역사가 된 것이다. 그가 산 삶이 신부의 삶이니 그가 낳은 역사 역시 신부의 역사가 된 것 아니겠느냐. 타 교파에서 섭리의 말씀을 아무리 빼내어 가서 가르친다 하여도 그 곳에는 시대 구원도, 휴거도 없는 이유가 바로 그곳에는 완전한 시대 표상이 없기 때문이다. 표상이 없이 말씀만 전해 듣는다는 것은 마치 코끼리의 형상과 습성에 대해 계속 말로만 설명해 주는 것과 같기에 막연한 상상과 나름대로 만든 허상의 코끼리를 막연히 그리며 사는 것과 같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였듯 코끼리를 실체로 한번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것처럼, 표상을 직접 보고 겪으며 사는 것이 표상처럼 살 수 있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이니 표상과 함께 하느냐 못 하느냐는 휴거에 결정적 요인이 된다. 고로 표상 없이 말씀만 가져가 가르치는 타종교에서 휴거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표상을 직접 보고 듣고 겪을 수 없는 섭리의 후대가 온전한 영 휴거를 기대하기 역시 어렵다 말한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지금 눈으로 보고 듣고 겪는 자가 얼마나 귀한 자인지를 확실히 알아라. 너희 영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는 자로서 너희를 신의 신부가 되게 하는,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지구촌 유일의 핵심 인물이다. 그가 가장 먼저 신의 경지에 이르러 신의 신부가 되었으니 그에게 확실히 붙어 일체 되는 자마다 신부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느냐. 세상은 너희를 보고 그를 신격화한다고 수군거리지만 들어 보아라. 신격화란 신이 아닌 자를 신으로 대하고 모시는 것을 의미한다. 신이 된 자를 신으로 모시는 것은 결코 신격화가 아니지 않느냐. 그는 사람으로서 신이 되었기에 그에 응당한 대함을 받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선생은 나의 말씀을 받아 육의 삶을 신의 삶으로 완전히 승화시켰다. 나 성자의 신이 그에게 강림하였고, 그는 나의 신을 받아 신의 말과 행함으로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사람으로서 신이 된 자가 아니겠느냐. 이 말에 누가 한 치의 토를 달며 무지한 말로 이 명백한 이치를 어둡게 한단 말이냐. 신의 역사가 어떤 법칙으로 지상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모르고, 선생이 어떤 자인지를 모르고, 그가 사는 신의 삶이 어떤 것인지 살아보지 않았으니 함부로 입을 놀려 죄를 범하는 것이다. 세상이 다 무너져도 선생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육신을 가진 자로서 온전한 신의 표상이 되어 너희 앞에 우뚝 서 있으니 너희가 두려울 것이 무엇이냐. 그저 그와 함께하면 된다. 그러나 안 하면 안 된다는 것 역시 확실히 알고 표상을 따라 조은 목사와 같이 제2의 표상자가 되어라. 너희 모두에게 표상이 되는 축복이 임하기를 바라는 성자 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