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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3.07.03 (수)

계시말씀 c55ab0a4

선포일
2013.07.03 (수)
성경 본문
마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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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보는 법 작성일 : 2013. 5. 1(수) / 5. 14(화) 작성자 : 장정임 (주님께서 최근 제게 “너는 왜 선생을 사랑하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전 같으면 “사랑에는 이유가 없잖아요.” 라고 대답했을 텐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 져서 “주님, 저는 말씀이 너무너무 좋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 모든 말씀을 완전히 이룬 자이시니 좋 아하지 않을 수 없고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님의 외모를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 의 내면, 곧 정신과 사상과 그 마음이 주님과 일체 되어 있으니 말씀으로 나타나시는 주님을 사모하듯 선생님을 사모하는 것이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후 많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모습 보기를 원하 는 것을 두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핵심은 외면의 세계가 아니라 내면세계, 정신계이다. 정신으로 성자와 일체 되는 것이지 겉모양이 같음으로 일체 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너희 가운데에는 성삼위의 모습을 궁금히 여겨 보여 달라 하는 자들이 많다. 하지만 생각해 보아라. 너희가 사랑하는 것이 성삼위의 무엇이냐? 그 형상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것이냐? 영의 형상은 그 사람의 정신과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니 성자의 정신과 마음으로 일체 된다면 그자가 곧 성삼위의 형상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 선생은 성자의 정신과 마음이 일체 된 자이기에 선생을 본 자가 곧 성자를 본 것이라고 한 말의 뜻을 진실로 깨달아야 한다. 영은 사고 실상의 세계, 즉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어 영의 모습이 만들어지는 세계이다. 고로 하나님은 말씀이라 하신 말의 의미를 깊이 깨달을진대 하나님의 형상은 말씀 자체요, 그 어떤 형상을 가진 자라 해도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살아 움직이면 그가 곧 제2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선생을 본 자가 나 성자를 본 자라 한 말씀의 근본 의미도 이와 같다. 이 말을 육적으로 받아들이면 ‘선생의 겉모습이 어찌 성자의 모습이 될까?’라고 의아해하지만 영적으로 받아들이면 선생은 삼위 곧 말씀이 형상화된 자와 같으니 선생을 본 자는 성자를 본 자이며 하나님을 본 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니라. 그저 육신의 형상을 지니고 있을 뿐, 영의 눈을 떠서 그 내면의 세계를 통찰하면 그는 곧 나 성자이며 하나님이 됨을 알리라. 너희 인간은 겉모습을 중히 여기지만 근본의 세계인 영계는 속사람 곧 영이 가는 세계이며 영이 영원히 사는 세계이다. 영은 사람의 정신과 생각, 마음이 그대로 반영되어 형성되는 세계이기에 마음이 성자와 일체 된 자는 각체로 존재하는 제2의 성자가 되는 것 아니겠느냐. 너희에게 삼위가 보일 때는 육계에서나 영계에서나 상징체를 통해 나타나 보인다 하였다. 상징체란 곧 보는 자의 마음·정신·생각의 수준에 맞게 나타나는 것이니 자신이 만들어진 만큼 삼위가 보이게 되는 것이다. (주님, 그러면 성자의 마음으로 완전히 만들어진 자 는 본체를 볼 수도 있지 않습니까? ) 그렇지. 하지만 영계는 마음·정신·생각이 형체를 이루어 나타나는 세계이기에 성자의 마음과 완전한 일체를 이룬 자는 삼위를 직접 눈으로 보아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삼위를 볼 수 있다. 그러니 더 이상 궁금하지가 않는 것이다. 영계 자체가 외모나 겉모습인 형상이 중심이 되는 세계가 아니기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으로 느껴 보고 느껴 듣는 세계이므로 삼위가 항상 거하시는 천국에 함께 있음으로 삼위를 느껴서 보고 느껴서 듣는 것에 충만히 만족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니라. 마치 태양을 직접 눈에 담아 보지 않아도 태양의 따스함과 태양으로부터 오는 갖가지 유익을 누리고 살듯이 천국의 헤아릴 수 없는 천인들이 삼위 하나님을 그리 대하며 사는 것이니라. (주님, 그러면 영계는 삼위의 분체들이 살아가는 곳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네요? ) 그렇지. 하지만 핵심 분체와는 다르다. 핵심 분체는 다른 분체를 이끄는 머리 역할을 한다. 뇌가 없으면 지체는 있으나 마나이듯 핵심 분체가 없으면 다른 분체들 역시 제대로 된 분체의 기능을 못하는 것이다. 핵심 분체는 시대마다 한 명으로서 영계와 육계 모두에서 삼위의 현현(顯現)이 되어 사는 자니라. 하나님을 보고 싶으냐. 하나님을 알고 싶으냐. 하나님과 사랑을 하고 싶으냐. 선생을 보는 것이 성삼위를 보는 것이요, 선생을 아는 것이 성삼위를 아는 것이요, 선생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성삼위는 네 눈앞에 이미 나타났노라. 육으로 보면 선생의 눈·코·입이 보일 것이요 영으로 보면 성삼위의 눈·코·입이 보일 것이다. 육으로 보면 선생의 말과 행동이 들어올 것이며 영으로 보면 성삼위의 말씀과 행하심이 들어올 것이 다. 마 13: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 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 하였느니라 이 말의 뜻도 깊이 깨달아야 할진대 너희가 보고 있는 선생을 단지 땅의 구원자로만 보지 말라 하던 말씀과 함께 상고해 보아라. 선생은 단지 6000년 만에 땅의 구원자 사명을 받고 나타난 자가 아니라 태초부터 계신 성삼위의 현현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니 더 이상 하나님을 보이라 하지 말고 제발 네 눈앞에 서 있는 삼위 하나님을 보아라. 보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자, 눈 뜬 장님이 아니겠느냐. 도자기 비유를 생각해 보아라. 값을 매길 수 없는 도자기도 눈뜬 자가 아니면 하찮게 팔아 버린다 하지 않았더냐. 선생을 하나의 땅의 구원자로만 여기는 자가 그러한 자다. 이제는 보이는 형상석을 줍는 단계가 아니라 땅에 묻혀 보이지 않는 형상석을 발견하여 가져야 하는 때이다. 보이는 선생의 육만 보고 사랑할 때가 아닌, 선생이라는 육에 감쳐져 있는 성삼위를 확실히 보고 사랑해야 할 때이다. 밭은 선생이고 감추인 보화는 성자라 하지 않았더냐. (아멘, 아멘, 그 말씀들의 깊은 뜻을 이제야 더욱 깨 닫습니다. 애타게 말씀한 그 모든 것을 진즉에 온전히 다 깨닫지 못하고 흘렸던 것을 회개합니다.) 깨닫는 자는 말씀의 깊은 의미를 더욱 깨달을 것이다. 깨닫기를 간구하고 제대로 깨달아라. 깨닫는 자에게는 더 이상 감추인 비밀이 없느니라. 더 이상 나를 찾지 말아라. 눈앞에 서 있는 나를 두고 보면서도 도대체 누구를 찾겠다 함이더냐. 하나님이 지상에 오시면 과연 세마포 자락을 휘날리며 너희 앞에 나타나시겠느냐? 아니다. 너희와 사랑하고자 너희가 입는 옷을 입고 너희가 먹는 밥을 먹으며 너희와 같이 춤을 추며 너희와 같은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이지 않겠느냐. 바로 선생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선생처럼 춤을 추고 선생처럼 말을 하고 선생처럼 지휘하며 선생처럼 운동할 것이다. 또한 지금의 선생처럼 너희를 위해 희생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렇게 너희와 사연을 만들고 너희를 살려 너희와 사랑을 나눌 것임이니라. 그러니 너희가 삼위와의 사랑을 하늘에 와서 할 것이라 희망만 품고 살지 말고 지상으로 너희를 찾아 내려간 삼위를 맞아 지상에서부터 사랑을 이루어라. 희망과 소망은 지금 너희가 사는 땅에서 먼저 다 이루어야 한다. 먼저는 육이라 했다. 알겠느냐. (주님, 잘 알겠습니다. 이 모든 것을 더욱 깨닫고 보 니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육으로 오신 성삼위를 눈에 가까이 담을 수 없는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핵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생을 통해 나타나는 성삼위를 육으로 만날 수 있는 때는 정해져 있다. 또한 육은 한계가 있다. 고로 한계가 없는 마음·정신·생각과 영으로 교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혼과 영을 대변하는 말씀이 너희에게 생생하게 선포되고 있지 않느냐. 육을 통해 목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목적은 목적이다. 목적만 달성하면 뜻은 이룬다. 그러나 또한 때가 이르면 삼위의 뜻을 영으로도 육으로도 온전히 이룰 것이다. 그 때가 아무리 짧게 허락된다 하여도 그 때에는 진정 아쉬움 없이 지상에서도 맘껏 사랑할 수 있도록 지금 다 만들어 놓자. 만들어 놓은 자만 누릴 수 있는 육의 한때가 분명 오리라. 그리고 그 한때가 지나면 영영한 내 나라에서 또한 영원히 누릴 것이다. 핵심을 깨닫고 육으로도 나를 사랑할 것이며 영으로도 나를 영원히 사랑하는 자들이 되길 바란다. 사랑한다. 너희 눈앞에 이미 나타난 성자 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