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말씀2013.07.04 (목)
계시말씀
- 선포일
- 2013.07.04 (목)
- 성경 본문
- 요 4: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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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낸 자를 통해 드리는 예배가
최첨단의 예배다
작성일 : 2013. 5. 14(화) 오전 10시
작성자 : 장정임
(‘영적인 역사란 바로 새 역사다.’라는 말씀을 듣고
가장 영적인 자는 이 시대 보낸 자를 정확히 아는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교회에서 예배 교육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원고를 쓸 때 주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지금 너희가 드리는 예배는
성약의 예배다.
신약이 시작되면서
양과 염소를 잡아
제단을 드리던 구약의 예배가
예수를 통해
그 모든 형식을 탈피했다.
요 4:21~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
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
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
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
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
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난다는 말이 무엇이냐.
구원의 주체된 나 성자가
유대 구름 중 가장 깨끗한 핵심 구름,
예수를 타고 땅에 온 것을 말하지 않느냐.
바로 그 때 너희가 비로소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기회를 얻었으니
이는 시대 보낸 자를 통해 드리는
예배를 말함이었느니라.
보낸 자가 가지고 온
시대 말씀이 최첨단 진리이며
보낸 자를 알아보는 것이
가장 영적인 역사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
곧 시대 보낸 자를 맞이하고
그를 통해 선포되는 진리 말씀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을 찾는다 함이었노라.
영적 예배란
보낸 자를 중심한 예배를 말하는 것이니
성삼위의 영은
오직 시대 보낸 자를 통해
말씀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고로 성약 예배 역시 그 핵심은
첫째, 보낸 자를 정확히 알고 드려야 하는 것이며,
둘째는 보낸 자로부터 나온
모든 시대 말씀으로 듣고 행함으로
삶이 정화된 자들이 드릴 때
성삼위가 열납하실 만한 제단이 된다는 것이다.
첫째 조건인
선생을 정확히 아는 것에 대해서는
말씀을 통해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선생이 누구인가?
하늘로부터 어떤 사명을 가지고 왔고,
어떤 권세를 가지고 온 자인가?
이에 대해 모르는 자는 없으나
깨달은 자는 많지 않다.
아는 자는 많은 말로
그 아는 것을 말하지만
깨달은 자의 한마디를 따라갈 수 없다.
깨달은 자의 한마디는 위력이 다르다.
찬양 인도를 하고
사회를 보고
대표 기도를 하고
갖가지 예배를 위한 사역을 담당하는 자들은
그동안 배운 진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여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한마디를 전하더라도
진정 깨닫고 외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를 모르는 자가
여러 말로 주를 증거하는 것보다
주를 알고 그 심정을 헤아리는 자가
한마디를 증거할 때
주도 듣는 자들도 모두 기뻐하며
심령이 교통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임이니라.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기 생각의 바벨탑을 깨야 한다.
자기 것을 버리지 않으면
절대 성자의 뜻을 알 수가 없으므로
그 삶 역시 당연히
성자의 뜻과 상관없는 삶이 된다.
혹 가끔은,
그리고 순간은 그렇게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 못 간다.
마치 금칠해 놓은 것이 벗겨지듯
본색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너희 생각을
완전히 나의 생각으로
바꾸어 살 수 있겠느냐.
그 답을 너희는 안다.
모두 말씀을 들은 자로서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행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다 알고 있다.
그동안 선생을 통해
다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리로만 알고 있기에
가슴이 그 답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외식과 형식의 신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의 삶을 돌아보아라.
현실 속에서 막상 문제에 부딪히면
나의 의향은 안중에 없어진다.
형제를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어 하는
자기 자신밖에 보이지 않는다.
머리로는 안다 하나
마음이 알지 못하고 변화되지 못하니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외식과 형식의 신앙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더군다나 어떤 이들은
형제를 용납하지 못하는 자기의 마음을
마치 나의 마음인 것처럼
합리화시켜서 살기도 한다.
돌이키지 못하면
나의 심정과는 멀어지고
점점 종잡을 수 없는
끝을 향해 달리는 것이다.
이렇듯 진실된 삶을 살지 못하니
예배 역시 삼위가 원하시는
영적 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것 아니겠느냐.
예배는 그동안 살아온 삶의 고백이다.
‘너희가 얼마나 나를 실체적으로 사랑했는가?’
이 말은 곧 ‘너희가 얼마나 보낸 자와 일체 되어
그의 말씀을 실천하고 살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너희 드리는 예배가
삼위께 열납이 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된다.
개인도 그러하며 교회 전체도 그러하다.
특히 단상과 예배를 인도하는 모든 예배 위원들은
누구보다도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다가
예배에 임하여야만
교회 전체가 삼위 보시기에
살아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삼위는 절대 더러운 제물을 받지 않는다.
깨끗한 것만, 쪼개어진 제물만 받기에
성삼위가 열납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진정 적어도 예배 전에
회개의 제단을 꼭 쌓아야 한다.
그래서 특히 주일 새벽에는
예배 위원들을 비롯하여
예배를 드릴 모든 자들이
꼭 새벽 제단을 통해 먼저 성결케 한 후
풍성한 사랑의 뇌 과일을 가지고
삼위 앞에 나와야 한다.
그렇게 회개하고 자신을 정결케 하여
사랑의 단장을 하고 나온 자들에게
삼위는 말씀을 퍼부어 줌으로
너희들의 사랑에 화답한다.
그러니 삶으로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예배에 참석한 자는
그만큼 삼위가 주는 사랑의 화답을
느낄 수도 깨달을 수도 없다.
매일 심판하는 하나님이시나
인간은 심판을 받아도
받은 줄 모르고 있으니
예배를 통해서도
축복받는 자와 심판받는 자가
매번 갈려짐을 잊지 말아라.
가장 신령한 예배는
시대 보낸 자를 깨닫고 드리는 예배,
시대 보낸 자가 주는 말씀으로
자신을 단장하고 드리는 예배이며
그로 인해 삼위가 화답하여 주는
시대 말씀을 받는 예배임을 알고
섭리사 모두는
진정 영과 진리로 삼위 앞에 열납되는
최첨단의 영적 예배를 드리는
신부들이 되기를 바라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