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2013.07.07 (일)
130707 주일말씀
- 선포일
- 2013.07.07 (일)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25장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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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7일 주일말씀> 중요 말씀
사람은 양극에서 산다
본 문 마태복음 25장 5-12절
누가복음 23장 39-43절
할렐루야!
영원하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의 평강을 빕니다.
오늘도 성자께서 말씀해 주실 때, 증거의 신이며 천모이신 성령님께서
뜨거운 감동 감화로 역사하시며, 그 말씀을 증거하시고, 듣는 자들의 귀와
마음을 열어 주어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의 뜨
거운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성자께서 “사람은 양극에서 산다.”라고 가르쳐 주시면서,
“모두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깨닫고 알게 해 주어라.” 하셨습니다.
먼저 이 말씀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이야기해 주겠습니다.
새벽에 기도 시간이 되어 눈을 떴습니다. 몸이 너무 피곤하여 눈을 뜨
고 잠시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자 주님이 깨워 주신 것을 생각하여,
피곤하지만 힘들게 일어나서 기도하기 위해 목욕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잠이 사라지고 좋았습니다. 누워 있을 때는 너무 일어나기 싫었는데, 일어
나서 활동하니까 잠자는 것보다 훨씬 더 좋았습니다. (기본 제스처) 그리고
‘또 잠을 자라고 하면, 절대 안 자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나를 깨워 주신 성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극에서 산
다.” 하셨습니다. (기본 제스처)
선생은 그 말을 듣고 “그 말씀이 어떤 의미입니까?” 하고 물었습니
다. 이에 성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지금 네가 그같이 행하지 않았느냐.
잠잘 때는 극적으로 자면서 일어나기 싫어하고, 일어났을 때는 극적으로
씻고 행하며 절대 안 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사람은 극에서 산다
고 말한 것이다.” 하셨습니다.
(* 그리고 성자 주님은 또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화면을 보면서
듣겠습니다.) <영상1>
사람은 이쪽과 저쪽 ‘양극’ 중에서 어느 한 극에서 살아간다.
열심히 행하는 자는 극적으로 열심히 하면서 ‘열심의 극’에서 살고,
게으른 자는 극적으로 게을러서 ‘게으름의 극’에서 산다.
<나 성자를 사랑하는 것>도 어떤 자는 나 성자를 극적으로 사랑하면
서 극의 삶을 살고, 어떤 자는 반대편인 세상과 자기를 극적으로 사랑하
면서 극의 삶을 산다. 너희는 양극 가운데 어느 편에서 살고 있느냐.
<말씀>도 어떤 자는 100% 배우고 믿는 극에서 살고, 어떤 자는 건
성으로 배우고 일부만 믿으면서 건너편 극에서 살아간다.
<휴거의 삶>도 어떤 자는 정말 휴거되려고 몸부림치는 극에서 살고,
어떤 자는 건너편에서 휴거에 대한 말씀만 듣고 휴거에 별로 관심이 없는
극에서 살아간다. (기본 제스처)
오늘은 모두 이것을 깨닫고 알도록 너와 내가 극의 말씀을 전해 주자.
(하셨습니다.) <끝>
이제 “사람은 양극에서 산다.”라는 말씀을 이해하고 깨달았습니까?
(아멘.)
누구나 말씀을 들으면서, 현재 자기 인생을 생각하면서 들어야 말씀이
쉽게 잘 이해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몸을 편하게 하고 즐기면서 살
기를 원합니다. 몸도 마음도 체질상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잠을 잘 때는 ‘잠’에 묻혀서 잠자는 시간이 극의 시간이 되어, 이때
마음이 즐겁고 기쁘고 몸이 편하고 좋습니다.
특히 고단할 때 잠을 잔 후에 눈을 뜨면, 누워 있는 그 시간이 더 누
워 있고 싶은 짜릿한 극의 시간입니다. 그렇지요? (아멘.) 그래서 그때 잠
을 자면 ‘잠 천국’입니다.
그러나 계속 누워서 자면, 잠이 늘어나고 잠 체질이 됩니다. 그러면
‘잠의 극’에 계속 묻혀서 사니, 육신이 성공하는 데 지장이 큽니다. 고
로 극적으로 필요한 만큼만 자야 됩니다.
또 일어나서 일을 하면 ‘생활’에 묻혀서 잠을 잘 때와는 비교가 안
되게 마음과 몸이 기뻐하고 좋아하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어떤 면에서 살아도 좋게든, 나쁘게든 ‘극’에 처해 살기에
마음도 몸도 그 ‘극’에 처해 즐거워하며 삽니다.
고로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다 좋다.”, 혹은 “다 나쁘다.”
하는 식으로 삽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자는 “이것은 나쁘다. 저것은
좋다.” 구분합니다. 고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확실히 압니다.
사람이 ‘육적인 극’에 처해서 육만을 위해 사는 자는 그 극에서 마
음 즐거워하며 몸도 편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결국 육에서 끝납니다.
그러니 그 영은 자기 육의 행위대로 형벌을 면치 못합니다. ‘육적인
극’에서 산 자는 실패의 삶을 산 자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극’에서 자기 혼과 영을 위해 살고, 하나님과 성령
님과 성자를 위해 산 자는 그 극에서 마음 즐거워하고 몸도 기뻐하며 삽
니다. 그 영도 자기 육의 행위대로 구원받고 영원히 삽니다. ‘영적인
극’에서 산 자는 성공의 삶을 산 자입니다.
사람은 육의 세상에서 육이 극적으로 행하고 산 대로 그 영이 영의 세
상에서 그대로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국 극’, 혹은 ‘지옥 극’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육이 살 동안에 성자의 편에서 성자와 그 보낸 자와
일체 되어 사랑하면서, 그 삶의 극에서 살아야 됩니다.
섭리사에서 잘 살아가더라도 한 번 리듬이 깨지면, 육적인 극으로 살
아가게 됩니다. 육적인 극도 그 나름대로 먹고 즐기면서 마음이 기쁘고
육신도 좋습니다. 그래서 다시 영적인 극으로 올라오기가 힘듭니다.
그러다가 ‘육적인 극의 삶’이 지속되면, 열심히 하던 자들도 결국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 극에서 살아가면서 “섭리사를 나와도 편하고 좋
다. 더 즐겁다.” 합니다.
‘육’은 즐겁지만, ‘영’이 사망의 극에서 살게 되니 곤고합니다.
그 곤고함이 결국 육신에게 전달되어 오고, 영적인 희망이 없어지고, 결국
파멸의 극의 세계의 주인이 되고 맙니다.
이와 같이 수천 가지가 그러합니다. 세상에서 ‘육적인 극’에서 살던
자가 거기서 못 벗어나면, 그 영이 영계에 가서도 극적인 고통의 세계 지
옥에서 살게 됩니다. 세상에서 ‘성자의 극의 세계’에서 살던 자들은 그
영이 극적인 기쁨과 사랑의 세계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인생은 지금 양단의 극 중에서 꼭 어느 한쪽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쪽 극, 아니면 저쪽 극에서 살고 있습니다.
(* 자기 영이 휴거됐는지, 휴거되지 않았는지, 각자 진단을 해 보겠습
니다.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2> 중요
아직 신앙이 약한 자들과 휴거되지 않은 자들은 ‘육적인 극’으로 가
서 거기에 처해 삽니다. 그러다가 신앙이 좋을 때는 ‘영적인 극’에 와
서 삽니다. ‘육적인 극’과 ‘영적인 극’을 왔다 갔다 하며 사는 삶은
휴거되지 않은 자들의 삶입니다. (오른손으로 좌로, 우로 치우치는 것 표현) <끝>
휴거 100선만 넘어가도 영적인 것이 중심이 됩니다. 영 중심의 삶을
사니, 그 기준을 잊지 않고 육적인 삶을 살지 않습니다.
‘영 휴거’에는 1차 100선 휴거인 <소생급 휴거>가 있습니다. 그
차원을 넘어가면 2차 200선 휴거인 <장성급 휴거>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 차원을 넘어가면 3차 300선 휴거인 <완성급 휴거>를 이룰 수 있습니
다. 1차 이뤄야 2차를 이루고, 2차를 이뤄야 3차를 이룹니다.
섭리사에 온 지 10년, 20년, 30년 됐어도 ‘육적인 극의 삶’과
‘영적인 극의 삶’을 왔다 갔다 하는 자는 아직 휴거 100선에 오르지
못하여 <소생급 휴거>를 못 이룬 자입니다.
100선을 넘어가면 1차 휴거라도 ‘육적인 극의 삶’으로 넘어가지는
않습니다. 아직 100선을 안 넘어 휴거되지 못했기에 ‘육적인 극의 삶’
과 ‘영적인 극의 삶’을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극적으로 육적으로 살아도 즐겁고, 극적으로 영적으로 살아도
즐겁습니다. 그러니 ‘영적인 극의 삶’을 살다가도 금방 ‘육적인 극의
삶’을 살면서 잘 지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영적인 극의 삶’을
떠났으니, 그 혼과 영은 뿌리 뽑힌 나무와 같습니다. 속히 ‘영적인 극의
삶’으로 돌아와야 그 영이 살게 됩니다.
섭리사에서 살면서 ‘영적인 극의 삶’을 살다가도 ‘육적인 극의
삶’으로 가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모두 ‘영적인 극의 삶’을 지속해야 됩니다. 그래
야 ‘휴거의 영’이 됩니다.
‘사랑’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영에 속하여 마음과 혼과 영의 사랑
의 삶을 극적으로 사는 자들도 있는가 하면, 육에 속한 하체의 사랑의 삶
을 극적으로 사는 자들도 있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양극 중에 어느 한편에서 살고 있습니다.
섭리인들 중에서 ‘섭리 삶의 극’에서 살지 않는 자는 ‘세상 삶의
극’에서 살고 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3>
산토끼는 겨울철에 ‘양달 극’ 아니면, ‘응달 극’ 둘 중의 한 극에
서 삽니다. 양달에 없으면 응달에 있습니다.
섭리인들도 그러합니다. 어떤 사람은 종일 마음과 생각이 ‘육에 속한
극’에서 살고, 어떤 사람은 마음과 생각이 ‘영에 속한 극’에서 삽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살아야 육도 영도 잘되고 형통합니다.
<끝>
섭리사에서 살아도 성자와 사랑 일체 되어 가까이 살지 않으면, 건너
편의 성자와 떨어진 극에서 살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도 ‘기도의 극’에서 사는 자들이 있고, 기도에 별로 신
경을 안 써서 건너편에서 ‘겉돌기 극’에서 사는 자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당장 ‘하고자 하는 마음’을 굳세게 먹고,
다시 ‘성자가 계신 극’에서 살아야 됩니다! 몸부림과 인내와 열심으로
산을 오르듯 해야 됩니다. 그래야 육도 영도 희망이 있습니다.
‘<영적 극의 삶>을 사느냐, 아니면 <육적 극의 삶>을 사느냐.’ 하
는 것은 모두 ‘마음과 생각’에서 좌우됩니다. (기본 제스처) 고로 마음의
들보를 빼내고 마음을 온전하게 하여 온전히 행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나, 섭리사를 보나 사람들은 극을 질주하며 극적으로 살아가
고 있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4>
구시대인들은 <구시대 극>으로 살아가고, 새 시대 섭리인들은 <새 시
대 극>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끝>
‘육적인 극의 삶’을 살던 자가 건너편 다른 극인 ‘영적인 극의
삶’으로 오려면, 두 배 이상 수고하고 노력하며 고생돼도 행해야 됩니다.
건강도 그러합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건강에 신경 쓰면서 살고, 어떤
사람은 건강을 잃어버린 다음에 건강에 신경 쓰며 삽니다. 건강을 더 좋
게 하고 오래 사는 극으로 가려면, 평소에 건강을 위해서 많은 몸부림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100% 검진해 보고 자기 몸을 살펴야 됩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5>
‘인생은 극에서 산다.’라는 말씀을 하니, 지난날 선생이 성자 주님
을 사랑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극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
게 됩니다. <끝>
섭리사에 와서 ‘영적인 극’에서 살던 자들이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
고 자기를 중심하다가 신앙이 파선되어 결국 ‘육적인 극’으로 가서 극
적으로 살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휴거 때>는 ‘구시대의 끝’입니다. 고로 이때는 하나님께서 ‘악’
을 심판하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때이며, ‘선’ 역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때입니다.
온 세상을 보면, 사람들은 ‘무지의 극’에서 살아갑니다. 아는 자들
은 ‘아는 극’에서 살아갑니다.
또한 ‘악의 극’에서 살아가고, 혹은 ‘선의 극’에서 기뻐하며 살아
가고 있습니다.
또한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외면하며 극적인 삶을 살아가고, 혹은
전능자를 믿고 사랑하며 극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또한 시대 말씀을 부인하며 극적으로 살아가고, 혹은 시대 말씀을 듣
고 기뻐하며 극적으로 살아갑니다.
또한 성자와 그 육을 사랑하는 극에서 살아가고, 혹은 성자와 그 육을
외면하는 극에서 살아갑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은 두 세계 중의 하나의 극에서 각자 살아가고 있
습니다. 이쪽 극, 아니면 저쪽 극입니다.
이 시대는 악한 시대가 되었고, 육적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빠
져서 극적으로 육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구해 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 손으로 기본 제스처) 하지만 이 시대에 하나님이 택한 자들이 있습니다. 고
로 시대 말씀을 듣고 성자와 그 육을 받아들여 극적으로 영적으로 살아가
는 자들이, 100명의 한 명이라도 하나님이 택한 자들을 찾아서 구원해야
됩니다. (두 손으로 기본 제스처)
생명의 대가 끊어지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만 남게 됩니다. 구원자가
매일 조건을 세워 간구하니, 극적으로 전도하면 올 자들이 옵니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6>
극적으로 해야 성자 안에서 극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극적으로 해야 극의 목적이 이루어집니다. <끝>
이제 성자께서 말씀해 주시겠습니다. <영상7>
<성자의 말씀>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8>
인간의 뇌는 둘 중의 하나로 작동된다. ‘육의 극’, 아니면 ‘영의
극’으로 흐른다. 마음도 그러하다.
이와 같이 사람이 전능자 하나님과 나 성자와 내가 보낸 자를 믿지 않
으면, 안 믿는 삶의 극에서 산다.
또한 믿고 따라와도 극적으로 믿고 사랑하고 행하면서 사는 자가 있
고, 건너편 극에서 보편적으로 믿고 사랑하고 행하면서 사는 자들이 있다.
양극의 삶 중에서 너희는 어느 편에서 살고 있느냐.
나침반의 바늘도 항상 한 극에 서 있다.
인생도 그러하다. 너희는 항상 하늘 사랑의 극에서 살아야 된다. <끝>
너희가 이것을 알아야 된다. 사람은 ‘육의 극 세계’나, ‘영의 극
세계’나 어느 쪽으로 가든지, 거기에 빠져서 극적인 삶을 살게 된다. 육
에 속한 자들은 육의 극에 처해 살기 때문에 육적인 세계를 떠나기 싫어
한다. 고로 너희는 그들에게 이상세계를 증거하고, 영원한 세계를 말해 주
며, 그들이 사는 곳보다도 더 극적으로 좋은 세계가 있다고 전해 주며 그
들을 이끌어 와라.
‘육적인 극의 세계’에 있다가 ‘영적인 극의 세계인 섭리사’에 오
면, 처음에는 체질도, 마음도, 생각도 안 맞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나 성
자가 역사하여 표적을 일으켜 줘야 된다.
섭리사 체질이 되고 섭리사 마음이 되어, 삶의 극적인 단계를 넘어서
야 그제야 육적인 세상보다 하나님의 섭리사가 더 좋은 것을 알고 스스로
행하게 된다.
너희도 섭리사에서 극적으로 살다가 자기 책임을 못 하고, 자기 때에
열심히 못 하면 육적인 극의 삶으로 가게 된다.
그러다가 거기서 마음도, 생각도, 몸도 극적으로 육적으로 살게 되어
육적인 이상(理想)을 느끼며 살게 된다. 그러면 다시 섭리사에 돌아오기
힘들다. 그 육과 영이 사망의 삶을 즐겨 사는 극적 사람이 된다.
육적인 극의 세계는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기 힘든 세계다. 육적인
세계에서 극적인 삶을 다 겪고 탄식할 때에야 다시 섭리사로 돌아오게 되
는데, 다시 오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매일 매시간 무슨 일을 하든지 나 성자와 일체 되어 극적인 삶
을 살아야, 삶 속에서 잠깐이라도 나 성자의 주관권을 벗어나지 않게 된
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9>
날계란을 손에 움켜쥐고 바위 위를 걸어갈 때는 항상 손을 펴지 않듯
이, (손을 펴지 않고 꼭 쥐고 있는 모습 제스처) 너희 마음에 나 성자와 내 분체를
꼭 품고 극적으로 살아야 된다. (성자와 분체를 마음에 꼭 품고 있는 모습을 가슴에
손을 갖다 대고 제스처) 나 성자와 분체를 놓으면, 너희 희망도 휴거도 사라진
다. (기본 제스처) <끝>
흔히 섭리사에 있다가 세상으로 나가는 자들을 보면 “왜 섭리사에서
목사를 하고 지도자를 했던 사람이 나가지? 이해가 안 된다.” 한다. 그
러나 너희가 몰라서 그렇다. 그런 자들은 그동안 하늘의 큰 법을 범하고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죄를 짓고 살았기 때문이다. 심판받고 양과 염소
가 갈라진 것이다.
뿌리 깊은 온전한 나무가 뽑히겠느냐. 뿌리 깊지 않은 나무가 뽑히는
것이다. 내 육을 절대 깨닫고 그와 하나 돼야 한다. 그래야 나 성자와 하
나 된 자다. 그리고 내 육과 하나 된 자와 하나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말
그 사람이 내 육과 하나 되었는지 확인하고 대하여라.
너희는 나 성자의 주관권 안의 극에서 살아라. 전심으로 기도하는 극
에서 살아라. 전심으로 말씀을 듣고 행하는 극에서 살아라.
그리고 지금은 휴거 때이니, 휴거의 삶의 극에서 살아라. 아직 휴거
100선에 오르지 못하여 휴거되지 않았는데도 ‘휴거 300선’을 선포하
니, 휴거 300선을 돌파하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못 한다. 휴거도 차
원을 높이면서 하는 것이다.
(*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0> 중요
휴거 100선, 200선, 300선은 각각 코스가 다르다. / 먼저 휴거
100선에 오르고, 그다음에 200선에 오르고, 그다음에 질서대로 300선에
오르는 것이다.
100선과 200선은 코스가 다르다. 그 코스는 ‘그에 해당되는 삶’으
로 오르는 것이다. / 먼저 휴거의 첫 번째 산인 100선에 올라 휴거 명단
에 기록돼야 한다. 그다음에 휴거 200선에 해당되는 삶을 살아야 200선
에 오르게 된다. 200선에 올라야 나 성자가 휴거 300선에 오를 힘도 주
고, 지혜도 주고, 코치도 해 주고, 기도하면 그에 해당되는 대로 무엇을
하라고 깨닫게 해 준다. <끝>
(* 서서히 매듭짓겠습니다. 다시 화면을 보겠습니다.) <영상11>
‘사람은 극에서 산다.’라고 한 말씀을 명심하고, 항상 평소 삶에서
절대 <나 성자 편의 극의 삶>을 벗어나지 말아라. 작은 것을 벗어나다가
점점 큰 것도 벗어나게 되어, 나중에는 섭리사를 벗어나게 되고 결국 천
국을 잃게 된다. <끝>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 중에서 다섯 처녀는 사랑의 기름을 예비하고
‘사랑 충만한 극’에서 살았고, 나머지 다섯 처녀는 사랑의 기름을 예비
하지 않고 ‘미련한 극’에서 살았다.
말씀을 행한 자는 산 자로서 ‘생명의 극’에서 살고, 행하지 않은 자
는 죽은 자로서 ‘죽음의 극’에서 산 자다.
아담과 하와는 ‘이성의 극’에서 살았다.
가인은 ‘악의 극’에서 살았고, 아벨은 ‘선의 극’에서 살았다.
예수 때 십자가 위의 우측 강도는 ‘주의 편인 구원의 극’에서 말했
고, 그 영도 예수를 따라서 갔다. 한편 좌측 강도는 ‘주의 반대편인 불신
의 극’에서 말했고, 그 영도 예수 반대편으로 갔다.
모르는 자들은 육이 하늘로 휴거된다고 믿고 ‘무지의 극’에서 살고,
아는 자들은 육은 땅에서 휴거의 삶을 살고, 영만 천국으로 휴거된다고
믿고 ‘진리의 극’에서 살고 있다.
예수 때 가룟 유다는 ‘불신의 극’에서 살았고, 베드로와 제자들은
‘순종의 극’에서 살았다. 고로 가룟 유다의 영은 2000년 동안 지옥 불
속에서 살고 있다. 거기서 영원히 살아야 된다. 메시아를 불신한 것이 그
리도 큰 죄다.
이 시대는 ‘성자 본체와 분체’에 대해서 밝혔으니, 불신하는 자의
결말이 오죽하겠느냐. 나 성자를 극적으로 사랑하며 살아라. 그래야 후회
가 없다. 사랑도, 행실도, 순종도 있는 대로 다 투자하여라. 그렇게 해도
지금은 <휴거 때>이니 후회 없다.
오늘 말씀은 나 성자와 너희를 구원하는 자가 했으니, 이보다 더 아름
답고 신비하고 웅장하고 오묘한 세계가 어디 있느냐.
올해는 <말씀과 생명 구원의 해>다. 말씀은 줬으니, 11월에 생명 구
원은 어떻게 했는지 확인할 것이다. 나 성자에게 빈손으로 오지 말아라.
생명 구원도 너희 휴거와 연관되어 있다.
‘선의 극’에서 살든지, ‘악의 극’에서 살든지 어디에서 살아도 나
름대로 좋고 기쁘다. 그러나 ‘선의 극’이든, ‘악의 극’이든 한 번 가
면 면역이 되어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살게 된다. 그러나
결국에는 심판으로 선악이 분립되고 끝난다. 모두 ‘나 성자의 섭리의
극’에서 딱 붙어살기를 축원한다.
너희에게 양극의 극적인 삶에 대해서 말해 준 전능자 성자니라.
샬롬!
<축 도>
지금은 영원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영원한 사랑과 생
명의 극의 세계에 계시며 우리의 육과 영을 구원하시는 성자의 사랑과,
진리의 말씀을 증거하시며 감동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뜨거운 감동 감
화 역사하심이 온 세계 모든 자들에게 충만하여 모두 마음을 확고히 하고
영적인 극의 삶을 살아가기를 성부, 성자, 성령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
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