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말씀2013.07.10 (수)
새벽 계시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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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7.1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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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이 휴거의 과정이다
-새벽기도 깊이 하는 비법-
작성일 : 2013. 5. 9(목) 새벽 3시
작성자 : 주사랑빛
(한 주 동안 기도가 깊이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일 때문에 거처를 옮기니 리듬이 끊겨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결심을 하고 전날 자기 전,
기도 시간에 성자 분체의 이름으로 강하게 기도드렸
습니다.
자는 동안 혼계에서 저를 가르쳐 주시기를 간구드렸
습니다.
꿈에 제가 길에 묻은 오물을 닦고 있었는데, 갑자기
작고 예쁜 요정들이 몰려와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주님께 사랑 고백을 하고
선생님을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선생님은 이 시대 성자 분체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저는 선생님을 통해 살아 계신 성자 주님을 뵈었습
니다.
세상 누가 뭐라 해도 이를 부인할 수 없습니다.
주님, 며칠 새벽기도가 깊이 되지 않아 괴로웠습니
다.
사랑하는 애인을 눈앞에 자꾸만 놓치는 것 같았습니
다.
그러나 기분 좋은 꿈을 꾸게 해 주셨고, 오늘 다시
저를 만나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자는 동안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지금은 기도가 깊이
되는 느낌입니다.
어떤 이유로 제가 다시 깊이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
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모든 것은 과정의 역사다.
인류는 과정 중에 변화되고 발전한다.
각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과정 중에 희로애락을 느끼고 누리는 것이다.
선생이 네게 했던 말을 기억하느냐?
(네, ‘과정 중에 네 소원이 이루어진다.’라고 하셨습
니다.)
그래, 과정은 마치 사람이 성장하는 기간과 같다.
사람이 늙어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인생의 온갖 기쁨을 누릴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과정 중에 온갖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결국 늙는 것이 인생이다.
뭇 사람들은 과정의 기쁨을 모르기에
순간순간을 나와 함께 즐길 줄 모르고
소처럼 일만 하다가 병들어
인생의 마지막 점을 찍고 만다.
그리고는 신이 없다고 말한다.
인생의 허무함과 곤고함만 느끼다 간다.
삼위는 인간의 인생을 이리 만들지 않았다.
만약 이러한 인생을 만들었다면,
책임분담의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고,
창조 목적을 위해
온갖 사랑의 배신을 당해 가며
끝까지 인간에 대한 사랑을
붙들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이 월명동 돌 조경 작업을 할 때,
제자들은 모두 완성된 모습을 꿈꾸며
끝나면 먹고 마실 거라 생각했지만,
선생은 과정 중에
나와 늘 대화하며 사연을 만들어 갔다.
사람들은 눈앞에 돌 조경 작업이 힘들다고 생각하며
결과만을 바랬지만,
선생이 다른 자들과 다른 점이 그것이었다.
이와 같이 많은 이들은
휴거되어 가는 천국 세계만을 꿈꾸며 살지만,
선생은 과정 중에 이미 천국을 이루며
천국의 삶을 살고 있다.
저 기성은 ‘구원’이라는 결과만을,
‘나사렛 예수가 육으로 오는
휴거의 결과’만을 생각하니
과정 가운데 메시아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메시아는 과정 가운데 나타난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무지다.
시대 메시아와 일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아라.
너희가 매일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
네가 깨달은 것처럼
매일의 삶은 연속되는 길과 같다.
길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듯이,
하루라는 구간들이 이어져
끝이 없는 인생의 길이 된다.
매일매일 나 성자가 구원자를 통해 주는
말씀을 듣고 행하며 살다가,
밤이 되면 혼계에서 나 성자와 사랑하며 활동하고,
이어진 새벽시간에 나 성자를 또 만나
사랑하며 대화하게 되는 것이다.
너희가 새벽에 나를 제대로 깊이 만나지 못하는 것
은
전날 나를 깊이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낮에 육적으로 살며 나를 잊고 살았으니
밤중 혼계에서도 나와 떨어진 삶을 살고,
새벽에도 깊이 대화하지 못하고 잠으로,
잡생각으로 시간만 보내다
틈을 노리던 사탄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매일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하냐.
새벽에 나와 깊은 대화,
깊은 사랑을 나누는 자는
연속되는 삶의 과정 속에서
더욱 나를 만나고
차원을 높여 가니 자신의 영체 또한
차원 높은 휴거의 영체가 되어 가지 않겠느냐.
고로, 하루 중,
매 순간 나를 놓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주님, 만약 제가 하루를 육적으로 살았다면 다음날
주님을 깊이 만날 수는 없는 건가요?)
사랑하는 자야,
사람들은 대개 가정사 운명의 흐름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지 않느냐.
의사 집안에는 의사가 나기 쉽고,
학자 집안에는 학자가 나기 쉽다고 말이다.
가난한 집안에서는 가난함이 연속되고,
부유한 집안에서는 부유함이 연속된다고 말이다.
이 말과 같이 너희 각자의 죄의 흐름,
육적 생활의 흐름은 연속되지만,
단번에 끊을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메시아다.
마치 차고 넘쳐 흘러가는 강물을
댐으로 막아 물의 흐름을 끊듯이,
메시아의 권세로
너희 인생의 육적인 삶의 흐름,
죄의 흐름을, 사망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
하루의 삶을 육적으로
혹은, 사망권의 삶을 살았다 해도
성자 분체가 누구인지,
시대 주가 누구인지
100% 깨닫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는 자는
마치 급류를 댐이 막듯이,
죄의 흐름과 사망권 운명의 흐름을
사명자의 권세로 막고
나 성자가 조절하는 대로
새로운 삶으로 급전환되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나 성자가 원하는
인생길을 걸어갈 수 있다.
휴거도 이와 같다.
지금 즉시 회개하며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며 행하여라.
기도로 너희 모순을 깨닫고
말씀으로 방향을 잡고 행한다면,
즉시 휴거가 되고
또한 휴거가 된 영들은
즉시 차원을 높일 수 있다.
너희들의 인생의 과정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메시아의 권세로
다시 힘을 얻고 삶의 새 길을 달려라.
결과만을 바라보면
현재의 너희의 삶이 답답하고 허무하다.
과정 중에 충분히
나와 사랑 일체 된 자만이
목적지에 가서도
더욱 일체 되며 사랑한다.
자, 새벽에 깊이 기도하며
나를 만나는 비법을 알겠느냐.
선생이 어찌 한평생을 구해도 만나기 어려운 나 성
자와
한평생을 대화하며 사랑했겠느냐.
마치 돈이 누적되어 쌓이듯이,
선생은 어릴 적부터
매일의 삶을 나와 함께 행하고 사랑하며 살았다.
이 삶이 연속되고 누적되니
과정 중에 나와 기쁨과 보람을 누리고
휴거의 영체로 차원이 높아진 것이다.
지금 지구 세상 누구라도
아무리 열심히 나를 부르며 사랑한다 할지라도
절대 너희 선생의 위치와 권세를 따라올 수 없다.
한평생 저축한 자와
오늘 하루 저축한 자와 같겠느냐.
(아멘! 주님, 얼마 전에 아주 좋은 집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에서 자게 되었는데, 친구가 말하길, 처음에
는 집이 너무 넓고 깨끗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 익
숙해지니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 맞다.
과정도 차원이 높아지고
변화를 이루어야 기쁘다.
천국이 아무리 좋은 세계라 해도
매일 매 순간 변화되지 않고
발전하지 않는 세계라면,
마치 그의 이야기처럼
기쁨은 곧 사라진다.
천국은 무한히 발전한다.
고로 과정 중에 한없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세계이다.
그러니 천국이다.
자, 보아라.
밤에 혼계에서 내가 보여 준 꿈을 꾸고
새벽에 나와 같이 대화하며
사랑을 또 나누며 기뻐하고 있듯이,
육계에서 나와 내가 보낸 구원자와 함께
행복하고 기쁜 과정의 삶을 살다가
휴거된 후에도 연장된 나의 세계, 천국에서
또 나와 나의 분체와 함께
기쁘게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천국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기쁨이니
다음날은 더 큰 기쁨이고
그 다음날은 더욱더 큰 기쁨이다.
영원히 매일 누적되는 기쁨 속에
행복에 겨워 산다.
이것이 천국의 삶이다.
지옥은 세상에서도
나 성자와 떨어져 고통의 삶을 살다가
영계에서도 매일 고통의 차원이 높아지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영원한 고통 속에 살게 된다.
이것이 지옥의 삶이다.
오늘은 새벽에 깊이 기도하는 비법과
이를 통해 휴거의 차원을 높이는 법도 가르쳐 주었
다.
어떠한 자도 선생의 위치에 오를 수 없고,
권세를 따라할 수도, 탐을 낼 수도 없는 이유다.
(그래프를 보여 주셨습니다. 한 그래프는 왼쪽 아래,
시작점에서부터 오른쪽 위로 쭉 올라가는 그래프였
고,
다른 한 그래프는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그
래프였습니다. 왼쪽 그래프는 선생님 인생의 그래프
였습니다.)
매일의 삶을 나와 선생과 함께 기쁘게 사는 자는
선생과 같이 그래프가 쉬지 않고 쭉 올라간다.
그러나 육적인 삶을 산 자라도 회개하면
시대 사명자의 권세로
그 삶의 흐름을 끊고 다시 시작할 수 있지만
올라갔다가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니 발전이 없다.
누적되는 것이 없다.
너희의 삶은
곧 휴거를 결정하는 과정과 같으니
하루하루가 매우 중요하다.
온전히 100% 나와 일체,
분체와 일체 되어 살자.
과정 중에 기쁨을 누리다
다음 과정에서
더 기쁨을 누리는 자들이 되어라.
축복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너와 사랑의 대화하는 과정 속에 사는
나 성자다.
(주님, 진정 감사드려요.
어제는 기도가 안 되었지만 혼계에서 주님이 보내
주신 천사들을 만났고, 지금 이 새벽 시간에도 주님
을 만나 대화하고 있습니다.)
네가 자기 전에
간절히 분체의 이름으로 구했지 않느냐.
분체의 이름이 그리 크다.
너희 삶의 흐름을 단번에 끊어
새롭게 전환시키지 않았느냐.
그러나 늘 나와 일체 되는 삶이 아닌,
이러한 과정만 연속된다면
발전에 지장이 있으니,
매 순간 나와 나의 분체와 일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