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기도회2013.07.12 (금)
2013년 7월 12일 금요일 진리성령운동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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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2일 금요일 진리성령운동 말씀.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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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7월 12일 금요일 진리성령운동 말씀 >
할렐루야! 할렐루야! 네. 진리와 함께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많이 기대하셨나요? 네. 오
늘 진리와 함께 성령님께서 성자께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성령의 불길을 우리에게 일으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자, 오른손과 왼손이 맞닿아야 소리가 나죠? 네. 이와 같이 말씀과 성령이 만나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한 삼위의 역사가 일어나고, 또 여러분도 이 땅에서 주님을 받아들이고 말씀을 받
아들여야만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자,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님 성자 삼위일체의 성령께서 오
늘도 말씀을 전할 때에 여러분을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감동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귀가
열리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에 들어오면 보다 깨닫는 것이 쉽습니다.
자, 여러분이 오늘 깨닫는 것, 단 한 가지라도 있다면 이것을 마음에 품고 행하면서 살아가겠다는 결심
을 하기를 진실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함께 해주시잖아요. 그러면서 여러
분의 마음을 단장시켜 주기도 할 겁니다. 오늘 어떤 말씀을 전할지 여러분 기대됩니까? 기대가 없으면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말씀도 재미있게 듣고, 말씀 실천도 재미있게 해야 됩니다. 믿습니까? 자, 오늘
말씀과 또 연결되는 의미있는 찬양을 한 곡 부르고 시작할 겁니다. 찬양을 부르는 이유는 여러분의 마
음을 좀 더 활짝 열어놓으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 오늘 말씀과 연결될 찬양은 무엇일까? 오늘 이 찬양을 부르면 오늘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대강 짐
작을 하게 됩니다. 오늘 부를 찬양은 ‘섭리인생’ 섭리인생 가사를 잘 생각해 보세요. 그대 즐겁고 기쁨의
인생. 그대 즐겁고 기쁨의 인생. 남자들은 느낌이 안 오죠. 음을 좀 높여야 되겠죠? 음을 높이듯이 마음
의 고도를 높여야 되겠습니다. 끝이 없는 섭리길이 아니라 하늘 역사 섭리길을 가네. 역사의 뜻 따라 역
사의 님 따라 섭리길을 따라가네. 우리 마음 속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대 즐겁고 기쁨의 인생.
‘섭리인생’ 찬양
아멘. 할렐루야. 네. 기쁨의 섭리길을 가야 됩니다. 그냥 섭리길이 아니고, 어떤 길이요? 기쁨의 섭리
길. 자, 오늘은 우리가 섭리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성자 주님께서 다시 한 번 우리
에게 핵심되는 말씀을 선생님을 통해서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여러분들이 휴거를 이루든지, 기도를 하
든지, 찬양을 하든지, 말씀을 배우든지, 말씀을 듣든지, 그 어떤 일을 하든지 절대 잊어서는 안될 말씀입
니다. 휴거가 선포되었고, 휴거의 비밀들이 밝혀지게 되었고, 시대의 인봉들이 풀리게 되었습니다. 어,
휴거 100선, 200선, 300선에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휴거가 진행중입니다. 독립과 부활의 역사가 왔습니다. 우리의 최고 관심사는 휴거가 되
어 버렸어요. “정말 휴거에 미쳤구나.” 할 정도로 “정말 미쳤구나.” 그러나 아직 제대로 미치지 못 했습
니다. 미치면 힘들지 않습니다. 미치는 사람들은 잘 안 힘듭니다. 미친다는 것은요. 정신이 미친 게 아니
라, 도달한 것을 말합니다. 미치는 것, 바로 도달한 것을 말하죠. 자, 우리가 지금 이 때에 휴거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우리는 휴거가 꼭 되고 싶습니다. 그렇죠? 다만 너무 못해서 그래서 힘든 것일 뿐이지
휴거가 안 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 이 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은
무엇인지 오늘은 그것에 대해서 말씀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 잘 들어야 되겠습니다.
진리와 함께 하는 성령의 역사를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기쁘게 듣는 겁니다. 10시 안에 끝납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여러분의 인생을 바꿀 수만 있다면, 나라면 최고 집중해서 가장 기쁘게 말씀을 쑥쑥 받
아들이면서 들을 거 같애요. 그렇죠? 여러분들이라도 그렇게 하겠죠? 진리와 함께 하는 성령의 역사, 오
늘은 어떤 말씀으로 우리가 행해야 할 것,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것을 주님께서 말씀해 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주변을 보면요. 평소 생활 가운데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렇죠? 정말 저 사람을 보면
“아, 힘이 솟아.” 너무 에너지가 솟고, 너무 열심히 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을 보면 얼굴만 봐도
힘들어요. 그렇죠? 뭐가 그렇게 인생이 힘든지 그냥 계속 힘든 거예요. 그런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신나서 열심히 섭리를 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힘든지 정말
너무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듣는 것을 봐도 재미있게 열심히 냠냠 받
아먹으면서 맛있게 흡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듣는 둥 마는 둥 자는 것인지 깨
어있는 것인지 왜 왔는지 알 수 없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금 막 쏟아지는
말씀을 듣고 “왔다. 왔어. 해야지.” 이런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야? 또? 아직 다 안 행했는데. 언제
까지 나올 것인가?”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학교에 가서 보면 공부를 잘 하는 사람도 있고, 못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일 나무를 똑같이 심어두
요. 충실하게 열매를 여는 과일나무도 있고, 열매를 열지 못하는 과일나무도 있습니다. 똑같은 과일나무
한 과일나무라도 어떤 가지에는 충실한 열매가 열리고, 어떤 가지에는 열매가 열다가 떨어지기도 합니
다. 맞습니까? 똑같은 나무인데 어떤 가지는 열매가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가지는 열매가 충실하게 열
기도 합니다. 보세요.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기
도가 잘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늘 안 되구요. 어떤 사람을 가끔 안 됩니다. 전도
가 잘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늘 안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끔 안 됩니다.
생명관리가 잘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합니다. 어느 때는 말씀이 엄청 잘 지켜져서 변화가 쑥쑥 일어
나는데 어떤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어렵고 변화가 잘 일어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는 일이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거예요. 똑같이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육신을 가지
고 살아가죠. 그러니까 당장 눈에 보이는 거 그것을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 보세요. 당장
지금 배가 고파서 쫄쫄 굶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사람이 ‘앞으로 천국에 가면 맛있는 음식을 영원
히 먹으면서 살 수 있어. 그러니 지금 배가 고픈 것쯤은 참을 수 있지.’ 그런 사람이 있나요? 천국까지
먼 미래에 천국까지 가서 잘 먹을 것을 생각하면서 현재 배고픈 것을 참는다?
여러분, 휴거가 되었어도 일단 배고프면 천국을 생각하기 보다 일단 배가 고픕니다. 맞습니까? 왜냐하
면 당장 배가 고프면 육신이라는 것은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물질체예요. 물질체라는
것은 물질이라는 것은 자꾸 변한다는 말이예요. 영향도 잘 받고, 변질도 잘 되고, 쉽게 좋아하기도 하고,
배고프면 당장 먹을 게 보이고, 화장실 급하면 화장실만 찾게 되고,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
리구요. 그렇지 않습니까? 육이 안 좋으면 이 정신까지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프고,
몸이 힘들고 그러니까. 정신적으로도 건강할 수 없는 거예요. 몸이 안 좋으면. 그래서 사람은 정신도 육
신도 다 건강해야 됩니다.
여러분, 보세요. 과일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아야 되죠. 과일나무가 안 좋은데 좋은 과일이 열리겠습니
까? 과일나무는 육신과 똑같잖아요. 거기서 열리는 열매는 영이랑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나무 좋은
열매입니다. 그러나 좋은 나무, 좋은 열매라고 해서 무조건 매일 좋은 게 아니예요. 맞죠? 좋은 나무 좋
은 열매이지만 이 좋은 나무는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서 겨울철도 이기고 비바람도
이기고 눈보라도 이겼습니다. 맞습니까? 그리고 그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이 나무는
계속 해서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좋은 나무가 된 것이 아니라 가다가 비바람도 맞기도 하고 어느 날
은 장마가 져서 비가 계속 오기도 하고, 어느 때는 계속 한 파가 몰아치기도 하면서 거기서 튼튼히 성
장해서 좋은 나무가 된 겁니다.
여러분, 사람두요. 아무리 좋은 사람으로 살려고 해도 무조건 다 인생이 좋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매일 좋은 일이 일어나. 나는 매일 좋은 생각만 하고 살아.”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는 일
마다 다 잘 될 수도 없어요. 단상에서 말씀이 딱 나가면 어때요? “내가 저 말씀을 삼켜버리겠어. 내가
다 내 말씀으로 해서 행해버리겠어.” 그런데 바로 내일 아침에 힘들어 하면서 일어나는 나를 발견하고,
그리고 기도하는데 집중을 하지 못 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힘들어 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여러분, 그럴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때는 말씀이 쑥쑥 잘 들리기도 하구요. 어느 때는 막 집중을 하고 노력을
해도 힘든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삼위일체와 구원자를 믿고 사는 데 있어서도 무조건 계속 좋을 수는 없습니다. 항상
계속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계에 부딪히기도 하고, 어렵기도 하고, 그러다가 좋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어렵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좋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음에 어려울지 알았는데 조금 좋기도 하고 그
리고 어느 때는 다시 좋아졌다가 최고로 좋아질 때가 있구요. 그러다가 쑤우욱- 미끄럼틀을 타기도 하
구요. 그 상태가 계속 유지되지 않는 일들이 있습니다.
“휴거된 자, 육적인 극에서 왔다갔다 하지 않는다.” 이 말이 아니라 영적인 극에서 살더라도 늘 기쁘고
행복한 일만 있지는 않습니다. 영적인 극에서 산다고 해서 늘 좋은 일만 있고 “나는 영적인 극에서 살
고 있지.” 이렇게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 맞습니까? 하나님이 인생들을 구원하려고 이 땅에 성
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성자는 신이시니까 사람쓰고 오신 거예요. 생명의 말씀을 주시구요.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아무리 말을 해도 그 사랑을 받고 다 구원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이 땅에
오신 주여. 환영합니다. 말씀 최고예요.” 하면서 구원을 이루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인생들이 제대로 못 하는 것을 하나님이 그것만 쳐다보신다면 하나님은 이 땅에 희망이
없습니다. 여러분, 각 개인도 마찬가지예요. 여러분들이 못하는 것만 쳐다보면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좋
아하지 않을 겁니다. 희망을 포기해 버릴 거예요. 더 이상 인생 농사를 거기에 짓지 않는다는 겁니다.
농부를 보세요. 과일나무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어떤 가지는 열매를 열고 어떤 가지는 열매를 열지 못
했어요. 농부의 목적은 무엇이냐? 충실한 열매를 여는 그 가지 때문에 그것 때문에 그 과일나무를 키우
는 것입니다. 농부가 만약에 땅에 떨어질 과일만 보고서 열매를 짓는다면 농사지을 필요가 없어요. 왜냐
하면 그것만 쳐다보니까 “다 떨어지네. 그러면 뭐해? 농사지어서 뭐해?” 그런데 뭐 쳐다보고 하죠? 딱
붙어있는 충실한 열매를 보고 농사를 짓게 됩니다.
땅에 떨어질 과일만 생각하면 희망이 없어요.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도 마찬
가지로 구원받지 못할 자들을 생각하면 땅에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맞습니까? 농부에게는 목적이 있
어요. 그 목적은 무엇이냐? 충실한 열매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름 내내 수고하고 봄 내내 땀흘리면
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이 목적을 가지지 않으면 희망이 없
다는 것입니다. 그냥 과일나무 잘 키워야지, 그러면 과일나무를 잘 키울 수 없어요. 과일나무에 병이 들
면 그냥 병든대로 둡니다. 목적은 뭐예요? 충실한 열매를 여는 겁니다. 그러니 계속 투자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목적을 두시는 데요. 무슨 목적을 두시냐면 변화의 목적을 두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포기하지 않아요. 그리고 열심히 하더라도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변화의 목적, “너 완전하라.” 그랬어요. 완전하게, 지금 완전한 것을 목적하지 않으십니다. 과정
가운데 만들면서 끝에는 완전해지는 것을 목적하시고 계십니다. 알겠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면서 서서히 변화되는 것, 그리고 하늘의 신부로 변화되는 그것을 목적으로 두신다는 것입니
다. 태어날 때부터 하늘신부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둔다면, 이미 여러분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하나님은
“내 신부만 데리고 가자.” 하면서 뽑았을 거예요. 그런데 어때요? 일생을 두고 변화의 목적을 두고 계십
니다. 믿습니까? 이렇게 인생을 창조하셨어요.
변화의 목적을 두고,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이 하나님에게는 희망이예요. 희망.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희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변화될 것이기 때문에. 변화되려고 말씀도 주고, 구원
자도 주십니다. 변화시키려구요. 만약에 처음부터 완벽하게 태어났으면 메시야도 필요없고 말씀도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아예 인생이 태어날 필요도 없죠. 그냥 천국에서 천사처럼 태어나서 살면 되지 않습니
까? 하늘의 신부로 변화될 것을 생각하시면서 말씀도 주고 구원자도 보내주시고 끊임없이 도와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말을 안 들어도 속을 썩여도 조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도 내일은 변화될 것을 기대하면서 앞으로는 더 많이 변화될 것을 기대하면서 역사를 해주십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 성령님의 마음, 성자 주님의 마음을 알아야 해요. 믿습니까? 우리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섭리역사에 와서 살면서 너무 좋은 것을 많이 듣고 살다보니까 “완
전하라.” 이게 머리에 딱 박혀있단 말이예요. 그러니까 완전하지 못한 내 모습을 보면 자꾸 힘이 없는
거예요. 안 되는 것만 보면 희망이 없기 때문에 전진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생명관리할 때 어때요?
말 되게 안 들어요. 여러분, 처음부터 말을 엄청 잘 듣고 오는 사람이 있을까요? 여러분, 없습니다. 없어
요. 처음부터 “마음에 쏙 들어. 저 생명은 정말 최고다.” 이런 사람이 있어요? 저도 그렇다고 장담을 못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잘 하는 것, 그것을 보게 되면 희망이 생기잖아요. 그것을 갖다가 계속 투자하지 안
습니까? 과일나무에서 100개의 열매가 열길 기대한 거예요. 그런데 이게 왠 일이냐? 30개 밖에 못 연
거죠.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30개라도 얻었으니까 그것을 가지고서 기쁨을 얻으면서 그 다음
목적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죠.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나는 역사한다.” 했습
니다. 왜? 그 1%로 50, 70, 100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까? 1이라도 있으면 만들 수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완벽해지길 원하고 완전해지길 원합니다.
그런데 왜 완벽해지길 싫어하냐면 힘드니까요. ‘뭐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완전, 온전, 아무리 원하더라도 한 번에 될 수는 없습니다. 성자 주님은 아주 중요한 말씀을 주
셨습니다. “너는 포기했어도 나 성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왜? 지금은 진행중이다.” 했습니다. 포기? 나는
포기는 안 하는데. 여러분, 삶 가운데 사람은 포기하고 삽니다. 어떻게요? 보세요. “나는 1등은 못 하니
까 2등이라도 해야지.” 이거 포기한 겁니다. “1등은 못 하니까 그 다음으로 뛰어야 되겠다.” 이렇게 하
니까 1등 만큼의 힘이 안 나요. 맞아요? 틀려요? 나는 저거는 절대 못한다고 판단을 해버리면, 따라는
가지만 그만큼 엄청난 파워는 안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못 해요. 맞습니까?
“나는 A급은 포기했어. A급은 힘들어. 혹은 나는 죄를 지어서 A급은 안되니까.” 하면서 포기를 해버리
면 삶 가운데 힘이 안나요. 힘이 절대 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끝까지 가야 될 것을 생각하지만, 끝만 생각하면 안 되는 겁니다. 과정 중에 진행 중에 즐겨야
되요. 과정과 진행 중에 즐기지 못하면 힘이 들어요. 지쳐 버리게 됩니다. 배우는 과정, 만드는 과정은
즐거운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듣고 있어. 말씀을 내가 배우고 있어. 즐거워야지.” 변화도 빨리 되고,
말씀도 잘 들어 오구요. 안 그러면 즐기지 못 하면, 말씀을 배우고 말씀을 듣는 것은 노동이 됩니다. 말
씀은 명령이 되어 버립니다. “해! 안하면 죽어.” 이렇게 말씀이 자꾸만 들려요.
즐기지 못 하면 노동이고 즐기지 못 하면 명령입니다. 지쳐 버립니다.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과정을
즐기면서 목적지까지 가는 것입니다. 목적만 생각하고 뛰니까 어때요? 목적을 해치우기까지 쉬지도 마.
끊임없이 달려. 그러면서 목적만 생각하고 달리니까 목적지 가다가 즐거움을 잊어버리고 행복을 잊어버
려요. 너무 지쳐요. 목적지까지 갈 힘이 안 난다는 거예요. 여러분, 목적지까지 가려면 힘이 나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즐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즐겁지 않으면 힘이 안 나요. 적당히 포기하든 완벽하게
포기하면, 포기를 하면 힘이 안 와요.
여러분, 말씀을 들을 때도 그래요. “오늘은 졸려. 포기해.” 그러면 말씀을 들을 힘이 확 사라지면서 갑
자기 졸음이 급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그 시간은 숙면하는 시간이 되게 되죠. 여러분, 끝까지 즐겨야 됩
니다. 믿습니까? “오늘 말씀 안 들으면 무서워. 오늘 말씀 들어야 해.” 여러분, 의무감으로 들어서도 안
됩니다. 오늘 말씀 기쁨과 즐거움으로 기대하면서 “설레. 소풍가는 거 같애.” 그러면서 해야 된다는 거
예요. 그러면 모든 시간이 즐겁고 뇌가 딱 불이 켜지게 되죠. 그래서 흡수도 잘 된다는 거죠. 과정을 즐
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고통만 받으면 되겠습니까? 그리고 천국만 가서 잘 살면 되겠습니까? 여러분, 아니요. 육은
지상천국, 마음은 마음천국, 영은 천상천국, 삼박자가 맞아야죠. 삼위일체, 하나님 성령님 성자, 삼위일
체 내 육체 혼체 영체 삼위일체, 육 지상천국 마음 마음천국 영 천상천국 삼위일체, 삼박자가 딱 맞아야
불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령집회, 말씀 찬양 기도 이 삼박자가 딱 맞아야 불이 일어난다는 것입니
다.
이런 말이 있죠. 선생님 말씀 중에 “고생되어도 생명길을 가야 된다.” 이러니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
하냐면 “고생하라는 말인가? 생명길은 무조건 고생하는 건가?” 고생되어도 생명길을 가라고 하니까요.
여러분, 아닙니다. 고생될 때가 있을 것이다. 생명길을 가는데 있어서. 그럴지라도 그래도 생명길을 가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때요? “내가 조은이를 혼내서 키운 줄 알았지.” 그러니까 혼내서 키운 줄 안다
고. 그래서 선생님이 답답하다고. 그러면 저는 혼이 빠져서 여기 못 있습니다. 혼만 나면 혼이 나가서요.
칭찬도 받고, 못한 것은 지적도 받고, 모든 것은 사랑으로 키웠다는 것입니다. 성자 사랑으로 키웠다는
것입니다. 과정 중에 여러 가지의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1등 못하니까 포기할거야. A급은 안 되지만 그래도 섭리길 가는 거야. 즐겁게.” 여러분, 사람이 적당
히 포기한 것이 있는데 뭐가 그리 즐겁겠습니까? 최고점을 찍어야 되요. 기분이요. 기분에 의해 날지 않
니까? 기분이 죽어 있는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는 어차피 저기는 안 할 거니까 저거는 안 해도 되겠
지.” 힘이 안 온다는 거예요. “그냥 휴거나 되자. 100선. 100선 먼저 찍으라고 했으니까 100선만 찍자.
구원이나 받자.” 이런 생각만 계속 하게 되면 낙심을 하게 되고 지치게 되고 힘들어지게 됩니다. 알겠습
니까?
포기하고 뛰면 힘이 없어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하죠. “나는 기뻐. 나는 최고점을 찍으면서 갈거야.”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과정 가운데 계속 해서 기쁘게 뛰어야만 목적을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뛰는 것입니다. 희망, 된다는 희망, “나는 한 번 해보겠어. 하겠다.” 는
이 희망을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이 세상은 희망의 땅이다.” 했습니다. 참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세
상은 희망의 땅이기 때문에, 희망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요. 이 세상에서 희망이 없는 사람은 죽고 싶습
니다. 재미가 없어요. 도전을 안 합니다. 이 땅은 희망을 이루면서 사는 세계입니다.
여러분, 보세요. 사도 바울은 소망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소망에 대해서. 소망, 얼
마나 많이 이야기를 했는지 오늘 성경구절을 찾다가 포기를 했어요.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소망에 대해
서. 소망, 그리스도의 소망, 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소망, 희망, 그 희망을 계속 강조한 사도입니다. 왜
요? 그런데 예수님의 얘기를 보면 희망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안 하셨어요. 여러분, 왜 그런지 아세요?
예수님이 희망이잖아요. 보여주면 되잖아요. 그런데 안 보이니까 그러나 안 보이지만 희망이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것을 버리지 말라고.
여러분, 우리가 지금 섭리인생을 살면서 지금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서 달려갈 때가 있는데
반드시 그 앞에 있어요. 희망을 잊으면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데 천국은 희망이 없
어도 산다고 했습니다. 천국은 희망이 없어도 산다. 왜요? 희망을 이룬 세계이기 때문에. 희망을 이루고
누리고 사는 세계이기 때문에 희망이 없어도 삽니다. 누린 것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세계입니다. 과정 가
운데 희망을 가지고 즐겁게 뛰고 달리면서 목적을 이루면서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현재를 살고
있잖아요. 현재에는 희망을 가지고 꿈을 꾸면서 달려가는 시간입니다. 믿습니까? 그리고 내일 미래는 이
이룬 희망을 가지고 누리면서 사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달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누리는 것입니
다.
오늘은 만들고 내일은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죠. “현재, 너무 바뻐.” 현재를 살기
도 바쁘다는 얘기를 제일 많이 합니다. “내일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아퍼.” 여러분, 만일 인생이 오늘에
서 끝난다면 오늘을 즐기라고 할 것입니다. “오늘 실컷 즐겨. 오늘 끝난단다. 오늘 즐기고 살자.” 여러분
희망을 얘기하는 이유는 내일이 있기 때문에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오늘 인생이 끝난다면 오늘
즐기고 끝나겠죠. 내일이 없으면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섭리사가 미래, 내일이 없으면 희망이 없어요.
여기서 다 지치고 끝나야 해요. 여러분, 한 번 예를 들어 볼까요? 아픈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그 병을
못 고친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죠? 희망이 없어요. 그런데요. 아무리 아파도 그 병을 고칠 수 있
다고 하는 거예요. 희망이 생기죠. 왜요? 내일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현재에는 부족해도
이대로 끝난다고 하면 희망이 없죠. 그런데 “니가 아무리 부족해도 너 내일은 변화될 수 있다.” 그러면
희망이 탁 생기죠.
그런데 아무리 풍족해도 “너는 이대로 끝난다.” 그러면 희망이 팍 사라지죠. 부족하든 풍요롭든 내일은
더 좋아지고 변화될 수 있다는 데서 희망이 오게 됩니다. 여러분, 이런 희망을 꿈꾸고 살아가고 있습니
까? 희망이 있으면 기쁘게 살아가게 되겠죠? 이 땅은 희망을 이루는 곳, 현재 이 시간은 희망을 이루는
시간, 그래서 희망이 있어야 됩니다. 섭리사 왔어두요. 주님은 말씀하셨어요. 왜 오늘 이 말씀을 주시냐
면요. 즐겁게 뛰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섭리사에 왔는데도 희망과 즐거움을 가지고서 기쁨을
가지고서 즐겁게 섭리사를 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러니 성자를 사랑하는 것 자체도 노동이 되고 힘
들어 버려요. 사랑하다가 지쳐버리는 거죠. 말씀을 듣고 말씀을 행하는 것, 설교를 연구하고, 생명을 관
리하고 하는 것이 기쁨이 아닌 것입니다. 의무, 책임이예요. 거기서 그냥 끝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때요? 어려워요. 그 길을 가기가. 행하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냥 잘 해야 되지. 말씀
은 틀리지 않으니까 나는 잘 해야 돼. 그냥 휴거되어야 되니까.” 이 생각을 가지고 살면 절대 안 됩니
다. 이 생각은 안 가지고 사는 건 알겠지만요. 순간이라도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순간이라도 그 작은
생각, 그 좀먹는 작은 생각이요. 점점점점 커지면서 내 생각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경험
해 보셨죠? 너무나 작은 생각인데 그 작은 생각이 지배해 버리니까 그 작은 생각이 좀먹듯이 지배해 버
렸습니다. 지금 말씀을 듣고 있고, 새롭게 말씀을 듣고 수료한 여러분들도 절대 오늘 말씀 생각해야 합
니다. ‘매순간이라도 힘든데 가야 되니까.’ 하는 생각은 절대 갖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주님께 고백해
버리세요. “주님. 제가 순간 이런 마음이 생겼는데요.” 주님께 고백하세요. 빨리. 그냥 넘기세요. 주님께
요. 아시겠습니까? 섭리사에 살면서 그런 생각을 살면 기쁨이 없으면 신앙이 노동이예요. 신앙생활을 하
는 것이. 말씀은 아까도 얘기하지만 “명령, 해! 하지 마!” 지옥, 천국, 양극의 세계, 양극의 세계도 주님
은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닌데 막 극적으로 말씀으로 듣는 거예요. ‘그러면 육적인 삶에서 나는 왔다
갔다 하니까 시계추 삶인가? 그러면 휴거되지 않은 거야.’ 막 너무 극적인 것입니다.
섭리사에 살면서 웃음이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믿습니까? 여러분, 힘들어두요. 웃어도 힘들구요. 안 웃
어도 힘들어요. 여러분,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여러분, 웃으면서 힘드세요. “아이구. 힘드네. 아이고,
참 힘드네요. 힘듭니다.” 웃으면서 하세요. 차라리 이렇게 하세요. 찡그리면서 힘들어 죽겠다고 하면서
얼굴 관리할 돈도 없잖아요. 얼굴을 펴고 사는 것이 최고의 관리죠. 어차피 시간도 필요하고, 행하면서
관리하고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 거예요. 제발 인상 찌푸리면서 그렇게 말고 즐겁게 웃음이 떠나지 않게
그렇게 웃음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해서 천지를 창조하셨어요. 사랑해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고, 사랑하셔서 성자를 보내주셨고, 너무나 사랑해서 많은 사람들 중에서 여러분들을 택
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매일 감사해야 되요. “나를 택해 오셨어요. 하나님이 나를 택해 오셨다구요. 도대체 나를 왜 나를? 감
사해 죽겠네.” 감사해서 죽어야지. 힘들어서 죽으면 억울하지 않습니까? 감사해서 죽어야지. 정말 영원
히 사랑하면서 살려고 택해 오신 거예요. 일회성으로 “얘를 일시켜 먹어야지. 얘는 목소리가 커. 그러니
까 부흥강사를 시키고 선생이 나오면 딱 버려버려야지. 지금 이 때 써야지. 아주 목소리도 크고 아주 좋
아.” 이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저 원래 목소리 크지 않습니다. 만든 거예요. 만든 거. 영원히
영원히 사랑하면서 살려고 여러분들의 변화의 목적을 두고 부족해도 지금은 부족해도 계속 해서 변화하
는 그 목적을 두고서 천국에서 영원히 데리고 살려고. 어떻게요? 사랑하면서. 그래서 여러분들을 택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성자도 그래서 오셨고 ,구원자도 그래서 사랑 때문에 왔습니다.
성령님도 사랑으로 여러분들을 어루만지시고, 단장시켜 주시고, 그리고 감동도 주신다는 겁니다. 그런
데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말씀을 듣는 것, 배우는 것, 말씀을 행하는 것, 기도하는 것, 찬양하는
것, 생명을 관리하고 전도하는 것, 모두 단 한순간도 일처럼 노동처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쁘게
해야 되요. 기쁨이 없으면 지치고, 기쁨이 없으면 너무나 힘들어 버리게 됩니다. 그 좋은 휴거도 “휴거
되야지. 휴거, 휴거. 휴거되야지.” 이것만 보고 살면 휴거가 노동이예요. 휴거의 맛을 몰라요.
마치 음식을 엄청 맛있는 음식이 있는데 “배를 채워야지.” 후다다다닥! 먹고 나서 숟가락을 놓는 거예
요. 그러면 맛있는 음식을 차려준 보람이 없는 거예요. 휴거도 맛을 느끼며 가야 되는데, “휴거! 휴거!
휴거! 100선! 200선! 300선! 300선까지 언제 가나? 기도해야 돼. 기도해! 40일 기도기간은 휴거의 직
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했어. 일어나야 해. 안 일어나면 안 돼.” 그러면 너무 힘들잖아요. 그러면 어때요?
보는 사람들도 너무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신입생들이 우리 섭리사 사람들을 보면 “어우. 섭리사 사람들
은 너무 지독하다. 그리고 좀처럼 생각보다 웃음이 많지 않은 거 같아.” 이런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기쁨으로 섭리길을 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 삶을 지속하기를 축원합니다. 지금만 기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지속해야 되죠. 그렇죠? 과정에서도 즐기고, 매순간 내 마음이 툭 다운될 때마다 다시 끌어
올리면서 기쁨으로 목적지에서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은 우리가 기뻐하길 원
하십니다. 외양간에서 송아지가 외양간을 벗어나서 푸른 초장에서 뛰는 거예요. 그런데 외양간에서 나왔
는데도 푸른 초장 한 가운데 앉아가지고 가만히 있는 거죠. 그러면 어때요? 그러면 푸른 초장에 왜 나
왔니? 도대체 왜? 뛰어. 좀 뛰라고.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기뻐 뛰리라. 그렇죠?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푸른 초장에서 막 뛰라고 여러분들을 섭리의 초장에 불러 오셨습니다. 사
망권에서 매인 데서 풀어놨다는 것입니다. 죽을 데서 풀어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외양간에서 벗어난
송아지처럼 기뻐 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희망은 어떻게 생길까? 희망은 어떻
게 생길까? 그냥 무작정, 희망이 생기지 않습니다. 희망은 바로 목적에서 생깁니다. 목적, 다른 말로 하
면 목적이 있는 자가 희망이 있는 자입니다. 섭리길을 가다가 목적을 모르잖아요. 혹은 말씀을 배웠는데
도 목적이 머릿 속에 들어오지 않으면 가다가 목적을 상실하게 되고 변질이 됩니다. 다른 길로 간다는
거예요. 다른 길로 가다가도 목적을 상실하지 않은 사람은 돌이킵니다. 목적이 그렇게도 중요해요.
주님은 “목적은 기쁨과 희망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섭리길을 재미있고 즐겁게 아주 희망있
게 가려면 목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것에 목적을 두고 살고 있습니까? 어떤 것
에 목적을 두고 살고 있어요? 천국가는 거, 또요? 선생님과 만나는 것, 또? 하늘의 신부가 되는 것, 목
적이 굉장히 건전하네요. 좋습니다. 영원한 사랑? 목적, 그 목적을 향해 잘 달려나가고 있습니까? 네. 보
세요. 아.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나는 여기 목적을 두고 뛰겠어. 나는 휴거되겠어. 아. 나는 성자 사랑
의 대상체가 되겠어. 영원한 신부가 되겠어. 목적을 둡니다. 그런데요. 어떤 목적, 그 안에 어떤 목적을
둬야 되냐면 아까 이야기했죠. 변화의 목적을 둬야 됩니다. 알겠습니까?
휴거되어야지. 천국가야지. 주님의 신부가 되겠어. 정말 인생 멋지게 살아보겠어. 목적은 있는데요. 변
화의 목적을 두지 않기 때문에, 목적이 목적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변화에 목적을 둬야 됩니다. 하나님
도 인간의 완전해지기를 원하지만 변화의 목적을 두고 완전해지길 원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목적이냐면
자기 변화입니다. 환경은요. 변화시켜 놔도 가지고 다니지 못 한다고 했습니다. 미국에 정말 좋은 집을
하나 지어놨어요. 정말 끝내줘요. 그런데 갖고 다닐수가 없어요. 내가 정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데, 미국에 엄청난 집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데 보이는 것은 나뿐이예요. 그 사람 밖에 보여줄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말, 행실, 인격, 이런 것들을 보여주게 됩니.다 그러니 자기를 변화시키
는 겁니다. 자기를 변화시키면 어디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느냐면 천국까지 가져갈 수 있습니다.
최고의 재산은 자기 자신입니다. 여기에다가 투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최고의 재산, 바로 영혼육
여기에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변화시키는 데 투자를 하면서 변화의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되요.
그러면 어때요? 변화가 목적이잖아요. 그러면 안 힘들어요. 내 몸매가 정말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을 목
적하는 사람들은요. 때려도 안 아파요. 여러분, 제가 아주머니들이요. 정말 운동하는 데를 가보잖아요.
등을 막 등을 팡 벽에다가요. 진짜 정말 심하게 한국 아주머니들이, 외국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어요.
등을 거기다가 팡팡 때리고 배를 막 꼬집어요. 제가 너무 놀래가지고. 저게 괜찮나? 그 아줌마는 뱃살이
들어가는 변화의 목적을 가지고 있으니까 안 아픈 거예요. 저 진짜 깜짝 놀랐어요.
핼쓰클럽에 가면 어때요? 남자들이 엄청난 역기를 들고 힘들어 보이잖아요. 막 이를 꽉 물고, 몸을 막
떨면서 역리를 들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잖아요. 왜 그래요? 이것을 더 든다고 들면서 내 몸이 변화되
는 것에 대해 목적을 두지 않으면 역기 들어서 뭐 하겠어요? 힘들게 하면서.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이
사람의 목적은 역기를 드는 것에 목적이 아니예요. 본인의 몸을 변화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어요. 그
러니 즐거워요. 떨고 있으면서도. 울퉁불퉁한 본인의 팔을 생각하며 드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변화
의 목적을 두어야만 즐겁습니다. “말씀, 어휴 어떻게 하지?” 내가 변화, 내가 정말 좋게 변화하는 것에
목적을 둬야만 그 말씀이 내 말씀으로 제대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변화, 변화, 변화, 부활. 부활, 부활, 부활, 더 좋은 부활, 휴거. 휴거 100선, 쭉쭉쭉쭉쭉- 휴거 200선,
쭉쭉쭉쭉쭉- 휴거 300선, 쭉쭉쭉쭉쭉 성약성, 이런 변화의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차원을 또 높여?
왜? 왜? 차원을 또 높여? 왜 높이겠어요? 변화는 즐거우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목적 우리의
목적은 변화입니다. 어떤 변화? 더 좋은 변화, 더 나은 삶, 더 나은 인생, 더 나은 우리의 육신 행위, 더
나은 생각, 더 나은 영혼의 모습, 더 좋아지는 섭리사, 자꾸만 더 좋게 변화되는 우리의 인생이 목적입
니다. 이게 바로 목적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휴거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말씀을 듣고 살고 있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듣기만 한다면 꼭 휴거는 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휴거에만 목적을 두면 안 됩니다. 근본의 목적, 휴거의 근본의 목적은 성자 주님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어드리는 것입니다. 변화되는 겁니다. 성자 주님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게 변화되는 것입니
다. 오늘은 부족해도, 이게 목적인 거예요. 우리가 주님을 맞는 목적이예요. 이 목적을 잊으면 섭리사에
서는 못 삽니다. 섭리사에서 살아가는 힘이 없어요. 사랑이 없으면. 왜? 사랑의 역사이기 때문에. 휴거만
되려고 “나는 휴거돼야 돼. 기도해야 돼. 휴거되기 위해서 성자 주님을 사랑해야지.” 아니예요. 바뀌었어
요. 성자 주님을 사랑해서 같이 살려고 휴거되고 싶은 거예요. 맞습니까?
예를 들어 볼께요. 어떤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 사람이 너무 만나고 싶어. 그러니까 그 사람을 사랑해야지.” 그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 사람을
사랑하니까 만나고 싶고 같이 살고 싶은 것입니다. 성자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고자 하는 그 목적을 상
실하고 그 목적이 제대로 머릿속에 들어가 있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섭리역사 마지막 신부의 역사에 살
아도 희망이 없고 꿈이 없고 보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거에 눈이 많이 가는 거예요. 재미가 없다
는 거예요. 여러분, 사랑의 역사에서 사랑이 없으면 재미가 있어요? 없어요? 오락실에 오락을 하러 갔는
데 오락기가 없으면 재미가 있어요? 없어요? 오락실에 딱 들어갔는데 오락기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푸
른 초장이라는 거예요. 진짜 축구하라는 거야. 잔디를 깔아놓고 축구를 하라는 거야? 이게 무슨 오락실
이야? 축구장이지. 축구장에 갔는데요. 축구 잔디는 하나도 없고 오락기계로 하는 축구 밖에 없는 거예
요. 여러분, 어때요? 재미 하나도 없죠.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에서 사랑이 없으면 재미가 있어요? 재미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
자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고자 하는 그 목적이 없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
님의 사랑의 대상체, 성자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는 것, 그것을 목적으로 두었기 때문에 인생을 창조하시
고 천지도 창조하시고 구약 신약까지 역사를 끌어오시고 성약역사 1차 부활기, 2차 부활기 거쳐서 3차
부활기까지 오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요. 믿습니까? 선생님은 이 목적 때문에 그토록 말씀을 외
칩니다. 메시야? 나를 구원해 주는 자? 구원받으면 되지. 이게 아니라는 거예요. 나를 구원해 주는 자,
나를 창조해준 자를 최고 사랑해 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성자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휴거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변화를 시키는 겁니다. 휴거라는 목적을 이루는 과정 가운데
자기 변화도 목적으로 두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제가 정말 고비가 한 번 왓습니다. 제가 진짜 큰 고비가 왔어요. 일본 순회 전이었죠. 선생님께서 진짜
저를 정말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주셨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과연 이 자리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
을까?” 할 정도로 정말 심각한 상태가 왔어요. 왜냐하면요. 일만 하니까. 일만 하니까. 주님과 사랑으로
뛰어야 하는 건 아는데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과의 어떤 소소한 이야기도 하고 싶고 새
벽에 일어나서 기도도 많이 하고 싶기는 한데 몸이 너무 피곤한 거예요. 일이 너무 많아가지고. 섭리를
뛰는 사람도 그렇고,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그렇고. 학교다니는 사람도 그렇고. 시간에 매이니까 피곤한
거예요. 그러니까 기쁘게 하고 싶은데 안되는 거예요. 마음은 그렇게 디는데 몸이 힘들어 버리니까 건강
이 안 좋고 몸이 안 좋으니까 정신까지 막 너무 안 좋은 거예요. 그러니까 어때요? 이제 기쁘지 않은
거예요.
생명을 딱 만나도 ‘1시부터 3시부터 1차, 30분 쉬고, 잠깐 밥먹고, 밥먹을 때 잠깐 이야기해주고 끝나
면 바로 나와서 본당에 나와서 교육, 끝나도 12시다. 내일 또 시작인데 어떻게 하지?’ 계속 할 일이 머
리 앞에서 끝나지 않으니까요. 저는 내년 7월까지 스케줄이 다 나와 있거든요. 지금. 이게 끝도 없는 엄
청난 일, 기도를 더 많이 하고 싶고 찬양도 재미있게 하고 싶고 고백하면서, 진짜 하고 싶은데 안 되는
거예요. 몸이 힘드니까 천사처럼 안 날아가는 거예요. 심각한 상태가 오게 되는 거예요. 여기서 일에 딱
파묻힌 상태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기고 주변에서 좋지 않은 사람들만 힘든 사람들만 보게 되니까 더 힘
이 빠지는 거예요. 그런데 근본의 목적을 잊어버리는 거예요. 내가 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목적을 잊
어버린 거예요. 그냥 어떻게 생각했냐면요. 주님의 기대에 그냥 부응해 드리고 싶더라구요. 선생님 저렇
게 고생하시는데, 진짜 열심히 뛰어야 돼. 나중에 쉬어. 죽도록 뛰고 나중에 쉬어. 그렇게 살았던 거예
요. 나중에. 나중에. 무조건 뛰어. 쉴 때가 아니야. 쉴 때가 온다.
선생님이 계속 해서 코치를 해주셨어요. “과정 가운데 즐겨라. 과정 가운데 잠깐이라도 차 한잔 마시면
서 5분이라도 쉬고, 다 하면서 쉬려고 하지 말고 인생 다 하고 쉬는 날은 죽는 날이지.” 그런데 이게 안
되는 거예요. 파묻히니까. 여러분, 저처럼 섭리만 뛰지 않더라도 직장생활을 해도 가정생활만 해도 그렇
지 않습니까? 할 일이 많게 되면 의무와 책임감이 앞서게 되고 힘든 거예요. 설교도 “오늘 말씀 주제
정말 최고인데요? 오늘 정말 즐겁게 준비해야 되겠어요.” 하는데요. “말씀을 못 전하면 보고가 들어갈
것이고 내 설교로 인해서 성도들의 휴거는 좌우가 되며 너무 힘들다.” 이렇게 기쁘지 않은 상태에서 일
에 파묻히는 거죠. 생명은 만나야 되겠고 정말 너무 힘든 거죠. 이게 근본의 목적을 잊으니까 힘든 거예
요. 제가 진짜 심각한 상태가 왔어요. 그냥 계속 노동인 거예요. 하나님의 일이 주님의 일이 그 큰 사명
이 그 영광스러운 면류관이 노동이 되고 짐이 되는 겁니다. 일로 가는 섭리인생이 되었죠. 나는 아니라
고 하지만.
주님은 원치 않으셨어요. 선생님도 원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일속에 파
묻혀서 근본의 목적을 잊고 그리고 기쁨을 잊은 거예요. 왜? 육신이 너무 힘드니까요. 조절을 못 한 거
죠. 이 때 저는 한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근본의 목적. 일이 줄어든 것이 아닙니다. 일이 줄어들고, 잠잘
시간이 늘어나고 그게 아니예요. 그런데 저는요. 한 가지를 다시 생각했어요. 잊어버린 한 가지, 근본의
목적은 무엇일까? 나는 왜 섭리길을 뛰고 섭리길을 가고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담대하게 말씀을
외치고 싶고 선생님도 증거하고 싶은가? 정말 근본의 목적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섭리사는 최고의 힘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자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는
거예요. 이 땅에서 그렇게 수고한 만큼 주님 최우선으로 두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해주신 만큼 우리
에게 영원히 누릴 것을 주시는 겁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나는요. 주님. 안 주셔도 되요. 그냥 다
가지시구요. 제가 열심히 땅에서 뛸테니까요. 천국에서 제가 바라면 신부가 아니죠.” 여러분, 이런 사람
이 있어요? “너는 참 강팍하구나. 신부가 되었으면서 천국에서 또 받으려고 그래? 여기서 열심히 하면
서 받아라.” 주님이 그러시겠어요? “니가 다 수고하고 니가 다 받아. 니가 노력하고 니가 행하고 니가
수고한 만큼 니가 영광을 다 누려라. 니가 행한 것에 대한 영광은 나도 뺏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섭리역사예요. 최고, 그것도 영원히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자 주님을 사랑하며 살 수 있어요.
어떻게요? 신부의 입장으로요. 가장 사랑하는 입장에서 매일 볼 수 있습니다. 이땅에서요.
우리 섭리사에서 최고의 지도자는 선생님이시죠. 우리 섭리전체의 목회자가 아닙니까? 섭리 전체의 목
회자 뿐만 아니라 성자의 육으로서 이 세상 전체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때요? 여러분, 한 단체의 지도자라도 만나고 싶죠? 가까이 보면 좋죠. 한 학교에만 가도요. 총장님을
가까이서 보고 밥 한끼 먹으면 영광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당연하죠. 그런데요. 하나님과 성령님과 성
자 주님을 멀리서가 아니라 매일 가까이, 그것도 나를 사랑해 주면서 영원히 살게 하는 세계를 준다는
거예요.그 러니 어때요? 목적이 생겼죠. 그러면 이 땅에서 수고하게 된다는 겁니다. 변화의 목적을 두고
서 가는 거죠.
저는 왜 섭리길을 가냐면요. 목적이 하나였어요. 성자 주님을 영원히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거든요. 아
니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떨어져서 가끔씩 한번씩 보면 그것이 고통 아니겠습니까? 진짜 매일 보고 싶
은 거예요. 이 땅에서는 육체로 못 봤으니까 영체로 매일 보고 싶은 거예요. 그것도 그냥 “왔니?” 가 아
니라 “왔니?”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주면서 이렇게 하는 세계에서 살고 싶습니다. 그 근본의 목적이 없
으면 섭리사에서 사는 보람은 없다는 거예요. 맞습니까? 주님의 최고의 사랑을 받고 주님의 신부가 되
기 위해서 섭리역사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근본의 목적이 없으면 ‘뭐 이렇게까지 살아야 되나?’ 생
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서울대학교가 그렇게 가고 싶지 않으면 뭘 그렇게까지 공부를 하겠습니까? 그냥 적당히 공부해서 서울
대 만큼은 공부 안해도 되잖아요. 다리를 여기까지만 찢는 것에 만족하면 뭐 그렇게까지 다리를 찢겠습
니까? 그냥 여기까지만 찢으면서 살면 되죠. 여러분, 목적에 따라서 사람은 힘을 쓰게 됩니다. 힘을 쓰
게 되요.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말이예요. 에너지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의욕이 넘친다는 말입니다. 의욕
이 넘치고, 힘이 넘치고 그 에너지가 막 와요. 그 목적대로, 그걸 이루어야 되기 때문에. 저는 이 근본의
목적을 다시 찾으면서 싹 바뀌었어요. “오. 이렇게 사는 목적이 있지. 나는 고생해도 돼. 이걸 누가 고생
이라고 그래? 난 고생이 아닌데. 고생이라고 하는 사람들 다 그냥 그 입을? 나쁜 생각하면 안돼. 그 입
을 못하게 해야지.” 이렇게 해야죠.
그 입은 못 막으니까 내가 행실을 더욱 더 변화시켜야 되겠죠. 고통스러워? 누가 이렇게 가는 게 고통
스럽다고 그래? 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내 변화의 즐거움이지. 진짜 즐겁게 섭리를 뛰는 거야. 어떻게
요? 이렇게 역기를 드는 사람처럼. 누가 이렇게 역기를 드는 사람을 보고 고통스럽다고 할 수 있는가?
참 아름답다. 진짜 아름답다. 저 떨림과 저 핏줄의 튀어나옴이 참 아름답구나.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뛰
면서 때로는 힘들 때는 힘을 주어야 되겠지만 그렇게 뛰어도 “변화됨에 참 아름답구나.” 하는 소리를
들으며 뛰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순리로 해야 힘들지가 않습니다. 가장 큰 순리는 뭔
지 아십니까? 사랑이예요. 왜 그렇게 사랑, 사랑하는지를 알아야 해요. 사랑은 순리예요. 억지가 아니고
무력이 아니예요.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으로 역사하세요. 가장 순리로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면
요. 다 억지가 아니고 무력이 되고 강요가 됩니다.
사랑은 순리예요. 순리로 모든 것이 풀어지게 됩니다. 가장 큰 순리는 사랑, 순리는 기쁨입니다. 순리대
로 하는 거예요. 오늘 찬양 어떤 찬양 불렀죠? 주님 따라 가는 사람, 잡을 수 있나요? 넘어가는 저 태양
을 멈출 수 있나요? 못 해요. 넘어가는 저 태양을 멈출 수 있나요? 넘어가는 저 태양을 누가 멈출 수
있나요? 누가 해를 들어요? 가다가 다 타죽죠. 넘어가는 저 태양을 왜 멈출 수 없는지 아십니까? 순리
이기 때문입니다. 순리예요. 순리는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순리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순
리로 세상을 흘러가게 하세요. 우리 인생도 변화되는 것은 순리입니다. 그러나 역리로 하면 막을 수가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태양을 만들면 막을 수가 있죠.
기쁨으로 하지 못하고 억지로 하면 막을 수가 있습니다. 주님 따라 가는 사람 막을 수 있나요? 물어봐
야 되요. 넘어가는 저 태양이 그걸 막을 수 없듯이, 순리로 하는 자를 막을 수 있느냐? 그거 못 막죠.
억지로 하는 자는 막을 수 있다. 주님 따라 가도. 여러분, 기쁨과 희망과 사랑으로 성자의 말씀을 지키
며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요. 순리라서 못 막습니다. 좋은데 누가 막을 수가 있습니까? 사랑은 최고
의 순리입니다. 그래서 성자의 사랑을 목적으로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왜? 순리이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어요. 목적, 성자 주님과 영원히 같이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면서요. 왜요? 믿고 사니까. 오늘은 믿고
살고 내일은 “안녕.” 하는 게 아니라 믿고 살고 영원히 같이 사는 거죠.
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납니까? 평생 같이 있고 싶으니까. 그 꿈을 잊으면 “저 사람이랑 평생 같이 살
고 싶어.” 그런 생각이 없으면 그냥 인스턴트 만남이예요. 그냥 만났다 헤어지고 살고 싶지 않기 때문
에. 성자 주님과도 마찬가지예요. 뭐 그거 끝까지 살아야 하나? 그러면 여기서도 만났다 헤어지고, 만났
다 헤어지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같이 사는 순리, 그 사랑이 되어야만 영원히 같이 살고 싶습니
다. 믿습니까?
여러분들은 목적만 없애는 삶을 살면 안 되겠습니다. “휴거, 100선을 없애버려야 해.” 이러지 마시고
기도도, 찬양도, 말씀을 듣는 것, 전도하는 것, 관리하는 것, 말씀을 배우는 것, 그리고 설교를 준비하는
것 다 자기의 맡은 것 모두 다 끝내버리자. 오늘 끝내버리자. 아멘? 안 되요. “끝내버려야지. 끝내고 쉬
겠어.” 이러지 마시라고 말씀하는 겁니다. “다 끝내버려. 그리고 내일 하루 종일 쉬겠어.” 하지 말라는
거예요. 휴거 이루어 놓고 쉰다는 말은 하지도 마시고, 끝내버리기 식의 목적은 안 되요. 여러분, “30개
론 다 해치워 버린다. 다 들어 버리겠어.” 그러지 마시고 기쁨으로 한 마디를 들어도 “아멘. 아멘.” 그런
훈련을 자꾸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변화의 목적이 끝나면 또 다른 목적을 만드는 것입니다. “어, 오늘
여기까지 됐어. 다음 또 도전하는 거야.”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맡겼는데 또 맡기라고? 또 행하라고? 도대체 회개는 언제까지 하라는 소리야? 내가 10년
전에도 하고, 7년 전에도 하고, 5년 전에도 하고, 성찬식 생겨 가지고 다시 하고, 그리고 성찬식 해서
다시 했는데 휴거 분체 알고 회개하라고 또 했네. 언제까지 도대체 회개를 계속 하라는 소리야? 도대
체?” 여러분, 이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언제까지 하라고? 정말 끝이 없네. 언제까지 변화되라는 거야?
여러분, 끝까지요. 변화될 수 있는 만큼이요. 변화될 수 있는 만큼 더 좋게 변화되도록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계십니다. 이런 사람들은 목적을 상실한 사람으로서 기쁨과 희망이 없습니다. 고로 전진
할 수 없고 도전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목적을 이루면 다음의 목적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권태가 오지 않습니다. 목적을 상
실하면 못 삽니다. 여러분은 일을 하라고 섭리사에 데려 온 게 아니예요. 성약성 차지하라구요. 천국에
서도 성약성 차지하라고 여기 섭리사에 데려 왔습니다. 어린 아이를 아주 고급 레스토랑에 갖다놓고 놀
게 하잖아요. 그러면 싫어해요. 맥도날드보다 싫어해요. 맥도날드에 요즘에 아기들 노는 거 있잖아요. 고
급 레스토랑에는 그게 없지 않습니까? 자기 수준이 안 되면 수준이 높을 것을 줘도 누리지 못하고 즐기
지 못 합니다. 왜 여러분들 보고 자꾸 변화되라고 하냐면 여러분들이 변화되지 못 하고 낮은 차원에 있
으면, 주님이 좋은 것을 주셔도 좋은 천국을 줘도 누리지를 못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천국에는 절대 급이 있습니다. 급이 있기 때문에 말씀의 급수도 있는 겁니다. 어떤 말씀을 듣
고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따라서 여러분의 영혼이 달리 형성이 됩니다. 맞습니까? 천국에 급이 있어요.
변두리 같은 천국이 있습니다. 성자 주님의 핵심 그곳을 벗어난 좀 더 멀리 떨어진 천국이 있습니다. 세
상에서도 천국을 구경하고 겪고 온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죠. 어때요? 어떤 사람은 이야기 합니다. “하나
님의 보좌가 작게 이만하더라.” 어때요? 그만큼 떨어진 데서 본 사람이예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보
좌가 지구만 하다. 안 보였어. 기둥 하나 밖에 안 보이던데. 그것도 안 보이던데.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몰라서 주님께 물어보니 하나님의 보좌 앞이다. 그런데 나는 그 보좌가 아니라 그냥 황량하게 아무 것
도 안 보였어.” 왜요? 제일 가까이 본 겁니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서 크게 보이고, 작게 보이고.
천층 만층, 성약성까지 못 가본 사람은 그 밑에 단계만 있다고 합니다. 맞습니까? 수준이 있는 것입니
다.섭리역사는 마지막 역사로서 성자의 신부가 되어서 성자를 신랑으로 삼고 사는 세계입니다. 고로 성
자의 몸이 되는 자 역시 신부의 조건을 세웠고 말씀도 역시 신부의 말씀을 받아왔습니다. 성자 주님은
우리를 구원할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존재입니다. 그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선생님 지금
까지 몸부림을 치셨습니다. 이거 하나의 역사를 위해서 지금까지 달려 오셨습니다. 이 목적을 이루지 못
하면 재미가 없어서 같이 못 삽니다. 그래서 여러분 얼굴에 기쁨이 차고 넘치고, 찬양할 때도 남자들인
데요. 막 기쁘게 찬양하잖아요. 세상에서는 “남자가 저래?” 이렇잖아요. 좋으면 웃는 거죠. 그렇죠? 아기
같이. 나이가 70이 먹어도 좋으면 아기같이 웃는 거죠. 나이가 60이 먹어도 자기가 좋으면 아기같은 얼
굴이 나오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구분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게 못 사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핵심, 사랑은 핵심입니다. 여러분의 육신이
성자 주님과 사랑이 없이 살았는데 어떻게 영이 사랑이 있게 살겠습니까? 육체, 혼체, 영체는 이어져있
죠? 마치 과일나무, 나뭇가지, 열매가 이어져 있듯이. 과일나무를 퇴비하면 열매까지 이어지듯이. 과일나
무는 육신, 나뭇가지는 혼체, 열매는 영체와 같습니다. 여러분의 육신의 행실이 다 혼체로 연결되고 영
체로 연결이 됩니다. 육이 사랑해야 영도 사랑합니다. 육이 그렇게 살지 못하면 영도 그렇게 못 삽니다.
내가 기쁘지 않아요. 영이 웃고 있을까요? 아니요. 100% 울고 있죠. 여러분, 목적을 상실하면 안 되겠
습니다. 휴거의 목적을 두되 성자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두고 “사랑의 대상체가 되야
지. 기도해야지. 말씀들어야지.” 하지 말고 “변화되어야지. 오늘보다 더 좋은 삶을 살아야지. 그래서 즐
거워야지.”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근본의 목적을 두고 작은 목적을 또 세우면서 목적을 계속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자 주님께
서 말씀하시기를 “인생아. 너는 왜 얻고도 왜 보람을 누리지 못 하느냐.” 섭리역사 부활과 휴거의 역사,
독립의 역사, 무덤기간을 벗어났고 휴거의 비밀은 다 밝혀지고 주님은 진행중이라 하시면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셔도 왜 보람을 느끼지 못 하는가? 기쁨이 없는가? 왜 일에만
파묻혀서 그것만 해결하려고 하고, 주일예배를 나와도 즐거움이 없구요. 말씀을 전해도 감동이 없고, 이
말씀을 전해서 저 사람을 즐겁게 해줘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없이 그냥 해치우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고 주님은 말씀하시며 지적하셨습니다. 여러분, 보람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최종 목적을 이룰 때까지 계속해서 목적을 세우면서 가는 것입니다. “이거 하고 쉬어야겠다.” 하지 마
시고 쉬면서, 일하면서, 사랑하면서 그렇게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곤고한 이유가 있어요. 곤고한 이유.
곤고하다는 것은 무엇을 얻지 못 했기 때문에 곤고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왜 곤고하냐면요. 무엇을
얻었어도 그것을 지속하지 못 할 때 곤고한 거예요. 맞습니까? 기쁨을 누렸어도 기쁨을 지속하지 못 할
때는 곤고한 것입니다. 섭리사에서 오면 인생길이 해결되고 곤고함이 없어진다고 했거든요. 그런데도 곤
고할 때가 있어요. 왜 그럴까? 지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잊고 살기 때문에. 순간 순간 즐겁지 못
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곤고한 것입니다. 지속입니다. 지속.
여기서 못 했다고 해서 다음 목적지까지 그 목적을 상실하면 인생 못 삽니다. 혹은 여기서 잘 했다고
해서 다음 목적을 세우지 못 하면 인생 기쁨과 희망이 없습니다. 잘 했든 못 했든 현재 못 하든 현재
잘 하든 현재 고달프든 현재 잘 하든 계속 목적입니다. 그래야 도전할 수 있고, 희망을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변화가 없으면 권태가 생깁니다. 왜요? 인생은 물질체니까요. 변하니까요.
자꾸 썩어지고 늙어집니다. 아름다움은 자꾸 사라지고 자꾸 몸은 힘에 부치구요. 자꾸만 권태가 옵니다.
변해요. 변화무쌍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 예쁜 여자와 살면 평생 즐겁겠
다.” 그렇다면 예쁜 여자는 구원자가 될 것입니다. 왜요? 인생들을 곤고하지 않게 만들어 주거든요. 저
여자랑만 같이 있으면 곤고하지 않다면서? 그러면 어때요?
그러면 그랑 결혼하는 남자는 구원받겠죠. 인생의 삶을 구원을 받지 않겠습니까? 왜? 곤고함이 없으니
까요. 아닙니다. 지구 세상을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하더라두요. 같이 살면서 변화되지 않고
매일 거기 있으면서 거기 있으면 지겨워요. 아무리 예뻐도 지겨워요. 여러분, 이해 안 되죠? 저렇게 예
쁜 여자랑 이혼을 했다구? 미쳤구먼. 미친 게 아니라 속을 봐야지 안다는 거예요. 알겠습니까? 아무리
예쁜 옷을 샀어요. 와. 이 옷은 정말 멋있네. 예쁘네. 몇 년만 입으면 권태가 옵니다. 매일 입어보세요.
권태가 옵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옷을 제가 입었어요. 그런데 그걸 매일 입고 나탄다고 생각해 보세
요. 제가 만일 그걸 매일 입고 나타난다고 생각해 보세요. “목사님. 옷 없어요? 좀 다른 걸 입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아무리 좋아도 아무리 좋아도 오래 되면 권태가 옵니다. 변화를 일으켜야 됩니다. 인간은 물질
체, 가다가 변합니다. 그러니까 차원을 높여야 되요. 날마다 새롭게 차원을 높이지 못 하면 그렇게도 지
겹고 힘이 없고 권태가 오기 시작하면 사람이 힘이 없어요. 인생이 무기력해집니다. 힘이 딱 안 나요.
왜 권태가 오겠습니까? 목적이 없으니까요. 변화되지 않으니까요. 목적이 없으니 변화가 필요없고, 변화
가 안 되니 기쁨도 없고 희망도 없구요. 여러분, 그래서 자기 변화를 목적으로 삼아야 권태가 없다는 것
입니다. 인생 곤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되도 거기서 멈추면 안 되고 안 되도 포기하면 안
되겠습니다.
과일나무 중에서도 충실한 열매를 보고 농사를 짓는다고 했어요. 그 충실한 열매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 자기 스스로 여러분은 떨어지는 열매가 되려고 합니까?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시는
데요. 그 선까지만 온다구요? 아니요. 선생님 저한테도 매일 그러시는데요. “너 차원 더 높여. 차원 더
높여.” "어, 선생님 또 편지왔어. 나한테 또 차원을 높이래. 피곤해.” 이러겠어요? 그러면 선생님이 편지
가 왔어요. “그러면 너 거기 그만 해라. 거기서 딱 그만 둬. 다른 차원은 다른 사람이 넘어가게 해.” 그
러면 나는 밤새도록 울 거 같아요. “내가 이러려고 섭리사에 온 건 아닌데. 말이지.” 어때요? 계속 변화
되라고 하는 것은 축복이지 않습니까? 계속 차원을 높이면서 권태없이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간만
계속 따지면 견딜 수가 없어요. 지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 날은 언제 올까? 좋은 날이 올거야.” 계속 생각만 하죠.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 마지막 말씀입니다.
벗어나야 합니다. 현재 차원에서 자꾸 벗어나야 합니다. 본인이 어떤 삶을 살고 있던지 벗어나야 합니
다. “나는 지구상에서 최고 삶을 살고 있지.” 그래도 벗어나야 합니다. 거기 계속 있다가는 권태가 옵니
다. 희망이 없어요. 계속해서 벗어나는 자에게 잡히고 맙니다. 벗어나는 것입니다. 계속요. 벗어나는 데
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첫째, 그 환경을 떠나는 것입니다. 둘째, 자기가 그 안에서 발전시키면서 성
장하면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매일 권태가 온다고 해서 환경만 바꾸겠습니까? 그러면요. 온 세계를 다 누비면서 다녀도 그는 늘 권
태를 맞게 됩니다.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자기를요. 자기의 차원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일
똑같은 것을 봐도 다르게 보입니다. 내 수준에 따라서 다르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혹여나 매일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이 다르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왜? 내 수준을 높였기 때문에. 믿습니까? 자기를
바꾸는 것입니다. 이 몸이 기쁨과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자, 새 사람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바로 자기
자신이 새로운 행실과 새로운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나는 죽어도 안 되잖아요. “나는 죽어도 안 돼. 옛
삶을 나는 벗어날 수 없어.” 그러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방법은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 그래도 못 하면 새 사람을 다시 뽑아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하나님도 두 가지 방법이예요. 그 사람을 바꾸어서 거기서 벗어나게 하는 것, 둘째 새로 교체하는 것입
니다. “나는 잊어버리겠어. 잠이나 자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벗어나는 것은 자기가 할
일을 하면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새벽 4시, 5시에 일어나는 것을 죽어도 못 하겠다.” 그러면 죽어
도 하는 사람에게 영광받으시면 됩니다. 자기는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갇혀 있는 것이죠. 교회도 마
찬가지입니다. 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역자들이 계속 연구하고 변화되면서 현재 차원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설교도 이번 설교 말씀도 다르고 말씀이 내용도 다르지만 본인도 더 노력하면서 변화되지 않
으면 무려해요. 권태가 온다는 것입니다.
교인들과 사이에 권태가 오면 기쁨이 없어져요. “또 왔네. 또 소리지르다가 끝나겠지. 책읽다 마다 하
다가 끝나겠지. 감동이 없네.” 권태가 계속 오게 되겠죠. 어때요? 본인이 연구하면서 날마다 차원을 벗
어나는 거예요. 그러면서 벗어나야지만 새로운 차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벗어나지 못하
면 교역자를 교체해서 그 교회를 그 차원에서 벗어나게 하십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여러분, 어떤 방법
에서 벗어나시겠어요? 주님은 택하셨어요. 사랑으로. 신부가 되어서 벗어나서 살라고. 목적을 이루면서
기쁘게 살라고. 내가 못 하면 내가 그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벗어난 삶을 살
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떨어지는 그 나무 열매가 되지 마시고 충실한 열매가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지금 열매가 작더라도 혹은 꽃이라서 부족하더라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희망하면서 하나
하나 행해보면서 부족하지만 즐기면서 과정 중에 그 목적을 놓지 않으면서 그렇게 끝까지 섭리길을 가
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웃으면서 살겠습니까? 섭리사에 웃음이 부족한 이유는 밝은 미소 평화의 미
소 웃음을 주는 연습을 안 해서 그런 게 아니라, 마음이 즐겁지 않아서. 오늘 이 성령집회 이 성령의 역
사를 통해서 여러분들의 마음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행함, 여러분의 모든
행함 하나 하나가 정말 즐거워서 “뭐 그렇게 즐거워?” 정말 궁금할 정도가 되어서요.
그렇게 여러분의 모습을 나타내면서 주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여러분, 꼭 약속하
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서 휴거를 이루고 성자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는 것을 목적을 두고 사는 것입니
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길 원합니다. 성자 주님은 새로운 사람으로 교체하기 보
다 여러분들이 행하면서 여러분의 단계에서 여러분이 스스로 발전하고 변화되는 것을 원하십니다. 여러
분, 기대하시겠어요? 내일 즐거움을 위해서 자기가 조금씩 고통스러운 때마다 역기드는 남자를 생각해
보세요. 그 남자는 알통이 멋있게 나왔고 그 여자는 멋있는 몸을 가지고 있어서 즐겁게 운동하듯이 우
리도 즐겁게 섭리사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목적을 가지고 도전하면서 오는 고통은 고통이 아니다. 목적이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인생은 고통이다.
여러분에게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데 있어서 절대 고통이 되지 않을 것임을 믿
습니다. 여러분, 기쁨을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오늘 말씀했죠. 내 마음에는 사랑이 넘쳐. 이 넘치
는 것을 좀 찾게 해달라고 이 보화가 묻혀 있는데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자, 여러분
잊으면 안 되요. 2013년 뿐만 아니라 섭리 길을 가는데 있어서 오늘 한 말씀 절대 잊으면 안 되겠습니
다. 기쁘고 즐거워서 “넌 뭐 그렇게 즐겁니?” “부족하지만 내일은 고칠 수 있거든요.” 지금은 진행중인
때니까요. 절대 한 사람도 어느 위치에서 포기하지 마시구요. 힘을 최대한 받아서 능력있게 뛸 수 있도
록 나머지는 그냥 주님께 맡기세요. “내가 주님 이렇게나 뛰었는데 주님 이렇게 밖에 안 주실 거예요?”
하는 일은 없습니다.
아시겠죠? 그것은 주님께 맡기시고, 여러분은 현재 상태에서 어떤 것에 포기도 없이 타협도 없이 최고
점을 찍을 수 있도록 기쁘게 즐기면서 섭리인생 가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뜻피는 섭리사에’
찬양하겠습니다. 여러분, 이 찬양이 참 아름다워요. 지상에 천국문이 열리었도다. 택한 자 모두 와서 혼
인잔치를 펼치네. 돌아와요. 섭리사에. 그리운 나의 형제들이여. 그리고 하늘 땅이 하나되어 여러분 보세
요. 하늘과 땅이 하나되어서 혼인잔치를 펼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 하나님이 이 땅에 강림하셔서 정
녕코 이루시는 역사, 여러분 힘든 거 생각하지 마시구요. 좋은 것, 열매를 열 수 있는 것, 가능한 것 그
것을 찾아내면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께서는 어떤 감동과 감화를 크게 줄
거냐면요. 기쁘게 섭리인생 가야 된다는 것을 정말 깨닫게 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환경, 어떤
입장,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정말 즐겁고 행복하시기를 주님은 정말 원하시고, 여러분들은 그렇게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뜻피는 섭리사에’ 찬양
마침기도)
사랑하는 주님.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 굳어진 뇌들을 다 풀어야 됩니다. 뇌가 굳어져 있으니까
기쁨으로 굳어져 있으면 기쁨을 주셔도 기쁨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보람의 역사를 주셔도 그 보람의
역사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최고의 순리라고 하셨는데요. 사랑에 굳어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
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그 감각이 무뎌진 자들 그리고 그 감각을 살리지 못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깨워주시죠. 말씀으로 깨워주시며 성령의 감동으로 깨워주시며 그 감각
을 살려 주십니다.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이 없죠. 사랑도 변화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데서 주님을 더 사랑하는
데로 변화가 되고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데서 사랑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귀한 시간을 통해서 변화의 목적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왜 안 되는가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의 목적을 두고서 내일을 향해 미래를 향해 더 좋게 변화되는 그곳을 향해 달려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
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섭리사 지금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정말 큰 역사 부활과 독립의 역사를 맞이했구요. 이제는
무덤 기간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한계점이 온 전가 있고 또한 전환이 필요한 자들이
있습니다. 희망과 기쁨은 알지만, 그 희망과 기쁨의 뇌가 굳어진 자가 있습니다. 지금 이 때에 휴거를
이루어야 하는 때에 성자의 사랑의 대상체가 되며 진정 기쁘게 살아야 하는 이 때에 섭리사는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주님. 무엇으로 전환을 해주시겠습니까. 역시 말씀으로 그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시며, 그 말
씀이 우리 머릿 속에 인이 되어 박히게 하시사 주님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 하
나의 한계점 여기까지 왔사오니 여기서 또 하나의 세상을 넘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면 또 하나의
세상이 보이며 더 높은 차원이 보이며, 권태가 없어지며, 성장하고, 발전함으로 인해서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볼 줄로 믿사옵나이다.
기쁨이 없는 자들 기쁨이 있게 변화되게 하시리라 믿사오며, 기쁨이 충만한 자들은 더 좋은 기쁨을 누
릴 수 있도록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육신이 약한 자, 육신이 건강치 못한 자, 변화됨으로 건강케
하여 주시옵시며, 영이 온전치 못한 자, 변화되게 역사하여 주시옵시며, 마음의 질이 온전치 못한 자, 마
음의 질이 온전케 변화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너무나 귀한 때 정말 귀한 때 귀한 것을 알아도 마음
이 굳어 있으니까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주님. 이 기쁨부터 찾아야 되겠습니다.
사람이 밥을 먹으려면 음식을 가지고 뿅 하고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 하나 재료를 다듬고, 볶고,
양념을 하면서 만들어서 먹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 다
듬어지고, 깎고, 만들면서 그러면서 우리를 잘 만들어 그것으로 누리는 것이 아니겠사옵나이까. 주님. 근
본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엇이 기쁨이고, 행복인지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얻는 것만이 기쁨이고
행복이 아니라, 변화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예전에는 이런 모습이었지만 전혀 상상치 못하는 자기
의 모습들을 조금씩 발견하며 변화되는 모습을 볼 때, 그것으로 희망을 느끼며, 그것으로 가능성을 찾게
되어 더 높은 단계로 도전할 수 있지 않겠사옵나이까.
주님. 희망과 기쁨 목적은 행하지 못하는 것을 행하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또한 힘을 쓰게 되며, 능
력을 발하게 되며, 또한 힘을 발하게 되지 않습니까. 어느 상항에서도 포기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님. 나머지는 주께 맡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내가 이만큼 행하였사오니 주님 알아서 해주시옵소서.
그러나 성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셨사오니 최고의 높은 그 목적을 두고 살아가겠다는 목적으로 두고
살아가겠다는 그 결심이 어느 누구에게도 사라지지 않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사랑의 대상체로 불러 왔사오니 사랑을 깨닫기까지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시며 사랑을 깨달은 자
는 더 높은 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말씀을 배우는 자나 지금 섭리사에
와서 사는 자들이나 지금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또 한 번의 변화, 바로 성장, 도전, 한계를 넘는 것, 다
음 단계로 가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서 너무나 필요합니다. 섭리사 어떤 환경을 벗어나서 온 삶이 아닙
니다. 그 환경에서 만들고, 그 환경에서 더 좋게 발전시키면서 지금 여기까지 오지 않았사옵나이까. 지
금 이 한계를 또 한 번 넘게 하여 새로운 세계를 보게 하여 주시옵시며, 다음 차원으로 전진하는 섭리
역사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때를 절대 놓치지 않게 인도하여 주시옵시고, 성자께서 진행해 주시는 역사에서 정말 강력하게 성령
과 함께 역사해 주시오니 이 기회를 모든 자들이 거머쥐고 행하는 역사가 충만하게 해주시옵소서. 사랑
하는 선생님에게도 변화가 한 번 더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주님. 그에게 마음의 변화를 주심을 감사드리
고 진정 시대의 귀한 말씀을 주시고 행함으로 나타나게 해주심을 진실로 감사드옵나이다. 우리의 변화
를 통해 그도 변화의 기쁨을 맛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의 삶 자체는 그 곳을 벗어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 하나 만들고 성장시키고 차원을 높
이며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았사옵나이까. 주님. 그와 같이 우리도 벗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진정으로
주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오며 모든 자들이 오늘 변화의 목적이라는 말씀, 그 말씀의 주인공이 되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그리고 행복 그리고 희망 그리고 뜨거운 성령이 오늘 말
씀을듣고 결심하는 모든 자들에게 충만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변화되며 전환되는 섭리역사
에 우리를 보시고 기뻐하여 주시옵시며 주께서 더 크게 역사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께 감사와 영광
을 돌립니다. 사랑하는 성자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네. 주님께 감사의 박수 보내 드리겠습니다. 광고 하고 싶지 않지만 두 가지 광고하고 마치겠습니다.
영상 요즘에 주일말씀 주요말씀을 영상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영상제작자가 많이 필요한 상황입니
다. 여러분들, 공문으로 다 교회에 내보냈는데요. 우리 교역자들은 한번 더 신경써서 주일날 한번 더 광
고를 할 수 있도록 해주시구요. 영상제작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 또 영상을 이렇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구상이 있고 생각이 있으신 분들은요. 배우면서 하면 되니까요. 어떤 기술이 있어도 되고 부족해도 되니
까요. 지원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화번호나 이런 것들은 주일날 다시 한번 광고를 해주시고 영
상제작자 너무나 필요하고 설교자랑 똑같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외치는 설교자, 영상으로 설교하고 싶은
분들은 뜻이 있으신 분들은 지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지 마시고 지
금 결심하시고 뜻이 있으신 분들은 꼭 지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설교자 교육이 있습니다. 7월 16일 모든 교역자들은 각 지역별로 한 교회에 모이셔서 꼭 설교
교육에 참여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모든 설교에 대한 그 말씀은 제가 금요성령집회 때 전해야 되는데요.
여기는 설교자만 있는 게 아니라 여기는 말씀을 듣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말씀을 왠만하면 하지 않습
니다.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들, 설교자에 대한 지침,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설교교육은
꼭 받아야 되고 심각하게 들어야 할 말씀이니까요. 7월 16일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설교교육에 우리 교
역자들은 꼭 참여해야 됩니다.
자, 여러분 지금은 전환의 때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전환하는 게 조금 힘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변
화의 목적을 가지시고 여러분들의 얼굴만 봐도 행복이 넘쳐 났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너무 안 되어
보이세요. “거기서 미소만 딱 머금으면 이 세상의 최고 아름다운 사람이 될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
니다. 섭리는 고통스러운 곳이 아닙니다. 힘든 곳이 아닙니다. 기쁨과 행복이 폭포수처럼 철철철 넘치는
곳이니까요. 여러분들이 그 삶을 꼭 사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마지막 끝내기 아쉬우니까요. 여러분, 잘 돌아가시면서 음악으로 끝내겠습니다. 오늘 부른 노래를 부르
고 싶었지만요. 다 모르니까. 여러분, 순리로 꼭 행하시기 바라겠습니달. 잘 끝나서 이을께요. 지상에 천
국문이 열리었도다. 여러분, 뇌는 참 단순해요. 그리고 흡수력이 강합니다. 왜요? 예리하거든요. 나는 절
대 그런 사람이 아니어서 그렇게 못 할 거 같고, 빨리 전환이 안 되잖아요. 어떻게 하냐면 계속 입력을
시키는 겁니다. 입력을 계속 시키는 거예요.
주님의 말씀을 머릿속에 계속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여덟 번, 계속
여러분의 생각이 변화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처음에는 원이 작았는데 점점 원이 커지면서 내 머릿속
에 있는 생각들을 몰아내면서 주님의 생각으로 꽉 차게 됩니다. 이 예리한 뇌, 흡수를 굉장히 잘 하고
영향을 굉장히 잘 받습니다. 날씨 영향, 친구 영향, 학교 영향, 보는 것 듣는 것에 대한 영향, 성자 주님
의 영향, 성령님의 영향을 충만하게 받고 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의 이 찬양 저는 너무 좋아요. 왜
냐하면 이 가사가 좋습니다. 이 가사, 처음에는 이렇게 살지 못 했지만 참 신기해요. 주님께서 계속 말
씀해 주셔서 저의 머릿속에 이 뇌에 입력을 시켜 주시니까요.
이 찬양이 정말 신앙간증이 되어서 그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나오는 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
하나 변화를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예리하고 흡수력이 강한 이 뇌에 주님의 말씀을 매일 매
일 넣으시구요. 말씀이 힘들 때는 찬양을 한번 불러 보세요. 찬양을 부르면서 ‘이 말씀대로 정말 살고
싶어라. 이 말씀대로 정말 살고 싶어라.’ 시인처럼 읊으면서 기쁘게 행복하게 인생 살아가시기를 진실로
기도드리겠습니다. 지상에 천국문이 열리었도다. 육신도 지상천국, 마음도 마음천국, 영은 천상천국, 세
가지를 다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뜻피는 섭리사에’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