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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말씀2013.07.28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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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28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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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와 심판은 동시에 일어난다 때를 깨달아라 작성일 : 2013. 5. 30(목) 오전 12시 작성자 : 장정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보면서 심판이 진 행되고 있음을 점점 확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섭 게 진행되는 한편, 너무나 은밀하게 일어나고 있기에 이를 느끼는 이들이 적음 또한 너무 안타까워 주님 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눈물로 기도할 때 주신 말씀 입니다.) * 성자 주님의 말씀 * 휴거가 진행 중이라 함은 다른 말로 심판이 진행 중이라 함이다. 지금 섭리사 안팎으로 날선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어떤 곳은 심판을 앞두고 선과 악을 쪼개고 있으며, 어떤 곳은 이미 쪼개진 악을 멸하는 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이 시대 심판이 무엇이냐? 삼위의 육신이 살아 있는 이 때 가장 큰 축복은 휴거요, 가장 큰 심판은 바로 휴거되지 못함이다. 개인, 가정, 교회, 민족 단위로 일어나는 이 심판과 축복의 세계가 너희 목전에서 매일같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아라. 비밀 된 세계이기에 드러내어 말하지는 못하나 너무 무지하여 자신이 심판을 받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자들이 많아 타는 심정으로 이 말을 전하니 진정 내 말을 듣고 마지막으로 깨달을 자는 깨닫고 심판의 땅에서 회개함으로 급히 뛰어나와 심판을 면하여라. 지금은 니느웨 사람이 되느냐, 소돔과 고모라 사람이 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세상도 그러하며 섭리사 역시 그러하다. 보낸 자의 입을 통해 마지막으로 외치고 있는 생명의 말씀을 들음으로 회개하고 돌이켜라. 지금껏 너희의 행함이 심판을 부르는 행함이었으나 이 마지막 순간 보낸 자를 통해 전하는 나의 말을 듣고 깨닫고 돌이켜 회개한다면 너희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것이니 보낸 자의 부르짖음을 듣고 깨달음으로 너희는 심정의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라. 너희가 섭리사에 와서 선생을 믿고 따라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왜, 무엇으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되는 줄 아느냐. 깨어나라는 말씀을 듣고도 깨어나지 못함 때문이요, 성령을 받고 변화되라는 말씀을 듣고도 변화되지 못함 때문이요, 말씀을 듣고 행하라 했으나 행하지 못함 때문이니 바로 말씀을 이루지 못한 것이 심판에 속하는 죄이니라. 결국 깨어나지도 변화되지도 행하지도 못했기에 서슬 퍼런 심판의 칼날에 의해 심판을 당하는 것이며, 또한 이미 죽어 무감각한 자가 되어 있기로 심판을 당하여도 당한 줄을 모름이라. 이는 세상과 다를 바가 없음이니 저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도 그것이 심판인 줄 모르는 것과 같음이라. 지금은 말씀으로 불을 받고 성령을 받아 행하지 못하면 휴거되지 못하는 때이다. 그러나 진리와 성령의 불을 받지 못해도 아무 아쉬움과 곤고함 없이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마치 세상이 육적 쾌락과 즐거움 속에 살면서도 영혼의 곤고함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느냐. 섭리는 휴거의 때를 맞아 진리와 성령의 불로 하늘과 땅이 분주히 움직이며 날마다 휴거의 영이 탄생되고 있는데 이와는 무관하게 살면서 아직도 변화되지 못한 수준에서 서로 간의 심정 싸움으로 힘을 빼고 있는 자들이 있으니 어찌 휴거에 합당한 삶을 사는 자라 할 수 있겠느냐. 100층 건물 꼭대기에 올라와야 휴거될 수 있는데 아직도 한참 아래층에서 서로 밟고 밝히며 싸우고 있으니 어찌 휴거를 바라보는 자들이라 할 수 있겠느냐. 입으로는 휴거를 말하나 그들의 삶은 휴거의 삶과 진정 거리가 멀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전하는 이유는 그래도 내 사랑하는 자들이기에, 그래도 내가 휴거를 위해 이끌어 왔던 자들이기에 지금이라도 휴거의 핵심을 정확히 알고 오직 이것에만 집중하라고, 그렇게만 한다면 꼭대기로 끌어 올려 휴거될 수 있게 하려고 애타게 전하는 말임을 알아라. 심판이 무엇이냐? 삼위의 품을 떠난 것 자체가 심판이다. 사람은 사탄의 것 아니면 하나님의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삼위를 떠났으니 바로 사탄의 품에 안긴 것이다. 그것 자체가 심판이니 사탄의 것이 된 자들은 더 이상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잃어버리게 된 것 아니겠느냐. 즉 휴거를 위해 선포되는 시대 말씀을 들어도 결코 알아듣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구나.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이요, 너희의 휴거를 훼방하는 사탄의 계략인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이 시대 진리 말씀이 아니었다면 너희가 감히 휴거를 꿈꿀 수나 있었겠느냐. 그러하기에 너희의 휴거를 막기 위해 사탄은 말씀을 빼앗는다. 말씀을 못 듣게 한다. 정확히 말하면 듣긴 듣되 육적으로 듣고 끝나게 한다. 육적으로 들은 말씀이 영혼의 생명을 살리는 양식이 될 순 없지 않느냐. 결국 말씀을 들으면서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이를 깨닫지 못하면 육적으로 말씀을 듣고도 순간 말씀을 들었다는 것 하나에 만족하며 산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그것은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다. 썩은 음식이 그 사람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느냐? 오히려 해가 되고 병을 만들어 문제를 일으킨다. 죽어 있는 자는 썩은 음식을 먹여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는 즉시 토해 낼 수밖에 없다. 썩은 음식을 먹고도 만족하며 사는 자는 바로 자신이 죽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음식이 썩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니 첫째는 썩은 재료로 만들었을 때 그러하며, 둘째는 신선한 재료로 만들었으나 시간이 오래 지나 부패되어 썩기도 하며, 셋째는 신선한 재료로 금방 만들었어도 운반 과정에서 독이나 이물질이 들어갔을 때 먹지 못하는 음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하듯 말씀도 사람들이 만들어 낸 명언은 썩은 재료로 만든 말씀이요, 성서를 근간으로 하여 전하는 말씀일지라도 구시대의 말씀은 부패한 말씀이 되는 것이며, 선생이 매주 마다 주는 시대 최첨단의 말씀일지라도 이를 전하는 자가 자신의 온전치 못한 그릇에 담아 육적으로 전할 때 죽은 말씀이 되는 것이다. 선생을 통해 온전하게 선포되는 시대 말씀을 이렇게 빼앗기고 나면 그때부터는 사탄의 개입만 남아 너희의 휴거는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그러니 너희는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얻어라. 육적인 설교를 육적인 자가 들으면 아무 곤고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며, 육적인 설교를 영적인 자가 들으면 곤고함에 견딜 수 없어 뛰쳐나갈 것이다. 또한 영적인 설교를 육적인 자가 들으면 그 깊은 뜻을 알아들을 수 없기에 들었어도 못 들은 것이 될 것이며, 영적인 설교를 영적인 자가 들으면 가뭄 끝에 장맛비를 만난 격과 같을 것이다. 육적인 자에게 내려지는 심판은 육적인 설교를 듣고 아무 곤고함 없이 사는 것과 영적인 설교를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요, 육적 설교자에게 내려지는 심판은 육적인 신앙자에 둘러싸여 자신의 모순을 발견치 못하는 함정에 빠지는 육적 신앙을 하는 것이요, 영적인 자가 자신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말씀 심판이 기성과 섭리사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때이나 깨어 있지 못하니 결코 심판을 받아도 자신이 심판 받는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은밀하지만 분명히 진행되고 있으나 모르는 자는 결코 모른다. 느껴지지가 않으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육적인 자는 결코 느낄 수도, 알 수도 없는 것이다. 말씀으로 불을 던지지 못하고, 말씀에서 불을 받지 못하면서 어찌 휴거가 될 수 있겠느냐. 이렇게 귀한 시대 말씀을 듣고도 휴거되지 못함이 바로 심판의 증표 아니겠느냐. 그러니 너희는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아라. 자신이 말씀에 깨어 있는지, 말씀으로 변화되고 있는지, 말씀의 불을 던지고 있으며 또한 받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라. 확인하는 것이 일억 천만금과 같은 것이라 하지 않았더냐. 지금은 심판과 축복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때이니 이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즉 휴거의 때를 맞아 데려감과 버려둠은 동시에 일어나고 있으니 데려갈 자를 심판하는 자나 버려둘 자를 감싸고 사랑하는 미련한 자가 되지 말라. 분별의 눈을 뜨고 삼위가 행하시는 휴거의 역사를 온전히 따라야 할 것이다. 나와 함께 모으고 헤치는 자가 지혜자일진대 내가 심판할 때 사랑하고자 하고, 사랑할 때 심판하고자 하는 자는 결코 나와 일체 된 자라 할 수 없나니 지금이 어느 때이며 내가 무엇을 진행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때는 말씀을 통해 분별할 수 있다. 지난해까지는 마지막 기회를 말하였고, 올해부터는 선생이 너희 십자가를 대신 져 줄 수가 없는 때라 하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이 깨닫고 때를 정확히 분별하여 때에 따라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삼위가 행하는 때를 분별치 못하는 자는 삼위의 심정과 일체 된 신부라 할 수 없다. 성령의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을진대 때를 깨닫고 삼위와 동행하는 신부들이 되기를 원하노라. 말씀으로 때를 알리고 말씀으로 심판하며 진리와 성령으로 휴거시키는 성자 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