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말씀2013.08.06 (화)
화 새벽말씀 1c6c0f0c
- 선포일
- 2013.08.06 (화)
첨부 파일
- PDF
20130806 화 새벽말씀_1c6c0f0c.pdf
183.0 KB
<2013년 8월 6일 화요일 씨티엔 선생님 새벽말씀>
<2006년 10월 11일 수요일말씀>
예수님은 살아 있을 때, 특히 본문말씀에 나온 대로 빌립이 예수님 앞에 있을 때 빌립에게 말하기를, “나를 좇으라.
나를 따르라.” 했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에게도 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메시아니까 “나를 따르라.” 이
외에 다른 말이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때에 한 마디면 끝나는데 말을 오랫동안 하는 것은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게
배우라.” 간단합니다. “당신이 뭡니까. 누굽니까. 학자입니까.” 물을 필요 없습니다. “내게 배우라.”
빌립에게 “나를 따르라. 나를 좇으라.” 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예수님은 좇기로 결심하고 결국 예수님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믿고 따르는 사람이 누군지 확실히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알아야 그 행실이 변화가 됩니다.
확실히 모르면 행실의 변화가 오지를 않습니다. 사람을 볼 때 서너 가지를 보면 다 압니다. 그 사람의 행실을 보고
알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알고, 거죽을 보면 또 압니다. 이 세 가지를 보는데, 예수님을 메시아로 확실히 알아야만
자기 하는 일들이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모르면 행실이 다릅니다.
여기에 와서 말씀을 듣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나를 알고 따르는 사람과 말씀만 듣고 따르는 사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말씀만 보고 따르는가, 나를 깨닫고 따르는가, 나를 누군지 알고 따르는가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온 여러분들에게 물어본다면 여러분 중에 나를 알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나를 ‘아, 여기 교회
목사님이구나.’ 아는 사람도 있고 ‘이 말씀이 여기에서부터 나왔구나.’ 아는 사람도 있고, 말씀을 배우고 따르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나를 알고 나를 누군지 깨닫고 따르는 사람들은 생활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그리고 일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이 다릅니다. 모르고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도 다르고 받는 것도 다르고 내가 그들을 대하는 것도 다릅니다.
이는 마치 어떤 단계와 같은가 하면, A라는 남자와 B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A라는 남자와 B라는 여자가 애인인지,
부부인지, 남인지, 그냥 존경하는 사람으로 대해주는지 이것에 따라서 다른 것입니다. 대하는 것이 다르지
않겠습니까. 완전히 다릅니다. 그와 같이 나를 깨닫고 따르는 사람들과 나를 못 깨닫고 그냥 말씀만 듣고 따르는
사람들과 다릅니다. 나를 ‘어떻게 아는가.’ 하겠지만 그것은 여러분이 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들어보면 알지 않겠습니까.
예수님도 “너희가 내가 누군지 알았더라면 그러지 않았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메시아인지 알았으면 메시아를 죽이려고 하겠습니까. 안 한다는 것입니다. “몰랐기 때문에 너희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구나.” 하고 예수님이 말씀했지요. 바로 그런 입장과 같습니다.
여러분도 어디에 가서 여러분이 누군지, 무엇을 하는지, 사장인지 회장인지, 사회의 저명인사인지, 자기의 사상과
정신이 어떠한지 모르고 사람들이 여러분을 대하면 아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못할 것이고 대할 것도 제대로
못 대해줄 것입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확실히 알고서 어떻게 했는지 압니까. 예수님을 확실히 아니까 역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알고 하나님을 확실히 아니까 왜 역사가 이렇게 돌아갔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의 역사가 왜 이렇게 돌아갔고 종교의 역사가 왜 이렇게 돌아갔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안 배웠는데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확실히 아니까 모든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강물이 있는데, ‘강물이 이렇게 흐르다가 언제부턴가 강물이 이상하니 산 너머로 흘러왔구나.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을 근본을 알기 이전에는 모를 것입니다. 화산폭발이 되어서든지 지진이 일어나서 그렇게 가게 되었다든지
뭔가 원인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반드시 완전히 아는 데서부터 모든 구원도 이루어지고 영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좌우됩니다. 복도, 축복도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아는 데에 대해서 근본을 배우고부터 한 20년
동안 그것만 파고들어서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전에 교회에 다녔을 때 아는 것보다 근본을 배우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근본을 배우고 깨닫고 하니까 이렇게 세계를 향해서 복음을 폈습니다. 똑같은 사람들이 20년, 30년
목회를 나보다 더 많이 했는데도 교인 1000명을 못 넘어섰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목회하러 간 사람들은 다
신학하고 날고 기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1000명을 못 넘어가고 일단 끝났습니다. 선생님은 한쪽에서 제자들이 하는
것만 해도 그 수를 넘어갑니다. 한 지역만 해도 1000명이 넘어갑니다. 내가 직접 하는 것을 빼놓고 제자들이 하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확실히 그리스도를 알고 시대를 깨달았을 때 그것을 깨닫고 와서 외치니까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저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사람들이 환난과 핍박이 있어도
이렇게 좇아다니나.’ 합니다.
금주의 말씀에 빌립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확실히 알고 그때부터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며
말하기를, “너희들이 기다리고 있던 모세와 선지자들의 그 성경의 예언의 말씀이 지금 이루어지고 있다. 그
주인공은 나사렛 예수다. 그를 통해서 이 시대의 역사를 이루고 있다.”하고 2천 년 전 예수님 때 빌립이 전도하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구한테 이야기했는가 하면, 나다나엘에게 이야기했는데 나다나엘이라는 사람은 구교, 유대종교인이었습니다. 유대
종교에서 예수님을 중심한 신교의 역사가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모세도 말했다. 그 엄청난 구약의 영도자 모세가 말하기를 우리 가운데 형제 가운데 큰 사람이 오리라, 자기 같은
사람이 오리라 했다. 그런데 모세가 말한 그 사람이 왔다. 알고 보니까 나사렛 예수더라.”
그렇게 확신하게 빌립이 말해 버렸습니다. 나다나엘이 그 말을 듣고,
“아니, 어디에 있는 사람이라고.”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다.”
예수라는 사람은 모를지라도 “아, 나사렛. 그 시골. 그 산골짝. 거기에서 무슨 선한 것이 있어. 무슨 하나님의
사람이 났단 말이냐.” 그렇게 말했을 때, “그러면 말이 더 이상 안 통하니까 와보라. 와서 청중을 보고 와서 그가
하는 일을 봐라. 그가 지금 저 옆에 있다고 한다. 가봐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만나서 나다나엘에게 말했습니다.
“나다나엘아.”
“네.”
“너는 정말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순종이다, 순종. 간사함이 없다. 참 정직한 자요, 착한 자다. 이스라엘 나라의
순종은 그렇다. 하나님을 믿는 나라이기 때문에 간사함이 없어야 된다. 이 이스라엘 민족들이 언제부터 변했는지
이렇게 간사스럽고 여우같이 여기에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그런 마음들이 되어 버렸다. 이거 쓰겠냐. 틀렸다.”
자기를 그렇게 가르쳐주니까 나다나엘이 놀랐습니다.
“어떻게 나를 이렇게 아시나이까.”
자기의 마음은 자기밖에 모르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아니까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것뿐이냐. 네가 아까 무화과나무에서 출발해서 여기 왔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지.”
“그렇습니다. 어찌 아시나이까.”
“그거. 영계로 쳐다보면 다 아는데.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해서 믿느냐. 그 말 때문에 나를 믿느냐. 말씀을 듣고
믿어야지. 아니, 그것을 짚어냈다고 해서 믿느냐.”
과거에도 선생님께서 사람들을 전도할 때 많이 짚어내고 마음을 읽어줬습니다. 그리고 능력과 기적을 많이
보여줬지만 그 사람들은 교회에 안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30개론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서 완벽하게 성서를
깨닫고 시대를 깨닫고 나를 깨달은 사람들이 안 뒤집어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런 기적과 이적들은 근본을 아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 해당되는 기적입니다. 그래서 표적을 보려고 따라다니냐, 기적을 보고 따라다니냐는 것입니다.
따라다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됩니다. 말씀을 안 가르치면 안 됩니다.
“너희들이 진짜 나의 제자라면 30개론을 분명코 확실하게 배우고 나를 누군지 깨달아라. 그러기 전에는 제자라는
소리 하지 마라. 내 제자는 나와 같이 한다.”
어떤 자가 있는데 내가 그의 손을 잡았으면 그는 내가 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바다에 붙은 강줄기는 강이지만
조수를 같이 합니다. 밀물과 썰물이 밀려다닐 때 같이 움직입니다. 그러나 안 붙은 데는 못합니다.
반드시 그리스도와 일체되었을 때, 하나 되었을 때는 같이 그 일을 같이 하는데 떨어졌을 때는 못합니다. 그럴 때
그것을 “죽었다.” 합니다. “죽었기 때문에 못한다. 사상이 죽은 것이다. 행동이 죽은 것이다.”
내가 제자들에게도 그럽니다. “왜 나는 이렇게 움직이는데 너는 안 하냐. 그것은 죽은 것이다. 죽었기 때문이니
부활하라. 사망의 냄새가 풍기니까 살아나라. 죽은 자는 못한다.” 죽으면 사탄이 바로 가입해서 사탄 짓을 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자기 것이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하노니, 네가 나를 믿고 따를진대 이보다 더 큰 일도
보리라. 하나님의 사자들이 하늘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인자 옆에 있는 것도 보리라.” 했습니다. 예수님 옆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따라다니는 것을 보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좇아다니는 것을 볼 때는 더 뒤집어지고
으악 할 것입니다.
이것을 현재의 말씀으로 보면, 빌립은 메시아를 깨닫고 따르는 사람들로 보고, 나다나엘은 전도 받는 사람들로
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아직 나를 모르는 사람들로 보고, 그리고 빌립은 나를 깨닫고 따르는 사람들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라도 이렇게 빌립처럼 확실하게 알아야 됩니다. “나를 따르라.” 해서 나처럼 정말로 그
길만 따르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 했을 때 지금까지 나는 딴 길을 안 가고 그 길만 따랐습니다. 제자들은 “나를 따르라.”
해도 따르다가 싫으면 자기 마음대로 가게 됩니다. 그것이 전부 생명록을 떠들어보면 다 나옵니다. 몇 번 마음이
변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몇 번 했다가 다 나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한 번 하고서 이제까지 변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오늘 아침 새벽기도 할 때에 이야기해주신 것이지만 “네가 승리하는 것을 가만히 훑어봐라. 어떤 때에 승리했느냐.
끝까지 한 것만 승리했지 않느냐. 왜 그런지 아느냐.”
끝까지 가야 그 맨끝터리에 내가 원하는 꿈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거친 다음에 거기에 놔뒀다는
것입니다. 맨 꼭지점 산 정상에다 두었다는 것입니다.
“산정상이 최고 높은 지역이 아니냐. 그와 같이 끝까지 가고, 너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끝까지를 못 가보니까 만날
지는 것이다. 끝까지 가는 사람이 항상 이긴다.”
“그러면 악인과 의인이 끝까지 가면 누가 이깁니까.”
“아이구, 의인이 이기지.”
“어떻게 해서요. 똑같이 끝까지 가는데요.”
“악인은 6수고 의인들은 7수가 아니냐. 항상 거기가 악인의 끝이고 의인들은 한 발자국 더 가서 있으니까 그래서
이기는 거야. 100미터 달리기 할 때 보면 한발자국 더 먼저 가서 이기지 않느냐.” 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늘 하니까 이기지 않느냐. 교회 안 나오는 사람들도 끝까지 계속 기도를 하니까 결국 그 끝이
되니까 만났을 때 서로 편지로 만나고 소식으로 만나고 전해주고 하니까 결국 이겨서 다시 오게 되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항상 승리했을 때 답이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끝까지 해야 됩니다.
반드시 자기 기회가 있습니다. 자기 기회가 있는데 그때 못하면 안 됩니다. 그때 해야 됩니다. 씨 뿌리는 기회가
있는데 그 기회에 씨를 못 뿌리면 바로 눈이 와서 씨를 못 뿌립니다. 자기 기회 때, 그때 못하면 뺏긴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기회를 달라고 그렇게도 기도하고 원하는데 기회가 왔을 때는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진짜 안타깝습니다.
그 때가 기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회를 모릅니다. ‘모르고 못했는데 아깝지 않지 않습니까. 몰라서 못했는데...’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알아버립니다. ‘그 때가 기회였구나.’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기회 때
그때 해야 됩니다.
제자들이 선생님을 막 만나고 싶어 하다가 어느 때는 기적으로 선생님을 만나게 되는데 그 기회를 놓칩니다.
그때는 ‘저런 것은 기회 놓쳐도 아깝지 않다. 저렇게 무능한데 어떻게 내가 가까이할 수 있느냐.’ 하고 판단합니다.
그렇게 1년, 2년, 3년, 4년, 5년, 6년 기도해서 기회를 받았는데 그때 못합니다. 그러니까 “저런 제자는 무능하기
때문에 역시 내 앞에 설 수 없다.” 합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충성되고 아는 자가 왕 앞에 선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러니 잘 해야 됩니다. 그렇게 바라고 원했던 것을 기회를 줬는데도 못하면 원통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아침마다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해달라고, 지혜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하신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내가 28년 동안이나 있으면서 옆에서 데리고 있어보기도 하고 격을 차리지 않고 같이 식사도 해보고
같이 앉아서 밥도 먹고 했는데 모르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너무 모르는구나. 어둠속에 있었을 때도 몰랐지만 빛
앞에 나와도 모르는구나.’ 그렇게 깨달았습니다. ‘아니다. 내가 커야 된다.’ 합니다.
“열을 아는 사람에게는 오십이라는 모자를 씌워주지 말아라. 영화로운 것을 딱 열 개만 씌워줘라.”
하나님도 행한 대로만 딱 해주지 그 이상은 안 해주십니다. 왜. 여기에 이 그릇이 있는데 여기에 물을 부으면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이상의 물을 주면 넘쳐 버립니다.
“주지 말아라. 절대 그러지 말아라. 사람을 만들지 않고는 복도 주지 말고 돈도 주지 말고 명예도 주지 말고
사명도 주지 말아라. 그것 못한다. 그것 안 된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혹시 여러분 밑에 사람을 두게 되면 절대 사람을
만든 만큼만 그들을 축복 주고 돈도 주고 무엇도 줘야지 그 이상은 줘봤자 감사할 줄도 모르고 고마워할 줄도
모르니 받아도 다 흘러 넘어갑니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땀 흘려서 번 돈이고 뭐고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들이
재산을 줄 때 충성되고 열심히 한 자녀에게만 주지 다른 자녀에게는 안 주지 않습니까. 필요 없다고 그냥 남에게
주고 가지 않습니까. 그렇게 꼭 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그렇게 하니까 그것을 알고서 깨닫고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 것을 후반기에 선생님이 철저히
하십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 이상은 바라지 마라.” 열 번, 스무 번, 백 번 내가 늘 이야기했습니다.
내가 유지 사도를 기를 때도 “왜 유지는 열 개 있는데 스무 개를 바라느냐. 그것은 안 된다. 영원히 불가능해.”
그랬습니다. “거기만큼만 해라. 이만한 그릇이 있는데 이 만한 그릇 이외에는 물을 주지 마라.”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선생님이 철학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도 열 개면 열 개만 하지 더 이상은 안 한다. 그래서 행한 대로만 축복
주고 행한 대로만 복 주고 나머지는 더 이상 하지 말아라.’
여기에서 말씀을 마치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하신 우리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수요일 말씀을 통해서 금주의 말씀을 이야기했습니다. “변화되어라. 지금
추수 때다. 그리고 나가서는 과감하게 전하라! 이와 같이 이렇게 되는 때다! 와보라! 시대의 말씀을 들어보라!
부지런히 말씀을 듣고 말씀을 전해줘서 그들이 전도 되어야지 순간 요령 갖고 안 되고 어떠한 예술과 문화로만
구원이 좌우되고 인생 문제가 좌우되는 것이 아니니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고 시대를 제대로 가르쳐라.” 했습니다.
그래야 이들이 근본의 문제, 신적문제가 해결된다 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축복을 받게 되고 축복을 해줄 수
있고, 그래야 사망에서 생명으로 살아나서 자체 성장할 수 있다 했습니다. 그래야 분재에 있는 나무가 벗어나서
땅에다 심은 나무가 같아서 자족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그런 신앙으로 되도록 자신이 말씀을 근본을
깨닫고 알고 주를 깨닫고 알고 살아야만 자신이 유지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한 자들이 되도록 변화하게 해
주시옵소서.
성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이들에게 함께 하고 성령의 감동과 감화 역사하심이 늘
함께 해주며 역사하시고 생활 가운데 늘 함께 하고 예수님의 사랑하심이 이들에게 하며 내가 늘 기도하고 간구하고
이들을 기도하오니 그 기도대로 되게 축복해주시옵소서. 영육이 잘 되고 형통할 지어다. 아멘.
그러면 마지막으로 1분 동안만 내가 이 돌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습니다. 이 돌이 있는데, 기도하는 것 같아서 내가
갖다 놨습니다. 예쁘지요. 자연석입니다. 자연석인데 깍인 것이 이렇게 안 깎였습니다. 강대상 옆에 있으니까 조금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말들을 때 말씀 듣는 것 같습니다. 상징적인 돌입니다. 보니까 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합니다. 머리도 있고 얼굴이 있습니다. 두 손을 모으고 듣는 것 같지 않습니까. 여자부터 가슴이 불룩
올라온 것을 보니까 여자 같습니다. 남자도 가슴이 올라온 남자들이 많으니까 남자라고 하려면 하기 바랍니다.
이 돌을 갖다 놨습니다. 상징적인 돌입니다. 지난번에 아 이거 설명 좀 해주지 왜 설명 안 해주냐고 해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어찌나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많은지 그러면 이만하면 되었지요. 여러분도 이와 같이 말씀 들을
때 열심히 듣고 이렇게만 하면 못 있으니까 그런 자세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나는 끝마치고 주일 단상에서 다시 만나겠습니다. 여러분들 이것 준비하고 있습니까. 뭐냐고요.
월명동에서 10주년 행사가 있습니다. 장로님들, 권사님들 취임예배와 목사님들 취임예배를 드리고, 아주 거창하게
월명동 10주년 행사를 합니다. 그래서 거기를 멋있게 만들어 놨으니까 취임 예배 때 또 한바탕 월명동에서
모인다고 하는데 거기 준비하고 예비함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때에 그동안 교회 바빠서 못 나온
사람들, 나아가서는 환란 때 못 나온 사람들, 집에서 못 나온 사람들, 스스로 엎어진 사람들 다 데리고 나오기
바랍니다. 그 전부터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 전부터 우리가 전도작전을 했지요. 우리 형제들, 나오다가 안
나오는 사람들을 다 서로 하나 되게 만드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리고서 그런 큰 행사를 치러야 이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씀을 마치고, 오늘 새로 온 여러분들 신입생들과 같이 아쉬운 시간,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모두 잘 돌아가시고 열심히들 해주세요. 그리고 모두 너희들 나와야 내 얼굴 본다고 했는데 나왔어요. 내 얼굴
보러 왔어요. 악수 한번 해줄까요. 모두 악수하고 끝나겠습니다. 여기에서 마치고 주일 단상에서 다시
나타나겠습니다. 안녕~ 잘 가요 모두! 바이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