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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2013.08.09 (금)

금요 명설교

선포일
2013.08.09 (금)
성경 본문
요한복음 15장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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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9일 선생님 명설교(명강의) / 2005.7.24 내 안에 거하라 본문: 요한복음 15장 1-5절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 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 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 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 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 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할렐루야! 2005년 7월 24일 주일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한국을 중심한 아시아, 유럽, 그리고 미국을 중심한 남미로 모두 한 주일 동안 복음을 전하며 생명을 관리하느라고 지도자들과 관리자들 수고가 많았습니다. 오 늘 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을 먼저 보면서 모든 순서를 시작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절부터 몇 절만 봉독하겠습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 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 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 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 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 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5절까지 봤지만, 여러분은 나머지 구절들을 죽 읽어보기 바랍니다. 말씀을 봉독 했으니 이제 말씀을 듣기 전에 전체가 하나님께 찬양을 하는 순서를 갖겠습니다. 밴드악단, 오케스트라, 피아노, 그리고 기타 악기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이 시간 모두 하나 되어서 연주하며, 같이 온 세계적으로 찬양하며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 겠습니다. 오늘 찬양은 찬송가 394장을 4절까지 지휘하겠습니다. 모두 다 기립했지요? ♪ 찬송가 394장, “주를 앙모하는 자” 1.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모든 싸움 이기고 근심 걱정 벗은 후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 2. 주를 앙모하는 자 걸어가 걸어가 고단치 않네 길을 잃은 양떼를 두루 찾아다니며 걸어가 걸어가 고단치 않네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 3. 주를 앙모하는 자 달려가 달려가 피곤치 않네 천성문을 향하여 면류관을 얻도록 달려가 달려가 피곤치 않네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 4.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은혜 안에 뛰놀며 주의 영광 보리라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하늘의 부름을 받아 새로 온 여러분들, 하나님이 즐겨 사랑해서 여러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부르십니다. 사람을 사역자로 삼으시고, 사람이 없으면 만물로 사역자를 삼으십니다. 비와 바람과 눈과 그리고 화산과 풍랑과, 각종각색 으로 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만물의 하나하나 들 수 없을 만큼 가짓수가 많은데 그 만물들을 사역자를 삼으사 자기 의향을 전달하십니다. 사람들이 이를 안다면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아는 자요, 만물들이나 사람들을 통해서 전달을 잘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인도하시고 주관하 시는 것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우리 인생살이를 볼지라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심부름을 시켜서 어떤 목적 을 행합니다. 사람들의 이치는 깨달으면서 왜 하늘에 대한 이치를 깨닫지 못하느 냐고 했습니다. 지난주 수요일말씀에 오늘 주일날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할 것이라고 약속을 했 지요? 나는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잊지 않습니다. 요즘 설교는 단상에 올라와서 주는 대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준비해 봤 자 얼마나 준비가 되겠습니까. 오늘 새로 온 여러분을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하나님은 기뻐 부른 자들이 와 있음을 보시고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왔으니 내 말 좀 사람을 통해서 들어 보자. 내가 보낸 자를 통해 말할 테니 들 어 보자.”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데려온 자들도 들어 보자. 그리고 기존성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들어 보자.” 하셨습니다. 오늘 주일 새벽예배는 안 드렸습니다. 주일 새벽 예배를 안 한다고 했을 때 나 는 ‘아, 조금 쉬겠다.’ 했더니만 토요일 날은 항상 철야를 하며 새벽까지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도 3시까지 말씀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일 새벽예배 하지 말고 쉬어라 하더니만 이렇게 사용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일 새벽예배를 안 드린다고 한 날부터 지금까지 토요일 밤에 철야를 안 한 날이 없습니다. 토요일마다 꼭꼭 밤을 새우고 새벽까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토요일 새벽에 말하기를, “주일 낮 예배 단상에 올 때까지 이 시험문제를 풀어라.” 하고 문제를 냈습니다. “여기 있는 내가, 너희들이 선생이라 하는 자가 0대 때, 다시 말해서 여섯 살에 서 열 살까지 큰일을 했다. 어리다고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도 큰일을 한다. 열 살에서 스무 살까지 10대 때는 인생의 길을 찾았다. 스무 살에서 서른 살까지는 극적인 연단을 하고, 실습을 하면서 나를 만들고, 앞으로 일할 목적을 위해서 준 비하고 예비하는 엄청난 큰일을 했다. 30대에는 하늘의 명령을 받고 뛰기 시작했 다. 40대에는 그 실적이 여봐라 할 정도로 커졌다. 50대에는 엄청난 환난을 이기 는 큰일을 했다. 세계적으로 섭리적인 환난의 고통을 받으며 이겨냈다.” 했습니 다. 60대에는 부활이 되면서 가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왔습니다. “그러면 내가 10대에 무슨 큰일을 했다는 말이겠습니까?” 하고 문제를 냈습니 다. 그 답안지를 단상에 그려놓는다고 했는데 이렇게 그려놨습니다. 자, 그러면 돋 보기로 한번 볼까요. 돋보기로 화면을 잡아당기면 무슨 그림인지 보일 것입니다. 이것은 월명동 옛날 내 고향집입니다. 남 집사님 집이 보이고, 고 집사님 집이 보입니다. 여기를 출발해서 내가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보입니까? 이것이 답안지입니다. 어느 집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그려져 있는 집 으로 가고 있습니다. 여섯 살에서 열 살 때, 0대에 벌써 이렇게 큰일을 했습니다. 벌써 구원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0대 때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큰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누가 믿으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선배들을 따라 교회에 따 라갔습니다. 교회에 가면 떡도 주고 빵도 주고 노래도 하고 재미있다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러 큰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0대 때라고 큰일을 못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부모들도 자녀들이 0대일 때 반드시 하나님을 믿게 해줄 것! 그것이 큰 일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10대 때는 인생의 길을 찾을 것! 인생의 길을 찾는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일 아니겠습니까. 선생은 열 네 살쯤 되었을 때 길을 찾았습니다. 10대 때 인생의 길을 찾고 가 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가는 것이 인생의 길을 찾은 것입 니다. 이것이 시험문제의 답안지입니다. 이 답안지를 보기 전까지 어떻게 생각했는지 양심껏 채점해 주기 바랍니다. “본인의 양심이 율법이 되어서 송사한다.” 했는데 양심이 채점자가 되어서 채점하기 바랍니다. 얼마나 맞혔습니까? 모두 많이 맞혔 네요. 다시 우리 교육생들을 위해서 시험문제를 내고 갈까요. 요즘은 문제가 간단합니 다. 일반 공부는 머리를 싸매고 연구를 해야 됩니다. 교육받는 학생들, 선생님께 직접 배우는 사람들이 4천 명이 되는데 그러면 이번 주 시험문제를 내겠습니다. 아까 두 화면을 비췄는데 이 근방을 왜 비췄는지, 그리고 화면을 돌려서 두 번 째 장소를 비췄는데 왜 비추었는지 아는 대로 여러분들 마음속에 쓰기 바랍니다. 다음에 답안지를 발표할 것입니다. 지금 화면을 잘 보기 바랍니다. 지금 잘 못 보면 직접 대둔산에 가서 그 지역을 보고 와야 됩니다. 잘 보입니까? 이 지역을 왜 비추었는지 자세히 보기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자세히 봐야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부터 주일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지난주 말씀은 “때를 따라서 말을 해야 된다. 때를 따라 행동해야 된다. 때를 따라 하게 되면 운이 따르고, 때를 따라 하게 되면 사람들도 보고 좋아한다. 하나 님도 그 때를 정하여 역사 하신다. 꼭 때를 따라 하라. 때도 안 되었는데 하려고 하지 말고, 때 전에 하다가 부작용 일으키지 말고 때를 따라 하라. 때를 따라 하 게 되면 결국 부드럽게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때를 따라 하도록 하라. 늦게도 하지 말고, 빨리도 하지 말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곧 때다. 때에 맞지 않고 때에 행치 않은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을 맞 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인생을 살면서 제 때에 일을 하면 그는 성공입니다. 제때 일을 못하면 부작용도 일어나고 성공할 수가 없고 어렵습니다. 지난주에 이런 말씀들을 했습니다. 오늘은 본문말씀에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어떻게 해야 열매를 많이 맺는가 하면, 하나 되어야 된다. 그래야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 그와 같이 너와 내가 일체 되어야 인생의 모든 원하는 목적을 많이 이룰 수 있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주제말씀은 “내 안에 거하라” 입니다. 이 본문말씀으로 설교를 많이 들었을 것 입니다. 오늘 말씀은 다르게 말씀을 하실지, 옛날과 같은 흐름의 말씀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비유 들어 하신 말씀, 요한복음 15장 말씀은 이렇게 시작해서 거의 15장이 끝날 때까지 비슷한 이야기들로 연속 이치에 맞는 말씀을 하시며 설교하 셨습니다. 포도나무로 비유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포도나무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는 포도나무가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포도나무 비유가 성경에 많이 나옵니 다. 보는 대로 비유를 드는 것입니다. 선생은 인삼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인삼밭 비유를 잘 듭니다. 그리고 농사 비유 를 많이 듭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기본적인 비유를 많이 듭니다. 예수님 때는 포 도나무 비유를 많이 들었습니다. 포도나무를 통해서 당시 따르는 사람들을 비유해 서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했습니다. 이 비유가 맞지 않습니 까. 이 비유에 이유를 달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비유를 잘못 들었다고 할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 비유는 대부분 잘 깨닫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이것은 잘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 고, 따르는 사람들은 가지이다, 열매는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했습 니다. “너와 내가 일체 되어야 목적을 달성해서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포도를 주렁주 렁 많이 열 수 있다. 이와 같이 목적을 멋있게 달성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너와 내가 꼭 하나 되어야 된다.” “네.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반드시 하나 되어야 되어야 예수님의 제자들이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 나와 제자들이 하나 되어야 목적을 잘 달성할 수 있다는 것입 니다. “예수님처럼 나는 포도나무다. 너희는 가지다. 서로 하나 되어야 많은 목적을 멋있게 달성할 수 있다.” 이것에 이유를 달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되 어야 됩니다. 이번 주 주일말씀 주제는 “내 안에 거하라.” 입니다. 그릇이 있는데 이 안에 물 이 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아, 이 속에 들어와라.” 이와 같이 “내 안에 거하라.” 이것이 주제입니다. 내 안에 거하고 싶습니까? 내 가 말한 대로 행하는 사람은 내 안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 믿습니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이 말씀은 흔히 잘 알아듣습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면서 자기가 포도나무와 같은 입장임을 말했습니다. 이것은 잘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조금 다 른 것을 말해 볼까요.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가 있었다. 중앙에 선악나무도 있었다. 거기에 과일 이 열었는데 따먹고 타락되었다.” 이 비유는 잘 모릅니다.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나무를 두었다. 생명나무와 선악나무가 있었다. 그 열매를 따먹지 말라.” 했습니다. 에덴동산에 생명나무가 있었다고 한 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야, 멋있는 나무 가 있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악나무도 있었고, 주렁주렁 열매가 있었는데 따먹지 말라 했으나 하와 가 따먹고 타락되었으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남을 받았다 했는데 이것은 무슨 말인지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오늘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들, 그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까? 창세기 2장에 보면 종교의 시조되는 아담과 하와 이야기도 나와 있고, 하나님이 지상에 에덴동산을 창조했는데 거기에 생명나무와 선악나무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창2:7-17> “여호와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 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였으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도 있더라. 이 주변에 강이 있었으니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면서 흘러가 더라. 첫째의 강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으로 둘러가고 그 땅에 정금이 있고,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 라. 구스 온 땅에 흘러가고, 셋째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흘러 가더라.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거기에 두셨더라.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게 하셨으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하여 가 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 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모릅니다. 이것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처음 온 사람들이 있습 니다. 요즘에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왔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을 향해서 말씀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의 말씀도 성경이고, 조금 전에 읽은 부분도 성경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생명나무라고 했습니다. 창세기에 나무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 나님께서 나무를 가지고 섭리를 하셨겠습니까? 에덴동산에 두 나무가 나게 하셨는데 한 나무는 생명나무라 하고, 한 나무는 선 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열매가 열면 따먹지 말라 했습 니다. “따먹으면 네가 정녕 뒈지리라. 죽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나 하와가 그것을 따먹었다고 했습니다. 아담도 따먹어서 거기에서 쫓겨 나 버렸다고 했습니다. “따먹지 말라고 했는데 왜 따먹었느냐?” 하며 내쫓아버렸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나무로 생각한다면 하나님이 나무를 가지고 섭리를 했단 말이겠습니까. 그것을 못 풀고 기독교에서나 천주교에서는 나무를 가지고 섭리를 했다고 주장합 니다. 그 열매가 무엇일까 연구했는데 ‘아, 복숭아가 아니겠냐. 사과가 아니겠냐. 그렇 지 않으면 모과 같이 아주 향기 나는 과일이 아니겠냐. 너무 맛있게 보여서 따먹 은 것이 아니겠냐.’ 이렇게 푸는 것으로 마지막 종결을 내렸습니다. 성경은 한 군데만 가지고 풀면 안 되고 전체를 보고 풀어야 됩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 때 어떤 문제를 못 풀고 그냥 가다가 다른 일을 하다 보면 풀리는 것 이 있습니다. ‘아 이 문제도 이렇게 풀면 되겠구나!.’ 합니다. 이와 같이 다른 성경을 통해서 푸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나는 후 아담이다.” 했습니다(고전15:45). 이것이 무 슨 말씀이겠습니까. 에덴동산에 아담을 창조하셨다고 했고, 예수님은 자신을 후 아담이라고 했습니 다. 그러면 에덴동산의 아담은 전 아담이고, 예수님은 후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후 아담이라고 했을까? 그 임무가 후 아담 격이라는 것입니다. “첫 아담이 있었으니 나는 후 아담이다.” 에덴동산의 아담은 첫 번째 아담이고,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에 생명나무가 있었다는 것은, 아담을 생명나무라고 하나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비유를 든 것입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 비유를 들었지만 예수님이 포도나무와는 상관이 없지 않습 니까. 비유로 예수님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다. 너희는 가지다.” 이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관계성으로 볼 때 예수님이 나는 포도 나무이고 너희는 가지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다만 포도나무로 비유만 들었을 뿐 입니다. 이와 같이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는 아담을 두고 말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다”고 한 이것은 하나는 아담이요, 하나는 하와를 말한 것입니다. 바로 사람을 비유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 자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한 것같이, 에덴동산의 아담을 생명나무로 비유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후 아담이다.” 하면서 자신을 생명나무라고 성경에 말씀했습니 다(계22:14). 그러니까 나처럼 성경을 많이 읽어봐야 됩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야 지 조금 읽어서는 잘 모릅니다. 무엇을 알아도 히적부적 알면 안 됩니다. 완벽하게 알아야 됩니다. 요즘에 “완 벽하게 알아라. 시원찮게 알지 말고 완벽하게 행하라.” 이런 말씀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이 밥을 먹을 때는 완벽하게 넘기지 않습니까. 한 숟가락 한 숟가락 완벽 하게 넘기지 않습니까. 그것이 완벽이 아니겠습니까. “완벽하게 깨물어라. 완벽하게 넘겨라.” 완벽하게 행하지 않으면 고장이 납니다. 밥 먹고 뛰면 안 됩니다. 바로 뛰면 위하수증에 걸립니다. 그리고 밥을 많이 먹 는 대식가들은 위하수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위하수가 무엇이냐구요? 위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의학적으로 보면 밥을 많이 먹으면 위가 무거우니까 저 밑으로 늘어집니다. 그 리고 밥을 먹고 바로 뛰면 늘어집니다. 완벽하게 행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위가 늘어지면 어느 정도까지 늘어지는가 하면, 좌측다리가 연결된 곳까지 내려 갑니다. 위가 늘어나서 호박처럼 죽 내려갑니다. 그래서 밥을 먹어도 무덤덤하고 개운하지 않고 무겁게 느껴집니다. 위하수증이 있는 사람은 항상 무겁고 개운하지 않고 시원하지가 습니다. 위하수 증 걸리지 않도록 밥을 많이 먹지 말고, 소식하면서 자주 먹고, 밥 먹고 나서는 뛰지 말고, 거꾸로 매달리는 운동도 하고 물구나무서기도 하기 바랍니다. 왜 위하수증 이야기가 나왔습니까. 완벽하게 행하라는 말씀 속에서 나오고 있습 니다. 완벽하게 행하지 않으면 건강에 지장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병원에 가는 것을 무서워 할 것입니다. 의사들이 주무르고 만지고 하니까 가기가 무섭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집에서 여러분 자신이 의사가 되어서 만져보라는 것입니다. 가슴에 뭐가 났나 만져보면 되지 않습니까. 자기 가슴을 자기가 만지는데 의학법에 걸리는 것 이 있습니까. 완벽하게 1분, 2분, 3분 만져보면 반드시 알 수 있습니다. ‘아 유방에 혹도 없고 암도 없고 근종도 없고 이상이 없구나.’ 하고 압니다. 이 안에 뭐가 박혀 있으면 금방 잡힙니다. 나는 지나가는 자를 쳐다봐도 ‘아, 저 여자는 저기에 뭐가 박혔다.’ 하는 느낌이 오는데, 여러분은 만지면서도 왜 못 느끼냐는 것입니다. 짐승입니까? 사람은 짐승 보다 나아야 되지 않습니까. 심심한데 만지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며 만져주고 10번 20번 만져 주면 다 나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것을 안 하다가 암에 걸려서 수술하고 생명을 뺏기 는 선까지 가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께, 하나님께 혼이 났습니다. “설교? 옛날이야기만 할 필요 없다. 지 금 생명을 구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라. 생명을 구해야 되지 않겠느냐.” 드러누워서 만져보며 검사를 해 보라는 것입니다. 의사들도 그렇게 합니다. 그 런데 의사들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100% 하기가 힘듭니다. 여러분 은 100%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만져보고 사방으로 보고, 허리가 아프면 빨리 가서 고치고, 모가지가 아프면 모 가지를 계속 돌리고, 자꾸 매일 운동을 해줘서 마치 차에 기름칠을 하듯이 해 주 라는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도 가만히 있으면 굳어버립니다. 자꾸 목운동도 해 줘야 됩니다. 그 러나 예배시간에 너무 지나치게 하면 눈에 거슬립니다. 자리에 앉았을 때 반듯하 게만 있지 말고, 말씀에 빠졌을 때는 괜찮지만 빠지기 전에는 운동도 하고 졸리지 않게 하고 들어야 되겠습니다. 졸리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조는 사람들은 대개 보면 무언가를 깊이 생각합 니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자꾸 끄덕거립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현상으로 보이고, 환상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좁니다. 조는 것을 본인이 모릅니다. 죽을 때도 그 런 현상으로 죽습니다. 거의 그렇게 사르르 죽습니다. 조는 사람은 옆 사람이 깨워 주지 않으면 모릅니다. 옆 사람이 살살 깨워 주기 바랍니다. 졸 때는 본인이 모릅니다. 졸릴 때는 계속 졸립니다. 선생님께 보낸다고 비디오를 찍는데도 조는 것을 봤습니다. 조는 것이 습관 되 면 안 됩니다. 예배드릴 때 조는 것이 습관 된 사람은 꼭 예배 때만 되면 좁니다. 평소에는 안 졸다가 예배 때 졸면 어떡합니까. 물론 너무 피곤하다 보면 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완벽하게 행해야 되겠습니다. 임금 앞에 가서 졸아보십시오. 임금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민망하다 할 것 입니다. 혼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졸지마라는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 조는 것은 큰 실례입니다. 하나 님이 지금 자기 앞에 와서 이야기하는데 존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조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다 보입니다. 각 나라의 예배 드리는 광경이 보입니다. 졸지 마십시오. 이 말을 이렇게 하는데도 졸고 있습니까. 잠의 의식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꼭 교회에만 오면 조는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지적하십니 다. “졸지 말아라.” 졸릴 때는 어떻게 하면 약이 될까요? 카페인이 들어있는 커피를 먹고 온다?? 커피를 먹어도 졸립니다. 그러니까 그럴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약간 먹어야 될 것은 먹어야 되는데, 그러다 보면 또 커피의 세계로 돌아가게 됩니다. 조금씩 하 다가 계속 돌아가는 것입니다. 나는 그전에 졸릴 때 바늘을 가지고 찌르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바늘로 찔러도 모르겠더라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려야 안좁니다. 정신을 빠짝 차려야 됩니다. 정 신이 조니까 육신이 조는 것입니다. “후 아담인 예수님을 생명나무라고 했으니 전 아담도 생명나무이며, 생명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바로 아담과 하와를 두고 말한 것이다. 선악과를 따먹으 면 타락된다는 것은 나무가 사람이니, 또 하와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라고 했으 니 여자가 과일이다. 남자는 나무이다. 아담은 나무로 비유하고, 하와를 과일로 비유했구나.” 이와 같이 성서가 풀리니 얼마나 획기적이고 신비하고 속이 시원합니까. 그런데 이것을 전했더니 나를 보고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너는 다른 것을 가르친다. 이 단이다.”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귀가 없는 사람들이 귀 있는 사람을 보고 병신이라고 한 것과 똑 같습니다. 눈이 하나가 빠진 사람들만 사는 세계에 눈이 두 개 다 달린 사람이 와 서 이야기하니까 “저 사람 병신이다. 눈 두 개 달렸다.”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다 는 것입니다. 이치를 알라! 뜻을 깨닫고 알아라! 선생님은 10대부터 말씀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20대에는 서서히 굳히기 시작했 습니다. 오늘 처음 온 사람들은 이와 같이 성서를 깨닫고 보기 바랍니다. 여기는 이런 말씀을 배우기 때문에 완벽하게 배우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이 오게 된 것입니다. 학문과 지식과 모든 도와 진리가 하나 되는 역사, 이런 말씀을 배우러 이곳에 와서 들으며 말씀을 적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들을 때는 신비하지만, 이것을 캐낼 때는 20년 동안 이 근본의 도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모든 세상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었다. 죽었다.” 했는데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이성으로 타락된 것을 말한 것입니다. 때 전에 이성 관계를 하고 거기로 흘러 빠져버리면 가정에서 부모도 “너, 이성 으로 탈락되었다. 이성으로 무너졌다.” 하지 않습니다. 그와 똑같습니다. 하나님도 그런 뜻을 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성으로 빠져버리면 모든 만사의 일들이 흐트러집니다. 사장이 되 었든 부장이 되었든, 왕이 되었든, 운동선수가 되었든, 어떤 사람이 되었든지 이 성으로 빠지면 그 목적에 잘 못 갑니다. 이성을 다스리면서 가야 되고, 주관하면 서 가야 됩니다. 성장됐을 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성장되면 남녀가 하나 되어서 결 혼하고 자녀를 갖고 가정을 이루며 가는 것입니다. “성장 전에 하면 죄다. 성장하기 전에 그렇게 나가면 너희가 파괴된다. 탈락이 다.” 오늘날에도 이성으로 무너지는 것이 10대들에서 일어나고, 20대 30대 40대에 도 이성으로 넘어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많은 세계가 그 세계로 넘어지지 않습 니까. 그것을 벗어나서 가는 것이 인생 성공하는 것이고, 하나님 앞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다 하나님께서 축복한 대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푸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포도나무라고 하면서 나무로 비유한 것 이 아니라 아담도 하나님이 나무로 비유해서 말씀했습니다. 비유해서 말씀했기 때문에 그렇게 못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니 비유만 깨달으면 다 깨닫는 것입니다. “구름 타고 메시아가 온다.” 그것도 비유입니다. 저 하늘의 구름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의 비유를 든 것입니다. 무엇을 구름으로 비유했느냐? 사람을 구름 으로 비유했습니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세상에 오셨습니까? 분명히 예수님이 오시면 구름 타고 온다고 했는데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셨습니까? 사람을 구름으로 비유했기 때문 에 바로 여인의 몸, 자기 어머니인 마리아가 축소시킨 구름입니다. 그 구름을 타 고 왔습니다. 구름은 깨끗한 것이 특징입니다. 물이 햇볕에 증발되어 오염물이 없게 깨끗하 게 올라갔습니다. 깨끗한 여인을 타고 온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깨끗해질 수 있습니까? 성경에 “하나님을 믿음으로 죄를 회개하니 깨끗하게 되었더라.” 했습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을 믿고, 요셉이 하나님을 믿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믿 으니 이스라엘 민족이 택한 민족, 깨끗한 구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타고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구름 타고 온다는 것은 바로 그것을 말한 것입 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메시아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2천년동안 주장해 왔 는데 그 구름의 실체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구름의 실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 다. “사람 타고 온다. 한 여인이 낳아서 온다.” 그것이 구름 타고 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치이지 않습니까.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온다고 믿으며 늘 구름만 쳐다보고 있어야 되겠습니까. 성경을 이렇게 풀어 나가니까 속이 시원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2천년동안 구름 타고 메시아가 온다는 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말 을 문자 그대로 보기 때문에 2천년대에 메시아가 구름을 타고 올 것이라고 계속 기다렸습니다. 어떤 메시아가 오느냐 했을 때, 예수님이 메시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온 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천년이 되어도 다시 안 오지 않습니까. 일부 는 “연장되었다. 너희들이 죄를 짓고 회개치 않았기 때문에 연장되었다.” 이렇게 풉니다. 말은 만들면 끝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아니다. 땅에서 역사를 펴나간다. 한 중심자를 보내서 그가 먼 저 맞게 된다. 예수님 때 예수님이 먼저 하나님을 맞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따라가게 만들었듯이 이 시대도 하나님이 한 중심자를 세우고 그를 통해 서 생명의 말씀 전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 말씀을 따라 가게 만든다. 그것이 재림 의 역사이다. 성약의 역사이다.” 이렇게 풀고 우리는 가고 있습니다. 똑똑히 완벽하게 알아야 됩니다. 선생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을 보십시오. 완벽 하게 색깔이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까. 인생들이 얼마든지 완벽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 차를 만들 때도 완전하게 만들 지 않습니까. 발통 하나를 빠지게 해서 팝니까? 그렇지 않으면 핸들이 이상이 있 는데 팔아먹습니까. 완벽하게 만들어서 “이상이 없습니다.” 하고 팔지 않습니까. 인생이 하나님 앞에 얼마든지 완벽하게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제대 로 모르니까 완벽하게 행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 짤막한 20년, 25년 만에 이와 같이 복음이 세계로 10개국, 20개 국, 30개국, 40개국으로 자꾸 번져 나가겠습니까. 작으나 크나 자꾸 번져 나가지 않습니까. 이것은 완벽한 말씀을 전해서 그것을 완벽하게 행하라 하기 때문에, 그 를 믿고 그를 행해나가기 때문에 복음이 살아서 자꾸 펴나가는 것입니다. \ 내 고향에서 목회를 나간 목사님들을 보면 지금도 대개 100명 교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20대에 목회를 시작해서 30년씩 목회를 했습니다. 신학교를 나와서 전도사로부터 시작하여 30살 전에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30년, 35년이 되 었는데 보통 100명, 500명, 600명 이하 선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제일 잘되 는 교회가 500명 정도 됩니다. 교인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어제 물어봤습니다. 그 분들에게 물어본 것이 아니라 다른 제자들을 보내서 물어봤더니 “70명 선에서 혹 은 400명, 500명, 600명이 되는데 중고등부까지 다 합해서 그렇습니다.” 했습니 다. 나는 그들보다 훨씬 늦게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돈이 없어서 기독교 신학도 못 하고, 노방을 다니면서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의 능력을 받고 병도 고쳐주고 복음을 전하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내가 목사가 아니라서 교회가 없으니까 “가까운 교회로 나가라. 천주교나 장로 교나 성결교나 감리교에도 나가라. 다 하나님이 운영하는 회사들이다. 하나님이 운영하는 구원 역사의 기업들이다. 생명의 기업들이다. 부담 없이 다 거기로 나가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교로 가면 안 된다. 내가 하나님의 이야기를 했는데 불교로 가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불교는 왜 안 되는가 하면 불교에서는 하나님을 안 가르쳐 줍 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잘 가르쳐 줬습니다. 불교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안 가르 쳐주고 석가모니만 가르쳐줍니다. 그러니까 석가모니에 대해서만 미치는 것입니 다. 하나님을 가르쳐줘야 하나님의 나라까지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 님을 가르쳐줬습니다. “하나님을 알아라. 아버지를 알았으면 나도 알게 될 것이다.” 자기를 알라는 것은 자신이 메시아인 것을 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을 바로 알게 되면 하나님이 가르쳐 주니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하고 돌아다니며 이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계속 그렇게 다니다가 34 살부터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말씀을 듣고 “어느 교회로 갑니 까.” 했을 때 “나한테 와서 교회를 만들자.” 했습니다. “신학을 했습니까?” “신학을 안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잘 압니까.” 하고 놀랐습니다. “교회를 만들자.” “뭐라고 불러요?” “나는 집사도 아니고 반사도 아니다. 집사는 1년에 한 번씩 임명해서 집사 직을 주는데 내 고향 석막교회에서 집사직을 받은 지 1년이 넘었으니 끝났다. 주일학 생이 없으니 반사도 아니다. 목사도 아니고 전도사도 아니고 아무 직이 없다. 그 래도 다만 너희를 가르쳐 주고 싶다.” “그러면 우리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너희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불러라. 가다가 이렇게도 부르게 되고 저렇게도 부 르게 될 것이다. 아저씨라고 해도 좋고 형이라고 불러도 좋고 마음대로 하라. 너 희들 입에서 그 때 그 때 부르는 이름들이 각각 여러 가지로 나가리라.” 그렇게 해서 복음을 전하며 왔습니다. 80년대 초반부터 한 명씩 두 명씩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금방 인원이 불지 않았습니다. 한 5년, 6년 가니까 몇 백 명씩 오기 시작했습니다. 10년이 되니까 몇 천 명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20년이 되니까 몇 만 명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위대한 말씀이 있어야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30분, 40분 설교를 가지고는 많은 말씀을 못하고 금방 끝나버립니다. 잠깐 몇 가지를 말씀하 더라도 확실히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모릅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 오신다, 메시아가 온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안 온 다고 해서 이단소리를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가지고 옛날 이스라엘 민족에서 살던 그 모습 그대로는 안 온다.” 해서 이단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모두들 2천년대가 되면 꼭 온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안 온다. 진리를 볼 때 그것이 아니다. 예수님 때도 메시아가 하늘에서 온다고 했는데 땅에서 오지 않 았느냐. 지구상의 성현들이나 영웅들이나 어떤 주권자도 다 땅에서 여자의 몸을 통해서 왔다. 예수님도 여자의 몸을 통해서 왔다.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냐. 앞 으로 오는 재림주도 여자가 낳아서 땅에서 온다.”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맞지 않 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듣고 이단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땅에서 난 자가 메시아가 될 수 있느냐.” “예수님은 땅에서 났는데 메시아가 아니냐.” 그랬더니 뭔가 이상하다 했습니다. 어린아이들이라 모르는 것입니다. 2천년이 되기 30년 전, 1970년도 쯤 되었을 때 “메시아가 온다. 지구촌에 곧 나타난다. 여러분은 지금 젊으니까 50대 때에 맞을 것이다.” 이와 같이 부흥강사들이 막 외 쳤습니다. 나는 그 때 역사 따지는 것을 알고서 그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때쯤 되면 지구상에 누군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보낸 자가 나타나서 완벽한 진리의 말씀을 전하면서 나타난다.”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성서의 말씀을 들으며 ‘내가 어느 정도 말씀에 완벽해야 그가 완벽한 말씀을 전 할 때 나도 받아들이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성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아야 누가 완벽한 말을 할 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잘못된 주관을 갖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온전한 말씀을 전해도 내가 안 받아들이기 때문 에 그러면 큰일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런 진리를 먼저 깨닫고 예수님을 대했을 때 예수님이 나에게 이렇고 이 렇다 할 때 그것이 맞다고 했습니다. “구름이 사람인 것이 맞다.” 했습니다. 예수님도 구름이 사람이라고 말씀했습니 다. 히브리서 12장 1절에 “구름이 사람이다. 많은 사람이 둘러서서 나를 증거하 지 않느냐. 증거하는 자들을 보도록 하라.” 했습니다. “너희는 이 구름같이 둘러선 나의 제자들의 증거를 들어 보라.” 했습니다. 자기 를 증거하는 사람들을 구름이라고 했습니다. 구름같이 둘러선 무리들을 보라 했습 니다.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육신이 꼭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평생 동안 기다려도, 앞으로 천년동안 기다려도 그런 육신을 가지고 오는 예수님은 못 본다는 것입니다. 옛날 예수님이 그대로 오지 않습니다. 아까 예배 때 말씀하기 전에 예수님의 얼굴이 뜬 것을 봤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영인체를 찍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육인체를 이 시대에 본 사람은 없습 니다. 2천 년 전 그 당세 때 예수님과 같이 산 사람만 봤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서 내가 참 많이 물었습니다. “예수님, 과연 어떻게 생겼어요? 정말 궁금합니다. 살은 쪘습니까? 뼈다귀는 강 했습니까? 그리고 털은 많이 났습니까? 그리고 나이에 비해서 젊으셨습니까?” 별것을 다 물어봤습니다. 산에서 21년 동안 기도할 때 얼마나 심심했겠습니까. 배우러 왔으니까 뭔가 물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을 잘 모르니까 예수님 본인한테 물어봐야 되지 않 겠습니까. “영인체가 나타나서 가르쳐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면서 물었습니다. 여러분 도 무엇이 궁금하면 굉장히 궁금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에 대한 것을 계속 파 헤쳤습니다. 이 사람은 성경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궁금한 것이 있으면 그렇게 파헤칩니다. 아주 바닥까지 파헤칩니다. 옛날에 라디오를 사왔을 때 일입니다. 아주 옛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에 우리 석막리 마을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가 사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것이 너무 궁금해서 살살 뜯어봤습니다. ‘도대체 몇 명이 들어있냐?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들어앉아서 노래를 하고 있는 거냐?’ 하고 뜯어봤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람 소리는 나 는데 사람이 없었습니다. ‘참 신비하다. 정말로 신비한 세계다. 너무너무 신비하다.’ 하고 신비를 느꼈습 니다. 여러분도 처음에는 라디오 속에 뭔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텔레비전이 나왔을 때 저게 사람인가 하고 가서 잡아보기도 했습니다. ‘야, 신기 하다’ 하며 신기를 느꼈었습니다. “예수님의 본체, 육인체는 못 오신다. 죽으셨다. 예수님은 그때 죽으셨다.” 했습 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에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했지만, 나는 죽으셨다고 했습니 다. 그래서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죽으셨다. 산 것은 영이 사셨다.” “어떻게 영이 죽고 살기도 하느냐? 영은 안 죽는데?” “영이 사망권에 있는 것을 죽었다고 하고 생명권에 있는 것을 살았다고 한다.” 그것도 예수님이 가르쳐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사망권에 가지 않았다. 생명권에 갔다. 의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랑의 본체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순종하고 살았기 때문에 사망권 으로 사탄이 잡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잡아갔습니다. 잡아다가 죽이고 했습니다. 선생도 육신은 잡아간 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 영은 잡아가지 못했습니다. 가라지들, 악한 자들이 내 정신은 굴복을 못 시켰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감금되게 했습니다. 못 움직이게 해 놨습니다. 영은 감금시키지 못했습니다. 영은 살았습니 다. 우리가 그렇게 주장을 하고 진리를 전해왔습니다. 기독교는 2천년이 되면 예수 님이 강림한다고 했는데 안 하니까 허탈감에 사로잡혔습니다. 미뤘다 하는 것도 어느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사람이 느낌이 있는데, 그렇게는 안 올 것 같지 않습 니까. “우리가 주장한 것이 맞다.” 하며 우리는 신나게 주장하고 가는 것입니다. “이게 맞구나. 이렇게 역사가 가고 있구나.” 합니다. 길을 찾은 것입니다. 이것 이 새 시대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시대에 해당되는, 신약권에 해당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구약은 구약권에 해당되는, 예수님이 오기 전에 그 나름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이 시대에 해당되는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이 시대 말씀을 듣고 거 기에 해당되는 삶을 살아가야 이 시대에 해당되는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반드시 이상세계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못하면 나 혼자라 도 하려고 했습니다. 정치에도 이상세계의 소망을 걸어봤고, 시대적으로도 이상세 계의 소망을 걸어봤는데 안 되었습니다. 이상세계는 어떻게 이루는가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이상세계가 이상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대를 따라 이 시대에도 “나는 포도나무요 너는 가지라.” 이와 같이 예수님과 똑같이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좋은 비유를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가지가 되고, 나는 나무가 되어서 내 안에서 거하고 일체가 되어야 모든 일이 잘되고 형통할 수 있다. 반드시 나와 같이 그렇게 해야 된다.” 예수님이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와 같이 일체가 되어야 모든 목적 한 일이 잘된다.” 했습니다. 그래서 알았다고 끄덕거렸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도 나와 같이 일체가 되어야 잘된다! 나와 같이 일체된 자는 하나님과 일 체 된 자다! 말씀 마쳤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의 헌금과 모든 것을 위해 기도하겠습 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우리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고 이제 그렇게 하 겠다고 결심하는 자에게 은총과 은혜를 주시고, 나머지 말씀은 계속적으로 새벽말 씀에 할 것이고, 수요예배 때는 전도대회 말씀으로 나갈 것이니 은혜를 베푸시옵 소서. 오늘 처음 온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은혜 있게 해 주시고 희망과 소망으로 가 게 축복해 주시옵소서. 삼위의 능력이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하심과 성령의 감동 감화 역사하심이 이들 머리 위에 영원할지어다. 아멘.